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념> 임흥순 감독과의 대화 지상중계

 

지난 9월 1일, <비념> 상영 후 임흥순 감독과의 시네토크가 이어졌다. 제주 4.3에서 강정에 이르기까지 아름다운 풍경에 가려진 제주의 어두운 모습을 담아낸 임흥순 감독과의 이야기를 여기에 일부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영화 <비념>의 작업은 처음에 어떻게 시작 하게 되었나.

임흥순(영화감독): 단편선의 작품들도 가족의 이야기에서 시작했고, <비념>같은 경우도 저의 가족은 아니지만 김민경 프로듀서의 가족에서 시작되었다. 2009년 3월에 동료 미술작가들과 제주도를 내려갔었는데, 그 때 3일 동안의 일정을 끝내고 김민경 프로듀서와 함께 할머니 댁을 찾아갔다. 역사에 대해 관심이 있었고, 처음에는 제주도의 일제강점기 흔적 같은 것을 찾아볼까 해서 왔는데, 김민경 프로듀서의 할아버지가 4·3 때 돌아가셨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영화를 만들어보면 좋을 것 같다고 얘기가 되었고, 그 해 10월부터 가족들 인터뷰를 시작하게 되었다.

 

김성욱: 영화 시작부에서 전통적인 복장을 하고 두 분이 서있는 장면은 그 이후엔 등장하지 않는데, 어떤 장면인가.

임흥순: 영감놀이라는 제주도의 굿이다. 영감은 일종의 도깨비인데, 심술을 많이 부리고 특히 혼자 사는 과부나 여성들을 괴롭히는 도깨비다. 신의 일종인데, 제주도의 무속에서 신이 형상화된 모습은 그것 하나라고 들었다.

 

김성욱: 제목도 그렇고, 영화에 전체적으로 무속적인 것이 많이 등장한다. 정확하게 ‘비념’이란 어떤 의미인가.

임흥순: 큰 굿은 굿이라고 하고, 작은 굿, 혼자서 하는 굿을 비념이라고 한다. 비념은 개인의 행복해지고 싶은 바람 같은 자그마한 부분을 다룬다. 4·3과 관련해서 어떻게 보면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이나 행복해지고 싶은 바람을 비는 마음이랄까, 그런 의미의 영화다.

 

김성욱: 처음에 나오는 굿도 비념인가.

임흥순: 비념에 가까운 부분이 있다. 처음에 나오는 굿 장면은 강상문 할아버지의 7일장 마지막 날이었다. 6일은 유교식으로 장례를 치렀고, 마지막에는 할머니께서 굿을 원하셨다. 제주도가 전체적으로 남성문화, 중심문화는 유교이고, 여성문화, 주변부 문화는 무속으로 되어있어서, 여성들 안에서는 그런 굿을 해왔던 것이다. 실제로 그런 굿은 찍기가 좀 힘든데, 가족이기 때문에 촬영이 가능했던 부분이 있다.

 

김성욱: 인터뷰 장면들이 특이했다. 사람들의 얼굴이 등장하는 순간도 있지만 많은 경우 등장하지 않거나 굉장히 제한적으로 보인다.

임흥순: 그들의 이야기에 집중하기 위해서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고 싶었고, 보통 얼굴을 보여주는 것과 대비해서 풍경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 부분은 이 전에 외국인 노동자와 작업을 할 때 대상화시키는 부분을 경계하면서 작업했던 것이 남아있는 것 같다.

 

김성욱: 종종 거울에 반사되는 이미지들이나 기울어진 화면의 장면들이 등장한다.

임흥순: 지금의 상황들을 여러 각도에서 봐야할 필요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지금의 한국사회는 좌나 우든, 너무 양분화 되어있다 보니 여러 각도에서 보고 싶은 부분들이 있었다.

 

김성욱: 4·3 행사나 강정 마을에 관한 보도들이 TV화면에서 나오는 장면들이 있다. 당시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느낌도 있고, 미디어가 바라보는 방식을 보여주는 느낌도 있다. 그런 방송화면들은 그 순간들마다 촬영을 한 것인가.

임흥순: 영화에서 제가 한라산을 올라가는 장면이나 눈밭 위를 뛰는 장면 이외에는 모두 연출 없이, 그 때 그때의 상황들을 계속 찍어나간 것이다.

