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감독 vs. 엘레나 뽈라끼 베니스영화제 프로그래머 대담

 

지난 12월 15일, 김기덕 감독이 처음으로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았다.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인 <피에타> 상영에 이어 진행된 김기덕 감독과 엘레나 뽈라끼 베니스영화제 프로그래머와의 대담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문석 씨네21 편집장의 진행으로 이뤄진 이날 행사를 기다려왔던,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박수로 김기덕 감독을 맞았고, 두 시간 넘게 진행된 대담 내내 자리를 지키며 많은 질문을 던졌다. 이 날의 이야기를 일부 옮긴다.

 

 

문석(<씨네21> 편집장): 먼저 베니스영화제에서 수상하신 소감이 궁금하다.

김기덕(영화감독): 영화제에서 상을 타기 위해 영화를 하느냐고 많이 묻는데, 명확하게 대답하기가 항상 어렵다. 영화가 세상에 보여지는 조건 때문인 것 같다. 그런 질문에 대답할 때, 영화에 가치평가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대답할 수도 있겠지만, 오랫동안 영화를 하면서 마케팅의 벽으로 인해 객관적으로 영화가 보여질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다. 영화제의 타이틀이 항상 절박하게 필요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것이 마케팅으로서 큰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화제에서 어떤 영화가 수상하게 되는지의 비밀은 아직 나도 잘 모른다. 다만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이런 수상을 통해서 조금이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객관적으로 영화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것이 기쁘다.

 

엘레나 뽈라끼(베니스영화제 프로그래머): 감독님의 영화로는 <섬>이 처음 베니스영화제에서 상영되었고, 그 후로 12년이 흘렀다. 그동안 영화에 대한 감독님의 생각이나 태도가 어떻게 변화했나.

김기덕: 가장 큰 변화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을 계기로 표면적이고 물리적인 잔인함에서 간접적이고 심리적 잔인함으로 전환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피에타>는 관객들이 많이 당황스러울 것 같다. 예전으로 돌아간 것이 아닌가 해서. 돌아간 척하는 것일 수도 있다.(관객웃음)

문석: 베니스영화제가 왜 유독 감독님을 사랑한다고 생각하시나?

 

 

김기덕: <섬>으로 처음 베니스를 갔는데, 원래는 비경쟁부문이었다가 경쟁부문으로 바뀌게 되었다.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었고 반응도 놀라웠다. 한국영화의 다른 모델을 보여주어 한 감독의 출현에 대해 어떤 기대를 심어주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엘레나 뽈라끼: 베니스영화제가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초청하는 가장 큰 이유는 베니스 관객들이 감독님 영화에 대해 아주 뜨거운 반응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열광, 열정을 느낄 수 있다. 관객들의 그런 반응은 김기덕 감독의 영화가 단지 한국영화라는 바운더리를 넘어서서 영화 자체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감독님의 영화가 이탈리아에서 왜 그렇게 큰 사랑을 받고 있는지 간단히 정의하기는 거의 불가능한 것 같다. 다만 개인적으로 감독님의 영화가 인간관계에 대해 잘 표현하고 있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을 영화를 통해 같이 느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김기덕: 최근에 베니스영화제에서 소개된 한국의 신인 감독들에 대해서, 그리고 한국 영화에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부분에 대해서 궁금하다. 오늘 이 자리에는 영화를 하고자 하는 분들도 많을 거라 생각된다. 세계적인 영화제의 프로그래머로서 이 분들에게 어떤 단서나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을 것 같다.

엘레나 뽈라끼: 아직 많은 분들이 잘 모르시는 것 같지만 올해 베니스영화제에서 유민영이라는 여성감독이 <초대>로 최우수 단편영화상을 받았다. 거장들의 활약도 두드러지지만 장르나 여러 다른 부분에서 한국영화가 창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베니스 뿐 아니라 다른 영화제 프로그래머들도 같은 생각을 할 것 같은데, 영화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창의성이며, 영화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자하는 강한 욕구가 보이는가 하는 점이 굉장히 중요하다. 영화 뿐 아니라 모든 예술이 그런 진정성을 바탕으로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2012 베니스 인 서울”에서 상영되는 여러 영화들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사회나 자신에 대해 진정성을 가지고 창의적으로 표현한 작품들을 보실 수 있다. 예를 들어 이번 상영작 중 파졸리니, 프란체스코 로지, 로셀리니 이 세 감독의 작품을 보시면 어떤 의미로 이런 말씀을 드리는지 확실히 느끼실 수 있을 것이다.

