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토크


작가들이 공유하는 공기가 그들 영화의 특


징을 만들어 낸다


이용철 평론가에게 듣는 그가 추천한 ‘Unseen Cinema’

 

이번 친구들 영화제에 처음 친구로 참여한 이용철 평론가는 ‘Unseen Cinema’ 섹션에 포함된, 뛰어난 작품성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쉽게 만나보기 어려웠던 영화 세 편을 추천했다. 그리고 지난 7일과 8일 양일간 그가 선택한 세 편의 영화 <마르케타 라자로바>, <사라고사의 매뉴스크립트>, <마을을 위한 레퀴엠>가 연이어 상영되었고, 8일 저녁 마지막 상영작인 <마을을 위한 레퀴엠> 상영 후 이용철 평론가의 시네토크가 이어졌다. 영화를 선택한 개별적 이유와 각 영화들에 특징에 대해 들을 수 있었던 그의 강연 일부를 옮긴다.


 

이용철(영화평론가): 이번에 유운성 평론가와 함께 Unseen cinema를 맡게 됐다. 이번에 상영하는 작품은 <마르게타 라자로바> <마을을 위한 레퀴엠>, <사라고사의 매뉴스크립트> 이렇게 총 세 편이다. 내일이 추석 연휴날인데 이런날 <마을을 위한 레퀴엠> 같은 영화를 배치한 시네마테크가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웃음) 사실 개인적인 취향은 웨스턴과 느와르에 더 가깝기 때문에 이번에 뽑은 영화는 취향과 상관없는 영화다. 세 작품은 취향에 따라 선택한 게 아니라 개별적인 이유에 따라서 선택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강연의 전반부는 <마르케타 라자로바>, <사라고사의 매뉴스크립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후반부는 데이빗 글래드웰 영화의 특성을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마르케타 라자로바>는 몇 해 전 광주국제영화제에서의 경험을 함께 나누고 싶어서 선택한 영화다. 2004년 광주영화제에서 시네마스코프 시절의 명작들을 상영한 적이 있었는데, 더글라스 서크의 <사랑할 때와 죽을 때>, 니콜라스 레이의 <파티 걸>, 프리츠 랑의 <문플릿>과 같은 영화들을 볼 수 있었다. 또한 꼭 시네마스코프 작품뿐만 아니라 시네마테크를 다니면서 봤던 무르나우의 <파우스트>나 프리츠 랑의 <니벨룽겐> 같은 작품들이 줬던 스크린의 위대함과 거대함을 한 번 더 경험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선택한 작품이 <마르케타 라자로바>.

흔히 체코 영화에 있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감독들은 이리 멘젤, 밀로스 포먼, 얀 네멕 등일 것이다. 프란티세크 블라칠은 서구에서조차도 많이 거론된 감독이 아니었고, 90년대 이후에 조금씩 거론되고 재평가됐다. 왜 블라칠의 영화가 묻혀 있었을까? 아마도 그의 영화가 체코의 뉴웨이브 작품들과 다른 측면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뉴웨이브 작품은 소련이나 공산당의 부패와 같은 현실적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해서 비판을 했다. 반면에 블라칠 감독은 역사적 소재를 무게 있게 다루었다. 젊은 영화의 흐름에서 봤을 때 그의 영화는 구시대적 영화처럼 보였을 것이다. 블라칠이 관심을 가졌던 주제는 억압 받는 자유의 문제다. 이런 것을 시대극에서 표현하는 방식은 종교 문제를 다루며 이데올로기의 도그마를 비판하는 형식으로 드러난다. 블라칠은 그것이 아무리 선의에서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자유와 영혼을 억압한다면 비판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그의 영화의 가장 큰 특색은 정교하게 구성된 이미지에 있다. 다른 영화를 보면 알 수 있을 텐데, 영화가 짧든 길든 한 장면도 허투루 만든 장면이 없다. 블라칠 영화의 이미지를 보면 그가 영화라는 미디어에 접근하는 자세를 볼 수 있다. 그의 이미지에는 이야기를 위해서 소모되는 이미지가 하나도 없다. 그는 인간의 손으로 만든 집과 도구, 그리고 자연을 비출 때 어떤 각도에서 어떤 속도로 보느냐에 따라 미적 외향을 갖춘다는 것을 영화를 통해 증명한다.

