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토크

[시네토크] 회심의 순간이 가장 매혹적이다

- 오승욱 감독이 말하는 존 스터저스의 <황야의 7인>

 

제8회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이제 막 달리기 시작한 1월 20일, 존 스터지스의 <황야의 7인>(1960) 상영 후 오승욱 감독과의 시네토크가 이어졌다. 오승욱 감독은 마치 촬영현장을 직접 갔다 온 것처럼 영화 제작 과정상의 세세한 일화들을 들려주었다. 그 즐거웠던 현장을 여기에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황야의 7인>은 한국에선 62년에 피카디리극장에서 개봉했다. 텔레비전에서도 자주 방영한 편이고, 작년엔 탐 크루즈가 이 영화를 다시 만들겠다고 하기도 했다. 이 영화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7인의 사무라이>를 리메이크한 영화이긴 하지만 이 영화의 영향력도 상당한 것 같다. 언제 이 영화와 만나게 됐나?

오승욱(영화감독): 저는 <황야의 7인>을 73년에 재개봉할 때 봤다. 그때가 아마 초등학교 4학년이었을 거다. 당시 제목은 <평원의 7형제>였다. 파고다 극장에서 동시상영 할 때 봤는데 너무 재밌어서 3~4번 정도 봤다. 완전히 제 마음을 사로잡은 영화였다. 오늘 오신 분들 중엔 이 영화를 먼저 보시고 <7인의 사무라이>를 보신 분들도 있을 것 같고, 젊으신 분들은 원작을 먼저 보고 이걸 나중에 보신 분들도 있을 것 같다. <7인의 사무라이>를 보고 이 영화를 보면 이 영화가 미흡한 것 같기도 하지만, 나름대로 이 영화도 미덕이 있다. 저는 <황야의 7인>을 먼저 보고 화질 안 좋은 비디오테이프로 <7인의 사무라이>를 봤다. 그땐 <7인의 사무라이>가 너무 길고, 재미없고, 그로테스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악당은 스쳐지나가기만 하고 대사도 없다. 반대로 <황야의 7인>에선 악당역의 일라이 워락이 어마어마하다. 그런데 지금 무슨 영화가 더 낫냐 이런 얘기를 하려고 하는 건 아니다. <7인의 사무라이>는 그 나름대로 멋진 장면들도 많고, 액션도 굉장하다.

<7인의 사무라이>와 이 영화의 차이점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 원작에서 사무라이와 농민의 관계는 계급적으로 상하관계에 놓인다. 그런데 <황야의 7인>에서 무숙자, 총잡이들은 농민들보다 나을 게 없다. 거기에서 이 영화의 재밌는 지점들이 생겨난다. 농민들이 총잡이들을 무서워하긴 하지만 그들을 존경하는 건 전혀 없다. 그걸 스터지스가 찾아냈고, 그래서 <7인의 사무라이>와는 다른 영화가 됐다는 게 제일 재밌고 좋은 점이다. 그리고 율 브리너가 등장하는 장면과 시무라 다카시가 등장하는 장면도 다르다. 뭐가 더 낫다는 게 아니라 다르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7인의 사무라이>에서 여자아이의 구출은 사무라이의 명예에 관한 것이었다. 반면 여기선 떠돌이들이 인디언을 묻어주는 장면, 인종차별에 대해 깨고 있는 장면부터 시작하는 게 재미있다.

그리고 또 하나, 일라이 워락의 캐릭터가 흥미롭다. 팬이다. 스터지스가 일라이 워락을 캐스팅할 때 그는 유명한 배우는 아니었다. 당시 스티브 맥퀸, 제임스 코번, 로버트 본, 찰스 브론슨 등 전부 무명이었거나 단역만 하던 사람들이었다. 율 브리너만 제일 유명했다. 스터지스의 훌륭한 점은 <황야의 7인> 이후로 캐릭터를 하나하나 살리는 대단한 영화들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런 감독이 많지 않다. 스터지스 감독은 7명의 배우들이 서로 경쟁하게 만들고 싸우게 만들었다. 저 역시 <킬리만자로>를 찍을 때 남자배우들의 경쟁심이 강해서 패가 나뉜 경험이 있다. <황야의 7인>에서 제일 힘이 셌던 건 일라이 워락 패거리 쪽이었다. 스터지스는 일라이 워락 패거리들에게 동네 깡패들처럼 행동해달라고 주문했다. 그래서 일라이 워락 패거리들이 무법자처럼 촬영장도 아닌 멕시코 마을을 휘젓고 다녔다. 그렇게 배우들이 서로 경쟁하는 상황에서 율 브리너는 별 신경을 안 썼다고 한다. 영화에서도 왕이지만 정신상태 자체가 왕이었던 셈이다(웃음).

