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친구들 영화제’가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는 2월 19일, <로스트 하이웨이> 상영이 있었다. 상영 후에는 영화를 추천한 유지태 영화배우와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마련되었다. 그는 현재 데뷔 15년 차 베테랑 배우이자, 첫 장편 <산세베리아>를 촬영 중인 신인 감독이기도 하다. 때문에 더욱 다채로운 질문과 답변이 오갔다. 게다가 시네마테크에 대한 남다른 관심도 엿볼 수 있어 더욱 특별했던 현장이었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로스트 하이웨이>는 개봉 이래로 극장에서 제대로 상영된 적이 없었고 꽤 오랫동안 제대로 볼 기회가 없었다. <로스트 하이웨이>는 고등학생 시기에 영향을 미친 영화라고 말했었는데.
유지태(배우): 트위터에서 김성욱 프로그래머와 <로스트 하이웨이>와 <이지라이더>를 인상 깊게 봤단 이야기를 한 것을 계기로 이 자리가 마련됐다. 영화가 난해하고 조금 답답하기도 하고 때론 난감한 부분에 대해서 너그럽게 이해해주셨으면 좋겠다. 너무 전문적인 질문은 대답하기 어렵겠지만(웃음) 편하게 영화에 대해 이야기했으면 좋겠다. 이 영화의 제작과 관련한 간단한 정보를 말씀드리자면, OJ심슨사건이란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OJ심슨이란 미식축구선수가 자신의 아내를 살해한 사건이다. 데이빗 린치가 우연히 TV에서 OJ심슨이 나오는 장면을 봤는데 저 사람이 혹시 자기 삶의 도피, 정신학적인 용어로 심인성질환에 시달리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로스트 하이웨이>를 만들 때 전반적으로 린치의 정확하게 정립되지 않은 생각들이 나열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김성욱: 유지태씨가 만든 단편들을 몇 편 봤다. 현실과 환상, 기억의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작품들이다. 이 영화도 그런 측면이 강하다. 영화를 만드는 입장에서 영화에서의 현실과 환상의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나?
유지태 : 일단 나는 한국 관객들이 스토리에 너무 연연한다고 생각한다. 뻔한 플롯에 너무 익숙하지 않은가 싶고. 그래서 종종 다양한 실험, 이미지, 영상언어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감독들에 대해서 비판적이고 냉혹한 것 같다. 린치 같은 경우 디즈니와 함께 작업을 한 적도 있다. <스트레이트 스토리>라는 영화인데 감동적인 이야기다. 이런 감독들은 머릿속에 있는 강한 이미지를 형상화하는 작업에 매력을 느껴서 그런 영화를 찍는 것뿐이다. 나 또한 이미지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한다. 영화 연기는 대사 연기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느낌을 전달하는 이미지 연기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연극 연기, 대사 연기에 점수를 많이 주는데 영화배우는 도리어 멋진 이미지, 여백을 채울 수 있는 느낌에서 진짜 연기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히려 절제 있는 연기를 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상상하기를 좋아했는데 좋아했던 영화들도 다 환상적인 면이 있고 괜히 멋있어 보이는 장면이 담겨있었다. 앞으로 그런 영화를 찍을 것이냐면 또 그렇진 않다. 아무래도 감독으로서도 살아야하기 때문에(웃음). 영화는 순수예술이나 자위행위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소통을 많이 할 예정이라, 앞으로 찍는 영화는 다양한 형태일 것 같다.

