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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4.16 [Cinetalk] 영화적이기보단 회화적이다
  2. 2010.05.07 러시아 전쟁영화의 서정성

파라자노프 <석류의 빛깔> 상영 후 홍상우 교수 시네토크

 

벚꽃이 한창이던 지난 4월 15일 일요일, 서울아트시네마는 세르게이 파라자노프의 날이었다. 연달아 그의 영화 3편을 상영하였는데, 그 중 <석류의 빛깔> 후엔 홍상우 교수가 함께 하여 시네토크를 펼쳤다. 다소 낯선 러시아라는 환경과 난해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그의 영화적 세계에 관하여 다양한 측면에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그 시간의 일부를 옮긴다.

 

 

홍상우(경상대학교 러시아학과 교수) : <석류의 빛깔>은 내용만으로 챕터를 나누면 12장 정도가 된다. 어린 시절, 성장기, 사랑, 수도원에서의 생활, 꿈꾸는 것 같은 장면, 죽음의 천사와의 만남, 죽음 등등. 전체적으로 크게 보면 시인의 생애다. 유년시절, 젊은 시절, 수도원을 나와서 죽을 때까지 3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파라자노프는 시인을 소재로 한 영화를 주로 만들었다. 산문적인 분위기보단 시적인 분위기가 훨씬 강하게 느껴진다. 전통적인 서사에 별로 집착하지 않는다는 뜻도 될 것 같다. 예를 들면 <수람요새의 전설>은 그루지아 민요와 고대 전설을, <잊혀진 조상들의 그림자>는 우크라이나를, <석류의 빛깔>은 아르메니아를 소재로 만들었다. 주로 과거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과거를 다룬다는 거지 영화가 구태의연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소련은 15개 공화국으로 이루어져있고 사실 각기 다른 문화권이다. 크게 나누자면 슬라브 문화권, 카프카스, 중앙아시아가 있다. 그러니까 한나라의 영화사가 다문화·다민족을 갖고 있는 경우는 많이 있는데 소련만큼 지역적으로 큰 공간에서, 그것을 다 포괄하는 영화사는 거의 유일하다. 일단 지역적인 특징을 말하자면 대개 소비에트 시절에 슬라브 쪽은 주류였다. 주변 공화국은 독자적인 문화나 민족적 특징을 드러낼 수 없었기 때문에 그 사이에서 영화를 만들다보니 오히려 더 실험적이고 <석류의 빛깔>과 같은 영화가 나오게 된 효과가 있었다. 보통 서사가 잘 짜여있는 영화들이 슬라브 지역에서 주로 많이 나왔다면 그 반대, 그것에 집착하지 않고 실험적인 것에 치중한 영화들이 오히려 카프카스 출신이나 중앙아시아 출신 감독에 의해서 만들어지기도 했다는 것이다.

 

파라자노프가 영화 만들면서 고난을 겪은 것과 관련해서 타르코프스키와 연관 지어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런데 타르코프스키도 나중에 망명을 가서 소비에트 시절에 당국과 맞지 않아 고난을 겪은 것은 사실 관계상 맞는 말인데, 파라자노프가 겪은 것에 비하면 상당히 성공적으로 작품을 만들었기 때문에 운이 좋은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객관적 의미에서가 아니라 어떤 측면에서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타르코프스키는 순수하게 슬라브, 러시아 문화에 깊이 몰두한 상태에서 영화를 만들었고, 그렇기 때문에 러시아 영화사에서 확실한 위치를 갖고 있고 그에 상응하는 대접을 지금까지도 받고 있다. 그런데 파라조노프는 일단 슬라브 문화권이 아닌 다른 지역 출신이기 때문에 러시아 국내에서 관심의 대상이 덜 된 측면이 있다. 그의 작품세계에 대해서 평가가 인색한 것은 아니지만 어찌된 일인지 해외에 비해서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경향이 있다.

 

파라자노프는 카프카스 문화권, 그루지아와 아르메니아 쪽 지역 지역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 지역이 다른 연방공화국보단 영화문화가 발달한 지역이고 또 문화·예술적으로도 전통을 가지고 있는 나라였다. 그것이 작품세계에도 반영이 되어 있는 것이다. 또 카프카스라는 지역 자체가 경계적인데, 감독 개인적으로도 아르메니아나 그루지아에 딱 속해있는 게 아니었다. 부모는 아르메니아 출신이고 자기가 태어난 곳은 그루지아였다. 양쪽의 문화를 다 어린 시절부터 몸에 익힌 거다. 그래서 각기 다른 나라의 문화나 전통, 종교를 소재로 해서 영화를 만든 독특한 케이스에 속한다. 그의 작품이 많진 않지만, 영화를 잠깐이라도 보고 한눈에 ‘아 파라자노프!’라고 알아볼 수 있게 만든 희귀한 감독이다, 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만큼 독특한 스타일로 영화를 만들었다는 의미다.

