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의 기적'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1.09.07 종로, 새로운 시작
  2. 2011.08.30 다큐멘터리, 재미와 진실의 순간을 목도하라

[시네토크] <종로의 기적>의 이혁상 감독

최근 한국 다큐멘터리는 단순히 소재의 무거움에 함몰되지 않고 관객의 몰입도를 높이기 위한 다양한 형식의 실험과 사례의 활용으로 각광받고 있다. 이에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는 9월 1일부터 8일까지 '다큐멘터리의 진실의 정치학'이란 제하로 최근 한국 다큐멘터리의 주목할 만한 8편의 작품을 모은 특별전을 열고 있다. 이 중 지난 9월 3일 저녁에는 <종로의 기적>이 상영되었고, 상영 후 이 영화를 연출한 이혁상 감독과 제작진들과의 대화가 이어졌다. 그 현장을 옮긴다.


박기호(서울아트시네마 운영팀장): <종로의 기적>이 개봉하고 그동안 보통의 독립영화들 중에서도 유독 GV나 행사가 많았다.
이혁상(영화감독): 이렇게까지 오랫동안 하리라고는 생각을 못했었는데, 롱런을 못하더라도 끝까지 해보겠다는 생각은 있었다. 영화를 통해서 감독이나 주인공들, 성소주자 커뮤니티의 친구들이 이렇게 관객과의 대화를 통해서 서로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는 것이 굉장히 좋은 캠페인의 자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막연히 영화 속 성소수자의 삶을 보는 것도 좋겠지만 이렇게 마주앉아서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를 통해서 많은 분들이 가지고 있었던 꽃게이 판타지를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자리가 되었다고 생각된다.(웃음) 많은 관객들을 만났다. 그 과정에서 사실 저희가 더 많은 힘을 얻었던 것 같다. 같은 성소수자라고 커밍아웃도 해주시는 분도 계셨고, 영화를 보고 처음 종로에 나오거나 처음 게이들을 만나서 자신의 새로운 정체성을 깨닫는 분들도 계셨다. 그런 과정들이 어떻게 보면 처음 <종로의 기적>을 만들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생각했던 바로 그 지점들인 것 같아서 뿌듯하다.
전재우(‘친구사이’): ‘친구사이’나 ‘동성애자인권연대’(이하 ‘동인연’), ‘연분홍치마’ 같은 단체들이 가지고 있는 성격이 그 전에는 대중과 멀리 떨어져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았는데, 영화가 나오고 나서 ‘친구사이’ 홈페이지 방문자수도 늘고, 후원회원도 늘었다. ‘동인연’이나 ‘연분홍치마’도 같은 사정이라고 들었다. 반가운 일이다.


