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1일 저녁, 프랑수아 트뤼포의 <쥴 앤 짐>을 추천한 윤진서 배우와 함께 영화를 관람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네토크가 열렸다. 윤진서 배우가 친구들로서 처음 참여하는 자리였던 만큼, <쥴 앤 짐>을 극장에서 처음 보게 된 감상과 더불어 연기나 한국 영화에 대한 고민과 문제의식, 프랑스 예술에 대한 그녀의 깊은 애정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을 전해들을 수 있던 시간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 서로에게 깊이 몰입했던 시네토크의 현장을 전한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예전에 영화잡지에 썼던 칼럼에서 극장 공상에 대해 썼던 글을 인상적으로 기억한다. 홍대에 여러 유형의 극장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것과, 시네마테크의 어려움을 근심하는 글이었다.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 친구로 참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시네마테크 후원 촬영도 했었고, 극장에 대한 관심으로 이미 시네마테크와 인연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처음 선택작을 제안했을 때, 되돌아온 세 편의 영화가 모두 프랑스 영화들이었다. 에릭 로메르의 <녹색 광선>, 뤽 베송의 <레옹>, 또 한 편이 오늘 본 프랑스와 트뤼포의 <쥴 앤 짐>이었다. <쥴 앤 짐>에 대해 윤진서씨가 썼던 짤막한 글을 기억하는데, 프랑스 영화에 대한 매혹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윤진서(배우): <쥴 앤 짐>, <녹색광선>, <레옹>을 추천했던 이유는 자라면서 세 영화를 다 극장에서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들을 극장에서 보고 싶다는 생각에 개인적인 욕심으로 선택했었던 것 같다. 다 고르고 나서 친구가 ‘세 편 다 프랑스 영화’라고 해서 나중에야 그렇다는 것을 깨달았었는데, 그 말을 다시 듣게 된다. 내가 극장에서 보고 싶은, 볼 수 없을 것 같은 영화를 골랐다. (웃음) 이 영화는 DVD를 갖고 있어서 자주 보는 영화다. 틀어 놓고 아침 요리를 하기도 하고 스트레칭을 하면서 잠을 깨기도 한다. 그런 것까지 따지면 100번은 본 것 같은데 극장에서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역시 극장에서 보니까 표정들이 좀 더 잘 보인다. 제가 좋아했던 장면 중 하나가 포즈 효과로 잔느 모로의 얼굴을 보여주는 장면인데, 지금까지 볼 때에는 잔느 모로의 표정이 굉장히 상반되게 느껴지지 않았는데 크게 보니까 확실히 상반되어 보인다. 극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거라 색달랐던 것 같다.


김성욱:
<쥴 앤 짐>을 좋아하게 됐던 건 잔느 모로 때문인가, 아니면 그녀가 연기한 카트린이라는 여자의 캐릭터 때문인가? 아마도 둘 다일거라 생각하는데, 이 영화에 출연했던 잔느 모로의 나이가 당시 34살 정도였다고 한다. 60년대 초반에 보여준 잔느 모로의 연기 중에서 가장 쾌활하고 발랄하면서 매혹적이라는 생각이다.

윤진서: 잔느 모로와 카트린, 두 사람 다 매혹적이다. 프랑수와 트뤼포 감독의 영화도 좋아한다. 당시 만들어졌던 프랑스 영화들의 캐릭터가 대부분 자유분방하고 요즘보다 훨씬 더 자신의 생각이나 삶의 관습에 얽매이지 않으려는 모습이 많더라. 당시엔 카트린이 그다지 특별했었던 캐릭터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작가주의 영화들의 캐릭터들은 대부분 그랬던 것 같다. 그럼에도 잔느 모로라서 더 특별하고 매혹적인 부분은 있는 것 같다.


김성욱:
당시 반응을 보면 카트린의 도덕적 태도에 대해서는 당시 프랑스 사람들도 고개를 갸우뚱했던 게 있었던 것 같다. 한 명의 여자가 두 명의 남자를 동시에 사랑할 수 있는가, 한 여자를 사랑하면서도 두 남자가 우정을 지속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이 제기되는데 이 영화는 답변을 정확하게 표현하지 않는다. 카트린의 역할을 배우로서 연기하게 된다면 이런 상황에 대한 감정을 사전에 미리 정해두고 할지, 아니면 매 순간마다 즉흥적으로 연기를 할지 고민에 빠지지 않을까.

윤진서: 많은 고민이 될 것 같다. 어쨌든 카트린 같은 연기를 해 본적이 없어서 잠깐의 생각으로 말씀 드리기엔 버거운 대답이다. 살짝 비슷한 경험이 있기는 하다. 쌍둥이를 사랑한 연기를 해 본 적이 있는데, 상황마다 분위기라는 것이 있지 않나, 또 그 상황을 설정한 감독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이해되는 부분들이 있더라. 특정한 분위기에 매혹 당하는, 즉 무드나 분위기에 약한 캐릭터가 여성에게 더 많기 때문에 그런 것을 드러내는 연기를 하는 거다. 잔르 모로도 무드에 약하고 그런 부분들을 즐기기를 더 원했던 것 같다.


