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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4.13 “낭만적 접근보단 제 어린 시절을 반추해보고 싶었다”

[시네토크] 장건재 감독의 ‘회오리바람’

‘한국영화, 새로운 작가 전략’ 기획전이 거의 끝나갈 무렵인 지난 4월 3일 이른 오후에 자신의 경험담이 잘 녹아 있는 청춘영화 <회오리바람>의 상영 후 이 영화를 연출한 장건재 감독과의 대화가 이어졌다. 시나리오 쓸 때의 고민부터 제작과정상의 여러 가지 체험, 감정들을 진솔하게 들려준 소중한 자리였다. 그 시네토크 현장의 일부를 여기에 옮긴다.


허남웅(서울 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영화를 보면서 시나리오가 정교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시나리오는 어떻게 썼나?
장건재(영화감독): 일단 한 커플이 여행을 가고, 여행에서 돌아와 여자의 아버지에게 혼나는 이야기를 담은 시나리오를 오래도록 품고 있었다. <회오리바람> 전에 중학생이 주인공인 시나리오를 쓰고 있었는데(원작소설이 있는), 그 작업이 잘 풀리지 않아서 다른 것을 찾다가 <회오리바람>의 원형 격이 되는 시나리오를 다시 꺼내 한 달 정도 재작업을 했다. 제가 일반화 할 순 없지만 팍팍한 현실에서 떠나고, 해갈의 기쁨과 자유로움을 느끼는 것이 대개 영화들의 감정선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난 오히려 그러한 해갈과 자유, 이후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시나리오엔 개인적인 경험담도 많이 넣었다. 중국집 배달일 같은 경우 내가 가장 오래 했던 일이다. 가장 애착을 가지고 했던 일이기도 하고. 18년 전 그 때 지금보다 돈도 잘 벌었다. 그래서 배달묘사 씬에 애착을 가지고 있다. 십대면 피자배달이 더 자연스럽지 않겠나하고 스태프들의 질문도 받았었는데 내 생각엔 직업을 묘사할 때는 경험해보지 않으면 피상적인 묘사밖에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여튼 시나리오 작업은 이 영화 할 때 어떻게 끝낼까에 고민을 많이 했다. 태훈이가 학교에 다시 끌려가서 맞고 수업을 다시 받은 씬도 내가 직접 경험했던 것인데 태훈이가 방에 들어오면 선생님이 방에 있는데 스태프들이 선생님이 어떻게 들어온거냐 하고 물었다. 나도 사실 그 때 선생님이 어떻게 들어 온지 모르겠다. 그냥 방에 계셨었다. (웃음) 그렇게 학교에 가서 선생님께 20분정도 맞고 교실로 가기 싫어서 학교 뒷담을 넘고 산에 올라갔을 때, 이 산을 다시 내려가면 사막 같은 허허벌판을 만나겠다는 감정을 느꼈다. 이 영화의 마지막이 그런 감정으로 끝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마지막 엔딩 씬을 썼던 기억이 난다.

허남웅:
사실은 첫 번째 장면도 그렇고 마지막 장면도 그렇고 굉장히 태훈이나 미정이 어느 한쪽으로도 쏠리지 않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오토바이를 몰고 가는 첫 장면이 목적지는 없지만 계속해서 나아가는 청춘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미정이가 태훈이 힘들게 번 월급으로 산 목걸이를 달고 잇는 장면들도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의 이미지를 어떻게 생각하고 그려낸 것인가?
장건재: 원래 오프닝의 주유소 씬과 체육관 씬은 시나리오상 엔딩에 해당되는 에필로그 씬이였고 실제적인 완전 엔딩에 해당하는 장면이 원래는 오프닝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찍었는데 나중에는 영화의 에필로그가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에 올라갔을 때 이미 감정적으로 끝났는데 미정의 3개월 후, 태훈의 3개월 후의 이야기들을 추가로 담는 것이 뭔가 나를 망설이게 했다. 너무 결론 내어지는 것은 아닐까하고. 그래서 첫 오프닝의 주유소 씬은 삭제하려고 몇 번 시도를 했었다. 근데 어느 순간 태훈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미정의 이야기로 닫히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되서 영화전체가 플래시백이 되는데 그것이 어른이 되서 과거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고 기껏해야 고3정도가 되서 지난겨울을 회상하는 구조로 만들었다. 그리고 시나리오 상에서는 오토바이 씬에 내레이션이 있었다. 고3이 된 태훈의 입장을 설명하는 것인데 그것도 너무 규정짓는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배우들이 그 장면을 찍을 당시가 실제로 그들의 마지막 촬영이였는데, 그 친구들이 영화를 찍으면서 점점 사랑하고 헤어지고 하는 느낌을 정말로 아는 듯한 눈빛을 발견했다. 그래서 그 얼굴만 잘 담아낼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허남웅:
사실 청춘영화라면 약간은 경쾌한 것을 떠올리기 쉬운데 이 작품은 굉장히 잠잠하다. 청춘영화가 가진 클리셰들을 피해보고 싶은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닌가?
장건재: 청춘영화의 클리셰는 크게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폭발할 것 같은 에너지로 세상을 부수려고 하는 청춘을 담고 있는 영화와 정말 현실에 무기력하기 짝이 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만약에 입장에서 본다면 이 영화도 그것들에 자유롭지 못하다. 영화의 스타일을 정해 놓고 찍지는 않았다. 배우의 감정을 담아내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촬영했다. 그리고 어떠한 영화처럼 보이고 싶다던가, 어떤 영화의 감성을 흉내 내고 싶다던가하는 의도를 내비치지 않았다. 물론 레퍼런스로 삼은 영화들이 있었지만 그것이 극적으로 표현되진 않았다. 십대들이 나온 영화들을 워낙 좋아해서 영화 곳곳에 내 스스로가 알지 못하는 카피들이 있는 것 같다. 아마 영화 좋아하시는 시네필들은 눈치 채실 수도 있다.

