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루멧의 <뱀가죽 옷을 입은 사나이>(1960)는 사실 정확한 제목은 아니다. 이외에도 <기타 치는 사나이> <말론 브란도의 도망자> 등으로 소개가 됐는데 이들 제목 모두 영화의 본질을 압축했다기보다는 극중 말론 브란도가 연기한 사비에르의 특징을 가져와 제목으로 둔갑시킨 경우다. 테네시 윌리엄스의 희곡 <Orpheus Descending>을 테네시 윌리엄스 본인이 직접 각색한 <뱀가죽 옷을 입은 사나이>는 당시의 미국 사회를 겨냥해 관계의 부조리를 묘사한 거대한 우화다.


기타를 애지중지 아끼는 사비에르는 뱀가죽 재킷을 입고 다녀 ‘스네이크 스킨’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뉴올리언스에서 악사생활을 하던 중 예기치 않은 소동에 휩싸여 새로운 도시로 떠나던 중 이름 모를 작은 마을에 기거하게 된다. 마을 주민의 도움으로 옷가게 점원 일자리를 얻게 돼지만 그를 향한 사람들의 시선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하지만 오래 전 병들어 누운 남편의 감시 속에서 옷가게를 운영하는 토렌스 부인(안나 마냐니)은 사비에르의 처지에 호감을 느낀다. 아니 그를 위안의 안식처로 삼으려 한다. 그러자 남편의 의심의 눈초리가 점점 이들을 조여오기 시작한다.

테네시 윌리엄스의 작품은 대개 남녀의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그들이 속한 환경과 시대에 굴절된 양상을 보인다. <뱀가죽 옷을 입은 사나이> 역시 마찬가지다. 사비에르와 토렌스 부인의 사랑이 극의 중심을 차지하지만 이들의 관계는 아슬아슬하기만 하다. 사비에르는 외부인이라는 이유로 마을의 기득권 세력, 즉 백인 남자들에게 거부감을 불러일으키고 그와 가깝게 지내는 토렌스 부인을 방해하기 위한 남편은 거동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세를 규합하려 든다.



반목하는 집단의 모습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아니지만 시드니 루멧은 인물의 설정과 공간의 활용 등을 통해 은근한 방식으로 이를 시각화한다. 말하자면 이 영화의 시각적 콘셉트는 ‘고립’과 ‘분할’이라 할만하다. 고립의 측면에서 사비에르와 토렌스 부인은 확실히 옷가지에서부터 남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사비에르의 뱀가죽 잠바는 일상복 일색인 마을에서 어딜 가나 튀기 마련이고 검은 옷으로 일관하는 토렌스 부인의 경우, 마치 상복을 입은 듯 매사가 침울하고 음산하다. 그러다보니 공간 역시도 철저히 분할된 형태를 보인다. (그것은 희곡이 원작이기에 나타나는 특징이지만) 매장을 가운데 두고 사비에르와 토렌스 부인은 타인의 시선이 미치지 않는 매장의 사각지대에서 몰래 사랑을 나누고, 철창 패턴으로 이뤄진 이층의 방에서 토렌스 부인의 남편이 기거하는 식이다.

기득권은 기득권끼리, 소외된 이들은 소외된 이들끼리 그들만의 공간을 점유하지만 결국 공간의 싸움에서 사비에르는 그 자신이 이기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미국 사회에서 백인의 룰을 따르지 않을 경우, 이방인인 사비에르가 차지할 자리 따위는 없다. (그가 왜 뉴올리언스에서 쫓겨났는지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다만 이런 경험이 처음일 토렌스 부인에게 몸을 사리는 사비에르의 입장은 이해 불가능한 처사로 비친다. 여기서 시드니 루멧의 혜안이 돋보이는 이유는 토렌스 부인 역에 미국인이 아닌 이탈리아 배우 안나 마냐니를 과감히 캐스팅한 까닭이다. 외부인이면서 (극중 그녀의 영어 연기는 그녀가 미국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늘 남편의 감시에 있었던 탓에 집 바깥에서 벌어지는 소동의 메커니즘을 알 수 없는 그녀는 결국 사비에르를 죽음의 사지로 몰아넣는 것이다.