김성욱: 이미지가 강한 영화에 출연하면 배우가 지금 이것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 수 있을까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로스트 하이웨이>에서 지금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를 알고 있는 이는 아마도 미스터리맨을 연기한 로버트 블레이크 정도가 아닐까 싶다(웃음). 연출을 하다 보면 감독으로서는 전체적인 아이디어나 상이 갖고 있을 텐데, 두 종류의 일을 하니 그 차이를 어떻게 느끼는지가 궁금하다.
유지태: 감독들은 두 가지 형태로 나뉜다. 한 편은 프로덕션 디자인에 강한, 콘티뉴티가 강한 감독이다. 다른 한 편은 감각, 느낌에 충실한 감독의 형태로 나뉜다. 린치나 크로넨버그 감독 같은 경우는 감각, 느낌, 분위기에 따라 달라지는 감독이라 생각이 든다.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지만. 그런 감독들에게는 PD, 촬영감독, 조명감독, 미술감독 등 모든 스태프들이 '지금 감독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지'에 집중을 한다. 그럴 경우 영화배우로 참여를 할 때는 가급적 멀리 떨어져 있으려 한다. 그래야 객관적으로 보고 판단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감독의 생각과 느낌, 분위기를 공감하려고 노력한다. 감독을 할 때는 나의 생각이 정확해야하니까, 안 그러면 현장이 혼돈의 도가니가 된다. 그래서 나의 생각을 최대한 정립해서 최대한 짧고 굵게 전달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김성욱: 지금 촬영 중인 첫 장편영화인 <산세베리아>는 어디에서 어떤 착상과 아이디어를 뽑아냈나.
유지태: 대학교 때부터 만들고 싶던 영화다. 내가 장편영화를 만들면 성장영화를 만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하고 싶었다. 내가 어른이 되면서 느꼈던 힘듦, 힘듦을 통해서 얻었던 철학,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느낌들을 꼭 영화로 담아내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래서 스토리를 어릴 때부터 생각을 많이 했었다. 스토리 자체는 상업적이진 못하다. 그 때 당시에는 어린 아이들이 주인공이었다. 그런데 10년 전에 만든 스토리기 때문에 지금 현실과 괴리감이 컸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시대를 반영하다보니 이주여성이 등장했다. 이주여성을 많이 만나 인터뷰도 하고 책도 읽으며 정보를 쌓아가다가 자신을 산세베리아라고 묘사하는 이주여성을 만났다. 거기에서 영감을 얻어 영화로 쓰게 됐다.


관객1: <로스트 하이웨이>를 보고 어떤 인상을 받았고 그것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어떤 장면이 가장 인상 깊었는지도 궁금하다.
유지태: 음악을 너무 좋아해서 OST를 사서 먼저 듣고 영화를 보러 가는 버릇이 있었다. 성공을 할 때도 있었고 실패를 할 때도 있었는데, <로스트 하이웨이> 같은 경우는 명반에 가까웠다. 데이빗 보위라든지 스매싱 펌킨스 등 여러 음악이 나온다. 음악에 취해서 이 영화를 봐서 스토리를 보지 않고 이미지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마지막에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주인공의 머리가 흔들리면서 스텝프린팅 되는 장면이다. 그 장면이 이 영화에서 대표적인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관객2: 피나 시체 같은 잔인한 장면이 많이 나온다. 영화를 만드는 중이신데 잔인한 장면을 감독들은 왜 사용하는지, 꼭 필요한지 견해가 궁금하다.
유지태: 잔혹한 장면이다. 하지만 사실이 아니라 매력적이다. 극을 만들고 연기를 하며 작품을 만드는 창작자의 희열이 있다. 사랑하는 장면을 묘사할 때도 희열이 있고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사회를 다루고 삶을 반영해야하는 예술의 형태이기 때문에 폭력이 묘사가 되어야 하고 폭력의 사실성이 예술가와 관객에게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 진실에 가까워지기 위해 폭력이 등장하는 것 아닐까 개인적으로 생각이 든다. 예전에 다르덴 형제가 원래 다큐멘터리 감독이었는데 극영화를 하는 이유는 더 현실에 가까워지기 위함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는 것 같다.

관객3:
데이빗 린치 감독 영화 중 <로스트 하이웨이>와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좋아한다.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다.
유지태: 질문을 듣고 <인랜드 임파이어>가 생각났다. 린치의 영화가 그런 것 같다. 스토리가 강한 것 보다 머리속에 유영하는 이미지를 표현하고 그 이미지 속에 철학을 담는 것 같다. 영화를 다른 식으로 즐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린치의 영화를 볼 땐.

