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브라이언 드 팔마의 83년작 <스카페이스> 상영 후 배우 박중훈과 함께하는 시네토크가 이어졌다. 배우 박중훈은 관객들에게 인사를 전하면서 본인을 알파치노로 소개하여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또한 그는 <스카페이스>에서 알파치노의 쿠바 억양이 섞인 영어 대사를 완벽하게 외워 놀라움을 자아내기도 했다. <씨네21>의 주성철 기자와 함께, <스카페이스> 개봉 당시의 추억들로 시작하여 배우 박중훈의 연기관과 한국 영화에 대한 그의 생각까지 들을 수 있었던 그 현장을 전한다.


주성철(씨네21 기자): 바로 영화 얘기를 시작해보자. 이 영화를 언제 처음 봤는지 기억이 나는가.
박중훈(배우): 내 기억이 맞다면 고등학교 2, 3학년 때인 것 같다. 그때 봤던 극장이 종로3가에 있던 서울극장이었다. 나이 드신 관객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그 당시 극장개봉시스템때문에 서울 사대문 안에 있는 개봉단관 한 관에서 개봉했다. 한 관에 좌석이 1000석 정도였고, 하루에 다섯 번 상영하니까 5000천 명만 볼 수 있었다. 영화 표 사느라 장사진을 이룬다는 게 가능했던 때다. 좌석이 1000석이니까 굉장히 큰 화면으로 보면서 거의 실신을 했다. 연극부 생활을 할 때인데, 배우를 꿈꾸면서 살 때 알파치노를 큰 화면에서 마주하고 굉장히 큰 충격을 받았다.

주성철: 다시 보니까 음악이라든가 여러 가지로 장현수 감독의 <게임의 법칙>이 생각난다. 실제로 <스카페이스>를 많이 참고하셨다고 들었다.
박중훈: <게임의 법칙> 시나리오를 강제규 감독님이 쓰셨고, <스카페이스>의 시나리오는 올리버 스톤이 썼다. 시나리오를 받아보고서는 장현수 감독에게 제안을 했다. 카피를 하자는 게 아니라, 내가 브라이언 드 팔마와 알파치노를 좋아하니 혹시 감독님도 동의가 되신다면 알파치노와 브라이언 드 팔마에게 오마주 영화를 만들고 싶다, 해서 시작한 것이 <게임의 법칙>이다.

주성철: 50번 넘게 보셨다고 했는데, 그러면 매번 보실 때마다 좋아하는 장면이 바뀔 것 같다.
박중훈: 많이 봤다는 걸 강조할 때 100번도 더 봤다고 하는데, 나는 진짜로 50번을 넘게 봤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50번이고 실제론 한 70번 정도 본 것 같다. 대사도 거의 다 외웠다. 그런데 쿠바 억양이 강해서 영어 공부엔 도움이 안 됐다. (웃음) 어떤 장면이 좋으냐면, 토니가 성공해서 어머니한테 거드름피우고, 여동생은 오빠를 좋아해요, 하면서 오누이의 정을 나누고, 그런데 배경 뒤로는 노을이 지고, 주제음악의 멜로디가 피아노로 나오는 그 장면이 굉장히 가슴을 적셨다. 처음 봤을 땐 마약하고서 소리 지르고 쓰러지는 장면이 충격적으로 기억에 남았지만 자꾸 보면서는 정서적인 씬들이 기억에 남는다.