영화가 발표된 시기를 감안하면 <뱀가죽 옷을 입은 사나이>를 빨갱이 사냥에 대한 은유로 읽는 것도 가능하지만 사실 이와 같은 내용은 시드니 루멧의 영화에서 일관되게 목격되는 주제의식이라 할만하다. 그런 점에서 시드니 루멧이 테네시 윌리엄스의 희곡을 영화화한 이유를 추측하기란 어렵지 않다. 루멧의 영화적 제재는 늘 거대한 시스템에 편입하지 못하는 이들의 비극이었다. <뱀가죽 옷을 입은 사나이>를 시드니 루멧의 최고작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의 영화적 특징을 드러내는 단적인 작품이라고 평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글/ 허남웅(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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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토크] 민규동 감독이 추천한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지난 30일 저녁,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상영 후 이 영화를 추천한 민규동 감독과 함께한 관객과의 대화 시간이 있었다. 필름이 변색되었다는 공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극장을 찾아주었다. 다양한 측면에서 함의를 품고 있는 논쟁적인 영화였던 만큼 짧은 시간에도 깊이 있는 대화와 질문이 오고간 자리였다. 이 지면을 통해 그 일부를 옮겨본다.


민규동(영화감독):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친구들에게 줄거리를 설명하기는 힘들었는데 촬영과 색감은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오늘은 필름 상태 때문에 세피아, 혹은 흑백처럼 보였지만, 사실 촬영감독을 전시회에 데려가서 처음에 나오는 프란시스 베이컨의 그림을 보여주며 저 그림의 색감을 구현하고 싶다고 얘기했었다고 한다. 프랑스는 겨울에 해가 빨리 저물어서 낮에도 등을 켜두는데 이런 1월의 파리, 해질녘의 빛깔 같은 걸 활용해서 굉장히 아름다운 영화를 찍은 것 같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처음 이 영화가 개봉 됐던 때에는 굉장히 정치적으로 해석되기도 했었는데 감독님은 어떻게 보셨는지?
민규동: 베르톨루치는 우리에게, 특히 내게 <마지막 황제>로 처음 접해진 감독이었다. 당시 아카데미에서 상을 9개 받았었는데 중국의 역사를 외국인의 시각으로 다루는 게 독특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에서 그를 다시 만난 셈이다. 젊은 시절 8,90년대에 거쳤던 혁명에 대한 낭만적 기대가 있었는데, 베르톨루치도 마찬가지로 사회적이고 진보적인 것들, 역사변혁에 관한 것들을 젊은 시절에 몸으로 체감한 사람이어서 남다른 느낌이 있었다. 이와 별개로 이 영화를 선택한건 에로티시즘의 파격적인 지점을 선보였기 때문이었다. 같이 본 친구가 ‘이렇게 야한 영화도 처음이고 이렇게 지루한 영화도 처음이다’라고 했던 감상이 아직도 기억난다. 처음에 봤을 때 왜 이게 그렇게 파격적이며 물의를 일으켜야했는지에 대한 질문을 갖고 있었다. 처음엔 이 영화가 하려던 얘기가 뭔지 이해를 잘 못했던 것 같다. 근데 30대에 파리에서 다시 보니까 영화의 줄거리와 사랑 방식이 조금 이해가 갔었다. 40대가 되어서 봤을 때는 한 순간도 지루하지 않고 너무 절박하게 공감이 됐다. 여러 가지 함의가 있는 영화이고 72년작인 만큼 68혁명에 대한 후일담으로써의 정치적인 측면이 있다. 하지만 지금 내게는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느껴진다. 보편적인 감정에 대한 이야기로써 큰 위로가 된다.


