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새로운 작가 전략' 기획전에 맞춰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는 이번에 상영하는 데뷔작들을 만든 감독들을 한 자리에 모아 이야기를 나눠보는 두 차례의 포럼을 마련했다. 그 첫 번째 자리가 지난 3월 26일 저녁 7시부터 2시간 여에 걸쳐 ‘한국영화, 새로운 작가 전략의 돌파구를 찾다’라는 주제로 열렸다. 다양한 개성을 지닌 김동주, 김종관, 민용근, 이응일, 정호현 감독이 패널로 참여하고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의 진행으로 펼쳐진 이색적이며 특별했던 포럼 현장의 일부를 담아본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최근 2009~2011년 사이에 새로운 영화들이 많이 나왔고, 이 다양한 영화를 만든 분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한 편의 영화가 시장 안에서 나오면서도, 자신의 예술적 표현들과 함께 영화를 만들어 나갈 때 하게 되는 고민들이 말하자면 하나의 작가 전략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런 고민들과 앞으로 어떤 영화들을 만들어나갈지에 대한 이야기들을 같이 나누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 우선 <빗자루, 금붕어 되다>의 경우 영화의 소재가 갖는 현실성과 영화를 만들 때의 스타일 적인 면이 굳건하게 공존한다.
김동주(영화감독): 기존의 일반적인 영화의 특징인 이야기, 즉 내러티브를 위주로 한 영화보다는 이미지 중심으로 영화적인 느낌을 살릴 수 있는 스타일 면을 더 고민하고 생각했다. 내가 이 영화를 만들기로 한 결정적인 것은 고시원이라는 공간을 보고 난 후였기 때문이다. 고시원에 대한 이미지를 한 번 만들어보자는 생각에서 떠오르는 영감을 담고 싶었다. 벌집 같이 정형화된 구조라든지 하는 것들. 한국 사회에 매우 많이 있는 고시원이라는 곳에서 너무나 많은 젊은이들과 소외받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오년이나 십년 후에 다시 봤을 때 내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타협하지 않고 내가 좋아하고 구사하고 싶은 스타일대로, 없는 제작비를 쪼개서라도 해보자는 생각으로 출발했다.

김성욱: 이 자리가 동시대성 안에서 같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기회인데, 이응일 감독의 경우, 비디오 세대의 역습이랄까, 비디오적인 소비나 디시갤러리에 대한 언급 등 세대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영화에 접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응일(영화감독): 개봉을 염두에 두거나 영화제에 내려고 한 것이 아니고, 입시용 포트폴리오로 단편을 만들려고 하다가 점점 불어나서 <불청객>이 되었다. 우린 비디오 세대의 끝물이고 DVD로 막 넘어가기 시작하는 끼인 세대라고 할 수 있다. 90년대 디지털 캠코더가 등장하면서 학생 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졌다. 그 중에는 골방 영화가 많았다. 어떡하면 간단하게 집에서 찍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신림동에서 반 지하 자취방에서 같이 살던 형들을 배우로 써서 만든 영화다. 예산의 제약으로 조명도 삼파장 스탠드에 비닐봉지 씌워서 하고, 깜빡거리는 효과는 조연출이 스위치를 껐다 켰다 하는 열악한 환경에서 만들었다. 사람들이 많이 보진 않았지만, 언론에서 생각보다 많이 다뤄줘서 스스로도 놀랐다. 국내에 이런 B급 SF가 드물다 보니까, 이슈화시키기가 좋았다는 생각도 든다.