 

이 영화를 이야기할 때 우선적으로 이야기 하는 건 아르메니아의 문화예술이다. 아르메니아의 전통문화가 단순 소재가 아니라 그것이 가장 최우선적으로 전면에 등장하는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인공인 시인 사이아트 누바를 둘러싸고 있는 것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아르메니아의 고전 예술이다. 사원. 그림들, 미니어처, 중세건축물, 공예 장식품, 염색, 수공업제품. 이런 것들이 상당히 많이 나오는데 그래서 어떤 사람은 파라자노프의 영화가 그냥 다른 의미 다 빼놓고 한 민족의 문화예술을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 기준을 가지고 시비를 거는 사람도 있었다. 어떤 부분은 상당히 정확한데 어떤 부분은, 감독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재현이 허술하다는 의견이었다. 카프카스 지역이 여러 문화의 경계라고 말했는데 비잔틴과 근동의 기독교적 세계, 그리고 이슬람 세계가 만나는 경계적인 지역이기 때문에 특수한 지역으로 볼 수 있다. 그런 것들이 그루지아나 아르메니아 화가들이 그린 그림이나 공예에 반영이 되어있다고 한다. 그래서 파라자노프 영화를 일종의 다민족 국가의 영화사에서 전형적인 소비에트 감독이 아니면서도 그런 문화적 특수성을 자기 영화에 잘 반영했기 때문에 영화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또한 눈에 띄는 건 종교적인 요소이다. 아르메니아는 AD301년에 이미 기독교를 국교로 책정한 나라다. 기독교적 전통이 강한 나라인데 첫 번째 장면 보면 기독교적인 분위기가 읽혀진다. 빵, 물고기, 가시덤불 이건 직접적으로 기독교적 표상이고, 석류, 단검, 포도송이에서 피처럼 흐르는 건 고난과 희생을 의미할 것이다. 그는 시인이자 일종의 순교자인데 그가 맞이해야할 시련과 고통을 영화 초반부터 보여준다. 문제는 여기에서 시각적인 묘사만큼 소리에도 집중해야한다. 아르메니아의 전통 악기 두둑 소리가 자주 들리고, 자막은 러시아이다. 뒤에서 흘러나오는 내레이션은 전부 아르메니아어이다. 그것을 오히려 음향적 효과로 쓴 것이다. 사이아트 노바 자신이 또 아르메니아 민속 음악 발전에 영향을 끼친 인물이란다. 전기적인 요소도 고려를 했다고 한다.

 

카메라를 직접 바라보는 정면성도 파라자노프의 영화를 규정하는 하나의 특징이다. 사람들은 비잔틴 회화의 프레스코화, 또는 이콘의 영향으로 평가한다. 마치 이콘을 바라볼 때 성상을 바라보는 관찰자, 내가 서로 소통하는 것처럼 영화에서 배우와 관객의 관계도 성상화를 보는 것처럼 그런 효과를 불러일으키려 했던 것이다. 또 회화 중 티플리스 학파의 티플리스는 트빌리시, 그루지아의 수도의 옛말이다. 이 학파의 대표적인 기법을 인공성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정면성과 깊게 관련이 된다고 한다. 19세기에 상인들도 많이 교류를 했던 지역에서 특히 그루지아에 아르메니아인들이 많이 왔는데, 그때 회화의 주된 장르가 초상화였다. 초상화를 보면 경직되고 움직이지 않는 구도와 신체를 아주 평면적으로 묘사했는데 이를 파라자노프가 선호했다고 한다. 그런 회화기법을 사이아트 노바의 이미지를 묘사할 때 사용했다는 것이다.

