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에세이

나와 우리들의 시네마테크

마지막 방어선을 지키자!


때 아닌 슬럼프가 왔었다. 어언 6개월 정도 지속된 것 같다. 스스로 그렇게 글을 잘 쓰는 사람이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2년 여 전의 날이 바짝 선 글들이 내게는 더 좋은 작용을 했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내가 지향하는 글쓰기는 다소 거칠고 투박하고 저돌적이어도 그만한 애정과 감정을 지속적으로 표출할 수 있는 글쓰기였다. 그래, 방점은 지속적이라는 것에 찍혀있다. 그래서 안정적이고 친밀한 글들보단 확고하게 호불호를 가릴 수 있는 특정 글들을 옹호하는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뭐 그렇다. 블로그를 계속 하고는 있지만 몇 개월 전부터 지금까지는 쭈욱 슬럼프에 놓여있다. 이제 헤어나올 때도 되었는데 그만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사실 하나 있다. 그 '헤어나올 기미'를 제공해주는 유일한 공간 말이다. 바로 시네마테크다. 생각만이 아니다. 실로 그러했다.

 

2010년을 맞이하면서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시작되고, 나는 친구들 영화제의 상영작들을 통해 다시 한 번 슬럼프를 극복할 수 있기를 바라 마지 않았다. 그리고 몇몇의 영화들을 보고 몇몇의 글들을 끄적거리며, '몇 퍼센트 정도는 잃은(사실 잃을 것도 없지만) 것들을 찾아가고있지 않은가'라는 생각도 했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곳도 시네마테크였고 계속해서 친구들을 만나고 바득바득 살아남으려 투닥거렸던 곳도 시네마테크였기 때문이다. 결국은 그랬다. 모든 건 다 여기로 돌아오는구나. 그래서 나는 나에게 떨어진 그 짜증나고도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일을 떨쳐버리려고 여기에 다시 돌아왔구나 싶었다.

 

그런 시네마테크, 나와 우리들의 개인적인 기억이 농도짙게 녹아있는 시네마테크가 없어진다는 상상은 해본 적도 없다. 교복차림으로 룰루랄라 소격동에 첫 발을 디딘 시절부터 시네마테크와 동고동락하던 두 친구가 있는데, 시네마테크가 없었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우린 지금처럼 소통하며 지낼 수 없을 거란 생각을 한다. 압구정에서 밥을 먹든 강남역에서 만나 술을 한 잔 하든간에 그녀들과 이야기를 할때면 우리의 관심은 오로지 영화, 그리고 시네마테크의 존립에 관한 것이였다. 현대 영화들을 부정하는게 아니라 우리에게 그곳은 그냥 영화의 성전이었으니까. 시네마테크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다 가짜야'라는 말도 서슴없이 했었다. 그건 (사실) 여전히 변함 없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것을 포함해서도 왜 이곳이 지켜져야하고 왜 이곳이 마지막 방어선으로 작용해야하는지는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2010년 2월. 시네마테크가 고비다. 꽃 피는 3월이 오게 되리라 생각해보지만, 사실 아무 것도 예측하긴 어렵다. 그래서 시네마테크의 관객들은 이번 주 주말부터 관객모금운동을 펼친다. 운동은 이미 시작되었고, 무엇을 해야하는지 무엇을 해야 우리의 극장을 지킬 수 있는지도 너무 당연하게 알고 있다. 다만 그게 어느정도의 결속력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에 대해선 고민이 생긴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을 뒤로하고, 정말 우리가 지켜야 할 성역이 이곳이라면, 그곳을 위해 한 푼 두 푼 한 숟 두 숟 보태야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닐까. 우리의 환상이 지속적인 현실로 다가온다면 그건 더할나위 없이 좋은 것이겠지만 꼭 그렇지 않아도 우리는 그걸 '한 목소리'라 생각하며 지지할 수 있지 않을까. (강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