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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트시네마 소식

[관객인터뷰] 새로운 시네마테크의 모습을 관객에게 묻다

관객 인터뷰

- 새로운 시네마테크의 모습을 관객에게 묻다



2016년에는 시네마테크의 이전과 관련한 본격적인 작업이 진행될 예정이다. 현재 서울시는 충무로에 시네마테크를 위한 건축물을 지을 예정이고, 여기에는 다양한 영화문화 공간이 또한 마련될 계획이다. 새로운 건물에는 어떤 모습의 시네마테크가 새롭게 마련되어야 할까? 시네마테크를 찾는 관객들에게 이에 대해 의견을 물었다. 시네마테크는 앞으로 본격적인 관객들의 설문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공통 질문


1. 당신이 시네마테크에서 만난 최고의 영화는, 혹은 당신이 기억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2. 시네마테크가 새로 이전할 가장 이상적인 장소(현재의 충무로 부지를 포함)는 어떤 곳인가요? 새로 건립할 시네마테크에 상영관을 포함해 어떤 시설과 공간들(전시공간, 카페, 영상자료실, 주차장, 기타), 다양한 서비스들(웹사이트, 어플, 가격정책 등)이 제공되기를 원하나요?

3. 디지털 상영의 비중이 많아지고 있는 지금 시네마테크에서의 필름 상영과 디지털 상영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4. 현재 시네마테크는 자체적인 영화학교(아카데미)를 마련할 생각이다. 여기서 어떤 영화 교육이 마련되기를 원하나요?

5. 영화제, 독립영화관들의 재정적 어려움과 운영의 자율성이 늘 문제가 되고 있다. 무엇이 가장 큰 문제이고, 시네마테크의 안정적인 미래를 위한 운영에서 재원과 관련해 어떤 후원(기업 후원. 정부지원. 서울시의 지원. 개인 후원 등)이 더 마련되어야 하며, 새로운 공간에서 시네마테크의 자율성이 지켜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요?

6. 2016년 당신이 시네마테크에서 보고 싶은 작가, 작품, 혹은 특정한 시대의 영화나 테마, 장르가 있다면.

7. 시네마테크가 지금도 여전히 어떤 중요한 의미나 존재 이유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나.

배지영


1. 너무 많다. 너무 많은데, 그중 상영작을 거의 다 챙겨봤던 특별전들이 기억난다. 바로 떠오르는 것은 무르나우, 마스무라 야스조, 배창호 감독 회고전이다.


2. 충무로 부지가 좋다고 생각한다. ‘충무로’의 상징성도 있고, 물론 개인적인 욕심으로는 영상자료원에 가까운 곳에 위치해서 영화 보기의 동선이 짧아지면 좋겠지만, 그건 지리적 편중의 문제가 있다.

영상자료실과 주차장은 꼭 구비하면 좋겠다. 비록 나는 차가 없지만 주차장이 있으면 차를 가진 먼 곳의 영화팬들이 조금은 편하게 영화를 보러 올 수도 있지 않을까? 웹사이트나 어플을 새로 만든다면 사이트에서 바로 예매가 되게 하는 것도 좋겠다. 관객회원 예매도 일반 영화관 예매하는 것처럼 쉽게 된다면 좋겠다. 그런데 뭐, 전용관이 생기는 것만으로 좋다.


3. 필름으로 촬영한 영화의 프린트를 구할 수 있다면 당연히 필름 상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늘 이야기되는 것이지만 필름의 관용도와 그것을 구현하는 필름 프린트의 영역을 디지털이 따라가지 못하는 부분이 분명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디지털 복원작이나 이미 디지털로 촬영된 작품은 디지털 상영이 맞다고 생각한다. 설마 디지털 영화에서까지 ‘나는 필름 돌아가는 소리를 원한다!’고 말하는 관객이 있을까?


4. 개인적으로 영화학교를 졸업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시네마테크 영화학교라면 그 이름에 걸맞게 영화사조에 대한 커리큘럼, 그리고 ‘제대로 된’ 영화 감상법을 가르쳐주는 게 연상된다. 그런 이론에 대한 교육드이 이루어지면 좋겠다. 물론 이건 내가 영화제작을 전공했기 때문에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반대로 제작을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만약 제작에 대한 교육도 이루어진다면 현재 한국의 보편적 상업 영화와 최대한 동떨어진 영화를 만드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할 것 같다.


5.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우리’(관객회원, 후원회원)가 아닐까. 전용관이 건립되거나 큰 재원이 필요한 부분은 분명히 정부와 시의 지원이 필요할 수밖에 없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런 것들은 늘 자율성 침해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제대로 된 정부가 들어서고 문화의 독립성을 존중하며 지원해주는 것이 너무 당연하지만, 그것에 대한 불안이 있는 지금은 시네마테크에 꾸준히 관심을 갖고 힘을 실어줄 회원들이 최대한 확보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 우리가 보고 싶은 영화, 만들고자하는 전용관의 모습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6. 나루세 미키오 특별전을 요즘 보고 있어서인지 지난번에 오카다 마리코 특별전을 했던 것처럼 다카미네 히데코를 비롯한 여배우 특별전을 시리즈로 보고 싶다. 독일 표현주의 영화와 그 영향을 받은 현대의 작품들을 함께 보고 싶기도 하다.


