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4일, <아메리카의 밤> 상영 후 지난 달에 이어 두 번째 “오픈 토크”행사가 마련되었다. 영화에 대한 공감,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마음먹은 순간부터 감독으로서의 어려움과 그럼에도 작업을 계속 이어가게 만드는 영화의 힘에 이르기까지, 네 감독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일부 옮긴다.

 

 

변영주(영화감독): 오늘은 김종관 감독, 이혁상 감독을 모시고, 트뤼포의 <아메리카의 밤>을 보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먼저, 오늘 영화를 보면서 가장 와 닿았던 장면은 어떤 장면이었나?

김종관(영화감독): 공감도 있지만, 어쨌든 트뤼포 감독님은 저랑 사정이 많이 다르다보니 동경의 대목도 있다. 대부분은 영화를 찍는 시간이 아니라 영화를 찍기 위해서 기다리는 시간에 대한 고민이 많고, 영화를 찍을 때는 항상 찍는 순간의 즐거움이 있다. 영화에서 감독이 배우를 달래면서 하는 말이 있다. “영화는 야간 기차 같다. 네가 살아서 숨 쉴 수 있는 장소는 여기니까 도망치지 말고 여기서 어떻게든 해봐라”는 말이 와 닿았다. 영화를 찍어야한다는 강박에도 공감이 간다.

이혁상(영화감독): 계속 극영화가 아닌 다큐멘터리를 작업해왔기 때문에, 극영화 현장 분위기에 대해선 잘 모른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극영화감독들은 참 난잡하다는 느낌이었다.(웃음) 영화판에 여러 가지 일들이 많지만, 그중에도 서로 정분나는 일들이 참 많다.

이해영(영화감독): 영화를 만들 때 감독들의 악몽과 무의식, 현실적인 부분 같은 것들이 잘 표현된 것 같다. 하지만 어쨌든 그는 트뤼포니까, 프랑스에서 인정받으며 좋은 시스템에서 영화를 찍던 감독이니까, 사실은 영화 속의 고민이나 갈등이 굉장히 우아하다. 여기에 냄새로 따진다면 땀 냄새, 토한 냄새, 발 냄새 같은 걸 섞어 놓으면 충무로랑 가까워지지 않을까 싶다.(웃음)

 

변영주: 재밌게도 하필 오늘 이 영화를 보는 동안 트윗으로 메시지가 왔다. 영화감독이 되고 싶은 고등학생인데, 영화감독이 되려면 19살에는 영화의 어떤 걸 공부해야 하냐고 질문을 보내왔다. 그래서 “19살에는 영화를 공부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라고 답했다.(웃음) 오늘 이 자리에도 어쩌면 앞으로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분들도 계실 것 같다. 김종관 감독은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순간은 언제였나?

김종관: 어렸을 때 영화를 보고나면 나만의 스토리를 만들면서 공상하곤 했다. <그렘린>을 보면 <그렘린2>의 이야기를 머릿속으로 혼자 만들 거보고, <슈퍼맨>의 속편을 만들어본다든지 하는 식이었다.

이해영: 그렇게 블록버스터를 상상하고서 인디영화를 만드셨다.(웃음)

김종관: 영화를 재밌게 보는 것에서 어느 순간 영화를 만들기에 대한 욕구로 자연스럽게 옮겨가는 것 같다. 20대 초반에 필름 워크샵을 한번 했었다. 한 달 동안 워크샵에 참여하면서 어깨너머로 영화를 배웠다. 그 때 재밌게 했던 기억에서 어떻게 넘어오게 되면서, 20대 후반부터는 나의 영화를 만들게 되었다.

이해영: 영화과에 비교적 늦게 들어간 편이다.

김종관: 그 전에는 장사도 하고 이것저것 다른 일을 했었다. 그런 일들이 다 잘 안되고, 뭔가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하고 싶은 게 아니니까. 하고 싶은 걸 하고 싶었다.

 

변영주: 이혁상 감독은 ‘연분홍치마’라는 다큐멘터리 만드는 독립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연분홍치마’의 첫 작품인 <마마상> 때부터 함께 했었나?

