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토크

“지속적으로 파장을 주며, 떠나고 싶다는 느낌이 드는 영화다”

시인 김경주가 말하는 숀 펜의 '인투 더 와일드'


지난 2월 16일, 숀 펜의 <인투 더 와일드>의 상영이 끝나고 이 영화를 추천한 시인 김경주의 시네토크가 이어졌다. 그는 영화 속의 크리스토퍼와 같이 곧 알래스카로 여행을 떠날 것 같은 차림이었다. 여행을 좋아하고, 또 여행에 관한 책을 쓴 그는 <인투 더 와일드>와의 특별한 만남과 영화에 대한 각별한 인상을 전했다. 시인의 언어로 표현된 <인투 더 와일드>에 대한 대화의 일부를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영화평론가): 보고 나면 시인이 추천할만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여행에 관한 영화로서 최근에 개봉한 영화들 중에 <인투 더 와일드>처럼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영화도 드물다. 김경주 시인은 실제로 여행에 관한 책을 쓰기도 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여행이라는 테마에 집중했을 거 같다. 어떻게 이 영화를 만나게 되었고, 어떤 점을 좋아하셨는지.

김경주(시인): 이 영화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상당히 늦게 알게 되었다. 홍대에서 오랫동안 작업해오고 있는데, 유명한 레코드 가게인 레코드포럼을 지나가다가 <인투 더 와일드>의 영화음악을 듣게 되었다. 인상 깊은 음악들은 펄잼이라는 밴드의 보이스 보컬로 활동했던 에디 베더가 작업한 것이다. 음악이 주는 느낌이 좋아서 가게로 들어가 에디 베더가 새로운 음반을 냈느냐고 주인에게 여쭈었다. 에디 베더는 더 이상 새로운 음반을 내지 않는데 한 영화감독이 그에게 특별히 영화음악을 의뢰해서 탄생한 음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여행을 좋아하는데 여행을 갈 때마다 이 음악을 들었다. 음악만 듣다가 영화의 존재를 알게 되고, 어떤 영화인지 궁금해서 찾아보았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는 것을 느꼈고, 함께 보고 싶었다. 여행에 대한 이야기이고, 삶에 대한 이야기이긴 하나, 원작을 보면 크리스토퍼가 어떤 책을 가지고 다녔는지에 대해 밀도 있게 설명되어 있다. 실제로 크리스토퍼는 헨리 소로의 책이나 잭 런던의 책을 들고 다녔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크리스토퍼의 독서에 대한 이야기가 매혹적으로 다가왔다. 여행을 좋아하고, 또 책을 쓰는 사람으로서 상당히 밀도 높은 경험을 제공해줬던 영화였기 때문에 여러분들과 교감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으로 추천했다.


김성욱: 원작과 영화 사이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김경주: 다큐멘터리북이기 때문에 구성이나 편집은 거의 비슷하다. 동생의 내레이션으로 표현되는 크리스토퍼에 대한 정보는 책에서도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특히나 크리스토퍼가 좋아해서 틈틈이 ‘중얼거리는’ 다양한 문장들이 책에서는 자세히 다루어진다. 원작을 보면 크리스토퍼는 사람을 믿지 못한다. 그는 사숙으로 책만이 진실을 전해준다고 믿었는데 여행을 하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삶의 진실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깨달아간다. 그렇게 사소하지만 놓치고 싶지 않은 작은 결들을 내 언어로 데려오기 위해서 그 ‘중얼거림’들이 중요했던 것 같다.


김성욱: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시간성이 매혹적이었다.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90년대 안에서 부모의 시간이었던 60년대가 느껴지기도 한다. 또 크리스토퍼는 1968년에 태어났고, 시대적으로 봤을 때 1990년대는 걸프전이 일어나기도 했다. 어떤 면에서 <인투 더 와일드>는 60년대에서 90년대로의 여행과도 같고, 크리스토퍼는 그 속에서 히피나 사회에서 뛰어났던 인물들을 만나는 것과 같다.

김경주: 물론 영화에서 68세대의 히피문화들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비트세대라고 부르는 잭 런던, 잭 케루악, 앨런 긴즈버그에 대한 강한 오마주가 영화에서 느껴진다. 그러한 이 영화만이 가진 결들이 새롭게 다가왔다. 사실 이 영화에 대한 정보를 찾다보면 재밌는 이야기들이 많다. 80년대 말, 90년대 초반의 미국에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떠나는 배낭여행지 1순위로 크리스토퍼의 버스가 꼽혔었다고 한다. 좋은 영화를 보면 공유하고 체험하고 싶지 않나. 이 영화를 보면 떠나고 싶다는 느낌이 든다. <인투 더 와일드>는 그만큼 지속적인 파장을 주는 영화다.


김성욱: 나이가 드니까 떠나는 청년보다 청년을 바라보는 나이든 사람들의 모습이 와 닿았다. 시대적 맥락에서 보았을 때 90년대 초는 부시에 의해 걸프전이 일어났던 시기였고, 영화의 중간 중간에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서 그 점이 환기된다.