 

사이아트 노바가 자기 시에서 인간의 세상을 묘사할 때 항상 색깔과 향기를 강조했기 때문에 <석류의 빛깔>에서도 색깔이 두드러진다. 양탄자를 여인들이 은발찌로 장식한 발로 밟으며 세탁하는 모습이 있다. 여러 명의 여인이 돌아가면서 물을 뿌리면서 밟는데, 마치 집단적으로 춤을 추는 느낌을 준다. 일상생활에서 반드시 해야 하는 노동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오락처럼 여기는 그루지아의 정신세계를 반영하는 것이다. 실을 염색하는 장면도 나오는데 파라자노프도 아르메니아가 염료문화가 발달했기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거기에 익숙했었다. 전기적으로 봤을 때는 영화 속 주인공인 사이아트 노바의 전기와 감독의 전기가 일치하는 셈이다. 지역적 특성이 가장 잘 반영된 장면이 바로 이 염색장면이라고 한다. 또 검은색, 붉은색, 하얀색 이런 것들이 안정적으로 결합 되서 보여 지는데, 이 장면을 소위 색채의 유희라고 한다. 아르메니아 전통 색과 향을 중요시했던 사이아트 노바의 시세계와 마찬가지로 그 장면에서는 순간적으로 색채의 우주가 창조된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다. 하얀 수탉을 붉게 칠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흰색과 붉은색이 대비가 된다. 앞에 나온 붉게 물든 천과 연관될 수 있는데, 시인의 희생을 연상시키는 피를 연상시킨다. 일종의 일상적 행위라기 보단 제의적인 분위기나 성격을 갖는 장면으로 볼 수 있다. 실험적 성격을 지닌 영화이고 흰색, 검은색, 붉은색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 사물의 상징성이 강하고, 정면을 바라보는 인물, 음악, 고정된 화면 등 그런 것들이 다 합쳐져서 수도원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굉장히 제의적인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연속적인 내러티브에도 집착하지 않았다. 비관습적인 내러티브라는 것이다. 조금 더 강하게 말하면 이야기의 부재이고, 그래서 시공간도 사실 해체됐다고 볼 수 있다. ‘삽화로 이루어진 책의 새로운 형태’와도 같은 영화라고도 표현하기도 한다. 장면은 페이지를 넘기듯 연결되고 중간 중간 자막으로 소제목을 달았는데, 이어서 나오는 사이아트 노바의 행동을 강조하기 위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배우도 연기한다고 보기 힘들다. 게다가 편집이 그야말로 문자 그대로 점프 컷이지 않나. 논리적으로 연결되든 상반되는 게 충돌해서 다른 의미를 발생시키든 간에 그런 의미를 발생시키는, 논리에 기반 한 몽타주도 거부한 거라 할 수 있다. 영화적으로 봤을 때는 시각적인 경이로움을 주는 태초의 영화 언어로 돌아가려는 시도라고 많이 평가한다. 특히 <석류의 빛깔> 말고 <잊혀진 조상들의 그림자>같은 경우에는 거의 문화인류학적 다큐멘터리와도 같은 그런 느낌을 준다고 할 정도로 상당히 전통문화 재현에 관심을 뒀다. 서사적 요소보다는 비서사적 요소를 강조한 거다. 그래서 <석류의 빛깔>을 규정하는 또 다른 말로는 사이아트 노바의 ‘그림으로 된 시집’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기존의 관습으로 봤을 때는 상당히 낯설고 충격적인데, 파라자노프가 의도했던 안했던 지금 봐도 상당히 낯선 영화다. 상반된 요소가 같이 있는 것이다. 전통문화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었는데 영화 자체는 혁신이다. 소위 말하는 낯설게 하기인데, 이는 20년대 형식주의에서 나온 대표적 개념이다.

 

프랑스 세르주 다네가 파라자노프 영화가 의미나 내러티브를 압도하는 이미지를 가지고, 이것이 시각적으로 놀라움, 경이로움을 불러일으킨다 해서 물질적 상상계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더불어 원소, 질료, 질감, 색채와 가장 근접한 것으로써의 예술인 영화가 갖고 있는 힘이 파라자노프의 특징이다. 이보다 더 다양한 영화는 없다. 이렇게까지 이야기 한 적이 있다. 들뢰즈도 파라자노프를 사물의 물질적 언어로 된 걸작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사실 파라자노프에 대해 프랑스나 독일에서 더 먼저 발굴하고 알리고 했던 것이다. 러시아에선 알긴 안다. 하지만 해외에 소개한다든지 적극적인 시도는 거의 없다고 보여 진다. 나중에 파라자노프가 투옥되고 고난을 겪고 하니까 오히려 해외영화인들이 관심을 가지고 석박을 촉구하고 그러는 과정에서 더 알려지게 된 것이다. 옛날에 반체제 문학가들이 해외에서 알려지게 되는 것처럼 파라자노프도 그런 경우로 볼 수 있다.

