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정전(1990) 왕가위

그러니까 지금의 뉴욕은 그때의 뉴욕이 아니다. 25년 전의 얘기다. 카메라를 메고 사냥꾼처럼 맨해튼의 거리를 킁킁거리며 돌아다니던 때, 유독 나를 사로잡았던 장소가 있었다. 카날 스트릿을 중심으로 로어 맨해튼에 펼쳐진 중국 본토 이민자들의 거주지, 차이나타운. 그곳은 센트럴파크를 중심으로 유명한 뮤지엄들이 자리 잡은 어퍼 맨해튼과는 냄새부터 달랐다. 지하철역 계단을 올라오면 매운 양념으로 철판에 볶은 숙주와 국수 냄새, 협심당파 똘마니 같은 사내들이 뿜어내는 담배 냄새, 팔딱팔딱 생선가게 바닥에서 뛰어오르는 물고기들의 바다 냄새, 만두가게 찜통에서 연신 뿜어내는 증기 냄새, 한때는 1,000명도 넘게 살았다는 작고 오래된 건물의 벽돌 냄새, 젖은 신문지 쪼가리와 검은 흙탕물이 군데군데 고여있던 길바닥 냄새, 그 모든 냄새에 나는 매료되었다. 허리가 반으로 접힌 단발머리 할머니가 햇빛 속으로 사라지는 장면을 아득히 바라보거나 차이나타운 페어 같은 오락실에서 백발이 성성한 닭에게 동전 한 닢으로 미래를 점치면서 과거와 미래 사이를 빙글빙글 돌고 돌았다.

그러니까 그 차이나타운 끄트머리, 바로 맨해튼 브릿지가 시작되는 지점에 영화관이 있었다. 외관이 화양극장 비스무리한 그 극장의 이름이 로즈메리인 것이 꽤나 인상적이었는데, 나는 단박에 <시민 케인>의 로즈버드를 로즈메리로 떠올려냈고 저런 비범한 작명을 하다니 주인은 영화광인 게 분명한 거지, 매우 흐뭇해했다. 게다가 왕가위의 영화들을 상영한다니, 동네 비디오가게에서 빌린 <아비정전>을 자취방의 손톱만한 텔레비전으로 뒤늦게 봤던 터라 역시 뉴욕은 뉴욕다우며 로즈메리 극장은 이름값을 한다고 멋대로 생각했다.

그때를 떠올리면 극장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는 내 모습이 마치 영화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처럼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극장 내부는 흐릿한 퇴락의 공기가 떠돌고 있었다. 영화를 보는 중에 발밑으로 쥐가 지나간다고 해도 놀랄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다른 영화관에 비해 이상스러울 만치 화면은 거대했고 천장은 드높았다. <아비정전>의 영어 제목은 “데이즈 오브 빙 와일드(Days of Being Wild)”. 거침없던 날들에 바치는 이 영화를 보기에 이보다 더 영화 같은 극장이 있을까 싶었다.  

그리하여 1994년 그 겨울, 그 극장에서 <아비정전>의 잊지 못할 첫 장면이 시작되었는데, 장국영이 흘깃 시계를 볼 때, 그 시계의 초침이 또각또각 12를 향해 올라갈 때, 너와 내가 함께 한 그 1분에 대하여, 장만옥의 동요하는 눈빛이 극장 내부를 꽉 채울 때, 화면 속에서 푸른 바람 한 줄기가 관객석 사이사이를 어루만지듯 불어왔고 불현듯 나 또한 지금 이 순간을 평생 잊지 못하겠구나, 스치듯 생각했다. 그때만 해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장소들이 여간해선 사라지지 않을 거라 마구잡이로 믿어버리던 때다. 그때만해도 로즈메리 극장이 2년 후에 문을 닫게 될 거란 생각을 미처 못했고 그때만해도 같이 영화를 보던 친구가 영원히 곁에 머물 줄 알았다.

그리고 25년이 흘렀다. 작년 뉴욕에 갔을 때 숙소를 차이나타운에 잡았다. 로즈메리 극장 자리에 자리잡은 번쩍번쩍 금칠로 뒤덮인 불교 사원의 머리통을 보면서 생각했다. 어쩌면 우리가 죽음을 당연히 맞이하는 순간이 온다면, 소중한 대상의 자리를 꿰찬 괴물들에게 오만 정이 떨어질 때가 아닐까. 늘 끝자리를 잘못 기억하는 나의 뇌세포 덕분에 <시민 케인>의 로즈버드처럼 나도 마지막 순간에 로즈메리를 외치는 건 아닐런지. 로즈메리 극장을 카메라에 담아두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울 뿐이다. 일기일회, 모든 순간이 단 한 번의 만남인 것을 그때는 몰랐다.

