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토크] <청계천 메들리>의 박경근 감독

최근 한국 다큐멘터리는 단순히 소재의 무거움에 함몰되지 않고 관객의 몰입도를 높이기 위한 다양한 형식의 실험과 사례의 활용으로 각광받고 있다. 이에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는 9월 1일부터 8일까지 '다큐멘터리의 진실의 정치학'이란 제하로 최근 한국 다큐멘터리의 주목할 만한 8편의 작품을 모은 특별전을 열고 있다. 이 중 지난 9월 2일 저녁에는 탈다큐멘터리적인 다큐로 새로운 형식의 보여준 <청계천 메들리>가 상영되었고, 상영 후 이 영화를 연출한 신예 미디어 아티스트 박경근 감독과의 대화가 이어졌다. 그 현장의 일부를 여기에 전한다.


허남웅(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이번 프로그램은 다큐멘터리 진실의 정치학이다. 보신 작품은 <청계천 메들리>. 박경근 감독님이 연출하셨는데 다큐멘터리면서 탈다큐적인 작품이었다. 다큐멘터리라고 프로그램에 넣었지만 애니메이션도 등장하고 극영화 같은 성격도 보인다. 음악사용도 독특했다. 단순히 다큐멘터리로 설명하긴 부족한 면이 있는 듯하다. 어떤 생각으로 작품 준비하셨는지 궁금하다.
박경근(영화감독, 미디어 아티스트): 2004년부터 미술가그룹에서 활동했다. 거기서 청계천 지역과 서울의 도시 환경을 기록하는 작업을 했다. 청계천을 아카이브화 하는 미술작업을 했다. 그러다가 지원을 받아 영상작업을 하게 되었고 제가 영상파트를 커미션 받아 하게 되었다. 청계천이 저에게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것은 서울의 얼마 남지 않은 역사의 흔적 같은 것이 남아있는 공간이라서 서울 어느 공간보다 자연스러운 공간인 것 같다. 흔적 같은 것이 자연스레 쌓여있는 공간, 그런 것에 매력을 느꼈다. 공포 영화세트 같은 매력적인 공간이다. 그래서 끌렸다.

허남웅
:
영화를 보면 개인사도 느껴진다. 어려서부터 감독님 아버님이 외교관이셔서 해외를 많이 돌아다녔다고 알고 있다. 그런 가족사로 들어가게 된 경위에 대해 알고 싶다.
박경근: 영화를 편집할 때 이 스토리를 어떻게 만들까 고민을 많이 하는데 사실 찍을 때는 아무 생각 없이 찍었다. 매일 가서 일상적인 것을 찍고 재미있는 일 생기면 찍었다. 다큐 작업이 거의 70~80퍼센트는 편집으로 만드는 것 같다. 편집하면서 스토리들을 만들어 나갔다. 개인적인 이야기 중 반은 픽션이고 반은 사실이다. 하지만 편집에서 지키려고 노력한 건 하나 있다. 항상 내가 외부인의 시선을 가지고 있다는 걸 숨기지 말아야겠다는 것이다. 제가 청계천에서 자란 것도 아니고, 말씀하셨듯이 외국에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외부인으로써 들어가서 카메라 앞의 대상들과 생기는 관계, 거기서 생기는 충돌들을 드러내고 싶었다. 그런 부분을 신경 많이 썼다.

허남웅: 거창하지만 다큐멘터리의 윤리라고 하면 진실을 말하는 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감독님은 픽션이 가미 되었다고 하셨는데.
박경근: 일반적으로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 다큐멘터리는 픽션적인 부분이 많다. 진실이다, 믿어라 하는 다큐멘터리는 싫어한다. 왜냐면 어차피 카메라를 들어서 들이 대는 게 가공이다. 그걸 무시하고 작업을 진행하면 허상이 너무나 자세하게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지 자체가 허상이라는 걸 인식하면서 작업하는 것과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차이가 많은 것 같다.