 

관객1: <섬>을 본 이후로 계속 감독님 팬이었다. 감독님께선 이미지를 매혹적으로 포착하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생각한다. 이미지를 포착하고 조형하는 데에 있어 도움을 받거나 영감을 주는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김기덕: 영화의 이미지가 이미지로만 존재하진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미지가 이야기를 갖고 있지 않다면 그저 사진의 쇼트이지 않을까. 그 장면이 갖는 드라마가 있기 때문에 영화의 이미지가 되는 것 같다. 이 영화에서 청계천의 이미지도 그렇고, 나에게 영화의 이미지라는 것은 이야기가 같이 만난다. 항상 거기에 중점을 두고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 같다.

 

관객2: <피에타>에서 여자가 강도의 자위를 도와주는 행동은 어떤 의미인가? 그리고 강도는 그녀가 자신의 엄마인지를 시험하는 말과 행동들을 하는데, 성경에서 모티브를 가져오신 건지 궁금하다.

김기덕: <피에타>의 큰 줄거리는 아마 ‘네가 내 아들을 죽였으니 너도 엄마가 죽는 고통을 느껴봐라’ 일 것 같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강도가 몽정을 하는 장면부터 보여준다. 강도의 잔인함 사라지면서 엄마가 그에게서 발견하는 것은 성장을 멈춘 한 아이가 아니었을까. 몽정을 한다는 건 어머니의 부재, 세상에 대한 정보력의 약함 같은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런 그의 몽정을 도와주는 순간이 아마 배려 혹은 애정의 시작이 아니었을까. 물론 그리고 나서 바로 화장실에 가서 후회를 하기도 한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선, 일종의 시험, 테스트, 또는 둘의 게임이라고 생각한다. 강도에게는 엄마를 믿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가 엄마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 중요했다.

 

관객3: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김기덕: 영화는 가슴으로 찍어야 한다. 그러면 분명히 빛이 와서 스크린을 비출 때 영화의 심장 소리를 관객이 듣는다고 생각한다. 감독이나 배우, 스텝은 심장이 열려야 하는 직업이다. 가슴으로 만든 영화는 어디서 보여지든 그 심장소리를 듣는다고 생각한다. 한국영화가 스타일적인 면에서 많이 발전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영화를 배울 때도 시나리오나 삶에 대한 고민이 아니라 테크닉적인 부분의 비중이 많은 것 같다. 그런 것들이 컬리티라는 말로 둔갑해서 많은 배움의 시간을 뺐고 있다. 하고 싶은 마음과 열정이 있다면 삶을 밀도 있게 그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한다는 것은 시계가 되는 것 같다. 초침, 분침, 시침의 역할을 다 알아야 하듯이, 기술도 알아야하지만 삶도 알아야한다. 이 모든 것이 메시지가 되고 주제가 되고 호흡이 되는 시계의 구조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관객4: 감독님 영화에 대한 유럽 사람들의 반응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다.

김기덕: <빈 집>으로 세계비평가협회 그랑프리를 탄 적이 있다. 그 때 상을 주시던 분이 소감으로 ‘김기덕은 영화를 통해서 뫼비우스의 띠를 설명했다’는 말씀을 하셨다. 어려운 말처럼 들리지만, 너무 이해가 됐다.(관객웃음) 구상과 추상이 하나가 되어 설명 된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굉장히 놀랐다. 사실 나에겐 이미 ‘반추상’이라는 개념이 있었다. 우리는 반추상에 살고 있고 그것이 아이러니라고 설명하곤 했는데, 그것이 뫼비우스의 띠라는 말로 명쾌하게 설명되었다. 웃는데 슬프고, 기쁜데 고통스러운 것, 표정과 내면이 계속 만나지 못하는 슬픔 이것이 ‘김기덕 영화’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리고 내 영화를 보면 불쾌하고 화나면서도 또 보게 된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는데(관객웃음), 그게 그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관객5: 감독님 영화에 나타나는 한국의 전통적인 면에 대해 좀 더 설명을 듣고 싶다. 그리고 영화를 만들 때 외국의 관객을 염두에 두시는지 궁금하다.

