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작가를 만나다: 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 브라더스>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

지난 29일 저녁 ‘2001년의 기억!’이란 제하로 2011년 첫 작가를 만나다가 열렸다. 이번 달의 주인공은 개봉 10주년을 맞는 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 브라더스’. 상영 후에는 원래 임순례 감독과의 대화가 예정되어 있었으나 임순례 감독 개인사정으로 자리를 함께하지 못하고 허남웅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와의 관객과의 대화가 이어졌다. 10년 전의 영화를 꺼내어 다시 보며 관객과 함께 감흥에 젖어 호흡했던 그 현장의 일부를 여기에 옮긴다.


허남웅(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이번 작가를 만나다는 개봉 10주년을 맞는 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선택했다. 이 영화는 일명 ‘와라나고’ 운동의 정점에 있는 작품이다. 관객들이 자발적인 운동을 펼쳐서 흥행까지는 아니더라도 좋은 영화를 살리기 위해 나섰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고 있다. 예정대로였다면 임순례 감독이 함께 자리하여 관객 여러분과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어야 했지만 감독님이 부상을 입어 함께 자리하지 못하게 되었다. 감독님도 이 점을 꽤 안타깝게 생각했다. 비록 오늘 함께 하진 못하셨지만 인터뷰를 통한 임순례 감독님의 답변을 잠시 말씀드리며 관객과의 대화를 시작해보고자 한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만들 당시 솔직히 이 영화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실제로 개봉해서 많은 관객을 만나지 못하기도 했고. 하지만 이 영화는 개인적으로 임순례라는 감독의 브랜드 같은 영화가 되었다. 10년이 지나고 드는 생각은 산업적 환경을 비롯해서 영화 만들기가 힘든 지금과 같은 시기에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시나리오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려고 했을 때 과연 투자자나 제작자를 만날 수 있을까 싶다. 지금은 산업정인 논리가 너무 강하다보니 영화를 만드는 입장에서는 무척 갑갑한 상황이다. 불과 10년~15년 전 이야기지만 <세 친구>나 <와이키키 브라더스>같은 영화가 나왔던 당시가 영화 만들기엔 조금은 더 괜찮았던 시기라는 느낌이 든다. 그때도 일명 ‘와라나고’라고 해서 관객들이 자발적으로 산업에 대항해 어떤 무브먼트를 보여준 첫 번째 영화이고 감독으로써 굉장히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사실 모든 영화를 제작하는 데에 있어서 리스크는 모두 있기 마련이다. 어떤 영화가 크게 흥행할 수도 있지만 전혀 안될 수도 있다. 흥행이 안 된다 할지라도 그것에 대한 어떤 여지 혹은 흥행 여부과 상관없이 그 영화가 지닌 가치를 인정해 주는 분위기가 완전히 없어졌다고 느낀다.”
이상이 임순례 감독님의 전언이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10년 전 영화이지만 지금 봐도 최근의 영화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의 의미를 따지기에 앞서서 영화를 보면서 놀라웠던 것 중 하나는 영화의 캐스팅에 관련한 것이다. 류승범, 황정민, 박해일 씨 등이 나오는데 개봉했을 당시 영화를 소개하는 기사 중에는 ‘명필름이 제작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스타는 커녕 마이너한 배우 한명 나오지 않는다’고 설명하기도 했다.(웃음) 하지만 지금 보면 십년 전에 이미, 이후 한국 영화를 이끌어갈 배우들이 모였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이 영화는 청춘에 대한 순수한 감정을 간직하려고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순수를 잃어가는 모습을 담아낸다는 점에서 아련한 느낌이 있다. IMF 이후의 한국 사회의 풍경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면서 개인적으로 마음이 아팠던 대사가 있다. 약국을 하고 있는 친구가 성우에게 너 요즘 뭐하냐고 물어보는데 성우는 제대로 얘기하지 못하고 지나쳐가게 된다. 사실은 이런 모습들이 10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단 생각이 든다. 전혀 빛바랜 느낌도 없고 그만큼 우리의 현실 역시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렇게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마음 아프게 느껴지기도 한다.