 | 박태희 (사진가, 안목출판사 대표)

*2020/06/19 뉴스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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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는 B의 뮤즈 혹은 페르소나’라는 표현을 쉽게 접할 수 있다. 두 단어 모두 주로 대중문화에서 자주 쓰는 표현으로 뮤즈는 작가나 화가 등에게 예술적 영감을 주는 사람을, 페르소나는 주로 영화에서 많이 쓰이는데 감독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는 배우를 의미한다. 최근에는 이 단어가 갖는 무게에 비하여 지나치게 남용되고 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누가 보아도 그 관계가 ‘페르소나’로 표현 될 수 있는 대표적인 사람들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왕가위와 장국영, 양조위’를 빼놓을 수 없다. 누군가는 왕가위의 페르소나는 장국영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양조위, 누군가는 장국영과 양조위라고 말한다. 페르소나가 다른 배우로 옮겨가는 경우는 간혹 있는데, 이들의 관계에 유독 주목하는 이유는 바로 장국영의 죽음(2003)이라는 특성 때문이다.


왕가위의 페르소나가 양조위로 대표되는 시점은 <화양연화>(2000)도 있지만 장국영의 죽음 전후로도 나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양조위는 조연이었음에도 그만의 색깔을 담은 연기로 왕가위와 지속적인 관계를 맺어왔다. 왕가위가 그에게 <중경삼림>(1994)의 주연을 주었다는 것은 그에 대한 감독의 신뢰를 보여준다. 그럼에도 개인적으로 만약 장국영이 살아 있었다면, 그 이후의 작품들에서 양조위와 장국영이 각각 어떤 캐릭터를 구축했을지 여러 가지 변수를 생각해보게 된다.


왕가위는 <열혈남아>(1988)로 시작하여 <아비정전>, <동사서독>, <중경삼림>, <타락천사>, <해피투게더>, <화양연화>, <2046>, <마이블루베리나이츠> 까지 장르의 변화는 있어도 주제는 올곧다. 언제나 ‘사랑’에 대해 말한다. 주인공은 사랑이 부족하고, 사랑을 모르고, 사랑을 받고 싶고, 하고 싶고, 떠나보내는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우리 모두의 보편적인 사랑 이야기이다. 그의 영화에서 중요 캐릭터들을 보면 ‘버림받기 전에 먼저 떠나는 사람’과 ‘실연을 극복하고 변화를 통해 새로 출발하는 사람’으로 나뉜다. 전자가 바로 <아비정전>(1990)과 <동사서독>(1994)의 장국영이다. 이 두 영화 속의 장국영은 모두 사랑받지 못했거나 사랑하지 못해서 불행하다. 왕가위 감독은 자신의 작품들에 전반적으로 60년대의 홍콩 중국 반환의 불안한 심리를 허무주의와 유한성에 대한 순응으로 표현해내고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장국영이 두 영화에서 맡은 역할은 감독의 가치관을 담아내는 매개체, 페르소나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아비정전>에서 아비 역할의 장국영은 과거 엄마에게 버림받았다는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한 남자이다. 그리하여 진정한 사랑은 물론 정착도 하지 못한 채 버림받기 전에 먼저 여자를 떠나간다. 여자에게조차 꿈에서 만나자고 하는 그는 ‘날개 없는 새’로 살기 위하여 현실에 안주하지 못하고 부유하다가 결국 죽음을 맞이하고, 이러한 결말은 감독이 바라보는 당시 홍콩의 분위기를 반영한다. 영국의 식민지에서 벗어나 중국으로 반환된 역사를 볼 때, 홍콩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아비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서 방황하는 홍콩 젊은이의 모습처럼 보인다. 이 캐릭터는 <동사서독>의 동사, 구양봉으로 이어진다. 이 역할 또한 장국영이 맡았는데, 반복되는 성격으로 등장해 장국영이라는 배우에 캐릭터를 입혀서 받아들이기는 훨씬 더 수월했을 듯싶다. 구양봉 역시 아비처럼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한 남자이다. 사랑을 이루지 못했던 그는 영화가 끝나갈 무렵 “거절당하기 싫으면 먼저 거절하는 것이 최선이다”라고 이야기 하는데, 이는 흡사 아비의 독백처럼 느껴진다. <해피투게더>(1997)에서 보영 역할의 장국영은 뒤늦게 사랑을 깨닫고 떠난 아휘의 방에 ‘돌아와’ 통곡한다는 점에서 아비와 구양봉보다 더 진전해있는 캐릭터이다. 허나 여전히 큰 골격에서는 사랑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그 전작들의 캐릭터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다.


