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토크] <종로의 기적>의 이혁상 감독

최근 한국 다큐멘터리는 단순히 소재의 무거움에 함몰되지 않고 관객의 몰입도를 높이기 위한 다양한 형식의 실험과 사례의 활용으로 각광받고 있다. 이에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는 9월 1일부터 8일까지 '다큐멘터리의 진실의 정치학'이란 제하로 최근 한국 다큐멘터리의 주목할 만한 8편의 작품을 모은 특별전을 열고 있다. 이 중 지난 9월 3일 저녁에는 <종로의 기적>이 상영되었고, 상영 후 이 영화를 연출한 이혁상 감독과 제작진들과의 대화가 이어졌다. 그 현장을 옮긴다.


박기호(서울아트시네마 운영팀장): <종로의 기적>이 개봉하고 그동안 보통의 독립영화들 중에서도 유독 GV나 행사가 많았다.
이혁상(영화감독): 이렇게까지 오랫동안 하리라고는 생각을 못했었는데, 롱런을 못하더라도 끝까지 해보겠다는 생각은 있었다. 영화를 통해서 감독이나 주인공들, 성소주자 커뮤니티의 친구들이 이렇게 관객과의 대화를 통해서 서로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는 것이 굉장히 좋은 캠페인의 자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막연히 영화 속 성소수자의 삶을 보는 것도 좋겠지만 이렇게 마주앉아서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를 통해서 많은 분들이 가지고 있었던 꽃게이 판타지를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자리가 되었다고 생각된다.(웃음) 많은 관객들을 만났다. 그 과정에서 사실 저희가 더 많은 힘을 얻었던 것 같다. 같은 성소수자라고 커밍아웃도 해주시는 분도 계셨고, 영화를 보고 처음 종로에 나오거나 처음 게이들을 만나서 자신의 새로운 정체성을 깨닫는 분들도 계셨다. 그런 과정들이 어떻게 보면 처음 <종로의 기적>을 만들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생각했던 바로 그 지점들인 것 같아서 뿌듯하다.
전재우(‘친구사이’): ‘친구사이’나 ‘동성애자인권연대’(이하 ‘동인연’), ‘연분홍치마’ 같은 단체들이 가지고 있는 성격이 그 전에는 대중과 멀리 떨어져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았는데, 영화가 나오고 나서 ‘친구사이’ 홈페이지 방문자수도 늘고, 후원회원도 늘었다. ‘동인연’이나 ‘연분홍치마’도 같은 사정이라고 들었다. 반가운 일이다.


