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 조'의 이광국 감독

 

지난 5 19일 토요일 저녁,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5월 작가를 만나다 프로그램으로 이광국 감독의 장편 데뷔작 <로맨스 조>를 상영하고 상영 후 장병원 영화평론가의 진행으로 이광국 감독과 함께하는 관객과의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독특한 이야기 전개와 영화 속 디테일에 대한 관객들의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던 현장이었다.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첫 영화를 상영하고 관객들을 만나게 되어 기쁘다는 이광국 감독과 극장을 찾아준 관객들의 대화 시간의 일부를 여기에 전한다.

 

 

장병원(영화평론가): 포괄적인 질문 하나를 드리고 싶다. 영화의 내러티브나 서사 구조의 몇 가지 이야기를 설계하실 때 처음에 가졌던 컨셉이나 목적부분부터 설명해주시길 부탁 드린다.

이광국(영화감독): 시나리오를 쓸 때, 몇 년 전인데 조감독 생활을 오래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제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진지하게 고민하다보니까 점점 더 뭘 써야 될 지 모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 기간이 좀 길어서 절망적인 상황까지 갔다. 어느 순간에 그러면 다른 데서 이야기를 찾을 게 아니라 지금 내가 처한 상황에서 출발하면 어떨까, 이야기가 절실히 필요한 한 남자의 이야기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시기에 소문에 관심이 있어서 그 남자와 소문을 어떻게 연결 지을까 생각하다가 에셔의 그림을 보게 되었다.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그 그림을 보면서 그림이 주는 뉘앙스를 이야기로 만들면 어떨까, 그런 과정을 통해 시나리오와 영화가 나왔다.

 

장병원: 이 영화를 보면 그룹핑, 예컨대 인물들을 쌍을 짓는다. 다방 레지 같은 경우는 거의 모든 사람들을 만나는데 그 인물을 어떤 식으로 설정하신 건지 궁금하다. 순환하는 캐릭터가 있고 엮어주는 캐릭터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광국: 처음에는 어쨌건 천재적인 이야기꾼이 있으면 어떨까 생각했다. 영화를 만들고 소설을 쓰는 관련 업계가 아닌 엉뚱한 사람이 오히려 전문가들보다 더 좋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건 어떨까 싶었다. 그래서 레지를 중심에 두고 그룹핑을 하게 되었다. 아까 말씀 드린 에셔의 그림을 보다가 머리가 어지럽기도 하고, 서로를 계속 그리는데 그림이 주는 뉘앙스가 소문이랑 붙였을 때, 소문이랑 유령 같다고 생각하니까 다방 레지가 그 유령들을 하나로 모아주는 역할이라 생각했다.

 

관객1: 영화 보는 내내 보르헤스, 플로베르도 생각나는 아름답고 유쾌하고 슬픈, 재미있는 영화였다. 결국 모든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다방 레지가 읽고 있던 책이 정확하게 어떤 것이었는지, 그 책이 모텔 냉장고에서 꺼낸 책이 맞는지 궁금하다. 또 그 책을 선택하신 이유가 궁금하다.

이광국: 책은 소설 마담 보바리. 계속 등장하는 책은 똑같은 책이 맞다. 처음에 시나리오에는 책을 읽고 있다 정도의 설정만 있었다. 디테일을 만들면서, 맥 빠지는 대답이긴 하지만 좋아하는 소설을 골랐다. 고르고 나서 보니 마담 보바리도 약간 구조적으로 실험이 많이 있어서 이런 게 맞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소설이 레지와 초희를 엮어줄 수 있는 고리 같은 걸로 작용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객2: 영화를 보면서 국내 소설 중 최제훈 작가의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이라는 소설이 떠올랐다. 그 소설의 작가에게도, 감독님에게도 궁금한 점이다. 이야기의 틀이 여러 세계가 병행한다고 보여지는데 시나리오를 쓰실 때 틀을 먼저잡고 쓰셨는지, 아니면 하다 보니 틀이 잡힌 건지 궁금하다.

이광국: 틀을 먼저 어느 정도 잡아놓고 디테일을 만지면서 조금씩 변형했다. 만들기 전에는 약간 모험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이해를 못하거나 부정적 반응을 보일 것이라는 걱정도 있었지만 그냥 만들어보고 싶었고, 구조적 낯섦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차용해서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장병원: 문학적인 것이 상당히 많다. 이야기 구조나 이야기 본질에 대해서 계속 질문하고, 영화 속에서 모든 사람들이 계속 이야기를 지어내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 직업적이든 아니든 스토리텔러들이 굉장히 많이 등장한다. 심지어 여관에서 어머니도 드라마 이야기를 한다. 이야기들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흥미로운 진행방식이다.

