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킹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샤이닝>은 아버지의 폭력으로 인한 가족 집단의 붕괴를 다룬 영화다. 콜로라도 주 오버룩 호텔의 겨울 관리인으로 일하게 된 소설가 지망생 잭 토런스(잭 니콜슨)가 서서히 미쳐가면서 아내와 아들을 살해하려 한다는 단순한 이야기다. 이 작품은 큐브릭의 필모그래피 중에서도 가장 대중 관객들의 호흡에 밀착해 있다. 또한 공포영화로서 충격 효과와 서스펜스를 유발하는 데 있어서 단연 압도적인 기량을 보여준다. 영화의 리듬은 관객이 이야기에 완전히 몰입할 만큼 탄력적인 속도감을 드러낸다. 비주얼과 사운드의 조응은 거의 교과서적으로 보일 정도다.

영화는 원작 기본 플롯을 그대로 가져오되, 주인공 잭 토런스의 캐릭터를 좀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잭은 직업 윤리에 집착하지만 아내 웬디(셸리 듀발)에 대해 경멸감을 가진 가부장적인 사내이다. 잠재적 폭력성을 가진 잭은 과거 아들 대니(대니 로이드)의 팔을 잡아 끌어 어깨를 다치게 한 적이 있다. 이후 대니는 과거와 미래의 일을 내다볼 수 있는, ‘샤이닝’이라 불리는 특별한 정신적인 능력을 갖게 된다. 잭은 오버룩 호텔에 머물렀던 과거의 유령들과 조우하게 되며, 특히 두 딸을 도끼로 살해한 전임 관리자인 ‘그래디’의 충고를 듣고 가족을 파괴하려는 임무에 착수한다.

무엇보다 <샤이닝>은 스테디캠의 미학적 효과를 성공적으로 입증한 최초의 영화로 정평이 나 있다. 오버룩 호텔의 기나긴 복도와 울타리 미로의 끝없이 이어지는 갈래길은 스테디캠의 유동성을 실험하는 데 최적의 무대였다. 또한 <샤이닝>의 단순하면서 정교한 음향 효과는 텅 빈 공간의 정적과 극적인 대조를 이루며 관객의 심리적 쾌감을 증폭시킨다. 큐브릭은 이번 영화에도 꽤 많은 클래식 음악을 사용했다. 리게티, 바르톡, 펜데레츠키 등 20세기 동유럽 작곡가들의 음산한 음악은 신디사이저로 편곡되어 공포영화로서 비장한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샤이닝>은 문명화된 세계의 이면에 자리한 폭력 충동과 살인적이고 악한 인간 본성을 드러낸 작품으로 평가되어 왔다. 영화를 지배하는 푸른색과 붉은 색의 대조는 규칙과 책임감과 의무감이 강조된 문명 세계와 환상과 오컬트와 욕망과 본능이 교차하는 원시 세계를 드러낸다. 오버룩 호텔은 프로이드가 ‘두려운 낯설음(the uncanny)'이라 불렀던 감정을 자아내며 ’귀신 들린 집‘이라는 전통적인 하우스 호러물을 새로운 차원으로 이끌어낸다. 여기서 아버지-가부장의 폭력에 대항해 소수자인 여성과 아이와 흑인이 연대한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그러나 <샤이닝>은 단순한 ‘가족 시네마’가 아니라, 넓은 의미에서 미국 사회와 역사에 가해진 폭력의 알레고리이기도 하다. 오버룩 호텔이 세워진 지역이 원래 인디언들이 묻힌 곳이었다는 전제가 이를 대변한다. 미국은 인디언이 대변하는 약자에 대한 억압을 딛고 세워진 국가이며, 그 피의 역사는 폭력의 수행자이자 억압의 주체를 통해 긴 궤적을 그리며 자꾸만 되돌아오는 것이다. <샤이닝>은 공포영화 장르의 컨벤션을 재해석하고 있으며, 동시에 미국의 문명과 역사에 대한 비판적 드라마다.

