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킹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샤이닝>은 아버지의 폭력으로 인한 가족 집단의 붕괴를 다룬 영화다. 콜로라도 주 오버룩 호텔의 겨울 관리인으로 일하게 된 소설가 지망생 잭 토런스(잭 니콜슨)가 서서히 미쳐가면서 아내와 아들을 살해하려 한다는 단순한 이야기다. 이 작품은 큐브릭의 필모그래피 중에서도 가장 대중 관객들의 호흡에 밀착해 있다. 또한 공포영화로서 충격 효과와 서스펜스를 유발하는 데 있어서 단연 압도적인 기량을 보여준다. 영화의 리듬은 관객이 이야기에 완전히 몰입할 만큼 탄력적인 속도감을 드러낸다. 비주얼과 사운드의 조응은 거의 교과서적으로 보일 정도다.

영화는 원작 기본 플롯을 그대로 가져오되, 주인공 잭 토런스의 캐릭터를 좀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잭은 직업 윤리에 집착하지만 아내 웬디(셸리 듀발)에 대해 경멸감을 가진 가부장적인 사내이다. 잠재적 폭력성을 가진 잭은 과거 아들 대니(대니 로이드)의 팔을 잡아 끌어 어깨를 다치게 한 적이 있다. 이후 대니는 과거와 미래의 일을 내다볼 수 있는, ‘샤이닝’이라 불리는 특별한 정신적인 능력을 갖게 된다. 잭은 오버룩 호텔에 머물렀던 과거의 유령들과 조우하게 되며, 특히 두 딸을 도끼로 살해한 전임 관리자인 ‘그래디’의 충고를 듣고 가족을 파괴하려는 임무에 착수한다.

무엇보다 <샤이닝>은 스테디캠의 미학적 효과를 성공적으로 입증한 최초의 영화로 정평이 나 있다. 오버룩 호텔의 기나긴 복도와 울타리 미로의 끝없이 이어지는 갈래길은 스테디캠의 유동성을 실험하는 데 최적의 무대였다. 또한 <샤이닝>의 단순하면서 정교한 음향 효과는 텅 빈 공간의 정적과 극적인 대조를 이루며 관객의 심리적 쾌감을 증폭시킨다. 큐브릭은 이번 영화에도 꽤 많은 클래식 음악을 사용했다. 리게티, 바르톡, 펜데레츠키 등 20세기 동유럽 작곡가들의 음산한 음악은 신디사이저로 편곡되어 공포영화로서 비장한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샤이닝>은 문명화된 세계의 이면에 자리한 폭력 충동과 살인적이고 악한 인간 본성을 드러낸 작품으로 평가되어 왔다. 영화를 지배하는 푸른색과 붉은 색의 대조는 규칙과 책임감과 의무감이 강조된 문명 세계와 환상과 오컬트와 욕망과 본능이 교차하는 원시 세계를 드러낸다. 오버룩 호텔은 프로이드가 ‘두려운 낯설음(the uncanny)'이라 불렀던 감정을 자아내며 ’귀신 들린 집‘이라는 전통적인 하우스 호러물을 새로운 차원으로 이끌어낸다. 여기서 아버지-가부장의 폭력에 대항해 소수자인 여성과 아이와 흑인이 연대한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그러나 <샤이닝>은 단순한 ‘가족 시네마’가 아니라, 넓은 의미에서 미국 사회와 역사에 가해진 폭력의 알레고리이기도 하다. 오버룩 호텔이 세워진 지역이 원래 인디언들이 묻힌 곳이었다는 전제가 이를 대변한다. 미국은 인디언이 대변하는 약자에 대한 억압을 딛고 세워진 국가이며, 그 피의 역사는 폭력의 수행자이자 억압의 주체를 통해 긴 궤적을 그리며 자꾸만 되돌아오는 것이다. <샤이닝>은 공포영화 장르의 컨벤션을 재해석하고 있으며, 동시에 미국의 문명과 역사에 대한 비판적 드라마다.

