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토크 

역사의 새로운 시각들이 힘을 갖고 반향을 일으켰던 시기의 영화   

- 민규동 감독이 말하는 정지영 감독의 '남부군'


지난 2월 16일, 민규동 감독의 선택작인 정지영 감독의 <남부군>(1990) 상영 후 시네토크가 이어졌다. 정지영 감독의 영화들을 열렬히 지지하기 보다는 기본적인 애정을 갖고서 비판적인 거리를 두고 있는 민규동 감독의 이야기는 여러모로 흥미로웠다. 이번 친구들 영화제의 선택작들 중 가장 의외의 선택이라는 인상도 잠시, 시네토크가 끝날 즈음 민규동 감독이 만든 역사극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영화평론가): 여러 편을 추천해 주셨는데 우여곡절 끝에 최종적으로는 <남부군>(1990)을 상영하게 되었다. 처음 선택하신 영화들은 어떤 것들이었나. 

민규동(영화감독): 2차 세계대전 말기를 배경으로 독일군의 패배를 다룬 전투 영화 <벌지 대전투>(1965),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초기작인 <미행>(1998)이나 <뮤직 박스>(1989), <레미제라블>의 예전 버전의 영화 등을 추천했지만 모두 상영이 어려웠다. 해방 공간에 대해 역사적으로 되돌아보면서 영화도 준비하고 있다 보니, 문득 이 영화가 떠올랐다. 이 영화를 처음 봤을 즈음 <닥터 지바고>(1965)를 봤다. 두 영화 모두 사상적인 압박 속에서 개인이 인간의 존엄성을 박탈당하는 모습을 그리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남부군>은 당시 굉장히 큰 반향을 일으켰었고, 당시 흥행에도 성공해서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한 번쯤 언급하곤 했던 영화였다. 


김성욱: 90년대 초에 <남부군>, <우묵배미의 사랑>(1990), <그들도 우리처럼>(1990) 같은 영화들, 대학가에서는 자주제작으로 만든 영화들이 나왔다. 사회적인 영화들이 쏟아져 나온 시기였고, 소비에트 붕괴나 천안문 사태 등 여러 면에서 사회 격변기였다. 감독님은 90년대 초반, 그 시절에 어떻게 살아가고 계셨는지 궁금하다. 

민규동: 전두환 정권이 끝나고 90년대 전세 값이 급하게 올라서 파동이 있었다. 어딜 가도 비싸다 보니 사람들이 자살을 많이 시도하기도 했다. 암울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제는 못 버틸 거라는, 세상이 곧 뒤집혀질 거라는, 낭만적인 혁명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남부군>과 같은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신선한 것이었고, 우리가 잘 몰랐고 언급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신선했다. 이런 분위기에 가장 크게 일조한 것은 『태백산맥』이라는 소설이었다. 이야기도 재미있지만, 전쟁이나 빨치산, 좌우대립을 다루는 데에 있어서 새로운 시각들이 언급되면서 역사에 관심이 없었거나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 굉장한 카오스를 겪으며 흔들리게 된다. 그 흔들림에서 오는 에너지들이 문화에 반향을 일으켰었다. 『태백산맥』이 워낙 깊이 있고 진동이 큰 문학이었기 때문에 그에 비해 『남부군』은 상대적으로 얕고, 또한 전향을 해서 살아남은 사람을 다룬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수정주의적이고 타협적인 것으로 바라보는 편협한 시각들이 있었다. 그래서 이 영화 자체도 빨치산의 인간적인 면을 다루고 있지만 그것이 빨치산을 미화하는 것이라고 격하게 비난하는 시각과 더 흔들림 없는, 진짜 빨치산을 그리기에는 너무 온정적이지 않느냐는 비판 사이에 묘하게 위치하고 있었다. 



김성욱: <벌지 대전투>나 <남부군>처럼 주로 대규모로 인물이 등장하고 소셜한 관계들을 다룬 영화들을 선택하셨는데. 