이혁상: 그렇다. 사실 애초에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모인 것은 아니었다. 다들 제작을 전공한 것도 아니었고, 이론과에서 비평을 공부한 사람들이었다. 세미나 팀을 시작하면서 여성주의와 섹슈얼리티와 관련된 세미나를 진행했는데, 세미나만 하다보니까 뭔가 실천적인 것도 해봐야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에서 ‘연분홍치마’를 만들게 되었다. 처음엔 카메라를 든다는 것 자체를 상상도 못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현장에서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실태보고서 나 자료집 같은 걸 만들게 되는데, 이걸 꼭 글로 만들 필요가 있을까, 카메라로 다큐멘터리를 찍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처음 만든 작품이 <마마상>이었다.

 

변영주: 이해영 감독은 배우랑 결혼하고 싶어서 영화감독이 됐다는 게 사실인가.(웃음)

이해영: 특별하게 할 줄 아는 건 없지만, 막연하게 나에게 있는 잡다한 재능들을 모아보면 그나마 영화판에서 써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감독이 돼서 유명해지면 좋은 여배우와 결혼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웃음) 변영주 감독은 ‘연분홍치마’와 비슷하게 다큐멘터리의 길을 걷다가 갑자기 극영화로 전환하셨는데..

변영주: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처음에는 ‘장산곶매’에 들어가서 일을 하다가 현재 영상원의 김소영 교수님과 함께 사무직 여성노동자에 관한 중편극영화의 시나리오와 촬영을 했었다. 그러니까 다큐로 시작을 했던 건 아니었다. 그리고 나서, 김동원 감독을 만나 다큐멘터리를 하게 되었는데 그렇게 만든 첫 작품이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이었다. 그 영화를 만들고 나서야 갑자기 감독이 되고 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영화를 시작했다.

이해영: 김종관 감독도 말했지만 사실 영화를 찍는 시간보다는 기다리거나 준비하는 시간이 훨씬 더 길다. 스스로 영화감독으로서의 자의식이 별로 없다가, <천하장사 마돈나>가 개봉하고나서 극장의 마지막 상영 때 혼자 영화를 보는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비로소 들더라. 그때부터 ‘나는 감독이다’ , ‘감독이니까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식으로 스스로를 채근한다.

김종관: 처음에 영화를 시작했을 때는 영화가 굉장히 중요했다. 어느 정도 시기가 지나서 시작했기 때문에 스스로 배수진을 치고 뭔가 결과물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컸다. 영화 만드는 사람으로서의 자의식은 별로 없었다.

 

 

이해영: 이혁상 감독은 앞으로의 행보에 대한 고민도 있을 것 같다.

이혁상: 고민을 하고 있는데, 당장은 <두개의 문> 때문에 워낙 정신이 없는 상황이다. 한 번 더 게이 영화를 더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큐멘터리로 한 편 정도 더 작업하고, 다큐멘터리 뿐 아닌 다른 길도 모색해보려고 한다.

변영주: 영화촬영을 하면서 가장 끔찍했던 기억이 있나? <아메리카의 밤>에서처럼, 스크립터와 배우가 사랑에 빠져서 감독은 안중에 없게 된다면, 감독 입장에서는 정말 끔찍할 것 같다.

김종관: 영화촬영 현장에선 연애가 많이 일어나는 것 같다.(웃음) 적은 예산의 영화를 해오다보니까 항상 무슨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그래서 처음의 계획대로 촬영이 진행되는 게 아니라 항상 무언가로 떼우게 되고, 그러면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허덕허덕 하는 게 제일 스트레스다.

이혁상: 다큐멘터리는 일단 주인공들과의 거리 설정이 중요하다. 특히 <종로의 기적>은 스스로도 또 한 명의 주인공으로서 등장하기 때문에, 다른 주인공들과의 거리 관계가 힘들었다. 촬영 중간에는 주인공 중의 한 명이 세상을 떠났는데, 그 때 정말 힘들었다. 2~3개월 동안 방에 틀어박혀서 악몽을 꾸고 아무것도 못할 정도였다.

이해영: 뒤늦게 고백하자면 예전에 감독을 해보니까 어떠냐는 질문에, 너무 귀찮다고 대답한 적이 있다. 그때는 농담이 아니라 진짜였다.(웃음) 감독에게 계속 모든 것을 물어오고, 감독은 계속해서 일일이 선택해야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 공감했던 것이 악몽장면인데, 촬영을 하면서 실제로 악몽을 정말 많이 꾼다.