왕가위의 또 다른 페르소나로 꼽히는 양조위는 장국영이 왕가위의 영화에서 처음부터 주연으로 성장한데에 비하여, 장국영이 주연인 영화에 조연으로 참여했다가 주연으로 성장한 경우이다. <아비정전>의 본 내용이 모두 마무리 된 후, 약 2분 남짓한 시간 동안 양조위는 대사도 클로즈업도 없이 묵묵히 손톱 다듬고, 멋 내고, 돈과 카드를 챙기고 외출하는 모습으로 양가위의 영화에 처음으로 얼굴을 내민다. <아비정전2>에서 주인공을 맡을 예정이었지만 영화 제작이 무산됨으로써 안타깝게도 아비정전에서 양조위가 어떤 역할이었는지는 알 도리가 없다. <동사서독>에서 눈먼 무사 역할의 양조위는 구양봉처럼 과거 사랑에 대한 상처를 안고 있다. 하지만 눈먼 무사는 친구와 정을 통한 아내를 여전히 사랑하고 그리워하며 눈이 멀기 전에 복사꽃에 다가가기 위하여 노력하는 인물이다. 눈먼 무사처럼 구양봉 역시 복사꽃을 보러 가고 싶어 하지만 더 이상 그곳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둘은 다른 성격을 지닌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양조위는 왕가위 영화 중 <중경삼림>에서 첫 주연으로서 실연당한 경찰 663 역할을 맡았다. 경찰 663은 비록 실연당해 방안의 사물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하지만, 이를 극복해내고 해피엔딩으로까지 나아가는 긍정적인 인물이다. 또 <해피투게더>의 보영으로서의 양조위 역시 이와 비슷하다. 아휘 역할의 장국영이 아휘에게 정착하지 못하고 반복해서 떠나가는 데에 반하여 보영은 아휘를 진심을 다해 사랑하고 보살핀다. 그리고 후에 보영과 헤어졌을 때에도 실연의 아픔을 극복해나가며 새롭게 출발하는 모습을 보였다. 여기까지 왕가위 작품 속의 장국영과 양조위의 역할을 비교해보았을 때, 둘의 캐릭터는 서로 대조를 이루고 있다.


<해피투게더> 이후 왕가위의 페르소나였던 장국영의 자리를 처음으로 양조위가 대신한 작품은 <화양연화>(2000)이다. <화양연화>는 장국영의 죽음 이전에 만들어진 영화이기 때문에, 그의 죽음 때문에 양조위가 왕가위의 새로운 페르소나가 되었다고 단정하기에는 다소 어렵다. 허나 주목하고 싶은 것은 양조위가 왕가위의 영화에서 맡게 된 캐릭터의 변화이다. <화양연화>에서 차우 역할의 양조위는 처음으로 사랑에 부정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화양연화>는 <아비정전>, <2046>(2004)과 ‘60년대 홍콩3부작’으로 이어지는 영화이다. <화양연화>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두려움으로 놓치고 뒤늦게 후회하던 차우는 <2046>에서 그 상처로 진정한 사랑보다는 육체적 사랑에만 빠져있는 인물로 등장한다. 마치 <아비정전>의 아비 역할인 장국영과 같다. 게다가 양조위가 왕가위의 페르소나로 자리 잡기 시작한 시기는 바로 <화양연화> 이후이다. 양조위가 <중경삼림>과 <동사서독>, <해피투게더>에서 연달아 보여주었던 사랑에 상처받았지만 긍정하는 캐릭터에서 <아비정전>, <동사서독>, <해피투게더>에서 사랑하지 못하고 먼저 떠나가는 장국영의 캐릭터로 처음 옮겨온 작품이 바로 <화양연화>인데, 그렇다면 왕가위의 페르소나가 갖는 고유의 특성이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 공통점을 찾아보면 첫째로, 과거의 상처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결핍된 성격이며 둘째로, 진정한 사랑을 하지 못하고 상대방에게 버림받는 것이 두려워 자신이 먼저 떠난다는 것, 하여 외로운 사람이다.


