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4일, <아메리카의 밤> 상영 후 지난 달에 이어 두 번째 “오픈 토크”행사가 마련되었다. 영화에 대한 공감,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마음먹은 순간부터 감독으로서의 어려움과 그럼에도 작업을 계속 이어가게 만드는 영화의 힘에 이르기까지, 네 감독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일부 옮긴다.

 

 

변영주(영화감독): 오늘은 김종관 감독, 이혁상 감독을 모시고, 트뤼포의 <아메리카의 밤>을 보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먼저, 오늘 영화를 보면서 가장 와 닿았던 장면은 어떤 장면이었나?

김종관(영화감독): 공감도 있지만, 어쨌든 트뤼포 감독님은 저랑 사정이 많이 다르다보니 동경의 대목도 있다. 대부분은 영화를 찍는 시간이 아니라 영화를 찍기 위해서 기다리는 시간에 대한 고민이 많고, 영화를 찍을 때는 항상 찍는 순간의 즐거움이 있다. 영화에서 감독이 배우를 달래면서 하는 말이 있다. “영화는 야간 기차 같다. 네가 살아서 숨 쉴 수 있는 장소는 여기니까 도망치지 말고 여기서 어떻게든 해봐라”는 말이 와 닿았다. 영화를 찍어야한다는 강박에도 공감이 간다.

이혁상(영화감독): 계속 극영화가 아닌 다큐멘터리를 작업해왔기 때문에, 극영화 현장 분위기에 대해선 잘 모른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극영화감독들은 참 난잡하다는 느낌이었다.(웃음) 영화판에 여러 가지 일들이 많지만, 그중에도 서로 정분나는 일들이 참 많다.

이해영(영화감독): 영화를 만들 때 감독들의 악몽과 무의식, 현실적인 부분 같은 것들이 잘 표현된 것 같다. 하지만 어쨌든 그는 트뤼포니까, 프랑스에서 인정받으며 좋은 시스템에서 영화를 찍던 감독이니까, 사실은 영화 속의 고민이나 갈등이 굉장히 우아하다. 여기에 냄새로 따진다면 땀 냄새, 토한 냄새, 발 냄새 같은 걸 섞어 놓으면 충무로랑 가까워지지 않을까 싶다.(웃음)

 

변영주: 재밌게도 하필 오늘 이 영화를 보는 동안 트윗으로 메시지가 왔다. 영화감독이 되고 싶은 고등학생인데, 영화감독이 되려면 19살에는 영화의 어떤 걸 공부해야 하냐고 질문을 보내왔다. 그래서 “19살에는 영화를 공부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라고 답했다.(웃음) 오늘 이 자리에도 어쩌면 앞으로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분들도 계실 것 같다. 김종관 감독은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순간은 언제였나?

김종관: 어렸을 때 영화를 보고나면 나만의 스토리를 만들면서 공상하곤 했다. <그렘린>을 보면 <그렘린2>의 이야기를 머릿속으로 혼자 만들 거보고, <슈퍼맨>의 속편을 만들어본다든지 하는 식이었다.

이해영: 그렇게 블록버스터를 상상하고서 인디영화를 만드셨다.(웃음)

김종관: 영화를 재밌게 보는 것에서 어느 순간 영화를 만들기에 대한 욕구로 자연스럽게 옮겨가는 것 같다. 20대 초반에 필름 워크샵을 한번 했었다. 한 달 동안 워크샵에 참여하면서 어깨너머로 영화를 배웠다. 그 때 재밌게 했던 기억에서 어떻게 넘어오게 되면서, 20대 후반부터는 나의 영화를 만들게 되었다.

이해영: 영화과에 비교적 늦게 들어간 편이다.

김종관: 그 전에는 장사도 하고 이것저것 다른 일을 했었다. 그런 일들이 다 잘 안되고, 뭔가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하고 싶은 게 아니니까. 하고 싶은 걸 하고 싶었다.

 

변영주: 이혁상 감독은 ‘연분홍치마’라는 다큐멘터리 만드는 독립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연분홍치마’의 첫 작품인 <마마상> 때부터 함께 했었나?