김성욱: 이 영화에는 이방인적인 느낌이 많다. 주인공도 파리의 아메리카인이면서 또 많은 외국을 거쳐서 온 이국적 인물이기도하고 감독도 파리에서 외국인으로서 영화를 찍었다. 그러다보니 공간이 유독 인상적이다. 아무래도 주된 공간은 아파트다. 정해진 한 공간에서 남녀가 만나 사랑을 나누고 헤어진다는 설정이 관객에게 납득이 힘들 수 있는데, 이 영화는 잘 맞아떨어지고 또 그 공간 안에서 시간이 파괴되는 느낌도 든다. 베르톨루치가 “이전까지는 과거시점의 이야기를 다뤘는데 이 영화에서부터 현재 진행으로 지속되는 이야기를 다루고자 했다”던 말을 인상적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공간이 특별히 더 중요하게 작용한 것 같다.
민규동: 베르톨루치가 처음 이야기를 구상한 계기는 밀폐된 공간에서 이름 모를 여자와 알 수 없는 미래를 즐기며 사랑하고 싶다는 성적 환상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따라서 처음에는 아주 주관적이고 사적인 남녀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이런 맥락에서 파리와 아파트라는 공간이 적절했던 것 같다. 왜 프랑스를 배경으로 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상적인 욕망이 펼쳐지지 않는 공간을 선정한 것 같고, 영화 속에 드러나다시피 교회, 법, 가정 같은 주류 질서에 대한 저항의 욕구가 컸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권력을 행사할 수 없는 공간을 찾다 보니 오래 된 큰 아파트가 정해진 것 같다. 그 안에서는 어떤 질서도 존재 않는 원초적인 공간으로 역행하고자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 무엇도 나를 억압할 수 없는 공간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느낌으로 해석하도록 공간을 배치한 듯했다.

김성욱:
영화 촬영 당시 검열문제나 분위기상으로 봤을 때 이 정도의 포르노그래픽한 영화를 찍을 여건이 프랑스 정도나 되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갖고 있는 질문 하나가, 마지막에 말론 브란도가 씹던 껌을 뱉어 붙이는 장면에서 '그 껌을 왜 붙였고 언제부터 씹었는지' 이다. (좌중 웃음) 오늘 유심히 보니 아파트를 뛰어올라간 다음부터 씹고 있더라. 즉흥적인 면도 있는 것 같고, 어쨌든 이 영화에서 말론 브란도의 연기는 굉장히 특별하다. 그가 연기한 폴이란 인물은 어떻게 봤는가?
민규동: 예전엔 몰랐는데 다시 보니까 많이 섹시한 인물이다. 고독이나 참회 같은 인물의 고행을 누가 이만큼 소화할 수 있었을까 잘 상상이 안 된다. 감독이 밝혔듯이 이 영화는 사실 탄탄한 시나리오를 구축해서 대사를 외우게 하며 찍은 게 아니라, 무척 거칠고 즉흥적으로 많은 걸 열어놓았다고 한다. 미국에서 메소드 연기법을 체계적으로 교육받고, 연기의 기교와 깊이를 알며 독특한 기벽이 있었던 이 훌륭한 배우가 적합했으리란 생각이 든다. 그는 모든 이야기와 이미지를 뚫고 자연스레 인물을 만들어낸 것 같다. 후에 브란도가 이 영화를 찍는 동안 자기 삶을 강탈당하는 느낌에 너무 고통스러웠고 다시는 이런 영화를 찍지 않겠다고 말했을 만큼, 자신의 실제 삶을 쏟아 부으며 이 인물을 힘겹게 통과한 것 같다. 촬영하며 살이 10키로나 빠졌다고 들었다. 특히 주목하고 싶은 건 아버지가 술꾼이고 어머니가 알몸으로 감옥에 갇혔던 경험 등이 실제 그의 삶에서 나왔단 점이다. 상대 여배우에게만 질문 대사가 주어졌고 브란도의 독백은 정해진 대사 없이 그가 자기 경험을 말했다고 한다.