김성욱: 김종관 감독의 경우, 특정 장르, 즉 멜로 영화를 염두에 둔 부분이 있다. 
김종관(영화감독): 이렇게 모여 있는 자리에 어떤 유대가 있는 것 같다. 모두들 상업적인 영화 시스템 안에서 만들지 않은 영화들을 가지고 개봉을 했고. <혜화,동>을 보면서도 들었던 생각이 동시대에 지나왔던 시간들의 상처를 볼 수 있다는 것이었고, 이에 많은 위로를 받았다. 또한 창작자 입장에서 영화들을 서로 많이 보고 생긴 그런 유대가 느껴졌고, 그런 동료들이 있다는 생각에 행복했다. 영화를 단순화해서 작은 작업으로 하려다보니 처음엔 멜로적인 구성이 편했다. <조금만 더 가까이>는 배우들이 조금 더 유명한 사람들이 되고 시스템이 조금 커지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기존의 작업과 크게 다르진 않았다. 그렇지만 개봉을 하게 되면서 그 전하고는 다른 책임감이 생기더라.

김성욱: <혜화,동>의 제작비는 얼마였나? 그리고 찍을 때 고심한 점이 있다면?
민용근(영화감독): 제작비는 2억 정도다. 시나리오를 쓸 때 어떤 규모의 영화로 만들어지고 어떤 배우로 하자고 정해놓은 게 전혀 없었다. 스텝들에게 미안해하지 않으면서 영화를 찍어야겠다는 생각만 있었다. 그래서 여배우를 이름이 있는 사람을 캐스팅해서 투자를 더 많이 받아보자는 생각도 했다. 어떤 상황이 되면 그 상황에 맞춰 하자는 주의인 것 같다. 운 좋게 영진위와 스튜디오 느림보에서 지원을 받으면서 촬영에 들어갔다. 그 전의 더 열악한 환경의 작업에 비하면 비교적 풍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참여했던 스태프들의 경우 다른 영화들에 비하면 빈곤했던 거다. 한겨울에 촬영해서 고생이 많았는데, 보상이 제대로 안 이뤄지니 미안함이 컸다.

김성욱: 네 분의 영화가 닫힌 세계에서 빠져나오는 느낌이었는데, 정호현 감독은 완전히 다른 세계를 다룬다. 쿠바에서 찍었고 다큐멘터리이며, 개인 작업에서 시작해서 극장에 걸리는 작품이 됐고, TV에서도 소개되면서 연관성들을 만들어냈다.
정호현(영화감독): 처음부터 극장 상영을 생각한 것은 아니었고 공동체 상영 정도를 생각했다. 그러다가 첫 극장 개봉을 하게 됐는데, 사실 극장 시스템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영화라는 게 이런 식으로 개봉되고 관객들과 이런 식으로 소통 되는구나 싶었다. 다큐멘터리의 경우 정치적 이슈나 사회적 성격이 강한 것은 이슈화하기 쉬운데 반해, 사랑이야기나 사적 이야기들은 극장에서 상영된 경우가 매우 적은 것 같다. 앞으로도 물론 상업 다큐멘터리를 만들진 않을 거지만, 그렇다 해도 이번 극장 상영을 계기로 어떤 관객들이 보겠구나 하고 미리 좀 생각해 두고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성욱: 어떤 영화를 만들 때 마이너리티 성향의 특정 관객을 염두에 두는지, 아니면 일반적인 관객들이 이정도면 즐길 수 있다고 보는지 궁금하다.
김동주: 어떤 영화든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반드시 한 사람이라도 생기게 된다고 생각한다. 한 번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영화를 만들었을 때 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조금 씩은 더 생길 수 있다는 생각으로 영화를 만든다.
김성욱: 극장 개봉에 대해 듣고 싶다. 현실적인 문제들을 경험했을 텐데.
김동주: 어느 정도의 틀이 갖춰진 영화라면 지속적으로 국가에서 상영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정착시켜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을 많이 했다. 한국영화에 활력을 불어넣는 일은 거기서 출발해야 하지 않겠냐고 생각한다.