이혁상: 그렇다. 사실 애초에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모인 것은 아니었다. 다들 제작을 전공한 것도 아니었고, 이론과에서 비평을 공부한 사람들이었다. 세미나 팀을 시작하면서 여성주의와 섹슈얼리티와 관련된 세미나를 진행했는데, 세미나만 하다보니까 뭔가 실천적인 것도 해봐야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에서 ‘연분홍치마’를 만들게 되었다. 처음엔 카메라를 든다는 것 자체를 상상도 못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현장에서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실태보고서 나 자료집 같은 걸 만들게 되는데, 이걸 꼭 글로 만들 필요가 있을까, 카메라로 다큐멘터리를 찍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처음 만든 작품이 <마마상>이었다.

 

변영주: 이해영 감독은 배우랑 결혼하고 싶어서 영화감독이 됐다는 게 사실인가.(웃음)

이해영: 특별하게 할 줄 아는 건 없지만, 막연하게 나에게 있는 잡다한 재능들을 모아보면 그나마 영화판에서 써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감독이 돼서 유명해지면 좋은 여배우와 결혼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웃음) 변영주 감독은 ‘연분홍치마’와 비슷하게 다큐멘터리의 길을 걷다가 갑자기 극영화로 전환하셨는데..

변영주: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처음에는 ‘장산곶매’에 들어가서 일을 하다가 현재 영상원의 김소영 교수님과 함께 사무직 여성노동자에 관한 중편극영화의 시나리오와 촬영을 했었다. 그러니까 다큐로 시작을 했던 건 아니었다. 그리고 나서, 김동원 감독을 만나 다큐멘터리를 하게 되었는데 그렇게 만든 첫 작품이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이었다. 그 영화를 만들고 나서야 갑자기 감독이 되고 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영화를 시작했다.

이해영: 김종관 감독도 말했지만 사실 영화를 찍는 시간보다는 기다리거나 준비하는 시간이 훨씬 더 길다. 스스로 영화감독으로서의 자의식이 별로 없다가, <천하장사 마돈나>가 개봉하고나서 극장의 마지막 상영 때 혼자 영화를 보는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비로소 들더라. 그때부터 ‘나는 감독이다’ , ‘감독이니까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식으로 스스로를 채근한다.

김종관: 처음에 영화를 시작했을 때는 영화가 굉장히 중요했다. 어느 정도 시기가 지나서 시작했기 때문에 스스로 배수진을 치고 뭔가 결과물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컸다. 영화 만드는 사람으로서의 자의식은 별로 없었다.

 

 

이해영: 이혁상 감독은 앞으로의 행보에 대한 고민도 있을 것 같다.

이혁상: 고민을 하고 있는데, 당장은 <두개의 문> 때문에 워낙 정신이 없는 상황이다. 한 번 더 게이 영화를 더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큐멘터리로 한 편 정도 더 작업하고, 다큐멘터리 뿐 아닌 다른 길도 모색해보려고 한다.

변영주: 영화촬영을 하면서 가장 끔찍했던 기억이 있나? <아메리카의 밤>에서처럼, 스크립터와 배우가 사랑에 빠져서 감독은 안중에 없게 된다면, 감독 입장에서는 정말 끔찍할 것 같다.

김종관: 영화촬영 현장에선 연애가 많이 일어나는 것 같다.(웃음) 적은 예산의 영화를 해오다보니까 항상 무슨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그래서 처음의 계획대로 촬영이 진행되는 게 아니라 항상 무언가로 떼우게 되고, 그러면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허덕허덕 하는 게 제일 스트레스다.

이혁상: 다큐멘터리는 일단 주인공들과의 거리 설정이 중요하다. 특히 <종로의 기적>은 스스로도 또 한 명의 주인공으로서 등장하기 때문에, 다른 주인공들과의 거리 관계가 힘들었다. 촬영 중간에는 주인공 중의 한 명이 세상을 떠났는데, 그 때 정말 힘들었다. 2~3개월 동안 방에 틀어박혀서 악몽을 꾸고 아무것도 못할 정도였다.

