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영작 리뷰

헝가리 영화에 대한 오해를 넘어서

유운성 평론가가 선택한 헝가리 영화들

 

헝가리 영화는 여전히 한국의 영화관객들에겐 낯선 영역으로 남아 있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영화의 중추를 이룬다고 간주되는 지역들은 차치하고라도, 같은 동유럽 국가영화들과 비교해 봐도 체코나 폴란드 그리고 최근의 루마니아 영화 등에 비해 영화제나 시네마테크에서 소개되는 빈도도 훨씬 낮다. 물론 여기엔 몇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역사적으로 주도권을 쥐고 있었던 프랑스와 영국, 그리고 미국의 영화비평 담론들이 형성해 놓은 역사적 정전(canon)들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국의 영화 저널리즘과 영화 프로그래머들의 한계를 먼저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나마도 한국에서 헝가리 영화는 1960년대 유럽 모더니즘 영화의 맥락에서 수용 가능한 작품이나, 당대 서구 영화제와 저널리즘에 의해 승인된 소수의 걸작 - 주로 A급 영화제에서의 수상이나 연말 베스트 리스트가 그 기준이 된다. - 의 범위를 넘어서 이야기되는 법이 거의 없다. 또한, 미클로슈 얀초가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모더니즘 미학을혁명적’으로 계승했다거나, 얀초를 계승한 벨라 타르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수직적 영성을 수평적 물성으로 전화했다는 식의 비평은, 그간 헝가리 영화가 우리에게 익숙한 다른 서구영화의 틀을 빌려서만 수용되고 이해되어 왔다는 증거에 다름 아니다. 얀초와 타르가 현대 헝가리 영화를 대표하는 거장들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한국에서 간헐적으로 소개되었던 이슈트반 사보나 마르타 메사로슈를 잠시 논외로 한다면) 이들의 영화 주위만을 맴도는 과정에서 형성된 헝가리 영화에 대한 모종의 그릇된 편견 - 예컨대, 대평원을 무대로 한 알레고리적 서사를 담아내는 롱테이크 미학 - 이 강고한 영화적 전통을 갖고 있는 이 동유럽 국가의 영화에 대한 이해의 폭을 과도하게 좁혀 버렸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여담으로 덧붙이자면, <카사블랑카>(1942)로 잘 알려진 마이클 커티즈는 헝가리 출신의 망명 감독으로, 그는 무성영화시기 헝가리와 오스트리아에서 수십 편의 영화를 연출한 베테랑이었다. 그의 헝가리식 이름은 미하이 케르테스이다.)

 

 

이상과 같은 상황이 단번에 개선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번에 소개되는 세 편의 작품은 헝가리 영화에 대한 그간의 오해와 편견을 바로잡기 위한 최소한의 기회는 제공해 줄 수 있으리라 본다. (아쉬운 점이라면 헝가리 아방가르드 영화를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자, 벨라 타르가 얀초와 더불어 가장 존경하는 헝가리 감독으로 꼽곤 하는 가보르 보디의 3부작 영화 <나르시스와 프시케>(1980)를 상영시간(270) 문제로 프로그램에 넣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헝가리 평론가들이 가장 사랑하는 영화들이기도 하다. 21세기가 시작되던 2000, 헝가리 평론가들을 대상으로 역대 최고의 헝가리 영화 12편을 꼽는 설문이 이루어졌을 때, 1위를 자치한 것은 얀초의 <검거>(1965)였고, 이에 뒤이어 각각 2위와 3위를 차지한 작품이 바로 같은 해(1971)에 발표된 카로이 마크의 <사랑>과 졸탄 후사릭의 <신밧드>였다. (타르의 의심할 바 없는 걸작 <사탄탱고>(1995)가 순위에서 빠진 것은 좀 기이한 일이다.) 지면 관계상 이 글에서는 이번에 상영되는 작품들 모두를 다루기보다는 헝가리 뉴웨이브를 논하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기관인 벨라 발라즈 스튜디오를 소개하고 <신밧드>의 감독 졸탄 후사릭의 영화세계에 대해서 약술하려 한다.

헝가리 예술평론가 벨라 발라즈(1884~1949)의 이름을 딴 벨라 발라즈 스튜디오(이하 BBS로 표기)가 설립된 것은 1959년으로, 처음에는 영화인들의 친목을 위한 필름클럽으로 출발했지만 1961년부터는 영화제작을 위한 설비를 완비하고 젊은 영화인들에게 자유로운 방식으로 실험적인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독립 스튜디오로 거듭났다. 이 스튜디오에서 작업한 영화인들이 후일 영화산업계로 흘러들어가면서 새로운 헝가리 영화의 물결을 이끄는 주역들이 되었는데, 그 가운데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들이 바로 이슈트반 사보와 벨라 타르다. (1960년대 초 사보의 초기단편들은 BBS에서 제작된 것이었다. 타르의 단편들에서 가능성을 본 BBS는 당시 22세에 불과했던 그가 장편데뷔작 <패밀리 네스트>(1977)를 만들게끔 자금을 댔다. 앞서 언급한 가보르 보디는 BBS의 핵심적인 멤버 가운데 하나였고 그의 데뷔작 <아메리칸 토르소>(1975) 역시 BBS에서 제작되었다.)

 

 

 

BBS 초기라 할 1960년대에 가장 높은 평가를 받은 작품 가운데 하나가 졸탄 후사릭의 19분짜리 실험영화 <엘레지아>(1965)였는데, ()을 소재로 삼아 문명의 의미를 탐색하는 이 단편에서 구사된 시적 몽타주는 사실주의적 스타일이나 (당시 이미 높은 평가를 받고 있었던) 얀초의 알레고리적 영화와는 차별화된 헝가리 영화미학의 길을 예견케 하는 것이었다. 그가 BBS에서 연출한 다른 단편 <카프리치오>(1969)는 시간의 흐름과 그에 수반되는 변화를 눈사람을 매개로 그려낸 또 한 편의 영상시였다. 폭넓게 말해, 변화와 소멸을 피할 수 없는 인간존재가 경험하는 현상학적 시간과 가차 없이 흘러가는 물리적 시간 사이의 대비에서 비롯되는 긴장이야말로 후사릭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주된 모티프라 할 수 있으며, 이는 20세기 초 헝가리의 모더니스트 작가 기울라 크루디의 원작을 각색한 후사릭의 장편데뷔작 <신밧드>에서 그의 시적 스타일과 거의 완벽하게 결합되었다. (죽기 직전의, 혹은 이미 죽은 것으로 추정되는) 방탕아 주인공의 회상을 따라 흘러가는 이 영화에서 과거, 현재, 미래를 가늠케 하는 시간적 지표들은 점점 무의미해지고 영화는 경험적 시간의 결정(結晶)이라 할 만한 인상의 총체로 화한다. 후사릭이 <신밧드>를 발표했을 때 그의 나이는 이미 40세였다. 그리고 그가 두 번째 장편 <촌트바리>(1980)를 내놓기까지는 또 10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이 영화의 상업적 실패로 좌절한 그는 술독에 빠져들었고 결국 이듬해(1981)에 세상을 떠났다. <신밧드>는 자국 내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국제적으로는 소수의 영화제 상영을 제외하고는 거의 소개되지 않았고 - <신밧드>와 같은 해에 발표된 카로이 마크의 <사랑>은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어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 - 21세기에 들어서야 영국을 비롯한 영어권 관객들에게 소개되며 재조명되었다. 그리고 영화가 처음 발표된 지 40년이 넘게 지난 2013, 마침내 한국의 관객들도 이 비운의 걸작을 마주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유운성 /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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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단계> 상영 후 유운성 영화평론가 시네토크 지상중계

 

우리 시대의 프랑스 영화 특별전이 한창이던 지난 12 1, 영화제 속의 작은 특별전으로 마련된 크리스 마르케 오마주섹션 상영작 중 하나인 <5단계> 상영이 끝난 후 유운성 영화평론가와 함께하는 시네토크가 이어졌다. <5단계>를 중심으로 크리스 마르케의 영화세계에 대해 짚어본 시네토크 현장을 여기에 옮긴다.