7.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열심히 보기 시작한 지 10년 정도 되었는데, 참 많은 영화들과 작가들을 만나고, 알게 되었다. 시네마테크에서 가장 즐거운 순간은 몰랐던 영화를 처음 만나게 되는 바로 그 순간이다. 이곳이 아니었다면 아마 죽을 때까지 몰랐을 것이다. 오래된 영화 속의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나 소녀의 미소, 소년의 눈빛, 고난을 극복하고 화해하는 사람들의 모습 같은 것들. 그리고 그것을 함께 바라보는 관객들. 스크린에 몰입하는 순간의 아름다움. 여전히 내게는 이름 낯선 미지의 작가들이 많다. 정말 모르는 이름들을 들을 때 마다 한참 멀었구나 싶어서 깜짝깜짝 놀란다. 미처 만나지 못한 그 목록에는 과거의 대가들의 이름들도 있고 동시대의 대가들도 있다. 그들을 온전하게 모두 만날 수 있는 공간은 역시 시네마테크이고, 그런 점에서 이 영화의 집은 지켜져야 하고 이어져야만 한다.




장혜인


1. 서로 다른 두 장소에서, 십여 년의 시간차를 두고 만난 버스터 키튼의 영화들. 그의 표정과 움직임이 빚어내는 가장 순수한 영화적 순간에 매료되었던 기억이 시네마테크에서의 가장 반짝반짝하는 순간들이 아니었을까.


2. 시네마테크의 새 집은 관객의 접근성과 안정적인 지원이 가능한 장소가 적합하겠지만, 위치보다는 관객의 소통에 대한 고민이 먼저 떠오른다. 영화 자료에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라이브러리, 자생적인 영화 수다가 활성화될 수 있는 카페, 소모임실, 강의실 같은 것들 말이다. 그리고 웹사이트도 소통의 장소로 활용하면 어떨까. 프로그램 정보 확인 이외에도 장기적인 프로그램 계획을 통해 앞으로의 시네마테크를 상상하고, 과거의 시네마테크를 돌아볼 수 있는 자산(관객과의 대화, 인터뷰 등 그 자체로 시네마테크의 역사가 될 수 있는 정보)들을 체계적으로 수합하고 공유할 수 있는 사이트가 필요하다.


3. 고전 영화를 디지털로 복원하는 경우도 많고, 비용과 보관의 측면에서 더 효율적인 디지털 상영이 선호되기도 하지만, 여전히 필름의 물질성을 완전히 재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문화유산으로서의 필름 자체를 보존하고 상영하는 것도 시네마테크의 몫이기 때문에 어느 한 쪽이 더 의미가 있다고 하기는 힘들 것 같다. 상영 포맷보다는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영화를 상영하고 관객들이 이를 공유한다는 자체에 의미가 있지 않을까?


4. 영화에서 ‘무엇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에 대해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자리가 있으면 좋겠다. 영화의 역사나 이론 등 기본적인 교육과 함께 영화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발견할 수 있도록 다양한 주제의 프로그램이 영화 상영과 연계되었으면 한다. 또한 현재 주 관객층 이외에도 미래의 관객인 어린이, 청소년에 대한 교육도 확대해야 할 것 같다.


5. 시네마테크의 안정적인 운영과 역할의 확대를 위해서는 공적 지원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시네마테크의 성격 자체가 비영리기관인 한편 공공성을 지향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렇지만 자율성 보장을 위해서는 시네마테크를 사랑하는 개인 및 단체의 힘이 더 필요할 것이다. 회원 및 후원을 위한 혜택(예매, 아카데미 수강, 커뮤니티 가입 등)을 늘리고 기업후원을 유치하는 방법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6. 한동안 보지 못했던, 작년에 갑작스런 부고를 들은 샹탈 아커만의 영화들. 그리고 현대의 영화의 흐름이나 영화사의 중요 작품을 주제별로 소개하는 등, 한 프로그램 안에서 영화들 사이관계를 생각하고 질문을 재생산해 내는 장기적인 프로그램 계획도 보고 싶다.


7. 시네마테크가 없어도 우리는 영화를 볼 것이다. 멀티플렉스에서, 안락한 집에서, 또는 핸드폰 화면 속에서,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것이다. 하지만 영화를 읽고, 생각하고, 함께 영화를 보고 나온 친구들과 그 영화에 대해, 그 전과 이후의 영화들에 대해 이야기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것은 오직 과거와 미래의 영화들을 연결시키고, 영화영화의 친구들과 함께 체험하고, 생각하고, 말하게 하는 시네마테크에서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영화라는 풍요로운 예술의 역사를 향유할 수 있는 공간, 그렇기 때문에 시네마테크는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여전히’ 필요한 공간이다.





박은주


1. 시네마테크에서 감상한 베스트 작품 중 두 편은 2012년 “우리 시대의 프랑스 영화 특별전”에서 본 파트리시오 구즈만 감독의 <빛을 향한 노스탤지어>와 2013년 “21세기 작가 열전”에서 만난 호세 루이스 게린의 <실비아의 도시에서>이다. 가장 잊히지 않는 에피소드는 2012년 시네바캉스 밤샘 상영에서 호러 영화 세 편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90>, <악마의 키스>, <이블 데드>를 지인들과 같이 봤을 때이다. 밤 10시에 상가 셔터가 내려져서 출구가 막혀 묘한 고립감을 느꼈고, 새벽 한 시 중간 휴식 시간에 낙원상가 옥상 바닥에 앉아 씨네필들과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 할 때 이런 기회가 흔치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결국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었다. 서울극장으로 옮긴 후에도 밤샘 상영이 열렸지만 그때의 분위기와는 많이 달랐다.


2. 이전 장소로는 현재 충무로 부지를 선호한다. 새로 건립할 시네마테크의 기본적인 시설 중 상영관, 전시 공간, 카페, 주차장은 기본적으로 구비해야겠다. 특히 상영관 중 하나에서는 특별전 프로그램과는 별개로 고전영화 (예를 들면 20~30년대 무성영화)를 상시 상영하고, 또 한 관에서는 작품성이 뛰어난 외화나 독립영화 중 상영 기회를 제대로 얻지 못한 영화들이 상영되기를 희망한다.