 

파라자노프의 영화의 이미지는 박물관적 느낌도 있고, 그림의 이미지도 있고, 문학의 이미지도 있고, 이런 세 가지가 모두 다 얽혀있는 이미지로 규정할 수 있다. 이렇게 얘기하기도 한다. 그의 영화를 규정하는 말 중 상당히 적절한 용어라고 생각이 된다.

 

정리: 김휴리(관객에디터) |사진: 최용혁(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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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시네마테크 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게오르기 추흐라이 감독의 <병사의 발라드> 상영 후, '러시아 영화의 서정성'이란 주제로 경상대 러시아학과 홍상우 교수의 강연이 있었다. 기존 전쟁영화와의 차별성을 보여준 <병사의 발라드>를 중심으로 러시아 영화인들에게 새로운 표현 기회를 준 러시아 전쟁영화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었던 그 소중한 시간의 일부를 옮겨 본다.


홍상우(경상대 러시아학과 교수): 러시아는 20세기 들어서 1, 2차 대전 외에 연방체제의 구성 및 해체과정에서 여러 전쟁을 겪었기 때문에 전쟁영화가 영화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특히, 러시아는 서로 다른 민족과 종교로 구성된 연방체제로 인해 끊임없는 내전에 시달려 왔다. 그래서 지금 현재까지 만들어지는 러시아 전쟁영화는 주제나 소재 면에서 다른 나라보다 복잡하고 다양한 측면이 많다. 또한 아직까지도 러시아 전쟁영화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걸작들이 나오고 있는데, 이는 해빙기 전쟁영화에서 이뤄낸 혁신적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전쟁영화 중 뛰어난 평가를 받는 영화들의 공통점은 적에 대한 분노나 적에 대항해 싸우는 자국 군인이나 군대의 영웅적 행동을 묘사하는 것을 넘어선다는 것이다. 전쟁 자체의 비극성을 다루면서 전쟁당시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사연이나 인간 자체에 관심을 두는 영화들이 높게 평가받았다. 소련에서는 30년대 ‘소비에트 문화예술의 3대 원칙(당성, 인민성, 교육성)’이 발표되는데, 이것이 사회주의국가 전체의 문화예술의 원칙으로 채택되었다. 이 중 인민성은 특정 개인을 영웅시하지 않고 대중이 중심이 되는 문학작품을 만들도록 권고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스탈린집권시기에 스탈린을 영웅시하고 우상화하게 되면서 왜곡되어 인민성의 원칙이 유지되기 힘들었다. 이런 시기에 대한 반동으로 해빙기 때 상대적인 자유화로 새로운 경향의 영화가 나왔다고 볼 수 있다.

해빙기 전쟁영화를 서정성의 측면에서 볼 때는 대표적으로 <이반의 어린시절>, <학이 난다>, <병사의 발라드> 등을 꼽을 수 있다. 세 작품 전부 다 기존의 전쟁영화에 반기를 들고 혁신을 이룬 영화들이다. 전체영화사로 볼 때 <이반의 어린시절>이 내용의 혁신 외에도 미학적 형식에서 혁신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다. 방금 보신 <병사의 발라드>는 전쟁이 끝나고 15년 남짓한 시기에 만들어졌는데, 당시 2차 대전 패전의 상처가 가시지 않았고, 여전히 파시스트에 대한 분노가 강했던 상황에서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멜로드라마 형식으로 영화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놀랍고 혁신적인 영화로 불리운다. <학이 난다>의 경우는 전장에 있는 애인을 배신하는 내용을 다루었기 때문에, 영화가 처음 발표될 당시 언론에서는 상당한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세 작품 모두 해외영화제에서 상을 받는 등 외평단의 상당한 지지를 받았다. 이 영화들은 서구사회가 지녔던 스탈린시기 고정관념을 깼다는 점에서 해외의 주목을 받은 것이라 생각된다.