이해영: 뒤늦게 고백하자면 예전에 감독을 해보니까 어떠냐는 질문에, 너무 귀찮다고 대답한 적이 있다. 그때는 농담이 아니라 진짜였다.(웃음) 감독에게 계속 모든 것을 물어오고, 감독은 계속해서 일일이 선택해야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 공감했던 것이 악몽장면인데, 촬영을 하면서 실제로 악몽을 정말 많이 꾼다.

변영주: 영화현장에서는 정말 사사로운 것까지 감독에게 물어본다. 감독은 모든 걸 대답을 하면서 가야한다. 그 때 감독이 잘 대답을 못하게 되면 스탭과 감독 사이의 신뢰에 균열이 가게 된다. 언제가 선배감독으로부터 배운 요령은, 감독은 다 알고 있다는 표정으로 ‘그럼 너는 어떤 게 더 좋은데?’ 되물어보면 된다.(웃음)

 

관객1: <아메리카의 밤>에서 배우들은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헤매고, 감독은 악몽 속에서 힘들어 할 때, 스탭들은 묵묵히 작업을 하고 있던 장면이 인상 깊었다. 영화감독이라면 아마도 ‘영화라는 게 대체 뭐길래’라는 물음을 힘들 때마다 떠올리게 될 것 같다.

이해영: 그 질문은 때로는 스스로를 무기력하게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다시 일어서게 만드는 힘이 되기도 한다. 수많은 스탭들이 고생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정말 ‘영화가 뭐길래 이들은 청춘을 다 바치고 있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도 찰나적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영화가 뭐길래 이렇게 터무니없는 낙관을 하게 만들고, 이렇게 나를 계속 움직이게 하는가’라는 생각이 든다. 치유와 상처가 그 안에 다 있는 것 같다. 영화의 대사 중에 영화가 삶보다 훨씬 조화롭다는 말, 우리는 영화를 해야만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얘기가 핵심인 것 같다.

 

관객2: 감독님들께서 힘들 때 마다 꼭 찾게 되는 자신만의 영화 목록이 궁금하다.

김종관: 시기마다 좀 바뀌기는 한다. 지금은 예전처럼 반복해서 보는 영화는 없는데 가끔씩 보게 되는 건 영화에서도 나왔던, 장 비고의 <라탈랑트>이다. 관객으로서 깊은 교감을 느끼게 되는 영화다.

이혁상: 새벽에 <섹스 앤 더 시티> 시리즈를 보면서 최면에 걸리듯 잠이 든다.(웃음)

변영주: <스타워즈> 시리즈와 <아라비아 로렌스>, 50~60년대 할리우드에서 대작 붐이 일어났던 시기의 대작 영화들을 찾는다.

관객3: 어떤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될 때 갖는 기준이 궁금하다

이해영: 그런 생각이 들기 까지는 123가지 정도의 이유가 있는 거 같다. (웃음) 하지만 결국 이야기의 재미라는 점이 크다.

이혁상: 다큐멘터리 작업을 해와서 그런지, 사명감까지는 아니더라도 아무도 기록하지 않은 시간과 역사를 내가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 <종로의 기적>도 그런 출발에서 시작했었다. 다큐멘터리가 아니더라도, 픽션의 경우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역사를 기록하고, 시간을 기록하는 기분으로 영화를 만들고 있다.

김종관: 앞의 두 얘기와 다 연결된다. 처음에 단서처럼 오는 건 기록인 거 같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나 계절, 그때의 감정을 편지를 쓰는 느낌으로 담아낸다. 모든 단서들은 차근차근 오는 것 같다.

변영주: 어떤 이야기를 접했을 때 혼잣말처럼 메인플롯을 만들어본다. 만들어보는 순간 어떤 메인플롯이 재밌다, 그리고 그 플롯 안에서 이런 장면을 만들어 볼 수 있겠다, 이런 장면이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정리: 장지혜(관객에디터) 사진: 최용혁(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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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만드는 것은 역마차 여행과 같다. 처음엔 유쾌한 여행을 기대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목적지에 도착하기만을 기다린다. … 촬영 시작 전엔 아름다운 영화를 찍고 싶지만, 문제가 생기면 야망은 수그러들고 그저 촬영을 끝낼 수 있기만을 기다리게 된다.” 영화 속 영화, <파멜라를 소개합니다>의 감독 페랑(프랑수아 트뤼포)의 극중 내레이션이다. 페랑은 영화를 찍는 일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제작자는 영화 촬영이 빨리 끝나기를 재촉한다. 배우로 활약해야 할 고양이는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고, 술에 취한 배우는 대사를 제대로 외우지 못한다. 영화 제작기간 동안 같은 호텔에 묵어야 하는 배우와 스태프들 사이에서는 난잡한 스캔들이 일어난다.