김성욱: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영화 촬영 현장이 어땠을까 궁금증이 생긴다. 실제로도 즐겁고 흥겹게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특히 잔느 모로가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실제로는 NG 장면에 가까운데, 그게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즉흥적이라서 트뤼포가 그 장면을 그대로 썼다고 하더라. 영화 촬영 당시에도 잔느 모로는 노래를 많이 불렀다고 하고, 촬영장에서나 이 영화에서 트뤼포는 배우에게 많이 의존했다고 한다. 영화 작업을 할 때 배우로서 스태프나 감독과의 관계에서 어떤 식으로 집중성과 친밀성을 만들어가는지, 그 과정을 어떻게 느끼는지 궁금하다.

윤진서: 그 과정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도 생각을 한다. 보통 3~4개월 정도 한 현장과 공간에서 70~80명의 사람이 오면, 배우들은 컨디션과 집중을 위해 원하는 것들이 있고 제작팀은 빠른 제작을 위해 원하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그렇게 각자 나름대로 원하는 게 많기 때문에 뒤에서는 항상 트러블이 있는 게 현장이다. 배우는 감독과 그 모든 것들의 분위기를 주도하는 역할인데, 그것이 처음부터 끝까지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가의 문제가 사실 연기에 밀접한 영향을 준다. 자유롭고 모두가 편안할 수 있는 분위기가 주어지면 사실 연기할 때도 편하고 상상한대로 표현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다. 분위기가 뭔가에 눌린다거나 트러블이 있는데 숨기고 모르는 척 연기에 집중하려고 하면, 스스로 그 고민의 모습이 보일 때가 있고, 나중에는 관객이나 감독에게도 꼭 들키게 되더라. 제가 경험했던 최고의 영화 현장은 박찬욱 감독님과 <올드보이>를 할 때였는데, 모든 게 완벽했었다. 모든 스태프들과 감독이 스스로 원해서 영화 얘기를 하고, 촬영이 없는 날에도 배우들끼리 영화 애기를 하면서 모두가 <올드보이>라는 작품에 미쳐있는 거다. 누군가 앞으로 그런 현장, 배우, 감독을 만나기가 힘들 수도 있다는 말을 하더라. 그런 분위기는 운명처럼 탁 만들어지는 게 있는 것 같다.



김성욱: 영화에서 인상적으로 느꼈던 장면을 좀 묻고 싶다.

윤진서: 초반에 나오는 떼레즈라는 여자가 나 좀 데리고 자달라며 집에 가서 담배 연기로 증기기관차 모양을 만들지 않나. 어려서 봤던 거라 처음에는 이 장면이 충격적이었는데 그 시퀀스가 잔느 모로의 또 다른 캐릭터라는 느낌이 들어서 재미있게 봤었다. 또 그 장면에서 노래가 나오는데, 처음엔 정말 이상하다고 느껴졌던 여자가 그 노래하나로 갑자기 자유분방하고 매력적인 여자로 변하더라. 그 노래의 힘을 느끼면서 재미있어했던 기억이 난다.


김성욱:
이 영화는 어떤 기회로 처음 보게 되었나.

윤진서: 잘 기억은 안 나는데 대학 시절에 봤던 것 같다. 연기를 전공하고 영화를 공부하는 사람이니까 수많은 좋은 영화들을 보고 노트를 했어야 됐었다. 여러 영화를 많이 봤었는데 그 중에 하나였다. 사전 지식하나도 없이 봤는데 좋아서 다른 영화들을 찾아보고 그랬다.


김성욱:
연기의 영역은 비평가들도 굉장히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연기자로서 잔느 모로의 연기를 보면서 어떤 점들을 많이 느꼈는지 궁금하다. 특정한 장면이나 순간에 주목한 부분이 있는지? 배우로서 잔느 모로의 연기에 어떤 흥미를 갖는 지점들이 있었을 것 같다.

윤진서: 쥴과 짐의 대화중에 카트린에 대해 말하는 부분이 있다. 그렇게 예쁘지도 않고 지적이지도 않지만 진정한 여자라는 말을 하는데, 그것을 감독이 표현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냥 잔느 모로 자체가 그런 향을 풍기는 여자였던 것 같다. 트뤼포는 그것을 보고 캐스팅을 했던 것 같고, 마음껏 표현할 수 있도록 해줬을 것이다. 다른 배우들이 어떤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을 보면, 사적으로 알고 있는 그 사람과 영화 속에서 나온 그 사람이 그렇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어쩔 수 없이 그 사람이 갖고 있는 표정, 삶의 습관이나 방향, 살고 싶어 하는 철학 같은 것들이 그들의 얼굴에 반영되고 또 연기하는 스킬에도 반영되는 것 같다. 잔느 모로의 연기는 그냥 잔느 모로가 저런 여자이지 않았을까 한다. 굉장히 자유롭고 내재되어있는 것들이 많아서 어디론가 튕겨져 나가버리고 싶은 욕망을 갖고 있지 않았을까? 영화를 촬영할 당시 34살 무렵이라고 했으니 특히 더 그랬지 않았을까 싶다.