박기호: 오늘 시네토크를 준비하면서, ‘종로, 새로운 시작’ 이런 의미로 진행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종로의 기적>은 주변의 성소수자들이 자기의 맨얼굴을 확 드러내는 경우가 거의 처음이라는 점에서, 이전까지의 성소수자를 다룬 영상물들과 차이를 보인다. 이렇게 자신을 드러내는 성소수자들이 많아졌다는 것도 하나의 성과인 것 같다. 두 분이 생각하시는 <종로의 기적>의 성과는 어떤 것들이 있나?
이혁상: 영화를 보고서 어떤 분이 메일을 주셨다. 항상 자신의 정체성 때문에 괴로워하고 죽음까지 생각했던 분인데 영화를 보고 힘을 얻었다고 감사하다는 내용이었다. 그분은 <종로의 기적> 뒤풀이 때 나오셔서 처음으로 게이들과 만나 정말 새로운 삶을 시작을 하고 자신의 기적을 찾은 분이시다. 그런 분들이 좀 계셨다. 이성애자 관객분들은 왜 제목이 ‘종로의 기적’인지 잘 모르실텐데, 원래는 영화에 나오는 합창단 ‘지보이스’의 노래 제목이다. 종로에서 천생연분을 만나는 기적을 얘기하는 노래다. 나와 같은 사람들이 존재하는 곳을 알게 되면서 성소수자들은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성소수자들에게는 그러한 경험이 기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성애자 관객들의 응원과 지지가 예전과는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는 그야말로 성소수자들의 인권과 위치를 지지하고 존중하는 느낌을 관객과의 대화들을 통해서 많이 느낄 수 있었다.
전재우: 성소수자들에 대한 판타지가 없어지고 사실적인 게이들이 그려지면서 어떤 거리감이 줄어들었다는 점이 있는 것 같다. 이 영화가 나오고 게이커뮤니티를 보면 더 이상 성소수자들이 도망갈 곳이 없게 만들지 않았나 하는, 그래서 더 이상 숨을 곳이 없으면 이제 벽장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사실 이 이후 과정이 살짝 기대된다. 벽장 속의 성소수자들은 불안해할 수도 있고 아직 준비되지 않을 수는 있지만 이 영화가 밖으로 나오는 것을 준비하는 과정을 마련한 계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박기호:
얼마 전 보도된 설문조사에서 한국사회에서 가장 시급히 개선되어야할 차별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첫 번째가 학벌로 인한 차별, 두 번째가 성소수자 차별이라는 답변이 나왔다. <종로의 기적>이라든가 ‘연분홍치마’, ‘동인연’, ‘친구사이’ 같은 단체들이 성소수자 문제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과정에서 쟁취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관객과의 대화를 통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 있다면 듣고 싶다.
이혁상: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네 명의 주인공들을 어떻게 선정한 것이냐는 것이었다. 일단 성소수자가 주인공인 다큐멘터리는 사회적으로 커밍아웃을 해야 한다는 전제가 가장 기본이다. 누군가 여러분의 삶을 다큐로 찍고 싶다고 했을 때 일단 두려운 분들이 더 많을텐데, 그런 두려움에 더해서 성소수자로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야 된다라는 점이 이중의 두려움을 가져온다. 그런 점에 동의하고 함께 커밍아웃을 결심했던 주인공들을 선정하게 됐다. 그리고 순서에 대한 질문도 많이 들었다. 처음에는 네 명의 이야기를 섞어서 진행을 하다가 도저히 이야기가 안 풀리고 진전이 안 되는 것 같아서 따로따로 구성을 하게 됐다 .옴니버스 구성이 짧은 시간 안에 완결성을 가져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좀 더 어려웠던 부분 이 있다. 마지막에 정욜씨 에피소드를 마지막에 배치해야겠다고 생각했던 부분은 있었다. 좀 무거운 내용일지라도 그 이슈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시라는 의미에서 HIV/AIDS에 대한 내용을 관객들에게 좀 더 강한 여운으로 남겨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정욜씨가 <종로의 기적>의 전체적인 배치가 어떻게 보면 나의 개인적인 삶이나 고민의 흐름들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져 있는 것 같다고 얘기해 주었다. 소준문씨의 에피소드에서는 게이영화감독으로서의 위치와 고민이, ‘연분홍치마’ 활동을 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부분은 두 번째 장병권씨의 에피소드에서, 게이로서의 삶에서 느끼고 있는 즐거움들은 최영수씨의 에피소드에서, 현재 HIV/AIDS와 관련해서 고민하고 있는 지점들은 정욜씨의 에피소드와 연결되는 것 같다.

박기호: <종로의 기적> 제작과정에서 PD역할을 맡았는데, 개봉 후의 소감이나 성과라고 생각되는 점은 어떤 것들인지?
김일란(‘연분홍치마’): 게이다큐멘터리의 PD를 맡으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게이들 속에 파묻혀 있었을 때는 정말 존재감이 없어진다는 점이다. 게이들하고 같이 지내면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웃음) 그리고 이혁상감독과 같이 지내면서 깨닫게 되었던 것 중 하나는 날씬한 게 예쁘다가 아니라 뚱뚱한 게 예쁘다하는 점, 몸에 대한 다른 생각을 하게 하는 부분도 있었다. 그리고 게이문화와 여성의 문화 사이의 차이에 있어서 서로가 서로에 대해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었다. 다양한 성소수자 영상이나 다큐멘터리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얘기들을 듣게 된다. ‘연분홍치마’에서 <종로의 기적> 이전에 <3xFTM>이나 <레즈비언 정치도전기> 같은 영화를 만들기도 했는데, 계속해서 성소수자인권운동 곁에서 계속 좋은 영상을 만들어달라는 훈훈한 부탁을 많이 들었던 것 같다.