 

 

유운성(영화평론가): 방금 보신 크리스 마르케 감독의 <5단계>란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크리스 마르케는 지난 729일 아흔 한 살의 나이로 타계했고, 그를 추모하기 위해 이번 서울아트시네마가 마련한 우리 시대의 프랑스 영화 특별전에서 5편의 영화를 모아 작은 추모 영화제를 하고 있다. 워낙 눈에 띄지 않는 부분이기도 한데, <5단계>를 처음 볼 때 혹은 거듭해서 볼 때조차도 간과할 수 있는 두 가지 부분이 있다. 이 시간을 이용해 그 부분에 대해 말해보겠다.

 

< 5단계>는 로라라는 여자가 그녀의 남자친구가 남긴 오키나와에 대한 전략 게임을 해독하는 내용이고 그 중간에 크리스라는 내레이터가 등장한다. 무엇보다 영화 초반에 중요한 장면이 있다. 카메라가 지하철 문틈으로 창 밖을 찍은 장면이 있는데 여기서 이제 나는 이미지를 만드는 자가 아니라 다른 이들의 이미지를 해독하는 자다라는 말하는 부분이다. 그 말처럼 영화는 오키나와 전략 게임과 관련한 여러 푸티지들을 다시 보고 해독하는 과정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영화는 크리스라는 인물의 편집의 결과물이다. 영화는 처음부터 크리스 혹은 크리스 마르케 자신이 편집한 것이라는 보여준다. 즉 도입부에서부터 이런 구조가 제시된다. 영화의 시작은 마우스를 조작하는 손을 네 개의 숏으로 나눠서 보여주는 장면이다. 대체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한 사람의 손이 아니라 두 사람의 손이기 때문이다. 자세히 보면 마우스를 움직이고 있는 손은 시간적으로 다른 위치를 점하고 있는 다른 두 개의 손이고, 이를 교차 편집해서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마도 한 손은 크리스 마르케 자신의 손일 것이고, 다른 손은 로라의 손일 것이다. 이것이 <5단계>이라는 제목이 뜨기 전의 도입부다. 최종적으로 드러나긴 하지만 여자는 사라졌고, 그녀의 남자친구가 남긴 게임과 오키나와에 대한 이미지들만 남는다. 그것을 크리스라는 인물이 편집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로라가 있는 자리를 현재로 인식하고 보게 된다.

 

두 번째로 영화에서 분명하게 밝히고 있는데도 간과되거나 무시하게 되는 부분은 주인공인 로라의 이름이 오토 프레밍거의 1944년 작인 <로라>의 이름을 따왔다는 점이다. 그 영화에서 이야기를 빌려온 건 아니지만, 과거에 다가간다는 문제에 대해서는 두 영화 간에 흥미로운 대응 지점이 있다. <로라>는 로라라는 이름의 여자가 죽은 후 그녀의 과거를 쫓는 어느 한 저널리스트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필름 느와르다. 그녀의 죽음 이후 그녀가 누구인지는 글쓰는 사람의 회고를 통해서 형성된다. <5단계>에서는 성별 역전이 있다. 회고를 하는 쪽이 여자다. 로라라는 여자는 사라진 남자친구와 그가 만든 게임을 분석한다. 그리고 그녀의 직업은 글 쓰는 사람이고, 그녀의 남자친구는 게임 개발자, 즉 이미지와 형상을 다루는 사람이다. 그래서 < 5단계>는 로라라는 여성의 진술과 크리스의 목소리가 이끌고 가는 예민한 관찰자의 여성적 다큐멘터리다.

 

또한 프레밍거의 <로라>는 플레시 백으로 펼쳐지는 과거를 미심쩍게 그려냄으로써 통상 영화에서 보여주는 플레시 백이라는 장치가 기만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영화를 통해 그려내는 과거가 신뢰할 만한 것인가라는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다. 반면에 <5단계>는 과거의 전쟁 이미지가 많은 부분을 구성하고 있고, 그런 기존의 이미지들을 분석하고 비평하고 해야 한다고 말하는 에세이적인 영화다. 또한 구스타보란 군인의 이미지를 다루는 장면에서 알 수 있듯이 이미지로 재현되는 죽음이라는 것의 모호함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모티브이다. <5단계>는 누군가 사라진 시점부터 시작하고, 죽음이라는 사건 자체가 아니라 죽음이라는 사건 이후의 삶의 자세에 대해서 말하는 영화다. 두 영화를 모두 보면 알겠지만 < 5단계> <로라>를 반토막 내서 기이하게 리메이크한 영화라고도 할 수 있다.

 

처음에도 말했듯 <5단계>에 대해서 말할 때 작업 프로그램에 대한 선언처럼 들리는 이제 나는 내 자신이 만든 이미지가 아니라 다른 이미지를 해독하는 자다라는 말은 가장 중요한 특성 중 하나다. <아름다운5> 같은 영화는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간 현장성이 강한 작품이다. 반면에 < 5단계>는 크리스 마르케적 스튜디오 영화다. 몇몇 이미지를 제외하고는 기존의 영상물을 재활용하거나 본인이 조작해서 만들어낸 이미지들이다. 누군가가 남긴 온갖 기록물들을 가지고 작업한 영화, 이것은 파운드 푸티지 작업으로 이미지를 재활용해서 만드는 영화라는 아이디어다. 이런 생각은 작업자의 스튜디오에서 이루어지는 미래적 영화에 대한 아이디어다. 크리스 마르케는 1990년대 이후에 텔레비전, 인터넷 등을 이용해 이런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실천에 옮기는 감독 중에 하나였다. 영화 감독의 지성이 이미지에 담기게 될 것이라는 기존의 견해에 반박하며 지성은 코멘트나 편집을 해서 만들 수 있는 원재료 자체에 있다는 입장으로, 촬영의 과정이 제거되고 컴퓨터를 이용해 활용 가능한 텍스트, 이미지, 사운드를 조합하는 것이다.