 

김성욱: 눈밭 위를 뛰어가는 장면은 4·3항쟁 당시의 사람들의 느낌을 주는, 재연의 한 일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임흥순: 이 영화 안에서 저의 고민들, 헤매거나 알아가는 과정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 분들의 인터뷰를 듣고 재연을 통해 그 느낌들을 한번 밟아보고 싶었고, 그런 부분이 저로서는 굉장히 중요했다. 신발도 미처 못 신고 한라산으로 도망쳤다든가 하는 것들을 직접 체험해보고 싶었다.

 

김성욱: 전체적으로 어느 정도의 촬영을 진행하셨는지 궁금하다. 영화 안에 4·3에 대한 것과 인터뷰, 강정과 관련한 부분이 등장하는데, 촬영이나 편집 단계에서 영화의 전체적인 구성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셨을 것 같다.

임흥순: 촬영은 2009년부터 올해 4월까지 진행했다. 전체적인 편집을 고려해 촬영했던 건 아니었다. 그래서 사실 초반에 제작지원을 받으려고 해도 정해진 계획이 없었기 때문에 어려웠던 부분이 있었다. 기억이나 장소, 풍경 같은 것들을 넝마꾼처럼 계속 주워 담았는데, 촬영분을 놓고 보니 일본의 할머니 고향이 강정이고 하는 식으로 연결되는 부분들이 있었던 것이다. 편집이 굉장히 어려웠다. 해야 할 얘기, 인터뷰한 분들은 많은데, 다 쓸 수는 없고, 어쨌든 간추리다보니 이렇게 나온 셈이다.

 

김성욱: 기록 필름을 거꾸로 돌리는 장면이 있는데, 어떤 비극적인 순간들을 그러한 방식을 통해서 되돌린다는 느낌이 있다.

임흥순: 오라리 방화사건의 필름이다. 제주 4·3사건과 관련해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필름인데, 사실 조작 편집된 영상이다. 경찰이나 서북청년단이 마을에 불을 지르고선 무장대가 저지른 것처럼 조작되었던 것이다. 어쨌든 평화협상이 한번 일어났었고, 협상을 통해서 잘 마무리되어야 했는데, 그런 상황이 경찰 측에서는 불리했기 때문에 일부러 불을 지른 것이었고, 결국 협상도 결렬됐다. 기록 영상이고 이미 지난 역사이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마음으로 표현한 것이다.

 

김성욱: 그 때는 아마 홍보나 선전적인 차원에서 제작된 것이겠지만, 그 것 안에서 오히려 당시 상황에 대한 비극성이 느껴지는 역설이 있는 것 같다. 그 기록 영상은 어디서 만든 건가.

임흥순: 미군에서 자체적으로 만들어 미군기록보관실에 있었고, 지금은 4·3 평화공원에 보관되어 있다.

 

김성욱: 할아버지 한 분이 집 앞에 서있는 모습이 비스듬하게 찍혀있고, 화면 오른쪽으로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강정 해군기지에 대해 찬성하는 주민들에 대한 얘기를 하는 장면이 있다. 영화의 전체적인 영상들이 4·3과 강정에 있었다면, 그 순간은 마을 사람들의 느낌일 수도 있고, 촬영방식이나, 사람들의 말들, 서계신 분의 느낌도 그렇고 약간 다른 느낌이 있었다.

임흥순: 원래는 화면에 반쯤 숨어있는 곰돌이 인형을 촬영하려고 했는데, 그곳에 사시는 할아버지가 나오신 거고, 그 다음에 올레꾼들이 지나가면서 이야기하던 것이 우연히 담기게 되었다. 그 분들의 이야기가 우리가 바라보는 제주의 풍경을 그대로 얘기해주신 거라고 생각한다. 찬성이든 반대든, 굉장히 남의 이야기처럼 바라보는 상황이 사실은 우리가 제주를 생각하는 것과 비슷한 부분이 있는 것이다.

 

 

관객1: 영화를 보면서 사운드를 유심히 들었다. 감독님의 <숭시>는 <비념>보다 어둡다는 느낌이 있었고, <비념>은 사운드가 더 강렬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단편에서 장편으로 풀어내실 때 유심히 고찰하신 부분이 있는지도 궁금하다.

