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토크

“당대의 공기를 올곧게 증명하는 것”

변영주 감독이 말하는 장 피에르 멜빌의 ‘그림자 군단’

 

지난 1월 27일 오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영화감독 변영주가 추천한 장 피에르 멜빌의 <그림자 군단> 상영 후 시네토크가 열렸다. 어린 시절, 멜빌의 영화에 매혹되었던 기억을 비롯하여 <그림자 군단>에 대한 감흥, 멜빌 영화의 현대적 특징 등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이 날의 대화를 일부 옮긴다.

 

 

변영주(영화감독):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어떤 영화를 추천할까를 고민하면서 영화적 매혹을 강렬하게 느꼈던 어떤 순간들을 떠올려봤다. 어렸을 적, 부모님께서 보시던 비디오를 통해 <암흑가의 세 사람>(1970)을 처음 접했었다. NHK에서 방영되었던 일본어 더빙판을 녹화한 비디오였기 때문에,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영화에 대한 느낌은 굉장히 강렬했다. 나중에서야 당시 보았던 영화가 장 피에르 멜빌의 영화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멜빌의 영화 중 <암흑가의 세 사람>이나 <사무라이>(1967) 같은 영화들을 정말 좋아한다. 하지만 요즘 같은 시기에 훨씬 더 어울릴 영화가 <그림자 군단>(1969) 같다는 생각을 해서 추천하게 되었다. 대학을 다니던 때 읽었던, 『꽃도 십자가도 없는 무덤』이라는 프랑스 레지스탕스 소설에서 도스토예프스키를 인용하는 구절이 있다. “왜 나는 인류를 사랑하면 할수록, 특정한 어떤 사람을 혐오하고 증오하게 되는가. 반면 특정한 인물을 증오하고 혐오할수록 왜 인류 전체에 대한 사랑은 깊어져 가는가.” 오늘 보신 <그림자 군단>과도 잘 맞는 구절이라고 생각된다. 폭압이나 독재와 싸우는 일은 멋진 일이 아니다. 영화를 보셔서 아시겠지만, 영화 속 레지스탕스들이 실제로 하는 일은 계속해서 잡히거나 도망가거나, 누군가를 의심하거나 죽일 수밖에 없거나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딱히 독일군에게 위협적인 일을 한 것도 아니다. 이처럼 불의에 항거한다는 것이 낭만적인 것이 아니라 자기 이상과 싸울 수밖에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자 군단>은 실제 레지스탕스인물을 모티브로 한 소설이 원작이고, 멜빌 감독 자신도 레지스탕스 활동을 했었다. 마틸드 역을 연기한 시몬느 시뇨레은 부모가 유태인으로 독일에서 탈출해 레지스탕스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처럼 감독과 배우들이 그 때의 기억을 명백하게 갖고 있었고, 그것이 어떤 일이었는지 알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영화였다. 멜빌 감독의 영화는 다이렉트하면서도 굉장히 힘이 있다. 멜빌의 영화를 흔히 장르 영화라고 하지만, 단지 스타일로서의 장르가 아니라, 당대의 공기를 올곧게 증명하는 것으로서의 힘을 발휘하고 있다. 악의가 아니었건, 누군가가 겁에 질렸건 간에 ‘잘못된 일에 대해 용서하지 않는다’라는 굉장히 명백한 역사를 증명하고 있다.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많이 떠올렸던 건 내 아버지와 어머니의 세대이다. 마흔 살이 될 때까지 나의 아버지 세대를 이해해 본적이 없었다. 왜 아버지에게는 내 가족과 삶의 안정 이외에 보다 더 높은 가치, 이를테면 대의, 올바름, 보다 더 나은 세상에 대한 열망 같은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생각했었다. 그래서 철이 든 이후에는 아버지와 거의 대화를 하지 않았었고, 언제나 서로 굉장히 방어적이었다. 하지만 마흔 살이 되던 해에 우연히 박완서 작가의 『그 남자네 집』을 읽다가, 청춘이라는 것이 살아야한다는 강박과 공포로 대치된 인생을 산 사람에게 있어서, 자신의 가정과 삶 외에 보다 더 높은 가치를 추구한다는 것이 얼마나 허황된 일이었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이 영화를 보면서 훨씬 역사의 과오에 대해 훨씬 더 냉정해지는 것, 그 앞에서 정말 명징해지는 것들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그 세대가 그 세대의 나라에서 어떤 역할을 하며 사는가가 연결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객1: <그림자 군단>이 주제적인 측면 외에, 스타일이나 형식, 연출에 있어서 현재에도 호소력을 갖고 있다면 어떤 점에서 그런지 궁금하다.

