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새로운 작가 전략' 기획전에 맞춰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는 이번에 상영하는 데뷔작들을 만든 감독들을 한 자리에 모아 이야기를 나눠보는 두 차례의 포럼을 마련했다. 그 첫 번째 자리가 지난 3월 26일 저녁 7시부터 2시간 여에 걸쳐 ‘한국영화, 새로운 작가 전략의 돌파구를 찾다’라는 주제로 열렸다. 다양한 개성을 지닌 김동주, 김종관, 민용근, 이응일, 정호현 감독이 패널로 참여하고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의 진행으로 펼쳐진 이색적이며 특별했던 포럼 현장의 일부를 담아본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최근 2009~2011년 사이에 새로운 영화들이 많이 나왔고, 이 다양한 영화를 만든 분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한 편의 영화가 시장 안에서 나오면서도, 자신의 예술적 표현들과 함께 영화를 만들어 나갈 때 하게 되는 고민들이 말하자면 하나의 작가 전략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런 고민들과 앞으로 어떤 영화들을 만들어나갈지에 대한 이야기들을 같이 나누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 우선 <빗자루, 금붕어 되다>의 경우 영화의 소재가 갖는 현실성과 영화를 만들 때의 스타일 적인 면이 굳건하게 공존한다.
김동주(영화감독): 기존의 일반적인 영화의 특징인 이야기, 즉 내러티브를 위주로 한 영화보다는 이미지 중심으로 영화적인 느낌을 살릴 수 있는 스타일 면을 더 고민하고 생각했다. 내가 이 영화를 만들기로 한 결정적인 것은 고시원이라는 공간을 보고 난 후였기 때문이다. 고시원에 대한 이미지를 한 번 만들어보자는 생각에서 떠오르는 영감을 담고 싶었다. 벌집 같이 정형화된 구조라든지 하는 것들. 한국 사회에 매우 많이 있는 고시원이라는 곳에서 너무나 많은 젊은이들과 소외받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오년이나 십년 후에 다시 봤을 때 내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타협하지 않고 내가 좋아하고 구사하고 싶은 스타일대로, 없는 제작비를 쪼개서라도 해보자는 생각으로 출발했다.

김성욱: 이 자리가 동시대성 안에서 같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기회인데, 이응일 감독의 경우, 비디오 세대의 역습이랄까, 비디오적인 소비나 디시갤러리에 대한 언급 등 세대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영화에 접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응일(영화감독): 개봉을 염두에 두거나 영화제에 내려고 한 것이 아니고, 입시용 포트폴리오로 단편을 만들려고 하다가 점점 불어나서 <불청객>이 되었다. 우린 비디오 세대의 끝물이고 DVD로 막 넘어가기 시작하는 끼인 세대라고 할 수 있다. 90년대 디지털 캠코더가 등장하면서 학생 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졌다. 그 중에는 골방 영화가 많았다. 어떡하면 간단하게 집에서 찍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신림동에서 반 지하 자취방에서 같이 살던 형들을 배우로 써서 만든 영화다. 예산의 제약으로 조명도 삼파장 스탠드에 비닐봉지 씌워서 하고, 깜빡거리는 효과는 조연출이 스위치를 껐다 켰다 하는 열악한 환경에서 만들었다. 사람들이 많이 보진 않았지만, 언론에서 생각보다 많이 다뤄줘서 스스로도 놀랐다. 국내에 이런 B급 SF가 드물다 보니까, 이슈화시키기가 좋았다는 생각도 든다.