관객4: 영화에서 음악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혹시 새로 만드는 영화에서 영화음악은 어떻게 하시는지, 누구와 작업하는지도 궁금하다.
유지태: 배우이기 때문에 일반 신인감독보다 많은 특혜를 얻고 작업을 하는 것 같다. 배우 일을 하면서 친해진 음악감독들과 단편 때부터 작업을 해왔다. 이번에는 조영욱 음악감독님이 기부를 해주셨다(웃음). 기부라는 표현이 맘에 걸리지만 언젠가 제대로 된 대우를 하면서 그 분들과 작업을 하고 싶다.

김성욱:
린치의 경우 음악에서 아이디어나 영감을 받기도 하고 배우들과 리허설 작업에서도 음악을 틀어놓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로스트 하이웨이>를 음악으로 먼저 접한 것이 영화에 접근하는 비슷한 경로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할 때 소통이란 표현을 썼는데, 그런데 린치 같은 경우는 관객과 소통할 생각이 없는 것 같다(웃음). 관객을 무시한다는 말이 아니라, 창작 작업에서 관객이 보고 좋아할 요소를 일부러 넣지는 않는다는 의미이다. 한국의 영화현장에서 배우로서 영화를 찍고 만드는 일을 하며 그런 딜레마가 있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듣고 자리를 마무리하겠다.
유지태: 관객들에게 이렇게 말씀을 드리고 싶다. 사람을 그 자체로 인정하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바른 형태의 예술이나 건설적인 행동들이 이어져서 기적 같은 일들이 만들어진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어떤 현상이나 어떤 특이한 사람을 발견했을 때, 특이한 생각을 이야기하는 타인을 만났을 때 그를 진정 존중하고 인정해주는 우리의 행동들이 건설적인 일들을 만들어낸다. 그러니까 많이 존중하고 사랑했으면 좋겠다. 너무 어려운 영화 보게 해서 죄송하고 영화를 다양하게 바라봐주시고 시네마테크도 많이 응원해주셨으면 좋겠다. 오늘 영사사고가 있었는데 영사기가 많이 낡아서 그랬다. 많은 후원 부탁한다.

정리: 이정아(관객 에디터) 사진: 최용혁(자원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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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영화는 린치처럼 어렵지 않다." 데이빗 크로넨버그는 <폭력의 역사>(2005) DVD 코멘터리에서 이례적으로 데이비드 린치에 대해 언급했다. 당시 데이비드 린치가 디지털 카메라를 통해 얻은 무한대의 자유, 그러니까 <인랜드 엠파이어>(2007)로 나아가기 전 <로스트 하이웨이>(1997)와 <멀홀랜드 드라이브>(2001)의 '몽환적 린치 월드'를 거치며 '디지털적' 방법론을 모색하다가 결국 디지털 이미지에 안착한 그의 현재에 대한 얘기였다. <로스트 하이웨이>는 <블루 벨벳>(1986)과 <트윈 픽스>(1992)의 공간에서 여전한 악몽의 미로를 펼쳐놓지만 보다 더 내밀한 심연으로, 그리고 크로넨버그가 언급한 현재의 린치와 가장 가깝게 다가 선 첫 번째 작품이다.


명성과 부를 누리고 사는 색소폰 연주자 프레드(빌 풀먼)는 의처증에 시달리다가 아내 살해혐의로 체포된다. 그리고 자동차 정비공 피트(발타자 게티)는 폭력배 보스의 정부로부터 유혹을 받아 살인을 저지른다. 패트리샤 아퀘트가 그 두 여자를 함께 연기하며 전반부의 후반부의 서로 다른 두 이야기를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시키는 고리가 된다. 프레드와 피트 역시 장면을 뛰어넘어 역할을 바꿔 혼란을 가중시킨다. <사이트 앤 사운드>의 킴 뉴먼이 말한 것처럼 시놉시스는 임시방편일 뿐이다. 그는 “영화는 내러티브의 논리를 매 순간 파괴하면서 상호 모순적이고 불가해한 사건들을 즐기고 있다”고도 덧붙인다. <블루 벨벳>(1986)과 <트윈 픽스>(1992)처럼 필름 누아르 플롯을 따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로스트 하이웨이>에서는 의도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플롯에 매혹된다.