 

관객3: 소년 배우가 왼손잡이인데 로맨스 조는 오른손을 쓰는 것을 발견했다. 감독의 지시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데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왜냐하면 소년이 로맨스 조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으므로 감독이 그것을 조작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광국: 그룹별로 이야기를 만들었는데 제 바람 중 하나는 이 모든 것들이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여지가 있는 것이었다. 초희가 레지의 과거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소년이 로맨스 조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모호한 지점이다. 이다윗군이 왼손잡이인 것은 늦게 발견했다. 장면을 찍기 전에 늦게 발견했고 연결지점을 맞춰야 하나 고민했다가 다르게 가는 것도 재미있으리라 생각했다. 처음부터 의도는 아니었지만 촬영 중에 그렇게 갔던 경우다.

 

관객4: 로맨스 조와 다방 레지가 포장마차에서 술 먹을 때 로맨스 조가 왜 우리는 이야기를 해야만 하나라고 하는데 감독님은 답을 가지고 계신지 궁금하다

이광국: 어려운 부분이다. 명확한 결론은 못 내리지만, 자기 인생은 스스로 정리되지 않고 어려운 일이다. 결국은 자기 주위에 같이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동질감, 이질감 여러 것들을 보게 되고, 그게 이야기라는 형식으로 사람들한테 돌아다니는 것이다. 그것으로 사는 것은 비슷하다는 마음의 안식이나 다른 삶에 대한 호기심을 얻게 되는 것 같다. 이야기는 자기 존재감을 확인하는 것이 아닌가 막연히 생각한다.

 

장병원: 영화 속 한 인물의 동일성, 이 사람이 저 사람인가 하는 것이 뭉개져 있고 허물어져 있다는 특성과 개념을 구원하기 위해 몇 가지장치가 보인다. 그중 두드러지는 것이 이야기가 계속 인물에서 인물 사이로 전파되는 것이다. 예컨대 300만 관객의 이 감독과 입지를 다지지 못한 감독지망생 로맨스 조가 사실 동일인물일 수 있다는 점, 노트북을 주는 행위, 처음에 소문으로 인해 자살한 등장하지 않는 여배우가 죽은 이유가 소문에 의해서라는 점과 어린 시절 초희 역시 추문에 의해 손목을 긋게 되는 형태로 인물들의 동일성이 보인다. 또한 사물의 장치로 연결되어 있다. 그런 장치들 외에 전체적 인물의 동일성, 시간적 위계를 위한 고안물이 있으면 설명을 부탁 드린다.

이광국: 의도 자체가 처음부터 그런 식으로 접근을 하려 한 건 아니다. 디테일은 촬영 들어가기 전후에 발견했다. 냉장고 안에서 책을 꺼내는 것은 시나리오에 현장에서 촬영하다가 문득 레지와 초희를 어떻게 묶을까가 떠올랐다. 연출부와 촬영 감독이 부정적 반응을 보였지만 오기가 발동해서 했던 케이스다. 친구가 나중에 경찰로 다시 나오는 상황도 시나리오에는 다른 인물이었다. 나중에 친구가 경찰로 나오면 시나리오적으로 그런 느낌을 줄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했다. 막연하게 그렇게 해 보고 싶었다.

 

관객5: 남자의 첫사랑이 계속 이야기의 원동력이 된다. 감독님에게 로맨스나 사랑은 단지 장치로만 쓰려고 차용하신 건지, 이 영화에서 사랑은 어떤 건지, 감독님의 의도가 궁금하다. 경험담이라면 그것도 말해주시면 좋겠다.

이광국: 구상 초기에는 제목 없이 소문에 관한 이야기, 이야기가 절실히 필요한 남자의 이야기였다.그래서 초기에는 제목이 없었다. 우연히 옛 친구를 만났는데 인디 밴드를 하고 있다면서 같이 밴드를 하는 사람들의 이름이 다들 로맨스 조니 다크 박, 드라이 김이니 애칭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친구는 로맨스 조였다. 그때 로맨스 조라는 이름에 꽂혀서 그 이름을 제목으로 쓰겠다고 했다. 구조적으로 원형적인 작은 이야기가 하나 있고 그것을 주위에서 뜯어먹는 식의 설정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어 제목과 맞는 작은 멜로를 넣었다.