임흥순: <숭시>는 <비념>을 만들기 전의 작업이고, <숭시>의 영상들은 거의 대부분 <비념>에 들어있다. <숭시>는 4·3과 강정을 놓고 그 이전과 미래에서 바라보는 제주의 어떤 모습을 일종의 징후로서만 풀어낸 것이다. ‘숭시’는 제주도 방언으로 징후를 뜻한다. 어느 4·3 연구자께서 강연을 하면서 끄트머리에 징후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는데, 그 부분이 인상이 깊었다. 이를테면 당시 쥐가 바다그물에서 건져졌다든가, 대나무 꽃이 폈다든가, 대낮에 관음사에 번개가 쳤다고 하는 이야기들이었는데, 사실여부를 떠나 당시의 사회적인 분위기나 사람들의 마음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숭시>는 그런 징후들을 중심으로 풀었던 영화이고, 제가 하고 싶은대로 한 작품이었다면, <비념>은 좀 더 많은 분들이 4·3을 이해할 수 있도록 친절하려고 했고, 감정적인 부분을 좀 더 보여준 부분이 있다. 그래서 음악에서도 굿이나 연극 장면에서의 현장 음악을 많이 썼다.

 

김성욱: 위기가 도래하기 전단계의 징후도 있고, 무언가 끝난 이후의, 이를테면 강정 안에서 4·3을 보는 것 역시 하나의 징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고 4·3 과 강정이 동일한 사건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4·3의 경우, 서로 쉬쉬하거나 말할 수 없음이라는 사태가 있기 때문에, 집단적 공동체성이 괴멸되는 지점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작업이란 그 말할 수 없음을 자꾸 말하게 하는 것이고, 말한다는 것으로 무언가 깨어졌던 것을 연결하는 것도 하나의 작업의 결과라는 생각이 든다. 그 가운데 강정이라는 사건이 들어있기 때문에, 강정이라는 문제는 부분적으로 집단성의 문제도 있는 것 같다.

임흥순: 이 영화의 큰 부분은 공동체의 문제에 있는 것 같다. 일단 제 자신이 저의 가족에 대한 것에서 작업을 시작했던 것도 그렇고, 4·3이나 강정의 문제에서도 공동체 문제가 시작점 일 것 같다. 고유의 공동체가 있는데 거기에 국가폭력이 들어가서 파괴되는 순간인 것이다. 한국은 제주도를 역사적으로 계속 타자화, 주변화 했던 것 같다. 해방이 되었을 때 제주도는 자체적으로 그 공동체 내부에서 좌와 우가 굉장히 잘 어우러져 있었지만, 중앙정부에서는 그것이 두려웠고, 결국 파괴의 시작점이었다. 당시 제주도의 고위관리직이나 경찰들은 대부분 육지에서 온 사람들이었고, 그들은 제주 사람들을 대할 때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그런 기억으로 인해 제주도의 어르신들은 지금도 계속 공동체가 파괴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는 것이다. 이 영화를 만들기 전의 저도 마찬가지였지만, 우리는 제주도를 굉장히 아름다운 자연풍경으로서만 알고 있는데, 사실 그것은 우리가 만든 제주도이지 실제 제주도는 아닐 거란 생각을 했다.

 

관객2: 단편선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내 사랑 지하>와 <잘 가시오>였다. 그 작품들에 대한 배경 설명이 궁금하다. 지하, 분당, 성남, 제주처럼 계속해서 공간성, 공간과 사람에 주목하시는 이유가 궁금하다. 그리고 이전의 작업들은 설치작업용으로 만드셨고, <비념>은 극장에서의 상영을 위해 만드셨는데, 작업의 과정에서 변화가 있다면 어떤 것들인가.