 

하나 더 말해야 할 건 영화적 지위에 대한 것이다. <5단계>는 영화적 미장센이라는 것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영화는 카메라 앞에 놓이게 될 대상들을 어떻게 배치할 지가 문제가 아니라 관객, 시청자의 눈에 보이는 이미지들을 어떻게 배치할 지가 문제라는 얘기다. 이런 식의 영상들을 만들어 내는 작업은 카메라 앞에 무엇을 어떻게 놓을지는 중요한 게 아니다. 심지어 로라가 사이버 스페이스를 유영하는 장면은 흡사 미디어 아트 작품 같다. 영화 제작 방법론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기존의 관점에서 봤을 때 크리스 마르케는 사진 작가나 영화 감독이라고 규정하기 힘들다. 그렇다고 설치 미술가나 미디어 아티스트라고 하기도 힘들다. 여기서 그를 영화 감독이라고 부르고 싶다면 영화 감독이라는 개념이 달라져야 한다. < 5단계>는 한 편의 영화라는 형태로 주어진 작품이기 때문이다. 크리스 마르케를 영화 감독이라고 했을 때는, 기존 이미지와 사운드를 재활용해서 편집하기도 하고 비영화적인 요소들을 포괄적으로 활용해서 화면에 배치하는 일종의 기호 디자이너라는 개념으로 이동한 것이다.

 

크리스 마르케의 <5단계>라는 영화를 한 마디로 얘기하자면 어떻게 얘기할 수 있을까? 영화는 마우스를 움직이는 손으로 시작한다. 영화에 나타나는 사물들을 읽어보면 이 영화는 쥐와 고양이 사이에 있는 올뻬미 같은 영화다. 마우스로 시작했던 영화는 스크린 세이버라는 고양이로 끝나고, 이 공간에서 가능한 이미지의 존재론을 탐구하는 지혜의 올빼미가 있다. 크리스 마르케의 영화에서 고양이의 기능은 여러 가지일 텐데, 여기서는 고양이를 스크린을 구하는 자라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영화가 비영화적인 이미지를 통해 영화 이후의 시대에 진입한다고 해도 여전히 핵심은 영화가 세상과 역사하고 연결고리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이 사이에서 고양이라는 존재는 쥐라고 하는 새로운 세계로 우리를 안내하는 전령과도 같은 존재다. <5단계>는 사이버 스페이스에서도 여전히 역사하고 만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영화이자 포스트 시네마의 정치학이다. 다른 기회가 있다면 크리스 마르케가 이 영화에서 여러 영상들을 다루는 방식과 내부적 작업으로 역사적인 이미지에 접근해가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 싶다.

 

정리: 최혁규(관객에디터) | 사진: 박지연(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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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신교환: 이사키 라쿠에스타-가와세 나오미> 상영 후 이어진

영화평론가 김영진과 유운성의 비평교감

 

‘2012 시네바캉스 서울’ 영화제가 한창인 지난 8월 2일 저녁, 이사키 라쿠에스타와 가와세 나오미의 서신교환 프로젝트의 상영이 끝나고 서신교환 섹션 특별행사로 마련된 첫 번째 비평교감 자리가 이어졌다. 감독들이 영화로 서신을 주고받았듯 국내 비평가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하는 자리다. 영화평론가 김영진과 유운성이 첫 번째 주자다. 두 비평가가 서로에 대한 깊은 존경으로 주고받은 영화와 비평에 대한 생각들의 일부를 여기에 옮긴다.

 

 

 

김영진(영화평론가, 명지대 영화뮤지컬학부 교수): 서신교환 프로젝트의 작품을 오늘 처음 보았다. 이런 순간에 늘 반성하는 거지만 ‘아, 이런 영화를 너무 안보고 있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영화에 대해 즉자적으로 말하자면, 이사키 라쿠에스타 감독의 영화는 흥미롭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반면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작품은 왜 저렇게 찍었는지 잘 모르겠더라. 평소 가와세의 극영화를 좋아하고 그녀가 비범한 감독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작품은 나르시시즘의 극치를 달리는 것 같다. 반면 라쿠에스타 감독의 작품은 굉장히 흥미로웠다. 여백이 굉장히 많고. 좀 멋있게 이야기하자면 ‘이미지에 대한 상상력은 접혀있는 부채와 같다’는 벤야민의 말이 떠올랐다. 라쿠에스타의 작품은 자신의 기억이나 주변의 일상적인 자취들에서 시작하지만, 타자에 대한 공감의 의지가 마구 확산되며 에너지를 준다는 느낌이다. 그런데 가와세는 거기에 전혀 응답을 안 해주더라.

유운성(영화평론가, 전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서신교환 프로젝트는 스페인의 바르셀로나 현대문화센터에서 기획해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페르난도 에임브케와 김소영의 프로젝트를 제외하고는 편지를 주고받는 사람 중 하나는 스페인 감독이다. 아무래도 스페인 감독들의 경우 본인들이 생각할 때 에세이적이고 서신적인 양식에 걸맞겠다고 생각한 감독들을 참여시킨 반면, 해외 감독들의 경우 그런 점도 고려하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이름 있는 감독들을 선정했다. 그래서 빅토르 에리세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혹은 호세 루이스 게린과 요나스 메카스의 서신교환처럼 전체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경우도 있고, 한쪽은 열심히 하는데 다른 쪽이 심드렁해서 균형이 안 맞는 경우도 있다. 혹은 서로가 각자의 표현에 집중해버려서 편지 한 통씩만 보내고 끝난 경우도 있었다. 그런 부분이 오히려 흥미롭다. 주고받는 서신의 양에 구속도 없었고, 처음에 편지를 어떻게 주고받느냐에 따라 어떤 결과물이 나오는지 보자는 취지의 프로젝트라고 생각한다.

김영진 평론가의 말씀대로 라쿠에스타는 자신의 사적인 부분들을 자신이 모르는 해외 감독에게 보내며 교류가 생기기를 바랐던 반면, 가와세의 경우 편지에 대한 응답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생활을 기록한 영상들을 보내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오히려 라쿠에스타가 이를 보고 자신의 서신을 진행시키는 방식이 되었다. 예를 들면 가와세가 자신의 고향에서 찍은, 기도하는 모습이나 아이의 모습을 보내자 라쿠에스타가 그걸 자신의 고향에 대한 이야기로 연결시키는 식이다. 서신교환 프로젝트는 어느 한 쪽이라도 상대방의 편지를 보고 이어나가겠다는 의지가 없으면 잘 안되더라. 위태위태하면서도 기어이 상대방이 보낸 것에서 아이디어를 끌어내고 연결시켜 성공적인 프로젝트를 만들어낸 예가 게린과 메카스였던 것 같다.

 

김영진: 이야기를 확장시키기 위해서 사적인 언급을 좀 할 테니 이해해주시라. 제가 몇 년간 일부러 ‘독립영화만 써보자’하는 결심으로 글을 쓰다가 별로 큰 성과 없이 올해에 그만두었다. 그리고 한동안 GV 진행도 많이 했고. 그런데 별로 느는 것 같지는 않고, 오히려 사람들과 엮이면서 평이 둔탁해지더라. ‘이런 부분은 좋지만, 이런 부분은 아쉽다’는, 가장 맥 빠지는 평론을 쓰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얼마 전 선배 평론가와 여타 영화인들과 가진 술자리에서도 이걸로 굉장히 공격을 받았다. 그런데 사실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지는 영화들을 이야기 할 때는 대상이 굉장히 협소해진다. 지지하거나 풍부하게 해석할 영화가 그리 많지 않다. 게다가 약간만 서운한 소리를 해도 감독들은 엄청 뭐라 그런다. (웃음) 그런데, 개인적으로 유운성 평론가 블로그에 자주 들어가는 편인데, 가끔 ‘어떤 한국 영화를 봤는데 완전 쓰레기다’라는 글이 올라오기도 한다. 또 어떤 기자나 평론가가 그 영화를 칭찬하는 글을 썼다고 막 뭐라고 해놓더라. (웃음) 유운성 평론가는 특히 외국에서 영화 관련 네트워크를 만들었던 분인데, 우리나라의 비평가들은 어떤 스탠스를 갖는 게 좋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다.

