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모라>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마테오 가로네의 초기작은 최근작과는 성격이 많이 다르다. <박제사> <첫사랑> 등 원작소설을 끌어와 극영화를 만드는 최근과 달리 초기작들은 실제 삶에 초점을 맞춰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준다.

마테오 가로네의 장편 데뷔작 <이민자들의 땅>은 이민자들이 이탈리아에 터를 잡고 생활하는 모습을 세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했다. 나이지리아 매춘부, 알바니아 소년 노동자, 그리고 이집트에서 온 주유소 직원 등 이민자 자신이 직접 출연, 인공성이 가미되지 않는 일상을 카메라 앞에 그대로 노출한다. 다만 그들이 발붙인 땅은 모든 것이 풍요로운 도시와 거리가 먼 메마르고 황량한 곳으로 그들의 이탈리아 내 삶이 얼마나 힘든지는 배경의 척박함으로 증명이 된다.

그 때문에 <이민자들의 땅>은 ‘가로네 버전의 네오리얼리즘’ 혹은 ‘1990년대에 되살아난 네오리얼리즘’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이탈리아의 사회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는 점에서 틀린 평가는 아니지만 그것이 가로네가 자국을 바라보는 비극적인 관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감독은 이탈리아 내 이민자들이 결코 최악의 상황을 벗어나지 못할 것 같은 순간에도 동정심 대신 질긴 삶의 생명력을 긍정하는 따뜻한 시선을 놓지 않는다.

이는 가로네가 이후 영화에서도 줄곧 유지하는 극중 인물과 소재를 대하는 윤리이자 영화적인 태도다. 그는 자신이 다루는 소재를 깊이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해당 인물 속으로 들어가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1986년 예술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촬영감독 보조로 영화 일을 시작한 가로네는 일찍이 카메라가 비추는 현실 그 이면까지 바라보는 방식을 일찍이 터득했다. <이민자들의 땅>을 발표하고 나서도 극중 인물들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던 그는 1998년 이 영화에 출연했던 알바니아 소년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손님들>에서 다시 다루게 된다. (허남웅_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댓글을 달아 주세요

1월 작가를 만나다: 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 브라더스>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

지난 29일 저녁 ‘2001년의 기억!’이란 제하로 2011년 첫 작가를 만나다가 열렸다. 이번 달의 주인공은 개봉 10주년을 맞는 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 브라더스’. 상영 후에는 원래 임순례 감독과의 대화가 예정되어 있었으나 임순례 감독 개인사정으로 자리를 함께하지 못하고 허남웅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와의 관객과의 대화가 이어졌다. 10년 전의 영화를 꺼내어 다시 보며 관객과 함께 감흥에 젖어 호흡했던 그 현장의 일부를 여기에 옮긴다.