by 한선희(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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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리 큐브릭은 21세기 들어 재평가의 목소리가 가장 높은 작가 중 한명일 것이다. 좋은 의미로서의 재평가는 아니다. 이를테면 평론가 토니 레인즈는 "엄격한 의미에서 말하자면 큐브릭은 작가가 아니었다"고 말한 바 있다. "직접 시나리오를 쓴 적이 없고, 대부분의 영화가 소설 각색물이며, 또한 어떤 이야기가 가장 센세이셔널할 것인가를 고민했기 때문에 오히려 스튜디오 시스템에 가장 적합한 감독이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어쩌면 우리는 '작가'라는 이름 자체에 거품이 지나치게 낀 시대에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큐브릭은 오히려 테크놀로지 미학 자체를 이야기에 융합시키거나, 둘의 불균질함을 영화적 해법으로 이용하는 감독이었다. 그리고 그 큐브릭 특유의 영화적 특징이 가장 먼저 막을 올린 영화가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다.

피터 조지의 소설 <적색 경보>를 느슨하게 영화화한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는 핵에 대한 공포로 지구가 구역질을 해대던 시대의 우화다. 미국의 한 공군장군이 수소폭탄을 싣고 운항중인 모든 폭격기에 소비에트를 공습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폭격기들이 소비에트를 향해 날아가는 동안 패닉 상태가 된 백악관과 국방부는 즉각 철수 명령을 내린다. 그러나 테크놀로지에는 문제가 있게 마련이고, 한대의 폭격기가 통신두절로 인해 철수 명령을 듣지 못한 채 모스크바를 향해 날아간다. 미국 대통령은 소비에트 서기장과 통화를 하지만 소비에트의 무인자동시스템은 이미 자동으로 미국을 향해 핵폭탄을 날린 후다.


만약 누군가가 커트 보네커트의 소설을 영화화한다면 그건 아마도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와 가장 닮아있을지도 모른다. 큐브릭은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에서 그리고 싶었던 것이 "인간 특유의 부조리"라고 말한 바 있다. "인간의 부조리는 인간을 멸망시키고 있으며, 우리와 함께 살아간다". 재미있게도 큐브릭이 그려낸 부조리한 지구 멸망의 희극은 냉전시대가 막을 내린 지금도 여전히 지속중인데, 그건 위험천만한 1960년대의 시대정신에 속해있으면서도 세월의 흐름에 빛이 바래지 않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의 운명과 똑 닮아있다. <닥터 스트레인지러브>가 오로지 비뚤어진 유머감각 하나만으로 고전의 지위에 오른 건 당연히 아니다. 테크놀로지 미학 자체를 이야기에 융합시키는 큐브릭 특유의 화법은 여기서도 이르게 발현되고 있다. 특히 병사의 시선으로 핸드헬드 촬영한 전투장면이나, 당대의 새로운 영상문체를 창조하던 초창기 TV의 미학을 적극적으로 영화 속에 끌어들인 부분은 유심히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이 젊고 의기양양하고 아이디어로 넘치던 전성기 큐브릭의 우화를 좀 더 즐기고 싶다면 <2001년 스페이스 오딧세이>와 <시계태엽장치 오렌지>를 이어서 감상하시길 권한다.

글|김도훈 씨네21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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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비가 내리던 저녁, <평양성>의 이준익 감독이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았다. 지난해에 <몬티 파이튼의 성배>를 추천한 이준익 감독은 올해는 평소에도 자신의 작품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고 말하곤 했던 스탠리 큐브릭의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를 선택했다. 이준익 감독은 50년이 지난 지금에도 이 영화에 담긴 의미가 여전히 새롭다며, 전쟁과 이념 대결구도를 풍자한 큐브릭의 작가적 행보를 존경한다고 말했다. 웃음이 떠나지 않았던 시네토크 현장을 소개한다.



이준익(영화감독): 이 작품은 호불호가 갈리는 극단적인 작품이다. 내게는 중요한 영화라 이 작품을 추천했다. 개인적인 취향으로 선택했는데 많이 와주신 것 같아 다행이다.

허남웅(영화칼럼니스트) : 작년<평양성> 연출 후 상업영화계 은퇴를 선언 하셨다. 그 이후로 힘들게 보내실 줄 알았는데, 좋게 보내신다고 들었다.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준익 : 조심성이 없는 사람이라 평생의 반을 실수하며 산다. 감정적인 인간이라 욱하는 바람에 말실수를 했다. 인간은 실수로 비극을 맞이하는데 이 영화도 그렇다(웃음).

