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토크

30년 전의 안개마을과 현재의 안개마을

- 영화제작자 심재명이 말하는 임권택의 '안개마을'

 

지난 20, 영화 제작자인 심재명 명필름 대표가 추천한 <안개마을> 상영 후 시네토크가 진행되었다. 심재명은 1984년에 허리우드 극장에서 이 영화를 처음 본 이후 스크린으로 다시 보는 게 삼십여 년만이라며 감회가 새로움을 술회했다. 영화 제작자로서는 처음으로 친구들 영화제에 참여한 심재명은 제작자 지망생들을 위한 진심어린 충고를 전해주기도 하였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안개마을> 1983년 당시 허리우드 극장에서 개봉하기도 했더라. 30년 만에 다시 상영을 하는 게 특별하다고 생각이 든다. 영화를 추천할 때 84년도에 허리우드 극장에서 영화를 봤다고 했는데.

심재명(영화 제작자): 84년에 이 영화를 처음 봤는데 당시에 대학교 1학년이었다. 84 3월에 월간 스크린이라는 잡지가 처음으로 창간이 되었다. 거기서 대학생 모니터 기자를 뽑았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매달 15일 마감을 지키는 것뿐이었는데, 그땐 모니터기자가 됐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설레고 기뻤다. 잡지의 창간  이벤트를 허리우드 극장에서 했었다. 80년대뿐만 아니라 당대 대표적인 한국감독이었던 이두용, 하길종 등의 70년대 영화들까지 상영을 했는데, 이분들의 영화를 이때 처음 보게 되었다. 84년도에 영화제를 통해 한국영화를 본 것은 굉장히 충격이었다. 영상문화의 충격. 그 중의 하나가 안개마을이었다. 이 영화를 추천한 이유는 84년도에 봤던 영화가 뭐였는지, 내가 본 것을 다시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비디오테이프가 아닌 스크린으로 보고 싶었다.

 

김성욱: 그 때 당시의 느낌이 어떤 것이었고, 오늘 느낀 것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하다.

심재명: 많은 부분이 다르다. 당시에는 집성촌이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암묵적으로 무언가 이루어진다는 것의 매혹을 느꼈다. 이 영화는 12일 만에 촬영을 끝냈다고 하는데, 12일 만에 미장센과 주제에 깊이를 만들어낸다는 것에 감탄했었다. 그런데 오늘 보니까 영화가 되게 설명적이다. 임권택 감독님을 당시에 알았다면 내레이션을 다 빼면 좋을 거란 생각을 말씀드렸을 것 같다. 하지만 화면이나 배우들의 연기에 집중하면서 볼 수 있었다. 30년 만에 안성기 씨나 정윤희 씨 얼굴을 보는 게 굉장히 반가웠다. 조연출의 김상범 씨는 지금은 한국 최고의 편집감독이다. 그런 분들의 이름을 다시 이렇게 보니까 남다르다.

 

 

김성욱: 80년대의 제작자는 감독을 고르는 일에 몰두하고, 감독을 선택하면 모든 걸 감독이 다 하는 식이었다고 하더라. 80년대와 90년대 제작환경의 차이가 있었다면 무엇인지.

심재명: 80년대 제작환경이나 시스템에 대해서는 풍문으로 듣고 경험은 못해봤다. 90년대 중반에 내 또래의, 혹은 바로 윗세대인 젊은 제작자들이 많이 등장했다. 이들은 창작자인 감독과는 또 다른 입장에서 영화란 것에 큰 매력을 느끼고 창작에 존경심을 가지며, 제작에 대해 구체적으로 고민하는 새로운 세대였다. 그들이 봉준호, 박찬욱, 홍상수 등의 젊은 감독들과 만나게 되면서 90년대 중반 이후에 새로운 한국영화의 세계가 열렸다고 볼 수 있다.

과거의 제작자님들이 하는 풍문 같은 얘기들을 들어보면 마냥 신기하기만 하다. <바보들의 행진>(1975, 하길종)을 제작할 당시 하길종 감독님이 제작자 몰래 영사실에 들어가서 제작자가 잘라놓은 걸 다시 붙여 상영을 했다고 한다. 제작자가 처음에는 화를 냈지만 그 이후에는 서로 통쾌한 미소를 지으며 그냥 넘어갔다고 하더라.