유운성: 기본적으로 저널리즘 비평은 스탠스가 분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씨네21’이나 ‘무비위크’를 읽는 독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이번 호 잡지를 보고 어떤 영화를 볼지 말지 결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이런 미덕이 있지만 이런 단점도 있다’고 쓰는 것은 별 도움이 안 된다. 영화가 어느 정도 단점이 있지만 봐야 하는 영화라고 생각하면 모든 단점에 눈 감는 게 맞고, 적절히 잘 만들어지긴 했지만 볼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면 아예 안 쓰거나 이 영화를 볼 필요가 없다는 것을 입증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즘 평들을 보다 보면 애매한 부분이 많다. 이 사람이 지금 대학원 페이퍼 쓰는 기분으로 글을 쓰고 있는 건지, 아니면 이 영화를 봐야 하는 일반 독자들을 상대로 쓰고 있는 건지. 혹은 이 사람은 이 영화가 어떤 가치가 있다고 자기 스스로 판단을 내린 건지 아닌 건지 잘 알 수 없는 경우가 있다.

또한 영화를 보기 전에 이미 평이 결정되어 있는 경우를 많이 본다. 가령 올해도 신작이 나왔던 홍상수 감독의 경우가 있다. 분명 홍상수의 영화는 전체적으로 달라지고 있는데, 대략 <옥희의 영화>나 <하하하>쯤부터 그의 영화는 달라지지만 그의 영화에 대한 평들은 점점 지겨워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홍상수의 영화가 어떤 내적 변화를 겪고 있는지, 혹은 어떤 프로그램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영화를 꽤 많이 만든 감독임에도 불구하고, 홍상수 영화의 미학적 프로그램이라는 측면을 파고들어간 평을 본 적이 없다. 대신 매 영화가 나올 때마다 이 영화가 왜 홍상수의 새로운 걸작인지를 입증하기 위한 레토릭들만 난무하기 때문에 홍상수 영화에 대한 평이 지겨워지는 것 같다. 그리고 평론가가 다른 평론가를 비판할 때 상호간에 정당하게 실명으로 의견교환을 할 수 없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한다. 비평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하는 작업이다. 저널에 실린 한국 평론들을 읽어보면, 남의 글을 칭찬할 때는 실명을 쓰는 반면 비판할 때는 ‘혹자는’이라고 말하며 넘어가는데 이건 좋은 태도가 아닌 것 같다. 물론 솔직하게 쓰다 보면 적이 많아지긴 하지만, 인신 공격성 표현이 아닌 이상 정당한 공방 때문에 등을 돌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다지 만날 필요가 없는 사람이므로 안심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한국 감독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상황에서, 그의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가 인간적인 관계가 끊어진 경우 별로 아쉽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 반면 그런 언급 때문에 인간적인 관계가 돈독해지는 경우도 있었고, 그런 사람은 감독으로서도 강한 사람인 것 같다.

 

 

유운성: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전주영화제 해임 사태 이후 김영진 선생님이 한겨레에 쓰신 글이 있었는데, 그와 관련해서 말씀을 드리고 싶다. 선배 평론가가 먼저 연락을 주셔서 ‘이런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보신 건 처음이었고, 일주일 정도 고민을 해서 메일을 드렸다. 그 답장을 쓰는 것 자체가 굉장히 좋은 경험이었다. 오늘 편지 영화들을 봤는데, 한국에서 평론가들끼리 만나는 대담 자리는 종종 있지만 편지를 교환하는 일은 거의 없는 것 같다. 혹시 그런 기회가 있을까, 기회가 있다면 그런 걸로 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김영진: 그런 기회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자극이 되고. 좀 더 부연 설명을 드리자면, 유운성 평론가가 ‘독립영화’라는 계간지에 이서 감독의 <사람을 찾습니다>라는 영화에 대한 글을 실었었다. 그 관점이 흥미로워서 이것저것 물어봤더니, 일주일쯤 지나서 그 자체로 한 편의 글이 될 만한 답변이 왔다. 깜짝 놀랐고, 저는 그걸 인용해서 같은 잡지에 글을 썼다. 이런 식의 교환이, 오프라인으로는 어렵겠지만 온라인에 일종의 거점기지를 만들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유운성 급의 평론가가 5명만 모여도 화제를 끌 것이다. 템포가 좀 늦어도 상관 없으니 거점기지가 있어서 레터 투 레터를 연재한다든지, ‘쓰레기’ 같은 가감 없는 표현들이 오가는 평들이 실린다면 (웃음) 사람들이 많이 찾아 읽을 것 같다.

 

유운성: 불과 20년 전, 휴대폰도 인터넷도 없이 의견을 주고 받을 때 어쩔 수 없이 시간차나 거리가 존재하던 시기가 지나고 나자 사람들이 오히려 그 시간차나 거리를 요구하게 되는 것 같다. 커뮤니케이션은 많아지지만 정작 ‘대화’라고 할 수 있는 건 줄어든다는 의식이 많이 있는 것 같고, 그래서인지 오늘 보신 서신교환 프로젝트를 포함해서 지난 10년 간 의도적으로 편지 형식을 빌린 프로젝트가 많이 나왔다. 게다가 그런 프로젝트들이 좋은 결과를 보였다는 점도 흥미롭다. 실제로 2002년 무렵에 발간된 <무비 뮤테이션스Movie Mutations> 라는 책이 있다. 조너선 로젠봄과 에이드리언 마틴이 공동 편집한 책인데, 같은 세대에 태어난 평론가들이 서로에게 오늘날의 시네필리아에 대해 쓴 편지와 답신들로 시작한다. 또, 비평적인 작업이 창작의 결과물을 만든 예도 있었다. 올해 전주에서 틀었던 <드라이레벤>이라는 영화가 그 중 하나다. 각각 대략 열 살씩 차이가 나는 세 명의 독일 감독이 6개월 동안 편지를 통해 의견을 교환하고, 셋이 함께 만들 수 있는 프로젝트에 대한 아이디어도 발전시켜 ‘한 마을의 사람들’이라는 아이디어로 각자 90분짜리 장편을 옴니버스로 만든 영화다. 최근 이루어진 이런 식의 공동작업 중에 가장 성공적인 결과물이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창조적인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거리가 필요하다는 의식이 생긴 것 같고, 그런 수단으로 편지라는 방식이 돌아오는 것이 흥미롭다. 그래서 김영진 평론가가 말씀하신 대로 평론가들끼리도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져서 비평적 공동작업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김영진: 그러면 한 번 만들어보도록 하자, 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유운성 평론가도 약속하신 거다. 아까 창을 휘두르지는 않겠다고 하셨으니까 품위 있고 격조 있는 서신을 교환하는 자리로. (웃음) 사실 그런 걸 영화제가 주축이 되어서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한다. 홈페이지가 1년 내내 열려있는데도 영화제 때만 쓰지 않나. 거기에 비평을 모아서 뭔가 기획을 하려는 생각을 왜 하지 않는지 의아하다.