허남웅
:
이 다큐멘터리는 탈다큐멘터리적인 형식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 보면 청계천의 쇠를 다루는 노동자, 그러니까 쇠를 가지고 이야기를 다룬다.
박경근: 제가 이걸 찍을 때 이런 형식을 하겠다라는 생각은 안 했다. 찍고 편집하려다 보니 뭔가 이게 기존 방식으로 표현하려던 것들을 못하는 한계에 이르렀다. 내용이 큰 드라마가 있는 것도 아니고 투쟁을 하는 것도 아니고 중요한 건 청계천에 대한 뭔가 보편적인 의미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하다가 이런 형식이 되었다.

허남웅: <청계천 메들리>가 영화제에서 주로 상영되었다. 아직 정식 개봉을 한 것은 아니다. 극장에서 상영이 되기도 했지만 설치미술로 전시되기도 했다. 사실은 아핏차퐁 감독의 <엉클 분미>도 그런 형태로 작업이 이루어졌는데 그런 부분에 대해 더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다.
박경근: 미술하는 사람이 영화를 만들고 하는 게 많이 있는데, 요새는 더 많이 부각 되는 것 같다. 본질적인 의미에서 경계는 없다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영화라는 자체가 이미지로서 체험하는 것이라 내러티브가 있던 없던 우선 이미지로 체험하고 그 후에 이야기를 받아 들인다고 생각한다. 제가 미술관에서는 설치미술을 내러티브없이 이미지로만 5채널로 5개의 스크린으로 했는데 이미지로 표현이 다 되었다고 생각한다. 미술관과 영화관이 이미지를 체험하는 방식이 궁극적으로는 비슷하다고 본다.


허남웅: 갑자기 궁금해진다. 감독님의 직업이 영화감독인지 미디어 아티스트 인지?

박경근: 영화관에 오면 감독 미술관가면 작가라고 한다.

허남웅: 인간의 역사라기보다 쇠의 역사를 통해서 인간을 본다라는 느낌이 있다. 인간이 오히려 뒤로 물러나는 느낌을 받았다. 이걸 처음부터 의도 하신 건지? 편집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인지?
박경근: 그 아이디어는 촬영하면서, 관찰하면서 생각한 건데 여기 나오는 기술자 분들의 종목,  예를 들어 선반 돌리는 분, 쇠 주물을 하시는 분, 목형 만드시는 분, 이런 다양한 기술하는 기술자 성격이 달랐다. 주물은 작업을 같이해야 한다. 누가 쇠를 부으면 누가 받아야 한다. 영화에 나왔듯이 여러 명이 작업한다. 그래서 사람간의 관계가 더욱 친밀하고 더욱 끈적한 관계다. 맨날 작업하다가 술 마시러 간다. 그러나 정밀분야는 항상 혼자다. 정밀은 세밀하게 1mm 가지고 고민한다. 그렇다면 이분들의 성격을 사실 그러한 쇠 자체가 바꾸는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따지면 인간이 쇠를 다루는 게 아니라 쇠가 인간을 다듬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이야기를 확장하자면 문명에 대한 이야기도 되겠다. 산업화가 인간을 위한 게 아니라 산업화를 위해 인간이 희생되는 주체 객체가 바뀌는 그런 현상이 생각 외로 많은 것 같다.

허남웅: 감독님의 작업은 정체성을 찾아가는 작업으로 보인다.
박경근: 제 생각에는 종은 창작물은 자기에 대한 성찰이나 반성이 들어가 있지 않으면 힘이 없다고 보인다. 카메라 앞의 대상만 중요시하는 진실을 봐라이런 류의 다큐의 힘이 부족한 이유가 예전 보다 정보가 많고 이야기도 많다. 그래서 무슨 이야기보다는 그 이야기를 어떻게 전달하고 누가 이야기할건지가 중요해 질 것 같다. 좋은 작품은 자아성찰이나 자기의 반성이 꼭 들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허남웅: 이번 작업 끝내고 또 다른 계획이 궁금하다.
박경근: 다음은 군대에서 있던 일을 소재로 다루려고 한다. 악몽 시리즈의 하나다. 사회가 문제지만 나의 문제이기도 하다. 내가 가진 문제들이 사회 문제기도 하다.