다음 추천작은 <사라고사의 매뉴스크립트>. 원래는 이 영화를 추천한 것은 아니었고 페이 모 감독의 1948년 작품인 <작은 마을의 봄>이라는 중국 영화를 추천했었다. 이 영화를 관객들과 함께 보고 싶었던 이유는 신파라는 것에 대해서 같이 생각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일반적인 생각보다 신파라는 것에 훨씬 더 모던한 것이 존재한다고 본다. 그래서 이 영화를 통해 우리가 쉽게 폄하하는 신파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봤으면 했었다. 하지만 이 영화를 상영할 수 없다는 얘기를 듣고 선택한 작품이 <사라고사의 매뉴스크립트>. 조너선 로젠봄이 말했듯이, <사라고사의 매뉴스크립트>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야기의 재미와 연기를 떠나서 스토리텔링하는 방식에 있다. 특히 이 영화를 좋아했던 사람은 제리 가르시아와 루이스 부뉴엘이다. 부뉴엘의 <자유의 환영> <사라고사의 매뉴스크립트>의 영향을 받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두 영화 모두 고야의 그림으로 시작하고 이야기가 뻗어나가는 방식도 유사하다. 물론 말하는 내용은 전혀 다르다. 고전영화 중에 스토리텔링에 있어서 재밌다고 생각하는 영화는 막스 오필스의 <윤무>. 이 영화와 가장 전복적인 형태를 띈 영화가 <자유의 환영>이고, 그사이 어느 지점에 <사라고사의 매뉴스크립트>가 자리하고 있다. <사라고사의 매뉴스크립트>와 매우 유사한 한국 영화가 있는데, 바로 손영성 감독의 <약탈자들>이다. 어쨌든 스토리텔링에 있어서 기발한 방식의 영화라는 측면에서 <사라고사의 매뉴스크립트>를 추천했다.



마지막 추천작은 데이빗 글레드웰의 1975년작 <마을을 위한 레퀴엠>이다. 영국의 정부 지원 하에 제작되던 다큐멘터리가 일정 부분 성공을 이루자 나중엔 각 산업별로 다큐멘터리 지원을 하게 된다. 데이빗 글래드웰은 이 다양한 분야 가운데 교통 산업 분야의 다큐멘터리를 담당하면서 1960년대부터 다큐멘터리 작업을 시작했다. 그는 회화를 전공한 사람으로 그가 주로 맡았던 역할은 편집이다. 그가 편집을 했던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는 린제이 핸더슨 <이프>라는 영화가 있다. 글래드웰이라는 사람이 공공의 선이나 교육을 위한 다큐멘터리에 투신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개인적인 영화는 실험적이고 탐미적이다.

<마을을 위한 레퀴엠>에 대해 영국의 한 비평가는 이 영화가 선언이 아니라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바로 이점이 내가 이 영화를 여러분들과 함께 보고 싶었던 이유다. 보통 영화들은 자기가 고집하는 것에 대해 선언하고 성명서를 발표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마을을 위한 레퀴엠>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영화라는 것이 굳어진 하나의 물질이 아니라 부드러운 유기체라는 사실이다. 이 영화는 다양한 층위의 이야기들을 끌어들이고 있는데, 예를 들면 과거와 현재, 사라진 것 다가오는 것, 침묵과 소음, 탄생과 죽음, 찰나와 기억을 강요하듯이 들이미는 것이 아니라 겹겹이 층을 쌓고 관객이 자연스럽게 그것에 스며들도록 한다. 이를 통해 관객은 감독의 생각에 동의를 할 수도 비판을 할 수도 있다고 본다. 특히 글래드웰의 영화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슬로우모션이다. 그는 모든 영화에서 슬로우모션을 사용하는데 그가 슬로우모션을 자주 사용하는 이유는 그가 다루는 대상과 깊은 관계가 있다. 그가 사용하는 소재들은 항상 사라지고 있는 것들, 곧 잊혀질 것들, 곧 죽을 것들이다. 글래드웰은 그런 것에 깊은 관심을 가진 감독이다. 피사체들은 영화에서뿐만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곧 사라지고 죽을 것들이다. 이것들은 영영 보지 못하게 될 것들인데 글래드웰은 이런 피사체들에 가능한 긴 시간을 부여하고 싶어 한다. 다시 말해 그들에게 시간을 더 줌으로 인해 그들이 가진 시간을 늘려서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이다. 여담이지만 구스 반 산트의 <앨리펀트>도 이와 유사한 측면에서 슬로우모션을 사용한다.

요즘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것들은, 소위 거장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만나지 않고 직접 영화를 서로 보지도 않고도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젊은 감독을 만나 예전에 내가 본 영화들과 당신의 영화가 비슷하다라고 하면 그 젊은 감독은 그 영화를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이것은 단순히 카피했다, 하지 않았다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숨쉬는 공기를 공유하는 것처럼 작가들이 공유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그 사람의 영화들의 특징을 만들어 주는 것 같다.