 

 

페랑의 영화촬영기가 비록 험난할지라도, ‘영화에 대한 영화’인 <아메리카의 밤>이 트뤼포의 ‘영화찬가’임은 분명해 보인다. ‘릴리언 기쉬와 도로시 기쉬에게 이 영화를 바친다’는 자막으로 시작한 <아메리카의 밤>은 영화에 대한 사랑고백으로 넘쳐난다. 페랑이 밤마다 꾸는 꿈은 (아마도 그의 유년시절인 듯한) 꼬마가 영화관에 걸린 <시민 케인>의 스틸 사진을 훔치는 것이다. 영화 속에 부뉴엘, 드레이어, 루비치, 베리만 등의 감독들에 대한 책이 등장하는 것은 그들 영화에 대해 트뤼포가 바치는 존경의 표현이다.

 

 

한편으로 <아메리카의 밤>은 영화란 곧 관객들의 눈을 속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가령 촛불 속에 숨겨진 전구, 카메라 프레임 안으로 들어오는 부분만 지어놓은 세트 등에서 관객들은 영화의 환영적인 속성을 간파할 수 있다. 그러나 <아메리카의 밤>은 스튜디오 시스템의 은폐된 영화 제작 과정을 폭로하면서도, 그에 상응하는 구조적, 정치적 비판의 태도는 결여하고 있다. 즉 <파멜라를 소개합니다>의 촬영 현장은 자본과 예술이 충돌하는 장소가 아니라, 즐거운 유희가 벌어지는 놀이터에 가까운 것이다(로버트 스탬에 의하면, ‘한 말의 신비화를 위한 한 되의 탈신비화’). 결국 영화 촬영 도중 발생하는 애환은 ‘우리는 모두 가족’이라는 비유와 함께 낭만적으로 해결된다. 실제로 트뤼포는 지방에서의 흥행이 저조하자 공동제작자에게 ‘영화 속 영화’라는 문구 보다는, ‘사랑과 모험에 관한 영화’라는 점을 강조하길 요구했다. 고다르가 <아메리카의 밤>을 보고 분개하며 트뤼포와 결별한 것도 이러한 연유에서였을 것이다. <아메리카의 밤>은 고다르뿐만 아니라 좌파 평론가들로부터도 ‘지나치게 타협적’이라는 가혹한 평가를 받아야만 했다.

 

 

이에 대해 트뤼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좋든 나쁘든 나의 영화는 내가 만들기를 원했던 것일 뿐이며, 그 이외에 어떤 것도 아닙니다. 나는 이 영화들을, 유명하든 그렇지 않든 내가 선정하고 사랑했던 배우들과 함께 만들었습니다." 즉 트뤼포에게 <아메리카의 밤>은 “체제 속에 투항해버린 것이 아니라, 체제 안에서 나의 방식대로 작업”했던 것이다.

 

 

트뤼포는 영화와 삶 중에서 영화를 택했다. 그에게 영화는 삶에 더해지는 무언가가 아니라, 삶 전체를 대신할 대체물이었다. 트뤼포는 영화가 아니었으면 아무것도 아닌 삶을 살았을 사람이다. 그를 마냥 낙천적인 시네필로 볼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알퐁소(장 피에르 레오)에게 “너나 나 같은 사람들은 영화를 찍을 때에만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하는 페랑은 체제 안에서 작업하며 자신의 존재성을 붙잡으려는 트뤼포의 현실 속 모습과 겹쳐 보인다. 이 장면은 영화를 향한 애정으로 가득한 명랑한 분위기에 쓸쓸한 얼룩을 남겨놓는다.(송은경: 관객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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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미 가득한 영화 속의 영화

 

'영화에 대한 영화'를 말할 때면 가장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작품이 바로 <아메리카의 밤>이다. <프랑수아 트뤼포>의 저자 아네트 인스도프에 따르면 트뤼포는 이 영화의 아이디어를 <히치콕과의 대화>에서 얻었다고 전한다. 히치콕이 ‘촬영장의 현실과 영화 속 현실을 중첩하면 흥미로운 이야기로 만들 수 있다’는 요지의 말을 두고 트뤼포가 <아메리카의 밤>으로 발전시켰다는 것이다.

