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저녁, 친구들 영화제의 마지막 시네토크를 장식한 전계수 감독과 배우 공효진이 함께 추천한 올리비에 아사야스의 <클린> 상영이 있었고, 상영 이후에는 씨네21 전문위원인 김혜리 영화평론가의 진행 하에 전계수 감독과 공효진 배우와 영화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러브픽션>의 개봉을 앞둔 시점에서 열린 이날 시네토크는 자연스럽게 <클린>과 <러브픽션>을 오갔다. 또한 <클린>하면 빼놓을 수 없는 배우 장만옥에 대한 이야기와 같은 여배우로서 공효진이 느끼는 고민도 함께 나누는 자리였다. 그 현장의 일부를 옮긴다.


김혜리(영화평론가, 씨네21 전문위원): <클린>을 선택하셨는데 이번 영화는 두 분 중에 어느 분이 주도적으로 선택하셨고, 다른 분은 어떤 점에서 공감하셨나?
공효진(배우): <러브픽션> 작업 초반에 감독님께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 함께 참여하자는 제안을 받은 후 어떤 영화를 고를까 생각하다가 2006년에 <가족의 탄생>을 촬영하면서, 김태용 감독님이 이 영화를 꼭 봤으면 좋겠다고 말씀을 하셨던 게 기억이 났다. 그래서 추천하긴 했는데 사실 이 자리는 시사회 때보다 더 떨렸다. 내가 추천한 작품인데 관객 반응이 안 좋으면 어쩌나 싶기도 하고 혹시 지루하지는 않을까 싶어 걱정을 많이 했다.
전계수(영화감독): 추천작 중에는 우디 알렌의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도 있었다. 사실 나는 <클린>을 못 본 상태였는데, 공효진 씨가 추천을 했고, 평소에도 장만옥을 좋아해서 좋다고 했다. 봤던 것을 이야기하는 것도 좋지만 안 봤던 것을 보고 이야기하는 것도 좋을 것 같더라.

김혜리: <가족의 탄생> 이야기를 잠깐 했는데, 왜 그 영화가 생각이 났을까 생각을 해봤다. 보통 주류영화에서는 감정을 대화를 통해서 많이 드러낸다. 그런데 <클린>은 그게 아니라 고독한 여자가 혼자 있는 장면이나 유동하는 장면, 남들이 도와주지 않을 때 외로운 인간은 어떻게 하고 있나 이런 것들을 보여준다. <가족의 탄생>을 봤을 때에도 공효진 씨가 연기한 ‘선경’이가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나서 집에 돌아와서 혼자 설거지 하는 장면을 보고 그런 느낌을 받았었다. 두 분은 <클린>에서 어떤 장면이 기억나시는지 궁금하다.
전계수: 오프닝이 가장 좋았다. 해밀튼이라는 도시였던 것 같다. 그리고 장만옥이 약을 하고 잠들 때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카메라의 바운스, 움직임은 <가족의 탄생>과도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고, 영어, 불어, 중국어까지 여러 언어가 나오고 그걸 잘 소화하는 배우도 매력적이었다.
공효진: 친구 집 침대에서 리를 그리워하며 우는 게 기억에 남는다. 처음에는 그녀가 괴로워할 장치들이 많다 보니까 그게 특별히 리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나중에 대사로 직접 이야기하면서 비로소 우는 모습을 보니까 힘들어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그 씬이 마음에 닿았다.


김혜리: 생각해보면 현실에서는 사람들이 시원하게 울지 못하는 것 같다. 실제로는 슬픔에 집중할 겨를이 없을 때가 많다. 일단 오늘 하루 살아야 하니까. 아사야스 감독은 에밀리의 슬픔을 표현할 때도 아마 어떤 상황이 닥친 사람의 방식을 보여주는 식으로 리듬을 잡지 않았나 생각한다. 외국어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는데, 올리비에 아샤야스 감독의 특징 중 하나가 다국어가 구사된다는 거다. 아사야스 감독은 한 인터뷰 중에서, 우리는 외국어를 이야기 할 때 훨씬 모호하고 거칠게 이야기하는 반면 모국어로는 결코 쉽게 이야기 하지 않을 감정 같은 것들을 불쑥불쑥 이야기 한다고 했었다. 한편 이 영화는 장만옥이라는 배우를 빼놓고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 이 영화로 칸에서 상을 받기도 했었는데, 두 분에게 장만옥은 어떤 기억을 가지고 있는 배우인가?
전계수: 가장 먼저 어떤 영화를 봤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지만, 가장 좋아했던 영화는 <화양연화>다. <클린>과 같으면서도 다른 게 많다. <클린>은 감정을 드러내고, 표현하고, 소리 지르고, 우는 감정표현이 주였다. 반면에 <화양연화>는 감추고, 절제하고, 외면하고, 뒤돌아서는 느낌이 훨씬 많았다. 굉장히 양식적으로 보이고 장만옥이 입었던 치파오도 양식적인 느낌이 강했다. 내게는 <화양연화>에서의 고독이 훨씬 더 가슴 미어지게 다가왔다. 하지만 절제하지 않고 드러내고, 알아달라고 요구하는 이런 느낌도 장만옥이라는 캐릭터를 설명하는데 굉장히 중요한 영화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장만옥은 여러 가지 얼굴을 영화에 맞춰서 그때그때 변신할 수 있는 배우같다.
공효진: 나는 <화양연화>도 좋았지만 <소살리토>도 너무 좋았다. 여자들이라면 다 좋아했던 <첨밀밀>도 좋았다. 어렸을 때 많이 동경했던 자신감 넘치는 그 모습이 멋있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보면서 배두나 씨가 떠올랐다. 배두나 씨가 연륜이 쌓이면 저런 모습이 될 것이란 생각을 했다. 카리스마가 있다는 것은 꾸며서 될 일이 아닌데, 두 배우는 무심한 듯 연기를 하면서도 그런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다.