by 한선희(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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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세 감독이 선택한 영화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샤이닝>이었다. 영화를 감상한 소감에서 이명세 감독은 <샤이닝>을 처음 미국에서 보았던 때를 회상하며 깨끗한 화질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겨울에 <샤이닝>이라는 공포장르를 선택해서 관객들에 송구함을 드러냈던 이명세 감독. 그러나 그의 우려와는 달리 146분이라는 러닝타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추운 날씨에도 극장을 가득 메우고 영화를 감상한 시네마테크의 친구들은 함께 웃고 놀라며 마치 새롭게 개봉한 스탠리 큐브릭의 최신작을 감상하듯 하나가 되어 영화의 배경인 오버룩 호텔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이명세(영화감독) : 십년 전 쯤 뉴욕 필름 포럼에서 <샤이닝>을 볼 기회를 수차례나 놓쳤다. 1년 뒤에 힘겹게 감상할 수 있었는데 그 때 내가 느꼈던 기쁨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었다. 시네마테크 친구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허남웅(영화칼럼니스트) :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이명세 감독님께 어떤 의미의 연출자인가?

이명세 : 완벽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본인의 영화를 상영할 때 극장의 영사 상태가 완벽하지 않으면 프린트를 보내지도 않고, 정말 철저한 느낌과 자세가 큐브릭 감독에게서 느껴진다. 일시적인 상업적 엔터테인먼트가 아닌 개인적인 예술을 보여주는 행위자로서 존경심을 가지고 있는 감독이다.

허남웅 : 영화 속에서 여러 인상적인 장면이 나오는데 감독님 개인적으로 꼽을 수 있는 장면은 어떤 것이 있나?

이명세 : 영화를 만들 때 70퍼센트의 분위기를 만들어갈 수 있다면 성공한다고 한다. 항공 촬영된 시작부의 웅장한 장면과 음악, 스테디 캠의 유려한 이동, 카펫이나 마루를 밟을 때의 세밀한 사운드의 반복 등이 하나하나 벽돌을 쌓아가듯 분위기를 구성하고 있다. 우리식으로 하면 귀신 씌인 사람의 이야기인데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방법이 너무 좋아서 큐브릭의 다른 영화들 보다 유독 상업적이며 동시에 예술적 성취를 얻었다고 본다.



허남웅 :
영화 속 타자기 소리를 이용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이명세 : <남자는 괴로워>에서 잠깐, 그리고 <M>에서 타자기는 아니었지만 키보드 소리를 좀 강한 소리로 얹었던 기억이 난다.

허남웅 : 이 영화에서의 많은 해석, 즉 작가로서의 압박,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그리고 미국 백인들의 폭력의 알레고리 등에 대해 감독님의 해석은 어떠한지?

이명세 : 여러 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고 영화는 볼 때마다 틀려질 수도 있다. 마지막 장면의 사진 속 7월 4일이 미국인에게는 독립기념일이지만 인디언들에게는 무덤과도 같은 날일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압권은 밖에서 아내와 어린 아들을 바라보는 잭 니콜슨의 표정이라고 할 수 있다. 미쳐가고 있다는 것을 연기자의 표정만으로도 가능하다는 것이 큰 화면으로 더욱 선명하게 다가왔다.

허남웅 : 이렇게 인상적인 연기가 가능한 잭 니콜슨은 감독님에게 어떤 연기자인가?

이명세 : 너무 좋아하는 배우이고 특히 눈매는 알랭 들롱과 흡사하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두 배우의 사진을 대조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허남웅 :
아내 역의 셜리 듀발이 배트를 휘두르는 장면이 127번의 촬영으로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완벽주의는 악명이 높았다. 감독님 역시 70번 이상의 촬영이 있었던 걸로 알고 있는데?

이명세 : 그렇게 많지는 않고, 한 두 장면 때문에 그렇게 알려진 것이다. 사실 약간의 빈 곳을 더 채우기 위해 여러 번의 테이크를 가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결국 두세 번째 테이크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게 되는데, 이런 접점 찾기는 배우나 스태프를 괴롭히려는 의도가 아니라 느낌의 접점을 찾는 시도로 이해해주면 좋을 것 같다.