허남웅 : <황산벌>을 연출할 때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가 모범이 되는 영화였다고 말했었다. 추천한 이유를 듣고 싶다.

이준익 : 이 영화는 미국 냉전 이데올로기를 비꼬는 블랙 코미디다. 냉전 이데올로기의 경쟁 속에서 과대망상이 만들어졌고, 과학의 힘을 빌어서 핵무기를 생산해 놓지 않았나. 동서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심화되었을 때 큐브릭은 이 영화를 만들었다. 50여년이 지난 지금도 한국은 핵무기의 냉전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전쟁이나 이념 대결 구도 자체가 일상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이 영화가 나에겐 매우 중요하다. 1964년에 이런 생각을 한 큐브릭은 50년이 지난 이 자리에서도 공론화 할 수 있는 철학자다. 이 작품은 반영웅주의 영화며 미국의 군사중심주의마저도 풍자한 영화다. 간단한 미학이지만 상징적 비유가 있는 블랙 코미디라서 이 작품을 추천했다.

허남웅 : 한국에서 이런 영화를 수용할 수 있는 토양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이준익 : 과거 한국의 목표는 학생들이 권력에 의해 순종적 인간이 되어 고도성장을 이룩하는 거였다. 그런데 현재는 그 사회 시스템이 건강한지를 의심하는 시대다. 내가 20대였을 때에는 정보가 차단되어 의심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미 미국은 60년대에 이 시기를 건너갔다. 이 작품을 통해서 이 사회가 다른 나라들처럼 집단 소통이 잘 이뤄졌는지를 가늠해봤으면 좋겠다. 우리가 시네마테크에서 이 영화를 보는 이유는, 30년 전 재밌게 봤던 영화 속에 담긴 의미가 여전히 새롭기 때문이다. 지금 관객들과 대화를 나누는 이 시간도 내겐 매우 행복하다.

허남웅 : 이 영화를 접했을 때가 언제인가?

이준익 : 남들처럼 처음에는 할리우드 상업 영화를 열심히 봤다. 데뷔작도 <키드 캅>인데, 당시 <나홀로 집에> 같은 할리우드 영화를 흉내 냈다. 첫 영화가 망한 후, 10년 동안 감독 대신 외화 수입 및 영화 제작 일을 했다. 나중에야 내가 알고 있는 기준과 다른 작품들을 시네필 친구들에게 추천 받았다. 30대 중반 넘어 본 영화들은 내가 모르던 세상이었다. 100년을 넘어 장르를 지탱해 온 영화사에 남아있는 영화들이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그런 영화들을 관람한 뒤 <황산벌>을 만들었다.

허남웅 : <황산벌> 같은 사극을 제작한 것은 이런 식의 코미디를 현대극으로 만들기엔 사회가 성숙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고 들었다. 지금 현대극으로 비슷한 이야기를 할 의향이 있는지 궁금하다.

이준익 : 물론이다. 하지만 아직 대한민국 사회는 이데올로기의 경직성을 벗어나지 못했다. 젊은 세대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강박이 적지만 중년층 이상은 바뀌지 않았다. 대한민국은 아직도 일상의 많은 부분을 대결 구도가 지배하고 있다.



관객1 : 루이스 부뉴엘의 <부르주아의 은밀한 매력>을 봤는데, 가진 자들의 횡포를 빗대서 영화를 만들었다는 점이 비슷하다고 느꼈다. 세상에 회의적인 태도를 취하나 비꼬는 방식을 많이 사용했는데, 감독들이 이렇게 세상을 비꼬는 방식을 선택하는 이유가 뭔지 궁금하다.