김혜리:
의상은 <화양연화>의 치파오가 장만옥의 옷으로 가장 많이 기억에 남긴 하지만 이 영화의 의상도 만만치 않다. 공효진 씨는 알아주는 패셔니스타이시니 연기의 일부로서 그런 것들도 눈에 들어왔을 것 같은데.
공효진: 영화 중반쯤부터 목걸이가 눈에 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해서 목걸이를 보면서 저 여자가 평범하게 살고 있지만 한 때 뚜렷한 락스타의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국영화들 보면 이미 한물 간 락스타 할아버지가 아직도 웨스턴 부츠를 신고 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걸 보면 이미 저 사람은 스타가 아닌데 아직도 의상을 고수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시절에 아직도 젖어 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이런 것과 비슷하게 에밀리의 목걸이나 옷차림이 계속해서 무엇인가를 갈구하는 느낌을 받았다. 이번에 작업한 <러브픽션>에서도 감독님과 의상이나 스타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사실 헤어스타일도 <최고의 사랑> 구혜정의 이미지가 아직 강해서 짧은 머리로 바꾼 것이다. 그리고 또 가장 많이 고민했던 것은 붉은색 립스틱이다. 영화에서 이희진이라는 캐릭터가 처음부터 끝까지 붉은 립스틱을 바르는데,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남들의 시선과 상관없이 고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전계수: 이번에 작업한 영화를 통해서 의상과 분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뼈저리게 느꼈다. 이전까지는 관객들은 눈빛만 본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오해 속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었다. 공효진 씨의 의상에 대해 어떻게 할지 개념이 없었다. 내가 감히 어떻게 공효진 씨와 의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겠나. (웃음) 너무나 다행스러운 것은 공효진 씨가 캐릭터를 드러내는 데에 옷을 입고 있는 자세 하나만으로도 캐릭터의 겹을 느끼게 했고, 그게 의상으로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김혜리:
분명히 아사야스와 장만옥도 어떻게 입을 것인가를 고민 많이 했을 것이다. 에밀리의 옷은 과거 잘나가던 시절에 어떤 사람이었는지 우리로 하여금 추정하게 하는, 흔적을 보여주는 의상이다. 캐릭터의 고집과 껍데기가 남아있는 옷이라서 배우로서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장만옥을 보면 본인이 살았던 환경이 여러 문화를 거쳤기 때문에 그런 느낌이 들 수 있지만 다른 아시아 영화의 스타들 보다 답답해 보인다. 영화 속에서 분명히 동양인의 캐릭터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아사야스의 <이마베프>나 <클린>에서 장만옥이 가지고 있는 아시아 여성의 모습이라는 것은 오리엔탈한 이미지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동시대적이고 구체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 전계수 감독님이 음악에 관심이 많으신 것으로 알고 있다. <삼거리 극장>이 뮤지컬 영화이기도 하지만 <러브픽션>에서도 음악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클린>에서 음악을 쓰는 방식은 어떻게 보셨나?
전계수: 이 영화에서 가장 마음에 든 것이 음악을 사용하는 방식이다. 갑갑한 곳에 갇혀 있다가 결정점을 지나면서 밖으로 나오는 넓은 공간의 느낌이 사운드로 잘 전달됐다. 음악도 지적으로 사용하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음악에 대한 태도의 문제는 윤리적인 문제가 되기도 하는데, 화면으로 담아내지 못했던 것을 음악으로 메우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음악이 나오는 지점과 나오지 않는 지점의 호흡 같은 것이 리드미컬하게 다가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뮤지션이나 아티스트들의 자기표현에 대해 고민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는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는 캐릭터인데, 그런 느낌들이 카메라 호흡과 음악의 이상적인 쓰임을 통해서 잘 전달됐다고 생각한다.

김혜리:
장만옥은 여성관객에게 사랑받는 여성배우다. <이마베프>에서도 장만옥의 캐릭터가 레즈비언의 구애를 받는 장면이 있다. 공효진 씨도 여성 팬이 많은 배우인데 여성관객들이 장만옥이나 공효진의 어떤 점에 끌린다고 생각하나?
공효진: 일단은 절대 미녀가 아니면 된다. 장만옥도 사실은 개성과의 미녀다. (웃음) 장만옥은 여리여리한 이미지 보다는 자기주장이 강하고 남자 못지않은 카리스마가 있는 사람이다. 여자들은 그런 것들을 좋아하는 것 같다.
전계수: 내가 느끼기엔 공효진 씨처럼 여성스러운 여자를 못 봤다. 효진 씨의 장점은 그 여성성을 무기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쿨하게 느껴지는 거고 멋지다.