허남웅(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이번 작가를 만나다는 개봉 10주년을 맞는 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선택했다. 이 영화는 일명 ‘와라나고’ 운동의 정점에 있는 작품이다. 관객들이 자발적인 운동을 펼쳐서 흥행까지는 아니더라도 좋은 영화를 살리기 위해 나섰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고 있다. 예정대로였다면 임순례 감독이 함께 자리하여 관객 여러분과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어야 했지만 감독님이 부상을 입어 함께 자리하지 못하게 되었다. 감독님도 이 점을 꽤 안타깝게 생각했다. 비록 오늘 함께 하진 못하셨지만 인터뷰를 통한 임순례 감독님의 답변을 잠시 말씀드리며 관객과의 대화를 시작해보고자 한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만들 당시 솔직히 이 영화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실제로 개봉해서 많은 관객을 만나지 못하기도 했고. 하지만 이 영화는 개인적으로 임순례라는 감독의 브랜드 같은 영화가 되었다. 10년이 지나고 드는 생각은 산업적 환경을 비롯해서 영화 만들기가 힘든 지금과 같은 시기에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시나리오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려고 했을 때 과연 투자자나 제작자를 만날 수 있을까 싶다. 지금은 산업정인 논리가 너무 강하다보니 영화를 만드는 입장에서는 무척 갑갑한 상황이다. 불과 10년~15년 전 이야기지만 <세 친구>나 <와이키키 브라더스>같은 영화가 나왔던 당시가 영화 만들기엔 조금은 더 괜찮았던 시기라는 느낌이 든다. 그때도 일명 ‘와라나고’라고 해서 관객들이 자발적으로 산업에 대항해 어떤 무브먼트를 보여준 첫 번째 영화이고 감독으로써 굉장히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사실 모든 영화를 제작하는 데에 있어서 리스크는 모두 있기 마련이다. 어떤 영화가 크게 흥행할 수도 있지만 전혀 안될 수도 있다. 흥행이 안 된다 할지라도 그것에 대한 어떤 여지 혹은 흥행 여부과 상관없이 그 영화가 지닌 가치를 인정해 주는 분위기가 완전히 없어졌다고 느낀다.”
이상이 임순례 감독님의 전언이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10년 전 영화이지만 지금 봐도 최근의 영화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의 의미를 따지기에 앞서서 영화를 보면서 놀라웠던 것 중 하나는 영화의 캐스팅에 관련한 것이다. 류승범, 황정민, 박해일 씨 등이 나오는데 개봉했을 당시 영화를 소개하는 기사 중에는 ‘명필름이 제작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스타는 커녕 마이너한 배우 한명 나오지 않는다’고 설명하기도 했다.(웃음) 하지만 지금 보면 십년 전에 이미, 이후 한국 영화를 이끌어갈 배우들이 모였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이 영화는 청춘에 대한 순수한 감정을 간직하려고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순수를 잃어가는 모습을 담아낸다는 점에서 아련한 느낌이 있다. IMF 이후의 한국 사회의 풍경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면서 개인적으로 마음이 아팠던 대사가 있다. 약국을 하고 있는 친구가 성우에게 너 요즘 뭐하냐고 물어보는데 성우는 제대로 얘기하지 못하고 지나쳐가게 된다. 사실은 이런 모습들이 10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단 생각이 든다. 전혀 빛바랜 느낌도 없고 그만큼 우리의 현실 역시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렇게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마음 아프게 느껴지기도 한다.