 

유운성: 이상하게 오프라인에 글을 쓰는 것에 대한 권위부여가 너무 큰 것 같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블로그를 운영하는 비평가도 많지 않지만, 운영을 한다고 해도 오프라인에는 정련된 글을 발표하는 반면 블로그에는 ‘오늘 시사회를 갔다 왔는데 배우가 아름답더군요’ 뭐 이런 이야기만 한다. (웃음) 개인적으로 해외 평론가들의 블로그나 SNS에 자주 들어가보는 편인데, 그 안에서 평론가들끼리 논쟁이 개진되는 경우도 많이 보았다. 한 평론가가 블로그에 ‘지금 이 영화제에서 어떤 영화를 봤는데 이렇고 저렇다’라고 써놓으면 그 밑에 덧글을 다는 사람들이 거의 현역 평론가들이다. 그러면서 활발하게 의견 교환이 되는데, 한국에서는 일단 평론가들이 블로그에 덧글 다는 것 자체를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 달더라도 ‘잘 읽었습니다’ 같은 하나마나한 덧글이 대부분이다. (웃음) 21세기 십 년이 넘었으니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오프라인 창구도 활용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실제로 미국 쪽은 우리처럼 등단제도가 있는 것이 아니니까, 아마추어 평론가들이 온라인상에 비평적으로 유용한 글을 쓰다가 저널에 의해 발굴되는 경우도 많다. 반면 한국은 평을 쓰려면 절차가 좀 있어야 하고, 온-오프라인의 위계와 장벽도 있다. 평론가들끼리도 많은 교류가 있었으면 좋겠고, 평론가와 관객, 혹은 아마추어 필자들 사이에서도 교류가 있어야 할 것 같다.

김영진: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저도 어떤 형태로든 덧글을 달아본 적이 없다. 인터넷에서 노는 걸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내 시간을 빼앗아가는 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이야기를 하니 모순적이기도 하다. (웃음) 어쨌든 오늘 우리끼리만 이야기 한 건 아닌 것 같고, 관객분들도 함께 생각하고 들어주신 게 느껴진다. (웃음) 늦은 시간까지 들어주셔서 감사드린다.

 

정리: 박예하(관객 에디터) 사진: 정지은(자원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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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왕 2012.08.07 23: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 없기로 유명한 블로그지만 이런 글에는 잘 읽었다고 일단 댓글 하나.
    팀블로그도 좋지만 일단 김영진 평론가도 블로그 하나 하면 재밌겠는데.................

  2. orouet 2012.08.08 10: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묻어서 저도 댓글 하나. ^^;
    김영진, 유운성 평론가의 비평교감 때는 극장을 가지 못했고 올려주신 글을 읽는 걸로 대신했습니다. 감독들 <서신교환> 만큼이나 흥미진진하네요. 덕분에 관심이 생겨 어제 장병원, 정지연 평론가의 이야기도 챙겨들었습니다. 각개전투의 상황에서 이제는 함께 다른 걸 모색해 볼 수 있음 좋겠다는 이야기가 계속 나오네요. 뭐든... 기대해봅니다. ^^

지난 7월 1일, <부드러운 살결> 상영 후 유운성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의 강연이 이어졌다. 유운성 프로그래머는 트뤼포의 초기작들 중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영화라며, 비록 개봉 당시엔 냉대를 받았지만, 이후에 재평가 받으며 트뤼포의 최고작 중 하나로 꼽히는 작품이라는 이야기로 운을 떼었다. 트뤼포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예외적으로 보이는 작품이기도 한 <부드러운 살결>에 대한 이야기를 비롯해 트뤼포 영화 세계 전반의 특징적인 면들을 짚어나간 이 날의 강연 일부를 옮긴다.

 

 

유운성(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영화평론가): 작년 미국의 필름포럼에서 <부드러운 살결>이 상영되었을 때, 짐 호버만은 이 영화를 두고 재평가되어야 할 영화라고 쓰면서, ‘가정domestic 서스펜스 영화’라고 표현한다. 개인적으로는 ‘친밀함intimacy의 서스펜스’라고 부르고 싶다. intimacy는 친밀함의 의미도 있지만 성적 의미도 갖고 있다. 이 ‘친밀함intimacy'를 가지고 트뤼포의 영화 세계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다.

 

친밀함의 서스펜스

‘친밀함’이라는 말을 정의한다면, 오직 둘 사이에서만 성립하는 관계라고 말하고 싶다. 둘 이외의 다른 어떤 관계가 끼어들거나, 보아서도 안 되고, 시각적으로든 언어적으로든, 어떤 식으로든, 둘 이외의 어느 누구에게도 노출되어서도, 알려져서도 안 되는 관계라고 생각된다. 문제는 이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을 때 두 가지 충동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내부적으로는 이 관계를 감춤과 동시에 알리고 싶어 하는 충동이 있고, 외부적으로는 그런 관계의 낌새가 있을 때 바깥의 사람들이 그 관계를 알고 싶어 하는 충동이 있다. 친밀함의 관계가 성립이 될 때, 그것은 굉장히 흥미진진한 영화적 소재가 되는데, 문제는 영화는 이 친밀함’ 담아내기에 굉장히 불편한 매체라는 점이다. 관계 외부의 듣는 사람, 듣는 기계 같은 것을 일체 허용하지 않아야하는데, 이미 카메라가 관계를 포착하는 순간 친밀함은 파괴된다. 영화는 친밀함에 굉장한 호기심을 갖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그것을 다루기 불편한 매체라는 것이다. 그래서 가장 친밀함의 관계를 맺고 있는 당사자들이 이걸 파괴하는 가장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방식은 자신들의 성적인 관계를 직접 카메라로 담아내는 셀프포르노 형식이 될 것이다.

영화는 바라보는 것, 응시 없이는 성립할 수 없기 때문에, 영화가 아무리 친밀함의 공간에 호기심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고 그것을 영화적으로 하면, 결국은 관음증적인 형식이 될 수밖에 없다. 이는 트뤼포가 가장 좋아하는 히치콕 영화 중 하나인 <이창>의 두드러진 테마이기도 하다. 트뤼포는 영화가 친밀함의 공간에 다가가려고 하면 관음증적인 것이 되거나 그 관계를 파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굉장히 잘 알았던 감독이었다. <이창>같은 영화는 이런 공간에 다가가면서 사실은 그것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의식, 죄책감이 있기 때문에 영화적으로 어떤 식으로든 변명이 필요해진다. 가령 <이창>의 제프리가 다리를 다쳐 깁스를 하고 있다는 설정은, 실체적 결함 자체가 그런 죄책감을 시각화한 것으로 보인다. 결말부에 가서 주인공이 나머지 다리까지 깁스를 한 것은 죄책감을 갖고 기어이 모험을 한 것에 대한 대가라고 할 수 있다.