김성욱: 김종관 감독의 경우, 특정 장르, 즉 멜로 영화를 염두에 둔 부분이 있다. 
김종관(영화감독): 이렇게 모여 있는 자리에 어떤 유대가 있는 것 같다. 모두들 상업적인 영화 시스템 안에서 만들지 않은 영화들을 가지고 개봉을 했고. <혜화,동>을 보면서도 들었던 생각이 동시대에 지나왔던 시간들의 상처를 볼 수 있다는 것이었고, 이에 많은 위로를 받았다. 또한 창작자 입장에서 영화들을 서로 많이 보고 생긴 그런 유대가 느껴졌고, 그런 동료들이 있다는 생각에 행복했다. 영화를 단순화해서 작은 작업으로 하려다보니 처음엔 멜로적인 구성이 편했다. <조금만 더 가까이>는 배우들이 조금 더 유명한 사람들이 되고 시스템이 조금 커지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기존의 작업과 크게 다르진 않았다. 그렇지만 개봉을 하게 되면서 그 전하고는 다른 책임감이 생기더라.

김성욱: <혜화,동>의 제작비는 얼마였나? 그리고 찍을 때 고심한 점이 있다면?
민용근(영화감독): 제작비는 2억 정도다. 시나리오를 쓸 때 어떤 규모의 영화로 만들어지고 어떤 배우로 하자고 정해놓은 게 전혀 없었다. 스텝들에게 미안해하지 않으면서 영화를 찍어야겠다는 생각만 있었다. 그래서 여배우를 이름이 있는 사람을 캐스팅해서 투자를 더 많이 받아보자는 생각도 했다. 어떤 상황이 되면 그 상황에 맞춰 하자는 주의인 것 같다. 운 좋게 영진위와 스튜디오 느림보에서 지원을 받으면서 촬영에 들어갔다. 그 전의 더 열악한 환경의 작업에 비하면 비교적 풍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참여했던 스태프들의 경우 다른 영화들에 비하면 빈곤했던 거다. 한겨울에 촬영해서 고생이 많았는데, 보상이 제대로 안 이뤄지니 미안함이 컸다.

김성욱: 네 분의 영화가 닫힌 세계에서 빠져나오는 느낌이었는데, 정호현 감독은 완전히 다른 세계를 다룬다. 쿠바에서 찍었고 다큐멘터리이며, 개인 작업에서 시작해서 극장에 걸리는 작품이 됐고, TV에서도 소개되면서 연관성들을 만들어냈다.
정호현(영화감독): 처음부터 극장 상영을 생각한 것은 아니었고 공동체 상영 정도를 생각했다. 그러다가 첫 극장 개봉을 하게 됐는데, 사실 극장 시스템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영화라는 게 이런 식으로 개봉되고 관객들과 이런 식으로 소통 되는구나 싶었다. 다큐멘터리의 경우 정치적 이슈나 사회적 성격이 강한 것은 이슈화하기 쉬운데 반해, 사랑이야기나 사적 이야기들은 극장에서 상영된 경우가 매우 적은 것 같다. 앞으로도 물론 상업 다큐멘터리를 만들진 않을 거지만, 그렇다 해도 이번 극장 상영을 계기로 어떤 관객들이 보겠구나 하고 미리 좀 생각해 두고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성욱: 어떤 영화를 만들 때 마이너리티 성향의 특정 관객을 염두에 두는지, 아니면 일반적인 관객들이 이정도면 즐길 수 있다고 보는지 궁금하다.
김동주: 어떤 영화든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반드시 한 사람이라도 생기게 된다고 생각한다. 한 번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영화를 만들었을 때 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조금 씩은 더 생길 수 있다는 생각으로 영화를 만든다.
김성욱: 극장 개봉에 대해 듣고 싶다. 현실적인 문제들을 경험했을 텐데.
김동주: 어느 정도의 틀이 갖춰진 영화라면 지속적으로 국가에서 상영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정착시켜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을 많이 했다. 한국영화에 활력을 불어넣는 일은 거기서 출발해야 하지 않겠냐고 생각한다.