관객1:
특히 첫 번째 에피소드가 마음에 많이 와 닿았다. 소준문 감독님이 다른 사람들 앞에서 본인이 게이감독이기 때문에 다 짊어지고 가야하는 것이 부담스럽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벌거벗은 느낌이라고 얘기하는 부분이 많이 공감되었다. 그런 부분에 대해선 감독님은 어떻게 느끼시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이 영화를 이성애자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다.
이혁상: 소준문씨 에피소드를 여성분들 특히나 여성영화인들이 굉장히 많이 공감하면서 본다. 여성들에게 착한여자콤플렉스가 있지 않나. 준문씨가 어떻게 보면 착한게이콤플렉스에 휩싸여서 스스로 알아서 조심하고, 알아서 상대를 먼저 배려하고, 나의 정체성 때무에 상대방이 불편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모습, 그러다보니 굉장히 착한 모습, 화도 한번 못 지르는 그런 모습을 보인다. 그런 것들이 아마도 많은 여성분들이 남성중심적인 사회에서 느끼는 차별의 모습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종로의 기적>에 차별의 모습이 물리적으로 드러나는 장면은 없다. 물리적인 폭력이 드러나지 않으니까 어떻게 보면 동성애자들이 굉장히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차별은 보이지는 않지만 이미 성소수자들의 마음 속에서 시작되고 있다. 스스로의 욕망과 자신의 몸가짐을 알아서 제한하게 되는 것 자체가 이미 차별인 것이다.
전재우: 아마 직장에서 커밍아웃을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첫 번째 에피소드에 많이 공감할 것 같다. 일단 커밍아웃을 하게 되면 그들에게 그 사람은 게이대표가 되어 버린다.(웃음) 모든 것에 게이라는 꼬리표가 붙는 경험, 다른 사람이라면 겪지 않을 일일 텐데, 24시간 나의 정체성을 생각해야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박기호: 앞으로 각자의 계획이 궁금하다.
이혁상: 계속 공동체 상영을 통해서 관객들을 찾아가는 자리를 만들어가려고 한다. 당분간은 <종로의 기적>과 함께 전국을 순회하면서 계속해서 상영회를 갖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전재우: 먼저 ‘친구사이’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해야 할 것 같다. ‘친구사이’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이고 한국에서 제일먼저 생겨서 오랫동안 활동하고 있는 단체이다. 이번에 <종로의 기적>을 ‘연분홍치마’와 공동으로 기획하고 제작했다. 인권운동단체이지만 문화컨텐츠에도 관심이 많아서 <종로의 기적> 이전에도 청년필름과 같이 퀴어단편들도 만들었었고, 소준문씨의 첫 번째 영화도 ‘친구사이’에서 만들었었다. ‘친구사이’ 홈페이지에 커밍아웃인터뷰라고 해서 회원들의 인터뷰를 홈페이지에 올리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이것을 영상으로 발전시켜보자 하는 의견이 ‘연분홍치마’측에 전달이 되고 ‘연분홍치마’에서도 커밍아웃다큐멘터리 3부작을 기획하고 있어서 서로 의기투합해 영화가 나왔던 것이다. 커밍아웃인터뷰는 지금도 계속 되고 있고, 홈페이지에서 보실 수 있다. ‘지보이스’는 정기공연 준비하고 있다. 씨네코드선재에서 11월 5일에 공연할 예정이다. 굉장히 재밌는 공연이 될 것 같다. 2013년이 되면 ‘지보이스’가 만들어진지 10년이 된 해여서 ‘지보이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보면 어떨까하는 애기도 나누고 있다.


