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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8.02 장 뤽 고다르의 '카르멘이란 이름'
  2. 2010.02.12 <마더>의 영화연출에 대하여


1983년은 카르멘의 전성시대였다. 프란체스코 로지, 카를로스 사우라, 피터 브룩이 마치 경연이라도 하듯이 카르멘을 영화로 만들었던 것은 당시 비제의 오페라가 저작권 소멸상태가 됐기 때문이었다. 고다르 또한 작업에 착수했다. 다른 작가들과 달리 그는 비제의 오페라를 느슨하게 차용만 했을 뿐 그 유명한 음악을 쓸 생각이 없었다. 오토 프레민저의 <카르멘 존스>(1954)처럼 이야기를 현대로 옮겨왔고, 처음엔 이자벨 아자니를 주인공으로 염두에 두었다. 아자니의 바쁜 일정 탓에 당시 신인이었던 마루츠카 데트메르스가 최종적으로 카르멘 역에 캐스팅되었다(그녀는 국내에는 <한나의 전쟁>(1989)으로 잘 알려진 배우다). 고다르의 계획은 급진적이었다. 그는 음악을 따라가는 이야기, 혹은 음악이 이야기의 전체가 되는 영화를 구상했다. 카르멘은 음악 없이 존재할 수 없고, 음악이 카르멘의 역사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비제의 음악을 대신한 것은 엉뚱하게도 베토벤의 현악 4중주곡이다. 고다르는 비제의 음악이 바다와 밀접하게 연결된 지중해의 음악이라 여겼고, 자신에게는 그 바다가 브르타뉴의 해변에서 들었던 베토벤의 현악 4중주와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결합은 작위적인 것처럼 보일수도 있겠지만, 사실 1980년대 고다르의 성과중의 하나는 독창적인 사운드 몽타주를 고안하는 것이었다. 다이얼로그, 모놀로그, 음악, 효과음, 소음 등의 여러 가지 소리들을 과격하게 콜라주하는 것인데, 이는 나중에 <영화사>(1998)라는 작품에서 사운드의 거대한 리믹스 실험으로 만개한다.


이 영화는 사실상 내러티브나 주제와는 하등의 상관없는 서로 다른 두 가지 사건과 두 공간이 밧줄의 매듭처럼 연결되어 있다. 그 하나가 이야기의 층위를 그나마 가늠할 수 있는 카르멘을 둘러싼 이야기이다. 다른 하나는 음악가들이 베토벤 현악 4중주곡을 연주하는 장면들인데, 사실 연주장소가 어디인지 조차 알 수 없다. 게다가 베토벤의 음악은 거의 맥락 없이 몇 번이나 흘러나오다 끊어지는 것을 반복한다. 소리의 페이드인과 페이드아웃은 이미지와 불협화음을 만들고 오페라의 음악과 달리 이러한 음악은 극적인 상황과 필연적인 연결점이 없다. 인물과 그들의 상황을 설명해주는 역할도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은행 강도 장면에서 알 수 있듯이 음악의 진행과 강탈 시퀀스 간에는 기묘한 결합의 원리가 숨어있다(고다르는 배우의 연기지도를 하면서 언제나 ‘음악을 들으면 당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 것이다’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이 영화에는 다양한 소리들, 특히 타이프를 치는 소리, 인간의 몸이 사물에 부딪혀 발생하는 소리, 다양한 소음들이 음악 이상의 빈도로 영화에 출몰한다. ‘이것은 정당한 이미지가 아니다, 단지 이미지일 뿐이다’라 말하는 고다르에게 소리의 레벨에도 서열은 없고 중요한 취급을 받아야만 하는 중심 소리란 없다. 모든 소리는 이미지와 더불어 동등한 권리로 작품 내부에 삽입되어야만 한다. 게다가 이러한 소리들은 불협화음이나 변박자로 하모니와 리듬이 깨져 있는데, 그런 점에서 이미지와 소리의 배치의 중심은 비어 있다. 이는 영화의 제목이 상기시키듯이 ‘이름 이전에 무엇이 존재 하는가’라는 고다르의 질문과도 연결된다. 이름이 주어지기 전의 사물의 모습, 혹은 카르멘이라는 여성의 위대한 신화가 주어지기 전에 여자와 남자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를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 영화의 마지막 대사는 장 지로두의 ‘일렉트라’에서 빌려온 말인데, 그건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워뮤직>(2004)에서 고다르가 했던 말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영화는 빛으로 향해 그 빛으로 우리의 어둠을 비추는 것이다. 즉, 우리의 음악이다.