김성욱: 민용근 감독의 경우 '찾아가는 관객과의 대화'라고 해서 적극적으로 관객들과 만나는 자리를 마련했고, 이응일 감독은 퍼포먼스들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김종관 감독은 관조적으로 점잖게 보냈던 것 같은데(웃음).
김종관: 영화는 기본적으로 혼자 보려고 찍진 않고 친구를 찾는 건데, 약간 더 은밀한 방식으로 만들어서 약간 더 은밀한 친구를 사귄다는 느낌이 있다. 주어진 예산에 맞춰서 영화를 찍는 방식들에 지금은 익숙해져 있다. 꾸준하게 보는 사람들의 범위들이 조금씩 조금씩 늘어나는 것이 매우 소중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민용근: <혜화,동> 같은 경우 GV를 하면 관객들이 조금 많이 오시는 편이지만, 극장 측에 양해도 구해야 하니 번거롭기도 하고 쉽진 않다. 그래서 생각한 게 찾아가는 관객과의 대화라고 해서 10명 이상 신청을 하면, 끝나고 같이 차라도 마신다든가, 극장 로비에서 커피라도 마시든가 하는 거다. 남들이 볼 때 극성을 떤 다고 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해야 좀 티가 나는 것 같다. 독립영화의 경우 2~3주 정도 극장에 걸려있어야 관객들에게 회자되고 인지되는 것 같다. 그런 리듬에 맞는 독립영화만의 마케팅 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번에 많이 배웠다.
이응일: 열악한 상황에 뭐라도 하자 싶어서 생각한 게, 우주쇼라든가, 캐릭터의 옷을 입고 나가거나, 만담처럼 이야기를 하거나 하는 거였다. 원천적인 한계가 있는 게 인구가 너무 적은 것 같다. 결국 통일을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웃음) 영진위에서도 저예산 영화는 무료로 DCP를 해주는 상설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본다. 현재는 영진위의 제작지원이나 홍보마케팅 지원제도도 사라진 상황 아닌가.

김성욱: 다큐멘터리 같은 경우는 어떤가? TV에서 상영될 수도 있지만, 극영화와는 다른 어려움이 많을 텐데.
정호현: 작품의 성격이 극장 상영에 적합한지, 아니면 시민단체라든지 하는 곳들에 가서 하는 것이 맞는지 잘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극장 상영이 의미 있는 이유는, 국내에서는 극영화적인 미장센이 없거나 TV 다큐멘터리적인 클리셰가 없으면 작품의 질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편견들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그 편견을 깰 수 있다는 의미와 함께, 여전히 극장에서 이런 영화들이 상영될 수 있고 관객들은 그것을 볼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의미가 있다.

김성욱: 최근 1~2년 사이에 저예산 영화의 성과가 놀라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이 갖는 의미나 미학적인 측면들에서. 좀 더 자신감을 낸다면 영화 전체적인 활력을 낼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든다. 작가 고유의 개성도 있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는 공동성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연합적인 흐름이 큰 힘을 발휘하게 되지 않나.
김종관: 우리가 어떤 면의 내용적으로 공감을 느끼는 부분도 있고, 그런 게 아니더라도 사실은 사슬처럼 묶여있는 관계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 트위터를 좀 하는데 여기에서 영화를 통해 만난 관객들이 있다. 어떤 영화를 본 사람들이 다른 영화들로 전파되어가는 것들을 본다. 그런 게 긍정적인 기운이라 본다. 아쉬운 건, 우리가 만든 영화들의 스태프나 배우들 다 사실은 노개런티로 찍은 거다. 그런데 계속 이렇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좋은 영화들이 많아져서 관객들을 조금씩 늘리는 것도 중요하고, 감독과 마찬가지로 극장들도 투자사도 각자의 분야에서 꾸준히 하면서 브랜드로서 키워지면 작은 영화들의 네트워크를 생성할 수 있기 때문에 좋아질 수 있으리라 본다.
민용근: 영화를 하면서 조금씩 다른 감독님들도 알게 된다. 적극적인 행동이 아니더라도 같은 시대를 살면서 영화를 만든다는 연대가 영화를 만드는 큰 동력이 되는 것 같다. 인디 밴드의 경우 합동 공연 같은 것을 하기에 보다 용이한데, 영화도 이런 연합이 필요하다. 또한 영화만이 아니라, 음악, 문학 미술 등 다른 예술과의 공감대의 지평을 넓히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김동주: 감독들의 성향은 다들 개인적이다. 사실은 그것들을 존중해 줘야 된다. 하지만, 감독들도 결국에는 어느 정도의 프로듀서 마인드를 가져야 된다. 감독들이 스스로 서로 공유하려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면서, 나중에는 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관계가 형성되면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나중에는 자연스러운 하나의 단체나 흐름이 나올 수 있지 않겠나 싶다.

