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토크] 장건재 감독의 ‘회오리바람’

‘한국영화, 새로운 작가 전략’ 기획전이 거의 끝나갈 무렵인 지난 4월 3일 이른 오후에 자신의 경험담이 잘 녹아 있는 청춘영화 <회오리바람>의 상영 후 이 영화를 연출한 장건재 감독과의 대화가 이어졌다. 시나리오 쓸 때의 고민부터 제작과정상의 여러 가지 체험, 감정들을 진솔하게 들려준 소중한 자리였다. 그 시네토크 현장의 일부를 여기에 옮긴다.


허남웅(서울 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영화를 보면서 시나리오가 정교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시나리오는 어떻게 썼나?
장건재(영화감독): 일단 한 커플이 여행을 가고, 여행에서 돌아와 여자의 아버지에게 혼나는 이야기를 담은 시나리오를 오래도록 품고 있었다. <회오리바람> 전에 중학생이 주인공인 시나리오를 쓰고 있었는데(원작소설이 있는), 그 작업이 잘 풀리지 않아서 다른 것을 찾다가 <회오리바람>의 원형 격이 되는 시나리오를 다시 꺼내 한 달 정도 재작업을 했다. 제가 일반화 할 순 없지만 팍팍한 현실에서 떠나고, 해갈의 기쁨과 자유로움을 느끼는 것이 대개 영화들의 감정선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난 오히려 그러한 해갈과 자유, 이후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시나리오엔 개인적인 경험담도 많이 넣었다. 중국집 배달일 같은 경우 내가 가장 오래 했던 일이다. 가장 애착을 가지고 했던 일이기도 하고. 18년 전 그 때 지금보다 돈도 잘 벌었다. 그래서 배달묘사 씬에 애착을 가지고 있다. 십대면 피자배달이 더 자연스럽지 않겠나하고 스태프들의 질문도 받았었는데 내 생각엔 직업을 묘사할 때는 경험해보지 않으면 피상적인 묘사밖에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여튼 시나리오 작업은 이 영화 할 때 어떻게 끝낼까에 고민을 많이 했다. 태훈이가 학교에 다시 끌려가서 맞고 수업을 다시 받은 씬도 내가 직접 경험했던 것인데 태훈이가 방에 들어오면 선생님이 방에 있는데 스태프들이 선생님이 어떻게 들어온거냐 하고 물었다. 나도 사실 그 때 선생님이 어떻게 들어 온지 모르겠다. 그냥 방에 계셨었다. (웃음) 그렇게 학교에 가서 선생님께 20분정도 맞고 교실로 가기 싫어서 학교 뒷담을 넘고 산에 올라갔을 때, 이 산을 다시 내려가면 사막 같은 허허벌판을 만나겠다는 감정을 느꼈다. 이 영화의 마지막이 그런 감정으로 끝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마지막 엔딩 씬을 썼던 기억이 난다.