주성철: 알파치노 얘기를 하고 싶다. 다시 봐도 대단한 것 같다. 이보다 앞서서 <대부>에서 마이클로 나올 때는 절제되어 있고, 차갑고 지적인 이미지였다면 여기서는 무모하고 충동적이고 본능적인 캐릭터를 연기했다. 그리고 드 팔마하고 <칼리토>를 할 때는 선량하고 바른 삶을 사는 푸에르토리코사람으로 나오기도 했다. 알파치노에 대해서 다시 보게 되는 것 같다.
박중훈: 배우와 관객들 사이에선 ‘일정 거리 유지 질량의 법칙’같은 게 있는 것 같다. 튀어나오는 배우한테는 관객들이 도망가면서 매력을 느끼고, 숨는 배우에게는 쫓아가려는 매력이 있다. 이 두 매력을 갖춘 배우가 알파치노라고 본다. <스카페이스>에서는 비교적 튀어나오는 연기를 많이 했는데, 알파치노가 나오는 다른 영화를 보면 숨어버리는 연기도 한다. 그런 두 가지의 스펙트럼이 매우 넓은 배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배우로서 존경하고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 얘기하자면, 여백과 공백은 큰 차이가 있다. 여백은 참아낸 것이지만 공백은 부족한 거다. 그림에서 여백과 공백이 있다면, 연기에서는 ‘포즈’와 ‘마’가 있다. 호흡을 못 쫓아가면 마가 뜨는 거다. 하지만 알파치노는 포즈가 근사한 배우다. 알파치노 연기 특유의 포즈가 있는데, 다른 영화에서도 많이 나온다. 그 포즈가 정말 매력 있다.(일어나서 연기를 보여줌) 알파치노를 보면, 키 작은 사람이 혼자 이렇게 걷는다. 레스토랑에서 자기 아내랑 파국을 맞으며 돌아다니는 장면에도 이런 게 굉장히 많다. 죽을 때도 마치 연극무대에서 배우가 돌아다니듯 서성거린다. 그런데 사실 그게 굉장히 위험하고 굉장히 보기 거슬리는 행동이다. 잘못해서는 겉멋 든 배우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알파치노는 배우 개인의 매력으로 ‘마’를 ‘포즈’로 바꿔버린다.


주성철: 알파치노를 떠나서 브라이언 드 팔마라는 이름 자체가 그 당시 굉장한 흥분을 불러일으켰다.
박중훈: 개인적으로 브라이언 드 팔마의 실패작까지도 마음에 든다. 백미는 <스카페이스>와 <칼리토>, 최근 <미션임파서블1>까지 포함해서. 드 팔마의 영화는 군더더기 없고, 저속한 표현이지만 한마디로 쌈박하고 힘있다.

주성철: “지금 관객들은 괴롭힘을 당하길 원하는데, 드 팔마는 여전히 관객을 유혹하려는 사람이다”라는 말이 기억난다. 말 그대로 장인 같은 감독이다. 빨리 신작을 보고 싶다. 또 <스카페이스>를 다시 보면서 생각이 난 건데, 코카인을 흡입하면서 콧잔등에 흰 가루 묻히고 있는 장면이 다른 영화들에게 많은 영향을 줬다. 그런 식으로 보면, 영화를 좋아하고 배우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모방하고 따라하고 싶은 욕구가 있을 것 같다.
박중훈: 사람이 누구를 좋아하고 마음속에 그리고 흠모하면 닮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나 같은 경우엔 브라이언 드 팔마와 알파치노가 특정 행동에 영향을 줬다기보다 영화인생을 사는데 있어 큰 영향을 준 사람임에 틀림없다.

