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어귀. 한 사내가 마을을 떠나기 전 이별주를 마시고 있다. 악사들이 연주를 하고 그가 타고 떠날 백마가 한가로이 꼬리로 파리를 쫓는다. 하얀 옷을 입은 사내는 그를 전송하는 노인과 마지막 술잔을 나누고 자리에서 일어나 말에 올라탄다. 사내는 암살자. 누군가를 죽이러 길을 떠나는 것이다. 물론 살아서 돌아올 생각은 추호도 없다. 드디어 사내가 암살을 할 표적이 있는 도시에 도착한다. 자 이제부터 피가 튀는 혈투가 있으리라 기대를 했는데, 사내는 싸울 생각은 안하고 또다시 악사를 들여 음악을 연주하고, 산해진미를 차려놓고 술타령이다. 함께 영화를 보던 친구는 나의 감언이설에 속았다는 원망의 눈길을 보내면서 “싸우면 깨워라” 하고는 잠을 자기 시작한다. 영화를 보던 아저씨가 “뭔 놈에 무협 영화가 주구장창 술타령만 해?” 분노에 찬 한마디를 하고 극장 문을 박차고 나가버린다. 하하하. 장철의 영화 <대자객>이 상영되던 9년 전 부천 영화제의 극장 안 풍경이다. 이미 영화를 보았던 나는 폭풍 같은 감정이 휘몰아치는 라스트 혈투 시퀀스의 감동을 친구가 놓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어느 시점에서 깨워야 할까를 생각하느라 영화 보기는 뒷전이었다.


<대자객>은 사미천의 사기. 자객열전의 수많은 주인공들 중 섭정이란 주인공을 선택하여 만든 영화이다. 자객열전에 등장하는 수많은 멋진 자객들 중 왜 하필이면 섭정인가? 영화 <영웅>의 주인공 형가는 생선 속에 칼을 숨겨 진시황을 암살 하려다 실패한 비운의 자객으로 자객열전의 등장인물들 중 가장 유명한 자객이다. 장철은 왜 형가가 아니라 섭정을 선택 했을까? 섭정이란 자객은 조말처럼 장군 출신도 아니다. 섭정은 시장 통의 개고기 장사치이니 비천한 신분이다. 형가처럼 폭군 진시황을 처단하려는 대의를 명분으로 삼지도 않고, 예양처럼 지조를 지키기 위해 칼을 잡은 자도 아니다. 그가 칼을 잡은 이유는 단 하나. 개고기 장사치인 비천한 자신. 장전된 채로 구석에 놓여있는 총이었던(에밀리 디킨스의 시) 자신을 알아보고 불러내 준 이 때문이다. 국가를 위한 충의 때문도, 정의를 위한 대의 때문도 아니다. 자신의 재능을 간파한 자를 위해 자신의 숨겨진 재능을 소진하겠다는 것이다. 전국시대. 비천한 신분으로 태어난 재능 있는 자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인가? 아무것도 없다. 있다면 전장에 나가 공을 세우는 것. 병졸로 시작하여 수많은 전투를 치루고 죽지 않았을 때의 경우이니 하늘에 별 따기다. 섭정은 검술에 재능이 있었지만, 재능을 꽃 피울 전장을 찾지 못했다. 결국 개고기 장사치로 늙어 죽어야한다. 그런데 자신의 재능을 알아본 이가 나타나 가난한 그의 어머니와 누이를 보살펴 준다. 의리를 맺은 것이다. 의리는 갚아야한다. 섭정이 의리를 갚을 길은 단 하나 목숨을 내놓는 것뿐이다.