자료실은 전문적으로 외국 예술 영화 자료를 갖추면 좋겠고, 2-30명 정도가 상영회를 할 수 잇는 대여 공간도 있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컴퓨터나 모바일로 시네마테크가 보유하고 있는 작품들을 저렴한 가격으로 볼 수 있고 시네마테크 웹사이트에서 직접 예매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


3. 아직 디지털로 복원되지 않은 작품들은 필름으로 상영되어야 한다. 또한 필름 상영으로만 느낄 수 있는 영화 감상의 경험을 관객들에게 제공하는 시네마테크가 되기를 바란다. 더불어 더 다양하고 많은 필름 라이브러리 구축이 필요하다.


4. 이전에 시네마테크에서 운영하던 영화학교의 형태로 부활되었으면 한다. 영화 전공자가 아닌 일반 관객과 중고생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을 통한 예술영화 관객 저변 확대를 기대해본다.


5. 한국의 예술영화 전용관은 재정적인 어려움 가운데 마치 ‘문화자선사업’ 같은 형태로 운영되는 곳이 많은 걸로 알고 있다. 최근에 운영난으로 폐관되었다가 재개관한 대구 동성아트홀이나 12월에 개관한 창원 씨네아트 리좀의 경우도 독지가가 나서서 운영을 하고 있다. 상영관 3개를 가진 영화공간 주안의 경우에는 인천시가 아니라 구 차원에서 지원을 하고 있다. 그에 비해 재정 규모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큰 서울시가 시네마테크에 지원을 하는 건 그 반대 논리를 찾기가 힘들 것이다. 기업 후원과 개인의 후원은 보조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운영의 자율성이 유지되려면 서울시나 정부에서 지원을 받는다고 해서 현재 시네마테크 운영위원회의 권한이 축소되어서도 안될 것이다.


6. 2016년, 혹은 그 다음 해에 ‘릴리언 기쉬 특별전’이 열리기를 기대한다. 이미 영상자료원과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몇몇 작품을 상영한 적이 있지만 그녀의 데뷔작 D.W. 그리피스 감독의 단편 <보이지 않는 적>(1912), 빅터 쇠스트롬 감독의 <바람>(1928), 유작 <8월의 고래 The Whales of August>(1987)를 큰 스크린으로 보는 경험을 하고 싶다. 그리고 매년 시네마테크에서 개최하는 “베니스 인 서울” 처럼 차후에 베를린영화제, 칸영화제, 토론토영화제, 선댄스영화제 등에서 상영된 따끈따끈한 신작들을 감상할 수 있는 특별전이 개최되기를 희망한다.


7. 상업적 잣대나 관객수로 영화를 평가하는 일반 극장과는 달리, 상영시간표를 보지 않아도 늘 좋은 예술 영화를 만날 수 있는 장소로서 시네마테크의 존재가 중요하다고 본다.




최미연


1. 첫 번째 기억은 레오 맥커리의 영화를 맨 앞자리에서 보고 눈물을 훔치며 일어나는데 사방에서 온 줄도 몰랐던 친구들이 엉엉 우는 걸 보았던 겨울날이다. 2011년에는 <북극의 제왕>을 본 뒤 밤새도록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오승욱 감독의 시네토크를 들으며 안정적인 공간에 대해 처음으로 생각해보기도 했다. <몬티 파이튼의 성배>의 크레딧이 올라가자마자 휘파람을 불고 박수를 치던 관객들은 지금 어디 있을지 궁금하다. 어느 여름, 조셉 로지의 영화를 보고 있는데 지나가던 중국인 관광객들이 앞문을 열고 들어와 스크린과 사람들을 두리번거렸을 때는 우리가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곳에 모인 비밀결사조직같은 느낌도 들었다.

가까운 기억으로는, 지난해 버스터 키튼 전을 할 때 엄마를 데리고 왔었다. 영화를 좋아하시지만 1년에 극장 한 번 가기가 어려운데 3년만에 극장을 찾으셨다. 게다가 혼자 영화를 보는 건 수십년 만이고, 무성영화라서 더 부담스러워하셨다. 그런데 두 편을 연이어 보고 나와서는 웃음을 그칠 줄 모르는 엄마의 표정을 보며 다소 낯선 감정을 느끼기도 했었다.


2. 언제 와도 편안하게 다음 상영을 기다리거나, 그러다가 약속하지 않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광장’ 같은 라운지가 있으면 좋겠다. 시네토크 같은 행사도 라운지에서 다른 방식으로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난 뒤 집에 가기 아쉬울 때 가볍게 한 잔 할 수 있는 바나 카페가 있으면 한다. 아키 카우리스마키를 본 날에는 백포도주를, 오즈 야스지로를 본 뒤에는 사케나 맥주를 마시며 영화의 감흥을 이어갈 수 있는 공간이면 좋겠다. 그리고 정해진 좌석 없이 편안하게 몸을 뉘여 볼 수 있는 다른 형태의 상영관도 있으면 어떨까.

버스터 키튼전 때 느꼈는데 그의 단편들이 항상 상영되고 있다면 그것만큼 시네마테크에 어울리는 것도 없을 것 같다. 연령대를 불문하고 누구든지 경직되지 않은 분위기에서 키튼의 영화를 보며 웃으면 좋겠다.


3. 필름 상영을 고집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시대의 변화가 있기 때문에 자칫 낡아 보인다고 여겨질 수도 있고 물리적인 어려움들도 있지만 이것은 형평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필름 상영을 경험해 본 나로서는 다른 사람들도 같은 기회를 지속적으로 누릴 수 있어야 핞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게 시네마테크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화가의 그림을 화면 너머로 보는 것과 미술관에서 실물로 보는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지 않나.