 

관객6: 영화를 시작할 때 보면 그림에서 출발한다. 아까 말씀하신 그 에셔의 그림이 처음 그림과 같은 것인지, 처음 그림은동물 말 그림인데 소문과 관련해서 그 그림을 넣으신 건지, 어떤 의도가 있는지 궁금하다.

이광국:그 그림은 에셔의 그림은 아니고 시나리오에도 없다. 개인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영화의 첫 커트인데 고민하다가 이야기가 중요한 소재, 말이 소재라서 말 그림으로 시작을 해볼까, 장난기 같은 것이 있어 말 사진을 포토샵으로 작업했다. 말 사진으로 시작해서 토끼로 영화를 끝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장병원:관객분들을 위해 에셔의 그림을 조금만 설명해주신다면 좋겠다.

이광국: 뫼비우스의 띠처럼 손 두 개가 서로를 그리고 있는그림이다. 보고 있으면 이상한 느낌이 많이 든다. 어떤 것이 진짜인지 알 수 없는 그림이다.

 

관객7: 다방 레지 캐릭터가 인상적이었다. 캐릭터의 쓰임새를 떠나서 감독님께서 좋아하는 여자 캐릭터를 쓰신 건지 궁금하다. 또한마지막 부분에서 경찰관이 하는 말이 생뚱 맞게 느껴져서 설명을 조금 부탁 드린다.

이광국:저는 시나리오를 쓸 때 캐릭터를 인물 별로 미리 정해 놓고 쓰지 않는다. 이야기의 틀 안에서 씬마다 목표점이 있으니 그 씬에 인물들이 들어갔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지가 중요해서 그렇게 썼다. 처음부터 레지는 이런 캐릭터여야 한다고 정해놓지 않았고 좋아하는 캐릭터도 아니었다.씬의 상황이 먼저 있었고 그에 맞게 대사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또한 어떤 배우가 이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니 배우가 결정된 후 배우와 캐릭터 잡는 이야기를 많이 했었다. 처음부터 캐릭터를 정확하게 만들어놓지는 않았다. 경찰 장면은 저도 말씀 드리기 어려운 지점이다. 왜냐하면 이야기를 처음 구상할 때 남자가 마지막에 경찰한테 검문을 당하면 어떨까 생각했기 때문에 의심 없이 작업을 했다. 만들면서 목표 지점은 딱 두 개 있었는데 보는 사람들이 보는 내내 호기심을 갖고 다음 장면을 예측하지 못하는 데서 저를 따라올 수 있는지, 두 번째는 보고 나서 다양한 해석이 가능했으면 좋겠다는 열린 여지들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왜 경찰한테 검문을 받느냐고 물으시면 저도 딱히 말씀 드릴 수가 없다.

 

관객8: 죽는 방법이 어려 가지인데 왜 하필 손목을 긋는 방법인지 궁금하다. 왜 죽는 데 실패하는지 궁금하다.

이광국: 손목은 시각적으로 사람들이 제일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제 절박한 마음에서 이야기가 출발했기 때문에, 내 이야기가 없으면 죽어야 하나 하는 고민이 있었다. 제가 죽고 싶어도 결국 못 죽을 사람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캐릭터에 제 성격이 부여되었다. 영화 속에서 너무 무겁거나 잔인한 소재를 다루고 싶은 생각은 아직 없어서 명랑한 소재를 다루고 싶었다.

장병원: 서사적으로 보면 손목을 긋는 사람들이 동일한 아이덴티티로 보일 수도 있는 기호다. 자살했던 여배우도 필시 손목을 그었을 가능성이 높다. 

 

관객9: 인물들이 만나는 장소가 주로 여관, 모텔방이다.반면 초희와 소년이 만나는 장소는 숲 속, 배 위, 동굴 앞 등인데 그런 장소에 의도가 있는지, 그들의 만남이 일시적이고 행복한 결말을 맺지 못하는 것을 암시하는지 궁금하다.