김일란: <종로의 기적> 제작 과정은 ‘친구사이’와 ‘연분홍치마’의 일종의 연대사업이면서, 동시에 다큐멘터리라고 하는 예술적인 영역을 해야하는 복잡한 과정이었다. ‘친구사이’와 ‘친구사이’의 많은 분들에게 정말 감사하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연분홍치마’는 현재는 일단 커밍아웃다큐멘터리 3부작을 마무리하고 앞으로 성소수자인권운동 안에서 어떤 문화활동을 계속해나갈지 고민해 가야할 것 같다. 주변에서 많은 응원과 지지를 보내 주셨다. 그리고 용산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두 개의 문>작업을 마무리하고 있는데, 이번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처음 상영이 된다. 그 영화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

정리: 장지혜 관객 에디터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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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 다큐멘터리는 단순히 소재의 무거움에 함몰되지 않고 관객의 몰입도를 높이기 위한 다양한 형식의 실험과 사례의 활용으로 각광받고 있다. 9월 1일부터 8일까지 열리는 '다큐멘터리의 진실의 정치학' 전은 언급한 특징을 보여주는 최근 한국 다큐멘터리의 주목할 만한 8편의 작품을 모은 특별전이다. 상영되는 8편의 작품을 중심으로 한국 다큐멘터리의 최근 경향이라 할 만한 움직임을 추적해본다.

서울아트시네마의 9월 프로그램 중 하나로 ‘다큐멘터리 진실의 정치학’을 마련한 건 극영화 일색의 극장가에 그 비중과 비율을 높여가고 있을 만큼 한국 다큐멘터리가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 상반기만 하더라도 <쿠바의 연인> <오월愛> <종로의 기적> 같은 작품이 예술영화전용관에서 높은 좌석점유율을 기록했고 <트루맛쇼>의 경우, 관객의 입소문을 타고 멀티플렉스로 상영관을 늘려가며 1만 명을 훌쩍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언급한 작품의 선전에 힘입은 걸까. 이후 개봉 대기 중인 한국 다큐멘터리는 <꿈의 공장> <용산> <청계천 메들리> <하얀 정글> 등 10여 편에 달한다.