임흥순: 좀 더 영화화되고, 세련되어지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일단 제가 가진 부분은 주변문화에 대한 관심인 것 같다. 회화작업도 “주변인”이라는 타이틀로 작업을 하기도 했고, 중심주의적으로 가는 부분에 대한 반발이나 반감이 커서, 좀 더 주변인, 주변의 역사, 더 넓혀서 지역의 이야기를 해왔던 것 같다. 부모님 두 분이 모두 노동자이시고, 지하에 사셨다. <내 사랑 지하>는 임대아파트로 이사 가는 과정을 찍은 것이고, 기존의 다큐멘터리에서 가족을 얘기할 때의 휴머니즘적인 부분보다는 공간이나 상황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잘 가시오>는 아버지에 대한 작품이다. 한국사회에서 남자로 산다는 게 뭘까를 고민하면서 아버지에 대해 인터뷰를 했었다. 그런데 막상 아버지에게는 별로 얘기나 재미, 뭔가 드라마를 만들어낼 만한 부분이 너무 없었다. 그러다 아버지 세대의 다른 분들을 인터뷰했는데, 그러다보니 베트남 참전이나, 중동근로 같은 이야기들이 나왔고, 일종의 민초, 민중이라고 할 수 있는 그런 분들에 대한 인터뷰 작업을 계속 진행했었다. 민중문화, 주변문화의 사적인 부분을 어떤 식으로든 기록을 하고 싶었다. 그런 문화나 정체성에 대해 보통의 사람들이 어떤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지점이 있지만 계속 무시되어왔다. 하지만 그런 기록을 하는 데에 있어서 그림은 좀 답답한 부분이 있다. 반면 영상에는 사진이나 그림이 주지 못하는, 좀 더 사람들의 마음을 쉽게 움직이게 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전시와 극장 상영에서의 차이라면, 전시는 어떤 이야기를 풀어놓고서, 그 파편들을 보고 관객이 재해석하는 부분이 있고, 그에 비해 영화는 좀 더 친절하게 설명해 줄 수 있고, 어떤 이야기에 대해 좀 더 공감대를 많이 가질 수 있는 것 같다. 극장이라는 공간이 사람들을 붙잡는 것도 있다. 사실 전시 공간은 스윽 지나가면 1분이면 다 보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영화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데에 더 나은 부분이 있다.

 

김성욱: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이 있다면.

임흥순: 말하지 못함, 말할 수 없는 것들, 그리고 말할 수 있는 방법을 모르는 것으로 인해 굉장히 닫혀 있는 부분들이 있다. <비념>도 마찬가지다. <비념>에서 그 시대의 느낌을 이해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은 그때 돌아가셨던 분과 인터뷰 해야한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제가 대신 그 분들의 이야기를 듣기위해 숲과 풍경과 동물들을 동원했다. 어떻게 보면 제가 대중들과 그 분들의 이야기를 이어주는 현대의 무당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해서 그 분들의 말 못할 사연과 고통들을 전달하고 싶었다.

 

정리: 장지혜(관객 에디터) | 사진: 박지연(자원 활동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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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ㅇㅇㅇ 2012.09.10 16: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념 정말 좋았음 제주도가 우리가 알던 제주도가 아닌 것 같은 느낌?

<뽕똘>, <어이그 저 귓것>, <이어도>까지 본격 제주도 영화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오멸 감독이 일본을 오가는 바쁜 일정 중에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았다. 제주도 4.3사건을 배경으로 한 <이어도>는 전작의 유쾌함과는 정 반대로 깊은 무게감을 지닌 영화였다. 같은 주제로 벌써 또 다른 영화 촬영을 끝마쳤다는 그는 제주도의 아름다운 공간들이 아직 4.3사건을 기억하고 있다고 말한다. 다음 작품이 언제나 궁금해지는 오멸 감독과의 <이어도> 상영 후 이어진 2월 ‘작가를 만나다’ 현장의 일부를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최근까지 공연 때문에 일본에 있다가 어제 귀국하셨다. <이어도>는 정말 극장에서 봐야할 영화라는 생각이 들고, 최근에 봤던 어떠한 한국영화보다도 강력한 작품이 아닐까 생각한다. 먼저 마지막에 나오는 건 하나의 노래인지 자막이 뜰 때 잠깐 나왔는데 어떤 노래인지 궁금하다.
오멸(영화감독): 제주도 시인인 고정국 시의 일부분에 박순동이라는 친한 후배가 곡을 붙였다. 가사가 워낙 힘들어서 멜로디만 만들어두고 도저히 곡을 못 붙이겠더란다. 그래서 멜로디를 계속 밤새도록 틀어놓고 읊조리면서 자기 연습실에서 MP3로 곧바로 녹음을 한 거다. 8분이 좀 넘는 곡이다. 그게 원곡인데 앞에 몇 초 정도 간주를 1시간 20분으로 늘렸다.

