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순간을 붙잡은 영화

- 자크 베케르의 <7월의 랑데뷰>



많은 사람들에게 자크 베케르는 장 르누아르의 전성기를 함께했던 조감독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로 인해 베케르에 대한 선입견이 그의 영화에 대한 탐색보다 먼저 생겨난 것일지 모른다. 예를 들어 그가 영화의 친구이자 아버지라고 여겼던 르누아르에게서 배운 것들과 유사한 영화적 세계를 만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그가 남긴 열세 편의 영화는 프랑스 영화사에서 가장 독창적인 영화적 표현을 구현했음을 증명하고 있다. 그의 영화들은 섬세하고 밀도 높은 감정으로 채워지고 정밀한 관찰력에서 비롯된 삶의 순간들을 날카롭게 포착한다. 서사의 구조를 유지하되 일상의 디테일한 제스처와 사건들로 채워진 그의 영화는 매번 다음 숏을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곳으로 건너뛴다. 베케르는 서사에 필요한 정보를 통해 인물을 묘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캐릭터의 곤란한 상황과 머뭇거리는 결단 사이에 놓인 것은 그가 처한 삶의 문제들을 해결할 때 발생하는 감정적 반응과 그것을 표현하는 풍부한 일상의 제스처, 예민한 표정이다. 감정의 부딪힘과 격렬한 사랑은 다음 장면을 절대로 예상할 수 없는 새로운 숏들의 행렬로 이어지며, 어느 영화에서도 본 적이 없는 리듬을 드러낸다. 그는 확정된 구조와 설명되는 감정이라는 함정에 빠지지 않기로 작정한 것처럼 매 순간 다채롭고 변화무쌍한 영화적 모험을 즐겼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영화는 르누아르로부터 얼마만큼 멀리 나아갈 것인지를 스스로에게 질문하면서 만들어졌다는 생각마저 든다.



2차 대전 중에 만든 데뷔작 <마지막 일격>(1942)과 <여인숙에서 생긴 일>(1943), <파리의 장식>(1945)은 그의 초기작들이고 <황금 투구>(1952), <현금에 손대지 마라>(1953), <몽파르나스의 연인>(1958), 유작인 <구멍>(1960)은 후기의 걸작이라고 부를 수 있다. 전후 1945년부터 1953년까지, 그의 영화 경력 중반부를 차지하는 시기의 영화들은 후기작들에 비해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한 채 사람들의 기억에서 밀려났지만 전후의 혼란과 궁핍함, 당대 문화에 대한 기록에 바탕을 둔 그의 카메라가 담아낸 동시대 젊은이들의 일상에 대한 특별한 그의 관점으로 인해 경탄하게 된다. <앙투안과 앙투아네트>(1947), <7월의 랑데뷰>(1949), <에두아르와 카롤린>(1951), <에스트라파드 거리>(1953)는 점점 고독해지고 자신만의 공간과 삶의 규칙에 사로잡힌 인물, 번뜩이는 광기와 관능성을 오가는 고요한 삶에 대한 집요한 해부보다 훨씬 더 활기차고 종잡을 수 없는 에너지로 넘쳐난다. 젊은 부부들이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다투거나 가난 때문에 절망하고 그럼에도 사랑을 확인하는 소동극인 세 편의 영화와 달리 <7월의 랑데뷰>는 전후 프랑스에 스며든 미국 대중문화의 영향력과 당대 청년문화를 사실적이고도 아름다운 터치로 파고든다. 재즈, 춤, 미국 담배, 수륙 양용 전차에 그려진 낙서를 통해 젊은이들의 취향과 기호를 드러냄과 동시에 영화, 인류학, 연극을 공부하는 젊은이들이 자신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길을 모색하는 절박함도 포함하고 있다. 또 다양한 예술가로 구성된 20대 집단의 엇갈리는 사랑과 오해, 갈등과 좌절, 희망과 열정이 특유한 활력을 불어넣는다.