변영주: 멜빌의 영화가 놀랍도록 현대적이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장르라는 것은 이미 관객에게 익숙한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 다음의 이야기를 하기가 쉬워진다. 장르로서의 완벽한 자기 구조를 갖게 되면 관객에게는 구조 자체가 낯설지 않기 때문에 내용을 받아들이는 것에서 더 나아갈 수가 있다. 그런 면에서 보다 어려운 이야기, 어떤 심층의 이야기를 숨겨서라도 표현하고 싶을 때 장르라는 것이 용이하다고 생각한다. 멜빌은 <암흑가의 세 사람>이나 <사무라이>와 같이 범죄자를 주인공으로 해서,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느와르 장르의 이야기 구조를 가져오는데, 그러한 방식이 흥미로울 뿐 아니라, 고조된 감정과 상황에서 더욱더 당대의 향기를 맡기가 쉬워진다. 당대의 질서, 그 세대의 감정에 대해 알기 쉬워지는 부분이 있다. 멜빌의 영화는 미학적으로 현대적이라기보다는 영화에 담겨있는 시대적 공기라든가 하는 것들이 훨씬 현대적이라고 느껴진다.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가 무엇보다 탁월하다. <그림자 군단>의 경우 실제 인물들을 참조해 캐릭터가 만들어짐으로써 영화가 표현하고 있는 최대치를 담을 수 있었고, 그래서 러닝타임이 긴 편임에도 매 순간 긴장감이 있다. 일본어 더빙판으로 멜빌의 영화를 보았던 어린 시절, 내용을 알 수는 없어도 영화에 매혹되었던 건, 쇼트와 쇼트를 연결하는 방식과 카메라의 움직임들에서의 김장감을 때문이었던 것 같다.

 

관객2: 멜빌의 영화 중 <그림자 군단>이 요즘 시대에 더 잘 어울릴 것 같다고 하셨는데 그 이유가 궁금하다.

변영주: 물론 지금의 우리가 레지스탕스를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웃음) 우리가 어떤 것들을 바라고 꿈꿀 때 그것이 어느 한 순간에 이뤄지는 경우는 없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아하는 필리핀 감독 닉 데오캄포의 <혁명은 유행가 가사의 마지막 후렴구처럼 다가온다>는 영화가 있다. 혁명이든 변화든 우리가 바라는 어떤 세상은 어느 한 순간에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과정은 굉장히 지지부진할 수 있고, 누군가를 의심하게 되거나 필요 이상으로 좋아하게 되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길을 걷다 유행가의 후렴구를 떠올리듯이 그렇게 혁명은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보자면, 올바르다는 것, 정의롭다는 것은 끊임없이 검증되어져야하고, 위험에 노출되게 된다. 주인공이 내레이션을 통해 갈등하듯이 끊임없이 고민하지 않으면 그 다음 걸음을 가기가 힘들다. 그런 면을 이 영화를 통해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

 

정리: 장지혜(시네마테크 관객에디터) | 사진: 문지현(시네마테크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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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한없이 건조한 레지스탕스 필름누아르

-장 피에르 멜빌의 <그림자 군단>

 

 

