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영작 리뷰

숨길 수 없는 낙관성
애드리안 라인의 '플래시댄스'

 

<플래시댄스>는 “제니퍼 빌즈의, 제니퍼 빌즈에 의한, 제니퍼 빌즈를 위한 영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애초 이 영화에 가장 어울릴 만한 새로운 얼굴로 발탁된 그녀는 이 영화를 통해 스타가 되어 이후 배우 경력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플래시댄스>를 다시 찾아보게 만드는 이유가 되었다. 80년대와 90년대 할리우드를 주름잡은 돈 심슨과 제리 브룩하이머 콤비의 첫 작품이기도 한 <플래시댄스>는 매우 단순하고 심지어 노골적인 영화다. 영화는 수시로 춤을 추는 제니퍼 빌즈의 육체를 훑으며 그녀의 풍성하고도 탄탄한 엉덩이와 허벅지를 클로즈업한다. 제니퍼 빌즈가 맡은 알렉스는 성당 신부에게 “요즘 부쩍 섹스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어요”라며 고해를 하는 순진한 아가씨이면서 동시에 식당에서 남자친구인 닉을 육체적으로 유혹하는 대담함을 보이는 캐릭터로 설정된다.
제니퍼 빌즈의 매력은 ‘남자들을 위한 노골적인 유혹의 영화’에 반감을 품는 여성관객들마저도 반하게 만들 정도다. 이 영화에서 그녀의 인상적인 장면들은 이후 숱한 영화에서 패러디 및 오마주의 대상이 되었다. 난니 모레티 감독 역시 <나의 즐거운 일기>에서 그만의 방식으로 제니퍼 빌즈에세 찬사를 바치기도 한다. 또한 <풀 몬티>에서 주인공들이 본격적으로 스트립쇼를 연습하기 전 참고삼아 보는 영화 역시 <플래시댄스>다. 그런가 하면 이 영화는 존 트라볼타와 <토요일 밤의 열기>로부터 시작된 디스코 열풍을 이어가면서도 한편으로 뉴욕 브룩클린에서 유행하던 브레이크 댄스를 전세계에 전파한 일등공신이기도 하다. 알렉스가 친구인 지니와 함께 거리에서 만난 ‘스트리트 댄서’는 브레이크 댄스씬에서 전설적인 존재로 남아있는 크레이즈 레그스. 그는 알렉스의 오디션 장면에서 일부 브레이크 댄싱의 대역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만들어진 지 딱 30년 만에 다시 보는 이 영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80년대 미국을 지배한 주요 슬로건이었던 ‘낙관성’이다. 꿈과 실력과 용기만 있다면 누구든 성공할 수 있다! 그렇게 한 번도 정식 댄스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알렉스는 정식 발레학교로의 진학과 부유한 남자친구와의 사랑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성공의 주역이 된다. 엉덩방아를 두 번이나 찧고 실격한 지니가 부모에게 “엉덩방아 찧는 것도 잘하더라”라며 위로를 받는 장면이나, 알렉스가 오디션 장에서 실수를 하지만 “다시 해도 될까요?”라며 즉시 재도전을 해 결국 합격통지서를 받아드는 엔딩 장면에서 이러한 낙관성은 극대화된다. 6, 70년대 꽃을 피웠던 로큰롤과 아메리칸 뉴 시네마, 그리고 ‘새로운 헐리우드’의 시대가 종말을 맞았던, 그리고 노조의 파업에 ‘대량해고’로 맞섰던 레이건 재임기의 보수적인 미국을 ‘좋았던 시절’로 느끼게 만드는 장면들인 것이다. 불과 30년의 간극에 이 영화가 더없이 ‘낯설게’ 느껴지는 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김숙현 /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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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샤이닝>은 아버지의 폭력으로 인한 가족 집단의 붕괴를 다룬 영화다. 콜로라도 주 오버룩 호텔의 겨울 관리인으로 일하게 된 소설가 지망생 잭 토런스(잭 니콜슨)가 서서히 미쳐가면서 아내와 아들을 살해하려 한다는 단순한 이야기다. 이 작품은 큐브릭의 필모그래피 중에서도 가장 대중 관객들의 호흡에 밀착해 있다. 또한 공포영화로서 충격 효과와 서스펜스를 유발하는 데 있어서 단연 압도적인 기량을 보여준다. 영화의 리듬은 관객이 이야기에 완전히 몰입할 만큼 탄력적인 속도감을 드러낸다. 비주얼과 사운드의 조응은 거의 교과서적으로 보일 정도다.