관객1:
영화를 보기 전에 예전에 봤을 때의 느낌과 어떻게 다를지, 인상 깊게 느끼는 장면들도 변화가 있을까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예전에 인상 깊었던 장면들이 여전히 와 닿았다. 고등학교 때를 회상하면서 해변가 장면이 등장하는데, 나중에 성우의 생활이 점점 어려워지면서 나이트에서 옷을 벗고 기타를 치는 장면에서 그 해변가 장면이 다시 등장한다. 그 순간 뭐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슬픔을 느꼈었는데 오늘 다시 보면서도 예전과 같은 슬픔을 느꼈다. 예전과 조금 달라진 것이라면 류승범 씨가 지금은 나이도 들고 스타가 되셨는데 당시에는 정말 어려보이고 굉장히 발랄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당시 영화를 볼 때는 몰랐는데, 지금 보니 박해일 씨가 성우의 어린 시절로 나와 놀랐다. 오지혜시가 마지막에 노래를 부를 때, 그 전까지 영화가 내내 담담하게 진행되면서 안타까운 느낌이었는데, 오지혜 씨가 등장하면서 무언가 활짝 열어젖히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좋았다.
허남웅: 아무래도 이 영화가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가운데에 전해지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장면들이 많아 보인다. 처음 장면에서도 와이키키 브라더스 밴드가 공연하는 모습에서 카메라가 팬을 하면서 나이트의 모습이 보이면서 뭔가 초라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오지혜 씨와 함께 밴드가 연주하는 장면이 특히나 중요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최소한의 순수를 가지고서 계속해서 살아가는 느낌이다. 황정민 씨가 상갓집에서 술을 마시고 볏집에 널브러져 있다가 불을 내는 모습들이 어떻게 보면 굉장히 초라해 보이는데, 사실 어린 시절의 회상장면에서도 고고장에서 밴드 연습을 하다가 전선이 불에 타서 화재가 나는 장면이 있다. 그 때는 절망하거나 그런 것이 아니라 무모한 열정 하나만으로 청춘을 이어갈 수 있었던 모습이 담겨있다. 계속해서 과거를 환기시키고 그 과거를 환기시키고 그 과거를 현재에 덧붙이고 싶어 하는 그런 모습들을 임순례 감독님이 전해준 게 아닐까 생각된다. 이런 모습들이 사실 자칫하면 현실 비판으로 넘어갈 수도 있지만 이 영화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관객들이 감정적으로 볼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배우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이 영화가 두 번째 장편영화였던 류승범 씨 같은 경우는 당시의 인터뷰를 보니, 그 전에는 형인 류승완 감독의 영화에만 계속 출연하다가 이 영화를 선택하면서 자신이 앞으로 배우를 계속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하겠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지금 보니 굉장히 뛰어난 연기를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황정민 씨는 당시는 무명이었지만, 이 영화에서 드러머 강수 역할을 맡으면서 처음으로 매니저와 팬클럽이 생기기도 했다고 한다. 한편으로 류승범 씨가 맡은 역할이 상징성을 지닌다고 본다. 사실 그는 음악에 대한 재능은 전혀 없고 옷이나 말하는 것이 영화 안에서 상당히 튄다. 영화의 포스터에서도 빨간 머리의 류승범 씨가 혼자 뒤돌아보는 모습이 눈에 띈다. 시대라고 하는 것은 류승범 씨가 연기한 기태 같은 사람들에게 반응하는데, 이얼 씨가 연기한 성우는 어떻게 보면 시대에 뒤떨어진 듯한 모습 같아 보인다. 그래서 당시 이 영화를 두고 나이 든 ‘세 친구’에 관한 영화가 아닌가 하는 얘기도 있었다. 임순례 감독님의 <세 친구>가 당시 한국 사회의 경직된 모습들을 반영했기 때문에 그런 평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세 친구>와는 다르게 유머러스한 면들과 아련한 면들이 있는 것 같다.

관객2:
며칠 전에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추모 공연이 있었다. 많은 20대 초중반 친구들이 모였었고 오늘 이 영화를 재조명하는 자리에 온 20대 초중반의 친구들이 있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을 테고, 해나가야 할 텐데,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유난히 많은 용기가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10년 전과 비교했을 때 나아지지 않은 현실이 마음이 아프다. 여전히 사회적인 안전망이 없다는 현실이 안타깝다. 혹시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 실패를 경험하거나 어려움을 겪더라도 본인의 탓으로 생각하고 너무 자책감을 갖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사람들이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다.
허남웅: 아무래도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사람들로 하여금 순수하게 밀고 나아가라는 메시지를 줄 수 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중요하게 생각되는 장면은 과거 회상 중에서, 네 명의 친구가 바닷가에서 발가벗고 뛰어가는 모습에서 곧바로 노래방 영상의 비키니 입은 여자들이 모습으로 이어지는 장면이다. 순수했던 과거의 모습들이 출세욕, 생활욕 등 때문에 바뀌어 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도전정신이나 순수한 마음들이 많이 깨어지게 되는데, 한편으로는 사회 시스템이 그런 부분들을 받쳐줄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된다. 이 영화 자체를 두고 보더라도 임순례 감독님의 말씀처럼 이런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는 시스템이 받쳐줘야 하는데, 한국영화계에서도 도전적으로 만들 수 있는 영화들이 많이 사라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영화가 그 자체로서 한국사회의 시스템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편으로는 씁쓸하면서도 의미 있다고 생각된다.