영화에서 제일 마음에 든 건, 일라이 워락이 ‘우린 동종업계에 종사하는 인간들인데 왜 여기에 온거냐’고 말하는 장면이다. 그게 너무 좋았다. 총잡이들이 마을로 다시 돌아오는데 이유가 딱히 없다. 깡패들이니까 지고는 못 산다는 설정은 미국영화에서 이 영화가 처음은 아니었겠지만 이후 많은 영향을 끼친 것 같다. 미국 남성들에게 아킬레스건은 겁쟁이인 것 같다. 샘 페킨파는 미국 겁쟁이, 아메리칸 치킨을 정확히 포착해서 확대 재생산한다. 그런 면에서 존 스터지스도 그런 부분을 잘 잡아내는 사람인 것 같다. 이 때문에 레오네의 스파게티 웨스턴이 나오지 않았나 싶다. 실제로 이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은 다 레오네 영화에 나온다.

 

 

 

 

 

 

 

관객1: 율 브리너, 스티브 맥퀸 등 모든 캐릭터가 하나하나 다 살아있는데 이런 영화가 드문 것 같다. 지금 한국에서 감독님이 이 영화를 리메이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고 한다면 누구를 캐스팅 하실지 궁금하다.

오승욱: 액션영화 감독이라면 누구나 <황야의 7인>을 리메이크하는 꿈을 가져봤을 거라 생각한다. 저도 그랬지만 배우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다만 율 브리너는 안성기로 하고 싶다. 퇴락하고 늙은 깡패 느낌으로. 스티브 맥퀸은 생각이 잘 안 난다. 대배우들이 다 모이면 볼만할 것 같다. 스터지스는 연출할 때 가장 중요한 몇 개만 주문하고 배우들을 다 내버려뒀다고 한다. 이 영화에서 제일 재미있고 가장 매혹적인 캐릭터는 로버트 본 역이다. 리메이크하면 로버트 본 역에다가 더 많은 씬을 추가하고 싶다. 로버트 본 역은 사실 배우들이 제일 하고 싶어 하는 역이다. 저는 영화가 망가져도 로버트 본 역에 일곱 씬 정도를 만들고 싶다. 그 다음이 찰스 브론슨이다.

 

관객2: 딱히 질문은 아니고, 재개봉할 때 제목이 <평원의 7형제>로 바뀐 이유를 당시 어느 신문에서 본 기억이 난다. 처음 개봉할 땐 무명이었던 배우들이 나중엔 다들 스타가 되지 않았나. 그래서 마치 이 사람들의 신작이 나온 것처럼 해서 제목을 바꿨다고 한다. 이 영화는 배우들의 진가가 발휘된 영화라고 생각한다. 저는 이 영화를 스카라 극장에서 본 것 같다.

오승욱: 내가 언제 어디서 이 영화를 봤나 얘기하는 게 재밌다. 요즘은 아니지만 옛날 영화광들의 로망은 개봉 첫날 첫회 아니겠나(웃음).