영화는 원작 기본 플롯을 그대로 가져오되, 주인공 잭 토런스의 캐릭터를 좀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잭은 직업 윤리에 집착하지만 아내 웬디(셸리 듀발)에 대해 경멸감을 가진 가부장적인 사내이다. 잠재적 폭력성을 가진 잭은 과거 아들 대니(대니 로이드)의 팔을 잡아 끌어 어깨를 다치게 한 적이 있다. 이후 대니는 과거와 미래의 일을 내다볼 수 있는, ‘샤이닝’이라 불리는 특별한 정신적인 능력을 갖게 된다. 잭은 오버룩 호텔에 머물렀던 과거의 유령들과 조우하게 되며, 특히 두 딸을 도끼로 살해한 전임 관리자인 ‘그래디’의 충고를 듣고 가족을 파괴하려는 임무에 착수한다.

무엇보다 <샤이닝>은 스테디캠의 미학적 효과를 성공적으로 입증한 최초의 영화로 정평이 나 있다. 오버룩 호텔의 기나긴 복도와 울타리 미로의 끝없이 이어지는 갈래길은 스테디캠의 유동성을 실험하는 데 최적의 무대였다. 또한 <샤이닝>의 단순하면서 정교한 음향 효과는 텅 빈 공간의 정적과 극적인 대조를 이루며 관객의 심리적 쾌감을 증폭시킨다. 큐브릭은 이번 영화에도 꽤 많은 클래식 음악을 사용했다. 리게티, 바르톡, 펜데레츠키 등 20세기 동유럽 작곡가들의 음산한 음악은 신디사이저로 편곡되어 공포영화로서 비장한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샤이닝>은 문명화된 세계의 이면에 자리한 폭력 충동과 살인적이고 악한 인간 본성을 드러낸 작품으로 평가되어 왔다. 영화를 지배하는 푸른색과 붉은 색의 대조는 규칙과 책임감과 의무감이 강조된 문명 세계와 환상과 오컬트와 욕망과 본능이 교차하는 원시 세계를 드러낸다. 오버룩 호텔은 프로이드가 ‘두려운 낯설음(the uncanny)'이라 불렀던 감정을 자아내며 ’귀신 들린 집‘이라는 전통적인 하우스 호러물을 새로운 차원으로 이끌어낸다. 여기서 아버지-가부장의 폭력에 대항해 소수자인 여성과 아이와 흑인이 연대한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그러나 <샤이닝>은 단순한 ‘가족 시네마’가 아니라, 넓은 의미에서 미국 사회와 역사에 가해진 폭력의 알레고리이기도 하다. 오버룩 호텔이 세워진 지역이 원래 인디언들이 묻힌 곳이었다는 전제가 이를 대변한다. 미국은 인디언이 대변하는 약자에 대한 억압을 딛고 세워진 국가이며, 그 피의 역사는 폭력의 수행자이자 억압의 주체를 통해 긴 궤적을 그리며 자꾸만 되돌아오는 것이다. <샤이닝>은 공포영화 장르의 컨벤션을 재해석하고 있으며, 동시에 미국의 문명과 역사에 대한 비판적 드라마다.