‘재미’를 사수하라
최근 들어 두드러지고 있는 한국 다큐멘터리의 부상은 관객의 인식 변화에 기댄 바가 크다. 일례로, 이충렬 감독의 <워낭소리>(2009)가 유례없는 300만 관객을 동원하고 <아마존의 눈물>과 같은 TV프로그램이 기대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다큐멘터리는 지루하고 계몽적이라는 저간의 편견을 불식시키고 볼만하다는 인식을 심어줬다. 실제로 올해 화제를 모았던 다큐멘터리를 보면 진실추구라는 다큐멘터리의 본령 외에 ‘재미’를 동일선상에 두고 이야기를 풀어간 작품들이 눈에 띈다. 정호현 감독의 <쿠바의 연인>은 쿠바 남자와 한국 여자의 사랑 속에서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는 양국 간의 문화적 차이를 발랄하게 풀어냈고 이혁상 감독의 <종로의 기적>은 기성세대의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한 동성애자들이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밝게 생활하는 모습을 강조했으며 <트루맛쇼>는 TV맛집 프로그램의 조작 실태를 몰래카메라라는 코믹한 형태로 구성해 고발의 경직성을 완충했다.
이들 작품이 흥행 면에서 성공을 거두었다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쿠바의 연인>, <종로의 기적> 5천 명, <트루맛쇼> 1만 2천 명의 관객동원) 다큐멘터리를 낯설어 하는 관객들로 하여금 극장의 문턱을 낮춘 것은 사실이다. 시대가 예전 같지 않아서 창작자의 진정성에 기대 호소하는 방식만을 가지고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들이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시위도 놀이로써 소화하는 세대가 등장했고 아무리 선의를 가진 목적의 행위라도 감성을 건드리지 않으면 지지를 얻기 힘든 시대가 도래했다. 유행에 민감한 메이저 극영화의 경우, 시대의 감성에 발맞춘 결과물로 발 빠르게 관객과 호흡했지만 다큐멘터리는 장시간의 제작 기간을 필요로 하고 (예컨대, 김동원 감독의 <송환>의 경우, 12년의 제작 기간, 500개의 촬영 테이프, 800시간의 촬영 분량이 소요됐다!) 소재와 주제의 성격이 직선적인 탓에 매니악한 작품으로 분류되어 다수의 관객과 만나기에는 애초에 한계가 존재했다.
<워낭소리>가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는 것은 흥행성적을 떠나 다큐멘터리로는 드물게 시대의 감성을 단적으로 드러낸 텍스트로 작용했다는 점이다. 산골 노인부부와 함께 사는 늙은 소의 이야기를 다룬 <워낭소리>는 자연과 멀어진 도시인들에게 하나의 스펙터클로 작용하며 예상 밖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빌딩숲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워낭소리>의 자연은 평상시 보기 힘든 볼거리였고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초월한 할아버지와 소의 우정은 경쟁과 약육강식의 사회생활 속에서 잊힌 가치를 떠올리게 하는 감정의 도르래였다. 그런 관점에서 <쿠바의 연인>이나 <종로의 기적>, <트루맛쇼>는 모두 어떤 시대적 감성을 자극하는데 탁월한 연출을 보여준다. <쿠바의 연인>은 한국의 익숙한 풍경으로 자리 잡은 국제커플 중 한 쌍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되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문화적 차이를 좁혀가는 에피소드가 공감대를 형성했다. <종로의 기적>은 게이커뮤니티가 활발한 종로를 상징적인 배경으로 삼지만 특정 공간에 몰아넣지 않고 여러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게이들을 통해 (여전히 편견이 존재하지만) 좀 더 다변화한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트루맛쇼>는 맛에 대한 관심이 과열되고 있는 이때 TV맛집 프로그램의 허구를 전시하며 천박한 우리네 맛의 감식안을 폭로했다.

모든 영화가 시대와의 접점 없이 시장에서 살아남기 힘들지만 진실 추구와 고발, 폭로와 같은 정보제공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다큐멘터리에게 있어 동시대성은 가장 중요한 영화적 좌표다. 이에 더해 무거울 수밖에 없는 메시지의 효과를 최대화하기 위한 화법의 선택, 즉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유용한 방법으로써의 재미 추구는 또 하나의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다. (이는 <볼링 포 컬럼바인>(2002) <화씨 9/11>(2004) 등을 연출한 마이클 무어가 선구자라 할만하다) 다만 이는 최근 한국 다큐멘터리가 보여주는 여러 경향 중 하나로 생각해야지 모든 작품에 적용되는 연출은 아니다. 한국사회에 갈수록 만연한 불순(?)세력의 정보 차단 현상과 맞물리면서 한국 다큐멘터리는 다종한 소재와 다기한 형식으로 진화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진실'을 추구하라
하반기로 접어들면서 진실과 고발이라는 다큐멘터리 본연의 기능에 충실한 한편으로 다양한 형식적 실험을 감행하는 작품이 집중되고 있다. 이런 경향의 기저에는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사회적 특수성이 어느 정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사회비리에 대한 감시 역할을 수행하던 TV시사고발 프로그램의 기능이 현저히 약화되기 시작하면서 구멍 뚫린 국민의 알권리의 일부분을 다큐멘터리가 메우고 있는 것. 개봉을 앞둔 김성균 감독의 <꿈의 공장>과 송윤희 감독의 <하얀 정글>은 물론이고, 여러 경로를 통해 관객과 소통하고 있는, 그리고 '다큐멘터리의 진실의 정치학'에서 주요하게 소개되는 태준식 감독의 <당신과 나의 전쟁>, 이강현 감독의 <보라>, 문정현 감독의 <용산> 모두 우리의 생존권과 밀접하게 관련을 맺고 있는 문제들을 정면에서 응시한다.
<꿈의 공장>은 세계적인 브랜드로 떠오른 국내 최대 기타회사 콜트/콜텍의 횡포에 맞선 노동자들의 투쟁을, <하얀 정글>은 타인의 생명을 다루는 고귀한 의료 행위가 장삿속으로 변질된 한국 의료계의 검은 실상을, <당신과 나의 전쟁>은 당신과 나, 우리 모두의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무관심 속에 그들만의 투쟁으로 전락한 쌍용 자동차 노동자들의 파업을, 1년 동안 촬영한 기록물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보라>는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상시고용 50인 이상 300인 이하 사업장의 근로자는 해당 사업장의 보건 관리 업무를 맡은 보건관리대행기관의 산업의학전문의에게 3개월에 한 번씩 보건관리를 현장에서 받는다)에 근거하여 이뤄지는 현장 보건 관리의 실체를, <용산>은 2009년 1월 거리로 내몰린 용산 철거민을 비롯해 6월 항쟁의 이한열 열사, 광주민주항쟁의 시민까지, 죽음으로 내몰리는 약한 자의 현실을 다룬다.