  

관객1: 여성 관객으로서 마지막 장면은 깨칠을 정당화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런 부분이 받아들이기 힘들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심재명: 개인적으로 성적욕구의 배설구이자 암묵적인 합의하에 벌어지는 이 이야기들이 흥미로웠다. 여성의 욕망을 다룬 것을 보기 힘들기도 했고. 남성 중심적인 영화만 보다가 신선했다.

 

관객2: 상업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궁금하다.

심재명: 굉장히 어려운 질문이다. 한편의 영화는 어떤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을 것인가 그것이 소재일수도 있고 한 장면의 이미지가 떠오를 때도 있고 제작자의 손에서든 감독의 손에서든 출발한다. 영화 제작은 굉장히 많은 회의와 의구심이 들게 하는 작업이다. 이 시대의 관객에게 효용가치가 있는 것인가가 굉장히 애매한 상태인 것이다.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한 사람의 마음으로부터 출발한 이야기가 수십억 원의 자본을 가지고 여러 사람들이 함께 만든다. 투자사를 설득하고 주연배우를 설득하고, 자신이 욕망하는 것을 상대를 향해서 계속 설득하고 이해시키고 만들어내는 것이 영화작업이다. <안개마을>처럼 12일 만에 프로덕션이 끝나는 경우도 있지만, <건축학개론> 같은 영화는 십년이란 기간 동안 공회전을 하다가 2012년에 간신히 만들어지기도 했다. 콘텐츠를 책임지는 작가의 힘도 중요하지만 투자 배급사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힘의 역학관계가 바뀌는 상황이다. 한국영화의 새로운 지형도를 읽을 수 있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관객3: 임권택 감독님 작품 중에서 가장 높게 평가하는 작품은 무엇인가.

심재명: 대중적으로 정말 재밌게 본 건 <장군의 아들>, 제일 좋아하는 영화는 <만다라>. 작가주의 감독이라기보다는 영화 장인의 선에 서서 새로운 영화문법이나 영화세계를 깨쳐나갔던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안개마을>을 추천하게 된 데에는 이 영화를 다시 확인하고 싶다는 열망과 동시에 임권택 감독님의 다음 영화를 명필름에서 하게 될 것 같다는 점도 작용했다. 얼마 있으면 팔십이 되시는데 유일한 현역이다. 임권택 감독님의 마지막 영화 세계를 경험하고 싶다는 게 소망이다.

김성욱: 영화 일을 하고 싶어 하는 관객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한 마디 부탁한다.

심재명: 꿈꾸는 일로 먹고 사는 게 행운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영화를 하고자 하는 감독 지망생과 제작자 지망생에게 무엇보다 치열하라는 얘기를 하고 싶다. 제작자도 감독과 함께 궁극의 영화를 꿈꾼다. 궁극의 영화를 만들고 싶은 열망에 의해서 출발을 하고 함께 견디는 거다. 궁극의 영화를 만들고 싶은 열망, 본질적인 영화정신이 갈수록 필요한 때이지 않나 생각하고 있다. 2015년에 파주에서 만들게 될 명필름영화학교는 졸업과 동시에 장편영화 한편을 만들게 된다. 새로운 재능들이 끊임없이 영화계에 등장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그리고 수십 편의 영화를 만든 노하우를 젊은 후배들에게 나누고 싶다는 생각에서 영화학교를 기획하게 되었다. 혹시 지원하실 분이 이 자리에도 계실지 모르겠으나 관심 가지고 지켜봐 줬으면 좋겠다.

 

정리: 박민석 (관객에디터)  |  사진: 문지현(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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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두려움과 매혹의 공존

-임권택의 <안개마을>

 

이문열의 소설을 각색한 <안개마을>은 인간의 근원적 욕망을 그린 작품으로 두려움과 매혹을 동시에 안기는 작품이다. 당대 절정의 미모를 자랑하던 정윤희, 거의 침묵으로 일관하지만 존재감만으로 압도적인 연기를 보여준 안성기의 열연으로도 기억되는 이 영화는 임권택 감독의 다른 작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지만 반드시 재평가 받아야 할 수작이다.

