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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인터뷰

공모 公募 인가, 공모 共謀인가 ?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인터뷰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수첩에 적어 두었던 몇 가지들 중 일부;

"누구? 김성욱 프로그래머이자 영화평론가 개인을 인터뷰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시네마테크 공모제에 대한 인터뷰를 하는 것인가. 이미 일은 벌어졌다. 일어나고 있는 중이다. 오늘의 질문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 이외에도 몇 가지 자잘한 것들을 정리했다. 개인적으론 이번 사태에 대해 마음이 그냥 단순하게 "무겁다"기 보다는 말로 할 수 없이 복잡 미묘하다. 원래 약속 되었던 인터뷰 일정은 친구들 영화제가 시작되기 전이었다. 잠시 연기가 되었고 다시, 인터뷰는 1월 27일 수요일로 결정 되었다. 그리고 그 날 오전, 영진위가 추진한 '영상미디어센터 사업자 공모 결과'가 발표 되었다. 원래 준비하고 있었던 질문과 질문의 흐름은 삭제되거나 수정되었다. 김성욱 프로그래머는 '그러리라 생각했지만, 진짜로 그럴 것이라 생각지 못한' (혹은 하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개인적으로 요즘 들어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이 '상식선'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상식선의 범주가 무한하게 확장, 변형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혹은 인터뷰 중에 김성욱 프로그래머가 언급 했듯이 '파기'가 될 수도 있다. 누군가는 '국어사전을 다시 써야 하는 시대'라고, 농담처럼 말했다.


인터뷰 내용은 녹취한 것을 정리 한 후, 다시 한 번 김성욱 프로그래머의 손을 거쳤다. 현재 공모제에 관한 이야기들 대부분은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오갔던 이야기들 중 어떤 부분은 바꾸거나 조금 손을 보았다.



양 : 원래는 얌전한 질문부터 들어가려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미디액트 사업자 공모 결과를 보면서 질문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인적인 질문이 될 수도 있지만, 사업자 공모 결과를 보신 소회가 궁금합니다. 어떤 기분이셨나요?

김 :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하지만 진짜로 그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지속해 왔던 이들의 문화적인 활동에 대한 평가가 전혀 없는 결과다.



양 : 아트시네마를 운영하시는 분들, 그러니까 내부에서는 대략 어떤 이야기가 있으셨나요?

김 : 시네마테크 공모제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영진위가 지난 8년간의 정책을 새롭게 바꾸려고 한다면 그 만큼의 충분한 평가와 논의가 전제되어야만 한다. 하지만, 공모제와 관련해 그 어떤 투명하고 공개적인 입장을 영진위가 아직까지도 내비친 적이 없다. 영화문화 정책이라는 건 긴 시간을 두고 생각하는 문제다. 공모제는 정책적 방향도, 시네마테크에 대한 영진위의 입장이나 태도도 없는 졸속적인 것이다. 다른 곳도 아니고 영화와 관련되어 있는 기관에서 그런 결과가 나온 것을 보면, 지금 우리의 영화문화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다.



양 : 아트시네마는 지금 상영 공간인 허리우드 극장으로는 2005년도에 들어왔습니다. 공간적으로 좀 더 여유 있는 곳을 찾으면서, 친구들 영화제를 시작했습니다. 올해까지 5년차가 됩니다. 지금까지 5년 동안 친구들 영화제를 진행하면서 쌓아온 결과에 대해서 내부적인 평가랄지 그런 것이 궁금합니다.

김 : 어떤 것 같나?


양 : 개인적으론, 3회는 뭔가 좀 동어반복 같은 느낌이 있었고, 올해는 공모제라는 것이 걸려 있어서 그런지 정말 마지막으로 총력을 다했구나, 라는 느낌이었었죠. 프로그램을 봐도 그렇고, 상영작 수도 가장 많고, 참여한 감독들의 지원을 보아도 그런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김 : 어려울 때 더 많이 참여하는 법이다. 하지만 사회적 영역 안에서 전혀 여건들이 개선되지 않았다고 보는데, 물론 개선되지 않은 가장 큰 이유가 어디 있는가는 또 다른 문제일 테고.