김성욱: 민용근 감독의 경우 '찾아가는 관객과의 대화'라고 해서 적극적으로 관객들과 만나는 자리를 마련했고, 이응일 감독은 퍼포먼스들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김종관 감독은 관조적으로 점잖게 보냈던 것 같은데(웃음).
김종관: 영화는 기본적으로 혼자 보려고 찍진 않고 친구를 찾는 건데, 약간 더 은밀한 방식으로 만들어서 약간 더 은밀한 친구를 사귄다는 느낌이 있다. 주어진 예산에 맞춰서 영화를 찍는 방식들에 지금은 익숙해져 있다. 꾸준하게 보는 사람들의 범위들이 조금씩 조금씩 늘어나는 것이 매우 소중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민용근: <혜화,동> 같은 경우 GV를 하면 관객들이 조금 많이 오시는 편이지만, 극장 측에 양해도 구해야 하니 번거롭기도 하고 쉽진 않다. 그래서 생각한 게 찾아가는 관객과의 대화라고 해서 10명 이상 신청을 하면, 끝나고 같이 차라도 마신다든가, 극장 로비에서 커피라도 마시든가 하는 거다. 남들이 볼 때 극성을 떤 다고 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해야 좀 티가 나는 것 같다. 독립영화의 경우 2~3주 정도 극장에 걸려있어야 관객들에게 회자되고 인지되는 것 같다. 그런 리듬에 맞는 독립영화만의 마케팅 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번에 많이 배웠다.
이응일: 열악한 상황에 뭐라도 하자 싶어서 생각한 게, 우주쇼라든가, 캐릭터의 옷을 입고 나가거나, 만담처럼 이야기를 하거나 하는 거였다. 원천적인 한계가 있는 게 인구가 너무 적은 것 같다. 결국 통일을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웃음) 영진위에서도 저예산 영화는 무료로 DCP를 해주는 상설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본다. 현재는 영진위의 제작지원이나 홍보마케팅 지원제도도 사라진 상황 아닌가.

김성욱: 다큐멘터리 같은 경우는 어떤가? TV에서 상영될 수도 있지만, 극영화와는 다른 어려움이 많을 텐데.
정호현: 작품의 성격이 극장 상영에 적합한지, 아니면 시민단체라든지 하는 곳들에 가서 하는 것이 맞는지 잘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극장 상영이 의미 있는 이유는, 국내에서는 극영화적인 미장센이 없거나 TV 다큐멘터리적인 클리셰가 없으면 작품의 질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편견들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그 편견을 깰 수 있다는 의미와 함께, 여전히 극장에서 이런 영화들이 상영될 수 있고 관객들은 그것을 볼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의미가 있다.

김성욱: 최근 1~2년 사이에 저예산 영화의 성과가 놀라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이 갖는 의미나 미학적인 측면들에서. 좀 더 자신감을 낸다면 영화 전체적인 활력을 낼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든다. 작가 고유의 개성도 있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는 공동성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연합적인 흐름이 큰 힘을 발휘하게 되지 않나.
김종관: 우리가 어떤 면의 내용적으로 공감을 느끼는 부분도 있고, 그런 게 아니더라도 사실은 사슬처럼 묶여있는 관계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 트위터를 좀 하는데 여기에서 영화를 통해 만난 관객들이 있다. 어떤 영화를 본 사람들이 다른 영화들로 전파되어가는 것들을 본다. 그런 게 긍정적인 기운이라 본다. 아쉬운 건, 우리가 만든 영화들의 스태프나 배우들 다 사실은 노개런티로 찍은 거다. 그런데 계속 이렇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좋은 영화들이 많아져서 관객들을 조금씩 늘리는 것도 중요하고, 감독과 마찬가지로 극장들도 투자사도 각자의 분야에서 꾸준히 하면서 브랜드로서 키워지면 작은 영화들의 네트워크를 생성할 수 있기 때문에 좋아질 수 있으리라 본다.
민용근: 영화를 하면서 조금씩 다른 감독님들도 알게 된다. 적극적인 행동이 아니더라도 같은 시대를 살면서 영화를 만든다는 연대가 영화를 만드는 큰 동력이 되는 것 같다. 인디 밴드의 경우 합동 공연 같은 것을 하기에 보다 용이한데, 영화도 이런 연합이 필요하다. 또한 영화만이 아니라, 음악, 문학 미술 등 다른 예술과의 공감대의 지평을 넓히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김동주: 감독들의 성향은 다들 개인적이다. 사실은 그것들을 존중해 줘야 된다. 하지만, 감독들도 결국에는 어느 정도의 프로듀서 마인드를 가져야 된다. 감독들이 스스로 서로 공유하려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면서, 나중에는 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관계가 형성되면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나중에는 자연스러운 하나의 단체나 흐름이 나올 수 있지 않겠나 싶다.