이광국: 사실은 처음 시나리오와 촬영된 버전이 많이 다르다. 분량이나, 인물이나, 이야기의 골격에서도 다르다. 영화 제작비가 5000만원이었는데 처음 받은 제작비로 찍을 수 없어 대폭 수정을 하는 과정에서 여관 장면을 선택했다. 지방 모텔이라는 곳이 사람들이 안정적으로 머무는 곳이 아니라 스쳐가는 곳이고 많은 방 안에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그들마다 다양한 이야기가 있을 것 같아서 모텔방을 선택했다. 어린 로맨스 조는 그와 반대로 열린 공간을 중시하면서 그런 공간을 찾게 되었다. 

 

장병원: 정리하는 의미로 한 말씀 드리자면, 이 영화는 이야기를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우리의 습성을 가지고 게임을 벌인다. 이야기 안에 어떤 특정한 정보가 있을 때 즉각적으로 우리가 그 이미지들을 보게 되면 앞에 나온 것들과 연결하게 된다. 이것이 앞서 어떤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표현되기 때문에 둘을 연결하려 하는 강박증이 있다. 영화는 그것을 부정하면서 다음으로 나아간다. 이야기에 대한 인식의 습성을 가지고 게임을 벌인다. 굉장히 이런 유형의 영화가 한국 영화에서 희귀하고 신선하고 의미가 크다. 유의미한 시도를 데뷔작에서 하셨다는 생각을 한다. 다음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듣고 싶다.

이광국: 이번 여름에 단편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여전히 계속 써야 하고 영화 지원 프로그램에 접수를 해서 계속 영화를 찍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일단은 여름에 단편 영화를 찍는 것이 확정되었다. 아트 시네마가 대단히 중요한 극장이라고 생각하고 여기서 저의 첫 영화를 상영하고 관객 분들을 만나 뵈어서 기쁘다. 앞으로도 이 극장에서 상영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정리: 손소담(관객 에디터) 사진: 최미연(자원 활동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댓글을 달아 주세요

사랑은 멈추지 않아요

 

극 중 작가인 로버트 해먼(존 카사베츠)은 어린 배우 지망생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 "너에게 가장 즐거웠던 시간은 언제였니?" 이에 대해 지망생은 별다른 답변을 하지 못하지만 이 질문을 해먼에게 돌려보면 그 역시도 마땅한 대답을 할 것 같지는 않다. 술과 담배와 커피에 절어 살며 오랜만에 만난 12살 아들을 혼자 호텔방에 남겨두고 인터뷰를 빙자해 만난 여자들과 하룻밤 사랑을 즐기는 그에게 인생은 될 대로 되라는 식이기 때문이다. 해먼의 인생에 과연 의미라는 것이 존재할까?

<사랑의 행로>는 인생의 의미 여부를 떠나 적어도 해먼과 같은 이들에게 계속 살아나가기 위한 의지와 삶에 대한 끈기가 있다고 말하는, 그럼으로써 응원하는 영화다. 해서 이 영화에는 우리가 쉽게 실패한 인생이라고 단정 짓는 인물들의 총집합이라 할만하다. 해먼과 함께 극의 중심을 이루는 그의 여동생 사라(지나 롤랜즈)는 괴팍한 성격과 갖은 기행 탓에 남편(세이무어 카셀이 연기했는데 그래서 <사랑의 행로>는 '<별난 인연>의 10년 뒤 이야기'라는 부제를 붙이면 어울릴 것 같다.)에게 이혼당하고 하나 있는 딸마저도 등을 돌린 인생 막장에 몰린 인물인 것이다.

그런데 이들의 기행을 들여다보면 마음의 깊은 우물 속에는 애정결핍이 넘쳐흐를 듯 고여 있다. 사실 해먼과 사라가 불러오는 사건과 말썽의 근본적인 원인은 마음 둘 사람을 찾고 싶지만 워낙 관계와 소통의 기술이 떨어지는 탓에 자신들의 진짜 마음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까닭이다. 가재는 게 편(?)이라고, 연출에 있어서 할리우드 스튜디오와 거리를 유지했던 카사베츠는 주류영화에서는 주인공이 될 수 없는 소외된 인물에 눈높이를 맞춰 그들의 삶과 태도에 아낌없는 애정과 응원을 보내왔다. <사랑의 행로>에서 특히 두드러지듯 사건의 당사자뿐 아니라 주변의 인물에게까지 숏을 제공하는 카사베츠의 연출은 소외된 이들에 대한 관심을 거두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인 것이다.