글/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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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 시네클럽 현장중계

이번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부대행사로 3차례에 걸쳐 준비한 시네클럽은 모두 성황리에 마감되었고, 그 마지막 주자로는 봉준호 감독이 떴다. 2월 5일 봉 감독과의 만남의 장에서 그는 전날까지 <설국열차>의 시나리오를 쓰다 왔지만 항상 시나리오 작업은 어렵다고 말했다. <마더>의 주요 장면들을 직접 보여주면서 섬세한 말솜씨로 <마더>의 연출과정을 들려준 봉준호 감독과의 만남. 순수한 열정에 가득한 강연으로 참가자들을 이미지에 대한 매혹과 열광 속으로 빠져들게 했던 그 현장을 전한다.


봉준호(영화감독):
저는 영화를 많이 찍은 거장도 아니기 때문에 영화에 대한 연출론이 딱히 없고, 영화에 대한 일반론을 말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다. 그래서 <마더>라는 영화를 가지고 연출에서의 다양한 시행착오를 포함해서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경험담을 말씀드리겠다. <마더>는 2004년도에 김혜자 선생님 때문에 구상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론 머릿속에 생각한 이미지를 찍어서 손에 넣고 싶은 충동이나 욕망 때문에 영화작업을 하는 것 같다. <마더>는 구상에서 완성까지 5년이 걸렸는데, 작업과정이 여러모로 힘들었지만 이를 돌파해 낼 수 있었던 힘은 바로 갖고 싶은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의 핵심은 이미지다. 그 밑으로 감자뿌리가 주렁주렁 달리듯이 스토리와 캐릭터들이 만들어지는 거다. 영화를 분석할 때 이미지의 풍부한 뉘앙스나 감성, 말로 설명하기 힘든 감흥이나 분위기보다는 메시지에 치중해서 기계적으로 환원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영화는 이미지와 사운드가 시간순으로 배열된 것이 아닌가. 스토리나 내러티브가 탄탄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전개된 이미지를 보고 결과적으로 느끼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저는 시나리오를 쓸 때 이미 이미지의 세부적인 구성과 사운드까지 고려한다. <마더>에서 손에 쥐고 싶었던 핵심적인 이미지는 첫 장면과 마지막의 춤추는 장면, 그리고 유치장에서 김혜자 씨와 원빈 씨가 과거의 트라우마와 대면하게 되는 장면이다.

 

첫 번째 이미지: 김혜자 선생님이 춤추는 장면, <마더>의 타이틀 샷

이 장면은 충남 태안 신두리의 사구에서 찍은 것이다. 살인 직후에 도달하는 장소라 약간은 비현실적이고 몽환적인 느낌의 들판을 찾아서 찍어봤다. 오프닝 씬은 관객과 감독이 일종의 약속을 하는 것인데, 저는 이 영화는 김혜자의 영화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약간 넋이 나간 표정으로 대낮에 혼자 들판에서 춤을 추는 것을 보여주면서 이 여자가 살짝 미쳤거나 앞으로 미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또한 이 영화는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라는 것도 보여주고 싶었다. 여기서 <마더>라는 타이틀은 로케이션 당시 즉석에서 구상하고 찍어 본 것이다. 손을 가리고 웃는 장면이 강렬하고 인상적인데,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죄를 감추는 영화다. 이 장면이 전체적으로 이런 의미로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했고, 무엇보다도 아름답게 찍혔다고 생각해서 이 이미지를 타이틀샷으로 쓰게 됐다.