장철은 지극히 사적인 이유로 칼을 잡은 주인공을 선택한다. 관객들이 지금 보는 이 영화가 무협영화인가? 의심할 정도로 영화는 암살을 하기 전. 주변을 정리하는 섭정의 모습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누이를 좋은 곳으로 시집보내고,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는 절대 일을 할 수 없다며 거사를 미뤄 자신의 암살 때문에 가족들이 피해를 받는 일이 없도록 한다. 그리고 남은 것. 사랑하는 연인이다. 섭정은 연인과 이별을 하고, 모든 재산을 다 처분하고서야 암살의 길을 떠나는 것이다. 장이모우의 <영웅>에서 형가와 진시황이 천하통일의 대업은 수많은 희생을 담보로 한다는 국가와 개인 간의 문제에 대한 파시즘의 혐의가 다분한 긴 대화 신이 있듯이, <대자객>에서는 섭정이 애인과 함께 죽음의 두려움과 빛나는 한순간을 위한 무모한 삶에 대해 긴 대화를 나누는 신이 있다. 80년대 고우영은 만화 <초한지>의 한 에피소드에서 섭정을 우매한 캐릭터로 묘사하면서 국가에 대한 충정도, 대의명분도 없이 개죽음을 한 자객이라 평한다. 사바 료타로는 막말의 암살자들에서 자신은 암살자들을 혐오한다고 한다. 암살자들이란 그들의 대의명분이 무엇이건 거래에 의해 타깃이 정해지고, 뒤에서 소리 없이 표적을 제거해야 하니 사내답지 못한 행동이란 말이다. 장철이 <대자객>을 촬영하기 위해 쇼 브라더스의 스튜디오로 출근을 할 때, 거리에서는 학생들의 데모 대문에 최류탄 연기가 자욱했었다고 한다. 그 때는 1967년이었다. 장철은 이런 시대에 이런 영화를 보러 누가 올 것인가? 한숨을 쉬며 일을 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파시즘에 항거하던 플라워 무브먼트의 젊은이들은 장철의 주인공 섭정을 보기 위해 극장으로 몰려들었다.


<대자객>의 라스트. 섭정을 연기한 왕우는 라스트 대혈투 신을 촬영하기에 앞서 장철에게서 “네가 최고다. 너는 슈퍼맨이다. 당당하고 단호하게 걸어라!”라는 주문을 받았다고 한다. 일백여명의 적군들이 도사린 적진에서 왕우는 강철로 만든 보검 한 자루에 의지하여 “나는 슈퍼맨이다”를 되뇌며 연기를 했다고 한다. 라스트 혈투 시퀀스가 시작되면 왕우는 단호한 걸음걸이를 너무 과도하게 연기하는 바람에 뒤뚱거려 관객에게 실소를 자아낸다. 하지만 그가 싸움을 시작하고, 그의 하얀 옷이 적들의 피로 붉게 물들기 시작하자 왕우는 섭정의 원념을 고스란히 빙한 것처럼 관객을 사로잡기 시작한다. 드디어 <대자객>의 가장 빛나는 장면. 암살에 성공하고, 자신의 존재를 지워버리기 위해 칼로 자신의 얼굴 껍질을 도려내는 섭정의 시점 쇼트. 이 단호한 한 쇼트를 위해 장철은 90분을 끌어온 것이다. 이름을 남기지 않고 자신의 모든 자취를 지워버리려는 자. 의협이니, 대의명분이니 하는 모든 것을 무화 시키는 행동을 하는 주인공. 장철은 자객의 이야기를 하면서 우국충정과 대의명분을 내세우는 주인공들 보다는 비천한 신분으로 태어난 자의 울분과 뜻하지 않게 맺어진 함정과 같은 의리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하는 지극히 사적인 주인공을 내세워 파시즘과 아나키즘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다가, 결국 니힐리즘적인 자객이 등장하는 영화를 만들어 낸 것이다.