 

 

임권택 감독의 79번째 영화. <짝코>(1980)로 시작하여 <만다라>(1981), <길소뜸>(1985), <티켓>(1986), <씨받이>(1986)로 이어지는 임권택 감독의 1980년대 걸작들 사이에서 상대적으로 덜 보여지고 덜 말해진 작품이다. 이문열의 단편소설 『익명의 섬』을 가져와 임권택과 그의 시나리오작가 송길한은 그 이야기에 좀더 여성중심적인 시선을 가미하였다. 성적 욕망이라는 모티프를 두고 하나의 폐쇄된 공동체가 그 순도를 지키기 위해 이방인을 필요로 했다는 이야기를 또 한명의 이방인 관찰자의 시선으로 들려준다. 이 이야기가 독특하다면 그 공동체의 해소되어야 할 욕망이 여성의 것이며 그 욕망의 도구로 쓰인 것이 남성 타자의 육체라는 점에 있다. 임권택 감독은 여기에 몽환적이고 음침하며 아름답고 신비한 기운을 불어넣어 그의 작품 중에서도 눈에 띄게 강렬한, 일종의 무드의 영화를 내놓았다. 12일의 촬영으로 이토록 균질적이고 밀도 높은 영화를 만들어냈다는 점이 지금 보아도 놀랍다.

 

산으로 둘러싸인 데다가 짙은 안개에 파묻혀 이중으로 은폐되고 고립된 어느 산골마을에 도시의 여선생이 부임해 온다. 이 마을은 다들 친인척으로 엮인 집성촌이었다. 마을에 도착한 수옥이 처음 마주친 이는 부랑자차림의 깨철. 바보 깨철의 멍한 눈이 그녀를 향해 순간 맹렬한 빛을 띨 때 수옥은뱀 같은 공포를 느낀다. 그리고 곧 그녀는 깨철과 동네아낙들의묘한 관계를 감지하게 된다. 폐쇄된 공동체를 떠도는 음침한 침묵의 규약. 이 마을에서 그녀는 처음에 관찰자였다가 잠시 도덕의 수호자를 자처하며 수사관 행사도 하지만 결국에는 공모자가 된다.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의 문제에 그 나름의 존재방식을 제시한 이 영화가 무척 신선하다면 그것은 그 보편적 욕망이 자리잡은 공간의 특정성 때문일 것이다. 산과 안개, , 비에 싸인, 거대한 혈연 공동체의 비밀. 그 비밀은 낱낱이 까발려진다. 등장인물들의 대사가 무척 적은데도 불구하고 (원작에서 옮겨온) 다소 문학적이고 설명적인 수옥의 보이스 오버 나레이션이 너무 친절하여 다소 아쉽게 느껴진다. 그에 반해 대사 없는 수옥의 클로즈업들은 무척 매혹적이다. 당대 절정의 미모를 자랑하던 정윤희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즐겁지만 임권택은 그 아름다운 얼굴에 캐릭터의 심상을 새겨넣었다. 호기심과 두려움을 숨기면서 드러내는 그 얼굴에 말은 군더더기일 뿐. 안성기의 연기는 더할 나위 없다. 이 영화로 여러 개의 주연상을 수상한 안성기는 거의 침묵으로 일관하며 클로즈업도 몇 되지 않지만 그 존재감만은 압도적이다. 영화에서 유일하게 핸드핼드로 찍힌 그는 불안을 자아내는 사운드와 함께 나타나 그의 정체를 되묻게 하는 눈빛으로 깊게 각인되는 흥미로운 존재를 체현한다. 두려움과 매혹을 동시에 안기는, 다시 재평가되어야 할 임권택의 수작.