관객1:
영화를 보기 전에 예전에 봤을 때의 느낌과 어떻게 다를지, 인상 깊게 느끼는 장면들도 변화가 있을까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예전에 인상 깊었던 장면들이 여전히 와 닿았다. 고등학교 때를 회상하면서 해변가 장면이 등장하는데, 나중에 성우의 생활이 점점 어려워지면서 나이트에서 옷을 벗고 기타를 치는 장면에서 그 해변가 장면이 다시 등장한다. 그 순간 뭐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슬픔을 느꼈었는데 오늘 다시 보면서도 예전과 같은 슬픔을 느꼈다. 예전과 조금 달라진 것이라면 류승범 씨가 지금은 나이도 들고 스타가 되셨는데 당시에는 정말 어려보이고 굉장히 발랄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당시 영화를 볼 때는 몰랐는데, 지금 보니 박해일 씨가 성우의 어린 시절로 나와 놀랐다. 오지혜시가 마지막에 노래를 부를 때, 그 전까지 영화가 내내 담담하게 진행되면서 안타까운 느낌이었는데, 오지혜 씨가 등장하면서 무언가 활짝 열어젖히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좋았다.
허남웅: 아무래도 이 영화가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가운데에 전해지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장면들이 많아 보인다. 처음 장면에서도 와이키키 브라더스 밴드가 공연하는 모습에서 카메라가 팬을 하면서 나이트의 모습이 보이면서 뭔가 초라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오지혜 씨와 함께 밴드가 연주하는 장면이 특히나 중요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최소한의 순수를 가지고서 계속해서 살아가는 느낌이다. 황정민 씨가 상갓집에서 술을 마시고 볏집에 널브러져 있다가 불을 내는 모습들이 어떻게 보면 굉장히 초라해 보이는데, 사실 어린 시절의 회상장면에서도 고고장에서 밴드 연습을 하다가 전선이 불에 타서 화재가 나는 장면이 있다. 그 때는 절망하거나 그런 것이 아니라 무모한 열정 하나만으로 청춘을 이어갈 수 있었던 모습이 담겨있다. 계속해서 과거를 환기시키고 그 과거를 환기시키고 그 과거를 현재에 덧붙이고 싶어 하는 그런 모습들을 임순례 감독님이 전해준 게 아닐까 생각된다. 이런 모습들이 사실 자칫하면 현실 비판으로 넘어갈 수도 있지만 이 영화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관객들이 감정적으로 볼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배우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이 영화가 두 번째 장편영화였던 류승범 씨 같은 경우는 당시의 인터뷰를 보니, 그 전에는 형인 류승완 감독의 영화에만 계속 출연하다가 이 영화를 선택하면서 자신이 앞으로 배우를 계속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하겠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지금 보니 굉장히 뛰어난 연기를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황정민 씨는 당시는 무명이었지만, 이 영화에서 드러머 강수 역할을 맡으면서 처음으로 매니저와 팬클럽이 생기기도 했다고 한다. 한편으로 류승범 씨가 맡은 역할이 상징성을 지닌다고 본다. 사실 그는 음악에 대한 재능은 전혀 없고 옷이나 말하는 것이 영화 안에서 상당히 튄다. 영화의 포스터에서도 빨간 머리의 류승범 씨가 혼자 뒤돌아보는 모습이 눈에 띈다. 시대라고 하는 것은 류승범 씨가 연기한 기태 같은 사람들에게 반응하는데, 이얼 씨가 연기한 성우는 어떻게 보면 시대에 뒤떨어진 듯한 모습 같아 보인다. 그래서 당시 이 영화를 두고 나이 든 ‘세 친구’에 관한 영화가 아닌가 하는 얘기도 있었다. 임순례 감독님의 <세 친구>가 당시 한국 사회의 경직된 모습들을 반영했기 때문에 그런 평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세 친구>와는 다르게 유머러스한 면들과 아련한 면들이 있는 것 같다.

관객2:
며칠 전에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추모 공연이 있었다. 많은 20대 초중반 친구들이 모였었고 오늘 이 영화를 재조명하는 자리에 온 20대 초중반의 친구들이 있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을 테고, 해나가야 할 텐데,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유난히 많은 용기가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10년 전과 비교했을 때 나아지지 않은 현실이 마음이 아프다. 여전히 사회적인 안전망이 없다는 현실이 안타깝다. 혹시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 실패를 경험하거나 어려움을 겪더라도 본인의 탓으로 생각하고 너무 자책감을 갖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사람들이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다.
허남웅: 아무래도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사람들로 하여금 순수하게 밀고 나아가라는 메시지를 줄 수 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중요하게 생각되는 장면은 과거 회상 중에서, 네 명의 친구가 바닷가에서 발가벗고 뛰어가는 모습에서 곧바로 노래방 영상의 비키니 입은 여자들이 모습으로 이어지는 장면이다. 순수했던 과거의 모습들이 출세욕, 생활욕 등 때문에 바뀌어 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도전정신이나 순수한 마음들이 많이 깨어지게 되는데, 한편으로는 사회 시스템이 그런 부분들을 받쳐줄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된다. 이 영화 자체를 두고 보더라도 임순례 감독님의 말씀처럼 이런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는 시스템이 받쳐줘야 하는데, 한국영화계에서도 도전적으로 만들 수 있는 영화들이 많이 사라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영화가 그 자체로서 한국사회의 시스템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편으로는 씁쓸하면서도 의미 있다고 생각된다.