민규동: 어릴 때부터 전쟁영화를 굉장히 좋아했다. 전쟁 자체에 대해서는 혐오감이 많았지만, 그렇게 굉장히 큰 필드에서 벌어지는 생과 사의 문제, 국가 사이의 정치적인 역학이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 이런 것이 주는 긴장과 재미를 즐겼던 것 같고, 지금도 여전히 그런 영화들을 좋아한다. 작은 영화들을 만들어오긴 했지만, 역사를 관통하는 사건들과 그 사건들을 받아들이고 하나의 소우주로 넓혀내는 개인에 얽힌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지금도 오랜 시간 동안 그런 이야기로 시나리오를 만들고 있기 때문에 전쟁과 혁명을 다룬 그런 큰 영화들을 떠올려보다가 <남부군>까지 온 것 같다. 


김성욱: 이런 류의 영화에는 굉장히 많은 캐릭터들이 등장하게 된다. 이 영화 속의 인물들은 어떻게 보셨나. 

민규동: 이 영화는 <피아니스트>(2002)처럼 한 인물을 끝까지 따라간다. 안성기 씨의 시점으로 존재하고 중간에 등장했다가 사라졌다가 하는 인물들이 많다. 실화에 많이 근거하다 보니 실제 공간, 실제 인물들에 맞춰져 있어 전형적이지 않는 인물 배치라는 생각이 든다. 시간과 실제 일지를 따라가는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장르적으로 균형을 맞추는데 있어서는 한계가 있기도 하지만, 그리도 빨치산 내에서의 인물군을 잘 뽑아서 균형 있게 배치하려고 많이 노력하신 것 같다. 


김성욱: 말씀하신 것처럼 <피아니스트>와 전체적인 이미지의 느낌이 비슷한 것 같다. <피아니스트>를 만들면서 로만 폴란스키가 염두에 둔 하나의 이미지는 로빈슨 크루소와 같은 것, 완전히 폐허 더미가 된 가운데 혼자 서 있는 한 인물이었다고 한다. <남부군>에서 인상적인 이미지는 아무래도 안성기 씨가 하얀 눈밭에 혼자 남겨져 있거나 시체들이 뒹구는 가운데 혼자 서 있는 상태의 느낌들이 크게 와 닿는다. 

민규동: 이 영화가 멜로드라마적인 부분, 따뜻한 점들을 덜어내고, 좀 더 다큐멘터리처럼 인물들을 따라다녔으면 좀 더 냉정한 시선들을 느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김성욱: 근래에 나왔던 전쟁을 다룬 영화들은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하다. 

민규동: 당시에는 이런 내용을 다루면 굉장히 문제가 많이 됐다. 대학생 때 학교에서 북한 영화를 상영한다는 날 대학에 헬기가 뜨고 최루탄이 떨어졌던 기억이 있다. 영화를 상영하거나 본다는 행위 자체가 사람들이나 세상을 크게 바꿀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나라에서 진압을 할 정도였던 그런 시기가 있었다. 지금은 이런 영화들을 편하게 볼 수 있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느낌이 있다. 오히려 무관심의 영역으로 넘어가서 의미가 없어진 아이러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든 영화를 보려고, 혹은 만들려고 했던 힘들이 증발되고, 이제는 전쟁을 하더라도 반드시 재미가 담보되어야 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이 영화에서 인물들은 ‘우리가 이렇게 싸우는데 정말 좋은 세상이 오겠지?’라는 회의적인 질문을 불안하게 던지는데, 시간이 지나 그 의미는 없어지고 이미지만 남게 된 지금의 순간이 묘하고 슬프게 느껴진다.  


