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조금 특별했다. 이상했다고 말하는 것이 더 맞을지 모른다. 공립 대안학교였는데, 갓 한국에서 온 열여섯의 영어가 느린 동양인 여자아이에게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가지고 한 단어, 한 단어, 한 문장, 한 문장 토론하는 수업시간은 신세계였다. 매번 문학시간은 공포였고 두려움이었다. 나는 ‘일리야드’를 읽지도 플라톤의 ‘국가론’ 전문을 읽어본 적도 없었는데, 그곳의 아이들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미식축구 감독 욕을 하며 인용했고 세익스피어와 찰스 디킨슨 작품들을 학교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드라마에 비유하곤 했다. 그곳의 똘똘한 아이들은 나에겐 거대한 충격이었다. 난 거기서 살아남고 싶었고 말하고 싶었고 함께하고 싶었다. 

우리 학년에서 유행했던 고급 영국식유머를 배우고 즐기기 위해 <몬티 파이튼의 성배>를 보았다. 그 이후 ‘몬티 파이튼’ 시리즈를 섭렵했고, 아이들의 농담에 같이 웃을 수 있었다. 문학시간에 조셉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에 관해 토론할 때 미리 준비하려고 <지옥의 묵시록>을 보았다. 영화 속에서 커츠 대령이 낭독했던 ‘텅 빈 인간들’을 마치 영미문학에 조예가 깊은 듯 수업시간에 읽어보았다. 미국문화사를 배울 때 <록키>를 보고 그 시대의 미국을 느껴보려 했다. 운이 좋아 맞게 된 학교 연극반 연출을 할 때 뮤지컬 ‘지붕위의 바이올린’을 했는데 그때 난 영화판 <지붕위의 바이올린>을 수백 번도 넘게 보았던 것 같다. 외국인으로서 대사를 줄줄 외우려면 그 수밖에 없었다.

미국 아이들은 뮤지컬 노래를 잘도 외워 부른다. <마이 페어 레이디>의 ‘오늘밤은 춤이라도 추겠어요’는 성악을 공부하던 내 친구의 애창곡이었다. 도통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어 영화를 보았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는 미국 현대사 수업을 이해하기 위해 보았는데, 단순한 영화 감상평을 적어냈던 역사시간 주관식 시험에서 A를 받았다. 존 포드의 <분노의 포도>나 <황야의 결투>는 홈스테이 아저씨가 제일 좋아하던 영화였다. 무뚝뚝했던 아저씨와 단둘이 어색한 가운데 영화를 보며 미국의 개척자 정신이 어떤 것인가 감을 잡아 보려했다. 아저씨는 나의 영화 감상태도가 자기 딸들보다 좋다며 감동받으셨다. <7년 만의 외출>은 할로윈에 마릴린 먼로로 분장하겠다는 친구 때문에 수도 없이 보았다. 그렇지만 할로윈 파티에서 내 친구는 먼로만큼 섹시한 아우라를 뿜을 순 없었다. <대부>를 보지 못하고도 미국 남자아이들과 대화를 하겠다는 것은 그저 문화적으로 결핍된 사내들만 사귀겠다는 태도라고 봐도 무방하다. <대부>를 보았기에 난 미국 남자아이들의 대화에 끼어들어서 알 카포네 흉내 내는 그 아이들과 함께 웃을 수 있었다. 

단순히 서울 아트시네마의 작년 하반기와 올해 친구들 영화제 프로그램만 훑어도 나의 미국 고등학교 생존기를 설명할 수 있다는 점에 놀라며 이 글을 쓴다. 미국은 집이 크고 주거지와 상업지역이 나뉘어져 있어 여가를 즐기려는 다수의 미국인들은 홈시어터 세팅을 집에 가지고 있다. 부모님, 조부모님 때부터 모아온 방대한 양의 VHS와 DVD들은 과거부터 현재를 아우르는 그 집안만의 시네마테크, 시네마 아카이브를 만들고 있었다. 그들과 어울리면서 자연스럽게 고전영화들을 접했고 영화를 여가활동, 취미활동, 교양교육의 목적으로 보며 즐기는 사이에서 흑백영화의 매력을 발견하게 되었고 영미문화학습을 제대로 할 수 있었다.