 

글_강소원(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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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토크] 배우 전무송·안성기·송길한 작가와 함께한 임권택 감독의 <만다라>

지난 20일 일요일 늦은 오후 마지막회로 상영된 임권택 감독의 <만다라> 상영 후 열린 시네토크의 현장에는 특별한 친구들이 가득했다. 당초 계획과 달리 몸이 편찮으신 관계로 참석이 어려우셨던 감독님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영화의 두 주연배우 전무송, 안성기 씨와 시나리오작가 송길한 씨가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았다. 그리고 객석에는 영화 <만다라>의 감수를 맡아주셨던 평상스님까지. 평소 임권택 감독과 친분이 두터운 패밀리들이 모였다. 그들은 30년 전 영화임에도 새록새록 그 때 그 시절을 회고했다. 정성일 영화평론가의 진행으로 넘치는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던 그 현장을 전한다.


정성일(영화평론가/영화감독):
영화를 30여년 만에 극장 객석에서 본 소감이 어떠한가?
전무송(영화배우): 영화가 개봉했을 때 단성사에서 처음 이 영화를 볼 때의 느낌이 났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안성기, 송길한 작가, 평상스님과 함께 이 영화를 보니 감회가 새롭다. 촬영당시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송길한(시나리오 작가): 이렇게 다시 보게 되니 감흥이 남다르다. 다시 한 번 영화에 조목조목 감수를 해주시고 도움을 주신 평상스님께 감사드린다. 유난히도 가족같이 끈끈했던 스텝과 배우들의 마음이 묻어나는 작품이다. 작품 속에 들어있는 정신들을 오늘 함께하신 관객들이 알아주셨길 바란다.
안성기(영화배우): 성인이 되고 배우 활동 초창기 시절 출연한 영화다. 당시엔 나이 좀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까 ‘애’다. 당시 정일성 촬영감독님과 임권택 감독께서 ‘정노인’, ‘임노인’ 하시며 장난치셔서 정말 나이가 많으신 노인인줄 알았다. 하지만 알고 보면 지금 현재 내 나이보다 어리셨다. 참 세월이 느껴진다. 또 촬영하면서 겪었던 여러가지 에피소드들이 생각난다.

정성일: 마이크를 객석에 넘겨 영화의 고문을 봐주신 평상스님의 소감도 듣고 싶다.
평상스님: 오랜 세월이 지나 30여년 만에 보는 것이다. 죽지 않고 살아서 이렇게 볼 수도 있구나 싶다. 이런 일도, 저런 일도 있었지 하는 생각들이 난다. 옛 생각을 하게 되서 좋고 여러분과 이 영화에 대한 얘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게 감회가 남다르다.
안성기: 염불 한번 해주셔야지 좋지 않겠나? (웃음) 영화 속 나와 지산스님의 염불은 모두 평상스님의 염불 외는 소리로 대체 되었었다.
전무송: 우리도 잘 배웠는데 리듬이 안 좋았다.
송길한: 둘의 염불 연습의 증인은 나다. 순천에서 촬영할 때 같이 술을 많이 마시고 나는 잠시 나왔는데, 민박집 불이 그 늦은 밤에 환히 켜진 채로 있더라. 다가가 보니 고 곽지균 조감독과 두 배우가 밤을 새워 다음 촬영씬 리허설을 하더라. 술이 확 깨던 순간이었다.