김성욱: 극장을 하는 입장에서도 시대적인 트렌드, 젊은이들의 어떤 특정한 것들에 대해 관객들과의 접점을 만들어나가는 방식의 전략을 짜게 되지만, 동시에 또 흥행 강박이 되진 말자는 생각을 한다. 키아로스타미는 문화 활동이나 예술 활동을 지원하는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영화를 둘러싼 환경에 대한 마인드가 없기 때문에 영화계가 어려움에 빠져있다고 말했었다. 그러므로 영화의 진가를 아는 사람들이 스스로 자립을 해야 한다. 자립에 대한 것이나 지속적인 영화 만들기에 대한 고민이나 모델들이 있다면 마지막으로 듣고 싶다.
정호현: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고 선택한 매체가 영화다. 다큐멘터리에서 가장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만나는 사람들과 발생하는 완전한 현실에서 나타날 수 있는 것에 대한 재미를 느낀다.
이응일: 영화를 업으로 삼는 사람으로서 재미있고 훌륭한 이야기가 뭘까, 영화란 무엇인가, 영화는 어디에 쓸모가 있는가, 늘 고민한다.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자신의 삶에 대한 느낌을 얻어 가게 하는 것. 그게 영화의 기능이고 영화인의 사명이 아닐까 생각한다. 거기에 각자의 전략을 만들어내야 한다.
민용근: 생계적인 전략도 중요하다. 그게 곧 작가적인 전략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하면서 먹고 살 수 있는 것들에 대해 고민이 많이 필요하다. 영화라는 매체가 있을 뿐이지 자기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 무언가를 만드는 건 다 비슷한 것 같다. 꼭 영화에서만 국한 짓지 않고 생활도 놓치지 않는 환경들을 꾸준히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종관: 이야기를 할 때, 항상 나만 보면서 이야기를 하면 주제는 쉽게 메마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나랑 타자의 관계 속에서 나를 찾거나, 다른 세계 안에서 내 안의 것들을 끄집어내서 그 관계들에서 주제를 찾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그리고 영화를 하면서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항상 있다.
김동주: 창작을 할 때 자기만의 색깔을 가진 영화를 만들수록 대중성이나 흥행성이랑 멀어지기 때문에, 먹고사는 문제랑 연관이 늘 된다. 창작의 고통을 알지만, 또한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을 알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영화를 만들 것이다. 다음 작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만든다는 생각이다. 흥행이나 생계를 위해 영화를 선택하지 않고 오로지 하고 싶은 대상으로만 영화를 대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정리: 박영석 시네마테크 관객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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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토크] 민용근 감독의 <혜화, 동>

