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엘리아 카잔의 <초원의 빛>

터키 이민자 출신으로 자신의 영화작업을 지속시키기 위해 ‘밀고자’라는 낙인이 찍힌 엘리아 카잔은 자신을 옹호한 영화 <워터프론트>(1954) 이후 끊임없이 ‘과거로의 회귀’를 꿈꾸는 듯하다. 젊은 날의 초상, 청춘은 아름다웠다고 회고하는 것처럼 말이다. <워터프론트> 직후인 1955년에 만든 <에덴의 동쪽>이 그렇고, 1961년 작 <초원의 빛> 역시 그러하다. 두 영화 모두 당시의 시대가 아닌 1930년대 이전의 시기를 다루고 있고, 풋풋한 젊은이들의 방황하는 모습에 초점을 맞춘다.

윌리엄 워즈워드의 시편에서 제목을 따온 <초원의 빛>은 대공황기 직전인 1928년 미국 캔사스의 작은 마을과 고등학교를 무대로 펼쳐지는 비운의 사랑 이야기다. 모든 사람들에게 인기 많은 부잣집 도련님인 버드(이 영화로 데뷔한 워렌 비티)와 가난하지만 아름답고 모범적인 디니(나탈리 우드)는 서로 좋아하지만, 주변 시선과 환경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혈기왕성한 버드는 디니의 육체적 관계를 원하지만, 순결교육을 엄하게 받은 디니는 이를 두려워한다. 성적 욕망을 주체하지 못한 버드는 다른 여학생과 관계를 갖고, 사랑하는 버드를 뺏길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떠는 디니는 심한 히스테리와 우울증을 앓게 되며, 급기야 자살을 기도,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세월이 흐른 후 두 사람은 짧은 재회를 하지만, 환경은 변해있고 결국 작별을 고하며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아름다운 청춘 남녀의 사랑이 환경에 의해 변형되는 과정을 담은 영화 <초원의 빛>은 일종의 현대판 ‘로미오와 줄리엣’라 불릴법한 수작이다.

영화는 버드와 디니가 마을 인근 폭포 옆에 세워둔 차 안에서 키스하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이 첫 장면은 두 사람이 겪게 될 고민과 갈등적 요소를 압축적이고 요약적으로 보여준다. 개인의 열정, 호기심과는 별개로 어쩔 수 없이 지켜야만 하는 사회적, 도덕적 질서와 통념에서 자유롭지 못한 젊은이의 초상. 남자는 자신의 이상과는 상관없이 명문대에 들어가 성공에 이르길 강요받고, 여자는 자신의 처녀성을 지켜내지 못하면 창녀로 전락하고 마는 선택적 상황에 놓이게 된다. 비난 받지 않고 치열한 경쟁사회 속에서 남자답게, 여자답게 살아가려면 이를 지켜야만 한다. 영화는 두 사람 주변 도처에 존재하는 사회적 억압을 드러내며, 두 사람이 감정이 우선되는 사랑조차 사회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경제적인 문제와도 결코 무관할 수 없다는 현실을 반영한다.

