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첫 탄생부터 과거를 담을 수밖에 없는 것이 영화의 본질이다

2012. 2. 29. 16:102012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CineTalk

후나하시 아츠시 감독 vs. 박동현 감독

지난 24, 25일 양일간은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의 대미를 장식하는 후나하시 아츠시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특히 25일 저녁, <야나카의 황혼빛> 상영 후에는 바로 전날 진행되었던 마스터클래스에 이어 후나하시 아츠시 감독과의 대담이 이어졌다. 대담자로는 서울국제실험영화제(EXiS) 집행위원장인 영화감독인 박동현 감독이 함께 했다. <야나카의 황혼빛>을 중심으로 영화에 임하는 후나하시 아츠시 감독의 사명과 철학도 듣고, 공간의 중요성을 탐구해온 두 감독이 지닌 흥미로운 견해를 엿볼 수 있었던 대담 현장의 일부를 여기에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어제 있었던 마스터클래스에 이어 오늘은 후나하시 아츠시 감독과의 대담을 진행하고자 한다. 오늘 대담에는 영화감독이자 서울국제실험영화제 집행위원장인 박동현 감독님께서 함께해주셨다.
후나하시 아츠시(영화감독): 오늘은 긴 시간은 못 되겠지만 영화의 가능성, 특히나 잃어버린 풍경에 대해 영화를 만드는 이야기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다.
박동현(영화감독, 서울국제실험영화제 집행위원장): 만나 뵙게 되어 반갑고, 좋은 영화를 보여주신 감독님께 감사드린다. 제가 만들었던 영화와 비슷한 부분들이 있어 이 대담에 불러주신 것 같은데, 저 역시 사라져가는 것들과 도시의 공간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김성욱:<야나카의 황혼빛>에서 사라진 것이 5중탑이라면, 박동현 감독의 영화에서는 숭례문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교묘하게 맞닿은 지점이 있는 것 같다. <야나카의 황혼빛>은 소실된 5중탑에 대한 일종의 불가시 대상을 과거와 현재, 다큐와 픽션을 넘어서서 표현한 작품이라고도 보여진다. 어제 후나하시 아츠시 감독이 ‘영도의 화면’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시대나 장소가 굉장히 불확실한, 이질적인 화면들이 영화 속에 많이 등장한다. 허우 샤오시엔의 <쓰리타임즈> 같은 영화처럼 여러 시대가 공존하며 다큐와 픽션, 무성과 홈무비, 에도시대와 현재, 불타버렸던 1950년대의 시대, 노인과 젊은이 등 여러 가지가 결합된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것들이 만나는 지점이 영화의 근원적인 것이고 영화가 주는 매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후나하시 아츠시 감독의 이야기를 먼저 듣고 박동현 감독과의 대담을 진행하도록 하겠다.
후나하시 아츠시: <야나카의 황혼빛>은 현대의 ‘야나카’라는 도쿄의 한 동네와 애도시대의 옛날 모습, 특히나 5층탑을 만들려는 목수의 이야기이다. 그 안에 픽션과 다큐멘터리 등 여러 가지가 교차되어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현재에는 없어져버린 것들, 잃어버린 것들에 카메라를 대는 것에 상당히 많은 흥미를 갖고 있었다. 과거지향적인 사람인지는 모르겠으나 사람들 머릿속에서 죽은 것들, 보이지 않게 된 것들을 계속 꺼내서 보이게끔 만드는 것이 제 영화의 사명이 아닌가 한다.
영화를 보는 시선이라는 것은 어딘가 과거를 향한 시선과 닮아 있다고 생각한다. 없는 것을 바라보는 시선과 영화를 보는 시선이 닮아있다고 보고, 그것이 마치 이 영화에서는 탑을 올려다보는 시선과 같다고 생각한다. 영화라는 것은 시간, 국적, 공간, 언어 등을 초월해서 과거에 존재하는 것들을 느낄 수 있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데, 바로 그 점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상상력의 가장 놀라운 능력이 아닌가 싶다. 사람들이 저마다의 종교나 나라, 시대에 갇혀 있다고 해도 공통적인 것들을 찾아내서 공감대를 가질 수 있게 한다는 것이 영화의 힘이라고 본다. 시대가 흐르고 변해도 변함없이 남아있는 것들이 무엇인가에 대해 여러분들이 바라볼 수 있게끔 유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만든 영화다.
오즈 야스지로가 만든 <동경의 황혼>(1957)이라는 영화가 있다. 1957년은 바로 탑이 불탄 해인데, 자료조사를 하면서 오즈의 영화가 만들어진 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동경의 황혼>은 오즈의 영화 치고는 드물게 어두운 영화다. 완전히 암흑 속에 빠진 것 같은 슬픔을 느끼게 하는 영화인데, 일본의 가족들이 붕괴해가는 과정을 그렸다. 그야말로 내가 영화에서 테마로 삼았던 현대 일본 가족의 붕괴와도 통하는 면이 있어서, 거장 작품의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는 게 조심스럽긴 하지만 오즈의 영화에서 제목을 차용한 것이다. 황혼은 해가 져서 점점 안보이게 되는 시간이기 때문에 사라져가는 것을 상징한다. 재밌는 것은 다른 시대를 서로 비교할 때 역사적 아이러니를 볼 수 있다는 거다. 젊은이가 영화에서 만들어낸 탑이 현대에 와서는 어르신들이 못 잊어하고 그리워하는, 전통을 대표하는 탑이 되어 버렸는데 각기 다른 시대를 붙여놨을 때 과연 전통이란 무엇인가, 젊음은 또 무엇이고 나이 듦이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들더라. 그런 의문을 갖은 채 서로 다른 두 가지 시대를 나란히 놓고 비교하며 영화를 보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다.