관객1:
영화제 동안 서울아트시네마를 꽤 많이 찾았는데, 40대의 감독님들만 뵙다가 여배우님을 뵙게 되니 너무 좋다. 트뤼포 감독이 일생 동안 2만 편 정도의 영화를 봤다고 하던데, 배우로서 얼마나 많은 영화를 보시는지 궁금하다. 또 이런 공간을 많이 찾아주셨으면 좋겠는데 어떤 영화를 위주로 보시는지도 궁금하다.

윤진서: 집중해서 보는 건 작품을 하지 않을 때에는 하루 두 편 정도인 것 같다. 촬영을 할 때는 수면시간이 3~4시간 정도라 일주일에 한 편 정도를 본다. 오늘 이 행사 때문에 온 스태프가 다 쉬고 있어서 저한테 고마워하고 있다.(웃음) 요즘 같은 경우에는 영화를 볼 수 없어서 잠이 안 오고 있다.(웃음) 촬영한 지 두 달 됐는데, 영화관에 와서는 한 네 편정도 본 것 같다. 집에서는 틀어 놓고 자는데, 그런 것까지 하면 많이 보는 것 같다. 음악이 좋은 영화들이 있지 않나.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그녀에게> 같은 영화를 틀어놓고 커피를 마시면 좋더라. 그냥 많이 틀어 놓는다. 영화를 옆에 두고 싶다.

김성욱: 박중훈 씨도 <스카페이스>를 50번 이상 봤다고 하던데, 왜 그렇게 한 영화를 오래 보게 되는 거 같나. 배우로서 특별한 걸까.

윤진서: 이번 영화제 추천작으로 고른 세 편의 영화가 다 프랑스 영화였는데 그저 제 취향이 프랑스 영화에 더 공감되는 게 많아서인 것 같다. 새로 나온 영화보다 살면서 내가 좋아했었던 열편의 영화를 한 번 더 보는 게 마음에 위안이 되고 용기를 얻게 되고 영화를 하고 있다는 게 더 좋고, 그런 것 같다.


관객2: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게 되어 기분이 좋다. <쥴 앤 짐>의 엔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또 최근에 본 영화중에서 추천해줄 만한 다른 영화가 있는지 궁금하다.

윤진서: 이 영화가 이렇게 끝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녀의 추한 모습을 더 이상 보여주지 않아서 이 엔딩이 마음에 든다. 최근에 봤던 영화는, 엊그제 잠을 포기하고 <범죄와의 전쟁>을 봤는데 너무 재미있었다. 그 영화를 보고 나서 질투가 났다. 저도 그렇고, 그런 영화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호감과 호기심을 갖더라. 보면서 질투가 났던 건 “이런 영화가 나와야지”하는 그 말이 맞기 때문이었다. 남성적인 기운을 뽑아내는, 관객들을 끌어 모으는 매력 코드를 한국 영화 안에 갖고 있다는 게 질투가 난다. 관객들을 한 번에 끌어 모을 만한 장르와 뭐라고 딱 설명할 수 없는 힘이 여배우들에겐 아직 없어서 무조건 질투가 나고 부러웠다.



관객3: 윤진서씨가 감독을 준비하고 있다는 얘길 들었는데, 어떤 영화를 연출할 계획이 있나?

윤진서: 저는 지금 처음 듣는 얘기다.(웃음) 칼럼을 쓰다 보니 어떤 감독님들이 시나리오를 써보라며 제가 상상도 못했던 일들을 농담으로 얘기하시더라. 글쎄, 영화를 많이 좋아한다. 그리고 또래의 다른 여배우들보다 좀 더 영화를 많이 보는 것 같고, 책을 많이 본다거나 그렇게 느껴지니까 그런 생각이 있냐고 질문들을 하시는데, 그저 배우로서 많이 읽고 많이 보는 거다. 감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아직 없다. 그 힘든 일을 왜 하나.(웃음)

김성욱: 질투 얘기를 하셔서 최근에 본 영화중에서도 질투를 느낀 게 있는지 궁금하다. 배우 때문에 질투를 느끼는 경우도 있었을 것 같은데.

윤진서: 질투를 느꼈던 캐나다의 감독이 있다. 89년생인 자비에 돌란이라는 감독인데 <하트비트>라는 영화로 상을 받았고, 한국에서도 상영이 됐다. 개봉했을 때 그 ‘아이’의 영화를 보러 갔었다. 마지막에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데 감독부터 각본, 의상, 미술, 편집, 제작, 배우까지 모든 것에 다 참여를 했더라. 인터뷰에서 “이성을 잃은 사랑만이 우리가 솔직해지는 순간이다. 그 외에 사람들은 다 거짓말을 하고 산다. 나는 그 얘기를 하고 싶었다.”라고 했는데, 어떻게 이걸 표현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고 보러 갔었다. 딱 89년생의 눈으로 표현이 됐더라.