장 피에르 멜빌은 프랑스 영화의 역사라는 맥락에서 볼 때 비평가들이 정의하기 어려운 감독 중 하나이다. 그럴만한 사정은 있다. 미국영화를 추앙했던 누벨바그리언들이 직접적으로 자신의 영화들에 미국의 양식을 이식하는 것을 회피했던 것에 비해 멜빌은 미국식 장르를 프랑스 영화계에 전용한 ‘파리의 아메리카인’이었다. 멜빌의 노작들은 장르(필름 누아르나 하드보일드 범죄영화)에 대한 페티시즘이 미학의 경지로 승화된 사례를 제공한다. 차갑고 건조한 그의 범죄영화는 냉소주의와 비관주의, 어둠과 연결되는 장르의 특성을 양식화된 표현을 통해 제공(<바다의 침묵> <도박꾼 밥> <사무라이>)했다. 

 

<그림자 군단> 역시 이러한 배경 속에서 탄생한 작품이다. 조셉 케셀의 1943년 소설을 각색한 이 영화는 2차 대전 말기 프랑스 레지스탕스 조직 활동을 묘사하고 있다. 필립 제르비에(리노 벤츄라)가 이끄는 조직의 요원들이 체포와 구금, 고문, 탈출을 반복하는 과정이 별 다른 사건없이 건조하게 묘사된다. 케셀의 소설이 레지스탕스에 대한 것이었다면 멜빌의 영화는 저항 행위 자체에 대한 것이다. 정치적 행위로서의 저항이 아니라 실존적 양식으로서 저항 행위를 다룸으로써 그는 텍스트의 역사적, 정치적 맥락을 삭제한다. 프랑스의 역사적 상황을 배경으로 깔았지만 영화는 범죄 누아르와 스파이 영화를 교배한 형태를 띠고 있다. 게슈타포를 경찰, 레지스탕스들을 범죄조직이나 첩보원으로 바꾼다 해도 하등 이상할 게 없을 정도로 멜빌은 레지스탕스 스토리(멜빌 자신이 점령기 레지스탕스로 활동했다)를 범죄 누아르의 자장 안으로 밀어 넣는다.
 

어떤 장면들은 흡사 로베르 브레송의 영화를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스타일에 대한 접근방식, 사운드, 특히 과묵한 인물들의 내면을 진술하는 나레이션은 노골적으로 브레송 풍이다. 극적이나 심리적이기를 거절하고 철저하게 현상적인 기술에 그치는 나레이션을 암송하는 인물들은 그들을 위해 만들어진 삶을 견디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림자 군단>에 만연한 것은 심리적 동기화나 감정을 배제한 냉혹한 묘사, 침묵, 생략이다. 이를테면 펠렉스나 장 프랑소와에게 행해지는 고문의 과정은 생략된다. 필립의 조직원들은 미래가 없을뿐더러 과거도 없다. 필립은 자신이 엔지니어라고 말하지만 직업은 그의 임무와 어떤 연관성도 맺지 않는다. 장르의 존재론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따라 멜빌은 특정한 방식으로 입고, 말하고, 행동하고, 죽음을 맞는 인간을 묘사하는 것에 치중한다. 따라서 그들이 입는 옷과 중절모, 자동차, 총, 시가, 어둡고 한적한 거리에서의 달리기 따위가 더 중요하다. 

‘저항’이라는 세상의 요구를 묵묵히 받아들이면서 살아가는 인간들을 묘사하는 이 영화가 유일하게 다루고자 하는 테마가 있다는 그것은 ‘죽음’이다. 카리스마 넘치는 여성 조직원 마틸드(시몬느 시뇨레)의 처형 장면에서 이런 사정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대장은 타살도 자살도 할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진 것으로 마틸드의 운명을 단정하고 그를 암살하지만 죽음의 순간 마틸드의 눈빛은 이와 같은 판단을 유보하게 만든다. 그녀는 정말 조직이 자신의 명줄을 끊어주기를 바랐던 것일까? 이 순간 <그림자 군단>은 언제나 죽을 수 있는 일에 종사하는 이들이 짊어진 실존의 부조리함을 다룬 영화가 된다.