김성욱: 시는 영상으로 봤을 때는 4.3사건을 다룬 것 같다.
오멸: 맞다. 1948년에서 54년까지, 제주도에서 정확하지는 않은데 약 3만 명에서 많게는 8만 명이 학살되었던 사건을 배경으로 쓴 시다.

김성욱: 영화전체의 느낌과 이미지는 시와 노래에서 대부분 착상된 건가?
오멸: 아니다. 원래 시나리오를 먼저 쓰고 영화 찍기를 준비하던 중 이 음악을 듣게 되었다. 원래 저런 형식의 영화를 하고 싶었는데 음악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일본가는 배에서 듣다가 뜬눈으로 밤을 새게 되었다. 그때 썼던 시나리오를 이 음악이 싹 가져가버리는 느낌을 받았다. 오히려 영화처럼 선명한 영상들이 스쳐가서 이 음악 자체가 영화이지 않을까 생각을 했고, 모든 다른 계획을 포기하고 이 음악 하나만 사운드로 써야지 하고 작업 했다.

김성욱: 최근에 촬영을 다 마친 영화도 4.3사건이 주제다. 제주도에서 태어나고 자라셨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더 각별할 거라고는 생각이 든다. 감독님에게 있어서 4.3은 어떤 의미인지.
오멸: 솔직히 대학 때까지 4.3이 그렇게 큰 사건인지 몰랐다. 워낙에 쉬쉬했던 일이라서 부모님께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제주도에서 페스티발을 한 8년 정도 운영하며 가는 데마다 마을 주민들한테 4.3 관련한 얘기를 듣게 되는 거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국제공항 활주로에서도 아직 시신 발굴이 안 되어 있다. 많이 아시는 전방폭포도 그렇고.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경이라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곳들이 많은 분들의 피가 뿌려졌던 곳이라는 걸 조금씩 알게 되었다. 그러다가 작품을 준비하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공간은 기억하고 있지 않을까. (침묵) 갑자기 기분이 이상해져서.. 이 이야기만 하려면 계속 가슴이 답답해진다. 오름이 구름으로 덮이는 장면이 있는데, CG를 쓴 게 아니다. 군인헬멧을 조연출이 안 가져와서 2시간 거리에 다녀와야 했다. 촬영이 미뤄지다가, 두 번째 테이크에 갑자기 순식간에 구름이 하늘을 다 덮었다. 그 순간, 바람도 구름도 햇빛도 억새, 모든 것들이 우리가 찍는 걸 기다렸다는 느낌을 받았다. 4.3과 관련된 작품을 또 하고 있는데, 4.3 영혼들이 있다면 공간, 자연, 바람들이 기억했다가 우리와 만나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김성욱: 아이를 보여주는 장면이 한 컷도 없었던 것 같다. 혹시나 아이도 죽은 게 아닐까, 엄마가 인식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했는데, 후반부에 군인이 등장한 후 아이는 사라진다. 마지막 장면을 염두에 두고 아이를 보여주지 않은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오멸: 우선은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면 실제 아이를 감히 쓸 수가 없었다. 촬영하는 내내 선생님이 얘기하신 것처럼 아이는 살아있는 대상일까 죽어있는 대상일까, 있나 없나, 여러 가지 고민을 했다. 그런데 보여준다, 안 보여준다를 떠나서 누군가는 허술하다 볼 수 있겠지만 누군가는 또 자신을 바라보는 게 아닐까 라는 얘기도 한다. 실제로 엄마는 서로를 마주보는 포즈로 아이를 바라본다. 그래서 아이는 거울일 수도 있다. 찍으면서 나름대로 아이한테 이어도라고 이름 붙였다. 희망의 공간인 거다. 그런데 실제 아이가 있다면 제주도 사람들한테는 희망이었으니까.