김성욱: 90년대 초반에는 영화를 전복적인 예술로 봤던 것 같다. 상업적인 면에서가 아니라 대중적 동원의 측면에서 영화를 하나의 스펙타클의 장으로도 봤던 것 같다. 자주제작의 영화들이 대학에서 상영될 때도 그런 느낌이었다. 이런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부터가 굉장히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금은 멀티플렉스에서 <레미제라블>(2012)을 보면서 혁명에 대한 찬가를 듣게 되는데 그 느낌이 묘했다. 이런 영화들을 지금 우리가 극장에서 보고 있는 경험적인 측면에서 어떤 유사성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규동: 어떤 박제를 바라보는 느낌이지 바리케이드에 서있는 그 절절함의 의미를 이해하는 느낌은 아닐 것 같다. 예전에 <닥터 지바고>를 보면서 주인공이 빨치산에 끌려가 의도치 않게 혁명에 종사하다가 탈출하고 죽어갈 때 당시에는 정말 그 인물과 함께 행군하는 느낌이었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때의 환희 같은 것이 절절하게 다가왔지만 지금은 그런 것이 모두 다 이미지화된 것 같다. 


관객1: 정지영 감독님의 영화들에 대해 너무 감정 묘사가 직접적이고, 세련되지 못하다는 반응이 있지만, 그럼에도 항상 어떤 진정성이 느껴진다. 정말 뭔가 말하고 싶어서 영화를 만든다는 느낌이다. 

민규동: 이야기의 선택에 있어서 남다른 지점이 있으신 것 같다. 정치적이거나 역사적인 이야기를 선택했을 때는 그 방향이 명백한 것 같고, 그런 감독님의 역사적, 철학적 입장을 반영하는 가장 적합한 얼굴이 안성기 씨라는 생각이 든다. 안성기 씨의 얼굴은 잘생겼고, 지식인 얼굴이기도 하고, 휴머니즘을 담고 있고, 연륜도 있고, 그런데 뭔가 성욕은 제거되어 있다. 더 자신을 학대하는데 익숙하고, 인간적인 삶을 추구하는데 서툰 지점들이 비슷하게 영화에 결기가 이어지고 있다.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영화가 사람을 끌어가려는 어떤 결기가 강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정지영 감독님의 영화가 선택을 강요한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모호한 입장을 취할 수 없게 하고, 지지하거나 반대하거나 이다. 감독님의 행동가로서의 어떤 확고한 지점들이 계속 있는 것 같다. 


관객2: <남부군>과 비교해서 <태백산맥>(1994)과 <하얀 전쟁>(1992)은 어떻게 보시는지 궁금하다.

민규동: 『태백산맥』은 긴 서사시이고, 어떤 한 인물도 평면적이지 않게 입체적으로 설정되어 있다. <태백산맥>은 소설이 갖고 있는 진지함이나 무서울 정도로 깊이 바라보던 시선이 많이 희석되고 결국은 별로 모난 것 없이 안성기 씨가 바라보던 시선처럼 상식적인 메시지밖에 다루지 못했기 때문에 한계를 많이 노출했었다. <하얀 전쟁>도 비슷하게, 전쟁의 무의미함과 남겨진 트라우마에 대한 메시지 자체는 굉장히 상식적이라고 생각을 했었고, 특별한 자극을 받지는 못했다. 한국군의 모호한 입장에 대해 좀 더 문제제기하고 깊이 있게 들어갔으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정지영 감독님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애정을 표현하긴 하지만 열렬히 지지하기는 어려운 지점들이 있는 것 같다. 


김성욱: 이런 영화들을 선택한 데에는 차기작에 대한 생각들도 있으셨던 것 같은데.

민규동: 차기작이 뭐가 될지는 잘 모르겠다. 남녀 간의 멜로드라마를 써놓은 것이 있고, 40년대 해방공간의 느와르, 전쟁직후의 첩보멜로를 써놓고 구상 중이다. 좀 더 열어놓고 스스로도 궁금해 하고 있다.


정리: 장지혜(시네마테크 관객에디터) | 사진: 김윤슬(시네마테크 자원활동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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