김성욱:
잔느 모로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브리지트 바르도라는 스타 배우가 있었다. 그녀는 마흔 살 무렵에 은퇴했지만, 잔느 모로는 80을 넘겨서도 연기를 계속하고 있다. 사실 프랑스에서도 30~40대를 넘기면서 여배우가 연기를 지속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작년에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됐던 <아리아리 한국영화>라는 한국영화에 관한 다큐멘터리에 정지영 감독과 함께 작업을 했는데, 한국 영화의 현장을 찾아다니면서 인터뷰 했던 게 독특한 경험이었을 것 같다. 한국 영화 내에서 배우로서 느끼는 점들도 있었을 것 같다.

윤진서: <아리아리 한국영화>에는 우연한 기회로 출연하게 됐다. 전에 매니저 일을 해주던 언니와 다시 만나는 자리에 <부러진 화살>의 정지영 감독님과 그 다큐멘터리 제작을 같이 기획하셨던 감독님이 계시더라. 한국영화 현장을 돌면서 현실이 어떤지, 배우들의 자세는 어떤지, 대기업들과 감독들의 마찰 같은 것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찍고 싶은데 3일 정도만 나와서 인터뷰어로 해줄 수 있냐고 하시더라. 아무도 안 볼 것 같아서, 배우가 나오면 좋을 것 같은데 한국영화에 대해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며 제안을 하시더라. 처음엔 3일이라고 제안을 받았는데 촬영이 3개월을 갔다.(웃음) 영화학자들부터 봉준호, 박찬욱 같은 감독이나 안성기, 문소리, 김혜수 같은 배우들뿐만 아니라 원로 배우들까지 다 만났다. 한국영화의 현실이 많이 들어가 있다. 영화 일을 하면서 그런 것까지 자세히 알게 되지는 않는데 개인적으로도 나는 영화 일을 왜 하고 있고, 특히나 한국이라는 곳에서 배우라는 직업에 대해 회의를 갖지 않고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심각하게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 또 나만 이런 게 아니라 다른 배우나 감독들도 같은 고민들을 하고 있구나, 라는 것들을 다시 느끼게 됐던 것 같다. 처음엔 그분들을 만나 영화에 대한 생각을 얘기한다는 것 자체가 어렵고 두려웠다. 또 한국이란 나라가 자기 생각을 젊은 사람이 얘기하면 되바라져 보이는 경우가 많아 고민이 많았는데, 그게 나의 선입견과 오해였다는 걸 알았다. 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을 자세가 되어있었는데, 으레 겁먹고 저처럼 뒤로 숨어버리는 일이 많았던 것 같다. 비단 영화계뿐만이 아니라 다른 예술계에서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 같더라. 지금은 어르신들을 만나도 하루 종일 술 마시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아이가 된 거다.


관객4:
트뤼포가 이 영화를 만들었을 때 어렸던 걸로 기억하는데, 원작자는 70살이 넘은 노인이 젊은 시절을 회상하면서 쓴 소설이라고 했다. 나중에 트뤼포가 노년의 감성을 이해하지 못해서 이 영화에 관능이 부족하다고 말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트뤼포가 죽기 직전에 이 영화를 만들었으면 어땠을까를 묻고 싶다.

윤진서: 트뤼포가 50대에 찍었으면 베드신을 하나씩 꼭 넣지 않았을까.(웃음) 그런 장면이 하나쯤 있어도 재미있을 것 같다. 상상하고 싶다.

김성욱: 이 영화를 만들 때는 트뤼포가 굉장히 수줍음이 많았던 시기다. 말씀대로 가정했더라면, 그보다는 훨씬 더 진전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윤진서: 영화에서 짐이 쥘베르트에게 하는 대사 중에 아침에 떠나면서 “내일 당장 내가 없으면 널 내버리는 느낌일 거고, 내일도 있으면 우린 부부 같을 거야”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는데, 만약 베드신이 있었다면 쥘과 짐의 반응이 다를 것 같아서, 그것도 재미있었을 것 같다.


관객5:
이 영화의 잔느 모로에 대해 세기의 캐릭터라고 말씀을 해주셨는데, 잔느 모로라는 배우나 그 캐릭터에 대해 따라 하고 싶은 부분이 있는지, 아니면 롤 모델로 삼고 싶은 배우가 있는지 궁금하다.

윤진서: 잔느 모로도 좋아하고, 요즘에는 마리옹 꼬띠아르라는 배우를 굉장히 좋아한다. 그게 시기마다 변하긴 한다. 1년 전부터는 마리옹 꼬띠아르를 많이 좋아하고 있다.