사회에 의해 억압된 열정은 강렬한 색채와 사운드와 몸짓의 형태로 폭발하듯 표현된다. 가령 학교에서 선생님으로부터 힐난을 받은 디니가 영화에서 처음 등장하는 워즈워드의 시를 낭독하다 말고 교실을 뛰쳐나가는 장면이나 새해 기념 파티에서 버드가 술에 취한 그의 누나 지니(바바라 로든)를 찾다 동네 사내들에게 농락당한 지니를 위해 싸우고 울부짖는 장면, 혹은 디니가 자신의 머리카락을 스스로 자르거나, 물에 몸을 던지며 자살을 시도하는 장면처럼 말이다. 특히 첫 장면부터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폭포는 이러한 인물들이 처한 곤경과 그들의 열정을 한층 극화시키는 장소로 기능한다. 내러티브는 식상하리만치 전통적인 서사형식을 따르고 있는 반면, 인물들의 개성어린 연기와 그들의 몸짓은 생생한 박진감을 가지고 있다. 엘리아 카잔은 탄탄하게 구축된 내러티브 속 인물의 상호 반작용을 통해 성적 억압을 비롯한 계층과 재산, 가족과 학교, 산업에 의해 결정되어지는 사회적 모순을 집중적이고 명료하게 분석한다. 그리고 그러한 사회 속에서 인물들은 때론 비뚤어지고 왜곡된 모습을 보인다. 이혼녀라는 상흔을 안고 모든 이에게 무시당하지만 시종일관 비전통적이고 파격적인 모습을 보이는 지니의 경우처럼 말이다. 하지만 카잔은 그러한 왜곡된 인간상은 이미 결정되어진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더 이상 살아 갈 수 없다고 판단한 듯하다. 지니가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을 보면, 사회란 필연적으로 그러한 모순을 담보하고 있고 완벽한 자유를 원한다면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다고 얘기하는 것 같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단연 라스트 씬이다.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디니가 버드를 찾아가 그의 아내와 그를 닮은 아이를 만나고, “다시 만나서 정말 반가웠어”라는 한 마디로 어색한 짧은 재회와 작별을 고하는 그 장면. 버드를 만나고 돌아가는 차 안에서 “아직도 버드를 사랑하냐”고 묻는 친구에게 디니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속으로 워즈워드의 시를 읊조린다.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그것이 돌아오지 않음을 서러워 말아라. 그 속에 간직된 오묘한 힘을 찾을지어다.” 이 장면을 반추해서 생각해보면, 영화 <초원의 빛>은 여주인공 디니의 자기 형성 과정을 그린 성장소설의 변형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사랑의 시련을 겪는 여주인공이 어떻게 상처 입고, 견뎌내고, 치유했는지를 그리고 있으니까 말이다. 또한 이는 지금 현재의 우리들의 모습, 우리네 삶과도 무관하지 않다. 어느 사회, 어느 가정에서 누구나 한번쯤 겪는 고민이며 현실 그 자체다. 현실을 벗어나지, 떠나지 못할 거라면 살면서 입은 상흔은 성숙한 인생 태도로 받아들이고, 길을 계속 가야만 한다. 아름다운 기억, 추억이란 이름으로 저 편에 묻어둔 채. 마지막 장면이 가슴 뭉클하게 다가오며 오래도록 잊혀 지지 않는 연유는 이 때문이 아닌가 싶다. (신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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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오후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워터프론트> 상영 후, ‘배우의 감독, 엘리아 카잔’이란 주제로 영화평론가 김영진 교수의 강연이 있었다. 카잔과 말론 브랜도와 얽힌 재미있는 일화는 물론, 메소드 연기 스타일에 대해 들을 수 있었던 그 시간의 일부를 옮긴다.


김영진(영화 평론가, 명지대 교수):
엘리아 카잔이란 감독과 배우들에 얽힌 얘기를 드리겠다. <워터프론트>는 1954년에 아카데미에서 거의 상을 휩쓴 영화인데, 반미 위원회에서 엘리아 카잔이 동료들을 밀고한, 당대의 맥락에서 자유롭지 않은 영화이다. 권력집단에 맞서는 개인의 운명을 생각할 수 있는데 당시에는 상당히 복잡한 맥락에 있었던 영화이고 카잔의 경력에서는 오점이었던 작품이다. 말론 브랜도는 그런 면에서 이 영화 출현을 꺼려했고, 이런 저런 얘기 끝에 매일 오후 4시에는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는 조건으로 수락했다고 한다. 카잔의 상황과도 비슷하다. 채플린이나 조셉 로지 같은 감독들은 유럽으로 돌아갔지만 카잔에겐 돌아갈 곳이 없었고, 밀고 안하면 추방이나 망명을 택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건 곧 카잔에겐 자기 경력이 끝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엘리아 카잔은 카메라 밖에서 드라마를 만드는데 굉장히 능했던 감독이다. 비슷한 상황을 만들어놓고 배우가 연기하게끔 하는, 카메라 바깥에서 이미 그 사람이 되게끔 하는 연기 철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어서 어떤 사람은 카잔과 일하는 것을 너무 지긋지긋해 했다고 한다. 일례로 <혁명아 사파타>란 영화에 말론 브랜도와 안소니 퀸이 형제 역으로 출현했는데, 처음에 카잔은 둘이 형제같은 감정을 갖게 하려고 숙소, 현장에도 매일 붙어있게 했다고 한다. 하지만 둘이 스타일이 너무 달라 친해지는 게 쉽지 않았는데, 후반부에는 둘 간의 배신의 드라마가 펼쳐지니까 그때부터는 둘을 이간질시켰다고 한다. 그 일은 안소니 퀸과 말론 브랜도는 15년 동안 말을 안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워터프론트>의 테리 말로이를 만들기 위해 말론 브랜도는 실제 복싱을 했고, 매일 에바 마리 세인트와 손을 잡고 지하철로 출퇴근을 했으며, 심지어 부두 조폭 두목과 점심도 같이 먹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그리고 그런 이미지를 카잔은 요구했던 것이다. 그렇게 브랜도는 몰입해서 테리 말로이가 되어 갔던 거다. 카잔은 작품을 위해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영혼의 소유자라고 말할 수 있다. 또 즉흥 연기로도 유명하다. <워터프론트>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은 이디가 장갑 떨어뜨리고 테리가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장면과 형인 찰리와 택시에서 얘기하는 장면을 꼽는데, 그 두 장면 모두 카잔의 용인 하에 즉흥적으로 한 것이라고 한다.