장병원 /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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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문화학교 서울’의 주최로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대규모의 ‘스즈키 세이준 회고전’이 열렸다. 기획자로서 나는 이미 팔순에 접어들고 있던 세이준 감독을 만나고 싶었다. 무엇보다 그의 창조력의 원천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모두들 무모한 시도라고 여겼지만 결국 세이준 감독이 서울을 찾았다. 3박 4일 동안 그는 ‘삶의 원칙을 위반하는 예외적인 사건’이라면서도 기자회견과 강연, 그리고 그의 절대적인 지지자였던 박찬욱, 김지운, 류승완 감독들과 대담을 했다. 회고전은 성공적이었다. 2월18일부터 25일까지 8일간 아트선재센터(아직 정식으로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가 개관하기 전이었다)를 대관해 개최한 회고전은 평균 객석점유율이 80%였고 6천명이 넘는 관객들이 몰렸다. 단순한 흥행 성적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한 명의 저주받은 작가가 새롭게 관객들과 만나는 자리였다. 그 며칠간의 동행에서 내가 깨달은 것은 아주 단순한 사실이었다. 가혹한 조건을 딛고 태어난 새로운 영화미학은 어떤 기술이나 색다른 아이디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세계관에 기초해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조금은 운명론 같은 아주 견고한 세계관과 태도 말이다.

 

창조의 원천, 그건 DNA와 선천적인 것이다

‘스즈키 세이준 회고전’이 열린 첫 날의 마지막 회. <문신일대>가 상영된 후 관객들은 열광했다. 관객중의 몇 명은 영화를 보다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다면서 ‘이상하게 웃긴다’고 말했다. 원래 세이준 감독이 유머가 있는 분이라고 말했지만 ‘그래도 영화의 내용은 잘 이해가 안되더군요’라며 반문했다. 빨간 구두는 도대체 무엇인지, 왜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 남자가 모래밭에 화투장을 뿌리며 경찰에게 끌려가는지 이해할 수 없는 장면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가령 주인공 남자가 살인에 연루되어 도피를 하는 장면에서 그를 뒤쫓는 빨간 구두의 인물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그는 빨간 구두의 클로즈업으로 표현될 뿐 얼굴은 드러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일종의 서스펜스가 발생한다. 우리의 시선은 매 순간 빨간 구두를 쫓아다닌다. 영화의 후반부, 정체를 드러내지 않았던 빨간 구두는 또 다른 빨간 구두의 인물과 만나 멈칫 놀라고, 이내 관객들은 뒤집어진다. 도대체 빨간 구두의 주인공은 누구인지, 왜 빨간 구두여야 하는지는 대관절 알 길이 없다(물론 이 영화를 예민하게 본 사람들이라면 그가 누구인지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 허나 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눈이 무언가에 홀린 듯 빨간 구두를 따라다녔다는 사실이다. 세이준의 영화는 그런 식으로 우리의 눈을 끌어당기고 당혹케 한다. 도대체 이 사람은 어떤 창조의 비밀을 숨기고 있는 것일까? 모두들 그의 창조력의 원천이 무엇일지 궁금해 했다. 세이준을 만나는 것은 그런 비밀에 조금 다가설 수 있는 기회처럼 보였다. 하지만 되돌아오는 그의 답변은 지극히 단순하고 솔직했다. ‘내 창조의 원천이 뭐냐고? 그건 DNA와 선천적인 것이다’.