김성욱: 단순하게 자연을 찍었다는 느낌을 초과하는 느낌이 있었다. 일반적으로는 볼 수 없겠다는 몇몇 장면이 있는데 물질을 하기 위해 들어가는 발자국이 있고, 들어가고 나서 순간적으로 커트가 되고 나서, 뭔가를 끌고 나오는 자국이 선명하게 남고 여인은 화면에서 사라지고, 그 이후에도 카메라는 여전히 보여준다. 말씀하신대로 하면 풍경 안에서 남겨져있는 흔적을 담아내려는 느낌이 있어서, 그런 장면이 있었던 것 같다. 한편, 여인이 항아리에서 뱀인지, 구렁인지를 빼서 던지는 순간이 있다. 뒤에 이어지는 것으로 보면 앞으로 있을 위험이나 불안이 강화되는 느낌이 있었다.
오멸: 우리나라 시골 정서는 그러지 않을까 하는데, 제주도에서는 한 집 당 한 마리의 구렁이가 산다고 했다. 집 뱀이라고 집을 지키는 구렁이이다. 그런데 어린 엄마는 삶의 무게를 이제야 체험하고 있다. 우리도 아직 뱀을 경계의 대상으로 알고 있지 않나. 할머니들은 품고, 그냥 둔다. 아직 미숙한 어린 엄마가 대처하는 방안은 뱀을 몰아내는 것이다. 집을 지킨다는 개념의 구렁이가 물독에 빠져 죽어있는 건 전체에 대한 암시로 작업했다. 그리고 그 시대에 집 안에 제일 가까이에 있는 동물이라 생각했다.

관객1: 제주도에 최근에 다녀온 느낌과 겹쳤는지 모르겠는데 전체적으로 계속 영화가 흔들리는 것에서 배를 타고 뭔가를 바라본다는 느낌을 받았다. 제주도민의 시선이라기 보단 타지의 시선이라고 느껴지는 게 있었다.
오멸: 장면 하나하나 어떻게 앵글을 잡을지 초반에 고민했을 때, 사진 찍듯 하려고 했다. 그렇게 마음을 먹게 된 건 카메라가 5Dmark2였기 때문이다. 사진기로 찍는데 영화처럼 액션을 화려하게 하기보단 사진처럼 앵글을 잡아보자, 했던 거다. 그런데 조금 흔들리면 배처럼 그런 무빙이 생긴다. 그걸 의도해서 만든 건 아닌데 카메라감독이 이 공간 안에서 유일하게 존재감을 줄 수 있는 사람이었고, 핸드헬드로 작업하면서 바라보는 사람의 호흡을 주었다고 생각을 했다. 처음엔 장비가 부족해서 무게중심을 못 맞췄다. 그러다보니 초반에 다른 때보다 움직임이 과하다.


관객2: 흑백으로 찍은 이유와 대사가 하나도 없는 이유가 궁금하고, 해녀 물질하러 가기 전에 우뚝 서있는 장면은 어떻게 이해해야하는가.
오멸: 해녀의 그 모습은 어떻게 보면 제주도가 갖고 있는 이미지 중에 불편한 모습이다. 예전에 선데이 서울 이런 잡지들을 보면 해녀들이 저런 포즈로 달력에 있는 사진이 있었다. 제주도 해녀의 모습을 비하하려고 한 게 아니라, 영이라는 친구를 바라볼 때 어떤 때는 비참해 보이는 장면에서부터, 그 장면에선 달력사진처럼 작업을 해서 해녀의 고단한 삶을 다른 눈으로 보는 모습으로 표현을 하려 했다. 그리고 흑백은 40년대 누군가 영화를 만들었다면 당연히 여건상 흑백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더 솔직한 답변은 칼라로 시대극을 찍으면 감당이 안 되는 부분이 많다. 그리고 전공이 한국화여서 흑백이 갖고 있는 색의 깊이는 무한하다고 알고 있다. 소리 역시 눈으로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작업한다. 바람소리와 음악소리에 영이가 하고 싶은 말이 묻어나고 있다고 생각을 했다. 영이가 우는 장면이 있다. 편집하는데 계속 누군가가 우는 소리가 들린다고 그러더라. 개인적으로는 소리가 없어서 불편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마지막 8분으로 가는 과정의 다리라고 치면 말을 많이 아낌으로써 8분의 가사에 힘을 더 실어주기로 했다.

관객3: 정확히 기억이 안 나는데 중간에 2~3초 정도 암전이 있었던 걸로 기억이 된다. 특별한 의미가 있나.
오멸: 여자와 군인이 만나는 첫 장면, 그 순간의 통증이 지금 살아오고 있는 시점까지 지속이 되고 있기 때문에 만남의 순간을 돌아보면 체험했던 분들에겐 숨이 끊길 것 같은 지점이 아닐까. 그래서 유일하게 그 지점만은 암전을 주었고, 소리를 끊고 정적을 주어서 시작점에 대한 개념으로 작업했다.

