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정의를 지키는데 이유가 어딨어

- 존 스터지스의 <황야의 7인>

지난해 <황야의 7인>이 톰 크루즈 주연으로 다시 영화화된다는 소식이 있었다. 존 스터지스 감독이 만든 <황야의 7인>은 구로사와 아키라의 <7인의 사무라이>를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무엇보다 율 브리너, 스티브 맥퀸, 제임스 코번, 찰스 브론슨 등의 개성적인 배우들이 출연해 인기를 끌었다. 작품의 성공으로 이후 속편이 세편이나 만들어지기도 했다. 때마침 쿠엔틴 타란티노의 <장고: 분노의 추격자>가 개봉하는 즈음에 과거의 서부극과 새롭게 만날 좋은 기회다.

 

 

서부극에서 총싸움은 장르의 약속이다. 서부극의 주인공들은 어떤 이유에서든 총을 빼들고 상대와 싸워야 한다.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 보안관으로서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 가장을 잃은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인디언들의 포위를 벗어나기 위해서, 잃어버린 조카를 찾기 위해서 등등. 이들은 결국 싸워야만 하고, 이때 중요한 것은 싸움의 이유다. 제대로 된 싸움의 이유만이 이들의 폭력에 정당성을 부여해주기 때문이다. 존 포드의 <역마차>의 키드(존 웨인)는 처음에 등장할 때만 해도 위험한 무법자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가 승객들을 보호하기 위해 인디언들과 싸우고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총을 빼들 때 정의의 편에 설 수 있었다. 즉 왜 싸우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존 스터지스가 구로사와 아키라의 <7인의 사무라이>를 리메이크해 만든  <황야의 7>은 흥미로운 영화다. 이 영화에서 벌어지는 세 번의 총격전에서 눈여겨 볼 것은 첫 번째와 마지막 싸움인데 여기서 주인공들은 굳이 싸울 필요가 없는데도 싸운다. 이를테면 마을 사람 모두가 죽은 사람의 장례를 거부하고 있을 때 크리스(율 브리너)는 이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관이 실린 마차에 용감히 올라탄다. 그리고는 생명의 위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총싸움을 한바탕 벌인 뒤 결국 죽은 자를 땅에 묻어준다. 자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지만 거기 뛰어들어 목숨을 걸고 옳은 일을 해내는 것이다. 영화의 시작부터 등장하는 이 거침없는 행동이 관객들에게 짜릿한 쾌감을 준다.

 

마지막 싸움 역시 마찬가지다. 이 영화의 악당은 의외로 이해심이 넓은 편이라서 힘들게 붙잡은 크리스 일행을 말까지 태워서 마을을 떠나게 해준다. 그러니 주인공들이 이대로 마을을 떠났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예전처럼 악당에게 세금을 바치며 살았을 테고, 주인공들은 다시 자유로운 총잡이로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결국, 말머리를 돌린다.

영화에 등장하는 어떤 액션 장면보다 이 결심의 순간이 가장 큰 짜릿함을 준다. 꼭 싸워야 할 이유도 없고(배신은 마을 사람들이 먼저 했다) 수적으로도 불리하지만(“자네들 정말 미쳤군!”), 결국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것. 그 이유는 마을 사람들을 향한 측은지심이었을 수도 있고 자신의 총을 함부로 다룬 악당에 대한 분노일 수도 있다. 또는 마을에 숨겨 놓았다고 믿는 보물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건 관객의 짐작일 뿐이며 우리는 7인의 총잡이들의 속마음을 끝내 명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죽는 순간에 조차 흔들리지 않는 그들의 눈빛과 단호한 몸짓은 결국 관객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설득시키고야 만다. 이보다 명쾌하고 매력적으로 싸움의 이유를 납득시키기도 어려울 것이다.

 

글_김보년(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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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병대>는 존 포드 감독이 유일하게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다. 당연히 인디언을 몰살하는 야만적인 백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대신 미국이라는 하나의 깃발 아래 남북으로 갈린 미국인들끼리의 살육의 순간을 전후한 사연만이 존재한다. 필모그래피의 후기로 갈수록 수정주의 서부극을 선보였던 존 포드의 작품 성향을 감안하면 변화의 시점에 놓인 영화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래서 <기병대>는 ‘말을 탄 병사 The Horse Soldiers'라는 영문제목처럼 서부극의 컨벤션을 취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전쟁물에 가깝다.


주요 배경으로 설정된 빅스버그는 남북전쟁 당시 가장 긴박했던 전투 장소로 손꼽힌다. 그 중 마지막 기습을 다루는 <기병대>는 실제인물 벤저민 그리어슨 대령을 모델로 한 존 말로위 대령(존 웨인)을 중심에 놓고 적진 후방으로 접근해 남쪽으로 향하는 북부군의 행보를 따라간다. 그 과정에서 말로위 대령은 전투에 부정적인 캔들 소령(윌리엄 홀든)과 충돌하고 남부군을 지지하는 여인 한나(콘스탄스 타워스)와 이념의 갈등을 겪는다. 그리고 문제의 전투가 터지면서 캔들, 한나와 대립각을 세우던 말로위 대령의 혼란은 극에 달한다.

남북의 대결인 것처럼 존 포드는 <기병대>를 온갖 것의 충돌로 가져간다. 미국의 실제 역사가 충돌로 이뤄진 것처럼 전투 개시를 두고 의견을 달리하는 말로위와 캔들의 충돌, 말로위와 한나 사이에 벌어지는 남성성과 여성성의 맞섬, 그리고 이 영화의 백미로 꼽히는 북부의 군인과 남부 소년병의 격돌까지, (타란티노는 군인이 소년병의 볼기짝을 때리는 장면을 <킬빌>에서 인용했다!) 심지어 존 포드는 서부극의 도상(Icon)이라고 할 만한 존 웨인과 장르를 가리지 않는 윌리엄 홀든의 동반 캐스팅을 통해 이 영화가 가진 의도를 노골화한다.


이는 백인의 역사를 옹호하기 위해 가져갔던 존 포드의 초기 서부극과는 현저하게 변모한 것이었다. 나와 너의 이분법을 벗어나 우리라고 여겼던 백인들끼리의 대립을 다루는 <기병대>는 존 포드의 초기영화에 거부감을 느꼈던 이들이라면 그의 작품세계를 다시 돌아보게 만들기 충분하다. 물론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에서처럼 백인의 야만적인 침탈을 반성하고 더 나아가 백인 서부극의 신화를 해체하는 형태로까지 나아가지는 않지만 역사 제대로 바라보기라는 측면에서 혼돈의 전쟁물로 변모한 수정주의로 보기에 충분한 것이다.

영화 외적으로 볼 때도 <기병대>는 감독의 비전과 대중의 취향 사이에서 충돌한 경우다. 영화의 제작사는 존 포드의 예술적 비전을 존중하며 존 웨인과 윌리엄 홀든에게 각각의 출연료 외에도 입장 수익의 20%를 별도 지불하는 계약을 체결했지만 (제작사는 윌리엄 홀든 대신 클라크 게이블을 원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흥행에 참패하며 재앙을 맞았다. 보수적이기로 악명 높은 미국 관객에게 미국 역사의 그림자를 정면에서 응시하는 <기병대>는 불편했던 것이다.

(by 허남웅 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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