정성일:
'필름 2.0'에서 비평가들에게 ‘내인생 최고의 한국영화’를 꼽으라고 했을 때, 1위에 <오발탄>, 2위에 <하녀>, 그리고 3위에 <만다라>가 올랐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암살이후 모두들 지겨운 시대의 끝이라고 생각했지만, 유신과 1980년 5월 광주사건은 한국 사회가 다른 차원으로 돌입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했다. 그 때 그 시대의 공기를 전해주는 두 영화가 <바람불어 좋은 날>과 <만다라>였다. 시간의 무게를 견디고 <만다라>는 오늘 우리에게까지 왔다. 보는 사람을 사로잡는 이 영화의 힘은 절실함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촬영당시 병 때문에 죽을 각오로 찍은 정일성 촬영감독의 절실함과 삭발투혼을 발휘한 두 배우 분, 혼이 빠질 때까지 시나리오 집필을 하신 송길한 선생의 절실함이 마법의 힘을 발휘하는 것 같다. 또한 이 작품은 안성기라는 배우의 위치를 굳게 해준 영화라고 생각된다. 삭발을 하며 집중해 임했던 이 영화가 갖는 개인적인 의미에 대해 듣고 싶다.
안성기: <만다라>라는 작품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유신 정권 속에서 꿈틀하는 힘을 발휘한 두 작품 모두에 출연한 것 또한 운이 좋았다. 그 이전에 성인 배우로서 찍은 4편의 영화에서 나는 회의를 느꼈다. 일생을 걸고 영화에 뛰어들었는데 약간 암울한 감정이 있었다. 그러던 중에 <바람불어 좋은날>을 만나 새로운 영화를 관객에게 보여줬고 나는 힘을 얻었다. 그리고 바로 <만다라>를 만나 영화의 새로운 역사를 쓰는 것에 함께 수 있었다. 배우로서 입지를 굳힐 수 있었고 그 이후 내가 원하는 작품에 내가 배우로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작품에 출연할 수 있었다.

정성일: 많은 감독들과 작업해보면서 느낀, 임권택 감독님의 연기지도 스타일이 갖는 차별성은 무엇인가?
안성기: 구체적으로 말씀을 안 하신다. “해~봐, 해봐” 하실 뿐이다. 임권택 감독님은 특이한 습관이 있으신데, 감정 연기에 따라 고개를 올리신다. 고개가 끝까지 뒤로 안 올라가시면 NG고 고개가 다 올라가시면 좋은 것이다.

정성일:
전무송 씨는 원래 연극배우로 활동하시다가 처음 하게 된 영화라고 알고 있다. 처음 만나 같이 작업한 영화감독인 임권택 감독님은 어떠셨나?
전무송: 일반 관객 앞이 아닌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해야 했다. 영화계 선배인 안성기 씨가 카메라 앞에 서는 법에 관해 많은 도움을 주었다. 처음 감독님을 만났을 때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인자하시고 부드러우셨다.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그저 “이렇게 해봐요. 저렇게 해봐요.” 하셨다. 그러곤 “어때요? 괜찮아요?”하시는데 내가 이상하다 하면 다시 찍곤 했다. 배우에게 표현과 움직임에 대해 말하지 않으시지만 당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들 때까지 촬영을 다시 하게끔 지도 하신다.

정성일: 이 영화의 시나리오는 참으로 이례적인 것 같고 그 형식이 파격적이라고 느껴진다. 쓰인 배경이라든지 쓸 때 어떤 마음가짐으로 했는지 궁금하다.
송길한: 당시에 일반 회사에 들어가 월급쟁이가 되려 했다. 그러던 중 임감독님이 이미 촬영이 들어간 영화가 큰일이 났다며 살려달라고 찾아왔다. 영화사 기획실장이였는데 집에 일이 생겼다고 하고 충무로 여관방에 들어가 4박 5일 동안 잠도 안자고 시나리오를 섰다. 여관방을 나왔을 때 하늘이 노랗다는 말을 실감했다. 극도로 몰려서 초능력적인 힘이 발휘된 것인지, 내가 썼나 싶을 정도로 좋은 대사들이 나왔다.

정성일: 영화와 원작 소설의 엔딩이 다르다.
송길한: 절집의 비리는 이 영화가 해야 되는 얘기가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두 젊은이가 삶을 완성해가는 길에 관한 얘기니까, 두 젊은이가 치열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담아내야 했다.


관객1: 안성기 씨 출연작을 많이 보았고 연기에 감동을 많이 받는다. <만다라>에서는 어떻게 캐릭터를 해석했기에 이런 연기가 나온 것 인가?
안성기: 착한 사람이다. 허나 화도 있다. 선배스님인 지산스님이 쿡쿡 찔러올 때 분노의 감정도 있고 그것을 표현해야했다. 지금 보니 부족한 점이 너무 많이 보인다. 특히 엔딩씬에서 어머니의 손을 잡고 너무 밝게 속이 들여다보이게 웃고 있다. 조금 무표정으로 해도 더 좋았을 것 같다. 이 영화에서 나의 연기는 미숙한 점이 많았다.