4. 영화를 상영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큰 교육이지만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글을 쓰고, 또 카메라를 드는 것이 어렵지 않다는 걸 알려주었으면 한다. 지난 몇 년동안 사라진 프로그램 중 가장 아쉬운 것이 아무래도 ‘영화관 속 작은 학교’다. 나이가 어린 청소년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누구에게나 열린, 그렇지만 어디에도 없을 것 같은 영화학교.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5. 영화를 복지의 개념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소비하는 대상으로만 취급하는 게 가장 문제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시급하게 성과만 운운하는 이들은 찬찬히 들여다보셨으면 좋겠다. 이 공간을 아끼고 지지하는 이들은 이미 많은 시간을 인내해왔다. 올해는 앞으로 극장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해보는 한 해가 될 것 같다.


6. 일단 에릭 로메르의 계절 연작들은 때마다 꾸준히 상영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극장은 그 영화들과 언제 첫 만남을 가질지 모르는 관객들을 맞을 준비를 항상 해야하지 않을까! 그리고 배우 특별전도 재밌을 것 같다. 뷜 오지에나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 빌 머레이 같은 배우의 영화들만 틀어도 이미 리스트가 풍성하다. 데이빗 린치의 <트윈 픽스>도 극장에서 틀면 좋겠고, 어떤 카테고리로도 겹치지 않을 영화들을 무작위로 틀어도 재밌을 것 같다. ‘친구들 영화제’ 때마다 경건한 이 곳을 더럽히고(!) 싶다는 감독님들이 계신데, 그것보다 좀 더 유연하고 파격적이면 좋겠다. 예르지 스콜리모프스키 같은 6-70년대 폴란드 감독들의 결기 넘치는 영화들도 보고 싶다.


7. 미술관, 박물관처럼 영화의 집이 중요하다고 굳이 거론하지 않아도 이 곳은 이미 내게 너무 많은 배움을 주었다. 영화는 현실을 마주하기 힘들 때 편리한 도피처가 되기도 하지만 이 곳에서 만난 것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내가 삶에 뛰어들게 해주었다. 나와 다른 시공간을 사는 세계, 그리고 가까이는 내 삶을 이루는 것들을 이해하는데 끊임없이 깨우침을 주는 곳이다.

표현이 거칠지만, 사회가 병들지 않게 하는 공기 정화 장치로 볼 수 있다.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덤블도어 교수가 자신의 머리카락과 요술 거울을 통해 과거를 통찰했던 것처럼 이 곳은 믿기 힘든 보물 천지다.




박영석


1. 내게 최고의 영화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거울>이다. 친구들 영화제와 러시아 모스필름 회고전 등 상영이 있을 때마다 앞자리에 앉아 홀린 듯 스크린을 바라보던 시간들이 생각난다. 이미지 하나하나, 소리 하나하나가 나의 모든 감각을 자극했다. 나에게는 필름으로 영화를 관람하는 일의 가치를 가장 잘 느끼게 한다.

기억하는 에피소드는, 2010년 겨울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무렵, 영진위의 공모제 전환에 대응해 관객들이 자발적으로 로비에 모여 모금 운동을 했던 일이다.


2. 시네마테크의 지리적 위치보다는 어떤 설비를 갖추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필요치 않은 게 없다. 전시 공간은 있다면 매우 이상적이지만, 꾸준히 전시를 진행할 수 있는 실질적 여력이 없다면 차라리 그 공간에 넉넉한 자료실과 카페를 운영해 커뮤니케이션 장소를 만드는 게 어떨까 싶다.


3. 시네마테크에서 필름을 고집하는 일이 큰 가치가 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여건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필름 상영보다 더 중요한 것은 프로그램의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프로그램에 꼭 필요한 영화가 있는데 필름으로 상영할 수 없다는 이유로 배제한다면 아쉬울 것 같다. 필름 상영에 노력하되 디지털 상영도 병행했으면 한다. 앞으로 디지털의 비중이 점점 더 늘어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본다.


4. 영화사, 작가론(감독 회고전을 진행할 경우 연동하여 진행), 장르론, 영화 이론(기초 수준) 등의 강의가 있으면 한다.


5. 당연히 정부 지원이 필요하지만 이는 이미 한계를 드러내고 있고 개선의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돌파구로 생각나는 것은 기업 후원 뿐이다. 받기도 어렵고 문제점도 있겠지만 어느 정도의 ‘희생’을 감수해야 할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 자율성을 지키기 위해 돈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 어딘가의 지원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어차피 해결하기 힘든 모순이다.


6. 동유럽과 북유럽의 영화들. 그리고 서부극과 SF 영화들이 보고 싶다.


7.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큰 의미가 되는 곳이다. 고전 영화, 예술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고향 같은 곳이다. 누군가는 일상에 치여 시네마테크를 잠시 떠날 수도 있지만, 또 누군가는 새롭게 시네마테크를 알게 될 것이다. 이러한 순환 자체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장현욱


1. 당시 내 상황과 신기할 정도로 맞아 떨어졌던 영화들이 주로 기억난다. 한창 방황하던 때 봤던 오즈 야스지로의 <대학부터 붙어라>, 2014년에 봤던 존 포드의 영화들(특히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태양은 밝게 빛난다>), 작년에 본 <소서러> 등을 기억한다.


2. 충무로 부지에 대한 소식은 기사로 접했지만 아직은 막연한 느낌이다. 나는 여전히 시네마테크 하면 낙원상가가 떠오른다. 이름마저 낙원인 그 곳. 새롭게 만들어진 시네마테크에는 무엇보다 더 많은 시네마테크 프로그램들을 소화할 수 있게 상영관이 추가 되면 좋겠다. 기존의 대규모 상영관 뿐 아니라 크기는 작더라도 여러 가지 실험을 해 볼 수 있는 작은 규모의 상영관도 생기면 좋겠다.

아쉬운 건 영화에 대한 이야기들을 찾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아카이빙 서비스가 만들어지면 좋을 것 같다. 기존의 단편적인 영화 정보에서 벗어나 배우, 감독 뿐 아니라 작가나 촬영, 조명, 음악 등에 대한 정보도 찾아보고 싶다.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나 본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갈 수 있는 아카이브가 구축되면 정말 좋겠다.