 

생활인으로 영화를 만들던 시절에 대한 회상

스즈키 세이준 감독이 ‘문화학교 서울’의 초대에 응해 서울에 오기로 결정했을 때 우리는 잠깐 주저했다. 서울에 올 때는 수행원과 함께 오겠지만 갈 때는 기차를 타고 부산에 내려가, 거기서 혼자 배를 타고 일본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이미 팔순에 접어든 그의 결정이 우리를 불안케 했다.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기진 않을까? 하지만 어쩌랴. 세이준은 반복을 싫어하는 감독이 아니던가. 갑자기 <동경방랑자>의 주인공처럼 기차에 몸을 싣고 유랑하는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회고전이 열린 이튿날, 세이준 감독이 서울에 도착했다. 인천공항에서 공항리무진을 타고 호텔에 도착한 그를 알아채기란 쉬운 일이었다. 어디서 보더라도 눈에 확 들어오는 할아버지였다. 털모자에 양복을 입고 운동화를 신고는 코닥 필름의 로고가 찍힌 긴 파카를 입은 그는 마치 이제 막 경기를 마치고 돌아오는 운동선수처럼 보였다. 체류일정을 잠깐 확인한 후 함께 명동 근처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매운 음식을 꺼려했지만 술과 담배를 즐겼고 백세주를 한 병 마신 후에는 한국 소주를 마시고 싶어 했다. 궁금했던 질문부터 던졌다. “왜 <피스톨 오페라>에 <살인의 낙인>의 킬러 시시도 조를 기용하지 않았나요?” 예상대로 그건 비밀이란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도대체 그에게 어떤 비밀스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그는 마치 ‘내 영화엔 비밀이란 없소. 네 멋대로 이해하시오’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영화를 자주 보지 않는 편이라고 한다. 그는 인간이 다 닮았기에 대부분의 영화가 비슷할 것이라고도 말했다. 심지어 인간의 노력이 다 부질없는 것이라고도 했다. 그는 운명론자인가? 이름에 얽힌 비화를 들어보면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즈키 세이준의 본명은 스즈키 세이타로다. 그는 1950년대에 본명으로 영화를 시작했지만 별 성과가 없었고, 이름을 바꾸면 운명이 바뀌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친구들과 작명소를 찾아가 세이준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1958년, 그는 세이준이라는 이름으로 <암흑가의 미녀>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의 운명은 그다지 바뀌지 않았다. 작명소에 따지러 갔더니 새로운 이름은 10년 후에나 효력을 발휘할 것이라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로부터 정확하게 10년 후인 1968년, 세이준은 닛카츠에서 정리해고를 당했다. 인간의 운명이란 그렇게 씁쓸한 것일까.

<살인의 낙인>이 장 피에르 멜빌의 <사무라이>와 같은 해 개봉했고 짐 자무시가 나중에 <고스트 독>(1999)에서 이 두 편의 영화에 오마주를 바친 것에 대해 물었더니 “어떻게 그런 이야기를 알고 있냐”고 되물었다. 조금 지나서야 그는 ‘슬로우 모션으로 진행되는 미국의 액션 영화를 재미있게 보았다’고 말했다. 샘 페킨파 감독을 말하는 것이냐 묻자, ‘그렇다’고 말했다. 한국 영화를 많이 보지 못해 미안하다며 좋은 감독 한 명을 추천해달라고 했다. 문득 임권택 감독이 떠올랐다. <장군의 아들>에 관해 말했고 임권택 감독이 <유메지>처럼 화가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있다고 말하자 그의 영화에 흥미를 보이기도 했다.

그는 한국에서 감독들이 촬영소를 많이 활용하냐고 물었다. 세이준 감독에게 60년대 닛카츠의 촬영소 시스템은 결과적으로 불행한 운명의 기억일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촬영소는 미국의 3-40년대 스튜디오 시스템처럼 ‘생활인’으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한다. 당시에는 월급을 받으며 매일 출근해서 영화를 만들 수 있었고, 아침에 출근해 필요한 장면을 요구하면 전문적인 스태프들이 다 알아서 세트를 만들었다고 한다. 비록 동시상영용 B급 영화를 만들었지만 그는 전문화된 분업 체계를 통해 창조의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닛카츠에서 쫓겨난 후 독립 프로덕션에서 영화를 만들던 시절, 그에게 영화 만들기는 오히려 평범한 삶을 위배하는 지극히 예외적인 사건이 되었다. 집에서 혼자 천장을 보거나 떠다니는 구름을 쳐다보는 일이 많아졌고 그러다 보니 비현실적인 생각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의 후기작들이 몽상적인 작품이 되었던 것도 자연스러운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건 내 삶의 원칙과 위배되는 사건이다