허남웅:
사실은 첫 번째 장면도 그렇고 마지막 장면도 그렇고 굉장히 태훈이나 미정이 어느 한쪽으로도 쏠리지 않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오토바이를 몰고 가는 첫 장면이 목적지는 없지만 계속해서 나아가는 청춘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미정이가 태훈이 힘들게 번 월급으로 산 목걸이를 달고 잇는 장면들도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의 이미지를 어떻게 생각하고 그려낸 것인가?
장건재: 원래 오프닝의 주유소 씬과 체육관 씬은 시나리오상 엔딩에 해당되는 에필로그 씬이였고 실제적인 완전 엔딩에 해당하는 장면이 원래는 오프닝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찍었는데 나중에는 영화의 에필로그가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에 올라갔을 때 이미 감정적으로 끝났는데 미정의 3개월 후, 태훈의 3개월 후의 이야기들을 추가로 담는 것이 뭔가 나를 망설이게 했다. 너무 결론 내어지는 것은 아닐까하고. 그래서 첫 오프닝의 주유소 씬은 삭제하려고 몇 번 시도를 했었다. 근데 어느 순간 태훈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미정의 이야기로 닫히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되서 영화전체가 플래시백이 되는데 그것이 어른이 되서 과거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고 기껏해야 고3정도가 되서 지난겨울을 회상하는 구조로 만들었다. 그리고 시나리오 상에서는 오토바이 씬에 내레이션이 있었다. 고3이 된 태훈의 입장을 설명하는 것인데 그것도 너무 규정짓는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배우들이 그 장면을 찍을 당시가 실제로 그들의 마지막 촬영이였는데, 그 친구들이 영화를 찍으면서 점점 사랑하고 헤어지고 하는 느낌을 정말로 아는 듯한 눈빛을 발견했다. 그래서 그 얼굴만 잘 담아낼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허남웅:
사실 청춘영화라면 약간은 경쾌한 것을 떠올리기 쉬운데 이 작품은 굉장히 잠잠하다. 청춘영화가 가진 클리셰들을 피해보고 싶은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닌가?
장건재: 청춘영화의 클리셰는 크게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폭발할 것 같은 에너지로 세상을 부수려고 하는 청춘을 담고 있는 영화와 정말 현실에 무기력하기 짝이 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만약에 입장에서 본다면 이 영화도 그것들에 자유롭지 못하다. 영화의 스타일을 정해 놓고 찍지는 않았다. 배우의 감정을 담아내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촬영했다. 그리고 어떠한 영화처럼 보이고 싶다던가, 어떤 영화의 감성을 흉내 내고 싶다던가하는 의도를 내비치지 않았다. 물론 레퍼런스로 삼은 영화들이 있었지만 그것이 극적으로 표현되진 않았다. 십대들이 나온 영화들을 워낙 좋아해서 영화 곳곳에 내 스스로가 알지 못하는 카피들이 있는 것 같다. 아마 영화 좋아하시는 시네필들은 눈치 채실 수도 있다.

허남웅: 참조로 삼은 영화들은 어떤 것인가?
장건재: 이거 영업비밀인데. (웃음) 말하면 순간 자유롭지 못하긴 하지만 기타노 다케시의 <그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는 강렬한 스토리가 없어도 감성을 전달할 수 있다는 확신을 준 영화였고, 차이밍량의 데뷔작인 <청소년 나타>라는 영화에서 공간성 같은 것들은 참조했다. 스타일적으로 그 영화가 준 감동을 표현하고 싶었다. 또 잘 생각나지 않지만 많은 영화들을 참조했다.

관객1: 목욕탕 갔다 와서 라면을 끓이는 장면이 인상 깊었는데 어떤 뜻으로 넣은 장면인지 듣고 싶다.
장건재: 고맙다. 목욕탕 갔다 와서 라면 끓이는 장면은 시나리오를 쓸 때 가장 머릿속에 선명하게 떠오르는 장면이었다. 현장에서 그 장면을 찍을 때 너무 기분이 좋았다. 데자뷰처럼 생각했던 이미지와 너무 똑같은 그림과 느낌이 나와서. 중학교 때 학교를 잘 다녔는데 고등학교 때는 학교를 생각나면 갔었다. 한번 빠지는 게 어렵지 두 번째부터는 쉬운 일이였다. 그때부터 십대가 어지럽게 펼쳐졌다. 어쨌든, 학교에 빠졌던 오전 10시, 11시 정도에 동네를 어슬렁 배회했는데 전에 한 십년 전에는 본적 없었던 풍경을 보았다. 남편 회사 보내고 골목에 나온 아주머니들, 할머니들, 옥탑방에서 빨래를 너는 사람들, 유치원 가는 아이들, 그 시간대에 동네에 재잘거리는 소음 등 이런 것들이 너무 강렬했다. 내가 못 봤던 풍경인 이유는 전에는 그 시간대에 학교에 있었기 때문이다. 근데 그 시간대의 정서와 공기가 여전히 내겐 너무 강렬하게 남아 있다. 물론 라면 끓이는 장면은 실외장면은 아니지만 그 시간대에 밖에서 들리는 소음들, 낮 시간대의 텅 빈집의 고요함, 혼자 남겨져 빈둥거리는 컷을 꼭잡아내고 싶었다. 롱테이크에 대한 욕심보다 그 느낌을 전달하고 싶었다.