말하자면 <로스트 하이웨이>는 과거의 린치와 현재의 린치를 잇는 가교다. 어둠의 힘 앞에서 무기력한 빌 풀먼은 <블루 벨벳>의 카일 맥라클란의 또 다른 버전이며, 패트리샤 아퀘트는 앞서 역시 <블루 벨벳>이나 <트윈 픽스>에서 목격했던 학대받고 살해당하는 여성 캐릭터의 변주다. 하지만 <로스트 하이웨이>는 기존의 린치 월드로부터 히치콕의 <현기증>(1958)과 큐브릭의 <샤이닝>(1980)을 지나 또 다른 악몽의 세계, 더욱 끝없이 부유하는 이미지들과 만나 새로운 지도를 그린다. 미로처럼 복잡하고 조금씩 어긋나는 시간, 그리고 과감한 생략과 비약 속에서 혼란은 가중되지만 그 이미지와 사운드의 놀라운 향연은 ‘영화’ 그 자체의 경계와 대면하게 만든다. <포지티프>의 미셸 앙리는 <로스트 하이웨이>를 두고 “영화가 가 닿을 수 있는 마지막 경계가 되는 그 어떤 것에 접근한다는 매우 강한 느낌을 준다”고 썼다.


데이비드 린치가 <로스트 하이웨이>에 대해 가장 최근에 한 얘기는 그가 쓴 에세이집 <데이비드 린치의 빨간방>에 아래와 같이 실려 있다.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 동안 나도 모르게 O.J.심슨 재판에 남다른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 영화는 그 사건과 어떤 식으로든 연관돼 있을 것이다. 심슨을 보고 놀란 점은, 그가 미소도 짓고 때론 웃음을 터트리기도 한다는 사실이었다. 나중에 그는 아무 문제도 없다는 듯 태연히 골프를 치기도 했다. 나는 한 인간이 정말 살인을 저질렀다면 어떻게 삶을 이어갈지 궁금했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나는 공포를 회피하려고 마음이 스스로 기만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심리학 용어인 ‘심인성 기억상실’이라는 말을 접하게 됐다. <로스트 하이웨이>는 그런 심리현상에 대한 영화다. 그리고 영원한 비밀은 없다는 점을 지적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주성철 씨네21 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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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를 만나다]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의 허진호 감독

8월의 ‘작가를 만나다’에서는 ‘2011 시네바캉스 서울’ 시즌에 맞춰 특별행사로 멜로의 제왕 허진호 감독과 함께 했다. 일찌감치 매진사례를 기록, 객석을 꽉 채운 가운데 그의 초기작 <8월의 크리스마스>와 <봄날은 간다>가 연이어 상영되고 상영 후에는 영화를 만든 허진호 감독과 <봄날은 간다>의 주연배우인 유지태씨가 함께 자리하여 관객과의 뜻 깊은 시간을 가졌다. 허남웅 프로그래머의 진행 하에 사랑과 시간, 기억에 대한 열띤 이야기들이 오가며 후끈 달아올랐던 그 현장을 전한다.


허남웅(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방금 보신 영화 <봄날은 간다>는 올해로 개봉 10주년을 맞았다. 오늘의 행사를 위해 중국에서 어제 오신 허진호 감독과 주연배우인 유지태씨를 모셨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
허진호(영화감독): 늦게 와서 마지막 장면만 봤는데, 옛날 생각이 났다. 저에게 중요한 영화인데 이렇게 많은 분이 와주셔서 감사하다.
유지태(배우): 제가 시네마테크를 종종 오는데, 이렇게 많은 관객이 온 걸 처음 봤다. 역시 스타감독님이 오니 그런 것 같다. 제 인생의 영화를 시네마테크에서 상영한다는 게 기쁘고 10년 전 영화를 같이 보고 이야기 나눌 수 있어 행복하다.