 

두 번째 이미지: 원빈이 방뇨하는 가운데 엄마가 약을 먹이는 장면

<마더>는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를 다룬 영화다. 어머니의 이미지엔 둘의 관계가 들어있다. 약을 먹이기 전에 원빈이 벽에 방뇨를 하고 있고 어머니가 와서 들여다보게 된다. 이 장면은 일상적이지 않은 하이앵글이다. 엄마와 아들이 서로를 통제하면서 대결하는 측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동반자살을 동반살인으로 복수한 얘기라고 볼 수도 있다. 먹는 것과 배설을 엄마가 다 통제하는데, 여기에는 사랑과 집착과 광기가 이상하게 뒤섞여 있다. 이 장면은 카메라가 고정되어 있고, 컬러들이 단순한 상태에서 작은 이미지(오줌이 흐르는)에 집중한다. 모래알이 남듯이 약간씩 침전되는 이미지가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 그렇게 했다.

 


세 번째 이미지: 살인사건 장면

다음으로 언급할 이미지는 살인 사건 장면인데 개인적으로 이 장면을 찍을 때 즐거웠다. 살인사건의 시작을 알리는 샷인데, 여고생이 소개되는 방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고생의 시체는 비참한 상태로 옥상에 널린 빨래처럼 하나의 대상(오브제)으로 보여진다. 해가 쨍하고 비치는 가운데 형사들은 커피를 마시면서 노닥거리듯이 얘기한다. 이런 모순된 느낌을 한 프레임에 담고 싶었다. 다음 샷에서는 접혀져서 보이지 않았던 얼굴이 (일부러 어둡게 찍어서 자세히 보이진 않지만) 보여 지게 된다. 이 순간 여고생이 비로소 구체적인 사람으로서 보인다. 이 영화의 두 시간의 내러티브는 문아정에 대해서 점점 알아가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살아있는 캐릭터로서의 인간 문아정이 다른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서 보여지는 단초다. 아울러 살인사건 플롯의 출발이자 신호탄이 되는 이미지다.

 

네 번째 이미지: 유치장에 갇힌 원빈을 김혜자가 면회 간 장면

살인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엄마와 아들의 과거사가 있다. 원래는 김혜자가 원빈에게 그날 밤에 있었던 사건을 기억하라고 했는데, 컨트롤이 잘 안되면서 엉뚱하게 다섯 살 때의 동반자살의 기억으로 점프하는 장면이다. 과거사를 보여 줄 때 감독이 할 수 있는 선택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저는 플래시백이나 인서트 장면을 쓰지 않고 대사와 핸드헬드 카메라에만 의지했다. 하지만 결정적인 이미지를 통해 이야기의 시작을 알리는 선전포고를 하려 했다. 원빈이 멍든 한 쪽 눈을 한 손으로 가리는 이미지다. 저는 이 이미지가 이 씬 전체나 과거사의 핵심 이미지는 아니지만, 감정을 안내하는 문턱에 있는 이미지라 생각했다. 이 이미지로 여기서부터 섬뜩한 일이 시작된다는 것, 기억의 깊은 물속에서 결코 다시 끌어올리고 싶지 않았던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아수라백작처럼 좌우가 다른 이미지를 원빈의 캐릭터에 적용했다. 원빈캐릭터는 비밀이 있고 알 수 없는 캐릭터인데, 원빈의 측면 얼굴의 느낌이 중요했다.