그에게 예외적인 사건은 방한만이 아니었다. 다음날 아침 공동기자회견이 있었다. 공동기자회견은 단지 기자들의 편의를 위해 마련한 것이었다. 세이준 감독은 그런 자리를 원치 않았지만 자신을 초청해준 것에 감사해하며 적극적으로 인터뷰에 응해주었다. 지난해에 ‘오즈 야스지로 회고전’이 열렸고 올해는 ‘나루세 미키오’ 회고전이 개최될 예정이라고 말해주었더니 그는 자신이 ‘오즈나 나루세처럼 이미 죽어버린 감독도, 예술 영화를 만든 감독도 아닌 그저 영화적 재미를 추구한 오락 영화를 만든 감독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에서 회고전이 열린 것에 대해 ‘아직 살아 있는데 회고전을 하는 것이 살아 있는 상태에서 장례식을 하는 기분’이라는 소감을 밝혔다.

기자회견장에서 세이준은 60년대의 일본 영화가 사양길에 있었고, 무국적 야쿠자 영화들이 만들어질 시기에 일주일에 두 편씩 상영하는 영화를 위해 20일에서 25일 정도의 제작기간 동안 영화를 만들었고, 오락 영화의 요소에 춤과 액션, 그리고 관객을 놀라게 하는 서스펜스를 섞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한 기자가 ‘예술 영화를 좋아하냐’고 물었다. 그는 ‘예술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내 영화가 이렇다’라고 농담처럼 말했다. 세이준은 기자 회견을 마치면서 자신은 평범하게 살고 있으며 사건을 일으키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그래서 이런 식의 기자회견이 사실은 자신의 삶의 원칙을 위배하는 사건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의 영화를 본 관객들은 모두 그에게서 무언가를 듣고 싶어 했다. 그렇게 세이준은 서울에서 자신의 삶의 원칙에 위배되는 사건을 단지 관객들을 위해 두 번이나 가졌다. 그에게 미안했다.

 

그렇게 만들지 않으면 기분이 나빠진다

세이준은 영화보다는 한국의 전통문화와 예술에 관심을 보였다. 공연장을 백방으로 알아보았지만 적절한 곳을 찾을 수 없었다. 수요일 오후, <살인의 낙인>은 일치감치 매진이 되었고 관객들은 영화를 보며 즐거워했다. 갑자기 3년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시네마테크 서울이 개최한 ‘로베르 브레송 회고전’ 때 이마무라 쇼헤이의 <인류학 입문>, 오시마 나기사의 <청춘 잔혹 이야기>와 더불어 세이준의 <살인의 낙인>을 상영한 적이 있었다. 그 때 관객들은 사실 생뚱한 반응을 보였다. 이 예상치 않은 영화에 적지 않게 당황했던 것일까? 하지만 이번 회고전에서 관객들의 반응은 그때와 사뭇 달랐다. 주인공 시시도 조가 밥 냄새에 흠뻑 취할 때마다 관객들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세이준은 <살인의 낙인>이 매진되었다고 말하자 정말이냐며 기뻐하면서도 당황했다. 이어 벌어진 관객과의 대화에서 세이준은 내내 관객들을 즐겁게 했다. 한 관객이 ‘당신 영화의 독창적인 스타일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이냐’고 질문했고, 세이준은 ‘그건 버릇 같다. 그런 식으로 만들지 않으면 기분이 나빠진다’고 말해 관객들을 감격(?)시켰다. 이게 정답이 아닐까? 정말 그는 그렇게 안하면 기분이 나빠질 것 같은 사람처럼 보였다.