 

정리: 최혁규(관객에디터) | 사진: 이유정(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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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에 대한 넘치는 애정

 

두 번의 스튜디오 작업은 존 카사베츠가 한 가지 사실을 확인하게 했다. 그는 할리우드 시스템 아래에서 영화를 찍기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스튜디오와 그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고, 그는 절대로 상업영화를 찍지 않기로 결심했다(물론 그 결심도 어쩔 수 없이 바뀌지만). 카사베츠는 할리우드의 역겨움을 <얼굴들>의 도입부에서 드러낸다. 시사실에 모여 앉은 영화 관계자 중 한 명이 “이번엔 뭘 팔 거야?”라고 묻자 상대편 인물이 “돈이죠”라고 대답한다. 이어 옆 인물이 “사실, 이건 아주 좋은 영화예요”라고 말하면 다시 다른 인물이 “상업영화 영역의 <달콤한 인생>이라고나 할까요”라며 너스레를 떤다. 돈의 원칙으로 운영되는 할리우드와 더 넓게는 돈으로 지배되는 미국사회에 대한 비판은 카사베츠 영화에 심심치 않게 나오는 풍경이다. <차이니즈 부키의 죽음>에서 한 갱스터는 마르크스를 인용해 “돈은 대중의 아편이야”라고 말한다. <얼굴들>에서 회사원들이 창녀 위에 군림하고 협박하기 위한 카드로 들이미는 건 여지없이 돈이다. 1965년, 카사베츠는 만 달러를 가지고 <얼굴들>의 촬영을 시작했고, 삼 년 동안 다섯 편의 영화에 출연해 번 이십만 달러를 들여 작품을 완성했다. 그와 장모의 집이 영화의 주요 로케이션이었으며, 그의 집 차고가 영화의 편집실이었다.

 

카사베츠가 ‘<얼굴들>에 대한 소개’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원래 연극무대용이던 <얼굴들>의 초고를 쓸 당시 카사베츠는 자기 삶에 고통을 안겨준 사람들을 떠올렸다고 한다. 그렇게 나온 시나리오가 미국 중산층과 사회 전반에 대한 비판과 공포로 물든 건 당연한 일이다. 주인공인 포스터 부부와 그 외의 인물들은 교외에 살며 편협한 생각을 품은 중산층의 전형으로 제시된다. 서로 진실한 대화를 나누지 못하고 지내던 그들은 어느 날 술에 취해 가면 아래 얼굴을 하나씩 드러낸다. 누군가는 거침없이 행동하고, 누군가는 야만적으로 변하고, 누군가는 본모습을 들킨 것에 놀라고, 누군가는 짧은 자유를 만끽하려 애쓴다. 밤은 끝나지 않을 듯이 길게 이어지며, 몸에 맞지 않는 낯선 악몽에서 깨어나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얼굴들>은 배우와 카메라가 연주하는 재즈에 다름 아니다.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배우들은 감정의 출렁임을 폭포수처럼 쏟아내고, 성난 말처럼 널뛰는 카메라는 배우의 얼굴과 신체의 조각 위를 더듬는다. 그러므로 얌전히 앉아 인물과 이야기를 분석할 생각은 떨쳐버려야 한다. 영화와 함께 달리기가 우선 급하기 때문이다. 다음날 아침, 추해빠진 중년 부부는 각각 젊은 창녀와 제비족과 밤을 보낸 뒤 자신과 상대방의 벌거벗은 얼굴과 마주한다. 마침내 마리아가 남편 리처드에게 “내 삶이 싫어. 그냥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라고 말하는 순간, 카사베츠는 이제 당신의 이야기가 시작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비극은 없다. 악몽에서 깨어났으니 현실을 살 일만 남았다. 카사베츠는 현대사회를 비판하면서도 인물에 대한 애정을 거둔 적이 없다. 카사베츠는 아무리 나쁜 인물도 미워할 수 없게 그린다. 그는 삶에 있어 ‘애정’만큼 소중한 게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이다. (이용철 /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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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7일, 몬테 헬만의 <자유의 이차선> 상영 후, 이용철 영화평론가의 시네토크가 이어졌다. <자유의 이처선>이 당시 뉴아메리칸시네마와 공명하는 지점들을 통해 몬테 헬만이라는 낯선 이름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던 이 날의 강연을 옮긴다.

 

 