양 : 그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보시는지.

김 : 언제나 두 가지일텐데, 그 하나는 관객들이고, 또 하나는 정책적인 부분들이다. 어느 나라나 시네마테크나 이런 문화 운동이 사회적 영역 안에서 자리를 잡는 것은 관객의 몫과 일정 부분은 정책결정자의 몫인데, 정책결정자의 몫이 지금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어가는 것 같다. 그런데 아까 말한 동어 반복이라는 것이 어떤 부분에서 말한 것인지 궁금하다.


양 : 아트시네마에서 1년에 치루는 큰 행사 두 가지가 친구들 영화제와 시네 바캉스, 이렇게 두 가지가 있는데, 상영작도 좀 겹치는 부분도 있었고, 조금은 관성에 의해 움직이는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이 있었죠. 아트선재에서 허리우드로 옮기게 되면서 안정적인 상영 공간에 대한 필요성은 더 크게 대두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5년이라는 기간이 짧은 기간은 아니고, 그러한 필요성에 의해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일 만한 시간이 분명히 있었지만, 1년에 두 번의 큰 행사를 통해서 좀 더 환기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부분입니다. 물론 말씀하신 대로 관객의 몫도 분명히 있는 것이죠. 하지만, 일정 부분은 아트시네마가 선도적인 입장은 분명히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조금 더 적극적인 피력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그런 아쉬움이 있는 것이죠.

김 : 그런 부분이 지금의 결과를 낳았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양 : 일정부분은 분명히 있다고 봅니다. 5년이란 기간은 충분할 수도 있는 기간이고, 실제로 전용관 건립에 대해서 정책입안자들과 논의가 진전이 된 적이 있었죠.

김 : 2007년 말에서 2008년까지.

양 : 서울시 측과 (전용관) 부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었지만, 결과적으로 논의가 흐지부지 되어버렸죠. 왜 그렇게 되었는지.

김 : 사회적 합의가 그 정도 수준이 안 된다는 것인데, 전용관의 건립이 진행이 되다가 파기가 된 것에는 합의를 이루어냈던 것을 책임성을 갖고 진행을 제대로 못한 측에 문제가 있다. 그게 누구인가? 그건 당연 지금의 영진위의 문제다. 문화 영역은 어쨌든 보존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무엇이 손실되고 있는가와 무엇을 유지해 나갈 것인가를 따져봐야 한다. 정책 결정자들이 과거를 되돌아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무엇이, 어떤 부분이 보완이 되어야 하는지.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이 아니고. 언제나 새롭게 판을 짜려는 생각만 했다. 새로운 판을 짜기 위해서도 최소한 충분한 논의와 시간이 필요하다. 뭔가 새로운 정책이 만들어진다던가, 기존의 해오던 것들을 완전히 무시하고 다른 방향으로 전환을 한다 해도, 그것 역시 충분한 근거가 있고, 충분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 동어반복성에 관해서는, 뭔가 새로운, 획기적인 것을 자꾸 만들어가는 것이 아트시네마의 역할인가, 그렇게 생각하는지?



양 : 그렇지는 않습니다. 뭔가 언제나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아니라 매년 새롭게 환기되는 질문, 그러니까 관객들에게 혹은 다른 누군가에게 제시되는, 제시 되어야 하는 좀 더 적극적인 질문 같은 것이 아쉬웠다는 것입니다.

김 : 난 차라리 매년 동어반복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매년 똑같은 영화 백 편을 계속 틀 수도 있고, 그런 반복 안에서 뭔가를 찾고 발견해 나가는 것도 중요하다. 계속 새로운 것만 찾는 것이라면, <아바타>를 상영하는 것이 맞는 것이지만, 그런 것이 새롭다고 생각한다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을 시네마테크에 기대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국제영화제들이 새로운 것을 늘 보여줄 수도 있다. 반면에 시네마테크에서까지 새로운 것을 요구한다면? 시네마테크는 어떤 반복과 지속 안에서의 새로움을 찾는 곳이다.