박동현: 이 영화를 보면서 궁금한 점이 많았다. 일단 이 영화가 하나의 탑이 사라지고 그 탑을 기억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서 다큐멘터리와 내러티브를 결합해서 만들었는데, 이 영화를 어떻게 기획하게 되었나.
후나하시 아츠시: 2007년에 미국에서 10년 동안 공부하고 오랜만에 일본에 돌아왔을 때 도쿄의 어디에서 살까를 고민했었다. 그때 친구가 사는 곳에 놀러갔었는데 영화에도 나왔던 벚꽃나무가 있는 역 앞에 묘지가 많더라. 사는 사람보다 죽은 사람들이 많은 동네라고 들었다. 어쨌든 그곳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살게 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중에 영화에도 등장하는 카토라는 할아버지를 만났다. 영화에서처럼 실제로 5층탑 터에서 그 분을 처음 만나서 그 탑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 분뿐 아니라 다른 분들을 만나도 5층탑 얘기를 많이 하셔서 도대체 5층탑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흥미가 많았다. ‘야나카’라는 것은 한자로 쓰면 계곡곡(谷)자와 가운데중(中자)를 쓰는, 그야말로 계곡의 밑바닥이라는 뜻이다. 계곡의 양쪽에는 애도시대 당시 돈 많은 사람들이 사는 저택들이 있었고, 계곡의 바닥은 하층민이나 서민들이 사는 곳이어서 여러 문화가 복합적으로 남아 있는 부분들이 있다. 또 묘지와 절이 상당히 많고, 위치상으로는 일본의 왕궁터로부터 동북지방이다. 풍수적으로 안 좋은 방향이어서 애도시대부터 절을 많이 지어 악령들을 막으려고 했고 묘지도 많이 생기게 됐다. 이 ‘야나카’에서의 삶을 보는 것이 곧 과거 도쿄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거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이곳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영화의 배우들은 당시 제가 연기를 지도하던 지망생 학생들이었다. 만들고 있는 다큐멘터리에 픽션을 첨가하고 그 픽션의 부분을 학생들과 함께 해보자고 해서 만들어지게 됐다.