허남웅: 한국인이라면 군대체계가 우리 사회에 박혀있어서 이것이 공포로 다가온다. 감독님에겐이것이 더 크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박경근: 군대는 싫다. 다 똑같이 느낄 거다.

허남웅: 이 작품을 보면 경계의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것이 경계에 있고 다큐멘터리면서 아닌 부분도 있고 말이다. 어느덧 시간이 지나 마무리를 지어야 할 때다. 끝으로 다큐멘터리 작업하시면서 매체의 매력, 여전히 알 수 없는 미지의 것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박경근: 매체는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닌 것 같다. 매체를 쓸 때 그 매체를 어떻게, 누가 쓰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미디어 아트의 장점은 빛을 이용한 장점이라고 본다. 기존의 조형물 보단 더 가벼운 표현방식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동시성, 그런 것 들을 포착해내는 것이 미디어 아트가 아닌가 정의를 내리고 있다.

정리: 정태형(관객 에디터) 사진: 조유성(자원 활동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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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 다큐멘터리는 단순히 소재의 무거움에 함몰되지 않고 관객의 몰입도를 높이기 위한 다양한 형식의 실험과 사례의 활용으로 각광받고 있다. 9월 1일부터 8일까지 열리는 '다큐멘터리의 진실의 정치학' 전은 언급한 특징을 보여주는 최근 한국 다큐멘터리의 주목할 만한 8편의 작품을 모은 특별전이다. 상영되는 8편의 작품을 중심으로 한국 다큐멘터리의 최근 경향이라 할 만한 움직임을 추적해본다.

서울아트시네마의 9월 프로그램 중 하나로 ‘다큐멘터리 진실의 정치학’을 마련한 건 극영화 일색의 극장가에 그 비중과 비율을 높여가고 있을 만큼 한국 다큐멘터리가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 상반기만 하더라도 <쿠바의 연인> <오월愛> <종로의 기적> 같은 작품이 예술영화전용관에서 높은 좌석점유율을 기록했고 <트루맛쇼>의 경우, 관객의 입소문을 타고 멀티플렉스로 상영관을 늘려가며 1만 명을 훌쩍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언급한 작품의 선전에 힘입은 걸까. 이후 개봉 대기 중인 한국 다큐멘터리는 <꿈의 공장> <용산> <청계천 메들리> <하얀 정글> 등 10여 편에 달한다.