지속적인 반복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문화의 영역에서 지금의 문제가 있어온 것이다. 반복 안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해가는 것이 관객의 몫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비평가가 왜 필요하고, 영화에 대해서 글을 쓰는 사람이 왜 필요한가. 그들은 지속적인 것 안에서 뭔가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 것이다. 매번 '신상'만 찾아다니는 것을 이 공간에서 기대할 것인가? 누군가 그런 표현을 썼지만, 여기서 백화점의 물건을 찾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새로운 물건들을 전시하고, 금새 팔리지 않으면 폐기처분하고, 또 새로운 물건들을 내놓고 사람들을 계속 유혹하는 것이, 그것이 새롭다고 말한다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우리가 소기의 목적을 이루어 내려는 것은 어떤 시간적 지속 안에서 영화의 충분한 가치들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물론 선도적 역할도 있을 수 있다. 근래의 새로운 영화들을 소개하는 프로그램도 하고 있지 않나.

 

 

 

시네필은 신상애호가들은 아니다. 그들은 더 오래된, 낡은 것에서 조차, 그 안에서 사라지지 않는 가치들을 발견하려는 자들이다. 그것이 쉽사리 버릴 수 없는 것들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그것을 간직하려 하는 이들이다. 물론, 다른 역할도 있다. 어쨌든 우리는 관객을 대상으로 영화를 상영한다. 물론 포인트는 이중적이다. 영화예술가, 작가, 그들의 작품을 보존하자는 것이고 동시에 관객을 유지하자는 것인데, 이것이 영업을 위한 개념은 아니다. 관객이 영화와 만날 수 있는 지점들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런 기회들을 충분히 제공해 주는 장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그 안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강요할 수는 없는 문제다. 우리가 더 나서서 관객들에게 요구할 수도 있고, 무언가를 해달라고 이야기 할 수도 있겠지만.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의 문제가 발생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그것은 분명 관객의 몫이었다. 관객들이 충분히, 그 만큼을 받아들이지 못했거나, 느끼지 못했다면, 결과가 이렇다고 말할 수 있는 거다. 하지만, 우리가 충분히 관객을 설득하지 못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우리는 관객을 영화로 설득하려는데, 그 이외의 나머지 이야기들은 보조적인 것이다. 그들이 후원을 해야 한다는 당위를 계속 반복적으로 요청하는 것이 더 좋은 일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었다. 정당한 관객이란 어떤 위기의 순간에 어떤 판단과 행동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물론 그만큼의 응답과 화답을 만들어 내기위해 더 전략적인 행동들을 했어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본질은 아니다. 시네마테크라는 영화를 사람들에게 스며들도록 하는 곳이다. 스며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을 설득하고 강요해서, 이것이 대단한 것이다, 아무리 포장을 한다 해도 그건 부차적이다. 그런 것은 지금의 모든 영화들이 다 하는 일들 아닌가. 스며들기 전에 일단 세뇌를 한다. <아바타>로 100분 토론을 하는 것처럼. 그게 더 중요한 주제인가? 시네마테크를 두고 왜 방송에서 토론을 할 수 없나? 아니, 영상자료원의 한국영화 보존과 관련해 논의를 할 수 도 있다.


물론 작품에 스며들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에게 그래서 시간이 더 필요한 것이다. 나 또한 한 작품에 스며들어가는 시간이 상당히 오래 걸린 작가도 있고, 이제야 이 작가가 대단히 뛰어난 사람이라고 판단하는데 시간이 필요했다. 그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고, 그 정도의 지속을 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것을 견뎌 줄 수 있는 느린 관객들이 필요한 것이다. 그것이 어쩌면 관객의 몫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최적의 스며듬 이라는 것은 아무런 정보도 없이, 아무런 선전도 없고, 그냥 그 사람이 영화와 맞닥뜨려서 적셔지면 그게 최적이다. 공부하기 싫은 사람에게 계속 아무리 강요를 해도 소용없는 것이다. 설명도 있고, 해설도 있고, 유명한 영화감독들이 나와서 이야기를 해도 그것들 마저도 다 보조적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더 적극적으로 관객들에게 시네마테크의 어려움과 문제에 대해서 알리지 않았다거나,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말하지 않은 것도 하나의 문제라면 문제일 수는 있다. 하지만 스며드는 존재로서의 관객이라면 그걸 간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영화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것을 간파하는 것이다. 거기에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 동시에 영화가 놓여 있는 상황을 간파하는 것도 정당한 관객의 몫이다. 진정한 관객이 아니고 정당한 관객 말이다. 그런데 그런 부분은 우리가 아무리 호소한다고 해도 되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양: 아침에 영상문화센터 관련한 보도 자료와 메일들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이, 아트시네마에도 자주 찾아오는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에서 선우의 대사가 있죠. '저한테 왜 그러셨어요?' 꼭 당사자들의 기분이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에 관해서는 아트시네마도 그냥 강 건너 불처럼 볼 입장은 아닐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전부터 전용관에 대한 요구는 있었고, 움직임도 있었지만, 올해 친구들 영화제를 하면서 전용관 건립위원회가 발족되었죠. 바꿔 말하면 정말로 때가 되었다는 위기감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움직임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관한 아이디어는 누가 먼저 내셨나요?

