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노 뒤몽의 <하데비치>(2009)의 한 장면에서 이 세계에서 폭력이 자연스런 것이라 말하는 남자에게 여자는 ‘그럼 순수한 사람들은 어떡하지’라고 묻습니다. 그는 정색을 하며 ‘사람들이 그들의 대표자를 선출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순수한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해? 너 또한 세계에 가해진 굴종에 책임이 있는 거야’라 말합니다. 고다르의 <비브르 사 비>(1962)에서 나나가 자신의 손을 들어 '내가 손을 드는 것은 내 책임이야'라며 세상의 모든 책임을 말했던 것처럼, 이 순간 남자는 세계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폭력에 우리 모두가 책임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손으로(혹은 잘못된 선택으로) 그런 전쟁과 폭력을 자행하는 이들에게 힘을 선사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뒤몽이 보여주는 우리의 삶의 조건이자 모럴의 조건입니다. 삶에서 본질적인 것은 그런데 영화에서도 본질적입니다. 영화에 포함된 모든 것이 또한 인간의 삶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페드로 코스타의 신작 제목은 의미심장하게도 ‘아무것도 바꾸지 마라’입니다. 고다르가 브레송에게서 차용한 말로, 원래 의미대로 하자면 ‘아무것도 바꾸지 마라, 모든 것을 다르게 하기 위해서’라는 말입니다. 브레송의 신비하고도 시적인 영화적 형식을 단순하게 요약한 것입니다. 사물에 충실하면서도 변화를 모색하는 것, 혹은 변화하는 가운데 또한 사물에 충실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에 어울리게 <아무것도 바꾸지 마라>(2009)는 영화의 에센스인 공간, 시간, 빛, 소리에 충실한 작품입니다. 이러한 요소를 활용해 코스타는 삶의 고뇌와 사랑의 고독을 신비한 아름다움으로 보여줍니다.


9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시네마테크가 개관한 게 2002년의 일이니, 횟수로는 올해가 벌써 10년째입니다. 이 장소를 찾았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오랫동안 볼 기회가 없는 분들도 있습니다. 새롭게 이곳을 찾아온 이들도 있습니다. <하데비치>에서 수녀원장은 신에의 열정에 사로잡힌 소녀에게 세상에 나가 현실에서 새로운 것을 찾아보라 권합니다. 수도원에는 언제든 돌아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서울아트시네마의 생일을 맞이하며 ‘아무것도 바꾸지 마라’는 말을 다시 한번 떠올려봅니다. 다만 모든 것을 것을 다르게 하기 위해, 그리고 보다 충실하기 위해 세계를 믿고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입니다. 언제든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장소로 시네마테크가 여전히 남아 있겠다는 그런 의미이기도 합니다.

/ 글_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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