박동현: 감독님의 전작은 물론 내러티브가 강한 영화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완전한 극영화였다. 극영화에서 다큐멘터리로 전환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후나하시 아츠시: 자연스럽게 다큐를 시작하게 되었다. 911 사건이 있을 때 마침 뉴욕에 있었는데, 눈앞에서 그렇게 충격적인 일이 벌어지면 카메라를 갖다 댈 수밖에 없는 자연스러운 충동을 느낀다. 당시 매일같이 뉴욕 곳곳을 다니면서 촬영을 했고 그것들을 토대로 방송다큐멘터리를 찍었었다. 처음에 만든 영화는 <에코스>라는 극영화인데 그 다음에 911관련 다큐를 만들게 됐다. 그 때의 감상이나 생각들을 토대로 쓰여진 시나리오가 <빅 리버>였다. 저에게 다큐멘터리와 픽션은 표리일체, 즉 동전의 양면처럼 같은 거라고 볼 수 있다. 또 다큐멘터리 소재를 찾는 과정에서 느꼈던 것들을 토대로 시나리오가 만들어지는 상호 소통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다큐에서 극영화로 옮길 수 있었다.

박동현: 저도 탑이 불타는 장면을 보면서 911 사건을 떠올렸는데, 마침 그런 접점이 있었던 거였다. <야나카의 황혼빛>은 거의 흑백으로 만들어졌는데 내러티브상으로 탑이 완성된 이후로 컬러로 변하기 시작한다. 그 이전에는 탑을 올려다보는 장면의 나뭇잎이나 목수와 아내가 손을 비석에 대는 장면이라든지 세 개 정도가 컬러가 있었고 탑이 완성된 이후에야 완전히 컬러로 변하게 된다. 흑백과 컬러를 동시에 사용하면서 특별한 룰을 만들어놓고 작업을 하신 건지 궁금하다.
후나하시 아츠시: 과거를 바라보는 시선을 담은 영화 같은 경우, 중요한 것은 과거를 과거로 보지 않고 현재로 인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관객이 현재를 볼 때는 과거를 생각하고, 과거를 볼 때는 현재를 생각할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는 게 가장 중요하지 않나 생각했다. 가능하다면 보는 분들이 과거를 현재처럼 선명한 색으로 봤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대부분 좋은 영화들은 과거를 과거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과거와 현재와의 교류를 그린 것이 많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같은 경우에는 없어진 풍경을 찾는 자식의 이야기인데, 잃어버린 것을 찾으러 다니지만 결국엔 현재의 모습을 찾게 되지 않나. 이런 것처럼 과거와 현재의 교류를 다루는 것이 영화의 역할이라고 생각을 하고 그 부분에 중점을 두었다.

박동현: 컬러와 흑백을 사용함에 있어서 그 둘을 나눈 경계점 등에 특별한 기준이 있었나.
후나하시 아츠시: 과거가 정말로 선명하게 느껴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과거가 되살아나는 것을 본다는 의미로 5층탑이 불타는 것을 컬러로 써야겠다하는 생각은 확실히 있었다. 효과를 크게 낸다기보다는 현재와 과거가 같은 레벨에 존재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과거와 현재를 구분 없이 흑백으로 처리하고 싶었고 대신 과거와 현재가 만나서 변화하는 순간만큼은 어떤 변화를 나타내고 싶었다. 영화에서 젊은이와 할아버지가 탑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어떤 여자가 술병을 들고 등장하면서 한 테이크로 간 씬이 있는데 사실은 200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거다. 그러면서 색깔도 선명해지고 명확해진다는 것들을 그리고 싶었다.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영화에서도 한 컷으로 30년의 시간이 변하는 것을 그린 적이 있었다. 저는 한 테이크로 200년 정도 뛰어 넘어 보자 하는 생각이 있었고 그것을 해보고 싶었다.