관객3: 오늘 이 영화를 처음 봤다. 친구가 너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데, 행복하냐고 물어봤을 때 주인공은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그렇게 선뜻 대답할 수 없다면 그는 대체 무얼 위해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의문이 들었다. 영화를 보면서 무엇을 위해 살아야하고 어떻게 행복을 느껴야 하는 것인가 하는 고민이 들었다.
허남웅: 사실 이 영화가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 같지는 않다. 사실은 불행한 모습이 더 많다고 느껴진다. 감독님은 현실에서 순수하게 살았으며 좋겠다고 얘기하시지만, 편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순수를 버려야만 하는 사회의 모습, 2000년대 들어서의 신자유주의 시대의 살풍경한 모습을 담아냈다는 생각도 단다. 그런 현실들을 바꿔보자는 것이 영화에서 드러나지는 않지만 그런 것을 읽을 수 있는 여지가 영화 속 개개인들이 갖고 있는 순수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10년이 지나도 사회가 크게 변하지는 않은 것 같다. 이전 관객 분이 달빛요정 말씀을 해주셨지만 여전히 이 사회가 누군가 하고 싶은 음악만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는 점에서만도 그렇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만 놓고 본다면, 인물들의 순수와 과거의 패기를 조금이지만 계속해서 모아간다면 마지막 장면의 오지혜 씨처럼 사랑에 대해 관심을 받고, 이얼 씨 처럼 음악에 대한 관심을 받고, 그렇게 소수이지만 서로 뭉쳐가며 살 수 있으리라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이 의미 있다고 생각된다.


관객4:
일반적인 영화들보다 템포가 느린 편이다. 종종 감정의 최고점에 오르기 전에 장면이 커트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느끼셨는지 궁금하다.
허남웅: 감독님이 이 영화를 만들면서 가장 중점을 뒀던 부분이 감정을 최고점까지 끌어내지 않는 것이었다고 한다. 너무 신파가 되어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현실에 대한 비판이 되어서도 안 된다는 생각에서 라고 한다. 그런 점에 가장 많이 고심하셨다고 들었다.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마지막의 엔딩 크레딧의 경우를 보면 일반적인 영화들과 다른 것 같다. 감정을 고조시키지 않지만 지속시켜가며 안겨주는 어떤 것들이 있다. 개인적으로 임순례 감독님이 인간에게 사랑을 준다는 생각도 든다. 사실 엔딩 크레딧에 그렇게 배우들과 스텝들의 이름들을 느리고 인상 깊게 보여주는 경우가 많지 않다. 이 영화는 공연하는 장면에서 끊지 않고 엔딩 크레딧을 함께 보여주면서, 한편으로 감독님이 인간이나 자신의 캐릭터에 대해 가지고 있는 마음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장면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한다. 첫 장면의 공연 모습과 대조가 되면서 여운이 남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 영화에서 또 하나 재밌는 점이, 박해일 씨나 황정민 씨 같은 경우 영화에서 자신들이 직접 연주하고 노래했던 것에 반해, 이얼 씨 같은 경우는 연주나 노래가 직접 한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 음악영화라고 했을 때 연주하는 모습에 공을 들이지 않을 경우 관객의 감정을 이끌어내기가 어려운데, 임순례 감독님도 이 영화를 하면서 힘들었던 점 중 하나도 그런 부분이었다고 한다. 이얼 씨의 얼굴이 같은 이미지가, 여전히 순수함을 간직하는 캐릭터로서 적역이긴 했지만 음악적인 면에서는 감독님의 생각과 맞지 않아서 힘드셨다고 한다. 영화에서 유머러스한 부분들이 종종 있는데 감독님의 두 번째 장편영화였기 때문에 좀 더 여유가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데뷔작인 <세 친구>는 물론 중요한 영화이지만 굉장히 메마르고 타이트하게 만들었다는 느낌이 있다. 감정적으로 타이트한 것이 아니라 편집에서 딱딱 떨어지는 부분들이 있는데,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그게 비해 시간을 좀 끌 수 있는 여유도 있고 유머러스한 장면들도 있다.