김성욱: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전해 달라.

윤진서: 오늘 <쥴 앤 짐>을 같이 보게 되어 너무 즐거웠다. 또 이렇게 좋은 영화를 같이 보고 얘기하는 날이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 시네마테크가 영원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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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 『분노하라』는 한 프랑스 노투사의 짧은 외침이 담긴 책이 한국에 출간되면서 큰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단 몇 십 페이지에 불과한 소책자가 프랑스에서만 60만부가 넘게 팔리며 화제가 되었는데, 레지스탕스 정신의 현대적 부활을 요구하는 이 책에서 저자(스테판 에셀)는 흥미롭게도 트뤼포의 영화 <쥴 앤 짐>에 대해 주목할 만한 이야기를 털어 놓는다. 세 살 때 그의 어머니(엘렌 에셀)가 아버지(프란츠 에셀)의 절친한 친구인 앙리 피에르 로셰(원작 소설 『쥴 앤 짐』의 저자)와 사랑에 빠져 함께 살게 된 경험을 밝히면서 이후 그가 견지하게 된 윤리관을 이렇게 밝힌다. “제 입장에서 어머니가 아버지 아닌 다른 남자와 산다는 것은 거슬리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도 그 사랑에 동의했으니까요. 아버지는 이를 비도덕적인 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일찍부터 저는 세간의 도덕이나 윤리 같은 것과는 거리를 두게 된 것 같습니다. 결국 도덕이란 타인들과 사회가 만들고 우리에게 강요하는 규범에 순응하는 것일 터입니다. 또 윤리란 완성된 것이 아니라 여전히 만들어가야 할 것, 즉 발명이며 창조(말하자면 결국 각자 자기만의 자유를 얻어내는 일)일 테니까요.”


트뤼포는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로셰의 원작 소설에 매혹되었고 일찍이 작품의 영화화를 결심했다고 한다. 엘렌 에셀과 프란츠 에셀, 앙리 피에르 로셰 사이의 삼각관계를 다룬 그의 자전적 소설에 대해 트뤼포는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아름다운 현대 소설 가운데 하나”라며 “미에 관해 끊임없이 새로운 윤리를 반복 부여함으로써 아무런 충돌 없이 서로에 대한 감동적인 사랑을 이루어간다”고 공개적으로 극찬했다. 그러나 자신의 첫 영화에 대한 고민으로 <쥴 앤 짐>의 영화화 계획은 계속 연기되었다. 데뷔작 <400번의 구타>로 인상적인 성공을 거둔 이후 차기작 <피아니스트를 쏴라>로 굴곡이 심한 실패를 맛본 트뤼포는 그 즈음 다시 만나게 된 잔 모로에게서 위안을 찾으며 미뤄온 각색 작업을 다시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1960년, 트뤼포는 카트린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언어와 문학에 대해 조예 깊은 대화를 나누며 돈독한 우정을 쌓는 친구인 쥴과 짐에게 카트린은 ‘하나의 출현’이었다. 셋이 처음 한 자리에서 만나던 날 남장을 하고 거리로 뛰쳐나갔던 장난 같은 에피소드부터 그녀는 역할의 전위를 암시하며 이들 사이의 관계를 끝없이 맴돈다. 카트린은 모든 규범에 앞서 자유의지와 동등함을 내세우며, 때마다의 감정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여성이다. 불쾌함을 느꼈을 때 기꺼이 세느강에 몸을 던지는 것처럼 카트린은 세간의 인습에 온몸으로 투항한다.


이들 관계에서 카트린은 절대적이며, 반박 불가능한 존재이다. 그녀는 관계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탐색하고, 자신의 순수함 감정에 이끌리는 순수한 여인이다. 그만큼 카트린은 두 남자 앞에서 가장 행복했던 여자이기도 하다. 카트린은 이전에는 웃는 법이 없었다며 쥴과 짐을 만나 비로소 행복해졌다고 말한다. 셋이 함께 있음으로써 완성된 형태를 갖춘 듯 행복한 미소를 보이는 카트린의 표정 변화를 트뤼포는 가장 아름답게 포착해낸다. 그 덕분에 카트린의 잔상은 아련한 회상처럼 오래 기억된다.




전쟁이 끝난 뒤 짐이 돌아오며 다시 만나게 된 셋은 급격한 관계의 전환을 맞는다. 쥴은 짐에게 카트린과 새로이 결혼해 줄 것을 요구한다. “짐! 그녈 사랑하게, 그녀와 결혼하게. 내가 그녈 볼 수만 있게 해주게.”라고 쥴은 간청한다. 쥴은 오로지 카트린을 잃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모든 것을 희생하고자 한다. 이제 쥴에게 그 자신의 사랑은 비교 불가능한, 절대적인 것이다. 그러나 카트린의 연이은 변덕에 신뢰할 수 없는 짐은 그녀와의 결혼을 포기하고, 약혼녀에게 돌아갈 것을 결심한다. 짐은 ‘우린 생의 원천을 가볍게 여겼고 패했다’며 어떤 열패감을 확인한다. 짐과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게 된 카트린은 자신의 몸을 내던지며 구조와 규범에 항거한다. 트뤼포는 이 영화에 대해 ‘외설스러우면서도 대단히 도덕적인 멜로드라마’라고 언급했는데, 이는 앞서 스테판 에셀이 말했던 것처럼 윤리란 완성된 것이 아니라 여전히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라는 데에 대한 오래된 동의일 것이다.