이용철(영화평론가): 몬테 헬만은 1932년 뉴욕에서 태어났고, 어릴 때 캘리포니아로 이사를 가서 그곳에서 성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처음 시작했던 것은 연극이었고, 틈틈이 TV나 영화의 편집 등을 하면서 돈을 벌었다. 그가 영화를 시작한 것은 로저 코만의 역할이 컸다. 당시 로저 코만과 젊은 감독들의 만남은 당연한 일이었던 것 같다. 이전 세대의 감독들과 다르게, 학교에서 영화를 배운 이 젊은이들은 학교를 나와서 정작 영화를 만들 방법이 없었다. 그 때 코만은 아주 적절한, 구세주 같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코만이 항상 구세주였던 것만은 아니었다. 코만의 입장에서는 젊은 사람들의 싼 노동력을 제공 받을 수 있고, 그가 하라는 대로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코만과 젊은 감독들의 만남은 오래 지속되진 않았다. 게다가 <이지 라이더>라는, 무명의 젊은이들이 만든 이상한 영화가 미국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둔 이후, 스튜디오들은 젊은 감독들을 찾는데 혈안이 되었었다. 그래서 젊은 감독들은 쉽게 코만을 떠났는데, 헬만의 경우는 그렇지가 않았다. 헬만은 괴수영화로 데뷔했다. 그 이후 대부분의 영화들의 제작을 맡은 것은 코만이었고, 그는 헬만에게 다른 영화의 편집이나 촬영 같은 잡일도 많이 시켰다. 그렇다보니 헬만은 코만이라는 존재를 긴 세월동안 벗어나질 못했다. 헬만이 공식적으로 감독으로 올라가있는 영화는 열 편 정도밖에 안 된다. 하지만 헬만이 관여했던 영화는 50여 편 정도가 된다고 한다. 하지만 크레딧에서는 헬만의 이름을 지워버리는 바람에 그로서는 아주 이상한 역사를 지니게 되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아주 소수의 지지자들만이 헬만의 가치를 인정하고 있다. 이렇게 된 데에는 헬만 작품 자체에도 문제가 있지 않나 생각된다. 당시 뉴아메리칸시네마의 영화들과는 달리, 헬만은 제작자들이 원하는 대로 영화를 찍다보니까 그야말로 싸구려 장르영화들만 찍게 되었다. 헬만 영화를 대표하는 장르가 있다면 서부극과 서부극을 변주한 것들인데, 이 역시도 헬만이 원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헬만의 서부극은 독특하다. 헬만의 서부극은 당시 미국인들의 불안을 다뤘다고 해서 실존적 웨스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의 영화에서 보통의 서부극에서 보이는 공동체나 이상향을 향해 떠나는 카우보이 같은 것은 없다. 그냥 서부를 떠도는 총잡이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헬만의 서부극에 나오는 인물들은 당시 뉴아메리칸시네마 영화의 인물들과 비슷한 면이 있다. <자유의 이차선>은 헬만의 영화에서 가장 잘 알려진 영화인데, 오늘 보시고 만약 헬만의 영화에 관심이 생기신다면 <복수의 총성>이나 <바람 속의 질주>같은 헬만의 서부극들을 찾아보셔도 좋을 것 같다. 그런 영화들은 현재 외국에서 재평가되고 있는 작품들이기도 하다.

 

동부와 서부의 사이에서

<자유의 이차선>는 당시에는 저평가되고,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금에 와서는 상당히 인정받는 지위에 올라와있다. 뉴아메리칸시네마의 분위기를 전하는 다른 영화들과 함께 <자유의 이차선>을 비교해보시라는 의미에서 몇몇 이미지들을 준비했다. 제리 샤츠버그의 <허수아비>에서 진 해크만과 알 파치노는 서부에서 만난다. 이 영화에서 서부의 공간은 황량하고 바람만 부는 저 텅 빈 공간이다. 두 사람이 함께 피츠버그에 가는 여정을 다룬 영화이다. 밥 라펠슨의 <마지막 지령>의 을씨년스러운 풍경은 <허수아비>에서와 같은 황야의 황량함 함께 뉴아메리칸시네마를 대표하는 풍경들이다.

미국영화의 70년대는 뉴욕이라는 도시가 할리우드를 삼켜버린 시기로 기록된다. 이 당시에 영화들이 주로 그렸던 것은 서부에서 동부로 다시 돌아가는 과정을 그린 것이라고 생각된다. 왜 서부에서 동부로 가는 것일까. 서부는 할리우드의 공간, 꿈속의 공간이다. 하지만 이 당시 젊은 감독들이 꿈꿨던 것은 할리우드와는 정반대의 세계였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동부로 가는 길을 걷게 된다. 동쪽으로 간다는 것은 할리우드가 꿈꿔왔던 것에서 현실로 이동하는 것을 의미하는 듯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동부에 바로 도착하지 못한다. <자유의 이차선>에서도 워싱턴에 도착하지 못하면서 끝이 난다. 왜 동부로 가는가라는 질문과 함께 그들은 왜 도착하지 못하는가라는 두 번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 인물들은 동부와 서부의 사이의 어떤 공간에 사로잡혀 있고, 벗어나오지 못하는 느낌을 준다. 그 공간은 꿈의 공간도 아니고, 현실의 공간도 아니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마치 연옥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느낌을 받는다. 그곳은 황량하고, 쓸쓸하고, 차가운 곳이다. 인물들은 자신들이 돌아가야 할 곳이 현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정작 그것을 주저하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알고는 있지만 두려워하는 것이다.