관객1: <스카페이스>의 알파치노 연기는 일종의 과잉처럼 보일수도 있는데, 캐릭터와 동화가 잘 되어 영역을 넘어선 연기가 됐다. 그런 연기를 하기 위해서는 메소드 연기처럼 자기를 버려가면서 연기를 해야 하는지. 아니면 행동 계획에 따라 철저히 계산을 해야 하는지 궁금하다.
박중훈: 말씀하신 전제를 보자면, 나는 알파치노의 연기가 과잉된 연기라고 보지 않는다. 다만 과잉된 인물이다. 과잉된 인물을 충실하게 연기한 것이지, 연기가 과잉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 여기 영화공부 하시는 분들에게는 충격적인 이야기가 될 수도 있지만, 영화 연기나 연출엔 법이 없다. 대학교에 영화과가 있는 것이 모순적일 정도로 영화는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연기법이 따로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다만 배우는 좋은 신체를 가지고 건강한 상태로 인물을 이해해야 한다. 연기의 사전적 정의는 ‘주어진 가상을 현실로 믿고 순간을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다. <스카페이스>에서 알파치노가 어떤 연기법을 썼는지 분석한 적도 않았고 분석할 수도 없는 거라고 생각한다. 연기 이론이나 연기법 같은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관객2:
배우로서 연기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혹은 배우관이라고 하는 것이 있는지 궁금하다.
박중훈: 자기가 이렇다, 라고 배우가 보여주는 연기를 관객들이 믿는 순간, 공감하는 순간을 좋은 연기라고 한다. 배우가 그 상황을 믿지 못하면 아무도 믿지 않는다. 클로즈업으로 확대하면 실제 크기의 3000~6000배가 확대된다. 관객들은 그걸 어두운 곳에서 선명하게 본다. 배우의 연기가 겉도는지, 거짓말인지 금방 알아내는 거다. 연기에 있어서는 배우가 그 상황을 믿어야 한다. 가끔씩 생각했던 것보다 떨어지는 감독들이 있다. 그때부터 참 미치는 거다. 내가 못 믿는데 어떻게 연기가 되나. 그때가 제일 곤혹스럽다. 그럼 애매한 상태에서 연기를 한다. 그렇게 되면 아주 고통스럽다. 그런 느낌을 많이 받은 영화일수록 안 됐다. 그런데 현장에서 소름이 끼칠 정도로 믿기는 상황이다, 이러면 감독 말 들을 필요도 없다. 내가 느꼈으니까. 진짜는 그 마음을 가지고 있냐, 없느냐다. 물론 그걸 표현하는 방법은 배우가 찾아내야 하지만, 가장 중요한 근본은 배우가 감정을 느껴야하는 것이다.

관객3: 원작도 봤는데 브라이언 드 팔마의 <스카페이스>가 더 좋았다. 이런 영화를 좋아하면서 갱스터 영화에 대해 가지고 있는 고민이 있다. 폭력적인 면이 나오는 와중에도 기본적인 도덕관념이 있느냐의 문제가 있다. 그런 지점에서 이 영화는 어떤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나.
박중훈: <스카페이스>는 한 인간의 욕망의 끝을 굉장히 강한 서사로 그린 것이다. 그런데 만약 그런 주제 의식이 선명하게 느껴지지 않는 경우에는 폭력적인 영화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는 의미전달이 잘 되어 폭력적인 묘사가 용인이 된다. 한마디로 선정적으로 이용하느냐의 차이다. 다른 예를 들면, 성인 남녀가 육체적인 관계를 갖는 것은 삶의 한 부분인데 그것이 확대되어 강조되는 경우는 에로 산업영화라고 하지 않나. 폭력도 개연성이 있다면 받아들일 수 있다. 그리고 <스카페이스>에서는 토니 몬타나가 형벌을 받는다. 가족을 잃고 스스로 파멸의 길로 접어 들어간다. 권선징악을 당한 거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도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관객4:
영화를 공부하는 건 아니지만 영화 산업에서 일을 하고 싶다. 사소한 것들부터 시작해서 국내 영화 산업이 더 잘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박중훈: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한국영화를 사랑하지 말라는 것. 애국심으로 봐주면 얼마나 지겹고 귀찮은 일인가. 그걸 봐줘야 할 이유가 없다. 두 번째는, 재미없는 영화는 철저하게 외면해야 한다는 것. 조금만 잘못되면 바로 지적해야 한다. 영화인들을 그렇게 몰고 가야 한다. 한국 영화는 절대 애정을 갖고 보면 안 된다. 그냥 영화로 보면 된다. 물론 내가 나온 영화도 포함해서 자유롭게 채찍과 당근을 주길 바란다. 다만 배급에서 독과점이라든가, 제도에 대한 논의라든가 하는 것들은 애정을 가지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

주성철: 정말 오랜만에 순도 100퍼센트의 영화를 본 것 같다. <뜨거운 오후>의 알파치노가 생각난다. 요즘엔 그런 연기가 없어서 그립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부탁드린다.
박중훈: 스무 살에 배우로 데뷔해서 27년 동안 40여 편의 영화를 찍었다. 그 긴 세월동안 가장 많이 내뱉은 단어가 ‘관객’이다. 영화는 관객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관객이 있어야 존재하는 게 영화다. 오늘 이 자리에 오신 분들 중 <스카페이스>가 궁금해서 오신 분들, 옛날 향수를 다시 느끼고 싶어서 오신 분들, 저에 대한 관심이 있어서 오신 분들, 어느 분들이든지 전부 다 감사드린다.