김성욱: 영화에서 아이가 하나의 이어도라고 하면, 보이지 않으니 부재하는 느낌도 있다. 그런데 마지막에 이르면 정말로 부재하거나 사라지게 되거나 빼앗기게 되는데, 다른 한편으로 보면 부재하는 남편의 느낌이 상대적으로 적게 표현이 되고, 학살의 느낌이 아이에게 더 집중이 되는 듯한 느낌이 있다. 결과적으로 보면 아이와 남편을 다 잃게 되는 상황이지 않나. 전자의 경우가 상대적으로 좀 더 약화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부분의 설정이 있었을 것 같다. 영화의 마지막에 군인이 여인의 시점에서 굉장히 분명하게 보여 지고 있는데, 그 부분도 어떻게 할지도 고민을 하셨을 것 같다.
오멸: 군인이 나오는 장면들도 이야기에서 보면 부담이 되는 상황인데, 이 역시 일상에 들어오는 순간으로 맞이하자고 했다. 이 작업을 대하는 태도는 뭐였냐면 드라마로 이야기로 전달을 해 주는 게 아니라 이미지가 중첩 되서 드라마가 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그래서 드라마의 줄기를 강화시킨다기보다 이미지의 중첩을 주면서 드라마를 찾을 수 있는 방법, 그쪽으로 고민을 많이 했다. 이미지가 주는 힘은 시간을 초월하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드라마에 대해서 설명이 모호하거나 굳이 제가 설명하려고 애쓰지 않았던 부분도 있고 이미지 안에서 유추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군인에 대한 건 솔직히 돈 있으면 뒤에 아주 SF로 하고 싶었다. (웃음) 영화의 끝 지점을 ‘왜 이 긴 시간 동안 참아왔는데 이게 나타나지’ 이렇게 표현하고 싶었다. 또 뒤에 가사가 있으면 좋겠다, 없으면 좋겠다, 말이 많았다. 선명하게 얘기하자, 끝 지점에 오면 명쾌하게 밝히는 게 좋지 않겠나 싶어서 그렇게 작업했다.


김성욱: 마지막으로 최근에 촬영을 끝낸 4.3사건 관련 작품 제목이 특이하다.
오멸: 가제가 <꿀꿀꿀>이다. 가제여서 제목이 바뀔지 어떨지 모르겠는데 왜 돼지우는소리냐 하도 많이 들었다. (웃음) 동양철학에 보면 십이지신에 용은 십이지신의 다른 동물들의 형체를 가진 동물이고, 돼지는 다른 동물의 기운을 흐르게 하는 동물이라 한다. 조지오웰 보면 돼지가 대장으로 나오는데 그만큼 영리한 동물이다. 그런데 그 기운을 이제 용한테 뺏겨서 바보가 됐다는 이야기가 있다. 돼지가 울 때 평소에 꿀꿀꿀 하며 울지만, 죽을 때는 돼지 멱따는 소리라고 표현하지 않나. 그런데 그 울음소리가 다른 여러 가지 동물의 울음을 섞은 소리라고 한다. 다른 동물들의 고통을 합친 소리이다. 이게 제주도민들의 울음소리이다. 어감으로는 밝아 보이지만, 응어리진 가슴에 대한 이야기를 말 못하고 살아왔다. 그 응어리진 울음을 <꿀꿀꿀>이라고 가제를 붙여 놨다. 내가 살아온 이야기들, 느낀 것들에 다가서려고 하다보니까 제주도라는 섬을 많이 다루게 된다. 제주도를 바라보실 때 관광지로 많이 바라보시긴 하는데, 요즘 강정도 그렇고 여전히 통증이 있는 섬이니까 다른 시선으로 보아주셨으면 한다. 여행자의 눈으로 와주시면 좋겠다. 여행자는 삶에 대한 관심이 많은 눈으로 걸어 다니니까. 제주도를 다른 눈으로, 애정 있는 눈으로 봐주시면 감사하겠다.

정리: 김휴리(관객 에디터) | 사진: 최용혁(자원 활동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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