<허수아비>에서 피츠버그로 가는 길에는 산업지대가 존재한다. 인물들은 그 공간을 바라만 볼 뿐 멈춰 서서 그곳에서 일을 하진 않는다. <이지 라이더>의 한 장면에서도 길옆의 공장지대가 존재하지만 인물들은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산업지대가 계속 나옴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을 이쪽에 귀속시키지 않는다. <자유의 이차선>의 인물들 역시 그냥 앞을 보고 달리고만 있을 뿐이다. 뉴아메리칸시네마의 특징 중의 하나는 영화를 끌어가는 것이 플롯이 아니라 캐릭터라는 점에 있다. 인물만이 주어진 상태에서 그 인물이 영화를 계속 이끌어간다. 그들에게는 있어 공통점은 하나다. 현실 거부한다는 것이다. 할리우드 영화의 근간은 가족이다. 그렇지만 뉴아메리칸시네마의 인물들에게 가족은 자신을 구속하는 존재이고, 직업은 자신들을 하나의 부품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특정 직업을 오래 유지하지 않으며, 함께 길 위에 있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과 가족을 구성하지 않는다. <자유의 이차선> 역시 마찬가지다. 심지어 이들에게는 이름도 없다. 이름이 주는 억압, 구속까지도 거부한다. 헬만은 이들에게 이름조차 주고 싶지 않았으며, 그만큼 자유로운 인물들이라고 말한다.

이런 영화들의 마지막 장면의 살펴보면 <마지막 지령>에서, 결국 꼬마 해군을 감옥에 이송한 후 두 사람은 돌아가지만,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는 알 수 없다. <이지 라이더>의 유명한 마지막 장면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두 남자는 총에 맞아 죽고, 오토바이는 불에 탄 채 부감 쇼트로 멀리 길을 보여주며 끝난다. <추억의 전주곡>의 마지막 장면에서, 잭 니콜슨은 여자친구와 차를 타고 집으로 가던 길이었는데, 결룰 여자는 혼자 남겨지고, 잭 니콜슨은 트럭을 타고 떠나버린다. 헬만의 <복수의 총성>에서는 복수는 끝이 났지만, 잭 니콜슨이라는 총잡이는 서부에 둥그러니 남겨진다. 그가 이제 뭘 해야 할지는 그 자신도, 우리도 알 수가 없다.

 

실존적 의미의 추구

뉴아메리칸시네마는 60년대의 사회변혁운동과 맥을 같이 한다. 대중적인 영역에서 집합적으로 영화가 실존의 의미를 다룬 것은 아마 뉴아메리칸시네마 세대가 최초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이전의 할리우드가 보편적인 선을 추구했다면 새로운 할리우드는 나 자신의 문제와 그에 맞는 답을 구하려고 했다. <자유의 이차선>에서 지티오가 드라이버에게 자기 개인사를 말하려 하자 드라이버는 바로 말을 끊는다. 나는 관심이 없고, 그건 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보편적이거나 추상적인 것은 이들의 관심이 아니다. 그들에게 소중한 것은 내 실존과 관련된 것이다. 그러기에 그들은 고독하고 극복하기 어려운 비극성 위에 존재한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헬만이 연극 무대에 있을 때 올렸던 작품이기도 하다. <고도를 기다리며>의 두 인물이 말하는 것과 기다리는 것으로 존재한다면, 헬만 영화에서 인물이 존재하는 것은 이동을 통해서이다. 그들은 하나의 공간에 머물지 않고, 계속 이동을 한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이동에 끝이 없다는 것이다. 헬만의 영화에서 끝에 마지막 지점에 도달하는 인물은 없다. 애초의 목적지 뿐 만 아니라 어떤 곳에도 도달하지 못한다. 헬만은 어떤 의미에서, 욕망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말하는 것 같다. 현대사회는 어떤 목적을 쟁취하는 데에 의미를 둔다. 어떤 현실적인 목표를 추구하는 게 현대사회인 셈이다. 영화도 마찬가지로 욕망을 재생산한다. 이전에 나왔던 욕망정도로 안되니까 더 큰 욕망을 목표로 하게 된다. 이는 현대사회가 강박적으로 추구하는 것이다. 헬만의 영화는 욕망을 도구로 전락한 현대인에 대한 개념에 저항하는 것처럼 보인다. <자유의 이차선>의 마지막 장면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나올 수 있다. 헬만은 그 이미지 자체에 집중하기를 원했던 것 같다. 소리가 상당히 작아지고 속도가 두 배로 느려진다. 그리고는 원래 그 자리에 ‘The End' 같은 글자가 등장해야할 순간에 필름이 불에 타 버린다. 헬만은 죽음이 우리를 찾아오기 전에 마지막 지점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정리: 장지혜 관객에디터 사진: 최미연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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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저씨>(1958)는 한 도시 속의 두 도시 이야기다. 윌로 씨가 살고 있는 쪽에선 담쟁이덩굴과 이끼가 감싸 안은 집, 떠돌이 개들이 쓰레기통을 뒤지는 거리, 인간의 손때가 묻은 담벼락, 마부가 마차를 끄는 새벽길을 볼 수 있다. 그곳엔 시장이 있고, 사람들의 대화가 있다. 상인은 할머니가 알아서 배추를 가져가도록 놔두고, 토마토를 떨어트린 소녀는 몰래 도망가며, 윌로 씨의 가방에 든 생선이 가판대 아래 앉은 개의 성질을 건드리는 그런 곳이다. 그들은 살기 위해 산다. 윌로 씨의 처남 가족이 지내는 쪽의 풍경은 완전히 다르다. 회색 빛 건물이 줄지어 섰고, 검은 아스팔트가 각 구역을 뚜렷이 나눈다. 공장장인 처남이 출근하면 웃으며 잡담을 나누던 직원들이 열심히 일하는 척한다. 그곳의 사람들은 효율성과 공간과 일과 시간에 맞춰 산다. 윌로 씨의 집과 처남 가족이 사는 집의 모습은 더 판이하다. 벽과 계단과 창문과 빨랫감 등이 모여 번잡하면서도 묘한 조화를 이룬 곳이 윌로 씨의 집이라면, 처남의 집은 현대미술품과 갖가지 기구를 갖춰 모던함을 뽐내는 초현대식 저택이다. 자크 타티가 세상 사람의 삶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이리도 단순하다. 구태여 어렵게 말할 필요가 없다는 식이다.