김성욱: 극장을 하는 입장에서도 시대적인 트렌드, 젊은이들의 어떤 특정한 것들에 대해 관객들과의 접점을 만들어나가는 방식의 전략을 짜게 되지만, 동시에 또 흥행 강박이 되진 말자는 생각을 한다. 키아로스타미는 문화 활동이나 예술 활동을 지원하는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영화를 둘러싼 환경에 대한 마인드가 없기 때문에 영화계가 어려움에 빠져있다고 말했었다. 그러므로 영화의 진가를 아는 사람들이 스스로 자립을 해야 한다. 자립에 대한 것이나 지속적인 영화 만들기에 대한 고민이나 모델들이 있다면 마지막으로 듣고 싶다.
정호현: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고 선택한 매체가 영화다. 다큐멘터리에서 가장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만나는 사람들과 발생하는 완전한 현실에서 나타날 수 있는 것에 대한 재미를 느낀다.
이응일: 영화를 업으로 삼는 사람으로서 재미있고 훌륭한 이야기가 뭘까, 영화란 무엇인가, 영화는 어디에 쓸모가 있는가, 늘 고민한다.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자신의 삶에 대한 느낌을 얻어 가게 하는 것. 그게 영화의 기능이고 영화인의 사명이 아닐까 생각한다. 거기에 각자의 전략을 만들어내야 한다.
민용근: 생계적인 전략도 중요하다. 그게 곧 작가적인 전략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하면서 먹고 살 수 있는 것들에 대해 고민이 많이 필요하다. 영화라는 매체가 있을 뿐이지 자기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 무언가를 만드는 건 다 비슷한 것 같다. 꼭 영화에서만 국한 짓지 않고 생활도 놓치지 않는 환경들을 꾸준히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종관: 이야기를 할 때, 항상 나만 보면서 이야기를 하면 주제는 쉽게 메마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나랑 타자의 관계 속에서 나를 찾거나, 다른 세계 안에서 내 안의 것들을 끄집어내서 그 관계들에서 주제를 찾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그리고 영화를 하면서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항상 있다.
김동주: 창작을 할 때 자기만의 색깔을 가진 영화를 만들수록 대중성이나 흥행성이랑 멀어지기 때문에, 먹고사는 문제랑 연관이 늘 된다. 창작의 고통을 알지만, 또한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을 알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영화를 만들 것이다. 다음 작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만든다는 생각이다. 흥행이나 생계를 위해 영화를 선택하지 않고 오로지 하고 싶은 대상으로만 영화를 대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정리: 박영석 시네마테크 관객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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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토크] 이응일 감독의 ‘불청객’