3. 영화마다 그 영화의 매력을 표현하기 위한 최선의 상영포맷은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걸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이 시네마테크에 갖춰지면 좋겠다.


4. 영화 보기와 읽기, 만들기에 대한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마련되면 좋겠다. 여전히 유효한 영화 글쓰기에 대한 프로그램도 꼭 있으면 좋겠다. 영화 만들기에 대한 프로그램도 생기기를 원한다. 그리고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나 돈이 없는 사람도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 무언가를 사람들과 같이 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워진 요즘 같은 시대에 이런 게 더 필요한 것 같다.


5. 정부나 지자체, 기업들이 영화와 영화관의 공공성에 대한 이해와 철학이 없다보니 어이없는 정책들이 나오고 있다. 약속한 정책조차 지켜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 재정과 운영의 자율성이 지켜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관객의 힘을 모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도적 지원을 이끌어내고, 그 제도가 지켜질 수 있게 견제하는 역할 역시 관객이 바탕이 되어야 할 것이다.


6. 지금 생각나는 건 에드워드 양의 <하나 그리고 둘>이다. 두기봉의 영화도 보고 싶다. 서울에 대한 영화들, 청춘에 대한 영화들, 영화에 대한 영화들도 보고 싶다.


7. 예전 김성욱 프로그래머가 시네마테크는 전위보다는 후위에 가까운 것 같다고 말한 것이 기억난다. 지금처럼 공공성이 위협 받고 사라지는 시대에 지켜내는 것 자체가 어려워졌다. 영화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시네마테크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맥락에서 서울아트시네마는 항상 고마운 공간이다.




황선경


1. 작년부터 시네마테크에 오기 시작해서 지난 1년 동안의 영화들이 기억에 남는다. 작품 중에서는 <숀벤 라이더>와 <맨느 오세앙>을 만난 게 기뻤고, 포르투갈 특별전도 조금 특별하게 기억된다. 극장에서 안 봤다면 평생 찾아보지 않았을 작품들을 많이 만났다. 포르투갈 특별전에는 눈에 띄게 관객이 적었는데, 유운성 평론가는 “한국의 예술영화관 프로그램도 한쪽으로 집중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며 전혀 몰랐던 새로운 영화를 발견하게 하는 것도 시네마테크의 존립 이유 중 하나라고 했다. 여전히 극장은 썰렁했지만, 그래도 서로 얼굴을 익힌 몇몇 관객들은 꾸준히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2. 아무래도 시네마테크 전용관이 가장 이상적인 장소가 아닐까 싶다. 운영하는 사람들이 편한 곳이 관객들에게도 편하다고 생각한다. 자리를 자주 옮기지 않아도 좋은 장소이면 좋겠고, 관객들이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 지금보다 넉넉하면 좋겠다.

시네마테크는 다른 영화관과 달리 공공성을 띄는 곳인데, 사실 관객 입장에서 그 공공성이라는 것이 잘 체감되지는 않는 것 같다. 영화를 공부하는 학교 동기들이나 선배들도 시네마테크를 ‘우리들의 무엇’으로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예컨대 누군가에게 시네마테크는 고전 영화를 볼 수 있는 플랫폼 정도만 인식된다고 볼 수도 있다. 관객들의 편의를 위한 공간이 우선 필요할 것이고, 전시공간이나 영상자료실 등을 이용해서 시네마테크를 공적 공간으로 인식시킬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모쪼록 흡연 공간은 지켜지면 좋겠다.


3. 필름 상영만을 고집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그리고 그럴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다만 시네마테크가 일차적으로 ‘지나간 것을 보존해주는’ 박물관의 기능을 감당해 필름 상영을 계속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다만 필름 상영에 대한 미학적 논의도 있고, 무조건 필름이어야 한다는 강령 같은 주장도 있을텐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모르겠다. 이제 ‘필름 상영’이라는 말은 향수에 가까운 감성이 더 부각되는 것 같다. 그런 감성을 내세우는 건 자칫 필름 상영을 예외적인 경험 혹은 일종의 문화적 사치로 인식되게 할 수 있다. 그보다는 그냥 당연히 향유되어야 할 문화의 한 측면으로 접근하면 좋겠다.


4. 비평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비평 수업이 있으면 한다. 그리고 마스터클래스의 형식으로 영화인들의 강연이 있으면 좋겠다. 지금도 GV가 있기는 하지만 ‘관객과의 만남’이 아니라 좀 더 전문적인 이야기도 오고 가면 좋겠다. 무엇보다 시네마테크에는 든든한 ‘친구들’이 있으니 말이다.


5. 작년 회원의 밤 행사에서 관객회원이 300여 명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너무 적어서 놀라기도 했다. 개인이나 기업 후원보다는 정부의 안정적 후원이 필요한 것 같다.

그런데 그에 앞서 사람들이 시네마테크를 공공의 공간으로 인정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이 시네필이 될 수는 없겠지만 시네마테크의 필요성에 대한 공통의 인식은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시네마테크를 찾지만, 내 친구들의 대다수는 이곳의 존재조차 알지 못한다. 시네마테크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6. 돌아보면 2015년에 좋게 보았던 영화들은 거의 내가 모르던 영화였다. 극장에서 처음 만나는 영화들이 많아 좋았다. 2016년에도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팀에서 수고해주시면 감사하겠다.