‘한국영화, 새로운 작가 전략’ 기획전이 닷새째를 맞이한 26일 오후, 찾아가는 GV를 통해 관객 일만 명 돌파라는 괄목한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혜화, 동>이 상영되었고, 예외 없이 민용근 감독이 함께 하는 관객과의 대화 시간이 마련되었다. 영화에 대한 세심하면서도 풍성한 생각들을 나눴던 시간의 일부를 전한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영화가 개봉하고 나서 빨리 묻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혜화, 동>은 감독이 관객을 찾아가는 활동을 하면서 지금 같은 좋은 결과를 내고 있다. 하지만 감독이 나섰다고 해서 그 결과가 있었던 것만은 아닐 것이다. 작품 자체가 그만한 힘이 있었다고 생각된다. 어떤 점을 주로 염두에 두고 영화를 만들었는지?
민용근(영화감독): 회사를 다니다가 그만두고 영화를 계속 하려고 하는데 장편 시나리오를 쓸 능력이 될까 이런 것을 시험해보려고 처음 시나리오를 썼다. 그때 썼던 시나리오가 <혜화, 동>이었고 연이 돼서 제작까지 하게 됐다. 시나리오를 쓸 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거나 큰 테두리가 있는 상태에서 시나리오를 쓴 게 아니라 사회 초년생일 때 유기견을 구조하는 여자분 얘기를 다룬 TV 다큐에 조연출로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그걸 아이디어 삼아 시나리오 작업에 착수하게 된 거다. 탈장된 개를 잡으려고 노력하지만 결국 잡지 못하고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그 모습이 머릿속에 오래 남았던 것 같다. 2002년이었던 것 같은데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가 어떤 마음에서 눈물을 흘렸을까 생각해보다가 이야기를 하나둘씩 덧붙여서 만든 것이 지금 보신 <혜화, 동>의 이야기이다.

김성욱:
유기견의 이야기와 비밀스러운 느낌을 주는 아기의 죽음이 연결되어있는 게 영화의 골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기의 죽음은 굉장히 미스터리한 플롯으로 전개되고 있다. 혜화의 감정적인 이야기 전개와 아기의 죽음의 미스터리 플롯이 연결된 것이 흥미로웠다. 다른 한편으로는 ‘도대체 아이를 둘러싼 이 문제가 어떻게 된 거지?’라는 생각도 드는데, 두 가지 연결점들을 만들 때 어떤 점을 염두에 두었나?
민용근: 미스터리한 요소는 장르적으로 끌고 가고 싶다고 한 건 아니었고 자연스럽게 나온 것 같다. 일상생활을 하다가 눈길을 끄는 사람을 보게 되고 그 사람에 대해서 궁금증을 품고 그 사람이 하는 행동 하나하나를 관찰하는 것 자체가 미스터리인 것 같다. 영화에서도 이야기를 진행시킬 때 ‘아이가 살아있는 것일까? 혜화의 아이가 맞는 것일까?’ 이런 궁금증들이 한 번에 해결되는 게 아니라 단서를 조금씩 전해주는 방식으로 진행되다보니까 미스터리한 느낌이 있었던 것 같다. 탈장된 개가 나오지만 혜화가 키우던 혜수의 딸인지 꼬리만 노란 공통점이 있는 개인지 그게 중요하진 않다. 개를 봄으로 인해서 혜화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변화들이 중요했던 것처럼 아기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나연이가 실제 혜화의 아이인가 아닌가가 중요하게 느껴지긴 하지만 누군지 밝혀지고 나서는 누구의 딸이고 어떻게 키워지고는 중요하지 않다. 혜화의 마음속에 있던 아이가 굉장히 중요했던 것 같다. 목욕을 시켜주는 장면에서 혜화는 나연이와 작별을 한다. 결과적으로 딸은 아니었지만 혜화가 용기를 잃고 작별 인사를 하지 못하고 보냈었던 아이와 마지막으로 작별을 하는, 일종의 마음의 치유 같은 과정이다. 중요한 건 마음속에 있던 아이의 존재였던 것 같다. 그것을 극복하고 치유해가는 혜화에 중심을 맞췄던 것 같다.

