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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 칼럼 8 | 극장이야기 - 뉴욕의 로즈메리 극장

아비정전(1990) 왕가위

그러니까 지금의 뉴욕은 그때의 뉴욕이 아니다. 25년 전의 얘기다. 카메라를 메고 사냥꾼처럼 맨해튼의 거리를 킁킁거리며 돌아다니던 때, 유독 나를 사로잡았던 장소가 있었다. 카날 스트릿을 중심으로 로어 맨해튼에 펼쳐진 중국 본토 이민자들의 거주지, 차이나타운. 그곳은 센트럴파크를 중심으로 유명한 뮤지엄들이 자리 잡은 어퍼 맨해튼과는 냄새부터 달랐다. 지하철역 계단을 올라오면 매운 양념으로 철판에 볶은 숙주와 국수 냄새, 협심당파 똘마니 같은 사내들이 뿜어내는 담배 냄새, 팔딱팔딱 생선가게 바닥에서 뛰어오르는 물고기들의 바다 냄새, 만두가게 찜통에서 연신 뿜어내는 증기 냄새, 한때는 1,000명도 넘게 살았다는 작고 오래된 건물의 벽돌 냄새, 젖은 신문지 쪼가리와 검은 흙탕물이 군데군데 고여있던 길바닥 냄새, 그 모든 냄새에 나는 매료되었다. 허리가 반으로 접힌 단발머리 할머니가 햇빛 속으로 사라지는 장면을 아득히 바라보거나 차이나타운 페어 같은 오락실에서 백발이 성성한 닭에게 동전 한 닢으로 미래를 점치면서 과거와 미래 사이를 빙글빙글 돌고 돌았다.

그러니까 그 차이나타운 끄트머리, 바로 맨해튼 브릿지가 시작되는 지점에 영화관이 있었다. 외관이 화양극장 비스무리한 그 극장의 이름이 로즈메리인 것이 꽤나 인상적이었는데, 나는 단박에 <시민 케인>의 로즈버드를 로즈메리로 떠올려냈고 저런 비범한 작명을 하다니 주인은 영화광인 게 분명한 거지, 매우 흐뭇해했다. 게다가 왕가위의 영화들을 상영한다니, 동네 비디오가게에서 빌린 <아비정전>을 자취방의 손톱만한 텔레비전으로 뒤늦게 봤던 터라 역시 뉴욕은 뉴욕다우며 로즈메리 극장은 이름값을 한다고 멋대로 생각했다.

그때를 떠올리면 극장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는 내 모습이 마치 영화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처럼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극장 내부는 흐릿한 퇴락의 공기가 떠돌고 있었다. 영화를 보는 중에 발밑으로 쥐가 지나간다고 해도 놀랄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다른 영화관에 비해 이상스러울 만치 화면은 거대했고 천장은 드높았다. <아비정전>의 영어 제목은 “데이즈 오브 빙 와일드(Days of Being Wild)”. 거침없던 날들에 바치는 이 영화를 보기에 이보다 더 영화 같은 극장이 있을까 싶었다.  

그리하여 1994년 그 겨울, 그 극장에서 <아비정전>의 잊지 못할 첫 장면이 시작되었는데, 장국영이 흘깃 시계를 볼 때, 그 시계의 초침이 또각또각 12를 향해 올라갈 때, 너와 내가 함께 한 그 1분에 대하여, 장만옥의 동요하는 눈빛이 극장 내부를 꽉 채울 때, 화면 속에서 푸른 바람 한 줄기가 관객석 사이사이를 어루만지듯 불어왔고 불현듯 나 또한 지금 이 순간을 평생 잊지 못하겠구나, 스치듯 생각했다. 그때만 해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장소들이 여간해선 사라지지 않을 거라 마구잡이로 믿어버리던 때다. 그때만해도 로즈메리 극장이 2년 후에 문을 닫게 될 거란 생각을 미처 못했고 그때만해도 같이 영화를 보던 친구가 영원히 곁에 머물 줄 알았다.

그리고 25년이 흘렀다. 작년 뉴욕에 갔을 때 숙소를 차이나타운에 잡았다. 로즈메리 극장 자리에 자리잡은 번쩍번쩍 금칠로 뒤덮인 불교 사원의 머리통을 보면서 생각했다. 어쩌면 우리가 죽음을 당연히 맞이하는 순간이 온다면, 소중한 대상의 자리를 꿰찬 괴물들에게 오만 정이 떨어질 때가 아닐까. 늘 끝자리를 잘못 기억하는 나의 뇌세포 덕분에 <시민 케인>의 로즈버드처럼 나도 마지막 순간에 로즈메리를 외치는 건 아닐런지. 로즈메리 극장을 카메라에 담아두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울 뿐이다. 일기일회, 모든 순간이 단 한 번의 만남인 것을 그때는 몰랐다.

 | 박태희 (사진가, 안목출판사 대표)

*2020/06/19 뉴스레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