개인적인 추론이기에 섣불리 단정할 수는 없지만, 장국영의 죽음이 양조위가 왕가위의 페르소나로 자리 잡는 데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는 생각이 되지 않는다. 물론 양조위가 장국영의 부재로 스타덤에 올랐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장국영이 지금까지 왕가위의 페르소나로서 연기하고 있다면 왕가위와 양조위의 관계가 지금처럼 ‘페르소나’라는 말로 명확하게 표현이 될 수 있었을까 라는 궁금증이 있다. 동시에 왕가위의 페르소나가 변화해가는 과정에 대한 생각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현재 왕가위 감독의 페르소나는 장국영과 양조위 중 한 명만이어야 한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는 점이다. 어떤 사람들은 장국영의 죽음이 주는 안타까움 때문에 그가 왕가위의 유일한 페르소나여야 한다고 하지만, 장국영과 양조위, 두 배우는 왕가위 감독이 영화마다 그려내고 있는 결핍된 자들의 순수함을 제대로 표현해낸다. 장국영이 아직은 젊은 남자의 허무를 담아내고 있다면, 양조위는 세상을 적당히 경험하여 고독한 중년 남자의 외로움을 연기한다. 왕가위 감독의 영화 주인공들의 연령이 <해피투게더> 이후로 청년에서 중년으로 넘어갔음을 짚어본다면, 장국영에서 양조위로의 페르소나의 변화는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장국영과 양조위에게는 배우로서 공통점이 있다. 바로 ‘말’보다는 ‘눈’으로 연기한다는 것. 이러한 점 때문에 왕가위 감독에게는 장국영과 양조위가 서로 다른 배우이면서 하나의 페르소나로 존재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양조위는 왕가위의 영화에서 형성된 캐릭터가 다른 감독들의 영화로까지 이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화양연화> 이후, 장이모 감독의 <영웅>(2002), 맥조휘, 유위강 감독의 <무간도>(2002)와 <상성>(2006), 이안 감독의 <색, 계>(2007)가 그렇다. 이 영화 안에서 양조위는 장르와 역할의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혼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영웅의 파검은 연인과 서로 검을 맞대는 운명이었고, 무간도에서는 9년 동안 경찰이면서 조직원의 스파이로 정체성에 혼란을 느꼈고, 상성에서도 과거의 일로 장인과 아내를 죽이는 암살자였으며, 색, 계에서는 사랑을 느꼈던 자도 정치적인 입장으로 인해 죽여야 했다. 대표작들 속의 양조위들은 강인하면서도 홀로 고통을 인내해야하는 외롭고 고독한 사람들이다. 대부분은 죽음으로 끝을 맺었다는 공통점이 또 있다. ‘존 웨인’이 ‘존 포드’만의 페르소나가 아니라 서부극이라는 장르를 대표하는 페르소나일 수도 있다는 말처럼, 양조위 역시 왕가위만의 페르소나가 아닌 홍콩 영화의 ‘고독’과 ‘외로움’의 페르소나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생각이 여기까지 닿자, 왕가위를 만나 비로소 배우로서의 얼굴을 찾은 장국영에 대해 안타까움이 남는다. 그도 지금까지 연기할 수 있었다면, 아마 상처받은 현대인의 페르소나로서 자리 잡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으로 이어져서이다.

페르소나는 존 레논의 표현처럼 ‘예술적 온도’가 맞는 예술인들의 관계를 잘 드러내주는 단어 같다. 페르소나인 배우와 감독의 관계는 누가 더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아 한곳에 섞어도 온도가 변하지 않는 커피와 같다. 내가 상대방이고 상대방이 내가 될 수 있어서 말보다는 ‘눈’으로 이끌어가는 좋은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이다. 꼭 영화뿐이랴. 나를 그대로 표현해주는 사람을 만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왕가위는 페르소나라고 부를 수 있는 배우가 둘이나 있으니 참 운이 좋다. 부러운 일이다.


김휴리(관객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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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randcouu 2015.03.12 19: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유토피아를 향한 첫번째 여행