김성욱:
영화의 결말에 이르게 될 때 아이를 떠나보내고 나서야 비로소 두 남녀가 만나게 된다. 물론, 그렇게 느끼지 않은 분도 있었던 것 같다. 영화의 매듭을 짓는 부분에서 어떤 점을 염두에 두었는지?
민용근: 같은 관객도 처음 볼 때 두 번째 볼 때 다르게 느끼셨던 분들이 많았다. 혜화가 후진을 할 때, 한수에 대한 미움이 극에 달하신 분들은, 후진해서... (좌중 웃음) 혹은 전진과 후진을 반복하는... (좌중 웃음) 물론 혜화가 한수를 쉽게 용서한다거나 흔히 말하는 화해의 느낌은 아니었던 같다. 마지막에 혜화의 표정도 약간 불안했던 느낌도 있고, 한수에 대한 연민도 분명히 있기도 하고. 그 후에 혜화가 한수를 차에 태워서 버스 타는 데까지만 태워주든 어떻게 하든 그건 사실 어떻게 될지 모르겠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혜화가 한수에게 가는 얼굴로 끝을 맺었던 이유는 두 사람이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보고 얘기하는 시작 같은 느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수도 똑같이 상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고 똑같이 상처를 지니고 있는 사람을 혜화가 뭔가 풀지 않은 상태로 그냥 지나가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떤 결과가 나건 중요한 건 아이를 매개로 하는 게 아니라 서로 마주보고 얘기할 수 있는 시작의 느낌이다. 그 시작도 큰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한수에게든 혜화에게든.

김성욱: 혜화가 나연이를 납치하려다가 차가 견인되어 실패하는 장면을 인상적으로 기억한다. 이 때 전봇대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순간의 느낌이 특이했다. 전체적으로 혜화는 끊임없이 자기 주변의 어떤 것으로부터 소원한 경험을 얻는다. 강도는 약하지만 원장과 무언가가 있을 법하다가도 원장이 어느 순간 결혼을 하겠다고 하고. 그런 느낌이 영화에 반복해서 드러나고 있다. 
민용근: 혜화가 ‘왜 난 아니에요’라고 수의사한테 말을 하는데 그 말이 작게 보면 사랑까지는 아니지만 수의사에 대한 작은 호감, 농담으로 던진 말일 수도 있을 테고 약간 크게 본다면 수의사와 아이와 비어있는 자리를 계속 혜화가 했었던 건데, 거기서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누군가가 들어옴으로 인해서 밀려난 상황에 대해서 ‘왜 난 아니에요’가 될 수도 있고. 좀더 크게 보면 과거부터 계속 반복돼 왔었던, 한수와의 관계에서나 아이와의 관계에서나 의지와는 상관없이 밀려나는 자기의 상황에 대한 ‘왜 난 아니에요’일 수도 있다. 개장수가 나오고 그 개장수와 마주쳤을 때 개장수에게 저항하고 항변하지 못 하는 상황과도 연관이 된다고 생각했다. 개장수의 느낌 자체도 혜화에게 가혹하게 돌아가는 운명 같은 것이 됐으면 하는 느낌이 있었다.


관객1: 촬영 들어가기 전에 배우와 신뢰를 구축해간 과정이 궁금하다.
민용근: 다인씨 같은 경우도 드라마나 영화를 하기는 했었지만 전작들을 보고 캐스팅했던 것은 아니었다. 만나기 전에도 큰 기대 안 하고 만났는데 말도 별로 없고 대신 말을 한 마디 한 마디 하는 게 굉장히 진심처럼 박혔다. 혜화와 닮은 사람이구나 하고 느꼈었던 것 같다. 계속 만나다보니까 그게 크게 느껴져서 다인씨가 혜화가 되기 위해서 뭔가를 해야 한다거나 그런 고민은 안 했다. 사람 자체가 조용조용하다보니까 뭔가 확 깰 수 있는 부분이 부족할 것 같은 느낌은 있었다. 학교 다닐 때 기초 연기 수업을 들었는데 좋은 배우를 떠나서 좋은 사람이 되려면 자기 자신에게 있는 어떤 것을 깨야 한다고 배웠다. 교수님이 모으신 독백집에 있는 독백을 한사람씩 외워 와서 한명씩 독백을 나가서 하고 집중 인물 탐구를 받았다. 감정이 터지지 않으면 때리기도 하고. 그런 것을 한번 해보고 싶었다. 촬영 들어가기 전에 뭔가를 깨보자, 독백집에서 하나를 외워오고 준비되면 언제 날 잡아서 해보자. 눈물도 줄줄 흐르고 의외로 잘했는데 감정이 목까지 밖에 안 오더라. 보는 사람도 아슬아슬한 느낌들이 있었다. 학교 선생님은 점쟁이 기질이 있어서 확 끄집어내고 그랬는데 여러 방법들을 동원해도 결국 그 선생님처럼 끌어내지 못했다. 서로 답답해서 밖으로 나와서 산책을 하면서 무언가 마음이 풀어지는 느낌들이 있었던 것 같다. 비결을 알지 못해서 서로 발악했던 것이었는데, 의도치 않은 부분에서 통하는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촬영하면서 답답한 게 있으면 다인씨가 말을 안 한다. 그런 부분을 콕콕 찔러서 물어보기도 하고. 영화와 별개로 그 사람의 뭔가를 깨주고 싶다거나 이런 의도로 접근하고 관계를 가졌던 것들이 영화에 약간 잘 반영된 것 같다.