<나의 아저씨>는 <윌로 씨의 휴가>(1953)와 <플레이타임>(1967) 사이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단지 사이에 놓인 작품일 뿐만 아니라, 자연스럽게 앞뒤 작품을 연결하기도 한다. <나의 아저씨>는 바닷가 마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인 <윌로 씨의 휴가>와 번잡한 도시를 배경으로 한 <플레이타임>의 완충지대 역할을 맡는다. <윌로 씨의 휴가>에 처음 등장해 슬랩스틱의 전형을 선보인 윌로 씨 캐릭터는 <나의 아저씨>에서 변화를 맞이한다. 단편영화부터 이어온 아크로바트 스타일은 상당 부분 희석되고, 대신 타티는 우아하고 정교한 코미디를 구사한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변하지 않는 게 있다. 바로 ‘일상의 코미디’다. 타티는 “윌로 씨는 거리에서 만날 수 있는 남자다. 무대의 인물이 아닌 거다. 그는 자신이 우습다는 걸 모른다.”라고 말했다. 대사를 배제한 타티의 슬랩스틱이 옛 무성영화와 차별화되는 지점은 거기다. 그는 찰리 채플린이나 버스터 키튼처럼 화면을 장악하지 않으며, 막스 브라더스처럼 현실의 벽을 뛰어넘는 법도 없다. 윌로 씨의 이야기는 일상의 슬랩스틱에 바탕을 둔다. 보는 사람이 혀를 내두를 만한 게 아니라 “맞아, 저럴 수 있어”라고 동감하며 미소 짓는 대상인 것이다. 카메라가 언제나 적당한 거리를 두고 윌로 씨와 그의 주변을 바라보기만 하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폴리 카엘이 언급했듯, 윌로 씨가 행하는 육체의 코미디는 웃음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녀의 말을 확인하려면 <나의 아저씨>의 초입을 보는 것으로 족하다. 귀가한 윌로 씨가 창문에 비치는 햇살을 조절하는 중이다. 얼핏 그가 창문을 적당히 열어놓으려고 애쓰는 것처럼 보이지만, 카메라의 위치가 바뀌면 건너편 집 새장의 새에게 마음을 베풀고 있음이 밝혀진다. 그는 자기 집 창으로 비치는 햇살을 새와 함께 나누고 싶은 것이다. 타티는 인간미를 희구한다. 그의 영화가 무성영화의 성격을 고수하는 것도 이미지를 전면에 드러내려는 의도라기보다 마음의 소중함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윌로 씨의 휴가>의 한 장면에서 남자가 읽는 신문 기사에는 ‘자본주의는 너무 많은 말로 이루어져 있다’라는 문구가 나온다. 타티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타티가 현대사회를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건 아니다. 기실 <나의 아저씨>는 아름다운 공동체의 가치를 해체하는 현대사회에 던지는 일갈이지만, 타티는 현대사회의 속도와 번잡함과 번지르르함을 무턱대고 비판할 마음이 없다. 오히려 소란의 일인자는 윌로 씨 자신이며, 타티는 혼란스러운 상황을 버티며 사는 사람들을 지긋한 여유로 대한다. 그러므로 그의 마음을 잘 알아주는 존재는 아이와 거리의 강아지들이다. 아이는 윌로 씨의 흉내를 곧잘 내며, 강아지들이 언제나 그의 뒤를 쫓는다. 타티의 영화를 통과하려면 때 묻지 않은 마음이 요구된다. <나의 아저씨>는 구역을 벗어났던 떠돌이 개들이 다시 윌로 씨의 세계로 돌아오면서 끝난다. 두 세계를 구분 짓는 건 허술하게 무너져 내린 벽돌담이다. 두 공간 사이를 오가기란 그렇게 쉽다. 우리는 그 쉬운 길을 건너기는커녕 한쪽만 향하며 산다.