이준익 : 이상하게도 영화를 찍으면 신적인 사고를 하게 된다. 세상을 버즈아이로 보려한다. 제일 윗선에 있는 우두머리들의 뒤통수를 위에서는 볼 수 있다. 관객 전체가 이러한 시각을 가져야한다. 감독은 이를 풀어서 관객들도 똑같이 권력자들의 뒤를 보라고 이야기한다. 채플린이 말했던 것과 반대로, 인생은 멀리서 보면 비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희극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멀리서 보면 근엄해 보이고 과도한 의미가 부풀려지지만, 카메라를 가까이 하면 말도 안 되는 상황이다. 그걸 통렬하게 찔러서 보여주고, 관객들을 대리만족 시켜주는 역할을 이 영화가 한다. 그래서 영화는 돈의 가치만이 아닌 문화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관객2 : 배우들이 과장된 연기를 하고 있다고 느꼈는데. 감독님 영화에서는 과장되어있다는 느낌이 들더라도 자연스러운 것 같다. 어떻게 과장을 절제 하는지 궁금하다.

이준익 : 얼마 전 중국 아카데미에 초청을 받아 특강을 했는데, 중국 배우들은 연기가 너무 과장되었다고 일침을 놓았다.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중 돌아가시기 전 작품들, 예를 들어 <아이즈 와이드 셧>을 보면 과장이 하나도 없다. <풀 메탈 자켓>도 다큐멘터리적으로 찍은 최초의 베트남전 영화로 생각된다. 1964년도의 연기법이 바로 이건데, 연기 톤이 저 정도면 과장이 아닌 거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과장이지만, 그때 기준으로 보면 과장이 아니라 생각한다.

허남웅 : 이 작품이 칼라로 찍으려다가 제작비 때문에 흑백으로 진행했다고 들었다. 선악의 이분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알 맞는 형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사전 인터뷰 때 세상 자체를 흑백으로 보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다.

이준익 : 칼라는 같은 색을 오래 보면 식상해서 그것보다 다른 고급의 색을 찾게 된다. 그게 눈의 사치를 채우려는 인간의 욕망이다. 차라리 흑백이라면 비교가치로부터 자유로워질 것 같다. 흑백 논리가 아니라, 담백하고 조촐한 일상이 행복 지수를 키우는데 유리할 것 같다. 지혜로울 수 있는 방법은 심플하고 가식 없이 사는 거다.

허남웅 : 다음에는 그런 가치관을 갖고 변화한 이야기를 선택할 것인지?

이준익 : 과거로 돌아가지 않고 새로운 문을 열어야하는데 너무 사회적, 역사적, 공동체로서의 삶의 가치를 추구하는 영화만 만든 것 같다. 영화 미학을 포기하는 서투름이 있었는데, 이젠 영화 미학도 추구하고 싶다.

 
관객3 : 자본주의 사회의 과열 경쟁에 대해 얘기를 많이 하셨는데, 어떤 예술이든 제작자가 대중에게 주고 싶은 메시지가 있는 것 같다. 감독은 관객들을 계몽하기 위해서 영화를 만들지 않을까 추측하는데, 요즘 사람들한텐 어떤 계몽을 하고 싶은지.

이준익 : 나는 계몽이란 단어를 싫어하기 때문에 계몽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자신도 모르게 영화를 하다보면 우월한 심리가 스며든다. 감독이 선택을 해야 하고 그 선택대로 스태프들이 실행해주니까. 여러 편을 찍으면서 메시지 전달이 부정확한 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알려고 하는 것 자체가 무모하다. 그래서 더 올바른 가치에 대한 다음 행보는 무엇인가? 찾아야 하는데 아직 찾지 못했다.

관객4 : 비행기 안에서 폭탄이 작동 안한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결국에는 작동되어 멸망한다. 관객들이 해피엔딩을 원할 텐데, 죽여서 참담함을 안겨주는 감독의 심리가 궁금하다.

이준익 : 당시 대부분의 할리우드 스튜디오 영화는 질문하신 분이 원하는 그런 결말대로 찍었다. 그래서 큐브릭은 반대로 촬영했다. 좋은 결말을 다 알고 있고 그걸 충족시키면, 그것도 일종의 폭력이 아닐까? 지금도 할리우드는 폭발을 멈추는 해피엔딩으로 만들고 있다. 30살 전까지 할리우드의 권선징악에 도취되어서 살았는데, 30대 중반 넘어가면서 내 의지와 상관없이 주입된 그 사고방식을 따를까봐 두렵다고 느꼈다. 반대가치에 대한 발견을 추구하는 것이 작가적 행보이기도 하다. 나는 아직 작가가 못되었지만, 큐브릭은 초지일관 작가적 관점에서 끝까지 밀고 간 거다. 나는 큐브릭이 인류에 진정 이바지한다고 본다.