그와 같은 관심은 곧 타인을 향한 시선의 흐름을 전제한다. 그것은 곧 사랑이 갖는 의미이기도 한데 아닌 게 아니라, 뭐 하나 가진 것 없는 사라가 딸과 함께 살 자격이 충분하다며 항변하는 대사 "사랑은 서로에 대한 관심(streams)이에요. 그것은 멈추지 않고 계속돼요."는 이 영화의 원제가 'Love Streams'인 이유를 직설한다. 해먼과 사라의 각각의 에피소드를 평행하게 진행하며 각자의 외로움을 부각한 후 이들의 조우와 함께 이야기가 하나로 합치는 구조는 관심과 연대가 곧 사랑과 애정이 되는 영화적 주제를 반영한 결과일 테다.

그런 영화적 주제의 실천일까. 존 카사베츠는 일찍이 연출 데뷔작 <그림자들>(1959)의 성공으로 스튜디오에서 영화를 찍을 기회를 얻어 <투 레이트 블루스>(1961)와 <기다리는 아이>(1963)를 만들었다. 하지만 "관심이 있다는 것만으로 돈을 벌지 못한다."는 말과 함께 "다시는 스튜디오 영화를 만들지 않겠다."고 공언했지만 후에 할리우드를 통해 <글로리아>(1980)와 <사랑의 행로>를 배급하며 스튜디오 시스템과 화해에 성공한 뒷이야기가 흥미롭게 다가온다.

(허남웅 / 영화 칼럼니스트)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댓글을 달아 주세요


마이클 치미노의 경우, 영화의 본질과는 하등 상관이 없는 외적인 이유로 인해 작품에 대한 평가가 박하게 매겨진 것이 <천국의 문> 만이 아니다. 베트남전에 참전한 경험이 있는 뉴욕의 다혈질 형사와 악명 높은 차이나타운 갱단의 전쟁을 다룬 <이어 오브 드래곤>은 치미노의 불운을 입증하는 또 다른 예시가 되기에 충분하다. 로버트 달리의 원작소설에 기초해 제작된 이 영화가 미국에서 개봉했을 때 영화계를 달군 이슈는 성차별적 폭력에 대한 태연한 재현과 동양인에 대한 노골적인 인종차별적 태도였다. 베트남전에서의 상한 기억으로 동양 사람들에 대한 적의를 품게 된 주인공 스탠리 화이트(미키 루크)는 그 자체로 왜곡된 시각을 내면화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인종적 편견과 영화의 태도는 구분되어야 할 필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치미노의 진의(眞意)는 이해받지 못했고, 영화는 또 다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마이클 치미노의 단속적인 영화 이력을 놓고 본다면 <이어 오브 드래곤>은 <디어 헌터>와 <천국의 문>의 교묘한 믹스처럼 보이는 영화이다. 이들 영화에서 타자들에 대한 공포와 그로부터 파생된 폭력은 치미노의 일관된 관심사이다. 베트남전의 여파를 1980년대 미국 사회의 심부로 가져와 풀어내는 이 영화는 장르영화의 외양을 띠고 있지만 장르의 클리셰들과 의도적으로 거리를 둔다. 경찰과 마피아의 커넥션이라는 묵계를 깨고 중국인 갱들과의 전쟁을 선포한 돈키호테적 히어로의 고독한 투쟁을 다룬 스토리와 시각적인 스타일은 노골적으로 누아르 풍이다. 그러나 전형적인 형사 누아르 장르의 서사와 스타일을 새로운 차원으로 이동시키는 것은 베트남전의 망집에 사로잡힌 스탠리를 통해 드러나는 미국 사회의 신경증적 불안이다. 조이 타이(존 론)라는 야비한 악한으로 대표되는 차이나타운 갱 조직과 맞서면서 스탠리가 점차 집착과 광기에 사로잡히며 주변 사람들은 모두 그를 떠난다. 침착하고 냉정하게 거대한 악행의 뿌리를 제거해가는 장르적 영웅의 풍모를 스탠리에게 찾아보기란 어렵다. 분열증적 주인공인 그는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하는 복잡다단한 인물로 그려지는데, 핸섬하고 샤프했던 30대의 미키 루크가 역할을 맡아 생애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다.