시네마테크에서 주로 상영되는 고전영화와 예술영화는 미학적이고 예술적인 영화적 메시지를 지녔다.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카라멜 팝콘을 먹으며 보는 영화와 달리 이 영화들은 옛 고전 문학을 읽는 듯한 영화적 소통의 느낌을 준다. 각 영화마다, 감독마다, 배우마다, 장면마다 여러 가지 의미가 부여될 수 있고 다양한 감흥들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그 여러 가지 부여된 의미 중 하나는 나의 미국 고등학교 시절 즐거웠던 서바이벌 학습법이다. 영화는 단순히 즐기기 위한 여가의 수단을 뛰어 넘어 복합 문화 예술의 창조물로서 역사, 문화, 풍토, 감성, 정치, 철학 등을 담고 있다. 오늘도 나는 세상을 배우기 위해 영화를 보고 서울 아트시네마를 찾는다.   

(배준영,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관객에디터)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댓글을 달아 주세요



젊은 시절의 존 포드는 양친에게 물려받은 아일랜드인의 뜨거운 피가 자신의 몸에 흐르고 있음을 자각하고 있었다. 비록 미국에서 출생하긴 했지만 존 포드는 대다수 아일랜드계 이민자들이 그러했듯 고향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을 지니고 있었다. 스물여섯이 되던 해인 1921년에 존 포드는 오매불망하던 고국 아일랜드를 처음으로 방문할 수 있었다. 당시 영국과의 독립투쟁을 벌이고 있던 탓에 아일랜드는 정치적 긴장상태로 긴박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예술가에서 그런 사회적 격변은 종종 긍정적인 창작의 열정을 부추기곤 한다. 존 포드는 이 여행에서 민감하게 느꼈던 것들을 나중에 작품을 통해 표현할 기회를 얻게 된다.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How Green was My Valley>(41)와 <조용한 사나이>(52), 그리고 <긴 잿빛 선>(55)과 같은 작품은 고국 아일랜드에 바치는 찬가로 그가 이 시기에 겪었던 체험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존 포드의 영화를 두고 전통과 현대의 충돌이나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지나가버린 과거에의 노스탤지어를 종종 말하곤 하는데 이런 특징의 상당부분은 아일랜드계 이민자로서가 그가 느낀 소수자, 국외자의 정서에서 기인한 것이다. 종종 그의 영화에서 통렬한 순간은 인물들이 고향을 떠나기 위해 가족과 작별을 고할 때에 발생한다. 19세기 아일랜드의 웰스 지방의 탄광촌을 배경으로 광부의 가족사를 필연적인 해체의 과정으로 그려낸 걸작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에서 탄광에서 해직된 두 아들이 미국에서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고향을 떠나는 장면은 지극히 담담하게 묘사된다. 아버지는 두 아들에게 석별의 정을 토로하는 대신 성경의 구절을 읽어주고 어머니는 흔들의자에 앉아 미동도 없이 떠나는 두 아들을 뒤돌아보지도 않는다. 마을을 등지면서 석양에 구부정한 그림자를 남기면서 저 멀리 두 아들이 사라지는 모습이 보인다. <수색자>의 마지막 장면에서 서부 저편으로 사라지는 존 웨인의 모습보다 더 통렬한 순간이다.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는 성장한 주인공 휴 모건(Huw Morgan)이 어릴 적 시장에 갈 때 어머니가 두르던 숄에 소지품을 챙겨 고향을 떠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정든 집을 떠나면서 그는 이제 다시는 고향에 돌아오지 않으리라고 결심 하는데 카메라는 이 때 집의 내부에서 빠져나와 창문을 거쳐 탄광촌 마을의 한적한 거리를 비춘다. 이미 폐광이 되어버린 탓인지 휑뎅그렁한 거리에는 오직 늙은 여인만이 누군가를 쓸쓸하게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화면위로 ‘현재의 기억은 사라지지만 오래 전의 기억은 너무나도 생생하다’라는 주인공의 내레이션이 깔리면서 이내 화면은 과거 풍요롭고 초록이 무성했던 대지로 전환한다. 흑백영화이기에 휴가 기억하는 초록으로 가득한 계곡은 지각 가능한 것이 아니다. 대신 그것은 흐릿한 기억처럼 추억과 상상의 영역에 속한다. 그것은 또한 아일랜드의 대지를 감싸는 환경, 분위기, 숨결과도 같은 것이다. 존 포드가 그려내는 아일랜드인의 기질은 그런 초록의 대지와 호흡하며 탄생한다. 남성다움의 본성, 즉 의리와 자부심 말이다. 이는 남성들의 다툼과 싸움에서 드라마틱하게 표현된다. 이를테면 학교를 다니기 시작한 휴는 저급한 탄광촌에서 왔다는 이유로 급우들에게 시달림을 당하는데, 그는 동네 아저씨에게 익힌 권투기술로 괴롭히는 친구들과 싸움을 벌인다. 이 때 싸움은 서로 주먹을 공평하게 교환하는 게임과도 같은 것으로 아일랜드계의 남자다움과 우정을 획득하는 통과의례와 같은 순간을 표지한다.

