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구로사와 아키라 영화의 매력

 

구로사와 아키라는 영화가 감동적인 작품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영화 속에 영화적 아름다움이 들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것이 아주 잘 표현되면 관객들이 영화를 보면서 깊은 감동을 체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영화감독이 영화를 만드는 최초의 동기 또한 이러한 매력을 달성하려는 희망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영화적 아름다움, 혹은 영화의 매력은 어떠한 것인가? 이번에 상영하는 14편의 영화들 중, 대표적인 세 편의 영화를 통해 구로사와 영화의 매력을 소개한다.

 

원숙함과 관조적 정서 <붉은 수염>

 

 

구로사와 아키라와 미후네 도시로 콤비의 마지막 작품인 <붉은 수염>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 작품 중 분기점에 해당하는 영화이다. <붉은 수염> 이후로 그의 영화는 흑백에서 컬러로 넘어갔으며, 미후네 도시로와 함께했던 시기의 파워풀하고 오락적인 측면은 이후 1970년대 그의 영화들에서는 볼 수 없다. 1950~60년대가 그의 커리어에 있어서 전성기였다고 하면, 1970년대 이후의 영화들은 일본영화의 천황이라는 아이러니한 명칭으로 불리면서도 거대한 스케일의 실험을 거듭했던 후기 구로사와 영화의 또 다른 행보이다.

 

<붉은 수염>은 미후네 도시로의 매력뿐만 아니라 1960년대 구로사와 아키라가 보여 주었던 모든 영화적 요소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작품이다. 에도시대 후기를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에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1960년대 영화들에서 보여졌던 특질들, 즉 서민들의 피폐한 생활과 그 안에서 넘쳐나는 인간미, 안티 히어로에 가까운 미후네 도시로의 시니컬하면서도 여유로운 초인의 이미지, 세상사 모든 희로애락을 축소해 놓은 듯한 소우주로서의 완벽하게 닫힌 하나의 공간이 모두 존재한다. 테크니컬한 측면에서도 이 영화는 다수의 인물들을 한곳에 몰아넣고 적절하게 배치하며 이동시키는 아키라 식의 화려한 미장센과 카메라의 운용이 돋보인다. 서양 의술을 배운 오만하고 야심찬 젊은 의사 야쓰모토가 뒷모습을 보이며 '붉은 수염'의 병원으로 들어가는 롱 테이크로 이루어진 첫 장면은 구로사와 아키라의 1960년대 영화들에서 많이 보이는 도입부의 수법으로, 구로사와 영화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첫 장면들 중 하나인 <요짐보>(1961)를 연상시킨다.

 

세 시간에 달하는 긴 상영 시간에 인터미션까지 존재하는 이 영화는 병원을 운영하며 어려운 이들을 돌보는 의사 ‘붉은 수염’과 약혼녀의 배신으로 인해 모든 것에 환멸을 느낀 젊은 의사 야쓰모토를 중심으로 한다. 더불어 그의 병원에 들어온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사연을 다루는 일종의 에피소드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미후네 도시로가 연기한 붉은 수염은 이야기의 전면에 나서기보다는 그 모든 이야기들을 수렴하고 논평하는 신적인 존재로 등장한다. 젊은 의사 야쓰모토는 일종의 관찰자로서 붉은 수염의 병원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이야기들을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체험하며 관객들의 감정이입을 이끌어나간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에서 미후네 도시로는 단순한 배우 이상의 역할을 해 왔으며, 그의 캐릭터는 문자 그대로 구로사와의 영화 속에서 성장을 거듭했다. 흥미로운 것은 두 콤비의 마지막 작품인 <붉은 수염>에서 미후네가 연기하는 붉은 수염이 거의 초인에 가까운 완성형의 인간인 동시에 세대교체를 준비하는 인물이라는 사실이다. <붉은 수염>은 구로사와 아키라와 미후네 도시로가 함께 만든 가장 원숙한 영화인 동시에 그들이 함께했던 전성기에 대한 마침표처럼 느껴지는 기이한 관조적 정서를 지니고 있는 영화인 것이다.


 

최은영│영화평론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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