<이어 오브 드래곤>은 한 때 비디오 렌탈 숍의 액션 코너에 놓였지만 ‘액션’장르 안에 이 영화를 가둘 수는 없다. 액션은 있지만 액션영화가 아닌 것이다. 처음부터 장르영화를 만들 의도가 없었던 치미노는 각색 과정에서 10년 간 <플래툰>의 영화화 작업에 매진해왔던 베트남전 참전군인 출신 감독 올리버 스톤을 공동각본가로 끌어들였다. 스톤과 치미노는 차이나타운 갱단의 범죄 실태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인터뷰를 거쳐 인물과 사건을 창조해낸 것으로 알려졌다. <천국의 문>에서 정점에 달한 치미노의 옹고집과 완벽주의는 이 영화에서도 이어졌다. 그는 총상을 입은 사람의 실제 모습을 확인하게 위해 앰뷸런스에 앉아 밤을 새우거나 값비싼 고급 승용차를 아무렇지도 않게 부숴버리는 대담함을 잃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영화 속 폭력 묘사는 아주 사실적이고 생생한데, 액션 시퀀스들은 착 가라앉은 톤이지만 총상으로 벌어진 자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 따위를 대담하게 보여준다.


치미노의 완벽주의에 더하여 올리버 스톤의 실체험으로부터 나온 각본, 알렉스 톰슨의 촬영, 데이빗 맨스필드의 아름다운 음악이 더해져 프로덕션의 완성도는 수준급이다. 무엇보다 차이나타운 거리에서 베트남에 대한 기억과 싸우는 한 인물의 강박을 미국 사회의 병리현상으로 치환하는 연출은 아주 파워풀하다. 스탠리는 현재 완악한 범죄자들과 싸우고 있지만 자신의 육체에 침전되어 있는 폭력의 지배로부터 스스로를 제어할 수 자괴와 절망에 무너져 간다. 영웅은 승리할 것이나 장르적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없는 거대한 피로와 무력감이 끝내 불모의 순간을 만들어내는 괴작이다.

글/장병원(영화평론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댓글을 달아 주세요

알프레드 히치콕의 필모그래피 안에서 <현기증>(1958)은 가장 미스터리하며, 시각적으로 풍요로운 작품 중 하나로 간주되어왔다. 히치콕의 작가적 완숙미가 정점에 달했던 시기를 대표하는 이 영화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오가는 스토리, 인간의 강박증에 대한 심리학적 탐구로 히치콕 영화에 빈발하는 '거짓 정체성'을 다룬 여러 이야기들 중 최고작으로 꼽힌다. 토마 나르스자크와 피에르 브알로(앙리 조르주 클루조의 <디아볼리끄>의 원작자이다)의 소설 <죽은 자들 사이에서>를 원안으로 한 <현기증>은 무려 네 사람의 시나리오 작가의 손을 거쳐 개작되었다. 히치콕은 여기서 시각적 진술의 명료함과 위력을 통해 역동적인 영화 정보의 흐름을 만들어낼 뿐 아니라 지극히 단순한 장면에서조차 정보전달 이상의 의미를 추구하는 작가적 완벽함을 보여준다.


<현기증>의 플롯은 고소공포증에 시달리는 경찰관 존 퍼거슨(‘스코티’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제임스 스튜어트)의 병리적 여정을 따른다. 직업적으로 큰 결격사유가 될 수도 있는 병증으로 동료 경찰을 잃은 스코티는 경찰 일을 그만두고 사설탐정으로 소일하는데, 대학 친구 개빈 엘스터로부터 부인 마들렌(킴 노박)의 뒷조사를 의뢰받는다. 스코티는 아름다운 금발의 여인 마들렌의 뒤를 밟으며 점차 그녀의 매력에 빠져들지만 마들렌은 교회 종탑 꼭대기에서 갑작스레 추락사하고 만다. 자괴와 절망으로 자책에 빠진 스코티는 어느 날 마들렌을 꼭 닮은 여인 주디 바튼(킴 노박)을 만나고, 마들렌에 대한 감정을 투사하여 주디에게 집착하기 시작한다.