관객1 :
결말이 잭 니콜슨이 가족을 다 죽이는 데 성공하고, 휴가가 끝난 이후에 사람들에 의해 발견하는 것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 결말을 피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명세 : 우리는 흔히 우리의 시각으로만 영화의 결말을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가령 <졸업>이란 영화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해피엔딩일까? 백수건달과 떠나는 마지막 장면에서의 덜컹거리는 자동차는 원래 감독이 암담한 미국의 미래를 그리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허남웅 : 스티븐 킹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중 좋아하는 작품은 어떤 것들이 있나?

이명세 : 다 좋아한다.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캐리>도 좋았고, <미져리>도 좋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샤이닝>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관객2 :
영화의 몇몇 장면들은 별다른 해명 없이 지나가서 영화를 분석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이렇게 영화를 분석적으로 접근하는 것 자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명세 : 개인적으로 주제나 메시지가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본다. 영화를 너무 분석적으로 보면 영화자체의 즐거움을 놓칠 수 있다. 분석적 감상은 한 번으로 제한될 수 있지만 즐기며 감상하면 볼 때마다 영화 곳곳에서 보물들을 찾을 수 있다. 가령, 냉동 창고에 갇힌 잭의 모습은 로 앵글로 표현되는 것이 최선이었는가? 잭 니콜슨의 분위기를 다른 한국 배우에게 적용시킬 수 있을까? 조명과 스모그의 효과나 음악의 베리에이션 등의 요소들을 마치 바둑 두듯 구상해 볼 수 있다. 나처럼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오늘도 영화 감상하는 재미가 이렇게 쏠쏠했다(웃음).

관객3 : <샤이닝>이라는 제목의 의도와 영화 속에서 237호의 의미, 그리고 여자 귀신의 의미가 궁금하다.

이명세 : 시네토크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내가 스탠리 큐브릭에 빙의되었으면 한다(웃음). 일단 <샤이닝>이란 제목은 중의적으로 가장 빛나는 순간이자 피의 순간, 즉 피의 희생을 전제로 한 독립 기념일의 순간이 아닐까 생각한다. 여자의 정체는 논리적으로 규명 짓기 보다는 느낌으로 형상화 된 것으로 보면 될 것 같다.




관객4 :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이 1921년 사진에서 보이는데 원래 유령인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문에서 핏물이 나오는 장면이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명세 : 논리적으로 본다면 죽었던 유령의 이야기이거나 환생일수도 있겠다. 영화에서의 이미지는 드라마와는 다르게 비약될 수 있다. <샤이닝>은 이미지를 통해서 논리적이 아닌 방식으로 호텔 전체를 뒤집어 버린다. 나 또한 색을 강조하고 익숙한 음악을 쓰는 경우가 있는데, 강렬한 이미지를 통해 주의를 강조하고 환기시키기 위한 이유라고 볼 수 있다.

관객5 : 영화에서 중요하게 표현되는 미로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리고 스테디 캠으로 표현된 미로의 경우 스테디 캠을 활용하기 위해 미로가 선택 된 건지 미로를 표현하기 위해 스테디 캠을 활용한 건지 궁금하다.

이명세 : 미로는 오버 룩 호텔 전체에서 내려다보듯 누구의 관점일수도 있고 작가적 벽에 갇힌 잭 니콜슨의 심경을 표현한 것일 수도 있고, 역사적 트라우마일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미로 같은 느낌과 이미지가 먼저 있었기 때문에 이를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스테디 캠을 선택한 것 같다.