관객3: 오늘 이 영화를 처음 봤다. 친구가 너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데, 행복하냐고 물어봤을 때 주인공은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그렇게 선뜻 대답할 수 없다면 그는 대체 무얼 위해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의문이 들었다. 영화를 보면서 무엇을 위해 살아야하고 어떻게 행복을 느껴야 하는 것인가 하는 고민이 들었다.
허남웅: 사실 이 영화가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 같지는 않다. 사실은 불행한 모습이 더 많다고 느껴진다. 감독님은 현실에서 순수하게 살았으며 좋겠다고 얘기하시지만, 편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순수를 버려야만 하는 사회의 모습, 2000년대 들어서의 신자유주의 시대의 살풍경한 모습을 담아냈다는 생각도 단다. 그런 현실들을 바꿔보자는 것이 영화에서 드러나지는 않지만 그런 것을 읽을 수 있는 여지가 영화 속 개개인들이 갖고 있는 순수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10년이 지나도 사회가 크게 변하지는 않은 것 같다. 이전 관객 분이 달빛요정 말씀을 해주셨지만 여전히 이 사회가 누군가 하고 싶은 음악만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는 점에서만도 그렇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만 놓고 본다면, 인물들의 순수와 과거의 패기를 조금이지만 계속해서 모아간다면 마지막 장면의 오지혜 씨처럼 사랑에 대해 관심을 받고, 이얼 씨 처럼 음악에 대한 관심을 받고, 그렇게 소수이지만 서로 뭉쳐가며 살 수 있으리라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이 의미 있다고 생각된다.


관객4:
일반적인 영화들보다 템포가 느린 편이다. 종종 감정의 최고점에 오르기 전에 장면이 커트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느끼셨는지 궁금하다.
허남웅: 감독님이 이 영화를 만들면서 가장 중점을 뒀던 부분이 감정을 최고점까지 끌어내지 않는 것이었다고 한다. 너무 신파가 되어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현실에 대한 비판이 되어서도 안 된다는 생각에서 라고 한다. 그런 점에 가장 많이 고심하셨다고 들었다.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마지막의 엔딩 크레딧의 경우를 보면 일반적인 영화들과 다른 것 같다. 감정을 고조시키지 않지만 지속시켜가며 안겨주는 어떤 것들이 있다. 개인적으로 임순례 감독님이 인간에게 사랑을 준다는 생각도 든다. 사실 엔딩 크레딧에 그렇게 배우들과 스텝들의 이름들을 느리고 인상 깊게 보여주는 경우가 많지 않다. 이 영화는 공연하는 장면에서 끊지 않고 엔딩 크레딧을 함께 보여주면서, 한편으로 감독님이 인간이나 자신의 캐릭터에 대해 가지고 있는 마음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장면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한다. 첫 장면의 공연 모습과 대조가 되면서 여운이 남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 영화에서 또 하나 재밌는 점이, 박해일 씨나 황정민 씨 같은 경우 영화에서 자신들이 직접 연주하고 노래했던 것에 반해, 이얼 씨 같은 경우는 연주나 노래가 직접 한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 음악영화라고 했을 때 연주하는 모습에 공을 들이지 않을 경우 관객의 감정을 이끌어내기가 어려운데, 임순례 감독님도 이 영화를 하면서 힘들었던 점 중 하나도 그런 부분이었다고 한다. 이얼 씨의 얼굴이 같은 이미지가, 여전히 순수함을 간직하는 캐릭터로서 적역이긴 했지만 음악적인 면에서는 감독님의 생각과 맞지 않아서 힘드셨다고 한다. 영화에서 유머러스한 부분들이 종종 있는데 감독님의 두 번째 장편영화였기 때문에 좀 더 여유가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데뷔작인 <세 친구>는 물론 중요한 영화이지만 굉장히 메마르고 타이트하게 만들었다는 느낌이 있다. 감정적으로 타이트한 것이 아니라 편집에서 딱딱 떨어지는 부분들이 있는데,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그게 비해 시간을 좀 끌 수 있는 여유도 있고 유머러스한 장면들도 있다.


