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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전/서울아트시네마 개관 9주년 기념 영화제

[리뷰] 스티브 맥퀸의 '헝거 Hunger'

 

스티븐 맥퀸의 데뷔작 <헝거>(2008)는 1981년 메이즈 교도소에서 단식(hunger) 투쟁을 벌이다 66일 만에 사망한 IRA(아일랜드 공화군) 소속 보비 샌즈(마이클 패스벤더)의 실제 옥중 투쟁을 소재로 한다. 스티브 맥퀸의 표현을 빌면, “11살 때 보비 샌즈의 단식 투쟁을 TV로 접한 이후 내게는 지금까지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었으며 연출자로 데뷔할 기회를 얻게 됐을 때 고민 없이 선택하게 된 작품이었다”고 말한다.

<헝거>는 북아일랜드를 둘러싸고 갈등을 빚고 있는 신교도(성공회)와 구교도(가톨릭), 즉 영국과 북아일랜드 간의 역사적 대립에서 연유한다. 17세기 이후로 줄기차게 아일랜드를 넘봤던 영국에 저항해 아일랜드는 독립하는데 성공하지만 신교도들이 월등한 북아일랜드는 영국 잔류를 주장했다. 과격단체 IRA가 등장하고 영국 정부가 폭력을 동원하면서 두 국가 간의 갈등은 극에 달하게 된다. (대표적으로 1972년 1월 31일 북아일랜드 데리시에서 영국 정부는 주민들의 비폭력 시위를 총을 난사하며 저지했다. 이 사건을 후에 폴 그린그래스가 <블러디 선데이>(2002)로 영화화했다.) 다만 보비 샌즈는 단식이라는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교도소 내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는데 그 과정이 바로 <헝거>가 보여주는 바다.


영국 런던 출신의 스티브 맥퀸은 12년형을 선고 받은 보비 샌즈의 4년차 옥중 생활에서부터 단식 투쟁에 대한 항변, 그리고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배경음 하나 없이 건조하게 바라본다. 일견 보비 샌즈에게로 기울어진 입장이지만 편파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감독 본인이 북아일랜드가 아닌 영국 태생인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영국의 잘못을 역사적 사실로 근거하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죽음도 불사한 보비 샌즈의 순교자적인 면모를 강조하는 탓이다. 단순히 영국이 폭력의 가해자고 보비 샌즈를 포함한 북아일랜드가 희생자라는 사실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무수한 의견 대립 속에 굴하지 않고 지켜낸 신념 그 자체를 보여주려는 의도가 더 큰 것이다.

극중 보비 샌즈가 단식을 앞두고 자신의 저항 방식에 대해 아일랜드 가톨릭 신부(리암 커닝햄)를 앞에 두고 펼치는 30분간의 항변은 신념의 정체를 드러내기 위한 내러티브와 형식, 연기와 촬영의 측면이 완벽하게 결합한 말 그대로의 명장면이다. 저항에 희생이 따라서는 안 된다는 신부의 의견을 보비 샌즈가 끝내 설득한다는 점에서 독립 쟁취에는 희생이 따를 수밖에 없다는 그의 입장이 내러티브적으로 명확히 드러난다. 교도소 내의 폭력적인 환경 묘사에 집중하던 영화는 이 장면을 분기점으로 죽음에까지 이르는 단식투쟁에 할애하며 자신의 신념에 엄격했던 보비 샌즈처럼 정확히 3막의 형식을 이룬다. 그리고 단 6개의 숏과 마이클 패스벤더의 스턴트에 육박하는 연기로 이뤄진 이 항변 장면, 특히 보비 샌즈와 신부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이뤄지는 대화를 고정 컷으로 16분간 잡아낸 첫 번째 숏은 (단 4번의 테이크로 OK 사인이 났다고 한다!) 관객들로 하여금 이들의 대화에 빨려들게끔 정서적인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보비 샌즈의 죽음이 북아일랜드의 독립을 가져온 것은 아니지만 그의 신념이 주변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은 절대적이다. 보비 샌즈의 혈육은 물론이거니와 영국민이었던 스티브 맥퀸 또한 그의 신념에 경의를 표하고 탈골된 진실의 제 자리 찾기를 위해 <헝거>를 연출하기에 이르렀다. <헝거>가 다루는 소재는 우리에게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국내 관객들의 마음까지 움직이기에 충분하다.

글/ 허남웅(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