관객1: <러브픽션> 개봉을 앞두고 계신데 배우들의 연기를 연출할 때 어떤 방식으로 하시는지?
전계수: 윤종빈 감독과도 그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감독은 캐스팅만 잘하면 된다. 그리고 환경을 만들어주고 배우가 자신의 매력과 요구받은 것들을 드러낼 수 있도록 만들어주면 된다. 이후에는 처음의 안목을 믿고 가면 된다. 그래서 하정우 씨와 공효진 씨를 캐스팅 했을 때, 내 영화에 대한 태도는 이미 결정이 됐던 것 같다. 구체적으로 현장에서도 동선 이야기 정도는 나누지만, 주로 기술적인 문제보다는 근본적인 것을 많이 이야기 한다.

관객2: 공효진 씨는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해오셨는데, 이번 캐릭터는 어떤 생각과 고민으로 하셨는지 알고 싶다.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연기하는지 궁금하다.
공효진: 내 연기방법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얼렁뚱땅 연기하기도 하고, 어떤 상황이 닥쳐서 연기할 때의 긴장감과 현장감으로 연기를 하기도 한다. 그런 긴장감으로 연기할 때 가장 힘이 있고 잘 하는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카메라가 내게 가까이 들어올수록 집중도가 높고, 그런 긴장감과 불안함이 뭔가를 일으킨다. 그리고 <러브픽션>은 감독님께서 혼자 쓰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좋은 소문이 자자한 시나리오를 만나고 읽으면서 완벽하단 생각이 들었다. 개봉할 때가 되니까 활자로 되어 있었던 대본보다 우리가 더 재미있게 만들었는지에 대한 의문도 들고, 아쉬운 점도 있기도 하다.

정리: 김고운(관객 에디터) | 사진: 최용혁(자원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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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더럽혀진 삶이 깨끗해 질 수 있을까. 드라이 클리닝도, 세탁기도 해 낼 수 없는 삶의 빨래, 그 위로 얼룩진 채 굳어버린 오물들. 에밀리(장만옥)의 인생 역시 세탁 불능의 단계에 진입한 지 오래다. 1980년대를 호령하는 록스타였지만 지금은 로커로서도, 인간으로서도 절망적인 단계에 이른 남편과 현실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마약을 통해 다른 세계로의 도피 행각을 이어가는 에밀리. 그러던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악다구니를 내지르며 싸우던 남편은 마약 과다 복용으로 싸늘한 시체가 되어있고 자신 역시 마약 복용혐의로 복역하는 신세가 된다. 6개월 후 출소해 유일한 피붙이인 아들을 찾지만 시부모의 눈에 며느리는 여전히 못 미덥고 위험한, 시한폭탄 같은 존재다. 마약과 절망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마침내 얼룩진 삶을 탈탈 털고 깨끗해졌음을 증명시키기 위해, 그래서 아들과 함께 하는 삶을 살기 위해 <클린>은 '모성'이라는 이름의 비누를 에밀리의 한 손에, 그리고 다른 한 손에는 '희망'이라는 이름의 마이크를 쥐어준다. '록시뮤직'의 브라이언 이노가 창조해낸 <클린>의 세계는 장만옥이 영화 말미에 부르는 노래 'Down in the Light'에 이르러 감정의 최고점을 향해 달려간다. 시아버지 역의 닉 놀테가 건네는 "사람은 변한다, 필요하다면"이라는 현실적인 위로와 함께.


결국 <클린>은 두 개의 이름으로 설명될 수 있는 영화다. 장만옥, 그리고 올리비에 아사야스. 허우 샤오시엔을 비롯해 아시아 영화에 대한 오랜 추종과 깊은 애정을 가져온 프랑스 감독 올리비에 아사야스는 자신의 연출 데뷔작의 주인공으로 장만옥을 불러들였다. 한물간 프랑스 감독이 <동방삼협>(1992)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였던 홍콩 여배우를 캐스팅해 뱀파이어 영화를 리메이크하려고 하지만 결국 무산되고 만다는 해프닝을 통해 프랑스 영화판을 풍자한 '영화에 대한 영화' <이마베프>(1996)를 통해 만난 이후, 두 사람은 1998년 결혼했지만 그 관계는 오래가지 못했고 <클린>을 찍을 당시에는 이미 더 이상 부부가 아니었다. 하지만 연인에서 동료로 돌아간 아사야스의 지휘에 장만옥은 근사한 독창을 선보였고 2004년 칸 영화제는 '여우주연상'이라는 힘찬 박수를 보냈다. <아비정전>(1990)에서 <첨밀밀>(1996)을 거쳐 <화양연화>(2000)로 이어지며 점점 연기의 폭과 깊이를 늘려갔던 장만옥에게 <클린>은 장국영도, 여명도, 양조위도 없는 세상에서 홀로 싸워낸 기록이다. 냉대와 외면 속에 닥치는 대로 허드렛일을 하며 마약의 유혹과도 싸워야 하는 에밀리의 현실은 <첨밀밀>의 건강한 억척스러움으로 덤비기엔 너무 고단했고, 그 지속적 긴장감을 유지하기란 <화양연화>의 치파오같은 코스튬의 도움 없이는 쉽지 않았을 것이 분명한데 말이다.