관객5: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오늘 처음 보았는데, 벌써 10년 전 영화란 얘길 듣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얼마 전에 본 <레인보우>라는 영화와 굉장히 비슷한 느낌이 들어서 놀랍기도 했다. 이상을 갖고 있지만 그것을 실현할 수 없는 현실을 이야기하면서 마지막에 굉장히 희망적인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이 좋았는데 오늘 본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도 그런 부분들이 느껴졌다. 힘든 현실이지만 마지막에 희망을 얘기하는 부분이 좋았고 비슷한 입장을 가지고 있는 다른 분들이 이 영화를 볼 때 서로 힘이 되어줄 수 있을 것 같다.
허남웅: <레인보우>의 신수원 감독은 본래 학교 교사로 지내다가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영화 <레인보우>에서처럼 계속해서 시나리오를 쓰고 투자사들을 찾고 하는 일화들이 있는데, 아마도 임순례 감독님이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만드셨을 때 <세 친구>를 만드시고 몇 년 동안의 공백이 존재하는데, 감독님께도 그런 일들이 있지 않으셨을까 생각되기도 한다. <레인보우>와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연결시켜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거란 생각도 든다.

(정리: 장지혜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관객에디터)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댓글을 달아 주세요

[리뷰] 마테오 가로네의 '로마의 여름'


로마 출신의 마테오 가로네가 고향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만든 것은 자연스럽다. 특히 그에게 지역성은 가로네의 영화를 정의하는 중요한 요소다. 다만 <로마의 여름>에서 감독이 바라보는 로마의 풍경은 다소 낯설게 느껴진다. 그것은 극중 변호사 출신의 예술 감독 로셀라(로셀라 오르)가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온 탓이 크다.

정확한 사연이 밝혀지는 것은 아니지만 로셀라는 인생에 혼란을 느껴 어딘가에서 요양을 하다가 돌아온 인상이 짙다. 로셀라가 보기에 로마에 있던 친구들도, 풍경도 어딘가 많이 변한 것 같다. 다만 그녀는 고향으로 돌아오기 전 어느 수도사로부터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충고를 들었는데 너무나 변모한 로마의 모습이 혼란스럽기만 하다.


가로네는 <로마의 여름>에서도 여전한 네오리얼리즘의 면모를 포기하지 않지만 현실의 풍경보다 로셀라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는데 더 집중하는 모양새다. 그래서 어느 것 하나 가미하지 않은 무정형의 필터는 <로마의 여름>에 이르러 빛과 그림자를 적절히 활용해 인물의 심리를 드러내고 주관적인 클로즈업을 통해 감정을 포착하려 든다. 그뿐이 아니다. 사실주의에 가까웠던 전작과 달리 <로마의 여름>에서는 극중 인물들의 관계에 입체성을 부여하기 위해 은유적인 상황도 마다하지 않는다.

로셀라가 로마에서 가장 가깝게 지내는 살바토레(살바토레 산소네)는 연극무대에 쓰일 지구모형을 제작 중에 있다. 완성 후 연극 스태프들과 함께 이를 옮기려 하지만 방문보다 큰 까닭에 빼는데 애를 쓴다. 그리고 결국엔 감정이 폭발하여 지구모형 사용은 없었던 일이 된다. 근데 그 광경은 꼭 지구에 발붙여 사는 우리들이 사는 풍경과 다르지 않다. 아마도 로셀라가 로마에 돌아와서도 여전한 혼란 상태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건 자신을 포함한 그런 인간들의 반목과 갈등 때문이다. 그렇게 지구는, 세상은 흘러가는 법이다. 그것 역시 우리네 삶의 풍경인 것이다. (허남웅)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댓글을 달아 주세요

[리뷰] 마테오 가로네의 ‘첫사랑’