변영주: 영화현장에서는 정말 사사로운 것까지 감독에게 물어본다. 감독은 모든 걸 대답을 하면서 가야한다. 그 때 감독이 잘 대답을 못하게 되면 스탭과 감독 사이의 신뢰에 균열이 가게 된다. 언제가 선배감독으로부터 배운 요령은, 감독은 다 알고 있다는 표정으로 ‘그럼 너는 어떤 게 더 좋은데?’ 되물어보면 된다.(웃음)

 

관객1: <아메리카의 밤>에서 배우들은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헤매고, 감독은 악몽 속에서 힘들어 할 때, 스탭들은 묵묵히 작업을 하고 있던 장면이 인상 깊었다. 영화감독이라면 아마도 ‘영화라는 게 대체 뭐길래’라는 물음을 힘들 때마다 떠올리게 될 것 같다.

이해영: 그 질문은 때로는 스스로를 무기력하게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다시 일어서게 만드는 힘이 되기도 한다. 수많은 스탭들이 고생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정말 ‘영화가 뭐길래 이들은 청춘을 다 바치고 있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도 찰나적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영화가 뭐길래 이렇게 터무니없는 낙관을 하게 만들고, 이렇게 나를 계속 움직이게 하는가’라는 생각이 든다. 치유와 상처가 그 안에 다 있는 것 같다. 영화의 대사 중에 영화가 삶보다 훨씬 조화롭다는 말, 우리는 영화를 해야만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얘기가 핵심인 것 같다.

 

관객2: 감독님들께서 힘들 때 마다 꼭 찾게 되는 자신만의 영화 목록이 궁금하다.

김종관: 시기마다 좀 바뀌기는 한다. 지금은 예전처럼 반복해서 보는 영화는 없는데 가끔씩 보게 되는 건 영화에서도 나왔던, 장 비고의 <라탈랑트>이다. 관객으로서 깊은 교감을 느끼게 되는 영화다.

이혁상: 새벽에 <섹스 앤 더 시티> 시리즈를 보면서 최면에 걸리듯 잠이 든다.(웃음)

변영주: <스타워즈> 시리즈와 <아라비아 로렌스>, 50~60년대 할리우드에서 대작 붐이 일어났던 시기의 대작 영화들을 찾는다.

관객3: 어떤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될 때 갖는 기준이 궁금하다

이해영: 그런 생각이 들기 까지는 123가지 정도의 이유가 있는 거 같다. (웃음) 하지만 결국 이야기의 재미라는 점이 크다.

이혁상: 다큐멘터리 작업을 해와서 그런지, 사명감까지는 아니더라도 아무도 기록하지 않은 시간과 역사를 내가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 <종로의 기적>도 그런 출발에서 시작했었다. 다큐멘터리가 아니더라도, 픽션의 경우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역사를 기록하고, 시간을 기록하는 기분으로 영화를 만들고 있다.

김종관: 앞의 두 얘기와 다 연결된다. 처음에 단서처럼 오는 건 기록인 거 같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나 계절, 그때의 감정을 편지를 쓰는 느낌으로 담아낸다. 모든 단서들은 차근차근 오는 것 같다.

변영주: 어떤 이야기를 접했을 때 혼잣말처럼 메인플롯을 만들어본다. 만들어보는 순간 어떤 메인플롯이 재밌다, 그리고 그 플롯 안에서 이런 장면을 만들어 볼 수 있겠다, 이런 장면이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정리: 장지혜(관객에디터) 사진: 최용혁(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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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시네마테크 오픈토크

 

 

 

 

 

 

서울아트시네마 개관 10주년을 기념해 열리는 ‘시네마테크 오픈토크’의 두 번째 시간은 영화 감독들의 내밀한 삶에 관한 것입니다. 영화촬영 현장을 처음 방문한 사람들은 우리가 극장에서 보는 영화들이 어떻게 이런 무질서한 현장에서 만들어질 수 있는지 의아해하곤 합니다. 프랑수아 트뤼포는 <아메리카의 밤>에서 그런 영화촬영 현장의 내막을 보여주며 그 장소가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서로 입을 맞추면서 시간을 보내는 영화의 세계’라 말합니다. 영화 작업은 스크린의 세계와는 다른 또 하나의 세계입니다. 종종 영화 감독들은 배의 선장이나 비행기의 조종사로 비유되곤 합니다. 그들이 어떤 항로로 진전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그러나 관객으로서의 우리는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게다가 항해의 흥분과 기쁨이 무엇인지 가늠하기 쉽지 않습니다. 트뤼포는 영화는 야간 열차처럼 그저 전진하는 것이며 영화 감독들은 결국 일 속에서, 영화라는 작업에서 행복을 찾아야 하는 운명이라 말합니다. 영화 감독의 삶은 그들의 영화보다 훨씬 가려져 있고, 그렇기에 두 시간 동안 보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반년, 혹은 수년의 시간을 어떻게 소진하고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6월의 오픈토크는 스크린의 뒤에 숨겨진 영화 감독들의 삶의 내막을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입니다. 그 비밀스런 자리에 많은 분들을 초대합니다.