<현기증>은 압도적인 시각적 상징과 히치콕 스타일의 원숙미를 예증한다. 영화예술에 특정적인 거의 모든 요소들이 이 영화를 잊기 힘든 걸작으로 만든다. 스코티의 내면은 어두운 벨벳과 같은 색으로 디자인되는데, 일관성 있는 색채의 사용은 스코티가 마들렌에 대해 내밀하게 품게 되는 감정에 대한 전조로 기능하면서 마들렌을 좇는 미행 시퀀스들에서 그의 내면 정경을 시각적으로 기술한다. 그래픽 디자이너 솔 바스가 디자인한 기하학적 타이틀 시퀀스에서부터 주문을 걸 듯 관객의 의식을 지배하는 녹색의 사용도 눈에 띈다. 무엇보다 <현기증>을 영화사의 걸작으로 추대한 것은 시종일관 꿈과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내면서 강력한 몰입을 유도한 창의적인 연출이다. 스코티가 시달리는 아득한 고소공포증을 형상화한 줌 인-트랙 아웃 만큼이나 <현기증>의 창조적 스타일은 느리게 움직이는 이동 촬영 장면들로 완성되고 있다. 이를테면 스코티가 마들렌을 처음 만나게 되는 레스토랑 신에서, 카메라는 느리게 팬 하여 레스토랑의 거의 모든 사람들을 훑는다. 이 장면에서부터 카메라는 레스토랑의 여기저기를 느리게 이동하면서 종내에는 마들렌의 등에 가닿는다. 스타일의 효과에 대한 상식을 따른다면, 카메라의 이동은 캐릭터의 관심사에 의해 동기화되며 그 속도는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보통이다. 또한 대개 주 인물의 관심이 쏠려 있는 대상의 얼굴에 카메라의 초점을 맞추는데 반해 히치콕은 이러한 형식의 준거를 완연히 거스른다.


무엇보다 미려한 카메라 움직임은 삶과 죽음 사이의 미로를 헤매고 있는 듯한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흡사 터널 또는 미로에 대한 페티시라고 칭할 수 있을 만큼 이러한 움직임의 형상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를테면 이런 장면들이 퍼뜩 떠오른다. 교회에서 마들렌의 뒤를 밟을 때 스코티의 현기증을 유발하는 미로의 형상, 샌프란시스코 시내를 미끄러지듯 이동하는 자동차 미행, 미스터리한 분위기에 휩싸인 마들렌의 뒤를 밟아 미술관으로 들어가는 터널의 이미지 따위. 이미지의 심상은 <현기증>에서 다분히 상징적인 차원을 갖는다. 앞서 말한 숲 장면에서 마들렌은 스코티에게 “계속 터널 속을 걷고 있는 꿈을 꾼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이 상식 밖의 기교가 야기하는 스타일적 효과는 관객들이 스코티의 심리 상태에 젖어들게 만들고 마들렌을 향한 그의 동경에 연루되도록 한다.

<현기증>은 히치콕의 걸작들이 걸어왔던 길처럼, 무수히 많은 평자들에 의해 다채로운 방식으로 해석되었다. 심리학과 정신분석학, 리얼리즘과 상징주의의 혼융, 페미니즘, 신화 분석의 틀을 빌어 이 영화를 읽어내려는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다. 그 중 흥미진진한 해석은 신화와의 연관성이다. 존재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집착을 다룬 영화의 내용은 즉각적으로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의 신화를 떠올리게 한다. 피그말리온은 자신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여인의 이미지를 ‘갈라테’의 조각으로 완성한다. 그는 갈라테와 진짜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이를 동정한 신 아프로디테는 피그말리온을 위해 조각에 생명을 불어 넣는다. <현기증>에서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의 신화는 스코티와 주디에 의해 재현된다. 스코티는 주디를 자신의 갈라테로 변형하는데, 마들렌이 입었던 회색 드레스와 신발을 착용하고 머리 모양과 색깔을 변형하면서 그녀에게 집착한다. ‘이상화된 이미지에 대한 재현’이라는 점에서 스코티의 강박은 영화의 욕망과 상통하는 지점이 있다. 이미지에 홀리는 영화적 인간을 다룬 이토록 매혹적인 영화를 나는 본 적이 없다.

글/
장병원(영화평론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댓글을 달아 주세요

1975년에 <몬티 파이튼의 성배>가 공개되었을 때, ‘몬티 파이튼’은 TV 시리즈를 통해 이미 하나의 컬트 현상이 되었다. 골계미마저 느껴지는 풍자와 비틀린 유머로 점철된 저예산 소모성 코미디인 ‘몬티 파이튼’ 시리즈는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현대 코미디 역사의 전위로 불리고 있다. <몬티 파이튼의 성배>는 그 중에서도 이 우상파괴적인 코미디 시리즈의 원형이 보존되어 있는 대표작으로 꼽힌다. 특히 여기에는 시리즈의 골수팬들이 열광하는 전설적인 장면들이 수두룩하게 들어가 있다.