<아메리카의 밤>은 니스의 라 빅토린느 스튜디오에서 진행되는 영화 촬영 현장의 안팎을 다룬다. 극 중 영화는 아들과 며느리, 시아버지의 삼각관계를 소재로 한 '파멜라를 찾아서'인데 그렇다고 <아메리카의 밤>이 메이킹 다큐멘터리라는 뜻은 아니다. 몇몇 실제 인물이 등장하지만 트뤼포가 직접 극 중 감독 페랑을 연기하는 등, '파멜라를 찾아서'는 영화 속 촬영 현장에서 만들어지는 허구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대신 트뤼포는 자신이 그간 영화 현장에서 경험했던 일화들을 극 중에 녹여내며 현실과 허구를 넘나드는 페이크 다큐멘터리처럼 <아메리카의 밤>을 구성한다. 예컨대 고양이의 비협조적인(?) 연기로 우유 먹는 장면의 촬영이 지연되는 설정은 <부드러운 살결>(1964)을 연상시키고, 미국 자본과 영국 배우, 프랑스 스태프라는 다국적 현장의 혼란스러움은 트뤼포의 유일한 스튜디오 시스템 영화 <화씨 451>(1966) 당시의 반영인 듯하다. 그리고 사랑하는 여인 때문에 촬영현장에서 골칫거리로 전락한 극 중 배우 알퐁스(장 피에르 레오)의 존재는 '앙투안 드와넬' 시리즈를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영화 현장은 어느 곳이든 전쟁터를 방불케 해서 극 중 페랑 감독은 “영화 만들기란 마차를 타고 서부를 여행하는 것과 같아서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할지 걱정스럽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실제로 <아메리카의 밤>이 보여주는 '파멜라를 찾아서'의 촬영장은 대사를 제대로 외우지 못하는 노(老)배우의 잦은 NG, 정신병 전력을 갖고 있는 여배우의 돌출행동, 갑작스러운 배우의 죽음, 제작자의 잦은 간섭 등 예상치 못한 사건과 사고의 연속으로 어수선하다.

이런 혼란한 상황은 결국 영화 만들기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이 영화의 제목이 <아메리카의 밤>인 이유인데, 원제인 ‘Day for Night’는 낮에 밤 장면을 촬영하는 영화 기법을 말한다. 작품의 완성을 위해 다양한 책략을 활용한다는 영화의 주제가 제목에 고스란히 녹아있는 것이다(‘사랑의 묵시록’이라는 국내 제목은 <아메리카의 밤>을 완전히 오독하고 있다). 그래서 트뤼포는 감독인 페랑을 이야기의 중심에 두지만 그가 어떤 인물인지 묘사하기보다 돌발 변수의 현장을 어떻게 교통정리 하는지 기능적인 관점에서 바라본다.

이때 페랑 감독(이자 현실의 트뤼포 감독)이 보여주는 자세는 배우와 스태프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신뢰다. 그는 어떠한 상황이 닥쳐도 화를 내거나 신경질을 내는 법이 없다. 이들과 함께 영화를 완성하겠다는, 그리고 기어코 완성해내는 감독의 책임감이 영화에 대한 애정과 동료들에 대한 신뢰로 전면에 나서는 것이다. 이를 두고 영화학자 토드 매카시는 “현장에서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대하는 트뤼포의 성격처럼 이 영화가 보여주는 모든 관계에는 인간미가 가득하다”고 극찬했다. 제목의 좋은 기운 때문이었을까, <아메리카의 밤>은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했고 그 여세를 몰아 미국 흥행에도 성공했다.