관객2: <혜화. 동> 제목의 의미가 궁금하다.
민용근: 중학교 때 혜화에 자주 놀러왔었다. ‘혜화’라는 느낌도 좋았고 글자 자체도 이뻐서 딸을 낳으면 민혜화로 해야지 하고 생각했다. 십몇 년 간직하고 있다가 <혜화, 동> 시나리오를 쓰면서 그 어감이 주는 느낌이 인물과 맞지 않나 생각이 들었다. 쉼표 동 같은 경우는 처음 시나리오 쓸 때 장난 반으로 썼었다. 대신 아이가 중요한 모티브고 해서 아이 동 자로 한자를 썼었다. 그런데 편집 모니터링 하러 와서 보신 분이 겨울의 느낌이 많이 난다고 혹시 겨울 동이냐고 해서 생각해보니까 그런 것도 같았고, 다른 분이 영화 보고 나서는 혜화 마음이 계속 움직여서 움직일 동이냐고 했다. (좌중 웃음) 그것도 맞는 것 같았다. 그래서 최종으로는 한자를 뺐다. (웃음) 세 가지 모두가 영화와 각각의 위치에서 중요한 느낌이 있는 것 같았다. 관객과의 대화를 하다 보니 여러 설들이 나오더라. 혜화와 한수의 마음이 같이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같은 동 (좌중 웃음), 철거촌 같은 동네의 느낌이 강해서 동네 동이냐고 하시는 분도 있고. 어느 게 딱 맞다 보단 느낌 가는대로 느껴도 될 것 같다.

김성욱: 감독에게도 특별한 경험이 된 영화일 텐데 개봉 이후의 소회를 들려 달라.
민용근: 처음부터 GV를 많이 할 생각은 아니었고 개봉하고 나서 우연하게 아는 분이 회사 동호회 삼십분을 데리고 와서 볼 테니 술자리에 잠깐 얼굴 비춰질 수 있냐고 한 말에서 시작했던 것 같다. 갔었고 얘기하다보니까 꼭 극장이 아니더라고 뒷풀이 자리나 찻집에서 관객과의 대화를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극장에 네 분 남아계실 때는 네 분이랑 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굉장히 민망했는데 막상 이야기를 해보니까 이야기하는 게 굉장히 재밌었다. 저도 얻는 게 굉장히 많았다. 질문을 하면 대답을 하는 형식이 아니라 이야기를 하는 방식이니까 저한테 얘기해주시는 분들도 많고. 특히 독립 영화 안 보셨던 분들, 연령대 있는 아주머니 분들이 해주셨던 말씀들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영화를 많이 보는 눈으로 말씀하시는 부분이 아니라 자기가 겪어온 삶을 통해서, 자기 딸과의 관계를 통해서 영화를 봐주시고 저에 대해서도 얘기해주시니까, 이렇게 하지 않았으면 못 만났을 인연이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횟수로 많이 했다가 중요한 건 아닌 것 같고, 그렇게 가깝게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게 나중에도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정리: 최용혁 시네마테크 관객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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