영화 <쥴 앤 짐>은 트뤼포와 잔 모로가 함께 한 사실상의 첫 작품이다. 이후 트뤼포는 카트린을 완벽하게 소화해낸 잔 모로에 대해 “카트린이란 인물을 잔 모로는 우리의 눈앞에 실재하는 설득력 있는 인물로 만들어냈다”며 “무분별하고 도를 넘어서고 격렬하지만 무엇보다 경배할 만한 인물로, 한마디로 말해 숭배의 대상으로 만들었다”고 평했다. 영화의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당시 트뤼포는 라 가르드-프레네에 있는 잔 모로의 집에 몇 차례 머물렀다고 한다. 그곳은 트뤼포에게 일종의 은신처가 되었다. 이 시기 동안 트뤼포와 잔 모로는 창조적인 교류를 나누며 유의미한 시간을 보냈다. 조감독으로 참여했던 플로랑스 말로의 회고에 따르면 이미 그곳에 <쥴 앤 짐>의 분위기가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쥴 앤 짐>은 트뤼포와 잔 모로의 관계와 체험을 동시에 드러낸 영화이기도 하다. (장미경 | 에디터)


1.19(목) 13:00
1.26(목) 17:30
2.11(토) 19:00 상영후 배우 윤진서 시네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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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토크] 홍성남 영화평론가와 들려주는 트뤼포의 세계

매혹의 아프로디테란 부제로 열리는 ‘2010 시네바캉스 서울’ 상영작 중에는 특별히 여인을 사랑한 감독 프랑수와 트뤼포의 아름다운 여인들이 나오는 작품이 3편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지난 8월 3일은 이 세 작품을 모두 만날 수 있는 이름하여 트뤼포데이 였다. 마지막 상영작인 <부드러운 살결> 상영 후에는 홍성남 영화평론가가 트뤼포의 영화세계, 그 중에서도 트뤼포와 여성과의 관계에 대한 재밌는 시네토크를 펼쳤다. 그 일부를 이곳에 옮겨본다.


홍성남(영화평론가): 이번 영화제에 상영하는 영화들 중에서 트뤼포 영화가 세편이 포함되어 있는데, 트뤼포가 좋아했었던 혹은 트뤼포의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들이 매혹되었던 여배우들에 주목하는 기회가 될 것 같다. 트뤼포의 영화세계를 이야기하는 데에 있어 트뤼포와 여성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빠뜨릴 수는 없겠지만, 트뤼포의 개인적 이야기 보다는 좀 더 넓은 측면에서 그의 전반적인 영화세계와 관련시켜 이야기하고자 한다. 트뤼포의 영화는 ‘대체 무엇에 대한 이야기인가’라고 질문해 볼 수 있다. 좀 더 간단하게 질문을 바꿔본다면 ‘과연 그의 영화라고 하는 것은 어떤 범주로 나눠지는가’이다. 트뤼포는 언제가 감독의 첫 작품에는 감독의 영화세계의 모든 것이 담겨있기 마련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그 이후의 작품들은 그보다 더 나을 수도, 못할 수도 있지만 모두 첫 작품의 변주라고도 말했다. 모든 감독들에게 이 말이 적용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어떻게 보면 트뤼포의 전반적인 영화세계는 그 자신의 말을 확인시켜주는 과정이지 않나 싶다. 데뷔작인 단편 <개구쟁이들>(1957) 뿐 아니라 그 이후 장편 세 작품인 <400번의 구타>, <피아니스트를 쏴라>, <쥴 앤 짐>은 이후 트뤼포가 만들 영화들의 범주를 미리 알려주는 영화들이 아닌가 생각된다. <400번의 구타>에서 처음 등장한 앙트완 드와넬의 성장과 사랑, 삶의 이야기는 이후의 영화들에서도 이어지면서 트뤼포 영화에 있어 하나의 범주를 이루게 된다. <피아니스트를 쏴라>와 같은 장르 영화도 있다. 이 작품은 그 안에 미묘하게 여러 장르들이 섞여있지만 특히 필름 느와르 또는 범죄 영화의 영향을 볼 수 있다. 트뤼포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감독으로는 히치콕과 장 르느와르를 들 수 있는데, 트뤼포는 범죄드라마를 장 르느와르 식으로, 애정관계의 이야기를 히치콕 같은 방식으로 만들고 싶다며, 그것이 자신의 영화적 이상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세 번째 작품은 <쥴 앤 짐>인데, 과거를 배경으로 하면서 오리지널 시나리오가 아닌 문학작품을 각색한 영화들의 범주에 속한다. 물론 이러한 범주들은 편의를 위한 구분으로, 트뤼포의 전체 필모그래피에서 보면 그 구분이 모호하거나 다층적이다.