이처럼 아름다운 위자료를 획득한 이후 지난 몇 년 간 장만옥을 모습을 스크린에서 볼 기회가 없었다. 새로운 연인과의 이별과 그 이유에 대한 비보와 루머, 지나치게 마른 모습이 찍힌 몇몇 사진들이 다 일 뿐이다. 에밀리가 아들과의 재회를 위해 편지의 끝에 절박하게 써 내려간 말 "I'm Clean……." 처럼 장만옥 역시 배우라는 이름 위에 7년 간 쌓인 먼지를 깨끗하게 털어내고 어서 돌아오기를.

(by 백은하_10 아시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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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작가를 만나다 - 전계수 감독의 <뭘 또 그렇게까지>

10월 작가를 만나다에서는 한국을 대표하는 다섯 감독들이 만든 프로젝트 영화, 한국의 만나다의 춘천편인 전계수 감독의 <뭘 또 그렇게까지>를 함께 보고, 감독과의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새로운 스타일을 구축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영화세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는 전계수 감독과 함께한 시간을 담아본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먼저 이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와, 춘천을 영화의 배경으로 설정한 이유를 말씀해 주신다면.
전계수(영화감독): 원래는 아리랑 TV에서 한국의 아름다움을 외국인들에게 소개하기 위해서 TV 영화를 만드는 기획이었다. 저를 포함해서 다섯 분의 감독님들이 도시를 하나씩 선택해서 그 도시가 영화의 배경이자 주제가 되는 영화를 만들기로 했다. 다른 감독님들이 외국인들도 알 수 있을만한 대도시들을 선택하시기도 했고, 개인적으로 소도시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서 춘천을 선택하게 되었다. 춘천에 연고가 있는 것은 아니고, 한두 번 바람 쐬러 갔던 적 밖에 없지만 그 기억을 살려서 만들어 보았다.

김성욱: 처음에 남자주인공이 등장할 때 니체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을 읽다가 기차에 두고 내리는 장면 이후로 니체가 종종 영화에 언급되는데 처음부터 구상했던 것인지.
전계수: 사실 남자주인공 조찬우처럼 저도 니체를 하나도 모른다. 그런데 촬영을 시작할 무렵 정신없는 와중에 우연히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을 읽게 되었다. 내용은 잘 생각이 안 나지만 표제가 마음에 들었다. 처음엔 그 제목을 이 영화의 제목으로 할까도 생각했고, 처음에 찬우가 기차에 두고 내렸던 책을 나중에 찾게 되는 것으로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지만 여건상 그렇게 찍을 수가 없었다.

김성욱:
세계 최초로 특정 카메라를 사용한 영화로 알고 있는데 장비에 대한 설명을 해주신다면.
전계수: DSLR 중에 캐논 5D Mark 2라는 카메라의 동영상 기능으로 촬영했다. 제작비 문제도 있었지만 실제로 테스트 촬영을 했을 때 일반 필름 카메라나 HD급 카메라만큼은 아니겠지만 대단히 영화적인 느낌이 있어서 이 카메라로 촬영하게 되었다. 그런데 워낙 작은 카메라로 찍다 보니까 영화 현장 같은 느낌도 별로 나지 않고 사고도 많았다. 촬영 시기가 여름이라 카메라가 굉장히 빨리 뜨거워져서 촬영 중간 중간에 부채질을 해줘야했다. 사실 큰 화면에서는 어떻게 보일까 걱정을 했는데 화면이 잘 나온 것 같다. 역시 카메라가 워낙 작다 보니 모니터 할 때도 불편함이 좀 있긴 했지만, 그런 사소한 문제점들을 제외하고는 독립영화나 저예산 영화를 하시는 분들이 쓰시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김성욱: 극중에서 찬우와 민호가 서로 뱉은 술을 마시는 장면은 컷이 나누어져 있어서 영화상으로는 확인이 불가능한데, 배우들이 실제로 그렇게 했는지.
전계수: 실제로 하긴 했다. 나는 만류했는데 배우들이 그렇게 했다. 그래서 편집 과정에서도 고민이 많았다. 배우들의 노고를 생각하면 끊지 않고 갔어야 했는데 한 테이크로 가자니 좋은 호흡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잘라 붙였다. 사실 전체적으로 배우들의 노고가 매우 컸다. 주인공 찬우 역의 이동규 씨는 원래 몸이 탄탄하고 매끈한 사람인데 배 나온 장면을 만들기 위해서 화장실을 일주일 동안 안 갔다고 한다. (웃음)