동시대 무협 영화를 만든 호금전이 액션 장면을 우아한 수평이동 롱 트래킹 쇼트로 촬영하여 중국 무협의 아취를 보여주었고, 서양의 추리소설 줄거리처럼 치밀한 복선과 주인공들의 암투에 주목하여 신 무협을 만들어 냈다면, 장철은 주인공의 원념을 일직선으로 투박하게 그리는 것에만 전념한 영화들을 만들어 낸다. 수호지의 무송 에피소드를 영화로 만든 <쾌활림>과 <복수>가 그런 특성이 잘 드러난 영화이다. 무송 에피소드는 반금련과 무대. 그리고 서문경의 불륜과 치정 살인 이야기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두 영화 모두 거두절미. 장철은 서문경과 반금련의 불륜 에피소드는 별 관심이 없다. 아마도 tv의 아침 연속극 팬이라면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오는 영화라 분노 할 것이다. <쾌활림>이 시작되자마자 무송은 벌써 반금련의 목을 잘라 서문경이 있는 술집으로 간다. 반금련의 목을 서문경에게 던지며 두 사람의 혈투가 시작되고, 서문경은 무송에게 박살이 난다. 영화가 시작되고 오 분이 넘지 않아 모두 정리해 버리는 것이다. 장철의 관심은 무대의 복수를 한 무송의 유배를 떠나 쾌활림에 이르러 어린 아이부터 할머니까지 모두를 죽이는 피의 잔치를 벌이고 피에 젖은 자신의 옷소매를 찢어 벽에 “무송이 살인하다”라 쓰는 무뢰한의 원념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 했던 것이다.

<복수>는 무송 에피소드를 현대로 옮겨 만든 것인데, 반푼 짜리 인간 무대를 멋진 외모와 대단한 무술 실력을 가졌지만, 아내를 만족 시키지 못하는 성급하고, 폭력적인 적룡으로 변모시켜 그를 영화가 시작한지 10분 만에 사기그릇이 깨어진 바닥을 맨몸으로 뒹굴다 죽어 버리게 한다. 장철에게는 적룡을 속여서 살해 한 파렴치한 간부들의 불륜과 음모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영화의 내용을 파악하게끔 아주 최소한의 이삼 분만 그들의 음모 장면에 할애하고, 나머지 80여분은 복수를 하는 적룡의 동생 깡따위(짜장면을 자장면이라 하면 안 되듯 깡따위를 강대위라 하면 왠지 섭섭하다)의 몫으로 만든다. 누가 형을 죽였는지 알아내는 수사와 추리 따위 역시 장철에게는 관심이 없다. 오직 형을 죽인 원수들을 향한 동생 깡 따위의 분노만이 중요하다. 그 분노는 깡 따위가 혈투 끝에 몸은 죽었는데도 정신만이 살아나 좀비처럼 원수를 갚게 만든다. 영화의 라스트에 깡따위가 난간에 기대어 두 눈을 부릅뜨고 서서 죽어 있는 긴 시간을 만나게 된다.
그 몇 초간 깡따위가 죽은 척 했다가 적이 다가오자 기습을 하는 것이라 오해하면 안 된다. 깡따위는 죽은 것이다. 형의 원수를 갚지 못하고. 그 원념이 너무나 사무쳐 그는 살아나 원수를 갚고서야 죽는 것이다. 왕우가 <금연자>에서 라스트 혈투 장면을 찍을 때 장철은 “너는 죽었다. 그러나 원념 때문에 부활 해야한다”고 주문을 했다고 한다. 왕우는 “이거 정말. 어떻게 죽었는데 다시 살아나?” 투덜댔었다고 한다. 그러나 적들에게 사지가 묶이고 가슴에 네 개의 말뚝이 박히는 장면을 촬영하며 스스로 광기에 휩싸여 촬영 전까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던 자신을 잊고 다시 살아나 칼을 들었다고 한다. 장철은 그런 감독이다. 투박하고 거친 사내들. 그들은 항상 불만에 차 있다. 결국 그들은 항상 파멸의 길을 선택하고 원념을 내뿜고 죽는다. 말이 되고 안 되고 간에. 피투성이가 되어 죽은 사내는 원념 때문에 다시 살아나야 한다. 그래야지만 장철이 원하는 영화가 완성되는 것이다.