관객2: 감독의 청춘시절 경험이 담긴 영화이다. 본인에게 청춘이란 무엇이고, 그 때 자신에게 돌아간다면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은지.
장건재: 청춘 시절을 낭만적인 느낌으로 접근하기 보단, 제 어린 시절을 반추하는 정도였고, 그때로 돌아가면 절대로 영화를 하지 않을 것이다. 극장에 다니지 말라는 조언을 해주고 싶다. 영화를 하는 게 재밌지만 지금 나는 너무 고통스럽고 힘들다. 지금이라도 나에게 다른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내일이라도 당장 영화 일을 그만둘 수 있다. 진심으로.
(정리: 배준영 시네마테크 관객 에디터)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댓글을 달아 주세요

'한국영화, 새로운 작가 전략' 기획전에 맞춰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는 이번에 상영하는 데뷔작들을 만든 감독님들과 함께하는 두 차례의 포럼을 마련했다. 그 두 번째 자리가 지난 3월 27일 오후에 ‘지속 가능한 영화 제작에의 질문’을 주제로 열렸다. 최근 2년 사이 동안 데뷔작을 선보인 김기훈, 박진성, 백승화, 신수원, 장건재, 오영두, 홍영근 감독 등 8명의 작가들이 패널로 참여하고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의 진행으로 열린 이날 포럼에서는 데뷔작을 선보인 이후 다음 영화, 또 그 다음 영화를 지속적으로 만들기 위한 이들의 고민과 전략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 현장의 일부를 여기에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이번에 ‘한국영화, 새로운 작가 전략’이라는 타이틀과 연동하여 두 차례의 포럼을 마련했는데 ‘지속 가능한 영화 제작에의 질문’이라는 주제로 8명의 작가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겠다. 데뷔작으로 극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새로운 방식의 기획, 혹은 새로운 방식의 작가 전략을 고민하는 것이다. 이는 서로 다른 생각과 고민을 갖고 있는 개별적인 작가들의 영화가 어떤 특정한 시기에 모여 하나의 연대비행을 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도 갖고 있다. 오늘 이 자리에서는 데뷔작을 만들며 어떤 환경 속에서 어떤 영화에 대한 기획들을 하게 됐는지, 그리고 앞으로의 작업을 지속해 나가기 위한 자구책은 어떤 것들인가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박진성(영화감독): 관객으로서 원래 장르영화, 그 중에서도 공포영화를 굉장히 좋아한다. 개봉된 웬만한 공포영화는 모두 보는 편이고, 그게 즐겁다. <마녀의 관>에는 인형극 이야기가 나오는데, 제가 아주 어렸을 때 TV에서 일본에서 하는 분라쿠라는 인형극을 보고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 인형을 조종하는 사람들을 가리려는 어떠한 시도도 없이 오히려 그것을 즐거운 경험의 일부로 활용하는 것이 무척 놀라웠다. 그런 기억과 함께 어렸을 때 읽었던 <마녀의 관>이라는 작품이 결합되어 이런 영화가 나오지 않았나 싶다. 1억 미만의 예산에 비해 효과가 볼만하게 나왔다면 다행이지만, 여러 가지로 요령이나 눈속임 같은 것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던 것 같다.

김성욱
: 또 다른 공포영화인 <이웃집 좀비>의 경우 특이하게도 집단창작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집단을 구성되게 된 과정은 어떤가? 
오영두(영화감독): 사실 창작집단이라기 보다는 영화를 만들고 나니 이름이 필요했는데, 제 아내가 망고스틴을 좋아해서 그냥 그 앞에 키노만 붙여서 키노 망고스틴을 만든 것이다. (웃음) 일단 저와 장윤정 씨는 부부사이고, 홍영근 씨는 군대에서 만나게 되어 쭉 같이 지내다가 작업을 하게 되었다. 류훈 씨는 <텔 미 썸딩>이라는 영화를 할 때 처음 만났는데 뒤에 다시 만나서 같이 작업을 하게 되었다. 처음부터 의기투합해서 뭔가를 해보자고 한 것은 전혀 아니고, 그 시기에 다들 일이 없어서 집에 있다가 만들게 된 경우라서 크게 계산을 했던 부분은 없다. 저희는 정기적으로 모여서 뭔가 한다거나 하지도 않고, 캐주얼하고 심각하지 않은 관계다. 옴니버스 형식 역시 처음부터 그런 기획을 했던 것이 아니라, 류훈 씨와 시나리오 작업을 하다 투자가 잘 되지 않아서 집에서 간단하게 단편을 찍되 그것을 한 대여섯 편 묶으면 개봉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막상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아이디어들이 굉장히 많이 나왔다. 그 중에서 좀비 아이디어를 채택하게 된 것이다.
홍영근(영화감독): 정말 영화를 좋아하기 때문에 같이 모여서 노는 식구들이 영화 한 번 만들어 보자고 시작한 것이다. 참여하고 싶으면 적극적으로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고, 아이디어도 공유하고, 언제든지 개인적으로 다른 영화를 준비하면 도와줄 수도 있고. 일종의 품앗이 같은 개념이다.