그날 저녁, 행사를 주관한 문화학교 서울의 스태프들과 술자리를 가졌다. 세이준은 젊은 사람들로 가득한 분위기에 흥겨워했고, 요새 한국의 젊은이들이 무슨 고민을 하며 살고 있는지를 궁금해 했다. 사무국장이 ‘우리들은 다른 사람들과 조금 다른 것 같다. 영화 이외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라고 말하자 ‘당신이야말로 진국’이라며 웃음을 보였다. 때마침 그가 배우로 출연했던 영화 이야기가 나왔고, 세이준은 몇 해 전에 금성무가 출연한 <불야성>이라는 영화에서 야쿠자의 보스로 출연했다고 자랑을 털어놓았다. 이마무라 쇼헤이가 당시 개봉 중이었던 <2009년 로스트 메모리스>에 잠깐 출연했다고 말하자 ‘대사를 잘 외우지 못하는 이마무라 쇼헤이가 어떻게 출연했을까’라며 농담을 했다. 짐 자무시의 <고스트 독>을 보았냐고 누군가 질문했고 그는 처음엔 짐 자무시도 <고스트 독>도 기억하지 못했지만 이내 ‘영화 마지막에 지저분한 곳에서 주인공이 비참하게 죽는 영화가 그거냐’고 말했다. 그렇다고 말하자 그 영화를 일본에서 개봉할 때 보았으며 짐 자무시와 술자리를 갖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자기라면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주인공을 더 깨끗하고 아름다운 장소에서 최후를 맞게 했을 거라고 말했다. 그는 그날도 소주를 주문했다.

 

삶은 꿈처럼 덧없는 것이기에 네 멋대로 해라

스즈키 세이준은 2001년 유럽에서 영화 제작 제의가 있었지만 제작비 조달 문제로 영화 제작이 중지되었기에 ‘당장 계획 중인 영화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미 시나리오가 준비된 영화가 무려 7편이나 있고, 그 중 한 편이라도 만들고 싶다는 바람을 보였다. 우리 모두는 그의 다음 영화와 즐겁게 만나고 싶었다. 한국의 노장 감독들 또한 이와 같지 않을까?

회고전에 참석한 스즈키 세이준을 옆에서 지켜보았지만 여전히 그의 창조력의 원천이 무엇인지, 50여 년 동안 옹골차게 영화를 만들어온 힘의 원천이 무엇인지 나는 알지 못했다. ‘이번 회고전을 통해 한국에 팬이 많이 생긴 것 같다’고 말하자 그는 ‘그런데 왜 팬레터 한 장 없냐’고 물었고, ‘아마 일본어를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요’라고 말하자 ‘그렇다면 와락 껴안는 등의 태도라도 있지 않냐’며 농담을 했다. 물론 그건 농담에 가깝다. 하지만 그가 오랜 기간 동안 끈질기게 영화를 만들어왔던 것은 어떤 표현을 위해서가 아니라(그의 말을 빌자면 ‘영화에 의미가 없는데, 왜 의미를 만들려고 하냐’는 말처럼) 농담처럼 말한 본인의 버릇과도 같은 태도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가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사실 말이 아니라 그런 태도들이었다.

3박 4일의 일정을 마치면서 스즈키 세이준은 조금 피곤한 기색을 보였지만 끝까지 웃음을 잃지 않았다. 금요일 12시. 세이준은 부산으로 향하는 기차에 올랐다. 떠나기 전 그는 우리들에게 점심을 사먹으라며 우리의 할머니들이 그러하듯 꼬깃꼬깃한 돈을 주머니에 찔러 주었다. 그는 부산으로 가서, 그리고는 배를 타고 일본으로 돌아가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세이준은 여전히 알 수 없는 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것을 즐기는 사람처럼 보였다. 떠나기 전 그는 나에게 다음과 같은 글귀를 남겨주었다. ‘삶은 꿈처럼 덧없는 것이기에 네 멋대로 해라’.

 

글/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영화평론가)

 

* 이 글은 2002년 ‘필름 2.0’에 실렸던 글을 저자의 동의를 얻어 시네마테크 2012년 9월 소식지에 일부 수정해 다시 게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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