1960년대 말. 왜 이런 남성 영화가 만들어 졌을까? 왜 이런 남성 영화가 팬들에게 환호를 받았고, 2012년 한국의 시네마 데끄에서 상영되는 것일까? 어차피 이런 종류의 액션 영화들은 비웃음거리가 되는 남성 판타지들이다. 비웃음은 남성성을 강조한 액션 영화들이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그러나 비웃음도 여러 가지 종류다. 나는 남성성을 강조한 액션 영화들 중 국가에 대한 충성. 명분. 의리. 대의 따위를 맹목적으로 또는 교묘하게 설파하는 영화들에 대해서는 진저리를 친다. 그러나 장철이 만든 자기도취 때문에 교만한 주인공들이 기득권자들이 지들 편리한 대로 만들어낸 이데올로기. 국가에 대한 충성. 명분. 대의. 의리 따위를 무화시키며 파멸하고, 말도 안 되지만 원념 때문에 되살아나 피를 뿌리는 이런 불손한 영화들에게는 반가운 비웃음을 보낸다.

(by
오승욱_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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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는 사람 2012.03.09 00: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문단을 나눠주시고 글씨 크기를 좀 키워주시다면 가독성이 훨씬 좋아질 것 같습니다. ^^;


장철의 남자들을 얘기하자면 왕우로 시작할 수밖에 없다. 하얀 옷을 입은 채 피 칠갑을 하고서는 두려움과 자신감이 애매모호하게 뒤섞인 표정으로 칼춤을 벌이던 그의 비장미는 홍콩 무협영화의 전부였다. 완벽하게 짜인 합이라기보다는 어딘가 정제되지 않은 몸짓으로 정말 ‘춤’을 추는 것 같던 그의 율동은 언제나 예상이 불가능했다. 이후 나온 이소룡이 어떤 상황에서도 지지 않을 것 같은 든든함으로 믿음을 줬다면, 왕우는 그 살육의 현장에서 늘 질 것만 같아서 마음을 잔뜩 졸이게 만들었다. 그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그 불안감이었다. 그리고 이기고 있건 지고 있건 늘 기진맥진해 보였다. 그런 그를 두고 영화평론가 정성일은 “있는 힘을 다하여 섹스를 해서 사정을 한 다음, 다시 그룹 섹스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왕우는 무협영화에서 강호 최고의 고수였음에도 그런 기이하고 퇴폐적인 매력을 풍겼다. 더불어 왕우는 쇼브라더스가 발굴한 첫 번째 범아시아 스타였고, 쇼브라더스가 계속 시장의 주도권을 쥐게 만들어준 흥행불패의 보증수표였다. <외팔이>는 홍콩영화 최초로 백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다. 끝없이 시련을 당하고 끝내 팔이 잘린 채로 복수를 위해 무공을 연마하는 그의 모습은 당대 청춘관객들의 심금을 울렸다. 그렇게 그는 오로지 혼자서 수많은 적들과 상대하는 고독한 안티 히어로였다. 당시 아시아의 수많은 남성 관객들은 오직 그가 죽는 것을 보기 위해 극장을 찾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궁지에 몰려 최후의 적 한 사람까지 상대하면서, 영화사상 그렇게 아름답게 죽는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왕우의 양극(陽極)이 적룡이라면 음극(陰極)은 강대위다. 적룡과 강대위는 왕우의 정체성을 정확히 나눠 가지면서 장철 감독과 결별한 그의 공백을 깔끔하게 메웠다. 아니 장철 감독의 인기와 작품 세계는 더욱 확장됐고 왕종, 척관군 등의 배우들까지 가세해 이른바 ‘장철 사단’으로서의 규모도 갖추게 됐다. 더구나 흔히 오우삼 등 후배 홍콩 누아르 감독들에게 이식됐다고 얘기되는, 종종 동성애 코드로 읽히기도 하는 끈끈한 남성적 유대가 바로 적룡과 강대위로부터 비롯됐다. 그런 두 사람의 온도차이는 결정적이다. 적룡이 불이라면 강대위는 물이다. 가령 <소림오조>에서 적룡이 동료들에게 주로 하는 대사는 “어서들 가시요”다. 가장 충의에 넘치는 인물로 자기가 다 알아서 하겠다는 얘기다. 반면 강대위는 그에 비해 충의가 부족한 것은 아닐 테지만 어딘가 능글맞다. 무수히 많은 적들과 마주했을 때 적룡이 심각한 얼굴로 혈혈단신 적진에 뛰어드는 남자라면(그런 점에서 적룡은 <삼국지>의 의로운 관우와 종종 비교된다), 강대위는 “대단들 하시구려. 투항하겠소, 전 장군을 이길 수 없을 것 같소이다”라며 잔꾀를 부린다. 그런 점에서 적룡이 왕우와 더 비슷하긴 하다. 왕우나 적룡이나 결코 거짓말을 하지 못 하는 남자였다.