박동현: 영화를 굉장히 좋아하시는 분이구나 싶다. 영화감독의 경우 시네필부터 시작한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는데 이를테면 <빅 리버>는 서부극의 공간들에 대한 오마주를 보여주면서 들어오는 느낌이 있고, <야나카의 황혼빛>에서는 슈퍼8mm 필름을 갖고 찾는 과정들이 드라마로 나오게 되는데, 언제부터 어떻게 영화를 할 마음을 갖게 되었는지도 궁금하다.
후나하시 아츠시: 사실 저는 고등학교 때까지는 영화를 거의 보지 않는 학생이었다. 영화를 좋아하게 된 건 시네마테크 영향이 컸다. 영화를 보러 가자고 늘 권하던 친구가 있었는데 당시 500엔 정도로 두 세 편의 영화를 동시에 볼 수 있었다. 그곳에서 할리우드나 일본의 고전 영화, 퓰러나 고다르의 영화들을 봤다. 당시에 전혀 이해는 못하면서도 대단하다는 느낌을 가졌고 그 영향이 컸다. 이후 동경대에 들어갔을 때 하스미 시게히코라는 괴물 같은 영화평론가가 있었는데 1년에 못 해도 영화를 100편 이상 봐야 된다고 하더라. 그때 매해 200편 씩 보면서 4년 동안 800편 정도의 영화를 봤다. 그렇게 영화를 보면서 만들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박동현: 저랑 굉장히 비슷한 경험을 하셨다. (웃음) 저도 고등학교 때 친구 꼬임에 넘어가서 영화를 보다가 여기까지 왔다. <야나카의 황혼빛> 제일 마지막 장면에 동경대가 나오는 비석이 하나 있던데, 그 비석과 동경대 출신이라는 것이 어떤 관계가 있는 건가.
후나하시 아츠시: 참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다. (웃음) 영화에 나왔던 묘지에 가면 상당히 유명한 분들의 묘지가 많다. 이를테면 애도시대의 마지막 쇼군의 무덤, 하세가와 카즈오라는 유명한 배우의 무덤도 있고 시인이나 동경대학교 교수 분들의 무덤도 꽤 있다.


김성욱: 두 분의 영화가 공통적이라고 느꼈던 것은 어떤 장소의 중요성이다. 제가 느끼는 역설적인 측면들은, 장소는 굉장히 리얼한데 장소에 있었던 과거의 사건은 현실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거다. 리얼하면서도 불가시한 대상이 되는 어떤 장소를 영화가 담아낸다는 점에서 영화가 갖는 특별한 힘들이 다큐나 픽션을 작동하게 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야나카의 황혼빛>이 상영될 때 후나하시 아츠시 감독은 박동현 감독의 영화 <기무>를 봤다. <기무>는 서울에서 사라져가는 장소와 공간들을 담은 영화인데 어떤 느낌으로 보았는지 궁금하다.
후나하시 아츠시: 정말 멋진 영화였다. 옛날 기무사가 있었던 장소에 현대미술관이 옮겨간다는 뉴스를 보고 그것에 대해 다루는데, 그 공간을 그려냄으로써 역사와 공간에 살아있는 망령들까지도 담은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의 핵심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복도에 대한 시각이었다. 저 자신도 잃어버린 공간을 다룰 때 카메라를 어디에 놓아야 잘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하게 되는데, 이 영화에선 복도를 다룬 것이 인상적이었다. 방은 사람들이 만나고 관계를 맺게 되는 공간이고 복도는 무시하기 쉬운 공간이지 않나. 그러나 실제로는 공간의 역사가 가장 생생히 남아 있는 곳이다. 영화에서는 복도를 그려냄으로써 많은 이야기를 다룬 감독들이 많다. 오즈 야스지로나 같은 감독도 복도나 길을 통해 아름다운 씬들을 많이 보여줬다. 얼마 전에 존 카펜터의 <더 월>이라는 호러영화를 봤는데, 병실들 사이의 복도를 그려냄으로써 보는 사람들에게 공포를 주는 영화였다. 이처럼 복도를 어떻게 그리는가가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이고 영화사적으로도 많이 시도되었던 부분인데, 혹시 감독님께서도 이 부분을 의식하며 강조했던 건지 알고 싶다.
박동현: 복도를 강조했던 것은 사람들의 여정이라는 부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 영화에서 강조했던 것이 기무사 안에서의 복도와 골목길들이라 그것들을 많이 보여줬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거의 안 나오는 영화인데 사람들의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는 그런 식의 복도와 길이 아니었을까. 사람들이 방에서는 앉아서 정적인 활동을 하는 데 반해 복도나 골목길은 더 동적인 활동을 하는 공간으로서 바라보게 됐다. 그 안에서 훨씬 더 많은 일들이 벌어질 수 있겠다 생각해서 복도를 찍게 됐다. 어니 기어의 <Serene Velocity>라는 작품에 나오는 복도 장면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그 작품의 영향도 있었다.