관객5: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오늘 처음 보았는데, 벌써 10년 전 영화란 얘길 듣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얼마 전에 본 <레인보우>라는 영화와 굉장히 비슷한 느낌이 들어서 놀랍기도 했다. 이상을 갖고 있지만 그것을 실현할 수 없는 현실을 이야기하면서 마지막에 굉장히 희망적인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이 좋았는데 오늘 본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도 그런 부분들이 느껴졌다. 힘든 현실이지만 마지막에 희망을 얘기하는 부분이 좋았고 비슷한 입장을 가지고 있는 다른 분들이 이 영화를 볼 때 서로 힘이 되어줄 수 있을 것 같다.
허남웅: <레인보우>의 신수원 감독은 본래 학교 교사로 지내다가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영화 <레인보우>에서처럼 계속해서 시나리오를 쓰고 투자사들을 찾고 하는 일화들이 있는데, 아마도 임순례 감독님이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만드셨을 때 <세 친구>를 만드시고 몇 년 동안의 공백이 존재하는데, 감독님께도 그런 일들이 있지 않으셨을까 생각되기도 한다. <레인보우>와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연결시켜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거란 생각도 든다.

(정리: 장지혜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관객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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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벌써 여섯 번째를 맞았습니다. 2006년에 서울아트시네마의 안정적인 공간 마련과 재원확보를 위해 영화감독, 배우가 참여한 것이 벌써 6회에 접어든 것입니다. 아울러 서울아트시네마의 개관 또한 9년째를 맞았습니다. 매년 1월에 친구들과 영화로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는 행사가 친구들 영화제입니다.

올해는 친구들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해보았습니다. 가장 근본적인 물음은 '당신에게 영화의 즐거움이 무엇인가'입니다. 지난해에 시네마테크는 물론이고 영화인들 상당수가 괴로운 시간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2011년에는 그런 시간을 넘겨 영화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영화의 향락을 낙원에서 누려보자는 취지입니다. 영화의 즐거움을 함께 하자는 것은 우리들의 욕망의 실현이 아니라 반대로 영화가 허락한 모든 것들을 누리자는 것입니다. 영화가 제공하는 즐거움은 다양합니다. 오래된 영화를 상영하는 기억의 극장을 찾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익명의 친구들과 감성적 교제를 나누는 일이나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의 거대한 스크린에서 빛을 만나는 즐거움, 그리고 본 영화들을 두고 몇 시간씩 이야기를 나누거나 글을 쓰는 비평적 욕구도 있습니다. 낯선 세계를 만나는 즐거움은 영화를 만들고자하는 욕망으로 진전되기도 합니다. 시네마테크는 이런 다양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장소입니다.


'2011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는 열일곱 명의 친구들이 참여합니다. 예년보다 적은 예산이지만 반대로 전례 없이 가장 풍성하고 다양한 행사들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친구들의 선택작들과 관객들의 선택, 그리고 무엇보다 올해는 특별히 해외와 국내의 시네마테크 두 기관을 친구로 초대합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는 지난 해 서울아트시네마가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대표인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의 명의로 재정지원 확대와 독립성의 확보, 안정적인 전용관이 필요하다는 서한을 보내오기도 했습니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카르트 블랑슈'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역사와 함께 했던 12편의 프랑스 영화가 소개됩니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복원하고 발굴한 장 르누아르, 사샤 기트리, 막스 오퓔스의 영화와 시네마테크에서 꿈을 키웠던 고다르, 그리고 누벨바그 이후의 장 으스타슈, 필립 가렐 등의 영화가 상영됩니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프로그램 디렉터인 장 프랑수아 로제가 2월에 서울 아트시네마를 방문해 시네마테크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예정입니다. 아울러 영상자료원이 새롭게 복원한 한국영화 네 편이 상영됩니다.