실제로 적룡은 왕우를 동경하던 열혈청춘 배우 지망생이었다. 낮에는 직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무술을 연습하며 액션배우의 꿈을 키우던 그는 1960년대 말 쇼 브라더스 배우 훈련반에 등록하게 됐고, <독비도> 속편인 <돌아온 외팔이>에 단역으로 출연하면서 장철 감독과 인연을 맺게 됐다. 이때부터 그는 함정에 빠진 줄도 모르고 의기 충천한 남자였다. 그리고 그는 정말 어디에 둬도 눈에 띄는 수려한 외모의 배우였다. 짙은 눈썹에 뚜렷한 눈매, 조각처럼 탄탄한 근육의 남성적 매력은 선배인 왕우나 당시 국내에는 ‘깡따위’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영원한 콤비 강대위와 비교해도 특별했다. <자마>에서 형제(진관태)의 여자가 적룡을 보고 한 눈에 반한다는 설정을 보라. 그래서인지 그는 영화에서 거의 웃통을 벗고 나왔다. 그가 홍콩의 전설적 해적 장보자로 출연한 <대해도>가 가장 압권이다. 바닷물에 젖은 살색 바지는 거의 올 누드에 가깝다. 이 역시 의미심장한 설정이다. 웃통을 벗고 있으면 액션배우로서 보호대를 착용할 수 없기 때문에 그 고통이 몇 배나 더했을 것이며, 왕우의 경우처럼 언제 저 매끈한 미남자의 피부에 상처가 날까 늘 조마조마하다. 하지만 그는 무조건 벗고 시작했다.


하지만 왕우의 혈기와 비슷해 보여도 적룡은 종종 보는 이에 따라 다소 ‘허세작렬’이기도 했고 그러다보니 그 비장미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왕우처럼 ‘죽어야 사는 남자’였던 그는 술에 취한 채 달아나다가 다리 위에서 무참하게 난도질당한 <13인의 무사>(1970)에서 눈을 부릅뜬 채 다리 위에 꼿꼿하게 서서 죽음을 맞이했고, 결전을 앞두고도 술병을 놓지 못하던 <수호지>의 무송으로 출연한 (언젠가 큰 스크린에서 꼭 보고 싶은!) <쾌활림>에서는 적들을 모두 죽이고는 자신의 피묻은 옷자락으로 벽에다 “살인자는 무송이다”라고 썼으며, <탕구지>에서도 팔이 잘린 채 눈을 치켜뜨고는 바닥에 무릎만 댄 채로 앉은 자세로 죽었다. 출연 분량만 보자면 강대위에 미치지 못했지만 그 카리스마는 어마어마했다.

장철이 차례로 <수호지>를 영화화하면서 적룡이 호랑이로 맨손으로 때려잡는 무송을 연기할 때 강대위는 연청이었다. 수려한 외모에 풍류를 즐길 줄 알며 완력 또한 대단하지만 무엇보다 눈치와 ‘말발’이 끝내주는 연청은 장철 감독의 필모그래피 전체에서 적룡과 다른 강대위의 퍼스낼러티를 절묘하게 드러내는 캐릭터였다. 적룡보다 한 살 어린 그는 어릴 적부터 아역배우로 활동하다가 그 인연으로 쇼 브라더스의 전속배우로 일하게 됐다. 건장하고 남성미를 풍기지는 않았지만 장철 감독이 훗날 회고하길, 당시 스턴트맨으로 일하던 그의 놀라운 점프 실력에 반해 캐스팅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때 그의 별명도 호리호리하고 날렵하다는 의미의 ‘탄도소자’였다. 게다가 여성 팬들의 폭넓은 사랑을 받을 정도로 섬세한 연기를 선보였는데 당시 그 모습은 풋풋한 양조위를 떠올리게 했다. 실제로 양조위가 처음 등장했을 때 ‘제2의 강대위’라는 별명을 붙인 이들도 많았다.