김성욱
: 김기훈 감독의 경우에는 <이파네마 소년> 이전에 다큐멘터리나 실험적인 영화들을 만들었다. 그런데 첫 번째 장편 데뷔작은, 완전히 장르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일종의 청춘 로맨스물이다.
김기훈(영화감독): 개인적으로 영화 마니아로 감독의 영감이나 동기를 받은 것이 아니라 영화가 갖고 있는 종합 예술이라는 매체적인 특성 때문에 영화를 좋아하게 되었고, 공부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기존에 있는 장르나 관습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내가 매체 안에서 표현할 수 있는 부분들을 포괄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계속 영화 작업을 하고 관객들을 만나면서, 관객들은 역시 영화를 장르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영화 장르나 관습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렇게 고민하다가 시나리오를 쓰게 된 것이 스릴러 작품이었다. 그런데 1년 정도 시나리오를 쓰다 보니 너무 지겨웠다. 칙칙한 스릴러의 서스펜스만 생각하다보니 더 늙기 전에 샤방샤방한 멜로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성욱: 조금 경우가 다르기는 하지만 장건재 감독의 <회오리 바람>도 일종의 청춘물이다. 청춘영화라는 특정한 카테고리의 영화를 만든다는 생각이 강했을 것 같은데.
장건재(영화감독): 사실은 전에 준비하던 시나리오도 일종의 성장물이었다. 그리고 이 영화를 준비하기 전에는 소설을 각색해보고 있었는데 잘 풀리지 않았다. 그 와중에 원래 제가 갖고 있었던 <회오리바람>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중편 규모의 시나리오를 버전 업 시켜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고등학생들의 이야기, 그리고 개인적 체험이 아주 많이 반영된 이야기인데 기본적으로 관심이 있었던 형태의 이야기였다. 수많은 데뷔작들이 감독 스스로의 어린 시절이나 청춘기를 그리는데 그런 영화들을 개인적으로 좋아했다. 작은 규모로 자신의 이야기를 첫 장편으로 만들면 스스로 어떤 면에서 충족이 될 것 같은 생각이 있었다. 사실 <회오리바람>은 처음 생각했던 것 보다는 제법 꼴이 갖추어진 영화로 나온 편이다. 사실 기획을 할 때는 <이웃집 좀비> 감독님들께서 말씀하셨듯이 주어진 조건에서 찍을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했다.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계절감 같은 것들을 염두에 두었고, 시나리오와 제작까지 오랫동안 준비를 하는 방식이라기보다는 쓰고 바로 찍을 수 있는 방식으로 만들어보자는 게 최초의 기획이었다.