박기호: 오늘 시네토크를 준비하면서, ‘종로, 새로운 시작’ 이런 의미로 진행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종로의 기적>은 주변의 성소수자들이 자기의 맨얼굴을 확 드러내는 경우가 거의 처음이라는 점에서, 이전까지의 성소수자를 다룬 영상물들과 차이를 보인다. 이렇게 자신을 드러내는 성소수자들이 많아졌다는 것도 하나의 성과인 것 같다. 두 분이 생각하시는 <종로의 기적>의 성과는 어떤 것들이 있나?
이혁상: 영화를 보고서 어떤 분이 메일을 주셨다. 항상 자신의 정체성 때문에 괴로워하고 죽음까지 생각했던 분인데 영화를 보고 힘을 얻었다고 감사하다는 내용이었다. 그분은 <종로의 기적> 뒤풀이 때 나오셔서 처음으로 게이들과 만나 정말 새로운 삶을 시작을 하고 자신의 기적을 찾은 분이시다. 그런 분들이 좀 계셨다. 이성애자 관객분들은 왜 제목이 ‘종로의 기적’인지 잘 모르실텐데, 원래는 영화에 나오는 합창단 ‘지보이스’의 노래 제목이다. 종로에서 천생연분을 만나는 기적을 얘기하는 노래다. 나와 같은 사람들이 존재하는 곳을 알게 되면서 성소수자들은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성소수자들에게는 그러한 경험이 기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성애자 관객들의 응원과 지지가 예전과는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는 그야말로 성소수자들의 인권과 위치를 지지하고 존중하는 느낌을 관객과의 대화들을 통해서 많이 느낄 수 있었다.
전재우: 성소수자들에 대한 판타지가 없어지고 사실적인 게이들이 그려지면서 어떤 거리감이 줄어들었다는 점이 있는 것 같다. 이 영화가 나오고 게이커뮤니티를 보면 더 이상 성소수자들이 도망갈 곳이 없게 만들지 않았나 하는, 그래서 더 이상 숨을 곳이 없으면 이제 벽장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사실 이 이후 과정이 살짝 기대된다. 벽장 속의 성소수자들은 불안해할 수도 있고 아직 준비되지 않을 수는 있지만 이 영화가 밖으로 나오는 것을 준비하는 과정을 마련한 계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박기호:
얼마 전 보도된 설문조사에서 한국사회에서 가장 시급히 개선되어야할 차별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첫 번째가 학벌로 인한 차별, 두 번째가 성소수자 차별이라는 답변이 나왔다. <종로의 기적>이라든가 ‘연분홍치마’, ‘동인연’, ‘친구사이’ 같은 단체들이 성소수자 문제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과정에서 쟁취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관객과의 대화를 통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 있다면 듣고 싶다.
이혁상: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네 명의 주인공들을 어떻게 선정한 것이냐는 것이었다. 일단 성소수자가 주인공인 다큐멘터리는 사회적으로 커밍아웃을 해야 한다는 전제가 가장 기본이다. 누군가 여러분의 삶을 다큐로 찍고 싶다고 했을 때 일단 두려운 분들이 더 많을텐데, 그런 두려움에 더해서 성소수자로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야 된다라는 점이 이중의 두려움을 가져온다. 그런 점에 동의하고 함께 커밍아웃을 결심했던 주인공들을 선정하게 됐다. 그리고 순서에 대한 질문도 많이 들었다. 처음에는 네 명의 이야기를 섞어서 진행을 하다가 도저히 이야기가 안 풀리고 진전이 안 되는 것 같아서 따로따로 구성을 하게 됐다 .옴니버스 구성이 짧은 시간 안에 완결성을 가져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좀 더 어려웠던 부분 이 있다. 마지막에 정욜씨 에피소드를 마지막에 배치해야겠다고 생각했던 부분은 있었다. 좀 무거운 내용일지라도 그 이슈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시라는 의미에서 HIV/AIDS에 대한 내용을 관객들에게 좀 더 강한 여운으로 남겨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정욜씨가 <종로의 기적>의 전체적인 배치가 어떻게 보면 나의 개인적인 삶이나 고민의 흐름들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져 있는 것 같다고 얘기해 주었다. 소준문씨의 에피소드에서는 게이영화감독으로서의 위치와 고민이, ‘연분홍치마’ 활동을 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부분은 두 번째 장병권씨의 에피소드에서, 게이로서의 삶에서 느끼고 있는 즐거움들은 최영수씨의 에피소드에서, 현재 HIV/AIDS와 관련해서 고민하고 있는 지점들은 정욜씨의 에피소드와 연결되는 것 같다.

박기호: <종로의 기적> 제작과정에서 PD역할을 맡았는데, 개봉 후의 소감이나 성과라고 생각되는 점은 어떤 것들인지?
김일란(‘연분홍치마’): 게이다큐멘터리의 PD를 맡으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게이들 속에 파묻혀 있었을 때는 정말 존재감이 없어진다는 점이다. 게이들하고 같이 지내면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웃음) 그리고 이혁상감독과 같이 지내면서 깨닫게 되었던 것 중 하나는 날씬한 게 예쁘다가 아니라 뚱뚱한 게 예쁘다하는 점, 몸에 대한 다른 생각을 하게 하는 부분도 있었다. 그리고 게이문화와 여성의 문화 사이의 차이에 있어서 서로가 서로에 대해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었다. 다양한 성소수자 영상이나 다큐멘터리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얘기들을 듣게 된다. ‘연분홍치마’에서 <종로의 기적> 이전에 <3xFTM>이나 <레즈비언 정치도전기> 같은 영화를 만들기도 했는데, 계속해서 성소수자인권운동 곁에서 계속 좋은 영상을 만들어달라는 훈훈한 부탁을 많이 들었던 것 같다.