후나하시 아츠시:
박동현 감독님 영화를 보면서 기무사 복도도 인상 깊었지만 생선가게가 있는 뒷길도 참 인상적이었다. 에드워드 양의 <고량가 소년 살인사거>에서도 보면 마을 중에서도 특히나 가로수가 있는 길을 오프닝샷으로 다루면서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을 담아낸다. 이처럼 마을의 등뼈 같은 길을 찾아내서 그 길을 오가는 사람들의 인생을 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 그런 것을 잘 담아내는 사람들에게는 놀라운 영화적 재능이 있다고 본다. 그런 부분에서 박동현 감독님의 영화를 보면 앞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든지 좋은 영화가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박동현: 감사드린다. (웃음)

김성욱: 일본 영화 감독들을 볼 때마다, 현재에서 영화를 만드는 동시에 과거에 영화를 만들었던 그 기원점 안으로 계속 거슬러 올라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구로사와 기요시나 아오야마 신지의 영화를 볼 때도 그렇고 바로 후나하시 아츠시 감독의 영화도 그렇다. 오늘 본 <야나카의 황혼빛>의 경우 두 개의 8mm영상이 있다. 하나는 자전거 타는 아이의 모습을 찍은 영상인데, 마치 뤼미에르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또 하나는 5중탑이 불타는 장면인데 에드 윈 포터의 <어느 소방수의 하루>와 비슷한 느낌이 있었다. 또 롱 테이크를 쓴 장면에서 보자면 미조구치 겐지의 <우게츠 이야기>의 마지막 장면이 느낌이 있었고, 영화에서 몇 번에 걸쳐 나오는 의식들은 오즈 야스지로의 <꽁치의 맛>에서 장례식에서 결혼식으로 끝나던 그 순간이 연상된다. 말하자면 영화를 찍으면서 영화적인 근원이나 기원점으로 계속해서 거슬러 올라가는 것 같고, 영화를 찍으면서도 그걸 계속 의식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특별하게 여기게 된다.
후나하시 아츠시: 첫 탄생부터 이미 과거를 담을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영화의 본질이라고 본다. 그래서 사라져가는 빛들을 담는 것이 바로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에 쓰인 8mm 영상들은 실제 영상들이다. 그것들 자체가 영화의 본질에 가깝지만 그렇게만 말하면 사실 영화를 만들 필요가 없게 된다. 영화는 그 이상을 해야 해야만 한다. 잃어버린 빛과 현재가 만나는 한 지점을 담아낼 때, 그것이 바로 진정한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잃어버린 풍경뿐 아니라 잃어버린 관계까지도 담아야 된다는 것, 단순히 과거를 재현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빛과 현재의 빛이 만나는 그 접합점을 찾아내서 담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 그것에 가장 많은 흥미를 갖고 있다. 영화는 그렇게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박동현: 굉장히 역사학자 같은 시각을 갖고 계시다. 감독님 영화에는 과거와 현재가 한 공간에 존재하고, 그 공간들은 실제로 과거에도 사용되었던 공간이고 현재에도 남아있는 공간들이다. 그 공간들을 과거처럼 기록하고 현재도 보여주고 하는 과거와의 소통 같은 것이 감독님 개인에게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다.
후나하시 아츠시: 가장 중요한건 현재의 부분을 반영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2009년 시네마디지털서울영화제에서 서울 외곽의 재개발 지역을 그린 영화인 <호수길>을 봤는데, 건물들이 계속해서 없어지고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사람들이 있었던 단편들만 나오고 그 잃어버린 광경을 담음으로써 사람들에게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고 본다. 또 그러한 의문뿐만이 아니라 현재 내가 있는 장소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정말 소중하다고 여겨야 되는 시간과 장소는 어디인가에 대한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게 한다. 바로 이런 것이 영화의 마력이랄까,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끔 해서 생각할 수 있도록 자극을 주는 것이다. 영화의 불변성은 바로 장소라든가 시간 등 영화에서 그려진 이외의 것을 통해 보는 사람들에게 상상력을 펼칠 수 있게끔 하는 힘에 있다. 잃어버린 광경을 찍는 것 자체가 보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자극을 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박동현: 과거의 공간들에 가면 많은 감수성을 자극받게 된다. 오랜만에 종로에 나왔는데 빌딩사이에 피맛골을 재현해 놓은 듯한 구성을 해놓았더라.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만든 것들이 우리의 감수성을 자극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아쉬웠다. 서울에는 사실 그런 부분들이 거의 안 남아 있는데 동경에서 야나카 같은 곳은 재개발이 이루어지는지, 만약 재개발을 하게 된다면 일본에서는 어떤 식으로 접근하고 있는지 알고 싶다.