특히 이들 작품은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상의 풍경임에도 불구하고 주류 언론의 은폐 속에 무관심으로 내몰리는 이슈를 향한 진실의 정치학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런 종류의 다큐멘터리는 작품의 유효성이 극장 안에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극장 밖의 현실로 연장될 때 그 진가를 발휘한다. 이를 '다큐멘터리가 현실을 바꾼다'는 의미로 비장하게 해석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사회적인 경각심을 일깨울 수 있다는 가능성에 무게를 둘 때 비로소 관객의 접근이 용이해진다. 사실 다큐멘터리의 본질은 미처 깨닫지 못했거나, 관심을 두지 않았던 현상에 카메라를 밀착함으로써 우리의 본모습을 폭로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더 정확히는 겉으로 드러난 사회적 현상의 이면을 들추는 이들 작품을 통해 우리 사회를 작동하는 시스템의 실체를 알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앞서 언급한 다큐멘터리들이 현재는 미지의 작품으로 남아있는 만큼 관객의 호응도를 미리 재단할 수 없지만 다루는 소재는 우리 사회에서 첨예한 이슈거리인 까닭에 익숙하게 다가올 가능성이 크다.



잠시 언급을 보류했지만 박경근 감독의 <청계천 메들리>는 좀 다른 경우에 해당한다. 해당 소재가 내포한 사회적 파급 효과에 중요성을 부여하는 영화들에서 더 나아가 형식적인 실험에 더욱 힘을 기울인다. <청계천 메들리>는 서울 청계천에서 쇠를 다루는 영세한 공장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삶의 현장을 카메라에 담는다. 단순한 현실의 기록을 넘어 이들의 작업을 중심으로 기록화면과 멀티이미지의 향연 속에 한국과 일본, 근대와 현대를 넘나들며 쇠의 사회학을 구성하는 것이다. 이렇게 알게 모르게 진화하고 분화되는 한국 다큐멘터리의 영토 확장 배경에는 저 너머의 진실을 찾겠다는 창작자의 용기 있는 태도가 짙게 배어있다. 이 용기의 정체는 진실 탐구에 따르는 위험과 인내심의 감수와 더불어 이를 최대한 정확하게 알리겠다는 창작자의 사명감의 결합에서 비롯된다. 다만 다큐멘터리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구국의 결단에 방점을 찍기보다 작품의 미학성도 놓치지 않겠다는 창작자의 정체성 또한 확연히 드러난다. 진실과 재미의 순간을 목도하라, 이것이 한국 다큐멘터리가 추구하는 미학의 현주소다.

글/허남웅(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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