탄광촌에서 일하는 남자들이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긴 행렬을 이루어 함께 노래를 부르며 퇴근하는 장면이 영화에서 몇 차례 반복적으로 보이는데, 꽤나 인상적인 순간이다. 이들은 모두 집 문 앞에서 기다리는 대지의 신과도 같은 어머니의 에이프런 속에 하루 벌어온 돈을 꼬박 집어넣는다. 근면하고 억척스런 어머니는 아버지만큼이나 자부심과 의지가 강한 존재다. 영화의 한 장면에서 임금 삭감에 반대하는 파업을 벌인 마을 청년들이 완고한 아버지가 파업에 동참하지 않는다며 비난을 퍼붓자 이에 참을 수 없었던 휴의 어머니는 파업참가자들의 회합에 참석해 수많은 사내들을 향해 ‘누구든 남편을 건드리면 가만두지 않겠소’라며 으름장을 놓는다. 어머니의 분노와 의지의 표명이 휘몰아치는 겨울의 매서운 눈발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다. 그러나 가족애와 우애, 그들의 근면한 삶도 한번 만난 사람은 반드시 헤어진다는 회자정리(會者定離)의 세상사의 법칙을 넘어설 수는 없는 일이다. 누구는 경제적 곤란 때문에 집을 떠나고 누구는 결혼 때문에,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은 갱도에서 삶을 마감한다. 사건의 관찰자이기도 한 어린 휴의 순수성은 가족의 해체와 공동체 성원들의 멸시와 조롱, 형제와 아버지의 죽음과 마주하며 변모한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휴의 어깨에 기대어 아버지가 삶을 마감하는 장면이 이것의 정점에 해당한다. 이 순간 휴는 망연자실한 듯이 빈 시선을 허공에 던지는데, 이 때 모진 현실은 저편의 기억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고 마치 꿈같은 세계가 펼쳐진다. 아버지와 푸르른 계곡을 함께 거닐던 행복했던 순간, 이혼 때문에 완고한 마을주민들에게서 따돌림을 당한 누나의 귀환, 일자리를 얻기 위해 고향을 떠났던 형들이 저 멀리서 돌아온다. 행복한 기억이지만 동시에 비애로 가득한 숭고한 장면이 아일랜드의 거대한 하늘 아래에서 벌어진다.

존 포드는 거대한 하늘을 밑그림처럼 활용해 거기에 대지와 공동체, 인간사의 이야기를 숨결처럼 화면에 불어넣었던 영화작가로 서부극은 그런 에센스를 가장 이상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장르였다. 2차대전이 끝난 뒤에 만든 서부극 <황야의 결투My Darling Clementine>(46)는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다. 이 영화는 서부극에서 자주 회자되는 전설적인 보안관 와이어트 어프의 전설 같은 이야기를 그린다. 닷지 시티에서 유명했던 보안관직 생활을 청산하고 형제들과 소를 몰고 떠돌아다니는 와이어트 어프(헨리 폰다)는 막내 동생이 톰스톤에서 클랜튼 일가의 습격으로 살해당하면서 복수를 결심한다. 서부에서 가장 거대한 무덤이 있는, 어둠과 타락의 마을인 톰스턴에서 와이어트 어프는 다시 보안관 배지를 달고 도박장을 운영하는 닥 할러데이(빅터 마튜)와 연대해 클랜튼 일가와 전투를 벌인다. 이런 복수를 둘러싼 이야기에 동부에서 톰스톤을 찾아온 아름다운 클레멘타인과의 미묘한 사랑이야기가 함께 한다. 