왜 영화의 정전(canon)이 필요한가? 왜 최고의 영화들을 시네마테크는 선정하는가? 왜 걸작선의 분류가 필요하고, 작품들을 상영하려 하는가? 시네마테크의 취향을 보여주려 함은 아니다. 영화의 과장된 지식과 정보를 관객들에게 전달하기 위함도 물론 아니다. 평론가인 조나단 로젠봄이 ‘영화 정전의 필요성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했던 말을 인용하자면, 우리가 영화의 정전을 제대로 소개하지 않는다면 대학의 칠판이나 학생들이 읽는 영화 교과서, 혹은 케이블 채널의 프로그램에 기재된 목록들로, 혹은 박스오피스 성적의 결과로 영화들이 남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시네마테크가 정전의 목록을 만드는 것은 앤드루 새리스가 1960년대에 영화의 판테온을 세우려 했던 것과는 다른 의도에서 시작되었다. 영화의 위계를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영화의 정전이란 높은 가치를 지닌 예술 작품을 의미할 것이다. 하지만 어떤 작품이 정전에 포함될 것인가는 논쟁적이다. 선정자들의 영화에 대한 판단과 취향, 선별의 기준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제임스 아제, 마니 파베르, 앙드레 바쟁, 폴린 카엘, 피터 보그다노비치, 앤드루 새리스, 로저 에버트, 조나단 로젠봄, 하스미 시게이코 등이 선정한 다양한 목록들이 있다. 이미 폴 슈레이더는 영화 정전을 위한 흥미로운 7가지 표준을 제시한 바 있다. 아름다움, 기묘함, 형식과 주제의 단일성, 전통, 반복 가능성, 관객들의 참여, 모럴리티 등이 어떤 작품이 정전인가를 결정하는 표준들이다. 평론가인 애드리안 마틴 또한 세 가지 정전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첫째, 스타워즈 정전. 대중적이고 상업적으로 성공한 영화들의 목록이다. 둘째, 시민 케인 정전. 1950년대와 60년대의 아트하우스와 누벨바그 시절에 비평가들이 구축한 오래된 정전이다. 셋째, 키아로스타미 정전. 두 번째와 세 번째의 정전에서 결핍되고 누락된 영화들을 보완한 새로운 정전을 말한다.

살아남은 영화들은 오직 그 작품에 속하는 이중적인 시간을 통해서 우리에게 이르게 된다. 이중적인 시간이란 곧 작가의 시간과 우리의 시간을 의미한다. 영화의 정전을 만드는 것은 그런 시간들에 간섭해서 과거의 작품에 현재의 생을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다. 개관 10주년을 맞아 시네마테크가 선보이는 ‘100편의 시네마 오디세이’도 그런 이유 때문에 시작되었다. 이 목록들이 그럼에도 결핍과 불완전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미리 말하고 싶다.


‘유토피아로의 여행’이라는 부제가 딸린 첫 번째 여행에서 소개하는 작품들은 20세기 초두에서 21세기의 시작에 나온 8편의 영화들이다. 유토피아는 단지 알려진 공간의 바깥에 존재하는 것만이 아니라 시간 바깥에 존재하는 곳이다. 유토피아는 본질적으로 우리가 만족스럽지 못한 사회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우리를 다른 세계로 이끈다. 영화는 그런 점에서 비록 공포와 비극을 수반할지언정 언제나 유토피아로의 여행을 그린다고 할 수 있다. 에이젠슈테인과 동시대의 작가이지만 세계 영화사의 정전에 제대로 기록되지 못한 보리스 바르넷의 아름다운 작품 <저 푸른 바다로>(1933)가 보여주는 세계가 그러하다. 세계영화사의 정전에 주로 몽타주 학파들의 감독들이 기재되어 있는 것을 감안하자면 보리스 바르넷은 여전히 미지의 작가이다. 두 선원과 해변의 여인의 사랑의 트라이앵글을 그린 <저 푸른 바다로>는 유토피아적인 세계로의 여행을 다룬 내용만큼이나 토키의 여명에 새로운 미학적 여정을 시도한 작품이다. 동시대 장 비고의 <라탈랑트>(1934), 루이스 부뉴엘, 살바도르 달리의 <황금시대>(1930)와 견주어 볼 만한하다. 무성영화 시대의 도상을 유지하면서 순수하고 단순한 사랑과 발견의 이야기가 감미롭다. 프랑스 시적 리얼리즘의 작가들, 르네 클레르, 자크 타티, 장 르누아르, 혹은 오타르 이오셀리아니의 세계를 이 영화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 세상의 지도가 유토피아라는 땅을 포함하지 않는다면, 지도를 들여다 볼 가치란 전혀 없다’고 오스카 와일드는 말했다. 지난 세기는 한 때 유토피아의 꿈을 간직했지만 실패로 끝난 역사이기도 했다. 찰리 채플린은 언제나 침대 머리맡에 찰스 디킨스의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를 두었다고 한다. 이 단순한 습관은 채플린이 빈곤과 궁핍 속에서 자라난 자신의 유복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환경을 평생 잊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황금사냥에 나선 사람들의 정신 이상적 행동을 코미디로 극화한 <황금광 시대>(1925)에서 폭소를 유발하는 것이 그런 배고픔이다. 채플린은 <자서전>에서 “비극이 도리어 웃음의 정신을 자극해 준다. 생각건대 웃음이란 곧 반항의 태도인 까닭이다. 우리들은 자연의 위력이라는 것 앞에 서서 자신의 무력함을 웃을 수밖에 없다. 웃지 않으면 미쳐 버릴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런 식으로 채플린은 통렬한 비극의 기록에서 희극적인 장면을 떠올렸다. 영화의 한 장면에서 찰리는 낡아빠진 헌 구두 한 짝으로 저녁 식사를 때운다. 그는 정성들여 요리한 구두를 식탁에 내놓고는 맛스런 스파게티라도 먹는 듯 구두끈을 음미하고 고급 생선 요리처럼 구두 밑창을 접시에 올려놓고 생선 가시를 발라가듯 천연덕스럽게 못을 먹어치운다. 터무니없는 상상 불가능한 연출이지만 이보다 더 강렬하게 빈곤을 표현한 장면을 찾기 힘들 정도로 지극히 사실적인 장면이다. 롤랑 바르트의 지적대로 그는 ‘허기의 작가’로 언제나 배고픔을 과장되게 표현했다. 그는 배고픔과 허기를 영화에 담아낸 거의 유일한 예술가였다.