강대위와 적룡의 콤비 플레이는 눈부셨다. <복수> <13인의 무사> <권격> <무명영웅> <사기사> 등 두 사람은 늘 협동하고(굳이 분석하자면 적룡이 먼저 ‘선빵’을 날리고 강대위가 뒷수습하는 형태) 서로에 대해 우정 이상의 애정을 고백하는 모양새였다. 그런 점에서 <자마>는 처음부터 그 둘이 남남으로 등장해 결국은 대립 끝에 죽기 살기로 싸웠기에 무척 특별한 작품이다. 오우삼 스스로 자신의 필생의 역작이라 말해온 <첩혈가두>가 바로 그 의리의 붕괴를 그린 <자마>에 대한 오마주였다. 게다가 <첩혈가두>에서 강대위 같은 역할을 맡았던 배우가 바로 양조위다.


장철의 남자들 중 가장 안타까운 이는 바로 부성이다. 굳이 계보를 그리자면 왕우와 적룡이 가깝고 강대위와 부성이 닮았다. 부성은 적룡과 강대위 이후 장철이 <자마> <마영정>의 진관태와 함께 야심 차게 키우던 배우였는데, 그렇게 네 사람은 묘한 사각형을 이룬다. <소림오조>와 <소림사>에 적룡, 강대위 다음 비중의 주인공으로 출연하고 <사조영웅전>의 주연을 맡은 그는 장철의 남자들 중 어리고 장난기 많은 ‘소자’(小子) 느낌의 배우였다. 적룡이 무송, 강대위가 연청이라면 그는 실제로 출연했던 <방세옥과 홍희관>의 방세옥 이미지였다. 이후 비슷한 느낌의 성룡이 급부상한 것에서 보듯 당시 무협영화 관객들은 초기 장철 영화의 비장미에서 탈피해 다소 유쾌한 무드로 옮겨가고 있었던 것이다. 적룡은 말할 것도 없고 능글맞은 강대위의 시선으로도 그는 종종 귀찮은 듯 대결에 임하는 남자였다. <소림오조>에서는 동료들 간의 수신호도 제대로 기억 못 해서 ‘큰일을 맡길 수 없는 놈’이라는 소리나 듣는 철부지 막내였다. 하지만 부성은 이제 막 전성기를 탄탄히 다져갈 나이인 1983년 오토바이 사고로 채 서른 살이 되기도 전에 세상을 뜨고 말았다. 이소룡의 갑작스런 죽음까지는 아니었다 해도 그가 계속 전성기를 누렸다면 당시 홍콩영화계의 판도는 꽤 달라졌을 것이다.

1974년 쇼브라더스를 떠난 장철은 대만에서 쇼브라더스 스튜디오의 대만지사로 자신의 프로덕션을 설립, 저예산 무협영화 제작을 계속했다. <오독>과 <잔결>을 비롯 <철기문>과 <차수>는 장철의 대표적인 후기작들이다.1977년에서 1982년까지 새로이 발굴한 다섯 명의 배우 라망, 녹봉, 손건, 강생, 곽추를 매번 똑같이 데리고 12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물론 모든 작품에 다섯 명 모두 나온 건 아니고 한두 명 정도 빠져서 나올 때도 있었다. 그들은 장철의 영화 12편을 포함해서 모두 14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1977년에 찍은 장철의 <당인가소자>가 첫 작품이고, 1982년에 찍은 장철의 <중소루>가 마지막 작품이다. 각종 무술과 기계체조로 잘 훈련된 이들을 일명 ‘베놈스’(Venoms)라 불렀고 이들이 출연한 12편의 영화를 ‘베놈스 필름’이라고들 했다. 특히 <오독>의 경우 타란티노의 <킬빌>에 등장한 5인 암살단 ‘데들리 바이퍼스’에 영향을 줬다. 정체불명의 가면 집단이 등장하는 <차수>도 그와 유사하다. 한편, 그들의 영화는 <킬빌>의 사례를 보듯 해외에서 컬트적인 인기를 누리기도 했는데 또 다른 베놈스 필름 <소림여무당>은 테크노 그룹 케미컬 브라더스가 ‘Get yourself high' 뮤직비디오 전편의 소스로 사용하기도 했다.