 

(허남웅 영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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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 트뤼포의 영화는 한 명의 영화작가가 얼마나 사랑을 가지고 그의 전 생애 동안 영화를 만들었는가를 보여준다. 사랑에 굶주린 트뤼포는 영화를 사랑했고, 영화로 만난 여배우들을 사랑했고, 사랑을 추구하는 영화를 만들었다. <400번의 구타>에서 부모로부터 버림 받은 앙투안 드와넬은 거리를 쏘다니다 몰래 우유를 훔쳐 마시는데, 벽에는 찰리 채플린의 <황금광 시대>의 포스터가 붙어 있다. 굶주림을 그린 위대한 희극왕에 대한 경배의 표현이다. 동시에 부모에게 버림받고 사회에서 소외되어 불량소년으로 떠도는 인물의 삶이 채플린이 창조한 부랑자 찰리의 삶과 만나는 순간이다. 트뤼포는 이런 식으로 상실의 삶에 새로운 삶을 부여하는 기획으로 영화를 만든 감독이었다.

 

트뤼포에게 영화는 수줍어하는 소년이 예쁜 소녀에게 고백하는 사랑의 감정 같은 것이다.그는 어린 시절 아벨 강스의 <잃어버린 천국>을 본 순간을 종종 떠올리곤 했다. 전쟁 시기, 극장은 군인들로 들끓었다. 전선으로 떠나기 전 여자친구들과 영화를 보러 온 군인들은 1차 대전의 비극을 그린 아벨 강스의 영화를 보며 눈물을 훔쳐내고 있었다. 그에게 어두운 극장은 감정의 제전이 벌어지는 장소이다. <앙투안과 콜레트>에서 앙투안은 극장과 유사한 음악 연주회장에서 건너편에 앉은 콜레트를 은밀한 시선으로 쳐다보고 그녀에게 이끌린다. 관음증에 가까운 시선처럼 보이지만 요점은 극장의 어둠에 몸을 맡긴 수줍은 소년이 이러한 보기의 방식을 빌어 간신히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트뤼포의 영화에서 우리는 영상을 점점 확대하거나 축소하는 아이리스 기법처럼 감정의 표현이 다양한 영화적 기제들, 효과들, 장치들을 경유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피아니스트를 쏴라>에서 소심한 찰리의 감정은 건반과 현을 두드리는 해머의 무감한 메커니즘과 아이러니한 관계를 맺는다. 그는 위대한 피아니스트이지만 사랑하는 여인의 살결, 자신의 삶을 부드럽게 터치하지 못한다. <앙투안과 콜레트>에서 앙투안은 음악회에서 소녀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데, 음악과 소녀를 향한 사랑의 감정은 그가 묵묵히 도자기처럼 레코드판을 굽는 긴 장면과 미묘한 관계를 맺는다. <도둑맞은 키스>에서 앙투안의 소심함과 주저, 수줍은 고백은 낭만적인 편지로 전달된다. 트뤼포는 지하 수도관처럼 보이는 긴 파이프를 따라 낭만적인 감정이 담긴 편지가 전달되는 과정을 길게 보여준다. 내밀한 감정을 표현의 기계적 메커니즘을 통해 전시하는 이러한 장면들은 트뤼포에게 영화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이해하게 한다.

 

또 다른 강렬한 순간이 있다. <아메리카의 밤>에서 영화감독으로 분한 트뤼포는 밤마다 악몽에 시달린다. <400번의 구타>의 레오를 떠올리게 하는 꿈속의 소년은 조셉 루이스의 <건 크레이지> 속 소년처럼 거리를 걸어 나와 영화관에 걸린 오슨 웰즈의 <시민 케인>의 포스터와 사진들을 훔친다. <개구쟁이들>에서도 그렇지만 트뤼포는 이미지를 훔치는 소년에의 매혹을 여러 번 보여주었다. 거리의 소년은 그 자신의 순수한 이미지일 것이다. 소년이 훔치는 영화 포스터와 사진들은 그가 가져보지 못한 삶의 이미지들이다. 트뤼포는 삶에 관한 생각들 대부분을 영화라는 수단을 통해 얻었고, 영화의 역사, 과거와 현재를 시네마테크에서 배웠다고 고백한 감독이다. 영화는 그에게 삶보다 거대하고 매혹적인 것이었다.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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