감동적일수록 더 웃겨야만 한다. 채플린의 이러한 원칙이 후기의 걸작 <독재자>(1940)에서도 활용된다. 작은 유태인 이발사 찰리가 자신과 닮은 독재자 힝켈(히틀러를 희화한 인물이다)을 대신한다는 간단한 이야기로 나치의 살인광증을 조롱하는 코미디다. 채플린이 1인 2역을 소화한 ‘찰리-힝켈’은 실제로 작은 차이를 지닌 인물로 사람들에게 오인된다. 채플린과 독재자 히틀러, 둘은 콧수염만큼이나 서로 닮았지만 그로부터 엄청난 거리를 지닌 다른 상황, 즉 웃음과 공포가 발생한다. 그런 점에서 채플린은 독재자를 조롱의 대상이나 비판의 대상으로 설정하지 않았다. 막스 피카르트가 ‘우리 안의 히틀러’라 말했던 것처럼 채플린은 사회와 시대, 심지어 평범한 사람들 안에 독재자와 살인자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

한스 위르겐 지버베르그가 영화로 탈구축을 시도하려 했던 것인 그러한 ‘우리 안의 히틀러’이다. 7시간 반에 달하는 대작 <히틀러>(1977)에서 지버베르그는 히틀러의 성공이 대중의 시대, 민주주의의 시대에 호소했기 때문이라 말한다. 그는 히틀러가 독일 대중의 비합리성에 철저하게 호소했기에 히틀러를 이해하고, ‘우리 안의 히틀러’를 몰아내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비판의 도구가 아니라 그들의 언어를 빌려오는 것이 필요하며, 적들의 도구로 공격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화와 비합리성의 권능을 환기시키는 것으로만 히틀러에 대한 비판이 가능하다. 아우슈비츠의 통계학, 나치 경제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으로는 히틀러와 싸울 수 없다. 차라리 리하르트 바그너와 모차르트를 끌어들여 싸워야만 한다. 지버베르그가 상정한 것은 그래서 채플린과 마찬가지로 개인으로서의 히틀러는 아니었다. 그가 고민한 ‘우리 안의 히틀러’는 들뢰즈의 표현을 빌자면, “단지 히틀러가 우리를 만들었듯 우리가 히틀러를 만들었다는 것을 의미하거나, 우리 모두 또한 잠재적인 파시스트적 요소들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히틀러는 우리 자신 안에 그의 이미지를 구성하는 정보를 통해서만 존재한다”는 그런 의미이다.


더글라스 서크는 전쟁의 비극에서 가장 멜로드라마틱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사랑할 때와 죽을 때>(1958)는 미국영화로서는 드물게 패전국인 독일의 입장에서 전쟁의 비참을 그린 작품이다. 1944년 이른 봄의 러시아 전선. 독일군 병사 에른스트는 삼주의 휴가를 얻어 2년 만에 고향 베를린에 돌아온다. 그러나 도시는 이미 폐허가 되어버렸고 부모님의 행방도 묘연해 망연자실한다. 가까스로 어린 시절의 여자 친구 엘리자베스와 재회하고, 이내 서로 마음이 끌린 둘은 결혼을 올리고 자그마한 행복에 잠긴다. 하지만 에른스트는 곧 전선으로 되돌아가야만 한다. 러시아 전선으로 보내진 에른스트는 전장으로 떠나기 전 아름다운 여인과 잠깐의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죽음과 사랑의 끔찍한 부조화가 여기에 있다. 서크는 이 영화에서 전쟁으로 폐허가 된 풍경과 두 연인에 주목한다. 기이한 사랑이 그렇게 시작한다. 전쟁의 와중에 연인들에게는 사랑이 허용되지 않는다. 에른스트와 엘리자베스가 레스토랑에서 잠깐의 행복한 시간을 보낼 때, 그들의 유예된 시간을 방해하는 것은 비행기의 공습이다. 그들에게는 사랑을 나눌 장소가 허용되어 있지 않다.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린 두 연인은 공습을 받은 폐허에 절반은 화상을 입고, 남은 가지에 꽃을 피우고 있는 나무의 이미지와 닮았다. 폭격의 열이 이른 봄에 주위를 따듯하게 해서 꽃이 빨리 피었던 것이다.