글/이용철(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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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가 거대 에픽에 현혹되어 있을 당시, 하워드 혹스도 왕과 왕비와 유사 역사가 뒤섞인 이야기에 도전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이자 혹스의 친구인 윌리엄 포크너를 비롯해 수많은 혹스 사람들이 동원됐고, 이집트 로케이션을 감행한 영화엔 막대한 물적 자원이 투입됐으며, 만 명 가까운 엑스트라가 출연한 어마어마한 장면까지 연출됐다. 그러나 장르영화를 주물러온 혹스라 한들 모든 장르의 걸작을 만들 수는 없었다. <파라오의 땅>은 흥행에 실패한데다 평단의 혹평까지 들었다. 데뷔 이후 1년 이상 쉰 적이 없던 혹스가 4년이란 긴 시간을 할리우드와 멀리 떨어져 지내야 했던 이유는 그러하다. 유럽, 그 중에서도 프랑스 평단들의 애정 공세로 그나마 마음을 달랜 혹스는 1958년 봄에 드디어 애리조나의 촬영 현장으로 복귀한다. 그가 예상 밖으로 서부영화를 선택하자, 코미디나 액션영화를 기대한 워너 측은 당황했다. 혹스가 서부영화를 선택하게 된 데는 TV의 영향이 컸다. 유럽에서 돌아온 혹스는 그 사이에 TV가 미국인들 생활의 중심에 자리 잡았음을 알게 되었고, 유심히 지켜본 결과 그들이 서부극을 즐겨 본다는 걸 파악했다. 마침내 잭 워너가 혹스의 의견에 동의함에 따라 <리오 브라보>에 착수할 때에도 그의 불안감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며칠이 더 흐른 뒤에야 혹스는 현장에서의 자신감을 회복했다고 전해진다.

<리오 브라보>는, 몇 편의 서부영화에 거부감을 품은 혹스가 그러한 영화에 대응한 결과물이다. 프레드 진네만의 <하이 눈>(1952)과 델머 데이브스의 <유마행 3:10분 열차>(1957)는 인물의 심리와 영웅의 변화를 심도 깊게 그려 향후 서부영화의 방향 짓기에 큰 역할을 해낸 작품이다. 그러나 전통적인 서부 영웅을 예찬해온 사람들은 두 영화의 주인공에 거부감을 느꼈다. <하이 눈>에서 여주인공 ‘에이미’는 갓 결혼한 상대인 ‘윌 케인’에게 “영웅이 되려고 애쓰지 말아요. 나 때문에 그럴 필요는 없어요”라고 말한다. 이에 대한 윌의 대답 - “난 영웅이 되려는 게 아니오. 내가 좋아서 이런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미친 거요” - 은 의외의 것이다. 그리고 윌은 그것도 모자라 영화 내내 자신을 도와줄 사람을 구하러 돌아다닌다. <하이 눈>은 주인공을, 도움이 필요한 불쌍한 영웅으로 그리고 있다. 그러한 행위를 구걸이라고 판단한 혹스가 두 영화를 용납하지 않은 건 당연한 일이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하이 눈>이 가식적이어서 싫다. 그 주인공은 프로페셔널이 아니다”라고 대놓고 말했다. 영웅은 아마추어의 도움을 오히려 거절해야 하며, 오직 프로페셔널과 함께 자신의 일을 수행해야만 한다, 고 혹스는 생각했다. 그러므로 <리오 브라보>를 읽는 데 가장 중요한 신은, 도와주겠다고 제안하는 평범한 친구의 선의를 주인공 챈스가 시원하게 거절하는 부분이다. 안소니 만이 <서부의 사나이>(1958)에서 게리 쿠퍼를 다시 불러내 악당과 당당히 맞서는 인물을 창조함으로써 영웅을 되살렸다면, 혹스는 <하이 눈>과 유사한 소재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시킴으로써 영웅의 진정한 자세를 재확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59년이란 격변의 시간과 전통 서부극인 <리오 브라보> 사이엔 결코 작지 않은 틈이 자리한다. 그 해, 프랑스에선 고다르가 <네 멋대로 해라>를 발표했고, 미국에선 존 카사베츠가 <그림자>를 내놓았다. 영화가 일대 변혁의 시기에 돌입할 즈음, 서부영화 또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 있었다. 서부극의 장인 존 포드의 사정도 다르지 않아서, <수색자>(1956)로 정점을 찍은 그조차 몇 년 후엔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1962)를 연출함으로써 서부극에 작별을 고할 터였다. 그런 시점에 혹스는 전통 서부극의 세계로 재진입하기로 결정했다. 왜 그랬을까? ‘웨스턴 백과’의 저자 허브 페이건은 <리오 브라보>를 ‘악에 맞선 선을 그린 서부극의 거의 완벽한 예’라고 표현했다. <하이 눈>의 결말에서 주인공 ‘케인’이 아무도 도움을 주지 않았던 마을을 버리고 떠나는 것과 반대로, <리오 브라보>의 ‘챈스’는 프로페셔널과 영웅으로서의 자아와 공동의 선의 가치를 재확인한다. 인간 본연의 순수한 감정을 사랑했기에 혹스는 장르를 의심하거나 뒤틀린 인물의 지옥을 그리기보다 선을 지키려는 자유로운 영혼의 인물과 함께하기를 원했다. 그리고 선이 승리함으로써 정의가 성취된다고 보았다. 이를 위해 주변상황에 연연하지 않고, 여유가 넘치고, 우정을 간직하고, 자신감과 정의감에 찬 인물을, 혹스는 추구했다. 프로정신과 자부심을 지닌 반면 전통적이고, 그러면서도 사회의 인습에 저항하는 그들이 어찌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겠나. 그런 까닭에 혹스의 서부극은 호탕하고 유머가 흐르며, 종래엔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는 게 특징이다. 단적인 예로, 존 웨인은 혹스의 웨스턴에서 더 많은 미소를 짓는다. 사실 포드의 서부극에서 간혹 이상화되고 신경질적이며 경직되어 있는, 그래서 아메리칸 히어로의 피곤함에 지친 듯 보이는 웨인은 혹스의 서부극으로 이동할 때마다 훨씬 경쾌한 인물로 탈바꿈한다. 물론 혹스의 인물들이 시작부터 완벽한 프로페셔널로 행세하는 건 아니다. 난관을 극복하고, 인간적인 결점을 보완하며, 서로 협조하는 과정을 거쳐 각 인물들은 성숙한 프로페셔널로 거듭 태어난다. 혹스의 첫 서부극인 <레드 리버>에서 그랬고, 변형된 서부극인 <빅 스카이>에서도 그랬듯이, <리오 브라보>는 프로페셔널과 영웅이 일체가 되는 지점을 지향하는 영화다. 실연의 고통과 알코올 중독을 딛고 주인공의 동반자로 성장하는 <리오 브라보>의 ‘듀드’는 혹스식 프로페셔널의 대표적 인물이다. 혹스가 꿈꾼 프로페셔널의 원형이 <천사만이 날개를 가졌다>(1939)라면, <리오 브라보>는 혹스가 평생 희구했던 가치를 꽃피운 작품이라 하겠다.