‘재미’를 사수하라
최근 들어 두드러지고 있는 한국 다큐멘터리의 부상은 관객의 인식 변화에 기댄 바가 크다. 일례로, 이충렬 감독의 <워낭소리>(2009)가 유례없는 300만 관객을 동원하고 <아마존의 눈물>과 같은 TV프로그램이 기대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다큐멘터리는 지루하고 계몽적이라는 저간의 편견을 불식시키고 볼만하다는 인식을 심어줬다. 실제로 올해 화제를 모았던 다큐멘터리를 보면 진실추구라는 다큐멘터리의 본령 외에 ‘재미’를 동일선상에 두고 이야기를 풀어간 작품들이 눈에 띈다. 정호현 감독의 <쿠바의 연인>은 쿠바 남자와 한국 여자의 사랑 속에서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는 양국 간의 문화적 차이를 발랄하게 풀어냈고 이혁상 감독의 <종로의 기적>은 기성세대의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한 동성애자들이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밝게 생활하는 모습을 강조했으며 <트루맛쇼>는 TV맛집 프로그램의 조작 실태를 몰래카메라라는 코믹한 형태로 구성해 고발의 경직성을 완충했다.
이들 작품이 흥행 면에서 성공을 거두었다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쿠바의 연인>, <종로의 기적> 5천 명, <트루맛쇼> 1만 2천 명의 관객동원) 다큐멘터리를 낯설어 하는 관객들로 하여금 극장의 문턱을 낮춘 것은 사실이다. 시대가 예전 같지 않아서 창작자의 진정성에 기대 호소하는 방식만을 가지고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들이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시위도 놀이로써 소화하는 세대가 등장했고 아무리 선의를 가진 목적의 행위라도 감성을 건드리지 않으면 지지를 얻기 힘든 시대가 도래했다. 유행에 민감한 메이저 극영화의 경우, 시대의 감성에 발맞춘 결과물로 발 빠르게 관객과 호흡했지만 다큐멘터리는 장시간의 제작 기간을 필요로 하고 (예컨대, 김동원 감독의 <송환>의 경우, 12년의 제작 기간, 500개의 촬영 테이프, 800시간의 촬영 분량이 소요됐다!) 소재와 주제의 성격이 직선적인 탓에 매니악한 작품으로 분류되어 다수의 관객과 만나기에는 애초에 한계가 존재했다.
<워낭소리>가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는 것은 흥행성적을 떠나 다큐멘터리로는 드물게 시대의 감성을 단적으로 드러낸 텍스트로 작용했다는 점이다. 산골 노인부부와 함께 사는 늙은 소의 이야기를 다룬 <워낭소리>는 자연과 멀어진 도시인들에게 하나의 스펙터클로 작용하며 예상 밖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빌딩숲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워낭소리>의 자연은 평상시 보기 힘든 볼거리였고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초월한 할아버지와 소의 우정은 경쟁과 약육강식의 사회생활 속에서 잊힌 가치를 떠올리게 하는 감정의 도르래였다. 그런 관점에서 <쿠바의 연인>이나 <종로의 기적>, <트루맛쇼>는 모두 어떤 시대적 감성을 자극하는데 탁월한 연출을 보여준다. <쿠바의 연인>은 한국의 익숙한 풍경으로 자리 잡은 국제커플 중 한 쌍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되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문화적 차이를 좁혀가는 에피소드가 공감대를 형성했다. <종로의 기적>은 게이커뮤니티가 활발한 종로를 상징적인 배경으로 삼지만 특정 공간에 몰아넣지 않고 여러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게이들을 통해 (여전히 편견이 존재하지만) 좀 더 다변화한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트루맛쇼>는 맛에 대한 관심이 과열되고 있는 이때 TV맛집 프로그램의 허구를 전시하며 천박한 우리네 맛의 감식안을 폭로했다.

모든 영화가 시대와의 접점 없이 시장에서 살아남기 힘들지만 진실 추구와 고발, 폭로와 같은 정보제공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다큐멘터리에게 있어 동시대성은 가장 중요한 영화적 좌표다. 이에 더해 무거울 수밖에 없는 메시지의 효과를 최대화하기 위한 화법의 선택, 즉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유용한 방법으로써의 재미 추구는 또 하나의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다. (이는 <볼링 포 컬럼바인>(2002) <화씨 9/11>(2004) 등을 연출한 마이클 무어가 선구자라 할만하다) 다만 이는 최근 한국 다큐멘터리가 보여주는 여러 경향 중 하나로 생각해야지 모든 작품에 적용되는 연출은 아니다. 한국사회에 갈수록 만연한 불순(?)세력의 정보 차단 현상과 맞물리면서 한국 다큐멘터리는 다종한 소재와 다기한 형식으로 진화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진실'을 추구하라
하반기로 접어들면서 진실과 고발이라는 다큐멘터리 본연의 기능에 충실한 한편으로 다양한 형식적 실험을 감행하는 작품이 집중되고 있다. 이런 경향의 기저에는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사회적 특수성이 어느 정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사회비리에 대한 감시 역할을 수행하던 TV시사고발 프로그램의 기능이 현저히 약화되기 시작하면서 구멍 뚫린 국민의 알권리의 일부분을 다큐멘터리가 메우고 있는 것. 개봉을 앞둔 김성균 감독의 <꿈의 공장>과 송윤희 감독의 <하얀 정글>은 물론이고, 여러 경로를 통해 관객과 소통하고 있는, 그리고 '다큐멘터리의 진실의 정치학'에서 주요하게 소개되는 태준식 감독의 <당신과 나의 전쟁>, 이강현 감독의 <보라>, 문정현 감독의 <용산> 모두 우리의 생존권과 밀접하게 관련을 맺고 있는 문제들을 정면에서 응시한다.
<꿈의 공장>은 세계적인 브랜드로 떠오른 국내 최대 기타회사 콜트/콜텍의 횡포에 맞선 노동자들의 투쟁을, <하얀 정글>은 타인의 생명을 다루는 고귀한 의료 행위가 장삿속으로 변질된 한국 의료계의 검은 실상을, <당신과 나의 전쟁>은 당신과 나, 우리 모두의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무관심 속에 그들만의 투쟁으로 전락한 쌍용 자동차 노동자들의 파업을, 1년 동안 촬영한 기록물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보라>는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상시고용 50인 이상 300인 이하 사업장의 근로자는 해당 사업장의 보건 관리 업무를 맡은 보건관리대행기관의 산업의학전문의에게 3개월에 한 번씩 보건관리를 현장에서 받는다)에 근거하여 이뤄지는 현장 보건 관리의 실체를, <용산>은 2009년 1월 거리로 내몰린 용산 철거민을 비롯해 6월 항쟁의 이한열 열사, 광주민주항쟁의 시민까지, 죽음으로 내몰리는 약한 자의 현실을 다룬다.