김: 그것은 이미 2007년도부터 진행되고 있었다. 시네마테크 친구들 영화제에서 제기 되었던 것이고, 그 해 전용관 건립을 위한 친구들 영화제를 표방했다.



양: 그런데 위원회는 따로 없었습니다. 그 당시엔.

김: 그때는 위원회를 따로 구성하지는 않았다. 영진위 내에서 위원회가 구성됐다. 그것이 4기, 5기로 가면서 위원회는 유명무실해졌다. 현재 전혀 진행상황이 없다. 그것을 회복하기 위해서 좀 더 주체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는 판단은 작년부터 있었다. 공모제라는 사안이 불거지면서 영화인들도 나서야 되지 않겠냐는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는 그 전까지 전용관과 관련한 논의를 영진위 쪽에 양도해 왔지만, 양도받은 이들은 그걸 제대로 진행하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사실 그것은 정당하고 당연한 것이다.

양: 지금 뒤늦게라도 발족되었는데 구체적인 활동에 대해서는 어떤 이야기가 논의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김: 구체적인 부분은 아직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시네마테크는 민간이 7을 대고, 영진위가 그동안 3을 대는 것으로 운영되어 왔다. 그 대부분도 전용관 임대료로 지불되어 왔다. 활동도 민간 영역에서 시작이 된 것이고, 시간의 진행 안에서 계속 확장이 되어왔다. 규모나 재정적 확장이 아니라, 범위가 넓어진 것이다. 많은 영화인들이 참여해 왔다. 추진위가 진행해 나가려는 것은 서울에 안정적인 공간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시가 지원해 나갈 수 있다면 훨씬 지속적인, 그 이상의 활동들을 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뉴욕의 현대미술관처럼 전용관이 그 곳에 만들어질 수도 있다. 일단 추진위 활동은 서울시와 관련해 2007년에서 2008년까지 진행되었던 사항을 복원하는 것이 급선무다.



양: 지금단계의 목적은 어쨌든 앞으로 아트시네마가 공간을 갖는 것이 목적이겠죠. 4회 친구들 영화제의 부제가 공간의 재발견 이었죠.

김: 공간을 '갖는‘것은 물론 진짜 목적은 아니다. 공간이 '전제' 되어야만 한다. 부산도 시네마테크를 시작할 때부터 전용관을 조성해 시작했다. 서울의 경우는 그럴 수 없었지만 그래도 시작했다. 모든 것을 갖추어지기를 기다리고 그 때에야 이 일을 진행한 것이 아니다. 8년간을 진행하면서 그 만큼의 성과로 전용관을 제기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시네마테크의 활동이 안정적 공간 확보 정도의 사회적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에는, 그것이 정당한 것이 아니라 생각한다.



양: 문화학교 서울로 91년도에 사당동에서 시작이 되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상영공간을 갖추었던 것이 2002년도 아트선재라고 할 수 있죠.

김: 그 전에 영화제를 개최해왔었다. 문화학교서울을 포함해 다른 시네마테크 단체들이 아트선재센터를 일시적으로 대관해 필름 영화제를 개최했었다. 이들의 요구가 시네마테크 전용관을 만들어 가자는 것이었는데, 영화상영이 증가해왔고 참여도도 높았다. 획기적인 전환기를 맞이한 것은 1999년에 시네마테크부산이 설립된 것이다. 어떤 점에서 보자면 시네마테크부산이 하나의 모델이 된 것인데, 부족하지만 전용관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있었다.