by 한선희(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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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흘리는 샘’ 혹은 ‘폭력의 피카소’라 불린 샘 페킨파는 1960,70년대 아메리칸 시네마의 감독들 중에서 서부의 신화를 의문시하면서 가장 전복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영화를 만든 작가이다. 페킨파 영화의 독특한 시학은 베트남 전쟁, 정치적 암살 등으로 표출된 아메리카의 폭력적 에너지를 역사의 죄의식과 연결하는 것이다. 미국적 프런티어는 이제 물리적 여정이라기보다는 정신적이고 심리적이며 움직임의 선 또한 내부화된다. 방황하는 인물들의 폭력 또한 몸을 파괴하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차라리 영화적 이미지, 즉 표상의 질서를 파괴하는 폭력의 경향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와일드 번치>(1969)의 말미에 보이는 극단적인 커팅, 수천 개의 쇼트로 구성된 장렬한 총격전은 줌 렌즈와 느린 화면들의 활용으로 폭력의 잔상을 관객들에게 강렬하게 전달한다. 그러나 폭력의 양상만큼이나 액션의 무게와 짐을 덜어내는 강력한 정서적 효과를 고려해야 한다. 폭력은 가능한 구제, 은총의 성취를 이뤄내는 노력의 일환이기 때문이다. 죽음은 장례를 치르는 것이다.

<겟어웨이>에서 핵심적인 것은 이러한 심리학이다. 페킨파의 작품 중 가장 대중적인 흥행을 거둔 이 영화는 보다 오락적이다. 현란한 촬영과 편집, 슬로 모션으로 이루어진 액션 장면, 멕시코의 황량한 대지에의 집착 등은 물론 여전히 페킨파적적이다. 주인공 맥코이(스티브 맥퀸)는 무장 강도 혐의로 4년째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 가출옥 요구가 번번이 거부당하자 맥코이는 아내 캐롤(<러브 스토리>의 알리 맥그로우가 이 역을 맡았는데, 영화를 촬영하면서 둘은 사랑에 빠져 결혼했다)을 시켜 부패한 정치인과 접선해 출옥에 성공한다. 하지만 부도덕한 거래에는 대가가 있는 법. 맥코이는 아내가 자신의 출옥을 위해 원치 않는 성적 교섭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내와의 은행 강도에도 예기치 않은 사건이 발생하면서 둘은 멕시코로 도주하는 불안한 모험을 벌인다.


추격전이 전면에 부각되고, 클라이맥스를 장식하는 총격전의 세밀한 커팅과 슬로모션으로 구축된 박력 있는 폭력묘사가 길이 남을 명장면이지만 화려한 볼거리만이 전부는 아니다. 맥코이에 불의의 총격을 당한 갱 한명이 수의사 부부를 억지로 끌고 다니면서 벌이는 해괴한 에피소드는 폭력에 처한 소심한 인간의 반응, 부부의 정조, 성적 무기력 등의 핵심적인 문제를 불거지게 한다. 수의사 부부의 부조리한 행태는 맥코이와 캐롤의 왜곡된 거울상에 가깝다.

영화 시작부의 장면 또한 이채롭다. 형무소의 일상적인 단순 작업을 보여주는 이 장면은 시간 축을 교착시키는 혼란스런 컷의 연결로 가히 초현실적이다. 맥코이의 감옥의 일상이 정지화면을 포함한 분절된 에피소드로 연결되는데, 여기에 몇 개의 플래시백 인서트가 결합되어 있다. 현재의 구속 상태를 부정하고픈 심정이 기억을 혼란에 빠지게 한다. 게다가 감옥에서 풀려난 맥코이가 캐롤과 강변에 뛰어드는 장면은 일종의 플래시 포워드처럼 표현되어 있다. 페킨파의 몽타주는 여기서 더 이상 액션이 아니라 주관적인 비전, 상상을 현시하는 것에 활용되고 있다. 이 장면은 초현실주의와 허무주의가 공존하는 <가르시아>(1974)의 혼란스런 비전을 떠올리게 한다.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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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토크] 이명세 감독이 추천한 샘 페킨파의 <겟어웨이>

지난 21일 두 번째 시네토크로 이명세 감독과 함께 그의 추천작 샘 페킨파의 <겟어웨이>(1972)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영화가 끝나자 객석에서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 오락적 요소들과 장르적 쾌감으로 충만한 영화였던 만큼 즐겁고 고양된 분위기가 시네토크까지 내내 이어졌다. 이 영화의 어떤 장면과 요소들이 우리를 흥분케 하는지 그 ‘즐거움을 나누며’ 웃음 터뜨리던 유쾌한 시간을 전한다.