김성욱: 찬우가 맨 처음에 김유정역에서 내리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고, 여자주인공의 이름도 김유정인데.
전계수: 원래는 춘천역에서 찍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헌팅을 갔다가 역 이름이 너무 신기하고 주변 풍경이 워낙 예뻐서 김유정역을 쓰기로 했다. 여자주인공을 김유정이라고 한 것도, 개인적으로 배역 이름에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인데 헌팅 가서 ‘김유정역에서 김유정을 만나다’라는 컨셉으로 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관객1:
유정을 따라다니는 대학생 이민호라는 캐릭터에 대해 설명해주신다면.
전계수: 민호는 20대고 찬우는 30대인데, 민호는 저의 20대 때 모습이고 찬우는 저의 30대 때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20대 때의 철없고 한심하고 무책임한 모습과, 모든 게 무의미하고 가치 없게 느껴지고 따분한 지금의 모습을 충돌시켜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둘이 막걸리를 마시는 장면에서도 20대의 민호는 자기가 10년 후에 저런 모습이 될 것 같아서 화가 나고, 30대의 찬우도 자신이 20대였을 때의 무책임하고 어리석고 집착하는 모습이 보여서 화가 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관객2: 유정 역의 여배우와 작업 중에 어떻게 서로 소통했는지 궁금하다.
전계수: 사실 여배우를 촬영 이틀 전에 캐스팅 했다. 워낙 정신없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프로덕션이었고, 그 배우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데 내일 모레 촬영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한두 시간 정도 인터뷰를 했는데 도저히 배우에 대해서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오히려 그런 채로 남겨둬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처음엔 여배우가 많이 낯설고 어색해했다. 촬영 중에도 밤마다 세 배우가 방에 모여서 영화와 전혀 상관없는, 이를테면 커피 같은 것을 소재로 각자의 캐릭터에 맞춰 역할극을 하기도 했다. 캐릭터에 대해 배우들에게 설명하거나 하는 시간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역할극을 통해서 스스로 만들어가는 방식으로 해보자고 이야기 했었다.

관객3:
영화에 고통과 예술의 관계가 계속 언급된다. 감독님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 하시는 게 결국은 고통 없이는 예술이 없다는 것인지.
전계수: 제 생각은 ‘뭘 또 그렇게까지’라는 거다. (웃음) 물론 고통 없이는 예술도 없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지금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해답은 없다. 시나리오 쓸 때도 너무 고통스러워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왜 이렇게 고통스러워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조금씩 글이 써지긴 하니까 때로는 고통이 하나의 원동력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결국은 그게 상황이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생기는 자기연민이라는 생각으로 귀결되었다. 영화와는 무관하게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행복하게 살고, 기회가 있을 때 행복하게 작업했으면 좋겠다는 거다.

김성욱: 극중의 예술제에서 상영되었던 영상은 직접 촬영한 것인지.
전계수: 직접 촬영한 것이다. 촬영 전에 헌팅을 갔을 때 마침 춘천마임축제를 하고 있어서 스케치 차원에서 캠코더로 촬영한 것이다. 포커스도 시험 삼아 날려봤고, 거기에 걸맞는 내레이션도 써본 것이다. 사실 이 영화는 아리랑 TV에서 방영될 땐 50분 분량으로 나가야 하는데, 50분으로 편집을 하던 도중에 장편으로 늘리라는 이야기를 들어서 헌팅 때 찍어두었던 장면들을 많이 활용했다.

관객4: ‘뭘 또 그렇게까지’라는 말 자체가 주는 일반적인 어감이 있다. 그게 사람간의 관계에서 쓰일 수 있는 말이기도 하지만 주인공의 성격 또한 드러내주는 것 같다. 그런 제목이 와닿으면서도 의미심장하게 느껴지는데 어떻게 짓게 되셨는지.
전계수: 원래 극장개봉 목적은 아닌 영화였지만 올 봄에 개봉을 했었는데, 그 때 네이버 평점을 봤는데 ‘뭐 제목이 이따위야’라는 인상적인 코멘트도 있었다. (웃음) 그냥 놔버리고 싶었다. 원래는 <나쁜 충동> 아니면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같은, 주제와 연관되고 다소 철학적인 척하는 제목으로 지었다. 그런데 후반작업 하면서 ‘내가 얘기 하려고 하는 게 이렇게 거창한 게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바꾸게 되었다. 뒤늦은 판단이었지만 제목을 바꾸기는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관객5: 영화 안에서 충동이라는 단어를 상당히 많이 들을 수 있었는데 감독님이 생각하시는 충동이란 무엇인지.
전계수: 사실 영화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다 충동이다. 찬우가 김유정역에 내리는 것부터모든 일이 충동을 따라 흘러가다가, 나중에 유정이 화가의 길을 가지 않고 스튜어디스가 되겠다고 하는 것도 어떤 충동의 발로다. 개인적으로는 충동적인 것들이 고민하는 것보다 훨씬 더 건강하다는 생각이 든다. 뭔가 움직이게 하니까. 오늘 오랜만에 다시 영화를 보면서 스스로 깨달은 점도 있는데, 이제는 말이 오가는 영화보다는 충동적일지라도 몸으로 부딪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김성욱: 대사에서 ‘춘천은 충동적으로 오는 곳’이라는 표현도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런 면에서 춘천이 충동과 어울린다는 생각도 든다. 마지막으로 지금 준비하고 있는 영화에 대해 이야기 해주시면.
전계수: 작년 친구들 영화제에 하정우 씨와 함께 왔을 때 하겠다고 말씀드렸던 영화다. 하정우 씨가 주변에 민폐나 끼치는 소설가로 나오는데, 그 부분은 판타지긴 하지만 소설이 너무 안 풀려서 자기가 쓴 소설의 주인공들에게까지 욕을 먹는 인물이다. 그러다가 우연히 겨드랑이 털을 기르는 여자를 만나서 일이 술술 풀린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여배우들이 잘 안하려고 한다. 누군가 캐스팅 된다면 그 여배우분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주셨으면 한다. (웃음) 작년 친구들 영화제 때 <히스 걸 프라이데이>로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같은데 그때 저를 매료 시켰던 스크루볼의 느낌으로 영화를 찍으려고 준비하고 있다.
김성욱: 최근에 별로 좋지 않은 일도 꽤 많은데 관객분들 모두 영화를 보시면서 즐거움을 느끼셨으면 좋겠다. 전계수 감독님도 빨리 영화 작업에 들어가셔서 내년에 관객들과 만나기를 빈다. (정리: 박예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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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전계수 감독이 함께한 존 워터스의 <디바인 대소동> 시네토크