관객1:
특히 첫 번째 에피소드가 마음에 많이 와 닿았다. 소준문 감독님이 다른 사람들 앞에서 본인이 게이감독이기 때문에 다 짊어지고 가야하는 것이 부담스럽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벌거벗은 느낌이라고 얘기하는 부분이 많이 공감되었다. 그런 부분에 대해선 감독님은 어떻게 느끼시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이 영화를 이성애자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다.
이혁상: 소준문씨 에피소드를 여성분들 특히나 여성영화인들이 굉장히 많이 공감하면서 본다. 여성들에게 착한여자콤플렉스가 있지 않나. 준문씨가 어떻게 보면 착한게이콤플렉스에 휩싸여서 스스로 알아서 조심하고, 알아서 상대를 먼저 배려하고, 나의 정체성 때무에 상대방이 불편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모습, 그러다보니 굉장히 착한 모습, 화도 한번 못 지르는 그런 모습을 보인다. 그런 것들이 아마도 많은 여성분들이 남성중심적인 사회에서 느끼는 차별의 모습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종로의 기적>에 차별의 모습이 물리적으로 드러나는 장면은 없다. 물리적인 폭력이 드러나지 않으니까 어떻게 보면 동성애자들이 굉장히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차별은 보이지는 않지만 이미 성소수자들의 마음 속에서 시작되고 있다. 스스로의 욕망과 자신의 몸가짐을 알아서 제한하게 되는 것 자체가 이미 차별인 것이다.
전재우: 아마 직장에서 커밍아웃을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첫 번째 에피소드에 많이 공감할 것 같다. 일단 커밍아웃을 하게 되면 그들에게 그 사람은 게이대표가 되어 버린다.(웃음) 모든 것에 게이라는 꼬리표가 붙는 경험, 다른 사람이라면 겪지 않을 일일 텐데, 24시간 나의 정체성을 생각해야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박기호: 앞으로 각자의 계획이 궁금하다.
이혁상: 계속 공동체 상영을 통해서 관객들을 찾아가는 자리를 만들어가려고 한다. 당분간은 <종로의 기적>과 함께 전국을 순회하면서 계속해서 상영회를 갖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전재우: 먼저 ‘친구사이’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해야 할 것 같다. ‘친구사이’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이고 한국에서 제일먼저 생겨서 오랫동안 활동하고 있는 단체이다. 이번에 <종로의 기적>을 ‘연분홍치마’와 공동으로 기획하고 제작했다. 인권운동단체이지만 문화컨텐츠에도 관심이 많아서 <종로의 기적> 이전에도 청년필름과 같이 퀴어단편들도 만들었었고, 소준문씨의 첫 번째 영화도 ‘친구사이’에서 만들었었다. ‘친구사이’ 홈페이지에 커밍아웃인터뷰라고 해서 회원들의 인터뷰를 홈페이지에 올리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이것을 영상으로 발전시켜보자 하는 의견이 ‘연분홍치마’측에 전달이 되고 ‘연분홍치마’에서도 커밍아웃다큐멘터리 3부작을 기획하고 있어서 서로 의기투합해 영화가 나왔던 것이다. 커밍아웃인터뷰는 지금도 계속 되고 있고, 홈페이지에서 보실 수 있다. ‘지보이스’는 정기공연 준비하고 있다. 씨네코드선재에서 11월 5일에 공연할 예정이다. 굉장히 재밌는 공연이 될 것 같다. 2013년이 되면 ‘지보이스’가 만들어진지 10년이 된 해여서 ‘지보이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보면 어떨까하는 애기도 나누고 있다.


김일란: <종로의 기적> 제작 과정은 ‘친구사이’와 ‘연분홍치마’의 일종의 연대사업이면서, 동시에 다큐멘터리라고 하는 예술적인 영역을 해야하는 복잡한 과정이었다. ‘친구사이’와 ‘친구사이’의 많은 분들에게 정말 감사하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연분홍치마’는 현재는 일단 커밍아웃다큐멘터리 3부작을 마무리하고 앞으로 성소수자인권운동 안에서 어떤 문화활동을 계속해나갈지 고민해 가야할 것 같다. 주변에서 많은 응원과 지지를 보내 주셨다. 그리고 용산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두 개의 문>작업을 마무리하고 있는데, 이번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처음 상영이 된다. 그 영화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

정리: 장지혜 관객 에디터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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