김성욱
: 신수원 감독님의 <레인보우> 역시 자전적인 요소가 강한데, 동시에 음악이 부분적으로 매개되어있고 영화를 만든다는 자각이 포함되어 있다. 전체적인 장편 극영화로 맞춰나가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은데.
신수원(영화감독): 34살에 영상원에 들어갔으니 굉장히 늦게 영화를 시작한 편이고, 그 이후로 충무로 생활을 오랫동안 했다. <레인보우>는 제작방식이 독립영화이긴 하지만 영화 자체는 상업영화 같다는 이야기도 동시에 듣고 있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인 것 같은데 저는 애초에 영화사에서 작가로 영화를 시작했다. 그러다가 시나리오가 투자사에 팔리면서 감독 명함이 두 번 정도 생겼었다. 2006년에 충무로에 붐이 일면서 많은 영화들이 제작될 때 제 영화도 들어가게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안 되었다. 그 이후에 바로 거의 쓰나미처럼 신인 감독들이 데뷔하기 힘든 상황이 왔는데, 써두었던 고등학생 밴드에 대한 시나리오를 들고 그나마 돈이 있다고 소문이 난 영화사로 갔다. 재미있게 보셔서 일단 계약을 하고 다시 감독으로 준비를 하게 되었는데 그 영화사 역시 상황이 안 좋아졌고 결국 다른 데 가서 그 시나리오로 만들어보겠다고 하고 1년 후에 그곳을 나왔다. 그런데 나와 보니 제가 있었던 영화사는 거의 섬 같은 공간이었다. 다른 영화사들이 줄줄이 문을 닫는 가운데 감독들에게 월급까지 줬다. 그런 상황을 전혀 몰랐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다시 돌아갈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1년 정도 그 시나리오를 혼자 다시 고쳤다. 당시가 막 2009년이 된 시기였는데, 올해 안에 영화를 찍겠다고 스스로 마지노선을 정한 거다. 그렇게 시작했고 작업을 준비하면서는 그냥 자유롭게 열어두었다. 그리고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내 이야기를 써보자는 생각을 했다. 첫 번째 작품을 하면서 생긴 한 가지 원칙은 의미 없이 수정하지는 않겠다는 거다. 앞으로 상업영화를 찍고 싶은 생각도 있고 독립영화를 찍고 싶은 생각도 있지만 어떻게 되든 스스로의 기준이 생긴 것 같다.

김성욱
: 또 다른 음악영화인 <반드시 크게 들을 것>의 백승화 감독은 원래 음악을 하시는 분으로서 음악 다큐작업을 했는데 어떻게 작업을 시작하게 되신 건지.
백승화(영화감독, 뮤지션): 저는 하는 일이 두 개인데 영화랑 음악이다. 취미도 두 개인데 영화랑 음악이다. 그냥 자연스럽게 음악 다큐를 찍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음악을 하니까, 좋아하고 몸담고 있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또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음악 다큐나 음악 영화에 만족하지 못하고 목마른 부분이 있었다. 다 별로 재미가 없었다. 그런 이야기를 한 번쯤 해보고 싶어서 시작한 것 같다. 저는 인터뷰 할 때마다 스스로 근본이 없는 놈이라고 이야기 한다. 영화를 전공한 것도 아니고 음악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좋아서 하는 것들이기 때문에 오히려 크게 부담을 가지고 만들지 않았다. 꼭 개봉을 해서 보여줘야겠다는 생각도 없었고 만들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었다. 음악과 영화가 다른 점이, 음악은 사실 적은 돈으로 혼자서도 할 수 있지만 영화는 큰돈이 드는 작업이다. 누군가 투자를 해주고 그걸로 작업을 하는 경우라면 그냥 즐기는 걸 넘어서서 더 잘할 수 있는 걸 찾아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 경우에는 음악 다큐가 잘할 수 있는 것이었고, 음악 영화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다음 영화로 음악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잘할 수 있는 것 먼저 해보려고 준비하고 있다.