베케르의 다른 영화와 마찬가지로, 이 영화는 도시의 전경으로부터 집으로 연결되는 카메라의 움직임으로 시작한다. 그는 도시의 어느 곳에 누군가 살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수식을 사용하지 않고 당대의 일상이 펼쳐지는 장소를 드러내는 간결한 표현을 선택했다. 관습적으로 수용되는 화법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해 시대적 공기를 무심코 포착한 후, 곧이어 등장인물이 어떤 사람인지를 단박에 드러내는 숏으로 이어간다. 장소와 인물이라는 베케르의 중심적 사건은 간결하지만 유려한 리듬에 실려 관객들에게 도착한다.



인류학을 공부하는 루시앙, 외모는 아름답지만 재능이 없는 연극배우 지망생 크리스틴, 그녀의 친구이자 훌륭한 연기자를 꿈꾸는 테레즈, 영화학교에서 촬영을 전공한 로제, 정육점 아들이자 배우가 되고 싶은 익살스러운 피에로를 주축으로 한 젊은이들을 소개하는 방식 또한 눈여겨봐야 한다. 거리에서 실내로 이동하면 루시앙의 가족이 식사를 한다. 인물이 속한 실내의 환경은 경제적 여건(부르주아인 루시앙과 크리스틴, 중산층인 테레즈와 로제), 실용적인 일을 원하는 부모와 대립되는 가치관을 압축해서 보여주고 있으며 루시앙의 전화로부터 시작된 연결은 전화를 받고 약속을 하고 친구를 기다리는 그들의 행동에 집중되어 있다. 관객들은 19분 남짓 아무런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 그들의 표피적인 일상을 지켜보면서도 영화가 나아갈 방향을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베케르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경쾌하고 밝거나 우울함에 잠겨드는 인물들이 펼쳐내는 현재의 순간들이다. 사건을 정돈시켜 진행하는 데 무관심한 그의 방법론을 따라가면 감정과 운동, 리듬이 이 영화의 전부인 것처럼 느껴진다. <7월의 랑데뷰>는 재즈의 즉흥연주처럼 빠르고 충동적인 리프를 연주하듯 매 숏과 신이 서로를 향해 던져진 상태로 불협화음을 만들어낸다. 오로지 현재에 충실한 젊음의 시간은 재즈클럽에 빼곡하게 모인 인물들의 열기, 온몸을 흔드는 열정적인 제스처를 통해 발산되는 운동성과 리듬을 각인시킨다. 인물들이 재즈를 들으면서 고개를 까딱이거나 몸으로 리듬을 발산하는 것은 열광적인 흥에 도취되거나 엇갈린 사랑으로 인한 통증이라는 감정과 연관된다. 또 수륙 양용 전차를 타고 시내를 달리는 속도감이 비행기에서 바라본 땅의 이미지와 연결되는 운동의 측면도 놀라움을 안겨준다. 첫 숏에서 도시를 조망하던 카메라는 마지막 신의 비행기 안에서 내려다보는 활주로로 확장되면서 운동의 수평-수직적 도약과 젊은이들의 꿈을 향한 비상을 동시에 드러낸다. 시내를 달리고 강을 건너온 전차와 하늘로 향하는 비행기의 운동이 오롯이 이미지로 남을 때 그들의 열광과 침묵, 미소와 반짝이는 눈동자, 머뭇거림과 결단, 용기와 속삭임이 되살아난다.


베케르는 영화를 거듭 만들수록 삶의 순간을 협소한 공간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마침내 감옥의 구멍 앞에 멈춰 섰다. 후기작의 처연한 슬픔과 고통, 숭고한 실패와 피로함으로 향하던 그의 영화 노정에서 가장 떠들썩한 현재의 순간을 붙잡음으로 인해 불멸에 이른 영화가 <7월의 랑데뷰>라는 생각이 든다.

박인호 영화평론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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