허남웅:
<봄날은 간다>는 사운드 엔지니어에 대한 아이디어를 먼저 생각하고 이야기를 구상한 걸로 안다. 어떻게 이 이야기를 생각하셨는지?
허진호: 요즘은 이렇게 영화를 만들지 않는데 예전엔 단편적인 생각들이나 어떤 정서들을 쌓아가면서 이야기를 만든 것 같다. 시작은 노래에서 했다. 어머니가 자주 부르시던 18번이다. 그 노래가 가지는 어떤 멜로디와 가사가 저에게 정서적인 느낌으로 왔었던 거 같다. 그래서 그걸 영화로 만들면 어떨까 하다가 우연히 KBS ‘직업의 세계’에서 사운드 엔지니어 다큐멘터리를 보고 영감을 받아 시작했다.

허남웅: 여기서 나오는 상우는 순수하고 착한 영혼인데 사랑에는 미숙한 인물이다. 그 인물을 봤을 때 어떠한 느낌에서 출연을 결심했는지?
유지태: <봄날은 간다>는 참 좋은 영화가 될 거라 생각해서 출연했다. 그 당시에는 최고의 감독님이셨기 때문에 (웃음) 아 물론 지금도 최고다. 그리고 배우로써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우를 보면 저의 모습이 영화 안에 담겨 있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 다시 찍는다면 다시 표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허남웅: 감독님은 유지태란 배우의 어디서 상우를 봤는지, 처음부터 염두에 두신 건지?
허진호: 처음부터는 아니다. 그 당시 배우를 먼저 생각하진 않았다. 전에 찍은 영화도 그렇고 시나리오를 쓰고 나서 어떤 배우랑 할까 고민했다. 그리고 원래 영화가 연상연하구조가 아니고 같은 나이의 커플이었는데, 갑자기 연상연하로 가면 어떨까 그런 걸 생각하면서 지태를 생각했다. 제 기억에 처음 만났는데 한 시간에 두 마디 했던 것 같다.

허남웅:
<봄날은 간다>에서 유지태 배우는 감정을 드러내는데 미세한 연기를 하고 대사도 중의적인 느낌이 많은데 연기 하면서 어떠한 식으로 상우를 준비해갔는지 궁금하다.
유지태: 감독님이랑 카페에서 말없던 시간이 세 달이 되니 무엇을 원하시는지 알겠더라. 감독님의 연출스타일이 배우를 지켜보는 방식을 취한다. ‘저 사람은 뭘 가지고 있을까’ ‘저 사람은 컷을 부르지 않으면 무슨 반응을 할까?’ ‘저 사람의 실제성격은 무엇일까?’ 이런 걸 많이 탐구하신다. 그래서 때로는 컷을 안 해서 굉장히 당황하고 불쾌한 의사를 표현하는 배우들도 있었다. 그만큼 예민하고 섬세한 분이다. 그래서 호흡 맞추려고 굉장히 노력했다. 그런 방식이 재미있었다.

허남웅: 유지태 배우는 대사도 만들었다고 하는데, 사실은 좋은 영화는 인상적인 대사들이 많이 있다. 영화 개봉 후에 광고에도 대사가 많이 쓰였는데 특히 기억나는 대사가 있다면?
유지태: <봄날은 간다>의 작업방식은 기존의 영화제작방식과 차이가 있었다. 기억을 수놓는 듯한 작업이다. 만든다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모여서 순간, 기억 그리고 공간을 담는다. 마치 다큐멘터리 형태 같다. 그래서 제가 기억하기로는 대사들이 대체적으로 수정되고 바뀌었다. 리허설을 통해 만들어졌다. 근데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이건 대본에 있던 대사다. 나머지는 리허설 하면서 감독님, PD, 스태프, 배우의 머릿속에서 나온 대사들이다.