 

일시: 6월 24일(일) 14:00 <아메리카의 밤> 상영후

장소: 시네마테크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

진행: 변영주 감독(<화차>), 이해영 감독(<페스티벌>)

초대손님: 김종관 감독(<조금만 더 가까이>), 이혁상 감독(<종로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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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토크] <종로의 기적>의 이혁상 감독

최근 한국 다큐멘터리는 단순히 소재의 무거움에 함몰되지 않고 관객의 몰입도를 높이기 위한 다양한 형식의 실험과 사례의 활용으로 각광받고 있다. 이에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는 9월 1일부터 8일까지 '다큐멘터리의 진실의 정치학'이란 제하로 최근 한국 다큐멘터리의 주목할 만한 8편의 작품을 모은 특별전을 열고 있다. 이 중 지난 9월 3일 저녁에는 <종로의 기적>이 상영되었고, 상영 후 이 영화를 연출한 이혁상 감독과 제작진들과의 대화가 이어졌다. 그 현장을 옮긴다.


박기호(서울아트시네마 운영팀장): <종로의 기적>이 개봉하고 그동안 보통의 독립영화들 중에서도 유독 GV나 행사가 많았다.
이혁상(영화감독): 이렇게까지 오랫동안 하리라고는 생각을 못했었는데, 롱런을 못하더라도 끝까지 해보겠다는 생각은 있었다. 영화를 통해서 감독이나 주인공들, 성소주자 커뮤니티의 친구들이 이렇게 관객과의 대화를 통해서 서로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는 것이 굉장히 좋은 캠페인의 자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막연히 영화 속 성소수자의 삶을 보는 것도 좋겠지만 이렇게 마주앉아서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를 통해서 많은 분들이 가지고 있었던 꽃게이 판타지를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자리가 되었다고 생각된다.(웃음) 많은 관객들을 만났다. 그 과정에서 사실 저희가 더 많은 힘을 얻었던 것 같다. 같은 성소수자라고 커밍아웃도 해주시는 분도 계셨고, 영화를 보고 처음 종로에 나오거나 처음 게이들을 만나서 자신의 새로운 정체성을 깨닫는 분들도 계셨다. 그런 과정들이 어떻게 보면 처음 <종로의 기적>을 만들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생각했던 바로 그 지점들인 것 같아서 뿌듯하다.
전재우(‘친구사이’): ‘친구사이’나 ‘동성애자인권연대’(이하 ‘동인연’), ‘연분홍치마’ 같은 단체들이 가지고 있는 성격이 그 전에는 대중과 멀리 떨어져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았는데, 영화가 나오고 나서 ‘친구사이’ 홈페이지 방문자수도 늘고, 후원회원도 늘었다. ‘동인연’이나 ‘연분홍치마’도 같은 사정이라고 들었다. 반가운 일이다.