지난 26일 ‘한국영화, 새로운 작가 전략’의 세 번째 손님으로 <불청객>을 연출한 이응일 감독이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았다. 대한민국 SF영화의 신기원을 연 전대미문의 골방백수영화 <불청객> 상영 후 이어진 시네토크 내내 객석은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 현장을 전한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오늘은 방금 보신 영화 <불청객>을 만드신 이응일 감독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누어 보겠다. 이 영화의 제작기간이 5년이라고 들었다.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오래 걸렸을 거라고 생각되는데, 먼저 이 영화의 제작과 관련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이응일(영화감독): 5년 내내 작업을 한 건 아니다. 2006년에 3월에 아이디어가 생각났다. 90년대 중반 디지털캠코더가 처음 등장해서 골방백수영화가 쉽게 많이 만들어졌다. 그때 저는 방에서 같이 살던 형들, 영화동아리 친구들과 같이 워크샵을 하고 있었는데 거기서 아이디어를 구상하게 된 것이다. 기존 백수영화들이 지루하니 스케일을 크게 가려고 우주를 넣어서 컨셉을 잡았다. 그게 봄의 일이고 시나리오를 여름에 써서 9월 말부터 촬영했다. 그 해 겨울까지 쉬운 장면들을 찍고 특수효과가 필요한 스튜디오 컷은 다음해 봄여름에 찍었다. 스튜디오 대여료가 비싸서 파란 천을 남대문에서 끊은 후 학교에 있는 춤추는 스튜디오를 빌려 저렴하게 했다. 후반작업을 들어가야 하는데, 2007년 여름에 돈이 없어서 보류가 되었다. 그래서 홍보영상사업을 2년 정도 했다. 그것까지 포함해서 5년이 된 건데 후반 작업비를 못 벌었다. 돈 한푼 없이 2009년 말이 되었다. 집에서 구박도 심해지고 ‘내가 영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인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난해 1월에 후배가 호통을 치면서 돈 없어도 하라고, 찍어서 영화제에 내라고 했다. 그래서 부모님에게 떼를 써서 차용증서를 쓴 후 돈을 받아서 CG작업을 했다. 턱없이 돈이 부족한 상태일 때 선배들이 100만원 넘게 후원해주셨다. 또 그 후에 개인후원을 1천만원 받았다. 그래서 후반 작업을 1500만원으로 마친 후 부천영화제를 찾아갔다. 그때 블루스크린 작업이 제대로 되지 않았었는데 받아주셨다. 무조건 완성하겠다고 해서 안 되는 걸 접수했다. 욕을 들으면서 상영 전날까지 작업하고 겨우 맞춰 상영하게 되었다. 결국 5년 중에 2년 반 정도는 작업과 관련이 없는 시간이었던 셈이다.

김성욱:
얄라셩 출신으로 알고 있는데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어떻게 했는지. 장편영화를 만든다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이응일: 별 고민 없이 시작했다. 처음 15분 단편 만들려고 했다. 어렵게 생각 안 했다. 개봉 하려는 생각도 전혀 없었다. 사실 영화학교 포트폴리오에 내려고 만들었다. 영화제도 전혀 예상 밖의 일들이다. 눈치 보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썼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하면 누가 좋아할 거야’ 라는 생각도 못했다. 오히려 지금 세대에 문제들이 더욱 심해졌지만 영화를 만들 당시엔 이런 사회문제(젊은 사람들의 숨통을 조이고 뭔가 시급이 낮은 비 정규직 외에는 할 수 없는 시대)가 오려는 무렵이었다. 결국엔 지금 정서에 더 맞아버리게 된 거다. 뚜렷하게 의도하지 않은 게 많다.

김성욱: 원래 본편 시간이 어느 정도 인지?
이응일: 처음 편집엔 75분이 나왔는데 본편만 63분 정도 된 거다.
김성욱: 앞 부분의 인터뷰와 동영상들은 러닝타임을 보완하려는 특성도 있는데 영화를 만든 특정 세대의 느낌이 강하게 느껴진다. 지금은 없지만 예전에 비디오 틀면 나오는 ‘호환마마 보다 위험한 불법비디오’라는 문구나 또 영화시작 할 때 '디시인사이드에 바친다'는 문구 등이 독특하게 섞여서 영화의 분위기를 만드는 거 같은데 비디오세대의 특성이라고 생각되었다.
이응일: 원래 단편을 생각했다. 그런데 시나리오로는 중편이고, 편집하니 60분이 되었다. 그래도 장편치고 짧기 때문에 상영 하기 전에 회의하면서 이걸 어떻게 보완할까 하다가 로드리게스 영화에 나오는 가짜 예고편 같은 것을 집어 넣자고 해서 만든 거다. 그런데 그걸로 허전 한 거 같아서 인터뷰도 만들게 되었다.