 

2월 7일 일요일 오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컬트 영화, 존 워터스의 <디바인 대소동>이 상영된 후 이 영화를 추천한 이재용, 전계수 감독과의 대화가 이어졌다. 얼마나 많은 즐거움과 혐오감이, 환호와 야유가 교차했을지 궁금해지는 시간이었다. “영화를 처음 보신 분들은 뜨악한 반응도 있을 것 같고, 웃어야 할지 야유를 보내야 할지 주저하시는 것 같다. 워낙 특이한 영화”라는 말로 시작된 시네토크에서 이 영화를 추천한 이재용, 전계수 감독은 무엇보다 영화를 본 관객들의 반응이 제일 궁금하다고 했다. 많은 이야기들과 다양한 생각들이 오간, 영화만큼이나 예측할 수 없던 흥미로운 시간의 이야기를 옮겨본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이재용 감독과 전계수 감독이 극장에 자주 영화 보러 오시는데, 그때마다 존 워터스 이야기를 했었고, 이재용 감독은 존 위터스 특별전을 하면 좋겠다고 말씀하시기도 했다. 전계수 감독의 경우 카탈로그 책자에 보면 추천의 변에 이렇게 썼다. “10년 전 일본의 허름한 독신자 아파트에서 그의 전작 <핑크 플라멩고>와 더불어 이 작품을 보는 내내 내가 가진 비위의 한계치를 계속해서 넓혀가야 했던, 특별히 더러웠던 경험을 기억합니다.” 두 분이 어떤 방식으로 존 워터스 감독의 영화를 접하셨는지, 어떤 점에 매력을 느끼는지 궁금하다.

전계수(영화감독): 악취미지적인 온갖 더러운 것들, 조잡한 것들, 나쁜 것들을 한데 모아서, 굉장히 설득력 없게 그리는 방식이 좋다. 왠지 ‘길티플레저(Guilty Pleasure)’ 느낌이다. 그 전에 봐왔던 숭고하고 고상한 가치를 지닌 영화들과 완전히 반대의 지점에서 출발한 영화들을 볼 수 있어서 너무나도 신기했다. 매년 친구들 영화제 프로그램들이 너무너무 좋은데, 그 대부분이 우리가 용인할만한, 포용할 수 있는 가치체계 안에서의 숭고한 가치를 보여주는 영화들이다. 나는 영화를 만드는 동기는 꼭 그런 것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고, 그래서 이 영화를 추천하게 됐다.

이재용(영화감독): 내가 처음 존 워터스 영화를 본 것은 95년, 다큐멘터리를 하다가 편집을 하기 위해서 뉴욕에 가 있을 때였다. 한국에서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영화에 우선 끌렸던 것 같고, 모든 가치관이나 생각들을 뒤집는 면들에 쾌감을 느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처음 봤을 때 받았던 문화적 충격이 내 안에 잠재되어서, <다세포 소녀>에도 영향을 크게 미친 것 같다.

 

김성욱: 그러고 보면, 전계수 감독의 <삼거리 극장>도 그런 느낌이 있었던 것 같다.

전계수: <삼거리 극장>에서도 토하는 장면도 많고 온갖 더러운 것을 먹는 장면도 많다. <삼거리 극장>을 투자 받아 제작하게 됐을 때, 블로그에 존 워터스 감독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쓴 적이 있었다. 정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던 감독이다.

 

김성욱: 이런 영화를 두고 악취미라고 부르는데, 악취미의 본질이 어떤 걸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전계수 감독의 추천의 변을 보면, 꼭 이렇게 영화를 만들어야 될까라는 질문과 동시에 이렇게 만들면 왜 안 되느냐는 질문이 공존한다고 쓰셨다.