7. 시네마테크가 ‘시네필들의 성지’처럼 받아들여지는 측면이 있다. 또한 이곳은 많은 사람들의 개인적인 추억과 기억이 가득한 곳이고, 나 역시 그렇다. 그런데 그에 앞서 시네마테크는 그 자체로 ‘영화 도서관’이고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필요한 공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시네마테크의 의미나 존재 이유를 묻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김경민


1. 단연 존 포드의 <태양은 밝게 빛난다>이다. 인물 한 명 한 명이, 그리고 그들의 태도와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서 보는 내내 눈물이 흘렀다. 영화가 끝나자마자 화장실로 도망치듯 달려가 마저 실컷 운 다음에, 사람들에게 이 영화의 아름다움에 대해 설명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내게 그럴만한 언어가 없다는 것이 안타깝고 또 안타까웠다. 책을 아주 열심히 읽으면 될까? 영화를 훨씬 더 열심히 보면 될까? 그러면 내가 이 아름다움들을 말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하게 했던 영화였다. 지금도 어떤 ‘공정한’ 것이 그립거나 변하지 않는 것이 그리우면 이 영화가 떠오른다.


2. 게으른 나에게는 무엇보다 접근성이 중요하다. 그래서 현재의 위치는 나에게 좋은 장소이다.

새로운 시네마테크에는 문화학교 서울 때부터 발간해 온 서울아트시네마의 각종 자료들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시실이 있으면 좋겠다.  물론 지금도 로비에 있지만, 자유롭게 보기에는 꺼려지는 부분도 있다. 그리고 작고 귀여운 상품들, 가령 손수건이나 라이터, 성냥, 미니 수첩, 담배 케이스 등등의 상품도 판매하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주변에 피해를 준다는 불안감 없이 마음 놓고 담배를 피울 수 있는 흡연 공간이 너무나도 필요하다!


3. 나는 필름보다 디지털로 훨씬 많은 영화를 보았다. 영화에 느끼는 매혹을 디지털로 경험한 나의 세대에게 필름의 위상이 과연 절대적인가 하는 생각을 요즘 종종 해본다.


4. 재작년 시네마테크 관객운동을 함께 했는데 그때 시네마테크에 애정을 표하는 관객들의 사연을 모은 적이 있다. 그때 한 가지 고민이 생겼는데, 바로 시네마테크에 애정을 가진 관객과 그 애정을 가질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 사이의 차이였다. 물론 모든 사람이 시네마테크에서 상영하는 영화를 사랑할 수는 없다. 그런데 그 기회도 가지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접근해야할까. 너무 추상적인 고민이지만 나중에는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그 기회를 마련해줄 교육 프로그램이 생기면 좋겠다.


5. 실적이나 수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치로 표현되지 않는 영화의 가치를 설득할 수 있다면 지금보다 더 안정적인 미래를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6. 마르코 벨로키오의 특별전이 열리면 정말로, 정말로, 정말로 좋겠다.


7. ‘산업’으로서의 영화를 넘어서는 영화의 가치를 설득해낼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공간은 지금 시네마테크가 유일하다고 생각한다.



이도훈


1. 2014년, 회원의 날이다. 정오 전후로 해서 다음 날 동이 틀 때까지 7-8편의 영화를 연달아 봤다. 그 상영 목록에는 브레송의 영화도 있었던 것 같은데(아마도 <소매치기>), 마지막 상영작은 분명 고다르의 <미치광이 삐에로>였다. 마지막 상영이 끝난 후 남은 서너 명의 사람들과 승리의 휘파람을 불며 터덜터덜 극장을 나와 상쾌하게 아침 공기를 들이마셨던 기억이 난다.


2. 책을 비치하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고 그곳에서 관객들이 책을 읽는 풍경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현재와 같은 관객 라운지보다는 좀 더 독립적으로 운영되기를 바란다. 다양한 단행본, 학술자료, 그리고 잡지 등이 비치되어서 영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열람하고 공부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면 좋겠다.


3. 예전에는 필름을 고집했지만 지금은 디지털에 대한 반감이 줄었다. 매체 환경의 변화가 관객의 눈을 길들였다고 생각한다. 물론 필름으로 상영할 수밖에 없는 영화들은 필름으로 상영을 하겠지만, 단순히 필름을 고수하기보다는 필름의 고유한 매력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수시로 제공하는 곳으로 남았으면 한다.


4. 재생산이 가능한 수업들이 열렸으면 좋겠다. 시네마테크가 단순히 영화를 보는 곳이 아니라 영화를 꿈꾸는 곳이 되기 위해서는 이곳에서 보고 배운 것들이 창작과 비평 행위로 이어질 수 있어야 한다. 기자재 문제로 직접적인 창작이 힘들다면, 대신 제도권과 차별화되는 수준에서 영화사, 영화이론, 비평수업 등이 개설되어 다양한 창작 활동에 밑거름을 제공하면 좋겠다.


5. 재정적인 독립이 곧 정치적 독립 및 프로그래밍의 자율화로 이어질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민간에서 운영하는 영화관에서 재정적 안정은 힘들 것이다. 결국, 공적 지원의 안정화가 최우선일텐데, 단순히 전시행정 혹은 단발성 차원의 이벤트에 머물지 않기 위해서는 지원 단체와의 지속적인 협력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 공적 지원이 이루진다면, 시네마테크의 프로그램의 자율성을 보장하면서 후원의 적절한 모델이 무엇인지에 대한 장기간 협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6. 지가 베르토프, 요리스 이벤스, 1920년대 바이마르 공화국의 영화들, 하룬 파로키.


7. 영화는 많아졌고 영화를 보는 사람들도 늘어났지만 좋은 영화를 식별해주고 그것이 왜 좋은지에 대해서 생각해 볼 기회를 마련해주는 곳이 점점 줄고 있다. 나는 서울아트시네마의 상영시간표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는다. 그저 내 시간이 허락되는 한 아무 때나 찾아가서 아무 영화나 보고 오는 게 습관이다. 종종 예전에 봤던 영화를 다시 보는 일도 있다. 내가 그런 습관을 들인 이유는 서울아트시네마의 프로그래밍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가 순수해야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우리가 마땅히 만들고 지켜야 할 영화 문화가 어떤 것인지 제시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극장이 있고 또 그 극장의 관객 중 한 명에 속할 수 있다는 사실에 늘 감사하고 있다.