정리|송은경 관객 에디터 사진|최용혁 자원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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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s 2012.02.24 15: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984년 피카디리극장에서 50분정도 분량을 삭제한 채로 개봉했어요


마이클 만은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현재형의 작가다. 지금 전 세계 영화계에 마이클 만 만큼 범죄 묘사를 통해 현대 도시의 속성을 기막히게 드러내는 감독은 없다. 일찍이 <도둑들>(1981)에서 범죄와 도시의 상관관계에 대해 주목하기 시작했던 마이클 만은 <히트>(1995)에 이르러 그만의 작가적 방식을 확고히 하기에 이른다.

닐(로버트 드 니로)은 한 치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는 프로페셔널 범죄자다. 일이 수틀리면 미련 없이 몸을 피하기 위해 집에는 가구 한 점 들여놓지 않고 심지어 동료들과 달리 가족은 물론 여자 친구도 사귀지 않는다. 닐을 쫓는 LA 경찰국 강력계 반장 빈센트(알 파치노) 역시 자신의 일에 있어서는 빈틈이 없다. 하지만 그 때문에 가족과의 관계는 살얼음판이다. 이미 두 번의 이혼 경력을 가진 그는 현 부인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 못한다. 빈센트의 삶의 목적은 오로지 닐! 그를 검거하려는 의지만이 빈센트를 살아있게 만든다. 그런 빈센트를 바라보는 닐의 눈빛에는 혐오감 대신 동료 의식이 짙게 서려 있다.

이 영화 속 LA는 우리가 흔히 보아온 그곳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태양열이 작렬하는 대신 네온사인이 발광하는 밤거리가, 야자수가 늘어선 해변가 대신 범죄 모의가 빈번히 이뤄지는 뒷골목이 화면을 장식한다. 그러다 보니 LA의 사랑과 낭만은커녕 범죄가 기승을 부리는 것은 물론이고, 날로 조직화되어가는 범죄를 소탕하기 위해 이를 쫓는 경찰 역시도 더 잔인해질 수밖에 없다. 언제나 쫓는 형사와 이어져있기 때문에 쫓기는 범죄자는 고독한 법이 없다. 그렇게 낮과 밤의 경계가 사라진 도시에서 닐과 빈센트, 그러니까 범죄자와 형사의 꼴도 구분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마이클 만은 처음으로 한 화면에서 호흡을 맞추는 로버트 드 니로와 알 파치노의 꿈의 캐스팅이 성사된 후 (<대부2>(1974)에 함께 출연했지만 시대 파트를 달리한 까닭에 현장에서 맞닥뜨린 적은 없다.) 자연스럽게 구로사와 아키라의 <천국과 지옥>(1963)을 떠올렸다. 제목처럼 전반부와 후반부가 완전히 성격을 달리해 하나의 구조를 이루는 것처럼 <히트> 역시도 닐과 빈센트의 만남을 정확히 중간에 두고 둘의 캐릭터를 설명하는 전반부와 본격적인 추격전이 벌어지는 후반부로 짝패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히트>를 통해 범죄자와 경찰, 낮과 밤, 영화와 현실의 경계를 모호하게 처리하는 마이클 만은 오락성과 예술성을 가장 이상적으로 결합하는 할리우드의 가장 중요한 작가다. 그는 이전부터 장르영화를 다루면서도 특히 영화의 현실성(reality)에 대한 자각을 결코 놓지 않으면서 필모그래프를 발전시켜왔다. <히트>로 생생한 거리 총격전의 신기원을 이룩한데 이어 <콜래트럴>(2004)과 <마이애미 바이스>(2006)에서 HD카메라를 도입해 전쟁 뉴스릴과 같은 총격 장면을 선보인 후 <퍼블릭 에너미>(2009)에서 시각적 체험을 넘어 감정의 체험까지 그대로 재현하기에 이르렀다.