허남웅
: 앞으로의 방향은 어떻게 되는지 마지막으로 묻고 싶다.

이준익 : 계획의 희생자였다(웃음). 너무 계획하고 성실하게 살았기 때문에, 이젠 인생을 계획 없이 살려고 한다.

정리: 윤서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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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세 감독이 선택한 영화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샤이닝>이었다. 영화를 감상한 소감에서 이명세 감독은 <샤이닝>을 처음 미국에서 보았던 때를 회상하며 깨끗한 화질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겨울에 <샤이닝>이라는 공포장르를 선택해서 관객들에 송구함을 드러냈던 이명세 감독. 그러나 그의 우려와는 달리 146분이라는 러닝타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추운 날씨에도 극장을 가득 메우고 영화를 감상한 시네마테크의 친구들은 함께 웃고 놀라며 마치 새롭게 개봉한 스탠리 큐브릭의 최신작을 감상하듯 하나가 되어 영화의 배경인 오버룩 호텔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이명세(영화감독) : 십년 전 쯤 뉴욕 필름 포럼에서 <샤이닝>을 볼 기회를 수차례나 놓쳤다. 1년 뒤에 힘겹게 감상할 수 있었는데 그 때 내가 느꼈던 기쁨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었다. 시네마테크 친구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허남웅(영화칼럼니스트) :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이명세 감독님께 어떤 의미의 연출자인가?

이명세 : 완벽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본인의 영화를 상영할 때 극장의 영사 상태가 완벽하지 않으면 프린트를 보내지도 않고, 정말 철저한 느낌과 자세가 큐브릭 감독에게서 느껴진다. 일시적인 상업적 엔터테인먼트가 아닌 개인적인 예술을 보여주는 행위자로서 존경심을 가지고 있는 감독이다.

허남웅 : 영화 속에서 여러 인상적인 장면이 나오는데 감독님 개인적으로 꼽을 수 있는 장면은 어떤 것이 있나?

이명세 : 영화를 만들 때 70퍼센트의 분위기를 만들어갈 수 있다면 성공한다고 한다. 항공 촬영된 시작부의 웅장한 장면과 음악, 스테디 캠의 유려한 이동, 카펫이나 마루를 밟을 때의 세밀한 사운드의 반복 등이 하나하나 벽돌을 쌓아가듯 분위기를 구성하고 있다. 우리식으로 하면 귀신 씌인 사람의 이야기인데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방법이 너무 좋아서 큐브릭의 다른 영화들 보다 유독 상업적이며 동시에 예술적 성취를 얻었다고 본다.



허남웅 :
영화 속 타자기 소리를 이용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이명세 : <남자는 괴로워>에서 잠깐, 그리고 <M>에서 타자기는 아니었지만 키보드 소리를 좀 강한 소리로 얹었던 기억이 난다.

허남웅 : 이 영화에서의 많은 해석, 즉 작가로서의 압박,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그리고 미국 백인들의 폭력의 알레고리 등에 대해 감독님의 해석은 어떠한지?

이명세 : 여러 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고 영화는 볼 때마다 틀려질 수도 있다. 마지막 장면의 사진 속 7월 4일이 미국인에게는 독립기념일이지만 인디언들에게는 무덤과도 같은 날일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압권은 밖에서 아내와 어린 아들을 바라보는 잭 니콜슨의 표정이라고 할 수 있다. 미쳐가고 있다는 것을 연기자의 표정만으로도 가능하다는 것이 큰 화면으로 더욱 선명하게 다가왔다.

허남웅 : 이렇게 인상적인 연기가 가능한 잭 니콜슨은 감독님에게 어떤 연기자인가?

이명세 : 너무 좋아하는 배우이고 특히 눈매는 알랭 들롱과 흡사하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두 배우의 사진을 대조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허남웅 :
아내 역의 셜리 듀발이 배트를 휘두르는 장면이 127번의 촬영으로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완벽주의는 악명이 높았다. 감독님 역시 70번 이상의 촬영이 있었던 걸로 알고 있는데?