 

마지막 이미지: 고속버스에서 춤추는 이미지

이 이미지를 찍을 때 조건이 까다로웠다. 특히, 태양방위각도 때문에 2009년 1월 7일로 날짜를 받아서 찍었다. 이 마지막 이미지는 실루엣 같은 이미지로 찍고 싶었다. 아줌마들이 무리를 지어 춤을 추고 김혜자 선생님이 그 속으로 섞여 들어갈 것이고, 그 때 시커멓게 분간할 수 없는 이미지가 됐으면 좋겠다고 스텝들에게 말했다. 이 이미지를 찍으면서 제작부, 촬영부, 연출부들을 고생스럽게 했다. 4년 동안 오래 생각했던 이미지지만 실제로 손에 쥐는 과정에서는 마치 심해 바다에서 작은 물고기를 골라내듯이 어려운 상황들이 펼쳐졌다. 해가 뜨고 지는 3, 40분 내에, 허허벌판이면서 차가 거의 없는 남북방향으로 직선으로 뻗은 도로를 찾아서 승부를 봐야 했다. 또한 베테랑의 엑스트라들이 필요했다. 인천공항 옆 영종도에서 찍었는데 다행히 운도 따라주고 날씨가 좋았다. 5년 동안 꿈꿔왔던 이미지를 손에 잡았을 때의 쾌감이 있었다. 기분이 좋기도 하고 허탈하기도 했다. 영화를 찍는 처음의 동기는 순수하고 예술적이지만 그것을 얻는 과정에서는 여러 가지 돌파해야 할 장애물들이나 인간의 손으로 어찌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 그래서 영화를 찍는 과정은 순간의 다큐멘터리 같은 면이 있다. 이게 어떻게 보면 실사영화의 매력인 것 같다. 내 영화를 다시 보면 부끄럽고 후회되지만, 이 장면만큼은 다시 봐도 자부심이 있고 보람이 있다. 각자 이미 두 시간 오분 간의 영화를 보고서 이 장면을 보셨을 테니까, 왜 이 샷이 영화의 마지막이어야 할까, 앞의 모든 이미지나 장면들이 어떻게 이 이미지 속으로 수렴되거나 빨려 들어가는 것일까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참관객1: <마더>는 클로즈업을 많이 쓰고 카메라 워킹 등 연출 스타일이 전작들과 다르다. 스타일이 바뀐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봉준호: 이 영화는 각지고 모난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다. 오프닝샷의 부유하듯 유유하게 움직이는 크레인샷을 빼고 나면 원형 트랙이나 원형 크레인샷의 곡선적인 움직임이 없다. 영화가 처음 도입부의 작두날처럼 날카롭고 히스테릭한 느낌이 되길 바랐다. 클로즈업도 예쁜 배우를 찍은 느낌이 아니라 불안감이나 히스테리가 전달되었음 했다. 그리고 이 영화는 제가 처음으로 찍은 시네마스코프사이즈(2.35:1) 영화다. 인물의 불안 히스테리, 여백이 주는 이상한 느낌, 인물이 엣지에 몰리는 느낌을 시네마스코프로 표현하고 싶었다.

 

참관객2: 평소에 이미지를 모아 놓거나 찾는 본인만의 방법이 있는지.

봉준호: 일상생활에서 사진집을 보고, 전시회에 가끔 가기도 하고, 길을 걷다가 광고판을 보고 매혹되기도 한다. 해외영화제 갔을 때 다른 영화의 포스터를 보고 인상을 받은 적도 있다. 도처에 이미지는 범람하는데, 어떤 이미지를 자기 머리나 가슴에 새기는가가 중요한 문제인 것 같다. 사실 저는 실제 목격한 광경에 훨씬 강렬하게 자극을 받는 편이다. 제가 일부러 의식적으로 이미지를 선택하는 것은 아니다. 시나리오나 콘티를 쓸 때도 그렇고, 외부에서 오는 것 같다. 그 이미지가 강렬하기 때문에 그 이미지가 나한테로 온 느낌이 든다. <마더>를 찍을 때는 셀리 만이라는 미국의 여자사진가의 사진을 많이 참조했다. 헬렌 반이나 다이안 아버스의 사진도 좋아한다. 이미지를 찾는 것은 훈련의 영역은 아닌 것 같다. 각자의 취향과 본능이 있는데, 이것이 자극받았을 때 그 이미지가 각인되는 것 같다. 그런 이미지를 위한 스토리를 역으로 만들면서 시나리오를 쓰는 것이 재미있을 것 같다. (김수현 시네마테크 관객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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