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 25. 14:16ㆍ2013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Review
리뷰
법의 굴레와 책임으로부터의 해방감
- 숀 펜의 <인투 더 와일드>
<인투 더 와일드>는 배우 숀 펜이 아니라 감독으로서의 숀 펜을 만날 수 있는 작품이다. 그는 이미 1991년부터 차곡차곡 영화를 만들어온 감독으로 <인투 더 와일드>(2007)는 그의 네번 째 감독작이다. 숀 펜은 이 영화에서 연출만이 아니라 각본과 제작까지 맡았다.
영화는 세상을 등지고 알라스카로 향했던 실존인물 크리스토퍼 존슨 맥캔들리스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한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크리스(에밀 허쉬)는 대학 졸업 후 가족 모두와 연락을 끊고 여행을 시작한다.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에게 부여되었던 모든 것들을 버리고, 온전히 자신의 선택으로만 이루어진 삶을 개척하기 위해서다. 그러기 위해서 그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새로운 이름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에게 ‘알렉스’라 이름붙이고, 방랑자라는 뜻을 가진 ‘슈퍼트램프’라는 성을 붙인다. 관객은 알렉스가 사회적 관습이나 제도에 의해서 성장, 혹은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만의 호흡에 따라 조금씩 이동하는 모습을 바라보게 된다.
한 젊은이가 자연 속으로 들어간다는 이 단순한 이야기는 영화 속에서 그 시간적 순서가 조각나고 재배치되었다. 그리고 이 시간적 순서는 알렉스만의 유토피아인 알라스카를 기점으로 해서 재배치된다. 영화 속에는 그가 ‘알라스카로 향하는 시간적 순서’와 ‘알라스카에서의 생활, 그리고 그곳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는 시간적 순서’가 동시에 공존한다. 전자는 자연 속으로의 ‘이동’을 그리고 있으나, 후자의 경우 알렉스가 ‘마법의 버스magic bus’라고 부르는 버려진 버스 안에서의 ‘정체된 생활’을 그리고 있다.
관객은 알렉스와 함께 여행을 떠나게 된다. 대자연이 익스트림 롱숏으로 화면에 담기면, 그 속에서 알렉스는 아주 작은 존재가 되고, 카메라는 흔들림 없이 멀찍이 떨어져 대자연을 관망한다. 관객은 여행 도중에 만나는 사람들과의 에피소드나 알렉스의 과거에 대한 드라마보다도 알렉스 개인이 무력해지고 조그마해지는 이 거대한 크기에 매혹을 느낄 것이다. 알렉스의 말대로 “우리의 가슴 속에는 항상 법의 굴레와 넌더리나는 책임들로부터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들어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알렉스가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고요하게 앉아서 책장을 한 장씩 넘기는 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보거나, 눈 덮인 너른 대지에 그가 한 발짝 한 발짝 발자국을 남기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 해방감은 충분하다. 그리고 그 해방감은 어쩌면 이 영화의 모든 것이기도 하다.
배동미 / 관객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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