또 다른 연애의 지도. 왕가위의 <아비정전>(1990)은 <열혈남아>(1987)에 이은 두 번째 작품이자 <화양연화>(2000), <2046>(2004)로 이어지는 ‘1960년대 홍콩 삼부작’의 첫 번째 여행을 다룬 영화다. ‘1960년 4월 16일 오후 3시’라는 장국영의 대사는 이 영화의 시간성을 환기시키는데, 그렇다고 1960년대라는 시대의 고유명이 사실적으로 그려지지는 않는다. 왕가위는 전체적인 스타일과 분위기로 시대를 담아낸다. 당시의 체육관 매표소, 작은 매점, 오래된 코카콜라, 담배, 야간 순회의 경관의 출근부, 구식의 전화박스, 여기에 옛 음악과 댄스가 시대의 분위기를 더한다. ‘아비’라는 말 자체가 시대의 상징이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전후에 태어난 젊은 세대의 사회적 문제, 청소년의 교육 문제가 당시에 주목받게 되면서 ‘아비’라는 말은 젊은이에 대한 회의적, 경멸적 표현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는 또한 니콜라스 레이의 <이유 없는 반항>(1955)의 홍콩 공개시의 제목이기도 했다. 1966년의 문화대혁명, 1967년의 홍콩의 대규모 폭동 등으로 홍콩의 1960년대는 정치사회적으로 불안정한 시대였다. 자신의 아이덴티티와 연애 감정에 확신을 갖지 못하는 인물들의 모습에는 그런 시대의 애매한 분위기가 담겨 있다. 시간의 어긋남, 과거에의 후회, 연애의 파탄과 반복이라는 왕가위적 연애가 그렇게 작동한다.


여행은 그렇게 지도에서는 찾을 수 없는 영토로의 일탈을 내포한다. 소요하기, 경로를 벗어난 항해, 방랑하기, 배회하기, 그리고 심지어 길을 잃어버리는 것이 영화-여행의 본질이다. 짐 자무쉬의 <데드맨>(1996)은 서부극의 스타일을 빌려 생과 죽음의 의미를 묻는 내면세계로의 여정을 다룬 영화다. 자무쉬의 표현을 빌자면, 이 영화의 테마는 ‘인생은 마지막이 없는 사이클’이라는 것. 전작들에서 도시의 다양한 표정을 그려왔던 자무쉬는 이 영화에서 처음으로 신비적인 대자연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런데 <데드맨>의 여행이란 네이티브 아메리칸의 역사적, 문화적 여정과는 거리가 있다. 공간을 통과하는 여정은 횡단하는 대지의 리듬에 따라 영화가 전개되고 지리적 공간과 관계를 맺는 것으로 시간이 형성되는 독특한 영화 형식을 창조한다. 영화의 모두에 인용되는 ‘사망자와는 여행하지 않는 편이 좋다’라는 앙리 미쇼의 시는 이러한 여정의 독특성을 예고한다.