특히 이들 작품은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상의 풍경임에도 불구하고 주류 언론의 은폐 속에 무관심으로 내몰리는 이슈를 향한 진실의 정치학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런 종류의 다큐멘터리는 작품의 유효성이 극장 안에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극장 밖의 현실로 연장될 때 그 진가를 발휘한다. 이를 '다큐멘터리가 현실을 바꾼다'는 의미로 비장하게 해석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사회적인 경각심을 일깨울 수 있다는 가능성에 무게를 둘 때 비로소 관객의 접근이 용이해진다. 사실 다큐멘터리의 본질은 미처 깨닫지 못했거나, 관심을 두지 않았던 현상에 카메라를 밀착함으로써 우리의 본모습을 폭로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더 정확히는 겉으로 드러난 사회적 현상의 이면을 들추는 이들 작품을 통해 우리 사회를 작동하는 시스템의 실체를 알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앞서 언급한 다큐멘터리들이 현재는 미지의 작품으로 남아있는 만큼 관객의 호응도를 미리 재단할 수 없지만 다루는 소재는 우리 사회에서 첨예한 이슈거리인 까닭에 익숙하게 다가올 가능성이 크다.



잠시 언급을 보류했지만 박경근 감독의 <청계천 메들리>는 좀 다른 경우에 해당한다. 해당 소재가 내포한 사회적 파급 효과에 중요성을 부여하는 영화들에서 더 나아가 형식적인 실험에 더욱 힘을 기울인다. <청계천 메들리>는 서울 청계천에서 쇠를 다루는 영세한 공장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삶의 현장을 카메라에 담는다. 단순한 현실의 기록을 넘어 이들의 작업을 중심으로 기록화면과 멀티이미지의 향연 속에 한국과 일본, 근대와 현대를 넘나들며 쇠의 사회학을 구성하는 것이다. 이렇게 알게 모르게 진화하고 분화되는 한국 다큐멘터리의 영토 확장 배경에는 저 너머의 진실을 찾겠다는 창작자의 용기 있는 태도가 짙게 배어있다. 이 용기의 정체는 진실 탐구에 따르는 위험과 인내심의 감수와 더불어 이를 최대한 정확하게 알리겠다는 창작자의 사명감의 결합에서 비롯된다. 다만 다큐멘터리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구국의 결단에 방점을 찍기보다 작품의 미학성도 놓치지 않겠다는 창작자의 정체성 또한 확연히 드러난다. 진실과 재미의 순간을 목도하라, 이것이 한국 다큐멘터리가 추구하는 미학의 현주소다.

글/허남웅(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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