허남웅: 참조로 삼은 영화들은 어떤 것인가?
장건재: 이거 영업비밀인데. (웃음) 말하면 순간 자유롭지 못하긴 하지만 기타노 다케시의 <그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는 강렬한 스토리가 없어도 감성을 전달할 수 있다는 확신을 준 영화였고, 차이밍량의 데뷔작인 <청소년 나타>라는 영화에서 공간성 같은 것들은 참조했다. 스타일적으로 그 영화가 준 감동을 표현하고 싶었다. 또 잘 생각나지 않지만 많은 영화들을 참조했다.

관객1: 목욕탕 갔다 와서 라면을 끓이는 장면이 인상 깊었는데 어떤 뜻으로 넣은 장면인지 듣고 싶다.
장건재: 고맙다. 목욕탕 갔다 와서 라면 끓이는 장면은 시나리오를 쓸 때 가장 머릿속에 선명하게 떠오르는 장면이었다. 현장에서 그 장면을 찍을 때 너무 기분이 좋았다. 데자뷰처럼 생각했던 이미지와 너무 똑같은 그림과 느낌이 나와서. 중학교 때 학교를 잘 다녔는데 고등학교 때는 학교를 생각나면 갔었다. 한번 빠지는 게 어렵지 두 번째부터는 쉬운 일이였다. 그때부터 십대가 어지럽게 펼쳐졌다. 어쨌든, 학교에 빠졌던 오전 10시, 11시 정도에 동네를 어슬렁 배회했는데 전에 한 십년 전에는 본적 없었던 풍경을 보았다. 남편 회사 보내고 골목에 나온 아주머니들, 할머니들, 옥탑방에서 빨래를 너는 사람들, 유치원 가는 아이들, 그 시간대에 동네에 재잘거리는 소음 등 이런 것들이 너무 강렬했다. 내가 못 봤던 풍경인 이유는 전에는 그 시간대에 학교에 있었기 때문이다. 근데 그 시간대의 정서와 공기가 여전히 내겐 너무 강렬하게 남아 있다. 물론 라면 끓이는 장면은 실외장면은 아니지만 그 시간대에 밖에서 들리는 소음들, 낮 시간대의 텅 빈집의 고요함, 혼자 남겨져 빈둥거리는 컷을 꼭잡아내고 싶었다. 롱테이크에 대한 욕심보다 그 느낌을 전달하고 싶었다.


관객2: 감독의 청춘시절 경험이 담긴 영화이다. 본인에게 청춘이란 무엇이고, 그 때 자신에게 돌아간다면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은지.
장건재: 청춘 시절을 낭만적인 느낌으로 접근하기 보단, 제 어린 시절을 반추하는 정도였고, 그때로 돌아가면 절대로 영화를 하지 않을 것이다. 극장에 다니지 말라는 조언을 해주고 싶다. 영화를 하는 게 재밌지만 지금 나는 너무 고통스럽고 힘들다. 지금이라도 나에게 다른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내일이라도 당장 영화 일을 그만둘 수 있다. 진심으로.
(정리: 배준영 시네마테크 관객 에디터)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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