후반부의 클라이맥스에 도달하기 전까지, <리오 브라보>의 대다수 장면은 설정 상 텍사스 주와 멕시코 사이에 위치한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한정된 공간 내에서 벌어지는 포위의 드라마이기에 혹시 빡빡하게 직조된 구성을 예상했다면, 틀렸다. 혹스는 긴박한 전개를 보여주려고 애쓰지 않거니와 유별난 스타일을 뒤쫓지도 않는다. 어느덧 익숙해진 존 웨인의 걸음걸이처럼, 언제나 눈높이에 맞춘 카메라는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위치에 머문다. 꼭 맞는 때에 꼭 맞는 곳에서 꼭 봐야 할 것을 보여주는 게 <리오 브라보>의 스타일이다. 그래서 화려하지 않고 단순하지만, 거기엔 고전적인 우아함이 빛난다. 당당하고 서두르지 않기에 <리오 브라보>의 전개 속도는 오히려 느린 편이다. <리오 브라보>는 극중 주요 지점인 보안관 사무실, 호텔, 초소 사이를 오가는 인물들의 행동으로 구성된 영화다. 간간이 몇 개의 중요한 액션 신이 삽입되어 있으나, 혹스는 그 밖의 장면을 코미디와 로맨스 (그리고 뮤지컬) 등으로 채워놓았다. 남녀 주인공의 로맨스 신에서 <소유와 무소유>를 재연하고, 딘 마틴과 리키 넬슨의 인기를 살려 기이할 정도로 긴 노래 장면을 끼워 넣는 등, 혹스는 자신의 장기를 아끼지 않고 선보였다. <리오 브라보> 속에서 발견되는 서너 가지 장르의 영화는, 서너 편의 TV쇼를 동시에 안으려는 혹스의 의도를 따른 것이기도 하다. <리오 브라보>가 혹스의 최고 걸작일까? 모르겠다. <리오 브라보>가 최고의 서부극일까? 역시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리오 브라보>가 재미로 치면 으뜸가는 서부극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영화를 재미있어 하는지 알고 있던 혹스는 아는 바대로 <리오 브라보>를 만들었으며, 그의 판단은 옳았다. <리오 브라보>는 엄청난 흥행을 기록했고, 지금도 가장 사랑받는 서부극으로 손꼽힌다. (개봉 당시 평론가들만 이 영화를 과소평가했을 뿐이다) 진실로 즐겁고 재미있는 영화는 구식의 때를 타지 않는 법이다. (이용철 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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