전계수: 존 워터스 감독의 다큐를 봤는데, 그가 영화를 만드는 이유는 딱 하나인 것 같다. 바로 엔터테인먼트. 워터스는 “내 영화가 아무 사회적 가치를 갖지 않은 것에 대해, 나는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심야상영관에서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 그 때는 모든 가치들이 좀 더 열려 있고, 어떤 행동도 장면도 용납되고, 관객들의 반응이 어떻든 그것이 진심에서 우러나온 갈채든 야유와 비아냥이든 모든 것이 가능한 세계에서 영화가 보여지기를 원한다. 엔터테인먼트의 본질이 악취미”라고 말했다. 존 워터스 감독이 좋아하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있는데, 자동차 사고가 나서 그 안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피가 낭자한 채로 허리가 꺾어진 채 있었는데, 그 낭자한 피를 한 없이 들여다봤던 기억이라고 한다. 그 때 선혈이 낭자한 피를 보고 끌렸던 자신의 기억을 사람들과 공감하기 위해 이런 영화들을 만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김성욱: 존 워터스 감독이 했던 인상적인 또 다른 말이 있다. “만약 당신이 아웃사이더라면, 더 이상 불안해하지마라. 그걸 장점으로 하고 살아가다 보면, 당신은 더 이상 루저가 아니다. 바로 이런 것들이 내 모든 영화가 말하려던 거였다. 당신을 괴롭혀온 모든 것을 과장하고 심지어 자랑스러워한다면, 사람들은 정말로 당신을 존경하게 될 것이다. 노이로제랑 친해져라. 그것이 현대인의 성숙한 삶의 태도다.” 이재용 감독님은 이런 방식의 영화를 만드는 것, 이런 방식이 또 다른 삶의 태도라는 이야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이재용: 존 워터스 감독의 영화를 봤을 때 참 놀라웠다. 저런 영화를 만들 수도 있구나했다. 감독이 되기 전에 학창 시절부터 많은 영화를 보면서, 관습적이거나 어떤 공식이 있는 영화들, 대부분의 장르영화들, 다음 이야기가 예측되는 영화들이 어느 순간부터 재미가 없어진 것 같다. 일종의 직업병이랄까. 영화가 자꾸 눈에 보이고, 카메라 뒤에 사람들이 느껴지고, 연기할 때의 배우의 심정들이 느껴지니까, 일반 순수한 관객처럼 빠져서 영화를 못 보게 되더라. 그래서 점점 좀 다른 방식의 영화들에 빠져들게 됐다. 어설픈 연기, 우리가 연기를 하고 있다고 보여주는 것 자체가 오히려 더 거짓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런 영화의 예측불허의 상황들을 따라가는 것이 더 즐겁다. <다세포 소녀>를 만들기 전에 만화 원작을 접했을 때, 이런 영화를 떠올렸던 것 같다. 스스로 어떤 경우는 메이저 느낌의 상업적인 영화도 만들지만, 기본적으로 그런 것들을 뒤집는 영화들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있기 때문에, ‘이런 영화를 나같이 이런 것을 즐기는 사람들이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그들과 접선을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만들었던 영화였다.

 

김성욱: 이런 것을 즐기고 편하게 받아들이는 관객들은 한국에선 많지 않다. 전계수 감독도 <삼거리 극장>을 극장에서 맥주 마시면서 춤추고 난리치면서 보고 싶었는데, 사람들이 너무 점잖게 보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존 워터스를 비롯해서 파솔리니, 타비아니 형제, 페데리코 펠리니 같은 사람들은 세상의 참 특이한 사람들을 스크린에 가득 모아놓는다. 평상시에 잘 못 볼 것 같은 사람들이 영화 내내 진기명기처럼 등장한다. 이런 영화들의 어떤 점들을 특히 재밌게 보는지. 연기의 문제나,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의 전개나, 디바인이라는 여자의 캐릭터에 대해서나.

전계수: 제일 재밌었던 것은 디바인이 극장가서 쇼를 할 때, 쇼의 내용이 트램폴린 타는 것밖에 없는데, 그것만으로 장면이 가능하다고 생각한 존 워터스 감독의 절약정신이었다. 디바인이라는 여자가 도대체 어디까지 악행을 자신의 아름다움으로 치환해서 생각을 하는지,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건지 지켜보는 과정이 재밌었다. 범죄 안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는 역설을 존 워터스 감독은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사실 대부분의 영화들에 그런 면들이 있다. 범죄에 경도되는 대부분의 영화들에 형사나 범죄자들이 많이 나오는데, 그것은 그들의 삶이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정상성을 거스르는 추악한 나쁜 취향,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없는 범죄를 보는 쾌감들이 이런 영화를 만들게 하는 나쁜 피 중의 하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던 것에는 사실 그런 측면도 있다.

김성욱: 진짜 보신 분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영화를 본 소감이나 궁금한 점이 있으면 이야기 해 달라.

 

관객1: 매혹적이고 신선하고 아주 재밌었다. 이재용 감독님이 존 워터스 감독의 전작을 보고 싶다고 하셨다고 하는데 나도 그렇다. 영화를 보는 행위는 일종의 관음적인 행위이고, 이런 신기한 일상을 벗어난 영화를 보는 것은 일종의 대리만족이다. 우리가 사람을 죽일 수는 없지만, 범죄영화를 보면서 그것을 대리로 만족하고 즐기지 않나. 이런 영화를 보니 그것을 아주 극대화시키는 것 같다. 아까 보니 ‘쓰레기 영화의 황제’라고 했는데, 그 말은 조금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그리고 노망난 할머니는 비전문배우 같던데 맞나.