평자들은 존 포드의 서부극을 호메로스가 그리스의 신을 노래하는 것처럼 미국 개척기의 영웅들을 찬미하는 일종의 역사극으로 평가한다. 그의 영화에서 진정한 주인공들은 서부를 개척하고 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 이민자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공동체의 재건을 위해 노력한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대중들이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상상의 공간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미국 남서부의 모뉴먼트 밸리가 그가 만든 서부극의 주된 장소다. 거대한 메사와 이를 감싸는 무한과 숭고의 감정을 불러오는 하늘이 있다. 그 아래에서 인간들은 공동체를 건설해 거주하고 경작하고 또 신을 향해 예배와 찬양을 벌인다. <황야의 결투>에서 와이어트 어프와 클레멘타인이 함께 춤을 추는 장면이 그러하다. 이들은 모뉴먼트 밸리를 배경으로 이제 막 건설 중이라 기둥만 세워져있는 교회에서 마을 주민들이 환호 가운데 조금은 어색하지만 흥겹게 춤을 춘다. 이상적인 공동체에 대한 집합적인 상상력이 가장 적절하게 표현된 장면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영웅적이고 국민적인 통합의 신화는 공동체 내부에 내재한 갈등의 해소룰 통해 표현된다. 톰스톤에 처음 도착한 와이어트 어프는 총질이 난무하고 인디언이 바에서 소란을 피우는 장면을 묵도하며 연신 ‘도대체 뭐 이런 마을이 다 있냐’며 사람들에게 의문을 제기한다. 그가 동생의 죽음 때문에 다시 보안관직을 맡아 마을에 머무는 것은 클랜튼 일가와의 최종적인 결투를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존 포드는 공동체 내부에 스며든 어둡고 곤혹스런 문제들을 사회적 합의를 거쳐 해결해가는 과정을 외부의 적과의 단선적인 대결보다 더 중요하게 다룬다. 여기서 영웅은 한 명이 아니라 이중화되어 있다. 그 하나가 전통적인 관습을 중시하는 보안관 와이어트 어프라면 다른 한 명은 리버럴한 독 할러데이다. 이 둘은 마을의 질서와 헤게모니를 둘러싸고 다툼을 벌인다. 이는 법보다 도덕이 앞서는 다툼으로 증오의 표현이라기보다는 우정과 연대를 위한 통과의례이다. 동부에서 온 아름다운 여인 클레멘타인과의 사랑 또한 이중화되어 있는데, 시간의 서로 다른 두 방향과 연결된다. 그것은 과거(예전 독 할러데이는 동부에서 그녀를 사랑했지만 이미 그녀를 두고 떠났다)와 미래(톰스턴의 교사로 정착한 그녀는 어프의 미래의 여인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로 열려있는 시간의 이미지이다.

영화의 한 장면에서 와이어트 어프는 막내 동생의 무덤가에서 묘비에 적힌 연도표기를 보며  짤막하게 한탄한다. ‘그래 18년을 살았구나.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하고 떠났구나. 너 같은 아이들이 안전하게 자랄 수 있는 그런 마을이 될 때까지 여기에 있을 거란다.’ 어프의 다짐은 순수성을 지켜내겠다는 결의의 표현이다. 다시 무기를 손에 들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종종 이 장면의 비극적인 정서를 두고 2차 대전으로 인한 전쟁의 상처가 영화에 기입된 것이라 말해진다. 클랜튼 일가와의 전쟁이 끝난 뒤, 질서가 회복됐을 때 와이어트 어프는 학교의 새 선생이 된 클레멘타인에게 언젠가는 돌아오리라 약속하고 다시 서부로 말을 타고 떠난다. 순수성과 미래의 희망을 간직한 클레멘타인은 떠나는 그를 저 멀리까지 쳐다본다. 역시 행복과 비애가 가득한 숭고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김성욱)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댓글을 달아 주세요

2010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②


존 포드는 1895년 2월 미국 메인주에서 아일랜드 이민자의 후예로 태어났다. 영화계에서 ‘잭 포드(Jack Ford)’라는 예명으로 일하면서 배우, 스턴트맨, 시각효과 등의 다양한 경험을 쌓았으며, 그의 형인 프랜시스 포드의 조연출을 거쳐 자신의 이름을 건 연출을 시작했다. 현장에서 계속된 영화작업을 통해 스스로를 발전시켜나간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포드는 폭스와 워너 등 메이저 스튜디오에 소속되어 50년(1917~1966)의 연출경력동안 웨스턴, 가족멜로드라마, 코미디, 전쟁물 등 다채로운 장르의 영화를 만들었다.