특별전에서 상영하는 마태오 가로네의 영화는 지난해부터 서울아트시네마가 활발하게 진행한 우리 시대의 작가를 소개하는 행사의 일환입니다. 특별히 그의 대표작인 <고모라>를 포함해 세 편은 이탈리아 문화원의 협조로 국내 판권을 구매해 특별전 상영 이후에 시네마테크를 포함한 예술영화관에서 상영할 계획입니다. 지난 해 타계한 에릭 로메르를 기념하는 '오마주: 에릭 로메르'에서는 6편의 영화가 상영됩니다. 에릭 로메르는 시네마테크가 사랑하고 시네마테크를 사랑한 감독입니다. 2001년에 그를 기리는 '에릭 로메르 회고전'을 처음 기획해 시네마테크에서 개최한 바 있는데, 당시 에릭 로메르는 '멀리 있는 친구들에게 저의 모든 작품에 대한 당신들의 오마주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내 모든 감사와 따뜻한 우정의 표현을 받아주시길'이란 서한을 보내오기도 했습니다. 이제 우리가 로메르에게 따뜻한 우정의 표현을 보낼 차례입니다.


영화가 허락한 즐거움은 영화를 보는 것만이 아니라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욕망도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세 분의 영화감독이 참여했지만, 2011년에는 이명세 감독부터 윤성호 감독에 이르는 현역의 감독 여섯 분이 참여해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젊은이들과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시네클럽' 행사가 열리게 됩니다. 지난 10년의 한국영화를 되돌아보는 행사도 있습니다. 장현수 감독의 <라이방>과 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 브라더스> 2001년도에 개봉했던 영화들입니다. 이 두 편의 영화는 '와라나고'라는 한국의 예술영화 제작과 배급, 예술영화 상영공간에 대한 논의를 촉진하게 만든 영화들이기도 합니다. 그 시간이 이미 10년이 지났습니다. 지난 10년간 한국영화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를 살펴보는 기회입니다.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는 시네마테크를 후원하기 위한 영화제입니다. 알다시피 시네마테크는 여전히 어려운 상황에 있습니다. 지난 해 '서울에 시네마테크 전용관 건립을 위한 추진위원회'가 발족하면서 시네마테크 전용관의 건립과  공간 확보, 재정 마련을 위한 다양한 노력이 있었습니다. 시네마테크에 대한 공적 지원이 50% 삭감되면서 임대료를 낼 수 없는 위급한 상황이 생겼지만, 영화인들과 배우들의 후원 광고 덕분에 힘든 상황을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동시에 삭감된 예산을 복원하려는 노력도 있었습니다. 시네마테크의 친구들의 대표인 박찬욱 감독이 직접 국회를 방문해 시네마테크에 대한 지원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2011년에는 당장 급한 시네마테크의 안정화 노력 외에도 전용관 확보를 위한 구체적인 청사진의 마련과 예산 확보에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전용관을 마련하는데 서울시가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2월에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관계자와의 좌담과 포럼을 시작으로, 3월에는 시네마테크 정책과 관련한 심포지엄이 열리고, 시네마테크의 해외 친구로 외국 영화인들의 초대 행사가 열릴 예정입니다. 내년은 서울아트시네마의 개관 1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기에 올 한해 십 주년을 맞는 준비들이 있을 것입니다.

올 해의 개막작은 에릭 로메르의
<레네트와 미라벨의 네 가지 모험>입니다. 누벨바그의 동료였던 프랑수아 트뤼포, 자크 리베트, 장 뤽 고다르가 초기 시절에 만든 단편 영화의 느낌으로 되돌아가 만든 작품입니다. 대표작인 <녹색 광선>을 만들고 불현듯 로메르는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이 영화를 즉흥적으로 만들었습니다. 첫 에피소드에는 '블루아워'라는 동이 크기 전의 1분간의 정적의 시간에 대해 말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밤새들이 잠들기 전, 낮 새들이 깨어나기 전의 정적이 시간은 영화 속 소녀의 말을 빌자면 마치 배심원들이 심의에 들어간 후 '사느냐 죽느냐'의 판결을 기다리는 시간처럼 고요함과 불안이 함께하는 시간입니다. 하지만 이 시간은 농부들이 '누가 뭐래도 내일은 새로운 날이 될 거야'라던가 '무슨 수를 써도 내일이 오는 것을 막을 수 없다'고 말하는 그런 시간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시네마테크가 그런 블루아워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고요함과 정적의 시간이 있습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내일이 오고, 내일이 오는 것을 누구도 막을 수는 없습니다. 내일 우리는 영화가 허락한 모든 것을 함께 누릴 것입니다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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