허남웅(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고등학교 때 <겟어웨이>를 보셨다고 들었다.
이명세(영화감독):
아니다. 고등학교 때 봤던 샘 페킨파의 영화는 더스틴 호프만이 나오는 <어둠의 표적>이었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대사 중에 “하나님이 그 왕국을 만든 이래 폭력이 멈춘 적이 없었다”라는 구절이 있었다. 돌이켜보면 당시 유신정권 하에서 어딘지 모르게 느끼고 있던 폭력에 대한 분노감, 증오 같은 게 있었는데, 이런 면에서 페킨파의 영화에 매혹되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겟어웨이>를 극장에서 본 것은 나중에 뉴욕에 갔을 때였다. 관객 여러분도 오늘 보셔서 아시겠지만 페킨파는 소위 액션 영화에 많은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영향을 끼쳤다.

허남웅: 어느 인터뷰에서 폭력이라기 보단 아름다운 액션이라 하고 싶다고 말씀하셨던데 어떤 지점에서 그렇게 생각하셨는지?이명세:
폭력은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흔히 페킨파를 폭력 미학의 거장이라고 평가하는데, 과연 폭력이 아름다움이 될 수 있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사람들이 왜 페킨파에 매혹되는 것인지도 궁금하다. 생각해보면 그건 단지 폭력의 미학이라기 보단 우리 안에서 도태되어버린 원시성, 동물성이 가진 아름다움 그 자체를 보여주었던 게 아닌가 싶다. 왜 요즘 초식남이란 말도 있잖은가. 이런 식으로 잃어버린 야성성의 미학을 보여주어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같다. 아, 요즘 짐승돌, 짐승남 같은 것도 이래서 유행인가보다. (좌중 웃음)

허남웅:
영화에서 스티브 맥퀸이 알리 맥그로우를 차 밖으로 내보내며 때리는 장면이 대본에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알리 맥그로우가 매우 놀랐다던데, 이런 점에서 맥퀸이 연기에 어느 정도 본능적 감이 있었던 것 같다. 그에 비해 인정은 별로 못 받은 배우다. 감독님이 매우 좋아하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의 연기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이명세:
맥퀸 뿐 아니라 연기 그 자체에 대해서 말하자면, 보통 ‘연기’라고 하면 마구 소리 지르고 ‘널 죽여 버릴 거야’라며 울부짖는 그런 것만 높이 평가하는 것 같다. 하지만 사실 영화 매체에서의 연기란, 단지 클로즈업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연기하고 있는 것이다. 맥퀸도 표가 많이 나진 않지만 일종의 메소드 연기를 하는데 군더더기 없는 연기, 영화 매체적으로 훌륭한 연기를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연기는 전문가들도 잘 몰라본다. 개인적으로 윌리엄 허트가 <브로드캐스트 뉴스>에서 보여준 연기를 좋아한다. 예를 들자면 <미션>을 보고 사람들이 로버트 드니로랑 제레미 아이언스 중에 누가 더 연기를 잘했느냐 많이 얘기 했었는데, 학점으로 치면 나는 냉정하고 드라이한 제레미 아이언스의 연기에 A+을 주고 싶다. 드니로의 액티브한 연기에는 A-나 B+정도? (좌중 웃음)