트뤼포는 이런 식의 역설적인 구조를 꽤나 두려워했던 감독처럼 보인다. 트뤼포는 영화에서 베드씬 찍는 것을 꺼려했던 감독이었다. 친밀한 관계에 대해 호기심은 있는데, 패러독스도, 죄책감도 싫어했던 점들이 트뤼포 영화의 모순적인 태도들과 다양한 면모들을 만들어낸다. 트뤼포는 동료 누벨바그 감독들 중 어떤 이보다도 친밀함이라는 관계, 그 관계가 이뤄지고 있는 영화적 공간에 대해 깊이 관심 갖고 있던 감독이었다. 트뤼포의 연애영화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이 친밀함의 공간에 다가가면서 그것의 직접적인 재현을 피하려는 일련의 시도들로 정의할 수 있다. 그것을 피하기 위해 장르로 가거나 영화 스타일 자체를 전시하는 식으로 눈가림을 하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다. 뭔가 보고 싶고, 관찰하고 싶은 건 있는데, 여기에 결부되는 죄책감은 피하고 싶다는 데에 트뤼포 특유의 유아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관음증적인 형식을 취하지 않고 어떻게 친밀함의 공간으로 다가갈 것인가. 사실 이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결국 죄책감만이라도 피해야겠다고 결심하면서 나오는 트뤼포의 세 가지 해결책이 있다.

 

트뤼포의 세 가지 도피법

첫 번째는 죄책감을 덜 가지는 상태에서 다가가기이다. 이 방식은 친밀함의 공간에 개입하거나 들어가려는 사람을 어린이와 어른 사이의 어딘가에 위치시키는 것이다. 이를테면, 부부의 침실에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아이처럼 말이다. 어떤 식으로든 트뤼포는 자신의 남자주인공을 그런 식으로 가장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런 인물이 어쨌든 영화에서는 성인으로 나타나니까 사회적으로는 무능하고, 성인의 특성 가운데 일부를 결여하고 있다는 점은, 다리에 깁스를 한 주인공이라는 히치콕의 물리적인 처리방식이 심리적이고 인격적인 방식으로 처리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특히 이런 점에서 트뤼포의 ‘앙트완 드와넬 연작’의 장 피에르 레오가 굉장히 트뤼포적인 페르소나로 자리매김할 수밖에 없다.

두 번째 해결책은 친밀함이 두 사람 사이에서 성리보디는 것이라는 전제 자체를 바꾸려는 시도이다. 친밀함과 유사한 감정으로 유지되는 삼각관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쥴 앤 짐>같은 영화의 토대를 이루는 구조로, <두 명의 영국 여인과 유럽 대륙>같은 영화로까지 이어진다. 하지만 이것은 시도가 그렇다는 것이지 성공하진 못한다. 결국은 두 명의 시선으로 지탱되는 친밀함의 공간과 그걸 바라보는 카메라에 대한 메타포로 삼각관계가 등장하는데, 친밀함의 원래의 전제를 억지로 감추려고 하는 것으로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그래서 영화에서 결국은 친밀함의 공간은 사실 두 사람의 것임이 확인되고 밝혀진다. <쥴 앤 짐>은 계속해서 쥴과 카트린, 짐과 카트린으로 오가고 결국 마지막엔 동반자살이라는 아주 가혹한 방식으로 친밀함이란 둘 사이에서밖에 성립될 수 없다는 전제를 확증하고 끝난다.

세 번째 방식은 친밀함의 순간이나 관계들을 장르 안에 위치시키는 것이다. 영화 장르라는 것은 카메라가 바라보는 기계장치라는 불편함으로부터 벗어나는 이런저런 시도들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가 죽음을 기록한다는 것은 불편한 일이고, 때로는 외설스러운 일일수도 있는데, 이런 죽음이 장르, 이를테면 범죄영화나 전쟁영화, 액션영화에서는 죄책감 없이 카메라가 죽음을 기록할 수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구애의 과정을 바라본다는 것은 굉장히 민망한 일이지만, 이런 민망함을 덜어줄 수 있는 장르가 스크루볼 코미디나 뮤지컬이 될 수 있다. 멜로드라마는 기본적으로 섹스와 그것의 실패를 낭만화하는 작업이다. 트뤼포가 어떤 식으로든 차용하고 있는 이 장르들은 친밀함의 공간에 다가가기 위한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트뤼포는 친밀함의 공간의 구조를 누구보다도 호기심을 갖고서, 죄책감을 덜고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던 탓에 말씀드린 이 세 가지 도피법을 오가며 작업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래서 트뤼포의 필모그래피를 얼핏 보면 다른 누벨바그 동료들과 비교했을 때, 예술적인 연속성이 현저히 떨어진다고 여겨질 수밖에 없다. 비평가 시절에 이른바 작가정책의 주창자였던 트뤼포는, 자신이 감독이 되자 작가정책의 구원비평의 수혜를 가장 필요로 하는 감독이 되었다. 그 결과 샤브롤과 함께 가장 누벨바그적인 작가가 되었다. 고다르와 리베트는 아주 명료하게 극단적인 아방가르드 실험으로 갔고, 이른 태도는 사실 50년대 ‘카이에 뒤 시네마’ 시절에 내세웠던 ‘작가’라기 보다는 ‘예술가’의 형상이었다.

 

불편함의 정면 응시

<부드러운 살결> 같은 영화는 트뤼포 영화 경력에서 불편함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아주 드물고 희귀한 시도로 보인다. 불편함이라고 하는 것이 이 작품에 서스펜스를 낳는다. 이 영화 이전에 트뤼포가 만든 세 편의 영화 <400번의 구타>, <피아니스트를 쏴라>, <쥴 앤 짐>은 앞서 말씀드린 트뤼포의 세 가지 해결책을 차례로 제시한 영화들이었다. <부드러운 살결>은 세 가지 시도를 다 거친 다음 그것을 파기하고, 친밀함의 공간에 직접적으로 다가가는 방식을 취한다. 트뤼포는 이 영화에서 시도했던 것과 같은 불편함을 감당하기에는 여린 구석이 있었던 감독이었던 것 같다. 이 영화 이후에 적어도 관계에 있어서는 완전히 동일한 <부부의 거처>를 찍는데, 설령 부부관계와 연애관계에서 동일하다고 하더라도 <부드러운 살결>과는 완전히 상반된 것처럼 보인다. <부드러운 살결>에서 느꼈던 불편함을 털어내면서, 불륜 혹은 간통이 유머와 코미디를 통해 죄책감을 경감시키는 아주 잘 알려진 트뤼포의 방식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부부의 거처>는 황당한 조합을 띈다. 르누아르의 <랑주씨의 범죄>에서의 공간의 구조 안에서 자크 따띠의 영화를 연상케한다. <부드러운 살결>에서와 같은 트뤼포의 모험 또는 시도는 불행히도 한 번에 그쳤고, 프랑스 영화 안에서 이런 식의 대담한 방식으로 극도의 친밀함의 관계를 다루는 것이 계승이 되었다면 모리스 피알라의 영화가 아닐까 싶다.