김성욱: 신수원 감독님의 표현대로 요즘의 상황은 데뷔 감독들에게 엄청난 쓰나미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이전보다 장편 데뷔를 한다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상황인데, 결과적으로만 보자면 여기 계신 분들은 그래도 장편 데뷔를 했으니 어떤 의미에서는 선택된 위치에 올랐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사실은 그 자리가 갖는 어려움도 있을테고, 동시에 어떤 제도 안에 들어간 것으로 그것이 작동하는 틀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될 것 같다. 관객들과 만날 때는 또 다른 고민이나 느낌들이 있었을 것 같은데.
장건재: <회오리바람>을 기획하고 민들 때는 이 영화를 시장에 소개하자는 생각이 더 컸다. 그래서 이 영화가 만들어지고 나서 영화제들로 유통되는 것에 대해서는 사실 조금 의아하게 생각했었다. 그래서 프리 프로덕션 때나 시나리오를 쓸 때, 회의 할 때도 손익분기점을 넘긴 비슷한 규모의 영화 몇 편을 롤 모델로 삼고, 그런 영화에 참여했던 분들께 이런 저런 고민을 하며 전략을 짜보았다. 사실 영화제로 너무 유통이 되면 어떤 아트하우스용 영화처럼 비쳐지게 될 것 같았고, 저는 그것을 그리 원하지 않았다. 관객들과 만나고 싶다는 강한 욕망이 있었다. 영화가 완성된 후 이야기를 하자면 마케팅과 배급이 이루어지는 과정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부분이었다. 그래서 독립영화의 장점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던 부분인데, 직접 제작과 연출을 했기 때문에 이 영화가 극장까지 가는 과정을 볼 수 있겠구나, 하는 공부하는 자세가 있었다. 고민스런 부분은 배급이다. 당시에 멀티플렉스들의 상영 시설이 디지털 영사 시스템으로 바뀌는 시기였기 때문에 파일로 배급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배급 비용을 조금 줄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했지만 그렇지도 않더라. 또, 이전에는 독립영화 편수가 지금보다는 적어서 독립영화 전용관 같은 공간에서 관객들과 조금 더 지속적으로 만날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마저도 어렵다. 10개관에서 10명씩 보는 것 보다는 1개관에서 100명의 관객과 만나는 것이 조금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오영두
: 개봉관이 8, 10, 15개관 되더라도 교차상영 시스템 자체의 문제가 심각하다. 저는 이번에도 영화를 하나 찍었는데, 장건재 감독님 말씀대로 단관이나 한두 개 상영관을 쭉 가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교차상영을 하게 되면 특정 시간에 맞춰 특정 극장에 가야 하는데, 그보다는 차라리 어느 극장에 가면 그 영화는 볼 수 있는 것이 훨씬 낫다. 계속 상영해줄 수 있는 환경이 더 필요한 것 같다. 또 지금 상업영화도 그렇지만, 마케팅비의 개념 자체가 과거와 너무 달라졌다. 전에는 사람들이 영화를 찾아서 보지 않았나. 하지만 지금은 길을 걷거나, 집에서 TV를 보거나, 극장에 가면 또 다른 영화들의 광고를 볼 수 있다. 그것 자체가 다 돈인데 그렇게 광고를 뿌리는 영화들이 굉장히 많기 때문에 반대로 그럴 수 없는 영화들은 다 묻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관객들은 더 이상 영화를 찾아서 봐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되고, 소위 자본의 논리로 조금 더 가게 되는 현상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 상황 자체를 우리가 바꿀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작은 영화들의 꼭 개봉관이 아니어도 100인치, 200인치짜리 스크린을 놓고서라도 지속적으로 상영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본다. 또한 국가의 공적지원이 필요한 것 같다.
박진성: 말씀하신대로 촬영하고 개봉 준비할 때까지는 사실 그것만 목표로 삼고 달려오다가, 막상 <마녀의 관>처럼 전국 2개관 개봉, 전국 관객 수 500명, 이렇게 되면 이게 괜찮은 건가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그런데 제가 고민이 너무 부족했던 것 같다. 지속 가능한 영화 제작이라는 것의 단초가 도대체 뭔지 모르겠다. 나라에서 더 많은 지원을 해줘서 해결이 되는 문제인지조차 사실은 자신이 없다. 정부 지원이 많아지면 어떤 부분에서는 기초가 잘못 되어서 극단적으로는 부패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사실 더 많은 지원이 주어져서 제가 혜택을 보면 좋겠다는 속마음도 있지만, 원칙적으로 생각하면 그게 해답이 될까 하는 의구심이 생긴다.
김기훈: 앞선 감독님들 말씀에 많이 공감했다. 저 혼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역시 다들 비슷한 고민들을 하면서 영화를 시작하고 만들었구나 싶다. 자연스럽게 배급의 문제로 고민들이 귀착되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우리가 감독으로서 포괄적인 전체 시스템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게 버거운 일이기는 하지만, 지금의 선순환 구조로는 지속 가능한 영화 제작이 사실상 힘들 것 같다. 데뷔작을 만들면서 체험적으로 느낀 부분이고, 어떤 것이든 간에 한국영화에 지금 상당한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보다 저예산영화나 독립영화를 배급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지고, 그 영화들 끼리 더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극장개봉에 모든 수익을 의존해야 하는 것 자체에도 문제가 있다. 창작자들의 고민을 대변해줄 어떠한 조합이나 단체도 없다는 것도 문제다. 지금 시스템이 계속 유지된다면 어떤 결단을 해야 할 것 같다. 시스템 안에서 그냥 그런 영화를 만들든지, 자신의 색깔이 확실히 할 수 있는 영화를 시스템 밖에서 만들든지.