 

김성욱: 이 영화가 <7인의 사무라이>와 다른 점은 총잡이들이 농민들에게 배반당해서 쫓겨나는 설정이다. 결말은 비슷하지만 굴절이 있는데, 감독으로서 이러한 변화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오승욱: 불균질하다고 할 수도 있고, 관객들에게 설득이 안 되면 실패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마음을 돌이켜 먹는다는 것, 회심, 자기가 갖고 있는 걸 버리는 그 부분이 매혹적이다. 회심을 하는 것. 어떤 상황 속에서 자기 본성으로 돌아가서 치고 나가는 게 너무 매력적이다. 그 회심들이 저한텐 가장 매혹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정리: 송은경(관객에디터) / 사진: 문지현(자원활동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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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정의를 지키는데 이유가 어딨어

- 존 스터지스의 <황야의 7인>

지난해 <황야의 7인>이 톰 크루즈 주연으로 다시 영화화된다는 소식이 있었다. 존 스터지스 감독이 만든 <황야의 7인>은 구로사와 아키라의 <7인의 사무라이>를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무엇보다 율 브리너, 스티브 맥퀸, 제임스 코번, 찰스 브론슨 등의 개성적인 배우들이 출연해 인기를 끌었다. 작품의 성공으로 이후 속편이 세편이나 만들어지기도 했다. 때마침 쿠엔틴 타란티노의 <장고: 분노의 추격자>가 개봉하는 즈음에 과거의 서부극과 새롭게 만날 좋은 기회다.

 

 

서부극에서 총싸움은 장르의 약속이다. 서부극의 주인공들은 어떤 이유에서든 총을 빼들고 상대와 싸워야 한다.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 보안관으로서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 가장을 잃은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인디언들의 포위를 벗어나기 위해서, 잃어버린 조카를 찾기 위해서 등등. 이들은 결국 싸워야만 하고, 이때 중요한 것은 싸움의 이유다. 제대로 된 싸움의 이유만이 이들의 폭력에 정당성을 부여해주기 때문이다. 존 포드의 <역마차>의 키드(존 웨인)는 처음에 등장할 때만 해도 위험한 무법자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가 승객들을 보호하기 위해 인디언들과 싸우고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총을 빼들 때 정의의 편에 설 수 있었다. 즉 왜 싸우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존 스터지스가 구로사와 아키라의 <7인의 사무라이>를 리메이크해 만든  <황야의 7>은 흥미로운 영화다. 이 영화에서 벌어지는 세 번의 총격전에서 눈여겨 볼 것은 첫 번째와 마지막 싸움인데 여기서 주인공들은 굳이 싸울 필요가 없는데도 싸운다. 이를테면 마을 사람 모두가 죽은 사람의 장례를 거부하고 있을 때 크리스(율 브리너)는 이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관이 실린 마차에 용감히 올라탄다. 그리고는 생명의 위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총싸움을 한바탕 벌인 뒤 결국 죽은 자를 땅에 묻어준다. 자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지만 거기 뛰어들어 목숨을 걸고 옳은 일을 해내는 것이다. 영화의 시작부터 등장하는 이 거침없는 행동이 관객들에게 짜릿한 쾌감을 준다.

 

마지막 싸움 역시 마찬가지다. 이 영화의 악당은 의외로 이해심이 넓은 편이라서 힘들게 붙잡은 크리스 일행을 말까지 태워서 마을을 떠나게 해준다. 그러니 주인공들이 이대로 마을을 떠났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예전처럼 악당에게 세금을 바치며 살았을 테고, 주인공들은 다시 자유로운 총잡이로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결국, 말머리를 돌린다.

영화에 등장하는 어떤 액션 장면보다 이 결심의 순간이 가장 큰 짜릿함을 준다. 꼭 싸워야 할 이유도 없고(배신은 마을 사람들이 먼저 했다) 수적으로도 불리하지만(“자네들 정말 미쳤군!”), 결국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것. 그 이유는 마을 사람들을 향한 측은지심이었을 수도 있고 자신의 총을 함부로 다룬 악당에 대한 분노일 수도 있다. 또는 마을에 숨겨 놓았다고 믿는 보물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건 관객의 짐작일 뿐이며 우리는 7인의 총잡이들의 속마음을 끝내 명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죽는 순간에 조차 흔들리지 않는 그들의 눈빛과 단호한 몸짓은 결국 관객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설득시키고야 만다. 이보다 명쾌하고 매력적으로 싸움의 이유를 납득시키기도 어려울 것이다.

 

글_김보년(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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