양: 공간의 문제에 대해서는 시와 협의하는 쪽으로 진행되었는데. 전용관을 건립한다고 했을 때, 금액은 적은 금액이 아닐 것입니다. 차라리 관계 기관과의 협의가 아니라 일종의 기업의 문화 컨소시움 연합체와 이야기가 맞는다면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 부분에 대한 논의는 없었는지요, 예를 들자면, 흥국생명이 시네큐브를 지원했던 것처럼 말이죠.

김: 어떤 사람들은 이 정도의 행사들을 하는데 어떻게 기업이나 다른 곳에서 큰 국제영화제처럼 스폰을 받지 못하냐고, 왜 이렇게 영리하지 못하냐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반문하고 싶다. 그렇게 영리해야하는가? 영리하게 하는 것이 과연 최선인가? 영악한 사람들은 많다. 돈도 쉽게 끌어오는 사람들도 있다. 단지 계획만으로, 그 어떤 사업도 실적도 없이 그렇게 하는 이들도 있다. 물론 시네마테크에는 기업의 후원도 필요하고, 시의 후원도 필요하고, 영진위의 후원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걸 따왔다고 뛰어난 것이라 말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마치 어떤 사람이 돈을 최대한 끌어와 뭔가 거대한 영화 하나를 만든 것만으로 뛰어나다고 말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돈을 얼마나 끌어 왔냐가 아니라 어떤 작품을 만들었냐가 중요하다. 필립 가렐은 감독들이 흥행강박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는데, 마찬가지로 돈을 끌어온 것으로 그저 관객을 몇 명이나 동원 했나로 이 곳을 일을 평가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양: 근본적으로 보아서는 그렇기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부딪히는 문제들은 남습니다. 공간에 대한 불안이 제기되는 이런 문제들.

김: 매년 재계약을 하면서 활동의 안정성을 기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지금이 가장 기초적인 문제가 위기 상황에 빠져있다. 공모제라는 것이 무엇인가? 사업계획만으로 공모에 되면 하고, 안 되면 안 한다는 것이 공모제 아닌가? 지금이 어떤 상황인가를 관객들이 판단해야만 한다.



양: 관객에게 스며들기까지 충분한 시간을 들여 기다릴 수 있는 공간에 대해 말하셨습니다. 문화학교 서울 91 년 부터 본다면 거의 20년 가까운 시간을 일을 해왔던 것인데, 때를 기다렸다, 그런데, 시차원에서도 그렇고,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충분한 사회적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김: 아니,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합의가 있었던 것이 파기된 상황이다.

양: 그렇다면 아직 서울은 번듯한 시네마테크를 가질 수 있는 자격이 없는 곳인가라는 생각도 듭니다.

김: 누가 자격을 부여하는 가의 문제인 것 같다. 그 자격을 부여하고, 그 자격을 스스로 얻는 것은 관객들의 몫이다. 그 외에 그 누구도 자격을 부여할 수는 없다. 작년에 공모제 문제가 나왔을 때 홍상수 감독이 아주 간명하게 이렇게 말하더라. ‘영진위가 공모제를 할 권리가 있나요?’ 가장 단순하고도 명쾌한 표현이다. 누가 자격이 있고 권리가 있나? 영진위에 권한이 있다면 시네마테크에 지원을 할 건가, 말 건가의 문제일 뿐이다. 하지만 그들이 시네마테크를 공모할 권리는 없다. 이건 분명히 해야 한다.