이해빈

1. 가슴 뛰고 설레는 영화들이 너무 많지만, 지난 해 봤던 작품 중 각별한 건 회원의 밤에 삳영했던 <겨울 이야기>이다. 그리고 낙원에서 마지막으로 본 무르나우의 <선라이즈>도 너무 아름다웠다. 낙원상가를 떠나기 직전에 극장을 배경으로 한 영화에 아주 살짝 출연한 적이 있다. 새벽까지 추위와 피곤과 씨름해야 했지만 카메라 눈치를 보면서 극장의 구석구석을 살폈던 즐거움이 마지막을 더 새롭게 기억하게 한다.


2. 어디로 갈지 모르는 일이지만, 계속 그래왔던 것처럼 종로를 떠나지 않았으면 한다. 새로 건물을 짓는다면 지금 라운지 보다 더 많은 책을 볼 수 있는 서적 코너가 있으면 좋겠다. 또 다른 국가 시네마테크의 상영 정보, 그리고 그런 곳이 서울아트시네마와 교류하는 모습도 보고 싶다.


3. 언제부턴가 좋은 화질이 필수적으로 여겨지고 있는데, 영화는 눈으로만 보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필름으로 상영하는 영화를 보면 시청각적, 촉각적으로 디지털과 완전히 질이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영화 매체 그 자체에 집중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필름 상영은 귀하게 여겨지고 꾸준히 지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4. 공부하는 학생의 입장에서 영화에 대한 글을 쓰고 읽는 수업을 듣고 싶다.


5. 어떤 후원이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운영의 자율성까지 제약 받을까 걱정스럽다. 많은 사례에서 보듯 지원 정책을 마련하는 이들의 문화예술에 대한 낮은 인식이 문제라 생각한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너무 뻔한 말이지만,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극장을 찾는 것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티켓을 끊는 모습을 보고 싶다.


6. 국내에서 개봉할 가능성이 희박해 보이는 미구엘 고메스의 <천일야화>와 페드로 코스타의 <호스 머니>, <행진하는 청춘>, <반다의 방> 같은 작품들. 그리고 작년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샹탈 아커만의 전작을 극장에서 만나고 싶다.


7. 빠른 속도, 너무 많은 말들이 사람을 피로하게 하는 시대일수록 이런 공간들이 더 단단히 뿌리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 볼 수 없는 영화들을 틀기 때문만이 아니라 공간에 대한 체험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정신없이 다른 시공간을 경험하는 일도 재밌지만 시간이 조용하게 늘어지거나 멈춘다는 느낌 때문에 자꾸 시네마테크를 찾는 것 같다.



장혜령


1. 2005년의 <안녕 용문객잔>. 비현실적으로 커다란 복숭아 찐빵과 우리처럼 앉아 있던 영화 속 관객들을 마주했던 기억이 있다. 서울아트시네마가 소격동에 있던 시절의 마지막 작품이다. 나는 그해 영화학교 신입생이 되었는데 나의 극장이 사라지는 사건을 맞았다.

2011년의 <방랑기>. 나루세 미키오의 회고전을 계기로 영화관에 다시 오게 되었다. 회사를 다니며 갈 곳이 없는 저녁이면 매일 영화를 보곤 했다. 이 영화는 가난한 여성 시인의 삶을 그린 작품이었고 나는 나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은 그녀에게 비밀스런 애정을 느꼈다. 이후 나루세 회고전의 거의 모든 작품을 매일 와서 보았다.

2015년의 <로슈포르의 숙녀들>. 예약을 하지 않아 보지 못한 낙원동 시절의 마지막 작품이다. 그날 우연히 영화관 앞에서 나처럼 티켓을 구하지 못한 친구와 만나 술을 마셨다. 영화가 끝날 즈음 우리는 영화관으로 돌아갔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지 못한 채 망연히 담배를 피우거나, 자기가 자주 앉던 좌석에 앉아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았다. 영화관이 졸업 없는 학교였다면, 그날은 모든 관객들의 졸업식 같았다.


2. 작년 초 뉴욕의 극장들에 간 적이 있다. 무엇보다 인기 영화의 경우(필름포럼의 오손 웰즈 전 때) 관객들이 30분쯤 일찍 와서 기다리다 줄을 서서 입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들은 좌석번호가 없는 표를 받았고, 원하는 자리에 앉으려 일찍 영화관에 오는 것이었다. 티켓값은 회원이라 해도 10달러 이상이다. 이곳은 멤버십 특전 중 하나가 팝콘일 만큼 엄숙한 분위기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팝콘을 먹으며 영화를 보는게 무척 신기했고, 극장마다 티셔츠 같은 ‘굿즈’를 파는 게 좋았다. 브루클린에 위치한 BAM은 지역 서점과 제휴를 맺어 할인을 해준다. 링컨 센터 영화관도 옆의 카페와 제휴를 맺고 있다.

새로 마련될 공간은 회원 라운지가 지금보다 더 편안하면 좋겠다. 그리고 관객 회원 예약을 어플 같은 것으로 할 수 있으면 직원과 관객 모두 편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흡연 공간도 있으면 좋겠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지만, 흡연 공간이 지금처럼 애매하면 또 유령처럼 연기를 피우며 배회하는 사람들을 볼 것 같다.