전계수: 들은 애기라 확실하진 않은데, 존 워터스의 고향이 볼티모어이고 지금도 거기서 살고 있는데,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이 볼티모어에 사는 자기 이웃들이라고 한다. 저예산 영화로 찍었으니 그런 이웃을 쓴 것이겠지만, 연기를 잘하는 배우를 쓸 수도 있었는데 일부러 어색하고 책을 읽는 듯한 연기를 하게 한 것 같고, 모든 대사를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마저도 우스운 것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재용: 실제로 이웃이면서 친구면서 그런 문화를 아는 사람들끼리 즐기면서 만든 영화가 아닌가 싶다. ‘쓰레기 영화의 황제’라는 칭호는 고상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한 비난이라기보다는, 다른 의미로 저런류의 영화의 장르로의 대가라는 뜻으로 칭찬하는 말인 것 같다. 본인 스스로도 그런 말을 자랑스러워할 것이라 생각된다.


 

관객2: 존 워터스의 영화를 좋아하는데, 일관적으로 두 가지 주류를 한꺼번에 비교하면서 비판한다는 느낌이다. <디바인 대소동> 같은 경우, 주인공 여자가 자신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밀고나가면서 그것으로 인해 범죄를 저지르고 그로 인해 사회적 비판을 받는데, 감독은 비판하는 사회 그 자체를 여주인공보다 더 비판한다는 느낌이 든다. 여주인공에 대해서는 연민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인물들의 행동이 지저분하고 폭력적이기도 하지만, 그 인물들에 애정이 생기기도 하는 것은, 감독이 그들에게 품고 있는 연민이 담겨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또한 존 워터스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이야기의 전개가 전혀 예측불가능하고, 신선한 발상이 거침없이 드러나는 점에 있는 것 같다.

 

관객3: 나는 영화를 볼 때, 이 감독이 친구들과 영화를 가지고 그냥 논다고 하는 생각이 들어서, 나도 같이 참여해서 놀았다. 이런 영화를 당당하게 만든 존 워터스 감독의 용기가 존경스럽다.

이재용: 누군가가 <다세포 소녀>를 만들 당시 약을 먹고 찍었냐고 물었는데, 이 영화는 정말 약을 먹고 찍었을 것 같다. 이 영화는 극단적으로 가서 어떤 경지까지 이룬 느낌이 든다. 언젠가 제작의 여건이나 문화적 여건에 따라 이런 영화도 꼭 도전해 보고 싶다는 욕망이 있지만, 이런 것이 어떻게 관객과 만날 수 있을지가 가장 어려운 지점이다.

 

관객4: 영화를 보면서 굉장히 맘에 들었던 게, 보통의 영화처럼 엔터테인먼트나 쇼 비지니스의 화려한 이면 뒤의 역겨운 것을 풍자하지 않고, 오히려 진짜 직설적으로 스트레이트하게 ‘그것이 진짜 역겹다’고 보여준 점이다. 궁금한 게 이 당시 존 워터스 감독이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었던, 할리우드의 산업구조를 알고 싶다.

이재용: 할리우드과 완전히 떨어진 독립영화다. 십시일반 자기 친구들 공짜출연으로 만들어진 영화였다. 심야영화나 예술영화관에서 이뤄지는 소통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것들이 어떤 진정성을 인정받으면서 조금씩 메이저로 들어가기도 했지만, 여전히 할리우드 메이저에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은 아니다.

전계수: 산업적 배경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문화적 배경은 60년대의 히피 문화와 특히 펑크 문화가 드러나는 것 같다. 60년대의 약간 기성적인 것, 질서, 관습, 전통에 대한 의미 있거나 혹은 이유 없는 반발들이 하나의 세대적인 문화로 자리 잡았을 때의 그런 정신이, 이런 영화가 가능하고 이런 영화를 향유할 관객이 있다고 생각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물론 이 영화는 처음에는 배급사를 못 잡았다. 놀랍게도 처음에는 교회를 빌려 상영했다고 한다. 다큐멘터리를 보니 그 교회의 목사님이 그 사실을 매우 자랑스러워하더라.

 

김성욱: 이런 영화를 상영하게 해준 목사든, 만든 사람이든, 출연한 배우든 자부심을 갖는 것일 게다. 영화 속에는 매일 매일이 트러블로 가득하다. 그 트러블들을 받아 안아서 그걸 가지고 과장되게 만들어 내는 것. 그것을 도피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그걸 가지고 그것과 맞서서 살아가는 것. 그런 이상한 자신감이 이런 영화를 보며 생기는 거 같다. 죽음의 순간까지 수그러들지 않는 디바인의 모습은 어떤 면에서는 숭고하기도 하다. 나중에 존 워터스 영화 특별전을 하게 돼서 일주일 내내 이런 영화들을 보게 된다면 우리가 어떻게 변할지 궁금하다. 두 분이 평소에 전혀 틀지 못했던 영화를 선정해주셔서, 특이한 문화적 충격을 만들어내 준 것 같다. 하지만 아쉽게 끝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해주신다면.

전계수: 존 워터스 감독에게 가장 크게 배운 것은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눈치 보지 않고 밀어붙이는 태도가 우리의 삶을 다양하고 폭넓게 만든다는 점이다. 나도 계속해서 이상한 것들에 대한 끌림을 부정하지 않고 만개시키는 영화를 앞으로 만들겠다.

이재용: 어떤 면에서 영화는 큰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저 영화일 뿐이기도 하고 즐기기 위한 도구이기도 하다. 영화를 너무 진지하게만 보기보다는,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영화를 접할 수 있으면 좋겠다. (정리: 박영석)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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