김성욱:
저도 <진달래>를 봤다. 90년대 중반에 만든 작품인데.

이응일: 첫 단편이다.
김성욱: 놀라운 건 그때 작업 방식과 지금 영화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웃음) 15년 정도의 시차가 있지만 특이한 유사성이 있다. 그 이후로도 단편 작업을 했는지?
이응일: 단편 3작품을 했는데, 전부다 유튜브에 있다.

김성욱: 마지막에 조악한 CG로 할까 아날로그로 할까 고민하다 최종적으로는 CG로 처리했다고 들었다.
이응일: 아날로그도 상당히 들어있다. 미니어처도 3D로 할까 하다가 미니어처로 했다. 영화의 모든 방식이 짜깁기 하는 식이 많다. 두 개의 미니어처가 있는데, 하나는 국회의사당이고 두 번째가 진식이 집이다. 국회의사당은 조립모형 어린이 교육 시리즈를 사서 연결부분 다듬어 아주 저렴하게 만들었다.

김성욱: 배우들이 진지하게 연기한다(웃음). 이런 영화는 확실히 진지하게 할 필요가 있다. 다들 처음부터 출연을 생각했었는지?
이응일: 프리 프로덕션에선 배우를 쓸까 했는데, 여건이 안되고 해서 포기했다. 그래서 제가 단편영화를 생각 했을 때 아는 형들에게 출연을 부탁했다. 가볍게 승낙 했는데, 이게 점점 불어나니까 형들이 힘들어했다. 그래도 못 하겠다 안 하시고 짬짬이 시간 내서 어렵게 출연하셨다. 그분들의 희생으로 완성할 수 있었다. 실로 엄청난 희생이었다. 지금도 잘 지내고 있다. 연기에 관해서 이야기하자면 연기 경험이 없는 분들 치고 잘 나온 것 같다.

김성욱: 영화를 보면 RGB광선으로 포인트 맨 을 공격하는 장면이 어떤 느낌으로 보면 마치 영화적 환영에 대한 비디오 세대의 역습 같은 느낌도 들었고 파워 레인져나 벡터맨 같은 느낌도 든다. 뉘앙스가 흥미롭다는 생각이 든다.
이응일: 시나리오 단계부터 했던 생각이다. RGB공격은 <우뢰매> 같은 느낌을 넣었다. 그런걸 앞으로도 하고 싶다. 어떻게 하면 포인트맨을 이길까 생각해봤다. 포인트맨은 공간을 초월한 존재니까 육탄전은 어울리지 않고 그럴싸한 액션이 나와야 한다. 그래서 레이저를 생각 하게 되었다.



김성욱: 디시인사이드로 시작해서 에셔, 마그리트로 끝나는데 어떤 부분에 훨씬 감독으로써 많은 이끌림이 있는가?
이응일: 다 좋아한다. 디시인사이드는 보는걸 워낙 좋아해서 한 달에 2~3일을 몰입해서 본다. 디시는 창의력의 보고 인 것 같다. 특히 집단 창의성이 실현되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그곳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가져왔다.

