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간 제천 산 속에 박혀 있다가 서울에 와 인터넷을 켜고, 믹싱 작업을 위한 녹음실 대관을 위해 미디액트 홈페이지를 여니 아뿔싸! 놀란 가슴 달래며 여기저기로 서핑을 하니 똥내 가득한 말과 소식들이 바다 위에 둥둥. 영진위, 시네마테크, 미디액트라는 태그를 안고 있는 포스트가 한 무더기. 그리고 도착한 네오이마주에선 비참한 사실들로 초토화 되어있고, 이글 저글 사이에 팽팽하게 서려있는 긴장감에 가슴이 두근두근 거린다. 그래 그러니까 한 시간도 안 되서 설마가 사람 잡는 일을 내 눈으로 쉴 새 없이 봐버렸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의 무게가 이리도 무거우니, 산속에서 도닦는 바보 같은 짓은 농담이라도 하지 않겠다고 다짐에 다짐을 거듭한다.

사태가 이 정도로 참혹해지니 슬프고 슬프고 슬프다. 항상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들이 사라지니 슬프고, 나의 게으름에 슬프다. 추억이 서려있는 공간이 사라짐에 느끼는 고통이 얼마나 아쉽고 쓰라린지 알면서도 머뭇거린 내 태도가 서럽다. 장비 대여나, 믹싱 작업을 위해 기웃거린 미디액트의 안녕도 서럽지만, 나의 고등학교의 추억과 지지난 주에 영화를 본 기억이 서려있는 공간인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이하 '시네마테크 서울')의 위기는 더더더욱 서럽다.

그러니까 시네마테크 서울은 고등학교 2학년 시절 어느 날, 하교 직전 《씨네21》에서 관련 소식을 발견하고는, 집으로 가지 않고, 달라붙는 친구들을 죄다 따돌리고, 난생 처음 보는 미지의 영화를 보기 위해 표를 끊고 들어간 장소. 그렇게 극장 안으로 들어가니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 류승완을 발견하고, 감독이란 걸 실제로 본 충격에 어벙벙해서 저게 류승완이 맞나 하며 기웃거리며 혼을 멀리멀리 보내다가, 류승완 옆에 앉은 안경을 쓴 장발 사내의 ‘저 자식은 뭐하는 놈인데 얼쩡대’란 표정과 ‘영화 상영 합니다’라는 소리에 간신히 정신을 차린 장소. 영화를 보기 위해 자리에 앉으니 나하고 얼마 떨어지지 않는 자리에 앉은 류승완을 굉장히 신기해하며 이상한 장소에서 이상한 경험과 이상한 영화를 보고 있다는 충격에 자꾸 자꾸 놀라게 한 장소. 영화가 끝나고 류승완이 내 앞을 지나가길 기다리다가 결국 싸인을 받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설레임에 가슴 뛰는 추억을 안겨준 장소이다.

난 그렇게 좋은 영화 보기를 시작했고, 그 좋은 영화 보기의 시작을 허한 장소가 시네마테크 서울이다. 그렇게 좋은 영화를 보고, 좋은 영화에 대해 생각하기 위해 노력하며, 좋은 생각과 좋은 문자들을 섭렵하려 노력하면서 나는 시네마테크에 출입하기 전보다 좋은 사람이 되었다. 만약 내가 어마어마한 수의 엄청나게 좋은 영화들을 쉴 새 없이 상영‘해주는’ 시네마테크를 알지 못하고 지나쳤으면 난 지금처럼 좋은 사람이 되기 굉장히 힘들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내가 아는 가장 훌륭한 공간 중 하나인 시네마테크의 위기를 안지는 꽤 되었지만, 이런 저런 핑계로 적극적인 제대로 된 행동을 미룬 내가 바보 같다. 내가 읽은 활자들이 아무리 훌륭할지라도, 실제 삶과 디졸브 되지 않는다면 놀음으로 흘러갈 뿐이란걸 깨닫고 감동했음에도, 문자 배치에 빠져 내 게으름에 대한 변명에 바빴던 것이 후회가 된다. 지금 시네마테크 서울이 겪고 있는 위기는 애초에 일어나지 말았어야 한다. 옆사람을 생각하기 전 내가 움직였어야만 한다. 사태의 시급함을 알리는 글들에 휩쓸리지 말고 냉정을 찾자는 말을 지금하고 싶지 않다. 그냥 시급함에 대한 경보에 휩쓸려 열 뻗치고 싶다. 그 뻗치는 열을 욕으로 풀지는 않을 테다. 제대로 된 주먹을 날리기 위해선 욕을 참고 참아, 욕을 못함의 서러움에 질려 날려야 한다. 그러니 욕을 참고 참아, 뻗친 울분으로 액션 할 테다.

시네마테크 서울은 영화 관련 책을 보며, '설마 이런 영화를 보지 못하겠지'는 풰이크란 걸 알려준 장소이다. 몇 년 간의 고운 추억이 서려 있고, 앞으로의 내 인생의 추억의 한켠을 담당해야만 하는 장소이다. 언젠간 서울을 꼭 떠나 귀농할테다, 라며 다짐하다, 시네마테크 서울 때문에 그 다짐은 실행에 옮기기 힘들겠구나란 생각을 하게 만든 장소이다. 사랑한다 사랑한다를 쉴 새 없이 떠들다가도, 매정히 출입하지 않고 홀대 하다 다시 찾더라도, 너그럽게 품을 여는 장소이다.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이 영화를 성립시키는 조건 중 하나임을 가르쳤고, 그것을 큰 깨달음으로 이끌어낼 장소이다. 린치의 영화에 불쑥 등장하는 음산한 전자음의 정체가 극장이란 걸 속삭인 장소이다...



 

내게 시네마테크 서울이란 곳이 지니는 의미는 더더욱 많다. 하지만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많을 것이다. 그러니  ‘...’ 은 당신의 것. 이 글도 당신에게 보내는 편지. 나처럼 주저하는 당신에게 보내는 편지. 이 정도의 위기에도 주저하고 있다면, 이런 바보, 당신은 정말 바보. 시네마테크 서울을 지켜낸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고 있을지 당신의 머리에서 떠다니는 문자들은 증명할 수 있어요. 우리 모두 제대로 똘똘뭉쳐서 이 위기를 해프닝으로 만들어요. 내일은 종로 3가에 가야지. 내일 모레도 가야지, 그 다음날도 가야지. 항상 시네마테크에 가야지. (정용_관객회원)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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