관객2: 법운스님의 마지막 장면이야기가 나오니 지산스님의 마지막에 관해 묻고 싶다. 어떤 생각과 마음가짐으로 그 죽은 척하는 연기를 했나? 그리고 그 당시 눈이 정말 많이 온 것 같은데 기다린 것인가 우연의 일치인가?
전무송: 설악산에서 촬영했는데, 오색 약수터에서 눈이 오길 보름을 기다렸다. 4월 중순까지 눈이 오는 경우도 있다는 동네 주민의 말에 기다리고 기다리다 내년에 찍던지 하자하며 철수를 하려고 한 날에 눈이 그렇게나 많이 내렸다. 마지막에 딱히 어떤 표정으로 누워있자 한 것은 아니다. 이 영화에서 계속 남는 것은 “견성하거든 나 좀 제도해줘”와 “내 눈의 점안은 누가 해주나”이다. 내가 하지 못하는 일들이고 남이 해줘야한다. 제대로 알고 행동하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의 고민거리다. 나는 지산이 그것을 알고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평생 구하고 있는 인생의 답을 나타내는 탑 밑에서 죽었다. 계속 남는 두 대사와 나의 탑을 생각하고 그것을 찾는 마음으로 연기했다.


관객3: 지산스님이 애인을 찾아갔을 때 애인이 고무신과 양말을 빨아주는 장면이 아름다우면서도 이해가 선뜻 안됐다. 무슨 의미가 깃든 것인가?
송길한: 굉장히 아름다운 씬이다. 아무리 창녀지만 기둥서방이 있다. 겪어보니 좋고 무슨 고민이든 털어놓을 수 있어 지산을 애인 삼은 것이다. 딸랑 고무신 하나 신고 만행을 하는 그의 신을 씻어 준 것은 막달라 마리아가 비싼 향유를 예수에게 부은 것과 닮았다고 본다. 별 것 아닌 것 같은 씬이 빛나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평상스님: 몇 가지 더하고 싶은 말이 있다. 영화 제목 ‘만다라’의 뜻은 '세계', '세상'이다. 우리가 사는 곳, 우주, 인생, 자연을 담는 총체적인 말이다. 엔딩이 원작과 달라진 이유는 내 고집도 있었다. 법운스님이 수행자로서의 인생에 있어 새로운 출발은 하게 한 것은, 지산의 삶에 매료되는 원작의 끝과 다르다. 대사가 달라진 곳이 있는데, 죽은 지산의 불상을 그의 애인에게 전해줄때 애인이 “그분은 성불하셨겠죠?”라 묻고 법운은 “그분은 그분이 원하는 곳을 가셨을 겁니다.”라고 대답한다.

관객4: <만다라>라는 영화가 개인적으로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
송길한: 많은 내적 변화가 있었고 모르는 것들을 많이 배웠다. 승려의 삶도 이렇게 치열한가 싶었다.
전무송: “내 눈에 점안은 누가 해주나”를 생각하다가 ‘내 눈은 내가 떠야 하지 않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막연한 불교 신자였는데, 영화 촬영 후 더 깊게 불교에 빠지게 되었다. 이 후에 <원효대사> <아제아제 바라아제> 같은 다수의 불교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다.
안성기: 빡빡 깎은 머리와 승복을 내 몸에 맞추려고 영화 촬영 전에 준비도 많이 하고 승려처럼 돌아다니며 많은 체험을 했다. 그 때 많이 배우고 느꼈다.


정성일: 관객 분들이 임권택 감독의 다른 불교영화 <아제아제 바라아제>를 보셨으면 한다. 또 감독님의 101번째 영화 <달빛 길어 올리기>가 3월 17일에 개봉한다니 꼭 보시라.
송길한: 종이를 만드는 사람들의 얘기다. 자기 이름과 돈을 바라고 영화를 만든 것이 아니라, 영화를 위해 만들고 이야기를 해기위해 만드셨다. 그의 정성과 감동이 잔잔하게 가슴에 배어드는 영화다.

(정리: 배준영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관객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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