그런 마이클 만의 영화에 대해 ‘카이에 뒤 시네마’의 비평가 뱅상 말로자는 “마이클 만은 메이저 스튜디오에서 유명한 스타들과 거대 예산으로, 스필버그 영화에 육박하는 예산으로 영화를 만들어낸다. 작가성과 엔터테인먼트를 결합하면서, 두 대립적인 것의 행복한 결합을 이뤄내고 있다.”라고 평했다. 우선적으로 관객을 고려하면서 사회의 문제, 미장센의 문제를 간과하지 않는 마이클 만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 <히트>는 가장 우선적으로 관람해야 할 영화인 것이다.

글/허남웅(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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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시네바캉스가 한창이던 지난 8월 8일은 특별히 정한 <대부>의 날이었다. 비록 안타까운 사정으로 <대부2>의 상영이 취소되긴 했지만, 김영진 영화평론가의 강연으로 그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극장의 큰 스크린으로 만난 <대부>의 위력에 모두 큰 감흥에 젖은 가운데, 김영진 평론가는 촌철살인의 짧고도 굵직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이야기를 담아보았다.


김영진(영화평론가, 명지대 교수): 언제 봐도 재미있는 영화다. 83년에 처음 봤다. 서울극장 리바이벌 상영이었는데, 학교 졸업하고 당당하게 본 첫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였다. 너무 쇼킹했고 특히 마지막 교차편집이 너무 쇼킹해서, 그 다음날 한 번 더 봤다. 한 동안 코폴라의 광팬이 됐었다. 국내 출시된 DVD의 서플이나 피터 비스킨드 프리미어 수석기자가 쓴 책(『할리우드의 르네상스』라는 제목으로 국내 번역)에 영화에 대한 많은 비화가 있다. 처음부터 코폴라가 연출하고 싶어서 한 영화는 아니었다. 60년대 코폴라는 미국에서 펠리니나 고다르 같은 영화를 만들려 했었다 한다. 대학의 유명한 수제였다는데, 대학 3학년 무렵 로저 코먼이라는 B급 영화 제작자에게 스카우트되어서 시나리오도 쓰고 온갖 일들을 다 했다고 한다. 구소련 SF 영화를 사와서 원본 시나리오 없이 대충 화면 보면서 더빙용 시나리오를 쓰는 등 많은 작품을 했다. 특히 <패튼>의 시나리오가 유명하다. 아카데미상도 받았다. 그렇게 시나리오를 써 가면서 연출도 했는데 찍는 족족 망했다. 연출한 영화 중 <빗속의 연인>이라는 영화가 있다. 미국의 주부가 가출하는데, 가출 동기는 밝혀지지 않는다. 그녀가 자아를 찾는 여행을 해 나가는 로드무비다. 하지만 이 영화도 큰 빚을 졌다. 프레드 아스테어를 데려다가 고전 뮤지컬에 대한 오마주 영화를 찍었는데 그것도 망했다.

거의 할리우드의 기피 인물이 된 상황에서 갑자기 <대부>의 연출을 맡게 된 거다. 대부라는 소설이 그렇게 베스트셀러가 될 줄 몰랐다가 폭발적인 베스트셀러가 되니까 급히 6개월 내에 영화를 찍으려고 한 거다. 그런데 아무도 안 하려 해서 궁여지책으로 생각한 사람이 코폴라였던 것. 코폴라가 이탈리아 계통이라서, 같은 이탈리아 계통끼리 마피아를 욕되게 하는 영화를 찍겠냐 해서 택했다고 한다. 최악의 선택이라고 지인들의 전화를 받고, 코폴라 나름대로도 굉장히 창피해하면서 내키지 않아했다고 하며, 촬영 중에도 일주일마다 해고 위협을 받았다고 한다. 해고 즉시 투입할 감독도 늘 대기하고 있었다고 한다. 해고 위협을 받은 결정적 이유는 말론 브란도와 알 파치노를 캐스팅한 것, 시실리 로케이션 고집한 것 등이었다. 당시에 알파치노는 인물도 안 되고 키도 작고 연기도 못하는 배우였다. 브로드웨이 초짜 배우도 저것보단 잘하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그러한 여러 가지 악조건들을 무릎 쓰고 나온 영화가 <대부>다. 그런데 영화가 개봉하자 마자 박스 오피스의 기록을 갈아치웠고, 그 당시에 드물게 와일드 릴리즈 상영되었다. 그래서 코폴라는 그 날로 바로 로버트 에반스에게 백지수표를 받았으며, 그걸로 페라리를 샀다가 그날 저녁에 술 먹고 사고내서 파손됐다고 한다. 코폴라에게도 엄청난 스트레스가 있었다는 거다. 말론 브란도는 당시에 퇴물배우이자 말썽꾸러기였다. 코폴라가 브란도의 집에 오디션하러 찾아갔다고 하는데, 브란도는 코폴라를 맞이할 때 입안에 뭘 물고 영화 속의 그 모습처럼 준비해서 맞이했다고 한다.