김기덕: <봄 여름…>이나 <비몽>에선 한국의 전통 가옥인 한옥이 소개가 된다. 그리고 요즘은 국제영화제에 가면 꼭 아리랑을 불러드린다. 이렇게 노래를 잘 못 부르는 사람이 불러도 그 감정을 굉장히 공감해준다. <봄 여름…>에 대해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비판을 듣기도 했지만, 나는 이 영화가 우리가 사는 삶에 관한 영화라고 생각했다. 내가 살아온 시간과 살아갈 시간을 더듬은 영화였다. 한국적이다, 한국적이지 않다는 것을 자꾸 비교하는 것은 스스로의 모순인 것 같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그렇다, 아니다 대답하기가 힘들다. 지도의 어느 곳이든 거기에는 고통, 기쁨, 슬픔이 다 있다.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은 어디에서나 유사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든다.

 

문석: 감독님의 영화는 글로벌 언어로 진화했다는 생각한다. 점점 조형화되고, 대사도 없어지고, 점점 시네마틱한 엑세스를 향해 나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피에타>를 보고서 감독님의 영화가 야성의 세계로 돌아왔다는 인상을 받은 사람들도 있는데, 그런 관점에서 <피에타>는 어떤 흐름 속에 있는 영화인가.

김기덕: 해외 영화제를 가면 영화를 굉장히 많이 보지만 영어를 거의 못한다. 영화에서 대사가 아닌 것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많이 배웠고, 어느 시점부터 실제로 대사가 많이 없어졌다. 대사를 줄이고 액션을 언어화하는 방향으로 갔다. 액션으로 전달 될 수 있는 내용이라면 무조건 대사를 뺐다. 그런 방법은 더 짙은 호소력을 갖게 되고, 거짓말이 갖는 트릭을 안 쓰게 된다는 점에서 장점을 갖는다. 하지만 설명을 필요로 하는 영화도 있다. <피에타>의 경우 영화의 지리적 공간, 청계천이라는 삶의 공간을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대사를 많이 쓰게 됐다.

 

관객6: 감독님은 굉장히 탐미적이신 것 같다. 감독님에게 미란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김기덕: 결국 삶이라는 것은 미를 찾는 것이고, 미는 맛을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미를 추적하는 작업이 영화이다. 미는 모든 것에서 찾을 수 있다. 꽃도 아름답지만, 똥도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삶을 산다는 것은 편견을 하나씩 버리는 과정인 것 같다.

 

정리: 장지혜(관객에디터) | 사진: 박지연(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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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의 긴 역사를 자랑하는 이탈리아의 베니스영화제는 최초의 국제영화제라는 위상에 걸맞게 프랑스의 칸, 독일의 베를린 등과 함께 전 세계 영화들의 허브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다. 그것이 어디 하루 이틀에 가능한 일이었을까. 1932년 출범부터 2012년 <피에타>의 황금사자상 수상까지 베니스 영화제의 역사와 이모저모를 살펴본다.

 

 

 

 

 

공식명칭

베니스 국제 영화제(Venice International Film Festival)

 

일시

매년 8월말부터 11일간

 

메인극장

리도 섬의 팔라조 델 시네마(Palazzo del Cinema)

 

출범

초대영화제는 1932년 7월 6일부터 8월 21일까지 무려 40여일 넘게 진행됐다. 정확히는 그 기간 동안 열린 18회 베니스 비엔날레(Venice Biennale)의 부속 행사로 시작됐다. 지금이야 팔라조 델 시네마에서 화려하게 막을 올리지만 당시에는 엑셀시오르 호텔의 테라스에서 조촐하게 개막을 알렸다. 비경쟁이었던 초대영화제의 첫 번째 상영작은 루벤 마물리언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 Dr. Jekyll and Mr. Hyde>(1931)였다. 그 외에 프랭크 카프라의 <어느 날 밤에 생긴 일>(1934), 에드먼드 굴딩의 <그랜드 호텔>(1932), 킹 비더의 <챔프>(1931), 제임스 훼일의 <프랑켄슈타인>(1931) 등이 상영됐다. 그중 <Putjovka v zizn>를 연출한 소련의 니콜라이 엑크(Nikolaj Ekk) 감독이 관객들의 투표로 뽑은 감독상의 영예를 안았다.