후나하시 아츠시: 개인적으로 도시계획을 좋아해서 많이 책도 보는데 일본도 서울만큼이나 엉망이다. 동경은 전후 국가 재건 당시 무계획적으로 개발해서 옛것과 현대적인 것들이 섞여서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 절 같은 경우는 많이 지킬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그저 감정적인 생각에서다. 막상 돈이 없어서 절이 땅을 팔면 그 공간에 아파트를 짓거나 한다. 제가 살고 있는 야나카도 많이 남아있는 편이라고는 하지만 옛 건물들을 없애버리는 일이 빈번하다. 프랑스 파리처럼 보존이나 규격에 대한 기준이 없고 일본 역시 재개발이 너무나도 쉽게 이루어지고 있다. 또 국가문화재로 지정되기가 상당히 어려운데, 이렇게 지정되지 않은 건물들은 아무리 오래되어도 쉽게 없어버린다. 그런 의미에서도 영화나 기록 영화가 문화의 보존이라는 측면에서 하나의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김성욱: 영화의 주된 내용 중 하나는 5중탑이 불타버린 순간의 영상을 찾는 이야기인데,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맥거핀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것이 픽션을 움직여가는 동력이긴 한데 사실 그 중요성은 없는 것 같다. 5중탑의 화재 영상이 스크리닝되는 그 자체는 그렇게 큰 의미가 없는 것 같은, 대신 현재의 인물이 강렬한 불빛을 보는 것이 더 중요하게 느껴지는 그런 모호한 대비가 있었다는 생각이 드는데.
후나하시 아츠시: 남자 주인공이 불빛을 받으면서 탑을 바라보는 장면은 과거를 바라보는 현재의 시선이라고 할 수 있다. 저 자신부터가 영화를 만들 때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잃어버린 광경을 보여줄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부분이다. 처음 이 영화를 만들겠다고 시작했을 때는 불타는 영상이 없어서 흑백사진만 넣었었고 영상이 없어도 별 상관이 없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나 도중에 촬영 영상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고, 처음에는 그 영상을 찾을 힌트가 없어서 방황했었다. 당시만 해도 사람들의 얘기를 통해 만들어진 영화가 보는 이들에게 상상력을 펼칠 수 있게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굳이 영상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인터뷰를 다니던 중 만났던 한 스님이 그 장면을 찍은 필름이 있다고 하시더라. 그 필름을 보는 순간 너무나도 선명해서 써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처음에는 그 영상이 없이도 영화가 성립이 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김성욱: 흥미로운 얘기들이 많이 나왔던 시간이었다. 개인적으로 <빅 리버>와 <야나카의 황혼빛>을 동시에 보게 되면 ‘돌’에 관한 영화를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빅 리버>는 거대한 바위(멘사)가 있었다면 <야나카의 황혼빛>은 무덤, 석상 등이 나오지 않나. 무덤에 관한 영화면서도 무덤에 관한 굉장히 시적인 표현들을 얻어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를 보면서 ‘무덤은 단순하게 돌이 아니라 하나의 시다’라는 문구가 문득 생각이 났다. 이제 끝으로 두 분의 소감을 들으면서 마무리 해야겠다.
박동현: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후나하시 감독님께서 만드신 새로운 다큐멘터리인 <뉴클리어 네이션>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고, 저도 새 작품으로 찾아뵙고자 한다.
후나하시 아츠시: 제 영화의 돌이 공통점이라는 점이 재밌었다. 새로 만든 영화 <뉴클리어 네이션>은 안 보이는 방사능을 다룬 영화지만 꽤 많은 묘석이 나온다. 이 영화도 많이 봐주셨으면 좋겠고 멋진 영화 만드신 박동현 감독님과 함께 시간 보낼 수 있어서 기뻤다.

정리: 장미경(관객 에디터) | 사진: 최미연(자원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