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클레르 드니의 <침입자>
인간의 기억은 어디에 있을까? 뇌, 아니면 심장? 심장이식은 단순한 장기이식과는 달리 어떤 경우 사람의 정신에 영향을 미친다. 심장과 함께 육신이 쇠락하고 죽음에 가까이 다가간 늙은 남자의 몸에 새로운 심장이 이식된다. 이 착상은 클레르 드니가 장 뤽 낭시의 글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 드니의 <침입자>(2004)에서 남자(루이)에게 이식된 심장은 몸에 침입한 이물질과도 같다. 프랑스의 한적한 교외지역의 대자연에 위치한 그의 사유지에 이상한 사람들이 몰래 침입하는 것처럼, 이식수술을 의뢰했던 여자가 수술 이후의 남자의 삶에 계속해서 유령처럼 출몰한다. 그에게 이식된 심장은 그의 몸에 침투했고, 그의 정신에 상당 부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것은 영화에서 매우 불온한 감각으로 표현된다. 루이가 수술을 의뢰한 순간부터 계속되는 악몽과도 같은 이미지(이를테면 하얀 설원에서 그의 육체가 겪는 고통을 표현하는 이미지)들은 앞으로의 여정에 대한 불길한 느낌을 주며, 심지어 그가 수술을 받는 것으로 생각되는 순간은 한 남자의 심장이 눈 밖으로 꺼내져 개들에게 물어뜯기는 악몽과 같은 초현실적 이미지를 통해 표현된다.
그의 여정의 사실상 종착지는 아들이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 섬이다. 그곳에는 아들의 엄마가 있고, 젊은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가 있다. 아름다운 해변에서 친구와 조우하자 영화는 과거의 이미지의 단편들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이 장소는 F.W. 무르나우가 <타부>를 촬영한 프랑스령의 폴리네시아 ‘타히티’ 섬이다. 따라서 <타부>에서 보았던 풍경과의 유사성을 볼 수 있으며, 감독은 의식적으로 ‘TABU’라고 적힌 무르나우의 영화에서와 같은 푯말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는 무르나우에 대한 오마주로 읽힘(<타부>는 인간의 육체와 자연환경에 대한 순수한 묘사라는 점에서 <침입자>와 연결된다)과 동시에, 프랑스령인 그 섬의 원주민과 부유한 백인 남성의 관계에 대해 제국주의적 침략의 은유로 읽을 수도 있다. 이 영화의 테마인 침입과 관련해서 확실히 두 번째 해석은 더 유용한데, 그래서인지 버려진 채 섬에서 자란 아들은 아버지가 남겨준 돈을 쓰려고 하지 않는다. 루이는 아들이 섬에 돌아오는 순간을 기다리려 하지만, 영화 내내 느껴지던 불온한 감각은 계속해서 강화되고, 루이의 심장은 어떠한 거부반응을 일으킨다.
<침입자>는 클레르 드니의 영화중에서도 매우 난해한 영화에 속한다. 영화의 복잡한 내러티브는 쉽사리 하나의 이야기로 통합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야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화의 이미지, 즉 루이의 신체적 여정과 정신적 여정(꿈 혹은 환상)을 따라가는 대자연의 풍경, 그리고 그의 쇠락한 육신을 담은 이미지들이다. 드니는 남자의 육신과 그 몸에 새겨진 수술의 흔적 등을 익스트림 클로즈업 숏으로 촬영하면서, 인간의 몸의 표면을 하나의 풍경처럼 표현한다. 또한 드니는 무척이나 특별하게 자연적 풍경을 담아내는 감독임에 틀림없는데, 새하얀 설원과 넘실대는 바다의 물로 화면이 가득 차는 시각 이미지들과 생생한 사운드가 혼재되어 주는 감각적 힘은 실로 압도적이다. 그리고 심장의 격동처럼 울려대는 메인테마 음악의 드럼비트는 이와 조응한다. 질 들뢰즈 식으로 말하면 ‘순수 시청각적 이미지’들이라고 할 만한, 이 영화의 시청각적 이미지들은 그 자체로 물질적, 즉물적인 것으로 관객에게 하나의 촉각적 체험으로써 신체적으로 다가온다. 그야말로 강렬한 영화적 에너지를 체험할 수 있는 영화다. 우리 몸속의 심장 박동을 느끼는 것과 같은 체험. 무엇보다 이 신체적 체험은 극장에서 볼 때에야 비로소, 온전히 느낄 수 있을 만한 것이다. (박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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