관객6 : 영화가 예술성을 갖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큐브릭 감독의 작품은 어떤 면에서 예술적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이명세 : 개인적으로 예술영화와 상업영화를 나누지는 않는다. 다만 장인의 손에 의해 최선을 다해 꼼꼼하게 빚어진 작품과 기획에 의해 공산품처럼 공장에서 찍혀 나오는 작품과는 구분이 된다고 본다. 영화의 요소들이 얼마나 적절하게 녹아들어가 조화를 이루는 지가 중요한데 그런 면에서 큐브릭의 영화는 성공적이며 예술적이라고 본다.

관객7 : 감독님은 워쇼스키 형제의 <매트릭스>에서도 오마주될 정도로 비주얼리스트로 알려져 있다. 좋은 이미지나 장면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명세 : 1895년 파리 만국 박람회에 일본 유명 조각가가 로댕박물관에서 본 발자크 상의 산 더미 같은 스케치들을 보고 절망 끝에 조각을 그만 둔 일화가 있다. 하나의 조각을 위해 수많은 스케치가 필요하듯 하나의 장면이나 이미지를 위해서는 수많은 시나리오의 수정작업이 필요하다. 비주얼이란 그림이나 풍경이 좋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고민과 생각 끝에 영상화 된 것이 이미지이다. 고민과 절망을 이겨낸 몇 장면만이 이미지이며 이런 이미지는 찾기가 쉽지 않다. 한 두 장면만 발견해도 커다란 성과다.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이러한 많은 보물들을 찾아서 갖고 돌아가시길 바란다.

정리: 김준완 | 에디터
사진: 최용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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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은 스티븐 킹이 1977년에 발표한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공포영화의 고전이다. 146분이라는 긴 상영시간을 인지하기 힘들 정도로 흡입력 있는 화면과 스토리가 맞물려 있다. 인간의 이성을 넘어선 초월적 존재에 대한 불안이 가져오는 원초적 공포가 인물들을 마치 꼭두각시 인형처럼 조작하면서 극을 마지막까지 빈틈없이 몰아세우기 때문이다. 인물의 불안 심리를 세세하게 극대화시켜주는 미장센은 초자연적인 현상이란 불안감을 시각적으로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콜로라도 주 오버룩 호텔의 관리인 직을 얻게 된 잭 토랜스(잭 니콜슨)는 겨울 내내 텅 빈 호텔을 자신의 가족들과 함께 지켜야한다. 그에게는 호텔 관리 외에 가족들을 부양해야 하는 가장으로서의 의무가 있다. 영화 내내 관철되는 헤드 룸과 부감쇼트는 머리숱도 얼마 없는 잭을 더욱 짓누르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결국 멀쩡하던 그는 점점 환각을 보게 되고, 정체불명의 그래디라는 인물에게 자신의 진짜 사명에 대해 듣게 된다. 그의 사명이란 자신의 가족을 죽이는 것이다. 광기에 사로잡힌 잭은 결국 가족을 죽이려고 고군분투한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잘 짜여진 공포물에 머무는 것은 아니다. 큐브릭은 도리어 공포물의 옷을 입은 사회극을 보여주려 한다. 역설적으로 사회극이 더 공포적일 수 있음을 능글맞게 펼쳐 보이는 것이다. 가령, 잭 토랜스와 그래디라는 인물과의 관계, 가족과 오버룩 호텔의 관계를 생각해보자. 잭은 평범한 중년 백인 가장으로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지만, 그의 광기는 단지 이러한 의무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호텔은 인디언의 무덤 위에 세워졌고, 흑인 요리사는 잭의 도끼에 희생된다. 큐브릭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결국 자신마저 죽음에 이르게 하는 광기의 역사의 반복이 자아내는 공포인 것이다. 그래디는 잭에게 ‘당신은 늘 이곳에 있었다’고 말한다. 이는 곧 언제든지 액자에서 빠져나와 다시 가족을 그리고 자기 자신마저 죽일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큐브릭의 섬뜩한 경고는 이 영화가 왜 진정한 공포영화의 고전임을 강변하고 있다. (김준완: 에디터)

1.15(일) 14:00 상영 후 이명세 감독 시네토크
2.2 (목) 17:00
2.14(화)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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