허남웅:
사실 페킨파의 영화들 중에는 <겟어웨이>가 너무 대중적이란 이유로 가장 저평가되는 작품이잖은가. 다른 작품과 비교해서 어떤 점이 매력적이었나?
이명세:
곳곳에 조금씩 매력이 있다. 페킨파가 세르지오 레오네와 영향관계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둘의 악당은 그야말로 악당이란 공통점이 있다. 보다보면 죽었으면 좋겠다 싶을 만큼 정말 추악하고 나쁜 놈들이다. 인간의 본성 중 가장 더러운 것만 보여줄 수 있는 배우들을 악당으로 적절하게 잘 골라서 정말 적절한 순간에 그 악당들을 샷건(장총)으로 통쾌하게 처리한다. 사람 죽어 자빠지는 게 통쾌하다기 보단 이런 것들이 소심한 우리들의 욕구를 대변해주는 매력이 있다. 또 오늘은 곳곳의 작은 유머들이 너무 재미있었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트럭 운전수와 땅바닥에 주저앉아서 흥정하는 부분은 마치 성경에서 예수가 ‘이 중 죄 없는 자만 돌을 던져라’라고 할 때 땅바닥을 끼적이고 있는 느낌도 나고 해서 아주 재밌게 보았다.

허남웅:
한편 굉장히 남성적인 영화기도 하다. 처음에 맥퀸이 감옥을 나오기 위해 맥그로우를 이용해 놓고 나중에는 '왜 그 때 (관리와) 잠을 잤냐'며 탓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는데, 이런 점은 여성관객들에겐 불편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이명세:
마초적인 동시에 어떤 면에서 페킨파도 조잡한 인간이었겠지. (웃음) 사실 나 같아도 그럴 것 같다. 빨리 감옥에서 나가서 영화 찍고 싶은데, 막상 또 그런 식으로 나가면 그 문제에 소심하게 매달려 있을 것 같고. 그런 거 아닌가. 이런 이중성이 여러 캐릭터의 모습 속에서 곳곳에 나타나는 것 같다. 그 동물병원 여자의 전형성도 그렇고. 또 심리학적으로 볼 만한 부분인데, 페킨파는 꼭 폭력의 현장에 아이들을 등장시킨다. <와일드 번치>에서 전갈 태울 때에도 아이들이 나오고, 또 아기 울음소리라든지, 상당히 종교적인 것들이 배어있는 것 같다.

허남웅:
샘 페킨파를 말할 때 그의 폭력미학을 슬로우 모션과 연결 짓는다. 이 영화에서는 시간이 역순으로 진행되는 도입부의 편집도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또 소리로 감옥을 만들어 맥퀸을 가두는 듯한 사운드 편집도 독특했는데, 이런 부분들에서 어떤 인상을 받았는가?
이명세:
지금도 이런 편집방식은 상당히 새로운 것 같다. 오늘은 이 영화의 편집을 통해 구현되는 사운드 디자인을 보았다. 혹 영화연출에 관심이 있다면 도입부의 감옥장면을 눈여겨 볼만 하다. 인물 소개부터 감옥 생활, 현재 처한 상황까지 정말 짧은 시간 내에 편집으로써 이렇게 잘 보여주지 않는가. 또 감옥 방직 기계의 끼이는 듯한 소리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눈부신 철창살의 황금빛 등, 많은 묘한 요소들이 편집을 통해 재밌게 잘 조화를 이룬 것 같다. 편집 작업할 때 생각해볼만 하다.