<몬티 파이튼의 성배>는 TV 시리즈에서부터 이어진 코믹한 패러디 각본을 모델로 삼고 있다. 왕 중의 왕이 되기 위해 성배를 찾으려는 아더 왕의 이야기를 패러디 한 스토리는 특별한 중심 모티프 없이 제멋대로 전개된다. 서기 932년 잉글랜드, 아서 왕(그레이엄 채프먼)은 카멜롯으로 성배를 찾기 위해 용맹한 기사들을 물색 중이다. 속이 빈 코코넛을 딱딱거리면서 말 소리를 내는 황당한 아서의 여정은 우여곡절 끝에 베드비어, 갈라하드, 란슬롯, 로빈 등의 기사와 한 패를 이루게 된다. 정상인이라고 볼 수 없는 얼뜨기 성배 기사단의 행로는 아나키즘에 경도된 노동자들과 마녀 사냥에 열중하는 농부들을 경유해 세상에서 가장 공포스러운 괴물 토끼에게로 이어진다.

그래엄 채프먼, 존 클리시, 에릭 아이들 등 ‘몬티 파이튼’ 패밀리가 각본, 주연을 맡고 테리 길리엄, 테리 존스가 힘을 합쳐 연출한 이 영화에서는 4차원 유머와 화장실 코미디, 부실한 신체 개그가 혼연일체를 이룬다. ‘자막 담당자를 잘랐다’는 농지거리로 시작하는 도입부가 마음의 채비를 위한 맛보기처럼 깔리더니 가공스러운 컬트 코미디의 향연이 스크린을 채우기 시작한다. 존 클리시는 예의 바보 같은 걸음걸이로 비웃음을 사고, 좀비와 같은 중세의 농부들, 허세의 절정을 보여주는 얼빵한 흑기사, 공포의 만렙토끼, 괴상한 질문을 쏟아내는 성문지기 등 안드로메다에서 온 것 같은 캐릭터들이 숨 가쁜 릴레이를 벌인다. 몬티 파이튼 시리즈를 상징하는 두 개의 노래 ‘원탁의 기사들'과 '로빈 경의 발라드'가 삽입되어 있으며, 테리 길리엄이 삽입한 애니메이션 장면들도 한 몫을 한다.


개연성을 내팽개친 탈 중심화된 내러티브는 중구난방으로 널을 뛰고, 밑도 끝도 없이 출몰하는 사건들은 TV 시리즈가 가지고 있는 활력과 에너지를 영화에 돌려주면서 창조적인 코미디를 펼칠 수 있는 멍석을 깔아줬다. 시종일관 여기에는 통제되지 않는 혼종의 에너지가 가득하다. 불손한 조롱과 잔혹 유머, 절로 어깨가 들썩거리는 춤과 노래, 막장 코미디, 조야한 특수효과, 애니메이션의 두서없는 믹스로 얼을 빼 놓는 것이다. 화급한 전투에서 돌 대신 소나 돼지, 오리, 염소를 던지는가 하면, 극중 인물이 자신이 출연하는 장면에 대해 논평을 하고, 유명 역사학자가 등장해 성배 기사단의 행적을 설명하다 봉변을 당하기도 한다.

<몬티 파이튼의 성배>에서 테리 길리엄이 구사하는 유머는 신랄하다. 정치와 종교에 대한 날 선 풍자는 허다하게 많은 여타의 코미디들과 이 영화를 근원적으로 구별하는 특징이다. 허술해 보이는 이미지들은 어떤 총체화의 인상도 거부하기 위해 디자인되었다는 느낌을 준다. 예컨대, 흥겨워야 마땅할 뮤지컬 장면들은 빈약한 스펙터클과 쓸쓸하고 음울한 분위기에 의해 의도적으로 훼손된다. 모든 사람이 공감하고 즐길만한 유머는 아니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참을 수 없는 폭소를 유발하는 궁극의 괴작이다. (장병원 영화평론가)

Cine-Talk
2월 10일(목) 19:00 상영후 이준익 감독과의 대화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repair iphone 2011.06.16 21: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제가 퍼가도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