미국 영화의 카리스마

특히 포드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단연 웨스턴이다. 포드는 스스로 자신을 소개할 때 “내 이름은 존 포드다. 나는 서부영화 감독이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그의 경력을 온전히 설명해주지는 않지만, 서부영화를 상징하는 감독으로서의 무게감을 잘 드러낸다. 그의 웨스턴 영화가 보여주는 서부개척 신화는 미국 건국의 역사와 조응했으며, 그가 이뤄낸 웨스턴의 장르적 진화는 할리우드 클래식의 형식적 발전의 주요 요소가 되었다. 그리하여 포드는 고전기의 미국영화를 대표하는 거장으로 남게 된다. 이번 친구들 영화제의 특별 섹션으로 마련된 ‘존 포드 걸작선’에는 그의 유명한 웨스턴영화들을 비롯하여 코미디와 드라마 영화도 포함되어 있다. 그의 방대한 필모그래피를 음미해 볼만한, 비교적 다양한 시기의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을 만나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굽이도는 증기선>은 포드의 초기 유성영화의 스타일을 드러내는 블랙코미디로 윌 로저스 삼부작의 마지막 작품이자 그의 유작이다. 로저스가 연기한 엉뚱한 행동을 보이지만 소박하고 따스한 마음씨를 가진 인물 닥터 존은 포드 영화의 인간적인 면을 잘 드러내준다. 증기선의 질주와 장르적 쾌감의 상승효과가 어우러지는 후반부의 즐거움이 압권이다.

포드 영화를 얘기할 때 드라마도 빼놓을 수 없다. 포드의 많은 드라마 중에서도 가장 가족멜로드라마의 원형에 충실한 걸작들이라면, 아카데미 연속 수상을 달성한 <분노의 포도>와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일 것이다. <분노의 포도>는 불합리한 사회구조 속에서 붕괴되어가는 가족과 그에 따른 분노의 표출을 그린다.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는 전작과 유사한 구도로 행복한 가족이 탄광회사의 횡포로 겪는 갈등을 보여주는데 가족의 따스한 유대감에 더 집중하여 가슴 저린 감동과 유년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특히 포드의 드라마에는 아일랜드에 대한 그의 근원적 그리움의 정서가 짙게 배어있다.

창조한 신화를 스스로 전복시키다!


하지만 역시 포드의 매력적인 영화들은 웨스턴에 집중되어 있다. 무성영화 시절 포드의 최고 걸작 중 하나인 거대한 스케일의 <철마>는 대륙횡단철도를 연결시키려는 꿈을 키워가던 사람이 마침내 그것을 이뤄내는 과정을 통해 서부개척 신화의 가장 핵심적인 사건 중 하나를 다룬다. 포드는 이미 39년에 <역마차>와 <모호크족의 북소리>를 통해 고전적인 웨스턴의 원형을 정립한 바 있다. 서부개척의 역사에서 발생했던 인디언과의 전쟁, 공동체의 구축과 문명의 도입 과정, 서부사나이들의 결투 등이 다뤄진다. 예컨대 <모호크족의 북소리>는 미국이 독립전쟁을 치르던 시기를 배경으로, 다양한 인종이 함께 공동체를 형성하여 척박한 자연환경에 맞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간다는 미국적 개척신화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번 상영작 중 더 눈 여겨 봐야할 것은 그의 중후반부 작품들이다. 포드의 웨스턴에서 경력의 후반부로 갈수록 더 강해지는 특징이 있다면, 인디언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영웅적 군대의 모습을 보여주거나 강한 총잡이끼리의 결투를 긴장감 있게 연출하는 것보다는 전쟁이나 결투 전후의 사람들의 일상적 삶의 모습을 다룬다는데 있다. 포드는 개인을 사회 혹은 역사 속에 두면서도 거기에 함몰시키지는 않았던 것이다. 아니 차라리 실제로 역사에서 함몰되었던 사람들의 삶을 영화 속에서 복원해낸 것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를테면 <황야의 결투>는 문명이 개척되고 사람들이 변해가는 과정을 상징적인 여성의 존재성과 사랑을 통해 보여주는데, 이는 실제역사이자 서부극의 신화로서 영화의 큰 골격을 형성하는 와이어트 어프와 클랜튼 가족 간의 OK목장의 결투보다 더 중점적으로 다뤄진다. 또한 <아파치 요새>는 역사적으로 유명한 기병대의 패배를 다루면서도 그 전투 자체보다는 요새에 살던 이민자들의 소수 공동체에 동부의 질서(대령과 그의 딸)가 유입되는 것을 보여 준다. 공동체 삶의 모습이 새로운 질서를 따라 변화하는 모습에 더 집중한 것이다. 1940년대 중후반부터 <수색자>에 이르는 시기에 만든 그의 웨스턴영화들은 그를 서부영화 감독으로서 정점에 다다르게 했다.