코폴라는 '사이트 앤 사운드'와의 인터뷰에서 영화에 대한 세 가지 착안점을 밝혔는데, 마피아는 아메리카에 대한 메타포라는 거다. 세 가지 지점에서 같다. 자본주의적 사고방식. 이익을 위해선 뭐든지 할 수 있는, 무자비하게 적을 살상할 수도 있는 집단. 그리고 둘 다 자기 내가 매우 자비로운 집단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코폴라는 더 나아가서 차라리 마피아가 미국보다 낫다고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적어도 마피아는 자기 구성원들은 배신을 하지 않는 이상은 확실하게 보호해주니까 말이다. <대부> 1편은 굉장히 마피아가 미화되어 있다. 그래서 코폴라는 2편에서는 그것을 반성하고 굉장히 차갑게 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편이 더 좋다고 여겨지는 이유는, 우리는 판타지를 갖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사회시스템(자본주의)을 충실히 할수록 가족주의가 깨진다. 비토 콜레오네 시절에는 그것이 가능했다. 첫 살인을 저지르고 가족 내에 들어와서 어린 마이클과 노는 장면 등이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마이클 콜레오네는 아버지 못지않게 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꾸 소외된다. 한 번 배신한 사람은 계속 배신하고, 그래서 죽이게 된다. 이런 주제를 마르크시즘 적인 텍스트보다 더 깊은 레벨에서, 이와 같이 다뤄낸 영화가 또 없는 것 같다. 처음 40분의 결혼식 시퀀스에서 이 모든 게 다 나타난다. 어둠 속에서는 청탁이 이뤄지고 있다. 바깥에선 밝은 햇살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을 누리고 있다. 계속해서 안과 바깥이 대비되며, 모든 등장인물이 소개된다. 유일하게 거기에 속하지 않은 사람이 마이클이다. 케이가 계속 물어보는데, 마이클만이 거기에서 분리되어 양지의 세계에 있다. 그런데 어쩌다보니 패밀리 속으로 들어오고 변해버린다. 영화의 마지막, "이번만은 대답해 줄게. 아니야"라고 말하는 소름끼치는 모습. 그러면서 마이클은 계속 고립된다.

