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 17. 16:39ㆍ2013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Review
리뷰
망각의 새로운 가능성
-미셸 공드리의 <이터널 선샤인>
어느 날 아침 한 남자가 출근 대신 충동적으로 여행을 떠난다. 기차를 타고 바다를 찾은 그는 그곳에서 우연히 한 여자를 만난다. 남자는 지나치게 수줍어하고, 여자는 어딘가 들떠 있다. 그리고 그날 밤 얼어붙은 강 위에서 두 사람은 나란히 누워 밤하늘을 바라본다. 관객은 영화가 한참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이 두 사람이 과거에 이미 헤어졌던 연인임을 알게 된다. 그들은 서로의 기억을 잃어버린 채 자신들이 처음 만났던 장소에서 조우한 것이다. 다시금 사랑의 출발에 선 그 순간에 기억과 상처는 불쑥 되돌아오고, 인물들은 선택을 해야 한다. 변덕스러운 감정은 언제든 그들을 다시 고통 속에 몰아넣겠지만, 어쨌든 두 사람은 이 우연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렇게 사랑은 다시 시작된다.
<이터널 선샤인>은 무엇보다 찰리 카우프만과 미셸 공드리의 공동 작업으로 관심을 모았고, 그 결과는 충분히 만족스러운 것이었다. 두 사람의 공통된 관심사(기억, 꿈, 불안, 무의식)가 바탕이 되었고, 카우프만 특유의 섬세한 플롯 구성은 공드리의 시각적 아이디어와 만나 시너지 효과를 냈다. 특히 기억을 삭제 당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기억을 지켜내기 위해 분투하는 모습은 애잔함과 함께 보는 이의 마음을 흔든다. 한편 겹겹의 플래시백으로 들쭉날쭉하고 복잡한 구성은 영화와 관객 사이의 변화된 상황을 예시한다. 상황과 공간들을 연결하는 방식에서의 촉각성은 기억을 시각적 재생이 아닌 접촉과 전이의 과정으로 옮겨놓는다. 이때 ‘기억’을 ‘영화’로 바꿔 말해도 좋을 것이다. <이터널 선샤인>에서 공간화된 기억, 인물 내부와 외부를 동분서주하는 과정은 영화와 관객 사이의 상호작용에 다름 아니며, 체화된 감각에 대한 강조는 특수효과 대신하는 특유의 ‘로우테크’로 이어진다.
이러한 감각들은 영화 안에서 기억의 파괴에 대응하는 것이며, 동시에 미셸 공드리가 보여주는 노스탤지어와 환상이 갖는 힘이기도 하다. 그의 영화에서 기억/망각, 현실/꿈, 실제/재연의 이분법은 더 이상 기능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관객은 더 이상 수동적인 위치에 머물지 않으며 적극적으로 영화에 개입하기에 이른다. 영화가 반복해서 얘기하는 니체의 경구는 망각에 보내는 찬사이다. 이때의 망각은 새로운 출발을 위한, 능동적이고 창조적인 능력을 의미한다. 기억은 망각의 극복이 아니라 망각이라는 구성적 작업을 통해 비로소 가능해진다. 그런 의미에서 <이터널 선샤인>의 기억 상실은 <비카인드 리와인드>에서 비디오 대여점의 죄다 지워진 영화 테잎들과도 같은 맥락에 있다. 망각과 지워짐의 과정은 파괴적이지만 동시에 유희의 공간을 열어둔다. 그곳에서 공드리는 지극히 사적인 기억과 환상에 의지해 소진되지 않고 여전히 남아있는 과거의 잠재력을 다시 불러들인다. <비카인드 리와인드>에서의 유토피아적인 거리 공동체나 <이터널 선샤인>에서 사랑이 다시 시작되는 그 순간처럼 말이다.
장지혜 / 시네마테크 관객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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