 

 



 

양: 현재 헐리우드와의 재계약이 2월 시한입니다. 아트시네마에서는 1년 계획을 세워 놓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2월 이후의 진행이 요원한 상황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만약에 라는 질문이 무의미 한 것 일 수도 있지만 결국 지금 영진위의 공모제가 가장 큰 현안이고, 재계약이라는 문제도 걸려 있습니다. 상황이 호전 되지 않을 경우의 복안 에 대한 내부적인 논의는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김: 공모제라는 것이 참 한심한 게, 그럼 우리가 지금 진행하고 있는 페데리코 펠리니 전작전이나 오시마 나기사 회고전 등의 행사를 그럼 공모제가 되고나면 그 때가서 한다는 것인가? 미술관과 박물관을 공모로 하나? 우리는 1년, 혹은 2년 정도의 준비기간을 갖고 외국의 아카이브와 시네마테크와 협의해 회고전과 특별전을 진행한다. 매년마다 공모제를 해서 되면 그 때마다 행사를 준비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비상식적인 생각이 영진위에서 나왔다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



양: 이번 친구들 영화제의 개막작은 루이 푀이야드의 <뱀파이어> 입니다. 그 영화가 물론 흡혈귀가 나오지 않는 영화이지만, 왜 개막식 영화로 선정 되었나를 생각해 보면, 뱀파이어는 끊임없이 새로운 육체를 찾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피를 취함으로서. 결국 영화도 언제나 매번 새로운 육체를 찾는 존재라고 생각하는데요, 과연 어떤 영화의 집, 영화의 육체를 염두에 두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김: 어떻게 포장하는 것이 매력적일까?(웃음) 3D로 포장해서?(웃음).



양: 개인적으론 영화는 대단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도 없고, 혁명을 일으킬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 같은 것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분명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반드시 영화 때문에가 아니라, 영화를 본다는 행위가 있음으로서 가능한 것입니다. 이를테면 관객이 감독이 된다든가, 꼭 감독이 되지 않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개인적인 변화를 아주 더디더라도 일으키게 되는 그런 것들 말이죠. 마지막 질문입니다. 시네마테크 운동을 계속해서 해 오시면서 함께 일하는 구성원들과 그래도 우리가 이정도 일은 하고 싶다, 이정도 결과는 내고 싶다는 운동의 목적이랄까요, 그런 구상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김: 그렇다면 왜 영화저널에서 일을 하고 있나? 외국의 영화박물관 관계자가 말하길 결국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은 그들 스스로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정치인들은 시네마테크의 가치를 알지 못하기에,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그저 방명록의 숫자. 혹은 어떤 경제적인 교환가치들뿐이니까. 영화의 가치를 발견하는 이들은 결국 관객들이다. 그러니 이 곳에 오는 관객들도 자부심을 가졌으면 한다. 시 차원에서 혹은 기업이 이 곳의 재정적 지원을 높여줄지언정 이러한 고유의 시네마테크의 역할을 훼손하는 것은 견딜 수 없는 일이다. 지금의 상황은 파솔리니의 표현을 빌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지금 우리는 모두 위험에 처해 있다고.

양: 긴 시간 수고 많으셨습니다. 내년 이 자리에서는 '우리는 어떻게 위기를 기회로 만들 었나' 이런 주제를 두고 인터뷰를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다시 한 번 정리를 하면서 녹취된 내용을 곰곰히 들어보았다. 김성욱 프로그래머의 목소리가 좀 작은 편이기 때문에 현장에서 노심초사하면서 신경을 쓰다 보니 놓쳤던 부분들이 다시 복기가 되었다. 어떤 이는 시네마테크 운동의 독자성을 근거로 영진위의 공모제는 힘을 잃을 것이라는 말도 한다. 한 마디로 대신 떠맡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날 유난히 그의 목소리에서는 피로감이 묻어났다. 그 피로감의 근거는 어디에 있을까. 그 근거에 대해 말하는 것이 이 인터뷰였어야 한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어떻게 본다면 그러한 피로감의 정체중 일부분이 이제 아주 명확하게 우리들 눈앞에 드러났다. 영진위 '때문에' 이 모든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단순하고 효율적일 수는 있어도, 사태의 근본적 해답이 되지 않는다. 언제나 중요한 것은 정당한 질문이 무엇인가를 찾는 것이다. 정당한 질문이 있을 때, 정당한 행동이 일어난다.

 / 진행: 양석중, 사진.정리: 강민영 (영화비평웹진 '네오이마주' 에디터)


[출처] 영화비평웹진 '네오이마주' (http://www.neoimages.co.kr/news/view/24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