이후로도 그의 작업은 계속되었다. 그는 웨스턴에 담겨있던 세계관들을 스스로 비판하고 성찰하는 영화들을 만들었다. <말 위의 두 사나이>은 기병대 문화, 가부장제, 백인 우월주의에 대한 비판과 자본주의의 유입을 담고 있으며,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는 옛 가치가 새로운 가치로 완전히 대체되는 서부의 풍경을 다룬다. 이는 옛 가치를 대표하는 톰 도니폰(존 웨인)과 새로운 가치를 대표하는 랜섬 스토다드(제임스 스튜어트)를 통해 극명히 양분화 된다. 도니폰은 열심히 집을 짓지만 더 이상 그곳에서 살아갈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아버리고는 스스로 그 집을 태운다. 도니폰과 같은 사람은 이제 스토다드와 같은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새로운 세상의 건설을 어둠 속에서 돕는 역할을 할 뿐이다. 일종의 역사적 희생자를 재물삼아, 역사는 이러한 방식으로 신화가 된다. 전투에서 패배한 대령이, 영웅으로 신화화 되는 <아파치 요새>처럼 말이다. 결과적으로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는 웨스턴에 대한 장례를 스스로 치른 셈이 됐다. 영화에는 옛 가치의 상실에 대한, 그리고 동시에 웨스턴 장르의 인기가 시들어가는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의 멜랑콜리가 담겨있다. 실제로 유작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존 포드의 유작처럼 느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고전기 영화의 위대한 유산


한편 포드와 함께 웨스턴의 전형으로 자리 잡은 것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배우 존 웨인과 모뉴먼트 벨리라고 할 수 있다. 포드는 이를 기본으로 삼으면서 이에 안주하지 않고, 다른 요소들, 이를테면 헨리 폰다나 제임스 스튜어트와 같은 다른 성격을 지닌 배우들을 기용하고, 이들의 캐릭터를 내러티브 구축의 역학과 연동시키면서, 스스로의 전형성에 변주를 가했다. 또한 주연과 조연을 오가며 포드와 평생을 함께한 워드 본드, 빅터 맥라글렌 등의 개성 강한 배우들도 영화의 서브플롯들을 작동시키는 중요한 요소로서 포드 영화의 다채로움과 풍요로움을 증진시킨 보증수표라 할 수 있다.

이처럼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닌 포드가 그의 경력 전반에서 가장 지속적으로 탐구한 문제가 있다면 무엇일까? 그건 아마 ‘영화에 삶을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라는 단순하고 소박한 문제의식일 것이다. 그는 누구보다도 그것을 잘 해냈던 사람이다. 포드에게 있어서 인간성, 가족, 그리고 집이라는 가치는 가장 핵심적인 주제들이다. 그는 평생에 걸쳐 아일랜드라는 뿌리를 잊지 않았다. 공화당원이자 보수주의자였으며, 가톨릭 신자였던 포드는 그의 영화처럼 일관성 있게 평생을 살았던 인물이다. 그는 배우에게 어떤 연기를 요구하고, 카메라를 어디에 세팅하고, 미장센과 몽타주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에 대한 지극히 영화적인 직관만으로도, 아름다운 영상과 고결한 정신이 깃든 영화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그가 스튜디오 시스템의 통제를 받으면서도 이렇듯 일관성 있는 작품들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이다. 그의 비전의 심원함은 영화가 어떠한 예술가적 자의식을 요구받지 않고, 그 깊이와 완성도만으로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는데 있다. 그렇게 존 포드의 영화들은 고전기 영화의 위대한 유산으로 신화처럼 남아있다. (박영석)

 ■ 존 포드 걸작선 
 
 철마 The Iron Horse
 
1924 | 133min | 미국 | B&W | 35mm 
 
 굽이도는 증기선 Steamboat round the Bend
 
1935 | 81min | 미국 | B&W | 35mm 
 
 모호크족의 북소리 Drums Along the Mohawk
 
1939 | min | 미국 | Color | 35mm 
 
 분노의 포도 The Grapes of Wrath
 
1940 | 129min | 미국 | B&W | 35mm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How Green Was My Valley
 
1941 | 118min | 미국 | B&W | 35mm

 
황야의 결투 My Darling Clementine
 
1946 | 미국 | 97min | B&W | 35mm

 
아파치 요새 Fort Apache
 
1948 | 미국 | 127min | B&W | 35mm

 
말 위의 두 사람 Two Rode Together
 
1961 | 미국 | 109min | Color | 35mm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 The Man who Shot Liberty Valance
 
1962 | 미국 | 122min | B&W | 35mm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