그리하여, 뇌와 정신의 여정이 있다. 아이덴티티, 기억, 트라우마, 혼란스런 시각으로 구성된 가장 현대적인 경향의 영화들이 그것이다. 데이비드 린치의 <멀홀랜드 드라이브>(2001)는 그런 점에서 진정으로 21세기의 새로운 영화다. 마치 뫼비우스 띠처럼 뒤얽힌 이 영화는 고전 영화의 선형적 논리에 의문을 가한다. 깨어나지 않는 악몽과도 같은 종결 없는 순환이 작동하고, 관객으로서 우리는 플레이, 리플레이 되는 게임에 참여하듯 영화를 보게 된다. 여기에 질문이 있다. 영화는 우리의 정신 바깥에서 발행하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의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우리가 보는 이 이미지들은 순수이 시각적인 것인가, 아니면 몸과 의식을 필요로 하는 육화된 것인가?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영화를 정신적 여정으로 이해하게 한다. 영상의 움직임이 인간의 심리적 메커니즘을 모방해 만들어졌기에 영화는 인간의 정신에 호소할 수 있다. 심리적으로 말하자면, 영화는 필름이나 화면 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에 그 사실성을 부여하는 관객의 정신 속에 존재할 것이다. 그리하여 영화는 움직임의 재생산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단계에서부터 감정과 허구의 가장 정교한 단계에 이르는 정신의 기능을 재현한다.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그런 영화의 주관적 이미지를 정신적으로 혼란에 빠진 주인공들을 통해 보여준다. 그것은 일종의 마인드 게임이다. 유령적인 캐릭터들, 혹은 이미 죽었거나 거의 죽음 상태의 인물들의 이야기이다. 여기서 영화는 우리들에게 무의식을 포함한 밤의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이제 마지막 여행이 남았다. 오디세이의 귀착지에는 존 카사베츠의 <사랑의 행로>(1984)가 있다. 피터 보그다노비치가 ‘오손 웰즈 이래 가장 눈부신 미국의 이단적인 영화감독’이라 불렀던 카사베츠의 영화는 생전에 너무 독특해서 무시당했고, 종종 어설프고 조잡한 영화로 비판 받았다. 이미지의 연결은 불합리하고, 줄거리와 플롯은 느슨하고 인과관계는 불명확하며 인물들의 연기는 어색하고 과장스럽다. 하지만 카사베츠의 영화에 담긴 즉흥성과 서투름은 존재의 공복에 시달리며 강렬한 삶을 욕망하는 인간의 내밀한 삶의 비밀에 접근하는 태도에서 나온 것이다. 카사베츠의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미완성의 예술이다. 그는 완성의 작가가 아니라 ‘과정’, 혹은 ‘됨 becoming’의 작가이다. 그의 카메라는 마치 폭풍 속을 돌아다니는 것처럼 인물의 움직임을 따라가며 프리재즈처럼 즉흥적으로 인물을 담아낸다. 그렇다고 영화 속 사건들이 실제로 즉흥적인 것은 아니다. 카사베츠는 ‘생생한 경험은 드라마틱한 경험만큼이나 관습의 산물일 수 있다’고 여겼다. 가령, 그의 영화에서 즉흥적인 것은 대사가 아니라 무대화된 연출이다. 그는 대사를 배우에게 제공하지만 그럼에도 그 역할이 무엇인지는 결정되지 않는다. 그래서 배우들의 퍼포먼스가 벌어지고, 그것을 담는 카메라가 뒤따른다. 마치 다큐멘터리에서 카메라가 실제 발생하는 사건을 포착하는 것처럼 배우들의 퍼포먼스에서 발생하는 사건을 기록하는 것이다. <사랑의 행로>의 한 장면에서 지나 롤랜즈는 택시 운전사에게 이렇게 말한다. “제발 참을성을 갖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으면 해요. 왜냐하면 내가 정확하게 지금 어디로 갈 것인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카사베츠는 방향 잃은 사람들의 여정을 흐름으로 포착한다. 무엇보다 그것은 사랑의 흐름이다. 사랑은 존재의 모든 부분을 생기 넘치게 해주는 강렬한 에너지이다. 카사베츠는 자신의 영화에서 인물들이 자기만의 철학을 갖길 원했고, 그 철학이란 어떻게 사랑할지를 아는 것이고, 어디에서 사랑을 해야 하는가를 아는 것이다. 분노와 적대감, 그리고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꼭 필요한 것이 사랑이다. 그의 영화에서 흐릿한 빛과 어둠, 화면을 파괴하는 예측 불가능한 움직임들은 에너지와도 같은 사랑의 흔적이자 자취다. 그는 공간을 점유하는 대상과 인물보다는 그들을 감싸는 힘과 흐름, 그것의 분위기, 존재의 내적 움직임, 순간의 열정을 포착하는 것을 중요시했다. 인물들은 알코올로, 광기로, 사랑의 실패로 쓰러진다. 그들은 모두 영향력 아래에 있다. 카사베츠는 해체의 순간을 추적한다. 그는 몸을 붕괴시키는 것에 관심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해체는 회복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들뢰즈가 지적하듯이 앙토냉 아르토가 “나는 삶을 잃고, 모든 수단을 통해 나의 자리를 되찾으려 하는 사람”이라 말했던 것을 카사베츠에게도 고스란히 적용할 수 있다. 붕괴의 지점에서 존재가 갱신되는 것을 기대하는 것. 이것이야 말로 지나 롤랜즈가 놀라운 방식으로 연기하는 인물들의 상황이다. 카사베츠의 독창성은 불안에 사로잡힌 인물들의 내적 여정을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영화화했다는 점에 있다.

글|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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