일단 이렇게 세 개의 범주로 나눠진 것이 트뤼포의 영화 세계라고 가정한다면, 그 다음엔 그것들을 관통하는 전체적인 주제나 요소 혹은 모티브에 대해 질문해 볼 수 있다. 트뤼포의 <아메리카의 밤>에서 장 피에르 레오는 극 중 반복해서 ‘과연 여자는 마술적인 존재인가’ 라고 묻는데, 어떻게 보면 그 질문이야말로 트뤼포의 전체 영화세계에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문제가 아닐까 싶다. 트뤼포는 기본적으로 <여자를 사랑한 남자>라는 자신의 영화제목처럼 여성을 사랑하고 여성을 탐구하고자 했던 감독이기도 하다. 트뤼포의 영화를 보면 여성의 존재에 대한 질문에 답을 내놓기보다는 질문을 위한 탐색을 위해 여성들과 관계를 맺는 것, 그리고 그 관계 안에서 행위하고 사고하는 것이 트뤼포 영화의 가장 중요한 모티브인 것 같다. 트뤼포는 사회적 메시지를 담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이야기하면서, 그런 문제를 다루려고 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영화와 맞는 사람들이 아니라 정치이론이나 사회이론에 더 맞는 사람들일 것이며, 따라서 그들은 예술을 배반하는 사람들일 거라 말했다. 트뤼포는 정치적인 연설이 이뤄지는 광장이나 사무실 혹은 공장, 회의장에서 이루어지는 일보다, 침대에서 이뤄지는 일이야말로 인간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며, 그러한 것들이야말로 영화가 담아야 하는 중요한 문제라고 말하기도 했다. 언젠가 데이비드 린의 영화에 대해 말하면서, <콰이강의 다리>의 시나리오를 열 명의 감독들에게 보낸다면 모두 똑같은 영화가 나올 테지만, 반면에 <밀회>의 시나리오를 열 명의 감독들에게 보낸다면 열 편 모두 다 다른 영화가 나올 것이라고도 했다. 그만큼 남녀의 문제란 사람들에게 있어 각각의 관점에 따라 미묘하게 다르다는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트뤼포의 영화들 속에서 절대적인 것과 잠정적인 것 사이의 구분과 대립이라는 문제에 대해 살펴볼 수 있다. 절대적인 것 혹은 절대적인 것을 믿는 사람은 모든 것에 대해서 고정되고 영원하고 명확하다고 여긴다. 그에 비해 모든 것들은 가치가 되었던 범주 개념이 되었든 고정되고 영원한 것은 없다고 여기는 것은 잠정적인 것 혹은 그것을 믿는 사람들과 관계된다. 잠정적인 것은 사랑의 감정과 관계라고 하는 것이 변화하는 것이며, 언제까지나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과 묶일 수 있다. 트뤼포는 자신의 영화에 나온 많은 배우들과 관계를 맺곤 했다. 그는 자신의 영화 제목처럼 여자를 사랑한 남자였고 그의 영화적 분신인 앙트완 드와넬도 그러하다고 할 수 있다. 도덕적인 입장에서 보면 그런 관계에 대해 책임감이 없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트뤼포의 영화에는 절대적으로 혐오하거나 미워할 만한 인물이 없다. 트뤼포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기도 한 장 르느와르는 모든 인간은 각자의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그 말을 소중하게 받아들인 사람이 바로 트뤼포다. 트뤼포는 잠정적인 인물들에 대해 나쁘게 그리지도 않지만 언제나 선하게 그리지도 않는다. 사람들이 충분히 동정하고 공감을 살 수 있는 인물로 그리면서 또한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약점을 잘 그려내기도 한다.

반면 그러한 잠정적 인물에 반해 절대적인 것 혹은 그러한 가치에 속할 수 있는 인물은 어떤 사람들일까? 사랑의 가치를 영원한 것으로 믿는 인물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를테면 <부드러운 살결>의 프랑카 같은 인물이다. 그러한 인물들은 대체로 영화 안에서 적대 혹은 심한 폭력을 행사하게 된다. 트뤼포의 <상복을 입은 여인>이란 영화에서 잔 모로는 결혼을 앞두고 남자의 죽음을 맞게 되자 그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은 한 사람씩 살해하는 여성을 연기한다. 혹은 <아델 H의 이야기>의 이자벨 아자니는 결국 스스로 광기에 빠질 정도로 한 남자에게 집착하게 된다. 그러한 인물들의 공통점은 절대적인 가치 혹은 사랑에 빠져 있으며 결국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무지막지한 폭력을 휘두르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인물을 그릴 때조차도 트뤼포는 관객으로 하여금 그 인물에 대해서 적의나 혐오를 갖게 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공감은 아닐지라도 어느 정도 동정심을 가지고 묘사한다.