이들의 영화들 중 굳이 하나를 추천하라면 바로 <잔결>이다. 베놈스 필름이 보여주는 육체 훼손과 협업이 최고조에 달한 작품이다. 어렸을 때 괴한들에게 양팔이 잘린 녹봉과 그의 아버지 진관태, 그리고 ‘장애인’ 4인조와의 싸움을 그린다. 녹봉은 잘린 팔 대신 기괴하게도 손가락과 주먹을 발사할 수 있는 기계손을 장착해서 사이보그처럼 살아가고, 곽추는 녹봉의 그 기계손에 눈이 찔려 실명했고, 라망은 진관태의 음모로 말 못하는 청각장애자가 되었고, 강생은 결투 도중 머리에 큰 충격을 먹고 저능아가 되었으며, 손건은 양다리를 잘려 녹봉의 가짜 손처럼 가짜 다리로 살아간다. 이 장애인 4인조는 복수를 위해 3년 동안 피나는 훈련을 거듭한다. 특히 영화 내내 눈 먼 곽추가 소리를 들어 라망의 손에 글을 써서 알려주고, 라망은 눈 먼 곽추를 위해 눈이 되어주는, 그러면서 상부상조하며 매 결투에 임하는 장면들은 그야말로 포스트모던하다.

이들은 늘 캐릭터를 나눠 가졌지만 주로 녹봉이 악역, 곽추가 의로운 역을 맡았다. 강생은 강대위나 부성과 비슷했고 라망은 가장 외모가 출중했다. 이들 중 리더격인 곽추는 서커스단의 곡예사로 일하다 우연히 영화계에 입문했으며 이후 <첩혈속집>에서 주윤발을 처리해야 하는 킬러지만 그의 품성을 알아보고 신의를 저버리지 않는 남자로 출연하기도 했다. 라망의 경우 최근 <엽문2>에서 견자단과 원탁 대결을 벌이는 선배 고수로 출연하기도 했다. 안타까운 건 그들이 과거 왕우, 적룡, 강대위 이상의 ‘개인기’를 갖췄지만 역시나 ‘외모’라는 상품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수시로 역할을 바꾸며 특유의 아기자기한 재미로 베놈스 필름 특유의 매력을 보여준 것만은 사실이다. 이들은 모두 무술감독들이나 마찬가지였는데 장철의 영화들 중 가장 합이 긴 대결을 보여주는 영화들이다.

베놈스들이 장철의 마지막 남자들이라 속단하면 안 된다. 장철은 이후 1980년대 말 동지화, 두옥명 같은 배우들을 새로 끌어들여 <대상해 1937> <과강> 등을 만들기도 했다. 동지화는 주성치의 <쿵푸허슬>에서 돼지촌의 세 고수 중 조용하게 밀가루 반죽을 하다 분연히 떨쳐 일어나 오랑팔괘곤을 구사하던 의리의 아저씨다. 물론 여기서 끝이 아니다. 장철의 환갑을 기념해 만들어진, 일종의 <13인의 무사> 리메이크 느낌의 <상하이 13>에는 사망한 부성을 제외하고 왕우, 적룡, 강대위, 왕종, 진성, 척관군, 정천사, 강생, 이수현, 양가인, 왕청 등 그 모든 장철의 남자들과 더불어 풋풋한 꽃미남 유덕화가 출연한다. <삼국지: 용의 부활> 홍보차 한국을 찾았던 유덕화를 만나 “당신을 장철 감독이 마지막으로 발굴한 남자배우라고 해도 좋을까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유덕화는 잔뜩 상기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제게는 그 말이 최고의 영광입니다. 그는 홍콩영화의 전부나 마찬가지였습니다.”

by
주성철 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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