김경주: 크리스토퍼가 죽기 전에 ‘행복은 실재할 때, 함께 할 때만 존재한다’라는 자신의 생각을 헨리 소로의 『월던』의 행간에 새겨 넣는다. 개인의 가족사나 행복의 공유도 매우 중요한 문제인 것 같다. 어떤 시대를 살아가고 있느냐도 중요하지만, 인간의 개별적 관점도 중요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나의 가족사, 내가 겪은 일들에 대해 반추하게 되었다.



관객1: 현실을 봉합하지 않더라도 크리스토퍼가 가족들에게 돌아가기를 원했다. 크리스토퍼가 가족문제를 집착을 하고, 가족에게 복수하는 느낌이 강해서 안타까웠다.

김경주: 당시의 미국의 시대적 상황과 결부시켰을 때 이해의 폭이 좀 더 넓어질 것 같다. 당시 68세대에 대한 시대적인 혼란, 가부장, 억압된 미국 사회 등 크리스토퍼가 자유로워지고 싶었던 것이 가족이라는 결속력뿐만 아니라고 본다. 영화에 삽입된 에디 베더의 ‘Society'라는 곡에는 ‘내가 사라지면 사회는 나를 그리워해줄까’라는 가사가 등장하기도 한다. 가족에 대한 내러티브 외에도 또 다른 내러티브가 음악에서 등장한다.


관객2: 크리스토퍼는 화폐 권력에 대항하기 위해서 돈을 태워버린다. 사실 가족주의는 자본주의에 포획되어 있는 것이기도 하다. 원작의 주인공은 가족주의에서 벗어나려고 하는데 감독은 오히려 가족주의로 회귀하는 느낌이 들었다.

김경주: 비슷한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로드무비를 동생의 목소리를 통해서 가족주의로 이끌고 가는 느낌이었고, 생선의 비늘처럼 자꾸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 원작의 작가는 크리스토퍼의 여동생이 그를 가장 잘 이해했던 사람으로 보았다. 원작이 르포 형식이기 때문에 감독 숀 펜이 그것들을 모두 버리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나 크리스토퍼가 가족에게서 벗어나기 위해서 여행을 시작했다고만 보기도 어렵다. 시대적인 결을 보면, 인물을 이해하기 더 용이할 것이다. 그러나 영화를 보면 알 듯, 모를 듯싶지만 분명히 다른 곳으로 건너간다는 느낌이 든다. 답을 찾기 보다는 그 느낌에 충실하면 좋을 것 같다.


김성욱: 끝으로 시인들이 영화를 볼 때 어떠한가가 궁금하다. 어떤 영화에 매혹을 느끼는지. 그리고 이야기를 하면서 다하지 못한 점이 있다면 들으면서 이 자리를 마치고자 한다.

김경주: 예술 장르마다 그러한 것들이 있겠지만 시만이 줄 수 있는 고유한 것들이 있다. 시에서 그것은 행간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시의 행간과 같은 존재는 침묵인 것 같다. 속도가 빠른, 목적이 분명한 영화들도 좋아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침묵이 잘 표현된 영화를 좋아한다. 내러티브에 빨려 들어가지 않고 견디면서 생기는 균열들이 매혹적으로 다가온다.


정리: 배동미(시네마테크 관객에디터) | 사진: 김윤슬(시네마테크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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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작 리뷰

자신을 비우는 여행

숀 펜의 '인투 더 와일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인투 더 와일드>(2007)는 <인디언 러너>(1991) <크로싱 가드>(1995) <써스펙트>(2001)에 이은 숀 펜의 네 번째 연출작이다. 특히 <인투 더 와일드>는 세 편의 전작에 비해 상대적으로 공을 더 들인 작품이기도 하다. 크리스토퍼 맥켄들리스(Christopher McCandless)라는 실존'했었던' 인물을 다루기 위해 그의 가족에게서 영화화 허락을 받기까지 무려 10년이란 시간이 소요됐기 때문이다. 도대체 크리스 맥켄들리스가 누구이기에?
명문대 출신의 크리스(에밀 허시)는 한마디로 전도유망한 청년이었다. 아버지가 나사(NASA) 출신의 돈 많은 사업가였고 크리스 자신은 성적도 우수해 대학 시절 동안 과외 활동으로 2천만 원 넘는 돈을 벌어 저금까지 해 둔 상태였다. 하지만 그는 현실과 타협할 생각이 없었다. 남들처럼 좋은 직장을 구하고 가정을 꾸리는 대신 졸업과 동시에 보다 자유로운 삶을 위해 자연으로의 탈출을 감행한다. 그것이 1992년 여름의 일이었다.
그럼 <인투 더 와일드>는 스크린용으로 만든 <정글의 법칙> 같은 작품인가?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 크리스는 가진 돈을 모두 국제구호단체에 기부하고 가족과 지인들에게 전혀 인사도 남기지 않은 채 알래스카를 최종 목적지 삼아 혈연단신으로 자연 속에 뛰어들었다. 문명으로부터의 완전한 탈출, 이름도 알렉산더 슈퍼트램프(Alexander Supertramp, '잘 나가는 방랑자'라는 정도의 의미)로 바꾼 그는 두 집 살림을 하는 아버지의 위선으로부터, 시간에 매여 사는 현대인의 각박한 삶으로부터 벗어나 독립된 자아를 느끼고 싶어 했다.