허남웅: 이 영화가 재미있는 지점은 인물의 감정들을 사운드로 자연의 소리로 표현을 한다. 그런 아이디어는 사운드 엔지니어라는 출발에서 이미 생각을 하신 건지 아니면 헌팅을 다니면서 이렇게 하면 좋겠다라고 생각하게 된 건지?
허진호: 헌팅 하면서 생각했다. 파도소리를 헤어질 때 넣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안 했던 것 같다. 헤어질 때는 쓸쓸한 바닷가가 낫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허남웅: 개인적으로 유지태 배우의 연기관이 들어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은수네 집 침대에서 자다가 떨어지는 장면이다. 그때 머리는 정말로 자다가 일어난 사람 같았다. 그럴 싸 한 게 아니라 그래야 한다는 느낌이 보이는데.
유지태: 감독님을 만나면서 리얼리티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다. ‘배우가 얼마나 극에 빠져야 하는가’라는 생각을 했다. 머리 눌린 것은 순간 만들었다. 연기는 만드는 것 같다.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면 인생이 괴롭다. 어쨌든 영화 속의 리얼리티 그리고 배우가 얼마만큼 영화에 몰입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관객: 영화 중간에 보면 은수랑 상우가 헌팅 하다가 무덤을 보면서 은수가 저기 둘이 같이 묻히자는데 대답을 안 했다. 그 장면은 어떤 계기에서 넣으신 장면인지 미리 염두에 두고 찍은 건지 아니면 즉흥인지 궁금하다.
허진호: 그때 그 장면은 꼭 필요한 장면이라 생각했다. 죽어서도 같이 묻히는 약속. <봄날은 간다>에 나오는 가사에서도 약속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그때 배우들의 작품해석이 달랐다. 은수랑 상우 중 누가 먼저 좋아한 건지에 대한 신경전이 있었다. 그래서 제가 둘이 정말 좋아하는 거다. 누가 먼저 좋아하는 게 뭐가 중요하냐고 했다. 그 당시에 행복한 순간 이런 걸 생각했는데 그 대답을 왜 안 했는지는 지태씨에게 듣고 싶다.
유지태: 갑자기 당황스럽다. 신경전이라고 표현하셨는데 그런 것 보다 이제 영화를 어디까지 생각해야 하는 건지에 대해 고민을 했었다. 영화 속 주인공 남녀가 사랑을 하면 진짜 사랑을 해야 하는 건가? 그래서 분위기를 조장하는 영화들도 있다. 씬을 잘 만들기 위해서, 그런 부분에 대해서 혼란스러웠다. 무덤 씬 같은 경우는 기억을 하는데 차 타고 가다가 차를 세워서 즉흥적으로 만들어진 장면이다. 즉흥적이긴 하지만 감독님이 생각을 반복했던 그림이 있어서 헌팅 하다가 저 장면이 내가 찍고자 하는 장면이다 해서 찍은 것이다.


허남웅: 마지막으로 소감과 앞으로 계획을 듣고 이 자리를 마치겠다.
유지태: <봄날은 간다>를 여러분들과 같이 보고 이야기해서 너무 좋았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반복되어서 소설 중에 『사랑을 묻다』라는 소설이 기억난다. 사람이 싸울 수 없는 것은 자부심이라더라. 세상에는 많은 가치관도 있고 트렌드를 따르는 대중도 있는데 이렇게 영화를 고집하고 이런 작품을 만들어서 저는 자부심을 느낀다. 앞으로도 이런 작업을 했으면 좋겠다.
허진호: <봄날은 간다>가 언제까지 기억될지 생각을 한다. 영화가 슬픈데 그런 기억들이 어떤 평온함을 주는 것 같다. 그런 기억과 평온을 주는 영화로 계속 기억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정리|정태형(관객에디터) 사진|정은정(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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