관객1: 두 가지가 궁금해졌다. 첫 번째는 평소에 SF영화를 선호하시는지 그리고 다음 영화도 SF로 하실 건지, 두 번째는 학창시절에 얄라셩에서 무슨 활동하셨는지?
이응일: SF는 어릴 때부터 늘 좋아했다. 여기 허리우드극장에서 <인디아나 존스>, <스타워즈> <E.T>를 본 기억이 난다. 그래서 앞으로도 SF를 하고 싶기는 한데 우리나라에서 만든 게 잘 안 되는 면이 있어서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다. 세미SF를 생각하고 있다 큰 규모의 괴수물을 하고 싶기는 하지만 말이다.  얄라셩 시절에는 주로 16mm필름 등의 촬영을 했다. 그리고 그 시절엔 주로 그냥 학교 다니면서 통기타 치고 놀았다.

김성욱: 그 때 같이 영화 동아리 했던 사람들의 공통적 취향이 감독과 비슷한가?
이응일: 그렇진 않다. 제 취향이 남이 하는 걸 싫어하는 면이 있다. 영화동아리에 모인 친구들이면 주류영화가 싫어서 온다. 그래서 예술영화를 주로 본다. 저희 때는 타르코프스키가 인기였다. 그런데 그 분위기가 또 싫어서 저는 할리우드 영화를 좋아했던 것 같다.

김성욱: 학교를 졸업한지 시간이 꽤 지났는데, 그 기간 동안에 어떤 활동을 했는지? 
이응일: 군대 다녀와서 졸업할 무렵에 뭔가 정신 차려야겠다는 생각을 해서 어머니 권유로 변리사 시험 준비를 했는데 워낙 적성에 안 맞아서 힘들었다. 그래서 제일 재미 있던 게 영화니까 그래서 영화를 한 게 20대 중반이다. 일단 돈이 없으니까 회사 생활을 하는 게 도움이 될 거 같아 1년 회사를 다녔다. 마지막으로 약점은 현장 경혐이 많지가 않다.


관객2: 보는 내내 웃었다. 일단 보는 내내 정말 재미있었다. 재미있기도 하고 짠한 느낌도 들었다. 신선하다고 느낀 건 식물이나 사물에 자막을 넣은 거 다. 그 상황설정이랑 맞아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이응일: 그 부분은 처음 시나리오에도 없었다. 이게 주인공들이 방을 나와서 세상을 인식하는데 세상이 뭐냐 사람의 세상이 아니고 사람이 사는 세상에서 세상 만물로 확장이 되는 효과가 있다. 굳이 말하자면 극영화에서 다큐로 넘어가는 것이다. 시장 씬 이 그 변곡점이다. 그런 것도 있고 자막은 단편인 <진달래>서 시작 했지만, 김춘수의 꽃 같은 시와 동일 한 의도를 가진 거다. 이름을 부름으로써 존재에 대한 의미가 느껴 지는 게 되는 거다. 뒷부분이 저도 참 맘에 든다.

김성욱: 이 영화에 없는 세계관은 뭔가(웃음)? 마지막으로 이런 영화는 개인에게 있어 그리고 감독에게 있어서도 생애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같은 식으로, 혹은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같은 식으로 말이다. 본인에게도 그런 영화가 아니었는지? 이후 어떤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건지, 제작비 회수가 되었는지도 궁금하다. 
이응일: 제작비 회수가 투자가 후원형식이라 상환 의무는 없다. 그러나 회수가 되면 돌려 드리겠다고 했는데 극장수입이 홍보비용을 못 넘어서 돌려드리지 못했다. 현재는 다른 분 작업을 같이 도와 드리고 있다. 봄에 끝나면 이제 어린이 어드벤쳐, 방학특선대작을 만들고 싶다. 어린이들과 학부형의 주머니를 노리는 유쾌한 어린이 영화. 그 안에서 제가 추구하는 날카로운 어떤 것을 지켜가면서 하고 싶다.
김성욱: 상영 전에 하지 못했던 우주쇼는 기회가 되면 꼭 했으면 좋겠다(웃음). 부리나케 와서 이야기 나누느라 수고하셨다. 끝까지 남아 자리 지켜주신 관객 여러분께도 감사 드린다. (정리: 정태형 시네마테크 관객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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