 

 
숀 펜이 크리스를 바라보는 시선은 경외감에 가깝다. 그것은 크리스가 정말 자신이 목적한 바대로 문명으로부터 완전한 탈출을 꾀하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크리스는 여행을 하면서 미국 전역을 누비는 히피 부부, 자신의 범죄를 숨긴 채 살아가는 농부, 자동차 사고로 가족을 잃은 노인을 만나면서 역으로 가족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고 다시 문명으로의 귀환을 결심한다. 세상은 자신을 완전히 버릴 때 달리 보이는 법. (극 중 크리스는 종종 극단적으로 화면의 경계에 위치하고는 한다.) 숀 펜은 그런 크리스의 용기에 존경을 표하는 것이다. 
하지만 크리스는 불어난 물 때문에 강을 건너지 못해 고립된 삶을 살다가 여행을 떠난 지 112일째 되던 날 굶주림으로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자연이 풍요롭고 안락한 것만은 아니었다. 자연 역시도 문명에서처럼 일정 정도의 조건을 갖춰야 살아갈 수 있었던 것. 크리스는 죽으면서 그가 머물던 버스에 '사랑은 나눌 때만 비로소 현실이 된다.'는 글을 남겼다. 비록 현실에서 이를 실천하지 못하고 세상 밖으로 멀어졌지만 숀 펜은 <인투 더 와일드>를 통해 크리스가 더 많은 이들과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허남웅 / 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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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법의 굴레와 책임으로부터의 해방감

- 숀 펜의 <인투 더 와일드>

 

 

 

 

 

<인투 더 와일드>는 배우 숀 펜이 아니라 감독으로서의 숀 펜을 만날 수 있는 작품이다. 그는 이미 1991년부터 차곡차곡 영화를 만들어온 감독으로 <인투 더 와일드>(2007)는 그의 네번 째 감독작이다. 숀 펜은 이 영화에서 연출만이 아니라 각본과 제작까지 맡았다.

 

영화는 세상을 등지고 알라스카로 향했던 실존인물 크리스토퍼 존슨 맥캔들리스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한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크리스(에밀 허쉬)는 대학 졸업 후 가족 모두와 연락을 끊고 여행을 시작한다.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에게 부여되었던 모든 것들을 버리고, 온전히 자신의 선택으로만 이루어진 삶을 개척하기 위해서다. 그러기 위해서 그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새로운 이름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에게 ‘알렉스’라 이름붙이고, 방랑자라는 뜻을 가진 ‘슈퍼트램프’라는 성을 붙인다. 관객은 알렉스가 사회적 관습이나 제도에 의해서 성장, 혹은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만의 호흡에 따라 조금씩 이동하는 모습을 바라보게 된다.

 

한 젊은이가 자연 속으로 들어간다는 이 단순한 이야기는 영화 속에서 그 시간적 순서가 조각나고 재배치되었다. 그리고 이 시간적 순서는 알렉스만의 유토피아인 알라스카를 기점으로 해서 재배치된다. 영화 속에는 그가 ‘알라스카로 향하는 시간적 순서’와 ‘알라스카에서의 생활, 그리고 그곳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는 시간적 순서’가 동시에 공존한다. 전자는 자연 속으로의 ‘이동’을 그리고 있으나, 후자의 경우 알렉스가 ‘마법의 버스magic bus’라고 부르는 버려진 버스 안에서의 ‘정체된 생활’을 그리고 있다.

 

관객은 알렉스와 함께 여행을 떠나게 된다. 대자연이 익스트림 롱숏으로 화면에 담기면, 그 속에서 알렉스는 아주 작은 존재가 되고, 카메라는 흔들림 없이 멀찍이 떨어져 대자연을 관망한다. 관객은 여행 도중에 만나는 사람들과의 에피소드나 알렉스의 과거에 대한 드라마보다도 알렉스 개인이 무력해지고 조그마해지는 이 거대한 크기에 매혹을 느낄 것이다. 알렉스의 말대로 “우리의 가슴 속에는 항상 법의 굴레와 넌더리나는 책임들로부터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들어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알렉스가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고요하게 앉아서 책장을 한 장씩 넘기는 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보거나, 눈 덮인 너른 대지에 그가 한 발짝 한 발짝 발자국을 남기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 해방감은 충분하다. 그리고 그 해방감은 어쩌면 이 영화의 모든 것이기도 하다.

 

배동미 / 관객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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