카잔은 그런 점에서 배우들의 감독이라고 불린다. 그의 작품에서 대가를 치루고 연기를 하고 나면 훌륭한 연기자가 되게끔 만드는 감독이다. 말론 브랜도와의 관계도 그렇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말론 브랜도는 브로드웨이 연극무대로도 섰었는데 처음엔 너무 긴장해 그 폭발이 안나왔는데 카잔의 도움으로 독방에서 소리를 지른 후 무대에서 큰 외침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고, 제임스 딘 같은 배우도 카잔이 발굴한 대표적인 배우 중 하나다. 카잔은 그렇게 카메라 바깥에서 실제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유형의 감독이다. 가짜가 아닌 진짜 연기를 끌어내는 것에 카잔처럼 능하고, 영향력을 행사했던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사실 말론 브랜도가 연기를 그렇게 잘했지만 연기자란 직업을 혐오하고 고통스러워했다는 것만 봐도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짐작할 수 있다. 말론 브랜도가 후에 아예 섬을 사서 안 나타나고 사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 였을 것이다. 몇몇 일화만 봐도 엘리아 카잔이 미국영화사에 끼친 영향이 크다. 특히 배우의 창작에 관한, 즉 연기를 어떻게 끄집어 낼 지의 측면에서 그의 역할은 상당히 컸다.

이외에도 특히 40년대 중후반부터 50년대 카잔이 이뤄낸 또 다른 업적은 실제 거리에서 찍었던 스트리트 필름이 많았다는 거다. <거리의 공황>이나 <와일드 리버>, <에덴의 동쪽> 같은 영화의 장소를 보면 ‘저건 로케이션의 승리다’ 그런 느낌이 들 정도다. 결코 스튜디오에서는 나올 수 없는 장면이란 걸 체감하게 한다. 또 카잔은 몹씬도 굉장히 실감나게 찍는다. <워터프론트>의 마지막 부두 노동자들을 찍은 것만 봐도 그런데, 그건 아마도 현장에서 실제 단역배우들을 살게 했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밀고자라는 뇌상이 커서 카잔은 60년대 <초원의 빛>이란 영화 이후 지속적으로 하강하는 경력을 갖게 된다. 전성기는 40년대 중반부터 50년대까지였고, 정치적 맥락에서 창작이라는 것을 보장할 수 없는 불행한 사례였다고 볼 수 있다. 특히 1999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평생공로상 받았던 사건은 그에게 있어 너무 잔인한 퇴장을 하게 만든 것으로 기억된다. 할리우드가 자신의 면죄부를 얻기 위해서 엘리아 카잔에게 뒤 집어 씌웠다는 비판적 시각도 있었지만, 엘리아 카잔은 ‘나는 조용히 사라지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이런 식의 멘트를 남기고 떠나 복합적인 생각을 들게 한다. <워터프론트>는 엘리아 카잔과 버드 슐버그에게 자기변명 같은 영화였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도 어떤 보편적인 감동, 추상화 시켜서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감동 상당히 오래 갈 것 같은 영화이고, 그 무엇보다 배우들의 감독이라는 명성을 가졌던 엘리아 카잔의 연출자적 개성을 가장 잘 증명하는 영화다. (정리: 신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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