<부드러운 살결>은 친밀함의 관계, 특히 불륜을 소재로 삼아서 이런 관계를 유지하는데 따르는 서스펜스를 담아내는 데 최선을 다한다. 영화에서 두 연인들이 친밀함의 공간을 성립시킬 수 있는 공간들을 찾아 헤매는데, 적어도 이 영화에선 결국은 호텔방이거나 둘의 일체의 사회적 관계가 단절되어 있는 낯선 시골의 모텔 정도 밖에 없다. 트뤼포는 만들면서도 이 영화가 히치콕적인 서스펜스가 될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트뤼포가 왜 히치콕이라는 감독을 그렇게 좋아했을까를 생각해보면, 히치콕의 영화가 궁극적으로는 섹스로 향하는 연애의 도정을 서스펜스 모험의 형식으로 가장 탁월하게 담아내어서가 아닐까 생각된다. 히치콕의 영화는 모험의 과정은 보여주지만 항상 성관계 직전에 끝나버린다. <부드러운 살결>의 초반에 리스본 호텔의 엘리베이터 장면을 보면, 굉장히 히치콕적인 방식으로 찍혀졌다. 주인공 라쉬네와 스튜어디스인 니콜, 니콜이 예전에 사귀었던 남자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는 장면에서 긴장감을 포착해내는데, 서스펜스를 담아내기 위해 엘리베이터가 올라갈 때의 시간을 실제의 시간보다 훨씬 길게 잡는다. 히치콕적인 서스펜스에서의 시간의 왜곡을 잘 활용하고 있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리스본 호텔의 엘리베이터에서 과거의 연인이었던 두 남녀의 공간에 침입해서 관찰을 했더 라쉬네는 영화가 진행되면 자신과 니콜과의 친밀함을 남들의 시선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애쓰게 있다. 이 영화는 <신나는 일요일>처럼 노골적인 것은 아니지만, 굉장히 히치콕의 <이창>같은 구조를 갖고 있다. 특히 라쉬네에게는 <이창>의 제프리가 하고 있는 것과 같은 깁스가 스토리와 스타일상 무려 두 개가 있다. 트뤼포가 이런 식의 직접적인 방식으로 친밀함 공간에 카메라를 들이대면서 죄책감을 경감시키기 위한 , 혹은 죄책감을 안고 이 영화를 찍고 있다는 것을 선언하는 메타포적인 깁스라고 할 수 있다. 첫 번째 깁스는 주인공 라쉬네가 갖고 있는 작가로서의 명성이 있다. 명성이라는 것은 <이창>의 깁스보다 훨씬 더 고약해서 자꾸만 타인의 시선을 끌어들여 친밀함을 방해한다. 두 번재 깁스는 스타일상의 선택으로 보이는데, 라쉬네 역할의 배우 장 드사이의 연기에서 표현적인 요소를 거의 박탈해버린다. 트뤼포 영화 중에서 <여자들을 사랑한 남자>의 주인공과 더불어 유독 가장 매력 없는 남자주인공이다. 이처럼 무색무취하고 매력 없는 인물이 있었나 싶다. 스타일상의 면에 있어서 이 인물에게 깁스를 해버리는 방식처럼 보인다. 그래서 아마 이 인물을 연기한 배우가 역할에 대해서도 불만이 많았고 실제로 트뤼포도 이 배우를 싫어했다고 한다.

 

이 영화를 좀 더 복잡하게 하는 것은 라쉬네라는 인물이 굉장히 친밀한 관계의 주인공이면서, 동시에 그 관계를 바라보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그 점은 이 영화가 뒤틀리는 계기가 된다. 오늘날로 보면 라쉬네라는 인물은 셀프 카메라 형식으로 자신들의 연애를 간직하기를 원하는 사람이다. 이런 점에서라면 트뤼포 감독 자신의 꽤 정확한 반영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면 라쉬네가 우연히 불륜의 관계에 빠져들었다기보다, 사실은 극단적으로 서스펜스를 유발할 수 있는 아주 친밀한 관계를 관찰하기 위해 여자를 만났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야외에서 카메라로 여자의 모습을 열정적으로 기록하다가 자동으로 놓고 자신도 함께 사진을 찍는다. 스스로 아내와의 불화를 만들어낼 증거를 기록하는 셈이다. 사실 이처럼 사진이라고 하는 것, 혹은 사진을 수집한다고 하는 것이 굉장히 트뤼포적인 행위라고 할 수 있다. 트뤼포 영화 안에서 그것은 꽤 중요한 계기가 될 때가 있다. 한편으로는 사진을 찍는 행위 그 자체를 통해서도 간접적으로 <이창>의 주인공과 연결된다.

트뤼포는 이 영화를 만들고 나서 왜 이런 식의 영화 찍기로는 더 이상 돌아가지 않았을까. 영화적 친밀함이라는 것이 항상 외설적인 것의 경계에 있는데 그 것이 경계에 머물기 위해선 친밀함 자체를 시각화하지 않는 한에서만 외설의 바깥에 머물 수 있다는 나름의 결론에 도달한 것 같다. 그런 친밀함을 담아내야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에 다가가는 것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는 것은 그건 영화 자체의 딜레마이기도 하면서 트뤼포의 다양한 연애영화들을 생성하게 만든 동기가 되었던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부드러운 살결>은 트뤼포 이후의 다양한 도피의 방식들로 다시 가기 전에 있었던 좀 특이한 사례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트뤼포가 연애, 영화, 관계에 대해서 접근하는 모든 강박관념, 불안, 죄책감, 서스펜스와 같은 것이 모두 담겨져 있는 영화로 보인다.

 

정리: 장지혜(관객에디터) 사진: 김아라(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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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손 웰즈와 아나크로니즘

지난 8월 21일 오손 웰즈의 <위대한 엠버슨가> 상영 후 ‘아메리칸 뉴시네마의 현대성’이란 제목의 영화사 강좌 마지막 시간이 이어졌다. ‘오손 웰즈와 아나크로니즘’을 주제로 열린 아닐 강좌의 강사는 유운성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가 맡았다. 그날 현장을 일부를 여기에 옮긴다.