이러한 문제는 트뤼포의 전반적인 영화세계와 연관 지었을 때 매우 중요하다. <마지막 지하철>은 프랑스가 독일에 점령되었을 때, 프랑스인들에게 위안을 주었던 한 극단의 이야기다. 이 영화에 대해 나치 점령 하의 프랑스라는 역사적 배경을 통해 중요한 역사적·정치적 문제를 질문하지 않을까 기대했던 사람들은 이 영화에 대해 크게 실망하기도 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홀로코스트의 문제나 반유대주의 문제를 소소한 가정 비극과 같은 것으로 떨어뜨렸다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이 영화가 보여주는 도덕적 인식이라고 하는 것이 너무나 단순한 것이 아니냐하는 것이었다. 선과 악의 축이라고 하는 것이 너무나 명확하게 그려져 있다는 거다. 그러나 그 영화는 절대적인 것과 잠재적인 것의 대립이 중요한 모티브인 영화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영화에서 악이라고 할 수 있는 나치 협력자는 절대적인 것에 대한 맹신이 전체주의와 연결되는 지점을 보여준다. 그런가하면 선이라고 할 수 있는 극단 사람들이 있다. 연기를 한다는 것은 정체성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역할에 따라 변화한다는 것이므로 이들은 잠정적인 정체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극단의 배우이기 때문에 역할을 맡을 때와 실생활에서의 정체성이 다르기도 하지만, 나치 정권 하이기 때문에 실생활에서도 서로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연기를 해야 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는 유동성이라는 이 영화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시간이 흐른 후 두 남녀 주인공은 재회하게 되는데 연극 속의 장면이 연극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실로 이동하는 모습을 보인다. 픽션과 리얼리티 사이의 유동성이 발생하는 것이다.

<아메리카의 밤>에서도 트뤼포가 보여주는 것은 영화라고 하는 것은 절대적인 것과 잠재적인 것 사이의 변증법적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거다. 절대적인 것은 그 어떤 영화의 주어진 시나리오라고 할 수 있는데, 시나리오를 가지고 곧이곧대로 영화로 만든다면 그것은 절대적인 것이다. 트뤼포가 추구했던 영화 만들기는 그와는 달랐다. 물론 기본적으로 시나리오가 주어지긴 하지만 상황에 따라 계속해서 적응하면서 변화해간다는 것이다. 물론 최종적으로 만들어진 한 편의 영화는 더 이상은 바꿀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 된다. 하지만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우리가 현실 논리로 생각하는 것들을 바꿀 수 있는 상상력의 힘이 영화를 관통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완성된 한 편의 영화 안에서도 절대적인 것과 잠정적인 것이 변증법적 관계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트뤼포는 자신의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고 태어난 사람이란 것에 대해 심한 콤플렉스를 갖고 있던 사람이었고 따라서 그에게 있어 아버지를 찾는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했다. 그에게 아버지와 같은 사람이 결국 생겨나는데 그가 바로 앙드레 바쟁이었다. 또한 트뤼포는 장 피에로 레오와도 일종의 부자관계 형성한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아버지 찾기와 아버지 되기였는데, 단지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아버지를 찾는 것이 중요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영화 안에서도 아버지가 없다는 것, 아버지가 된다고 하는 것에 대한 질문은 굉장히 중요하다. 트뤼포에게 어울리는 명칭은 혁명가보다는 개혁가가 아닐까 싶다. 편의상 구분을 해보자면, 트뤼포와 자주 비교되곤 하는 고다르가 ‘혁명가’라면, 트뤼포는 오히려 시스템 안에서 더 나은 영화를 만들고자 했던 ‘개혁가’라고 할 수 있다. 라울 쿠타르는 ‘나는 필름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시네마를 만드는 사람이다’라고 했던 고다르의 말을 인용하면서, 그렇게 보자면 트뤼포는 분명 필름을 만든 사람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한 편 한 편의 영화를 만들어 갔던 사람이 트뤼포라고 한다면, 영화는 도대체 무엇인가, 영화란 어떻게 구성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 사람이 고다르였다는 의미인 듯하다.

트뤼포는 대중적이며 장르적인 영화를 만들면서도 작가적 시각과 예술영화의 품격, 프랑스적인 멜랑콜리가 같이 한 데 섞인 영화를 만들었다. 제임스 모나코는, 트뤼포라는 사람은 사람들이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것일까에 대해서 가장 내밀하면서도 보편적인 논리를 갖고 경박하지 않은 유머와 관능성과 영화적 재미를 함께 갖춘 영화를 만든 감독이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트뤼포가 영화역사상 가장 뛰어난 감독이라고 말할 수 없을지는 모르지만 가장 많은 애정을 받고 있는 감독이지 않을까 싶다. (정리: 장지혜)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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