허남웅:
어떤 장면이 감독님께 가장 인상적이었는지?
이명세:
라디오 구입 후 샷건을 들고 나왔을 때. '아 저것이야 말로 영화다!'싶었다. 샷건이 무엇인지 영화만의 방식으로 보여주었다. 슬로우 모션의 리듬감과 단 몇 개의 클로즈업 숏으로 정확하게 불의 느낌과 힘을 표현해 냈다. 오늘도 그 힘이 아주 강력하게 다가왔다.
허남웅:
개인적으로 쓰레기 하치장 장면은 남성적인 힘을 과시하면서도 전쟁에 피어난 꽃 같은 여성적인 느낌도 주는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이명세:
아마 아웃풋의 문제겠지만, 원래 그 장면에 대한 내 기억 속 이미지는 쓰레기가 아름답게 오색으로 날리는 거였는데 오늘 보니까 아니었다. 착각이었던게지. 우리가 영화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뭔가를 만드는 것 같다. 기억엔 네모난 쓰레기건초더미가 슬로모션으로 공중에서 아름답게 해체되면서 거기서 사람이 풀려나오는 장면이었는데...... 오늘 본건 내가 갖고 있던 이미지보단 덜 했던 것 같다. (웃음)
허남웅:
실망하셨는지? (웃음)
이명세:
아니 실망은 아니고...관객 여러분도 <부당거래>나 두기봉 영화들, 소위 말하는 누아르 영화 보며 느끼셨을 테고, 또 오우삼 감독의 경우 대놓고 샘 페킨파와 장 피에르 멜빌로부터 영화를 배웠다고 하듯이, 정말 페킨파가 후배 영화인들에게 곳곳에 아이디어와 영향을 줬다는 생각이 확실히 들었다.


관객1:
혹시 감독님께서 만든 영화 중 샘 페킨파에게 오마주를 바친 장면이 있는지?
이명세:
이번에 있어보려 한다. 페킨파의 힘을 좋아하지만 아직까지 오마주라고 할 만한 건 없었다. 다만 아까도 말했지만 <겟어웨이>는 상업적으로 성공했을 뿐 아니라, 미장센, 리듬감, 사운드 편집 등 영화적 측면에서 다시 발견할만한 부분도 많다. 특별히 어느 장면을 오마주하기 보다는 이런 점들에서 페킨파가 표현했던 원시성, 야성성, 리듬감 같은 걸 다음 영화에서 적절히 활용할 생각이다.

관객2:
<형사>, <M>부터 영화에서 서사보다는 다른 쪽의 매력을 부각시키는 작업을 하시는데 앞으로도 이런 영화 형식적인 실험을 계속 하실 건지 궁금하다.
이명세:
아. 조용히 있으려고 했는데. (웃음) 소재를 약간은 관객들이 편안하게 볼 수 있는 걸로 맞추려한다. 반발자국 뒤로 물러서서 찍으려고 생각 중이다. 영화가 나와 봐야 아는 것이고 아직은 모른다. 머릿속엔 이미지들만 떠돌고 있다. 페킨파의 리듬만 갖고 올지 오마주를 만들지 어떨지 모르겠고. 어쨌든 이번엔 페킨파의 영화가 보여주는 힘, 구로자와 아키라가 보여주는 화면의 힘 같은 걸 보여주고 싶다. 이들은 내 영화학교의 초빙교수들이다. 원래 내 영화학교의 주임교수는 오즈 야스지로, 찰리 채플린, 자크 타티, 페데리코 펠리니, 버스터 키튼인데 이번에는 초빙교수 쪽으로 가려고 한다.

(정리: 백희원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관객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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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클럽] 이명세 감독에게 듣는 영화의 현장

'2011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는 영화 상영 외에도 다채로운 행사들이 많다. 그 중 가장 관심도가 높은 행사는 영화 연출을 꿈꾸는 이들이 현역 감독과 만나 내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네클럽' 행사다. 지난 21일에는 그 첫 번째 시간으로 이명세 감독이 "감독에게 영화 현장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허물없이 관객들을 대하는 이명세 감독 덕에 두 시간 동안 편안하고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매우 진지한 이야기들이 오갔던 그 현장을 전한다.


이명세(영화감독):
내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하는 장소이자 너무 싫어하는 장소가 바로 영화 현장이다. 자기 머릿속에 들어있는 것의 절반만 나와도 성공이다. 예컨대 어떤 장소를 섭외해서 촬영한다고 치자. 현장 장소를 빌려주신 분들은 스텝들이 들이닥치면 깜짝 놀라고, 실랑이가 벌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야외촬영에는 일정한 계절, 광량의 최적조건이 있는데, 이게 안 맞는 경우가 너무 많다. 연기자들의 경우도 현장에 대해 훈련이 덜된 편이다. 현장에서는 기술자들과의 싸움이라는 것도 장난이 아니다. 이에 대한 온갖 전략들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이야말로 가장 살아있는 것 같다. 물론 연출자 개인으로서는 촬영과 내가 구현하려는 이미지에만 관심을 가지고 싶겠지만,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쌓아가는 것에서 확실히 더 좋은 게 나올 수도 있다. 그것이 머릿속에서 생각했던 어떤 것에 가까이 갔을 때, 그 희열은 영화를 찍어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현장이라는 것은 감동과 증오, 희열과 좌절이 넘치는 곳이다.

