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횡가는 춘추전국시대에 나타난 제자백가의 일파이다. 그들의 특징은 공로와 이익, 관직과 지위를 최상의 목표로 삼는 것이다. 관직에 오를 수만 있다면 옛날에 어떤 일을 했든지, 또 목적이 무엇이든지 간에 모두 성공한 자로 취급된다. 소위 ‘성공한 자가 왕이고 패배한 자가 도적이다’는 말은 이러한 것을 가리킨다.」  렁청진 著 『智典』 중

지난 글에서 나는 <시네필 권리선언>을 통해 시네마테크 공모제를 전면 거부하고 그 결과를 인정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이번엔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주장하는 ‘시네마테크 공모’가 얼마나 얼토당토않은 궤변이고 논리적 오류로 가득한지를 밝히려고 한다.

 



공모란 공모의 주체가 있어야 하고 대상이 명확해야 한다. 예컨대 영진위가 시네마테크를 공모하겠다고 한다면, 주체는 영진위이고 대상은 시네마테크가 된다. 이때 중요한 전제조건은 시네마테크의 소유와 권한이 영진위에 있어야 한다는 것. 그렇다면 시네마테크의 주인, 즉 서울아트시네마의 주인이 영진위인가? 천만에 말씀이다. 영진위는 ‘지정위탁’ 형식으로 임대료를 지원해주었을 뿐이다. 두 번 말 할 것도 없이 영진위 소유의 시네마테크는 서울 어디에 없다. 따라서 논점은 영진위가 주장하는 ‘시네마테크 공모’ 대상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것에 있다. 그런데도 영진위는 마치 자신들이 주인인양 행세하면서 대상조차 없는 실체를 공모하겠다고 나섰다. 결국 영진위가 강행하려는 공모란 것은, 자기들 입맛에 맞는 ‘임대료 지원 대상’을 찾겠다는 것에 불과하다.

시네마테크 전용관과 관련한 영진위의 권한은 오직, ‘임대료 지원’에 국한된다. 이는 영진위가 시네마테크전용관과 관련한 임대예산 이외의 목적으로는 이 항목의 예산을 집행할 수 없음을 뜻한다. 다시 말해 임대료를 지원하는 것 외에 별도의 지원예산은 편성되어 있지 않은 상태이며, 이를 다른 목적으로 전용(轉用)할 경우 문제가 생긴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존재하지도 않고, 영진위의 것도 아닌)시네마테크전용관 사업자를 공모하겠다니, 대체 조희문 위원장은 시네마테크의 개념과 실상과 예산집행 과정을 제대로 알고나 하는 소린지 의심스럽다.

정리해보자. 영진위는 시네마테크를 가지고 있지 않다. 만들지도 않았다. 오직 시네마테크전용관의 실체를 가진 것은 순수민간의 힘으로 일궈온 서울아트시네마 뿐이다. 이처럼 영진위는 주체가 아닐 뿐더러 공모 대상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는다. 단지 임대예산을 집행해 시네마테크를 지원해왔을 따름이다. 설사 영진위가 공모를 강행하더라도 그것은 임대예산의 지원여부를 결정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시네마테크 전용관 지원과 관련한 예산편성은 문광부를 심의를 거쳐 기획재정부의 ‘준정부기관 예산’ 항목으로 관리된다. 2010년 1월 29일 기획재정부 공공정책국 기획제도과 발신의 ‘2010년도 공기업 준정부기관 예산집행지침 확정’ 자료의 세부지침을 보면 「공모절차에 의해 사업을 추진하는 경우 가급적 상반기 중 공모를 완료하여 이월·불용이 없도록 최대한 노력한다.」 「국회․감사원․언론 등의 지적사항에 대하여 타당성을 면밀히 검토하여 예산을 집행한다.」고 되어 있다. 내용 중 ‘불용’이란, 다른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시네마테크 지원 사업은 임대료 지원 이외에 다른 사업비로 쓸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영진위는 프레시안의 보도대로 국정감사 지적사항을 배짱 좋게 무시하는 중이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영진위는 극장을 가진 자와 결탁해 시네마테크전용관사업을 운영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애시 당초 꿈도 꾸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말했듯이 영진위 예산은 ‘임대예산’ 밖에 책정되어 있지 않고 임대료지원에 해당되지 않을 땐, 불용처리 될 테니 말이다.

자기 소유의 시네마테크도 없고, 지원대상이라고 해봐야 서울아트시네마가 유일한 시네마테크전용관 사업을, 게다가 임대료를 지원하는 임대예산 지원 사업을, 마치 전용관사업자를 공모할 권한이 있는 양 당당하게 공표하는 것을 보면, 이 나라 영화진흥을 위해 존재하는 공공기관의 행정적 허점과 무대책을 한 눈에 알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조희문 위원장의 전력을 돌아보면 이 정도는 놀랄 일도 아니다. 영화계 좌파 척결을 구호로 이른바 ‘한예종 해체’를 주장했지만,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영상원이 설립되던 당시에는 그 학교 교수가 되겠다고 지원했던 인물이고, 스크린쿼터를 둘러싸고 찬반 논쟁이 거세던 당시, ‘영진위 폐지’를 주장하고 나서더니, 지금은 자신이 그 영진위의 위원장 자리에 덥석 앉은 사람이니 무슨 말이 필요할까?

십분 양보해서 임대료를 지원하는 ‘지정위탁’ 사업자를 선정하는 문제도 그렇다. 지난 8년간 훌륭하게 역할을 수행해온 서울아트시네마의 사업 내용을 평가해ㅡ2009년 그 혹독한 감사에도 서울아트시네마는 ‘문제없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ㅡ부족한 점이 발견되었을 때 ‘임대료 지원사업자’를 공모해도 늦지 않다. 설사 그렇다고 해도 영진위가 그 사업의 주인이 될 순 없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단지 돈을 지원한다면 누구라도 주인행세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참으로 무섭다.

거듭 말하건대 영진위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시네마테크전용관 사업자에 임대료지원을 하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는 것뿐이다. 그런데도 마치 시네마테크가 있는 양, 그것이 자신들의 것인 양 시네마테크전용관사업자를 공모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이처럼 ‘없는 물건을 팔고 주인 아닌 자가 남의 물건을 시장에 내놓으면’ 그걸 바로! ‘사기’라고 한다.

영진위와 조희문 위원장은 자신들의 주장이 얼마나 논리적으로 모순투성이인지를 먼저 살펴야 할 것이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해법은 간단하다. 시네마테크사업공모를 전면 백지화하면 된다. 돈이면 다 되는 세상에, 3D영화가 미래 영화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돈도 안 되고 고생만 죽도록 한 결과로 이런 수모까지 당하는 시네마테크전용관사업에 무엇 때문에 이리도 집착하는가!

조희문은 위원장 임명 직후 가진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영진위는 시장이 자율성을 갖고 저절로 굴러가도록 돕는 역할에 주력해서 궁극적으로는 영진위의 할 일이 별로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 한 바 있다. 딱 지금,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때론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세상에 도움이 될 때도 있다. 지금이 바로 그때가 아닌가 한다. 조희문 위원장이 종횡가(縱橫家)의 길을 것인지, 한국영화진흥에 기여한 선량한 공복(公僕)이 될 것인지 지켜볼 것이다.

(백건영 네오이마주 편집장, 영화평론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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