<병사의 발라드>는 제목이 말해주듯이, 영화 전체가 알료사라는 한 병사의 이야기를 서정적인 발라드의 느낌을 주면서 진행된다. 전쟁영화에서 듣기 쉽지 않은 경쾌한 분위기의 음악이 영화전체에 흐르는 가운데 영화 사이사이에 삽입되는 기차의 바퀴소리가 일종의 후렴구 역할을 한다. 서정적인 멜로디의 음악과 기차바퀴소리가 조화를 이루면서 영화 전체의 시적인 느낌을 강조한다. 또한 알료사가 영화에서 겪게 되는 페쇄적이고 개별적인 에피소드들은 이러한 역동적이고 리듬감 있는 음악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연결되게 된다. <병사의 발라드>가 기존전쟁영화와 다른 새로운 면모는 영화가 처음 시작될 때부터 드러난다. 이미 전장에서 죽은 알료사에 대한 내레이션으로 영화가 시작되며, 전투장면은 딱 두 번 나온다. 전쟁을 전면에 내세우기 보다는 알료사가 겪은 사건이나 상황들, 인물들 간의 관계를 보여주면서 휴머니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전쟁이 아니었으면 순조롭게 흘러갔을 인간 삶의 모습이 전쟁으로 인해 방해받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영화 초반에 알료사의 어머니가 길을 바라볼 때 알료사의 어머니를 안쓰럽게 바라보는 젊은 부부가 나오고, 영화의 마지막 내레이션에서는 알료사가 전쟁에서 죽지 않았더라면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를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를 두고 일부 평론가들은 전장에서의 죽음으로 인해 이루지 못한 한 병사의 사랑과 이후의 삶에 대한 연민을 발라드처럼 표현했다고도 말한 바 있다. 이렇듯 영화 전체를 서정적인 분위기로 만들면서 영화가 보여주고자 한 것은, 전쟁이라는 상황에서도 억제되지 않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과 감정이다. 또한 전장이 아닌 후방의 에피소드들을 보여준 것은 전쟁의 고통이 결국 일상에서 살아가는 일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인 것으로도 생각된다.

영화 전체의 서정성은 무엇보다도 알료사의 이미지와 알료사와 슈라의 사랑으로 인해 더욱 더 강조된다. 알료사는 기존 전쟁영화의 영웅적이거나 신화화된 주인공과 달리 전쟁에서 의도치 않게 공적을 세운 평범한 병사이다. 아직 앳된 티를 벗지 못한 연약하고 보호받아야 할 것 같은 인물이다. 영화에서 나오는 암호명과 알료사의 성은 작은 새를 의미한다고 한다. 그는 훈장 대신 휴가를 선택하고, 시간이 별로 없는 상황에서도 남을 도우는 일에 앞장선다. 기차를 타고 가면서 그가 벌이는 일들이 일종의 로드무비 형식으로 펼쳐진다. 특히 알료사와 슈라의 풋풋하고 순수한 사랑의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감독은 상당히 고심했다고 하는데, 두 주인공이 모두 당시 연기학교에 재학중인 신인배우였다고 한다. 러시아의 평론가들 중에는 이 영화의 성공요인으로 이 두 주연배우를 꼽는 이들도 있다.

두 사람의 사랑은 기차 안에서의 대화와 에피소드들을 통해 발전되며, 기차 밖의 풍경과 두 사람의 풋풋하고 순수한 표정의 클로즈업, 기차바퀴소리, 그리고 서정적인 음악 등이 두 사람의 사랑의 느낌을 더욱 더 서정적으로 전달한다. 특히나 안타깝게 헤어진 후 육교에서 재회한 두 사람이 애칭을 부르기 시작하고, 수돗가에서 음식을 나눠먹고 씻는 장면은 전쟁이란 상황에서도 그들만의 소우주가 만들어지는 느낌을 잘 전달하고 있다. 감독은 주연배우 기용과 관련해서 “관객한테 기억이 분명하게 남아야 한다. 전쟁에 의해 훼손되는 게 아니라 더 깊어지고 심화되는 주인공들의 고양된 사랑을 온몸으로 감정을 실어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한편, 알료사는 시적이고 서정적인 느낌을 주는 나약한 이미지이기는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주류영화의 영웅적인 면모도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 촉박한 휴가시간에 남을 도와주면서도 이러저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사실상 비범한 능력을 가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결국은 짧은 만남이기는 하지만 어머니를 만나게 된다. 알료사의 이런 면모를 두고 유연한 태도로 처한 상황에 대처하는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인물이란 평가도 있다. 영화의 내용이 비극적임에도 영화 전체가 서정적이고 밝은 분위기를 전달하는 것은 살아있고 진실한 인물로 평가받는 알료사의 형상으로 인한 것이 아닌가 싶다. (정리: 김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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