관객1: 신인감독이 상업영화로 데뷔할 때, 양보해야 할 것과 양보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알려 달라.
이명세: 현장경험이 적은 신인감독이 현장에 가면 촬영감독이나 스텝들이 좀 무시하고 못 믿는 경우들이 있다. 그래서 감정적으로 아주 잘 대해야 한다. 많은 대화가 필요하며, 목표라고 생각한 것이 있으면 꼭 그것을 향해 달려가야만 한다. 영화 예술이라는 것은 사람들과 어떻게 잘 지낼 수 있느냐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인성교육이 감독들에게 참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 같은 경우는 논어를 읽고 스스로 명상하는 시간을 갖는다. 화내지 말자, 일희일비하지 말자, 스스로 다짐하고.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잠을 잘 자려는 이유도 체력이 떨어지면 짜증이 나니까 그러는 거다. 연기자들은 진심으로 대하는 것과 거짓으로 대하는 것을 안다.


관객2: 현장에서 가장 통제와 예측이 안 되는 게 배우라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배우의 영향력을 어느 정도로 보는가?
이명세: 연기자들에게 연습만이 살 길이라고 말한다. 배우에게 움직임을 줄 경우, 왜 움직여야 하는지 설명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시선을 지정해 주기도 한다. 이런 것은 수십 번 연습해야 찍을 수 있다. 연기자의 움직임의 동선의 목표를 확실하게 주면 좋다. 연기자는 정말 중요하다. 그런데 혼자서 빛날 수는 없고 조화가 잘 되어야 한다.

관객3: 작년에 작은 예산 지원을 받아서 독립장편영화를 만들면서 느꼈던 게, 내가 영화에서 어떤 걸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스스로 깨닫는 과정이었다. 어떤 조건에서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있었던 반면, 중요하다고 배워온 어떤 것들은 나에겐 별로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이명세: 한국 최고의 촬영감독이라 생각하는 정광석 촬영감독이 넘어가는 것도 있어야지 모든 숏에 간섭하면 어떡하느냐고 말한 적이 있다. 인서트를 이렇게 거창하게 찍는 사람이 어디 있냐며. 그런데 인서트도 영화의 숏이다. 매 숏에 최선을 다 하려고 한다. 어떤 것이 중요하다 안 중요하다는 것은 지금도 잘 모르겠지만, 매 순간 모든 숏이 다 중요하다. 작은 바늘구멍이지만 그것을 방치했다가는 둑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네덜란드 소년의 원칙'이다. 후반 작업도 모든 작업에 내가 다 참여해서 한다.


관객4: 인간관계랑 작품의 완성, 둘 중에 어떤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보는가?
이명세: 인간이 되면 예술이 된다. 인간이 된다는 것이 바로 미장센이다. 영화란 무엇인가, 영화를 왜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화두를 갖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돈? 명예? 사람들에게 악랄하게라도 해서 끌어내려는 것이 그 작품이 과연 뭔가? 그 생각하는 과정 속에서 만들어진 어떤 것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도 지금도 계속 질문하는 것들이다. 영화 현장들이 그런 질문들이 총체적으로 벌어지는, 어떤 하나의 사회라고 생각한다. 이해관계가 부딪히는 속에서 살아있는. 사람을 이해하려 하고 영화를 이해하려 하는 분들이 나중에라도 무언가가 될 수 있으리라 본다.

(정리: 박영석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관객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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