 

발전

베니스 영화제는 그 이듬해인 1935년에 독립했다. 그와 함께 참여하는 영화와 국가의 숫자도 늘어났고 관객이 뽑는 감독상 외에 배우상도 생겼다. 1936년 3회 때는 심사위원 상이 신설됐고 1937년에는 영화제의 메인 행사관인 팔라조 델 시네마의 건설 계획을 발표하며 부지에 첫 삽을 떴다. 1938년에는 1891년부터 1933년까지 발표됐던 프랑스 영화를 대상으로 한 첫 회고전도 열렸다. 무엇보다 당시 굉장한 인기를 구가하던 독일 출신의 미국 영화배우 마를렌 디트리히가 영화제를 위해 리도 섬을 방문, 베니스는 톡톡한 홍보 효과를 보았다. 이를 계기로 영화제 측에서는 유명 배우의 초청에 공을 들이게 되지만 세계2차 대전으로 인해 1940~1942년까지는 자국 이탈리아를 제외하고는 참가하는 나라가 거의 없어 잠시간 배우 초청 효과도 퇴색했다.

 

위상

출범 후 15년 동안은 베니스가 영화제의 규모를 넓혀가며 자리를 잡는 시기였다면 명실상부 국제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건 1950년대부터다. 이는 미국과 서유럽 쪽에 집중됐던 프로그램에서 탈피해 동유럽과 아시아와 같은 미지의 영화를 발굴하는데 힘쓴 결과였다. 특히 <라쇼몽>(1950)의 구로자와 아키라와 ‘아푸 시리즈’ 2부에 해당하는 <정복되지 않은 사람들 Aparajito>(1956)의 샤티야지트 레이에 황금사자상을, <우게츠 이야기>(1953)의 미조구치 겐지에 은사자상을 수여하면서 위상이 더욱 높아졌다. 이후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안제이 바이다 등 동유럽 시네아스트들에게 지지를 선언하는 등 베니스는 외적인 화려함보다 정치적으로 의미 있는 영화를 옹호하며 정체성을 확립해 갔다. 1969년에는 시상제도를 폐지했지만 영화제의 활기가 떨어지면서 1974년에 이를 다시 부활시켜 떨어진 위상을 다시금 찾아갔다.

 

시상

베니스 영화제의 경쟁부문은 중견과 신인, 장편과 단편으로 이원화되어 진행된다. 그래서 시상은 중견감독을 대상으로 하는 ‘베네치아69’(뒤의 숫자는 영화제 횟수를 따른다. 2012년은 69번째 영화제였다)와 젊은 감독들을 위주로 새로운 영화의 경향을 보여주는 ‘오리종티’, 그리고 ‘단편경쟁’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또한 새로운 테크놀로지로 만든 작품을 포함해 스타일과 실험성이 돋보이는 영화들을 모은 ‘새로운 영토’, ‘국제 비평가 주간’ 등으로 꾸며진다. 공식 경쟁부문인 베네치아69의 최우수작품상은 황금사자상, 심사위원 대상은 은사자상으로 불리며 그밖에 심사위원특별대상, 남녀주연상인 볼피상, 최고의 신인남녀배우에게 주어지는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상 등을 시상한다. 영화제가 끝난 후 1주일간 뛰어난 단편영화들을 위한 행사가 별도로 열린다.

 

한국영화

한국영화로는 신상옥 감독의 <성춘향>(1961)이 처음으로 베니스 영화제에 초청됐고 20년이 지난 1981년에 이두용 감독의 <피막>(1980)이 최초로 경쟁 부문에 진출했다. 첫 번째 수상은 1987년 경쟁 부문에 올라간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1986)에서 열연을 펼친 강수연의 최우수여우주연상으로 이뤄졌다. 이후 한국영화는 장선우 감독의 <거짓말>(1999), 김기덕 감독의 <섬>(2000)과 <수취인불명>(2001), 송일곤 감독의 <꽃섬>(2001)이 잇따라 베니스 영화제의 경쟁 부문에 올랐다. 2002년에는 <오아시스>로 이창동 감독과 배우 문소리가 각각 감독상과 신인여배우상을, 2004년에는 <빈집>으로 김기덕 감독이 감독상을 수상했다. 그 후로도 <짝패>(2006), <천년학>(2007), <검은 땅의 소녀와>(2007) 등이 소개됐고 2012년에는 김기덕 감독이 <피에타>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글/ 허남웅(영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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