박기호: 오늘 시네토크를 준비하면서, ‘종로, 새로운 시작’ 이런 의미로 진행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종로의 기적>은 주변의 성소수자들이 자기의 맨얼굴을 확 드러내는 경우가 거의 처음이라는 점에서, 이전까지의 성소수자를 다룬 영상물들과 차이를 보인다. 이렇게 자신을 드러내는 성소수자들이 많아졌다는 것도 하나의 성과인 것 같다. 두 분이 생각하시는 <종로의 기적>의 성과는 어떤 것들이 있나?
이혁상: 영화를 보고서 어떤 분이 메일을 주셨다. 항상 자신의 정체성 때문에 괴로워하고 죽음까지 생각했던 분인데 영화를 보고 힘을 얻었다고 감사하다는 내용이었다. 그분은 <종로의 기적> 뒤풀이 때 나오셔서 처음으로 게이들과 만나 정말 새로운 삶을 시작을 하고 자신의 기적을 찾은 분이시다. 그런 분들이 좀 계셨다. 이성애자 관객분들은 왜 제목이 ‘종로의 기적’인지 잘 모르실텐데, 원래는 영화에 나오는 합창단 ‘지보이스’의 노래 제목이다. 종로에서 천생연분을 만나는 기적을 얘기하는 노래다. 나와 같은 사람들이 존재하는 곳을 알게 되면서 성소수자들은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성소수자들에게는 그러한 경험이 기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성애자 관객들의 응원과 지지가 예전과는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는 그야말로 성소수자들의 인권과 위치를 지지하고 존중하는 느낌을 관객과의 대화들을 통해서 많이 느낄 수 있었다.
전재우: 성소수자들에 대한 판타지가 없어지고 사실적인 게이들이 그려지면서 어떤 거리감이 줄어들었다는 점이 있는 것 같다. 이 영화가 나오고 게이커뮤니티를 보면 더 이상 성소수자들이 도망갈 곳이 없게 만들지 않았나 하는, 그래서 더 이상 숨을 곳이 없으면 이제 벽장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사실 이 이후 과정이 살짝 기대된다. 벽장 속의 성소수자들은 불안해할 수도 있고 아직 준비되지 않을 수는 있지만 이 영화가 밖으로 나오는 것을 준비하는 과정을 마련한 계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박기호:
얼마 전 보도된 설문조사에서 한국사회에서 가장 시급히 개선되어야할 차별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첫 번째가 학벌로 인한 차별, 두 번째가 성소수자 차별이라는 답변이 나왔다. <종로의 기적>이라든가 ‘연분홍치마’, ‘동인연’, ‘친구사이’ 같은 단체들이 성소수자 문제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과정에서 쟁취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관객과의 대화를 통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 있다면 듣고 싶다.
이혁상: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네 명의 주인공들을 어떻게 선정한 것이냐는 것이었다. 일단 성소수자가 주인공인 다큐멘터리는 사회적으로 커밍아웃을 해야 한다는 전제가 가장 기본이다. 누군가 여러분의 삶을 다큐로 찍고 싶다고 했을 때 일단 두려운 분들이 더 많을텐데, 그런 두려움에 더해서 성소수자로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야 된다라는 점이 이중의 두려움을 가져온다. 그런 점에 동의하고 함께 커밍아웃을 결심했던 주인공들을 선정하게 됐다. 그리고 순서에 대한 질문도 많이 들었다. 처음에는 네 명의 이야기를 섞어서 진행을 하다가 도저히 이야기가 안 풀리고 진전이 안 되는 것 같아서 따로따로 구성을 하게 됐다 .옴니버스 구성이 짧은 시간 안에 완결성을 가져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좀 더 어려웠던 부분 이 있다. 마지막에 정욜씨 에피소드를 마지막에 배치해야겠다고 생각했던 부분은 있었다. 좀 무거운 내용일지라도 그 이슈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시라는 의미에서 HIV/AIDS에 대한 내용을 관객들에게 좀 더 강한 여운으로 남겨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정욜씨가 <종로의 기적>의 전체적인 배치가 어떻게 보면 나의 개인적인 삶이나 고민의 흐름들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져 있는 것 같다고 얘기해 주었다. 소준문씨의 에피소드에서는 게이영화감독으로서의 위치와 고민이, ‘연분홍치마’ 활동을 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부분은 두 번째 장병권씨의 에피소드에서, 게이로서의 삶에서 느끼고 있는 즐거움들은 최영수씨의 에피소드에서, 현재 HIV/AIDS와 관련해서 고민하고 있는 지점들은 정욜씨의 에피소드와 연결되는 것 같다.

박기호: <종로의 기적> 제작과정에서 PD역할을 맡았는데, 개봉 후의 소감이나 성과라고 생각되는 점은 어떤 것들인지?
김일란(‘연분홍치마’): 게이다큐멘터리의 PD를 맡으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게이들 속에 파묻혀 있었을 때는 정말 존재감이 없어진다는 점이다. 게이들하고 같이 지내면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웃음) 그리고 이혁상감독과 같이 지내면서 깨닫게 되었던 것 중 하나는 날씬한 게 예쁘다가 아니라 뚱뚱한 게 예쁘다하는 점, 몸에 대한 다른 생각을 하게 하는 부분도 있었다. 그리고 게이문화와 여성의 문화 사이의 차이에 있어서 서로가 서로에 대해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었다. 다양한 성소수자 영상이나 다큐멘터리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얘기들을 듣게 된다. ‘연분홍치마’에서 <종로의 기적> 이전에 <3xFTM>이나 <레즈비언 정치도전기> 같은 영화를 만들기도 했는데, 계속해서 성소수자인권운동 곁에서 계속 좋은 영상을 만들어달라는 훈훈한 부탁을 많이 들었던 것 같다.