이명세 : 그렇게 많지는 않고, 한 두 장면 때문에 그렇게 알려진 것이다. 사실 약간의 빈 곳을 더 채우기 위해 여러 번의 테이크를 가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결국 두세 번째 테이크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게 되는데, 이런 접점 찾기는 배우나 스태프를 괴롭히려는 의도가 아니라 느낌의 접점을 찾는 시도로 이해해주면 좋을 것 같다.




관객1 :
결말이 잭 니콜슨이 가족을 다 죽이는 데 성공하고, 휴가가 끝난 이후에 사람들에 의해 발견하는 것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 결말을 피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명세 : 우리는 흔히 우리의 시각으로만 영화의 결말을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가령 <졸업>이란 영화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해피엔딩일까? 백수건달과 떠나는 마지막 장면에서의 덜컹거리는 자동차는 원래 감독이 암담한 미국의 미래를 그리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허남웅 : 스티븐 킹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중 좋아하는 작품은 어떤 것들이 있나?

이명세 : 다 좋아한다.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캐리>도 좋았고, <미져리>도 좋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샤이닝>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관객2 :
영화의 몇몇 장면들은 별다른 해명 없이 지나가서 영화를 분석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이렇게 영화를 분석적으로 접근하는 것 자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명세 : 개인적으로 주제나 메시지가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본다. 영화를 너무 분석적으로 보면 영화자체의 즐거움을 놓칠 수 있다. 분석적 감상은 한 번으로 제한될 수 있지만 즐기며 감상하면 볼 때마다 영화 곳곳에서 보물들을 찾을 수 있다. 가령, 냉동 창고에 갇힌 잭의 모습은 로 앵글로 표현되는 것이 최선이었는가? 잭 니콜슨의 분위기를 다른 한국 배우에게 적용시킬 수 있을까? 조명과 스모그의 효과나 음악의 베리에이션 등의 요소들을 마치 바둑 두듯 구상해 볼 수 있다. 나처럼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오늘도 영화 감상하는 재미가 이렇게 쏠쏠했다(웃음).

관객3 : <샤이닝>이라는 제목의 의도와 영화 속에서 237호의 의미, 그리고 여자 귀신의 의미가 궁금하다.

이명세 : 시네토크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내가 스탠리 큐브릭에 빙의되었으면 한다(웃음). 일단 <샤이닝>이란 제목은 중의적으로 가장 빛나는 순간이자 피의 순간, 즉 피의 희생을 전제로 한 독립 기념일의 순간이 아닐까 생각한다. 여자의 정체는 논리적으로 규명 짓기 보다는 느낌으로 형상화 된 것으로 보면 될 것 같다.




관객4 :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이 1921년 사진에서 보이는데 원래 유령인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문에서 핏물이 나오는 장면이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명세 : 논리적으로 본다면 죽었던 유령의 이야기이거나 환생일수도 있겠다. 영화에서의 이미지는 드라마와는 다르게 비약될 수 있다. <샤이닝>은 이미지를 통해서 논리적이 아닌 방식으로 호텔 전체를 뒤집어 버린다. 나 또한 색을 강조하고 익숙한 음악을 쓰는 경우가 있는데, 강렬한 이미지를 통해 주의를 강조하고 환기시키기 위한 이유라고 볼 수 있다.

관객5 : 영화에서 중요하게 표현되는 미로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리고 스테디 캠으로 표현된 미로의 경우 스테디 캠을 활용하기 위해 미로가 선택 된 건지 미로를 표현하기 위해 스테디 캠을 활용한 건지 궁금하다.

이명세 : 미로는 오버 룩 호텔 전체에서 내려다보듯 누구의 관점일수도 있고 작가적 벽에 갇힌 잭 니콜슨의 심경을 표현한 것일 수도 있고, 역사적 트라우마일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미로 같은 느낌과 이미지가 먼저 있었기 때문에 이를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스테디 캠을 선택한 것 같다.