유운성(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지금 보신 <위대한 앰버슨가>는 오손 웰즈가 처음에 편집했던 버전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고, 오리지널 버전은 아직 볼 수가 없는 상태다. 오리지널 버전은 132분인데 지금 보신 버전은 88분이고, 심지어 몇 개의 장면은 웰즈가 연출하지조차 않았으며 그나마 웰즈가 연출한 장면들조차 순서가 많이 바뀌어있는 상태다. 그래서 이 영화는 처음 공개된 이래로 지금까지 영화 비평가들에게 ‘어디까지가 영화 비평인가’라는 질문을 제시해오고 있다. 삭제된 장면들은 볼 수 없지만 스크립트, 시나리오, 그리고 웰즈가 내렸던 연출 지침 등은 남아있기 때문에 원래의 영화를 어느 정도 추측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이런 사료들을 토대로 ‘이 장면은 원래 이런 것이었어, 몹시 탁월해’라고 말하는 것이 과연 영화 비평인가 하는 지점이다. 그런 면에서 먼저 이 영화에 얽힌 사건들을 말씀드리며 웰즈가 처음 만들려고 했던 것을 상상적으로라도 그려보고 나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웰즈가 영화를 만들고 나서 개봉 이후에 다시 본 첫 번째 영화가 <위대한 앰버슨가>라고 하는데, 아주 불쾌한 경험이었다고 회고한다. 차라리 이 영화에 가해진 일을 모르는 채로 죽는 편이 나았으리라는 것이다. 웰즈는 자신 몰래 행해진 편집들만 아니라면 이 영화는 <시민 케인>보다 훨씬 더 뛰어난 영화가 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 영화가 이렇게 불완전한 판본으로 남게 된 이유에는 약간의 논란이 있다.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을텐데, 하나는 흔히 회자되는 대로 ‘뛰어난 예술가의 영혼을 억누른 사악한 헐리우드 제작사들’ 때문이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웰즈 자신의 심리적인 기벽과 성격적인 결함이 이 영화를 시작부터 파탄으로 몰고 갔다는 주장이다. 찰스 히건 같은 평론가는 웰즈가 이 영화의 후반작업을 제대로 끝마치지 못한 것은 완성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었다고 주장한다. 이런 식의 주장 가운데 가장 논란이 되었던 것은 로버트 캐링거라는 학자의 것으로, 그는 RKO에 남아있던 여러 자료들을 모아 <위대한 앰버슨가>의 일종의 텍스팅적인 복원을 시도하여 <위대한 앰버슨가의 복원>이란 책으로 출판했다. 이 책에 실린 자료들 자체는 후에 평론가들이 많이 참조하게 되었지만, 그가 시도하는 오이디푸스적인 맵핑은 황당하기 짝이 없다. 이를테면 엄청난 셰익스피어주의자였던 웰즈가 어떤식으로도 <햄릿>을 연출한 적이 없는 것은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와 모종의 관계가 있었기 때문이고, <햄릿>이 그의 자전적인 부분을 건드리기 때문이라는 식이다.

조너선 로젠봄은 캐링거의 이러한 주장에 정면으로 반박하면서, 이 영화에 일어난 일은 당시 웰즈가 처해있던 제작 상황을 보는 것으로서만 설명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위대한 앰버슨가>의 촬영이 끝나고 바로 1주일 후에, 웰즈는 차기작으로 계획했던 <잇츠 올 트루>의 촬영을 위해 브라질로 떠나게 된다. 리오 카니발 장면이 꼭 필요했는데, 그 시기를 놓치면 1년을 기다려야 했던 것이다. 당시 <위대한 앰버슨가>의 편집 담당은 로버트 와이즈였는데, 웰즈는 그와 전화와 전신으로 연락을 해가며 원격 편집 감독을 했다. 이런 방식은 한 달여 동안 순조롭게 이루어져 132분짜리 오리지널 판본이 만들어지게 된다. 그런데 42년 3월, 당시 RKO의 수장이었던 조지 셰퍼는 와이즈에게 영화 길이를 좀 줄이는 것이 좋겠다고 이야기 했고, 와이즈는 이를 웰즈에게 전한다. 웰즈가 대책을 강구하고 있는 사이, 무작위의 일반 관객들을 대상으로 한 오리지널 판본의 첫 사전시사가 진행되었다. 관객들로부터 회수된 설문 결과는 그리 처참한 편이 아니었지만, 당시 참가자들의 회고에 따르면 상영장의 분위기가 상당히 험악했다고 한다. 이에 당황한 경영진들이 직접 나서기 시작했다. 이틀 후에 임의로 17분을 단축시킨 115분 버전의 시사회를 한 것인데, 이번에는 설문 결과가 조금 더 호의적으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웰즈는 이후에 영화를 더 단축하라는 압박을 받는다. 이에 따라 웰즈는 여러 가지 수정안들을 미국으로 보내지만, 마침내 셰퍼는 웰즈의 동의 없이 재촬영을 결정한다. 결국 재촬영 분량들을 끼워 넣고 러닝타임을 단축시키고, 장면들의 순서를 바꾼 상태로 <위대한 앰버슨가>는 결국 42년 8월에 개봉했고, 처참히 실패했으며, 웰즈는 다시는 헐리우드에 발붙일 수 없게 된다.

이런 대략적인 이야기들을 통해 원래 웰즈가 만들려고 했던 <위대한 앰버슨가>를 상상적으로나마 그려보고 나서야 여기서 드러나고 있는 아나크로니즘, 시대착오적 감성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영화는 웰즈의 몇몇 특이한 영화들, 대표작인 <시민 케인>이나 후기의 걸작 <한밤의 종소리>, 혹은 <위대한 앰버슨가> 못지 않게 수난을 겪다 결국 미완으로 남겨진 <돈키호테> 같은 영화들과 관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미 사라져간 귀족적 용맹함에 대한 송가라고 할 수 있는 영화들이다. 휄즈는 실제로 자신이 흥미를 갖고 있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미덕들이라고 말했다. 이는 어떤 매너나 예법, 사람들이 조화롭게 살던 시대에 대하 향수가 아니라, 매너나 예법을 넘어서서 말하는 것이 허락되고 그것이 생기의 원천으로 받아들여졌던 시대에 대한 향수다. 이 영화에서 어린 시절의 조지는 정말 무례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그런 소년이 마을 안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시대라는 것이다. 사실 웰즈적 영웅의 가장 큰 특징 중에 하나는 그들 모두가 자신의 시대에 충실한 채로 남는 인물들이라는 점이다. 자신이 구식이 되었음을 알고도 그것을 용기 있게 받아들이는 것과 자신이 구식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구식으로 남는 것은 차이가 있는데, 웰즈의 인물들은 전자다. 조지 역시 그런 사람이고, 심지어 유진조차도 후반으로 가면 갈수록 자신이 예견했던 시대와 어긋난 사람이 된다는 느낌을 준다. 사실 유진이라는 캐릭터가 꽤 중요한데, 이 인물에게는 웰즈의 좀 다른 측면의 아나크로니즘이 투영되어 있다. 지금까지 말씀드렸던 것이 흔히 뒤쳐진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아나크로니즘이라면, 발명가인 유진은 자신의 시대와 다른 새로운 시대를 불러들이는 사람이지만 정작 그 시대가 왔을 때는 그 시대와 자신이 맞지 않는다고 느끼게 되는 사람이다. 사실 이 영화를 거듭 볼수록 가장 웰즈적이라고 느껴지는 인물은 조지가 아니라 오히려 유진이다. <위대한 앰버슨가> 같은 영화들을 만들던 시기에 웰즈는 혁신가였다. 하지만 이런 영화들이 길을 닦았기 때문에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는 새로운 영화들의 시대가 왔을 때 그는 구식 인물이 되어있었다. 예언적이라고까지 말하는 건 아니지만 유진이라는 인물은 웰즈가 느꼈을 시대에 대한 어긋남이나 불편함이라는 감정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런 인물들은 타임머신이 발명된다고 해도 자신과 맞는 시대를 발견할 수 없다. 오직 시대와의 어긋남을 통해서만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인물들이다. 남아있는 판본들과 사료들을 통해서 재구성해보면, 이러한 웰즈의 시대착오적 영웅들의 딜레마가 가장 잘 표현된 영화가 바로 <위대한 앰버슨가>라는 생각이 든다.

(정리: 박예하 관객 에디터)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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