백승화: 사실 마케팅과 배급에 그렇게 많은 돈이 드는 줄 몰랐다. 장편 개봉을 하면서 저 역시 처음 그런 방식이나 시스템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그냥 지속적으로 영화를 만드는 것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은데, 먹고 사는 게 지속되어야 한다는 것이 문제일 것 같다. 사실 이런 논의를 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은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꼭 영화뿐만이 아니라 다른 문제들 역시 쉽게 달라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고, 예전부터 논의들은 계속 있어왔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다양하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저는 다음 작품으로 음악 영화를 하다 보니 투자를 받아야 한다. 그래서 공동체 라디오 같은 곳에서 시나리오로 라디오 드라마를 진행하다가 사람들이 들을만한 것이 되면 투자자나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어떨까 하는 식으로 여러 가지 생각을 해봤다. 만드는 사람 역시 끊임없이 다른 방법들을 고민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성욱
: 데뷔를 하신 분들이니 차기작에 대한 고민이 있을 거다. 지속가능한 제작이 어떻게 가능할지, 끝으로 데뷔 작가로서의 향후 전략이나 차기작에 대한 계획을 듣고 싶다.
오영두: 어차피 지금뿐만이 아니라 영화 시장 안에서 늘 힘들었다. 예나 지금이나, 독립영화나 상업영화나 힘들다. 물론 그 안에서 살아남는 사람이 있고 죽는 사람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단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고, 끊임없이 꿈틀거리면서 영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최선이 아닌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상업영화로 올라가서 어느 정도 성공을 이루었을 때, 할 수 있는 일들이 있고 바꿀 수 있는 힘이 될 때, 잊지 말고 무언가를 바꿀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도태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저예산에서 시작을 했다가 50억짜리 영화를 찍고 나면 다시 또 60억을 찍으려고 6, 7년 정도를 마냥 기다리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명함만 감독이지 영화를 10년 이상 찍지 않는 감독이 되어버리는 경우도 많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가진 베이스를 잊지 않고, 왜 영화를 시작했는지 잊지 않고, 계속 영화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고 소중하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백승화: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해주신 것 같다. 말씀하신 것처럼 계속 만들면 되는 것 같다. 그냥 자신이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것을 계속 하다보면 어느 순간 자신이 원하는 것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김기훈: 사실 신인감독들이 대부분 시나리오 작업을 굉장히 오래한다. 예전에는 계약을 하고, 진행비를 받으며 진행했지만 이제는 그런 경우가 드물어진 상황이고, 그런 면에서 계속적으로 생존하기 힘든 점이 분명히 있다. 이런 부분은 충분히 제도적으로 개선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영화라는 것이 시스템 안에서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내부의 창작의 의지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 지속적으로 영화를 하려면 배급이나 부가판권, 기타 여러 가지 어떤 방식으로든 저변 확대가 필요한 것 같다.


장건재
: 저는 여전히 저예산 작업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예전에 <낙타들>이라는 영화를 연출하셨던 박기홍 감독님으로부터 들은 조언이 생각난다. 스스로의 영화에 대한 주체로서의 권리를 행사한다는 점, 저작권이나 판권의 문제에 단순히 창작자나 예술가로서의 태도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세일즈를 하는 사람의 마음가짐, 또는 마케터로서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비전 안에서 자기 시스템을 고민해가면서 일단은 각개격파를 해나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정리: 박예하 시네마테크 관객 에디터)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