관객6 : 영화가 예술성을 갖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큐브릭 감독의 작품은 어떤 면에서 예술적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이명세 : 개인적으로 예술영화와 상업영화를 나누지는 않는다. 다만 장인의 손에 의해 최선을 다해 꼼꼼하게 빚어진 작품과 기획에 의해 공산품처럼 공장에서 찍혀 나오는 작품과는 구분이 된다고 본다. 영화의 요소들이 얼마나 적절하게 녹아들어가 조화를 이루는 지가 중요한데 그런 면에서 큐브릭의 영화는 성공적이며 예술적이라고 본다.

관객7 : 감독님은 워쇼스키 형제의 <매트릭스>에서도 오마주될 정도로 비주얼리스트로 알려져 있다. 좋은 이미지나 장면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명세 : 1895년 파리 만국 박람회에 일본 유명 조각가가 로댕박물관에서 본 발자크 상의 산 더미 같은 스케치들을 보고 절망 끝에 조각을 그만 둔 일화가 있다. 하나의 조각을 위해 수많은 스케치가 필요하듯 하나의 장면이나 이미지를 위해서는 수많은 시나리오의 수정작업이 필요하다. 비주얼이란 그림이나 풍경이 좋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고민과 생각 끝에 영상화 된 것이 이미지이다. 고민과 절망을 이겨낸 몇 장면만이 이미지이며 이런 이미지는 찾기가 쉽지 않다. 한 두 장면만 발견해도 커다란 성과다.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이러한 많은 보물들을 찾아서 갖고 돌아가시길 바란다.

정리: 김준완 | 에디터
사진: 최용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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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은 스티븐 킹이 1977년에 발표한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공포영화의 고전이다. 146분이라는 긴 상영시간을 인지하기 힘들 정도로 흡입력 있는 화면과 스토리가 맞물려 있다. 인간의 이성을 넘어선 초월적 존재에 대한 불안이 가져오는 원초적 공포가 인물들을 마치 꼭두각시 인형처럼 조작하면서 극을 마지막까지 빈틈없이 몰아세우기 때문이다. 인물의 불안 심리를 세세하게 극대화시켜주는 미장센은 초자연적인 현상이란 불안감을 시각적으로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콜로라도 주 오버룩 호텔의 관리인 직을 얻게 된 잭 토랜스(잭 니콜슨)는 겨울 내내 텅 빈 호텔을 자신의 가족들과 함께 지켜야한다. 그에게는 호텔 관리 외에 가족들을 부양해야 하는 가장으로서의 의무가 있다. 영화 내내 관철되는 헤드 룸과 부감쇼트는 머리숱도 얼마 없는 잭을 더욱 짓누르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결국 멀쩡하던 그는 점점 환각을 보게 되고, 정체불명의 그래디라는 인물에게 자신의 진짜 사명에 대해 듣게 된다. 그의 사명이란 자신의 가족을 죽이는 것이다. 광기에 사로잡힌 잭은 결국 가족을 죽이려고 고군분투한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잘 짜여진 공포물에 머무는 것은 아니다. 큐브릭은 도리어 공포물의 옷을 입은 사회극을 보여주려 한다. 역설적으로 사회극이 더 공포적일 수 있음을 능글맞게 펼쳐 보이는 것이다. 가령, 잭 토랜스와 그래디라는 인물과의 관계, 가족과 오버룩 호텔의 관계를 생각해보자. 잭은 평범한 중년 백인 가장으로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지만, 그의 광기는 단지 이러한 의무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호텔은 인디언의 무덤 위에 세워졌고, 흑인 요리사는 잭의 도끼에 희생된다. 큐브릭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결국 자신마저 죽음에 이르게 하는 광기의 역사의 반복이 자아내는 공포인 것이다. 그래디는 잭에게 ‘당신은 늘 이곳에 있었다’고 말한다. 이는 곧 언제든지 액자에서 빠져나와 다시 가족을 그리고 자기 자신마저 죽일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큐브릭의 섬뜩한 경고는 이 영화가 왜 진정한 공포영화의 고전임을 강변하고 있다. (김준완: 에디터)

1.15(일) 14:00 상영 후 이명세 감독 시네토크
2.2 (목) 17:00
2.14(화) 19:00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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