형식적으로 이 영화는 아메리칸 뉴시네마 중에서 가장 고전적 방식으로 찍혀있다. 주제 상으로는 급진적이지만. 일종의 권력이동 드라마다. 시점이동에 관해 굉장히 신중하고 영민한 방법을 쓰고 있다. 영화의 첫 숏에서 카메라가 줌 아웃되면 그것이 비토의 시선임이 밝혀진다. 한편, 비토가 암살시도를 당할 때, 카메라가 부감으로 올라가는데, 거기서부터 시점이동이 시작된다. 병원에서 마이클이 아버지를 구해낼 때 감동적인 숏-리버스숏이 나온다. 정말 믿을 만한 게 마이클 밖에 없는 상태인 거다. 유일하게 아버지를 닮은 아들. 비토가 울자 서서히 마이클에게 시점이 이동한다. 영화의 첫 숏과 대구를 이루는 숏이 솔로노와 협상 건을 놓고 의논할 때 마이클이 하지 말자고 말할 때, 카메라가 틸 다운하고 천천히 이동하면서 마이클에게 이동하여 클로즈업으로 끝나는 숏이다. 첫 장면의 비토 콜레오네와 대구를 이루는 숏으로, 아주 훌륭한 테크닉이다. 부자간의 마무리를 짓는 건, 정원에서 부자간의 대화 장면이다. 둘이 얘기를 할 때, 아주 사적인 친밀한 얘기와 비즈니스 얘기를 번갈아가며 한다. 아들 얘기, 전화국 얘기. 블로킹이 바뀌면서 카메라 포지션도 바뀌고 두 사람의 더블 클로즈업을 잡고 있다. 비토가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을 한다. "나는 네가 거물이 되면 했다. 상원의원...." 그러자 마이클이 이것도 좋다고 한다. 아주 뛰어나게 연출하고 있는 장면이다. 거의 무장해제 된다. 손자와 노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마이클이 어떻게 새로운 보스가 되는 지를 보여줄 때에도, 톰에게조차 말하지 않고. 다 처리해 버린다. 새로운 보스가 되는, 즉 또 다른 인간이 되어버리는 이야기이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생생함이다. 마리오 푸조의 원작도 굉장히 뛰어난 소설이다. 직접 취재하거나 그러지 않으면 쓸 수가 없는 소설이다. 꼴레오네가 말하는 "바르지니와 협상을 주선하는 사람이 오면 그 사람이 배신자다"라는 대사는 결코 책상에 앉아서 쓸 수 없다. 정말 그 세계의 사람들을 많이 취재한 사람마이 쓸 수 있는 대사다. 풍부한 디테일들을 가지고 할리우드의 엄청난 물적 지원을 받으면서 많은 배우들을 캐스팅해서 만들어낸 기적 같은 작품이다. 코폴라는 계속해서 이 영화를 능가하는 작품을 찍고 싶어 했으나, 내 견해로는 결국 그러지 못했다. 요즘 <테트로> 같은 영화를 보면, 오히려 자기가 젊었을 때 찍고자 했던 영화를 이제서야 찍는 거 같다. 코폴라 필생의 테마인, 선과 악, 밝음과 어둠을 가지고 말이다. <지옥의 묵시록>도 마찬가지다. 이 양면성의 측면에서. 이와 관련된 일화가 있는데, 코폴라 할아버지가 코폴라 아버지를 교육을 시키는데, 어느 날 아버지가 창고에서 플룻을 부는데 마피아가 나타났다고 한다. 코폴라 할아버지는 마피아들에게 총들을 전해주었고, 마피아들이 얘는 누구냐고 하자, "걱정 안 해도 된다, 내 아들이다."라고 했다는데, 코폴라 아버지는 이 때 마피아 앞에서 플룻을 불었다고 한다. 그들이 잘한다고 돈을 더 주고 갔다고 한다. 코폴라는 아버지의 이 일화를 굉장하다고 여겼다. 가장 잔인한 것과 따스한 것이 공존하는 순간이라 여긴 거다.


관객1: 대부를 한 다섯 번째 보는데 이해가 안 되는 장면 중 하나가 다섯 개 패밀리를 다 소집해서 돌아오는 길에, '내 아들을 죽인 것이 바르지니인 것을 알았다'라고 하는데, 이에 대한 복선이 나왔는지?
김영진: 그것은 결국 감일 게다. 회합의 주도권을 쥐고 분위기를 리드하는 것이 바르자니인데, 아마도 거기서 눈치를 챈 것이 아닐까 싶다. 나도 이 영화를 열 번 이상 본 것 같다. 학생들과 수업 중에도 곧잘 본다. 의외로 학생들은 이 영화를 많이 안 봤더라. 내 기억으론 <7인의 사무라이>를 보여주면 자는데, <대부>는 안잔다. 더 젊을 때는 <대부2>를 더 좋아했는데, 지금은 <대부1>이 더 좋다. <대부2>는 너무 날이 서 있어서 좀 괴롭다. <대부1>은 날도 서 있지만, 정서적으로도 우리를 위로해주는 측면이 있다. 대중영화로서 완벽하고, 할리우드가 아니면 만들어낼 수 없는, 개인의 기량과 시스템의 힘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작품이 아닌가 싶다. (정리 : 박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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