관객1:
특히 첫 번째 에피소드가 마음에 많이 와 닿았다. 소준문 감독님이 다른 사람들 앞에서 본인이 게이감독이기 때문에 다 짊어지고 가야하는 것이 부담스럽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벌거벗은 느낌이라고 얘기하는 부분이 많이 공감되었다. 그런 부분에 대해선 감독님은 어떻게 느끼시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이 영화를 이성애자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다.
이혁상: 소준문씨 에피소드를 여성분들 특히나 여성영화인들이 굉장히 많이 공감하면서 본다. 여성들에게 착한여자콤플렉스가 있지 않나. 준문씨가 어떻게 보면 착한게이콤플렉스에 휩싸여서 스스로 알아서 조심하고, 알아서 상대를 먼저 배려하고, 나의 정체성 때무에 상대방이 불편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모습, 그러다보니 굉장히 착한 모습, 화도 한번 못 지르는 그런 모습을 보인다. 그런 것들이 아마도 많은 여성분들이 남성중심적인 사회에서 느끼는 차별의 모습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종로의 기적>에 차별의 모습이 물리적으로 드러나는 장면은 없다. 물리적인 폭력이 드러나지 않으니까 어떻게 보면 동성애자들이 굉장히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차별은 보이지는 않지만 이미 성소수자들의 마음 속에서 시작되고 있다. 스스로의 욕망과 자신의 몸가짐을 알아서 제한하게 되는 것 자체가 이미 차별인 것이다.
전재우: 아마 직장에서 커밍아웃을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첫 번째 에피소드에 많이 공감할 것 같다. 일단 커밍아웃을 하게 되면 그들에게 그 사람은 게이대표가 되어 버린다.(웃음) 모든 것에 게이라는 꼬리표가 붙는 경험, 다른 사람이라면 겪지 않을 일일 텐데, 24시간 나의 정체성을 생각해야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박기호: 앞으로 각자의 계획이 궁금하다.
이혁상: 계속 공동체 상영을 통해서 관객들을 찾아가는 자리를 만들어가려고 한다. 당분간은 <종로의 기적>과 함께 전국을 순회하면서 계속해서 상영회를 갖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전재우: 먼저 ‘친구사이’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해야 할 것 같다. ‘친구사이’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이고 한국에서 제일먼저 생겨서 오랫동안 활동하고 있는 단체이다. 이번에 <종로의 기적>을 ‘연분홍치마’와 공동으로 기획하고 제작했다. 인권운동단체이지만 문화컨텐츠에도 관심이 많아서 <종로의 기적> 이전에도 청년필름과 같이 퀴어단편들도 만들었었고, 소준문씨의 첫 번째 영화도 ‘친구사이’에서 만들었었다. ‘친구사이’ 홈페이지에 커밍아웃인터뷰라고 해서 회원들의 인터뷰를 홈페이지에 올리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이것을 영상으로 발전시켜보자 하는 의견이 ‘연분홍치마’측에 전달이 되고 ‘연분홍치마’에서도 커밍아웃다큐멘터리 3부작을 기획하고 있어서 서로 의기투합해 영화가 나왔던 것이다. 커밍아웃인터뷰는 지금도 계속 되고 있고, 홈페이지에서 보실 수 있다. ‘지보이스’는 정기공연 준비하고 있다. 씨네코드선재에서 11월 5일에 공연할 예정이다. 굉장히 재밌는 공연이 될 것 같다. 2013년이 되면 ‘지보이스’가 만들어진지 10년이 된 해여서 ‘지보이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보면 어떨까하는 애기도 나누고 있다.


김일란: <종로의 기적> 제작 과정은 ‘친구사이’와 ‘연분홍치마’의 일종의 연대사업이면서, 동시에 다큐멘터리라고 하는 예술적인 영역을 해야하는 복잡한 과정이었다. ‘친구사이’와 ‘친구사이’의 많은 분들에게 정말 감사하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연분홍치마’는 현재는 일단 커밍아웃다큐멘터리 3부작을 마무리하고 앞으로 성소수자인권운동 안에서 어떤 문화활동을 계속해나갈지 고민해 가야할 것 같다. 주변에서 많은 응원과 지지를 보내 주셨다. 그리고 용산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두 개의 문>작업을 마무리하고 있는데, 이번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처음 상영이 된다. 그 영화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

정리: 장지혜 관객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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