사랑의 본질은 만고불변이지만 시간과 공간에 따라 그 형태를 달리한다. 이탈리아에서는 사랑도 ‘조각’처럼 한다. <첫사랑>의 두 주인공 비토리오(비타리아노 트레비잔)와 소냐(미셸라 세스콘) 역시 조각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금속세공사로 활동하는 비토리오와 화가를 위해 모델을 서주는 소냐는 블라인드 데이트로 만난 사이다. 첫 만남의 서먹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서로에 대한 탐색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비토리오는 조각 같은 몸매의 소냐가 맘에 들고, 그녀 역시 자상해 보이는 그가 싫지 않다. 그렇게 뜨거운 사랑을 시작한 이들은 곧 동거를 시작하고 비토리오는 소냐에게 좀 더 날씬해질 것을 요구한다.

<첫사랑> 포스터의 태그라인은 ‘욕망에 대한 공포영화’(A Horror Movie about Desire)다. 즉, 달콤해 보이는 제목과 달리 이 영화는 육체에 대한 집착이 낳은 비극적 사랑에 대해 다룬다. 그것은 정신과 육체의 관계에 대한 비토리오의 유별난 관점에서 기인한다. 정신적인 사랑이 퓨즈를 꽂아야 육체적인 사랑에 전기가 통한다는 항간의 속설과 달리 그는 상대방의 육체에 혹해야 비로소 정신적인 사랑이 가능하다고 믿는 남자다. 비토리오의 사랑이 에로스(Eros)와 구별된다면, 소냐에게 성적인 매력을 느낀다기보다는 시각적으로 완벽한 형태의 육체를 갈구한다는 점에 있다.

그런 욕망은 소냐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비토리오의 요구를 차치하고, 그녀도 현재 자신의 몸매에 만족하지 못하는 눈치다. 비토리오와의 첫 만남 당시 소냐가 (인사를 제외하고) 그에게 던진 첫 말은 “제 몸매가 맘에 들지 않나요?”다. (이에 비토리오는 “좀 더 날씬한 줄 알았어요.”라고 대답한다.) 여기서 감독 마테오 가로네는 촬영에 능한 감독답게 비토리오와 소냐가 바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3분간의 롱테이크를 담당했다. 그때 카메라는 마치 상대방의 몸매를 훑듯이 장면을 찍어나간다. 이는 음흉한 남자의 눈빛이라기보다는 오브제를 관찰하는 조각가의 시점에 더욱 가깝다. 아닌 게 아니라, 비토리오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이 영화의 카메라는 등장인물, 특히 소냐를 조각하듯이 촬영한다. 처음엔 고정된 구도로 지긋이 바라보다가 이내 덩어리를 깎아가듯이 온 육체를 내지르고, 마지막 순간엔 미술품을 감상하는 양 섬세하게 소냐를 지켜보는 식이다. 이렇게 비토리오는 조각가의 마인드로 모델을 물색하듯 여자 친구를 고르고 완벽한 형체를 빚듯이 사랑을 나눈다.


다만 그 자체로 생명력을 갖지 못하는 조각과 달리 인간의 사랑에는 자유의지가 작용한다. 마음이 동하지 않으면 육체 역시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법이다. 비토리오가 소냐의 몸매를 가장 완벽한 형태로 구현하겠다며 먹을 것을 관리하려들수록 그를 향한 그녀의 거부감은 점점 커져만 간다. 그리고 이들의 사랑이 종국엔 파국을 맞이하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추측 가능하다.

비토리오의 사랑은 비록 육체가 결부되어 있지만 이상주의적이며 관념론적인 사랑이라는 점에서 일종의 ‘플라토닉 러브’를 연상시킨다. <첫사랑>도 그렇지만 마테오 가로네는 전작 <박제사>에서도 육체의 아름다움에 집착하는 남자를 내세웠었다. 일련의 작업을 통해 드러난 마테오 가로네가 생각하는 사랑이란, 정신과 육체의 균형이고 무엇보다 자유의지의 발현이다. 이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사랑은 결국 공포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첫사랑>은 보여준다. (허남웅_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