3. 디지털 상영이라든지, 상영 시설의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면 그건 외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4. 시스템에 맞는 작가도 필요하지만 자기 문법을 가진 작가는 더 필요하다. 관객을 천만명 모으는 작가가 있다면 천명 정도의 관객을 찾아 작업을 하는 작가도 있을 것이다. 후자의 예비 작가들을 지원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비평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아카데미의 논문이나 비평상을 위한 비평도 있겠지만 영화에 대해 새로운 포맷으로 글을 쓰고 그것을 스프레딩하는 과정도 있을 것이다. 시네마테크 영화학교가 만들어진다면 지금의 영화학교가 하지 못하는 것을 이루었으면 한다. 기술을 가르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교육 말이다.


5. 회원의 밤 때 내가 생각한 것보다 회원수가 적어서 놀랐었다. 기업과 관객 후원이 늘어나 지금처럼 계속 ‘민간 비영리’로 남을 수 있으면 가장 좋을 것이다.

하지만 지원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고, 그때는 외부의 개입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그런 맥락에서, 나는 시네마테크가 고전, 예술 영화를 상영한다는 아이덴티티를 유지하기 위해 조금 더 대중적인 영화를 어느 정도 상영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우연히 극장에 발을 들인 사람이 이곳을 계속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6. 샹탈 아커만 회고전. 그리고 클레르 드니와 차이밍량,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영화들을 다시 큰 화면으로 보고 싶다. 이미 시네마테크에서도 많이 상영했지만 지금 우리가 발딛고 있는 한국의 현재를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도 보고 싶다.


7. 필립 가렐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설립자 앙리 랑글루아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왜 그가 영화를 구해야만 한다고 했는지 그때는 잘 몰랐어요. 그런데 지금은 알겠어요. 영화는 구해져야만 해요.” 정당한 작품의 자리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그 예술은 사라지고 만다. 시네마테크는 영화를 구하는 장소로서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덧붙여 김성욱 프로그래머가 이런 말을 했던 게 기억이 난다. 세상에서 어둠이 사라져가고 있으며 영화관만이 유일하게 어둠이 존속하는 곳이라고. 빛이 아니라 오히려 어둠이 권리일 수 있을까. 어둠은 쉴 수 있는, 잠들 수 있는, 생각하고 눈물 흘릴 수 있는 시간과 관계된 것이다. 우리는 어둠을 잃는다는 문제 앞에 서 있다.



차성덕


1. 2003년 언저리, 시네마테크가 아트선재 지하 1층에 있던 시절. 재능에 대한 자괴감에 시달리던 우울한 영화과 1학년이었던 나는 스페인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처음 만났다. 영화를 보는 내내 누군가에게 전적으로 이해받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설명하기 힘든 감정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극장 앞을 떠나지 못하고 우두커니 서있다 문득 눈에 들어온 달은 또 어쩜 그리 밝던지. 스스로에 대한 불안이 가시고 ‘이게 영화라면, 나도 끝까지 가보고 싶다’라는 열망이 차올랐다.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적어도 누군가를 위로할 힘이 있다는 걸 처음으로 체험하게 해 준 내 인생의 영화. 카를로스 사우라의 <까마귀 기르기>(1976)이다.


2. 시네마테크로서의 극장은 공간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도시 안팎에서 접근이 용이하고 문턱은 낮되 그 장소의 고유한 스토리가 느껴져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과거 한국영화의 중추였던 충무로는 어울리는 공간이라 여겨진다. 더불어 새롭게 건립될 시네마테크에서 가장 중점으로 여겼으면 하는 건 단연 복수의 상영관 확보다. 최소 두개 관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나머지 시설은 부수적이라 생각한다.


3. 요즘 영화는 대부분 디지털 카메라로 찍히고 디지털 방식으로 상영한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필름으로 찍힌 영화를 디지털로 상영하는 건 좀 더 신중히 생각하고 싶다. 모두 알다시피 필름으로 찍은 영화를 필름으로 보는 건 정말 특별한 경험이기 때문이다. 이는 포기할 수 없는 관객의 권리라고 생각한다.


4. 적극적인 영화 읽기와 영화 제작이 연동되는 커리큘럼을 시도해보면 좋겠다. 영화 보기가 결핍된 영화 제작은 정체성이 무뎌지기 마련이고, 영화 제작 경험이 없는 영화 보기는 철학적 사유에만 고착되기 쉬운 것 같다. 시네마테크에서만 할 수 있는 실험적인 영화 교육을 기대한다.


5. 어렵고 중요한 질문이다. 독립 영화관이 오래 지속되려면 극장 운영의 큰 부분을 공기관의 지원이 차지하는 형식을 탈피하여 자체적인 자생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극장 자체가 하나의 협동조합이 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예술, 독립 영화를 소비하는 관객의 출자금으로 운영되는 극장 말이다. 그러나 이런 변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역설적으로 서울시나 영진위 등의 공적 지원이 중요해지는 까닭이다.


6. 시네마테크에 대한 첫 경험을 떠올리다보니, 문득 브레송을 다시 보고 싶어진다. 기이한 고요를 경험할 수 있는 <무셰트>를 다시 한 번 스크린으로 보고 싶다.


7. 지금 나는 영화일을 하고 있다. 현실적 조건이 그리 좋지 않기 때문에 한 프로젝트가 끝나면 내가 더 나아갈 수 있을까 의심이 든다. 그럴 때 나는 시네마테크를 찾는다. 고전영화를 좋아하면 집에서 편하게 DVD나 블루레이로 봐도 되잖아 라고 반문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DVD 한 장이 영화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그분들이 꼭 아시면 좋겠다. 거대한 검은 방, 스크린에 쏘아지는 한 줄기 빛, 그리고 그 곳에 모인 친밀한 타인들. 그것이 바로 영화적 체험의 총체다. 확신하건데 그건 홈시어터나 모니터 화면으로 영화를 볼 때 절대 맛볼 수 없는 종류의 경험이다. 그리고 그 체험이 나의 등을 밀어준다. 덕분에 지금껏 영화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나아가고 있다. 시네마테크, 고맙습니다.


인터뷰 진행 및 정리 김성욱 프로그램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