김성욱: 이 영화를 볼 때면 늘 대가가 보여주는 카메라 움직임에 감탄하게 된다. 이를 테면 중간에 장모와 폴의 대화 장면에서 카메라가 슬쩍 들어가서 벽을 보여주다가 장모가 화면 안으로 들어온다든지, 중간 중간 사람들을 세워놓고 카메라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장면도 많고, 마지막에 테라스에서 뒤로 빠지는 장면도 굉장히 좋았다. 전작인 <순응자>에서는 카메라가 발레처럼 움직이는데, 이 영화에서는 인물들을 놓고, 공허감을 주는 그 틈들을 잘 찍어냈다. 영화에서 촬영과 전체적인 장면 구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봤는가?
민규동: 처음엔 촬영이 전혀 안 보였는데 세 번째 보니 보이더라. 굉장히 유려하며 현장에 가기 전에는 계획하기 힘든 장면들이다. 감독 스스로도 <파리의 아메리카인> 같다는 말을 했을 만큼 음악적이며 뮤지컬 영화적인 성향이 있다. 베르톨루치는 카메라가 가만히 있는 걸 견딜 수 없어서 항상 움직이게 된다고 하더라. 그는 자신의 영화 <루나>의 '어머니를 향해 다가가는 아이' 씬을 이야기 하면서, 가까이 다가가는 카메라는 그 대상을 욕망하는 자신의 시선이고 다시 멀어질 때는 그 금기된 욕망에 대한 주저함이라고 했다. 카메라가 크레인 업하는 것은 발기, 성적 욕망의 이미지라고 하더라. 사위와 장모간의 장면들에서는 묘한 성적 관계를 암시하려는 규칙 속에 움직이는 것 같았다.

관객1:
저널들에서 이 영화를 성정치학과 관련지으며 훌륭한 영화라고 치켜세우기에 호기심에 비디오로 빌려봤었다. 영화를 보면 가정을 부정하는 폴과 가정을 이루려는 톰이 대척점을 이루고 있는데, 이 영화에 표현된 가정에 대한 감독님의 생각이 궁금하다.
민규동: 폴이 외롭다고 생각하며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느 날 부인이 죽었는데 이유를 알 수 없고 남겨진 것은 그녀의 정부였던 마르셀 뿐이다. 결국 지난 5년간의 결혼 생활, 가정과 사랑에 대해 짙은 회의를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모든 게 아무 것도 아니라고 스스로를 납득시키기 위해, 낯선 여자와 폭력적인 정사를 가진 것 아닐까. 이 증명도 부질없다고 느낀 순간 아내에게 가서 참회하고, 결국 가족과 관계, 사랑이 유의미한 것이었다 말해달라고 고백할 때, 비로소 쟌느가 다시 마음속에 들어오지 않나. 쟌느와 폴의 관계는 일종의 자해였다고 본다. 이를 통해 과거를 잊으려했고 결국엔 쟌느와의 새로운 관계를 원하게 된다는 점에서 이 시도는 성공한 셈이다. 반대로 쟌느는 폴의 대척점에서 평범한 가정과 사랑을 원하는 보통여자로 존재한다. 따라서 둘의 관계는 충돌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마지막에 감독은 결국 '가정을 이루려는 쟌느와 톰에게도 희망이나 출구는 없지 않는가' 라고 묻고 있다고 생각한다.

관객2: 부인의 시신 앞에서 우는 장면에서 장례를 치르지 않고 계속 집에 두는 건지 아니면 과거 현재가 뒤섞이는 건지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붙여놨던 껌을 다시 씹는 경우가 있는데 껌을 붙이는 장면에서는 폴의 삶에의 의지가 드러난 게 아닐까? (좌중 웃음)
민규동: 사실 이 영화는 한 3일정도 밖에 안 되는 시간을 다루고 있다. 감독이 시적으로 시간을 다루다보니 물리적 시간과는 다른 느낌을 주어서 그런 것 같고, 한편으론 영화 속 두 남녀가 나누는 관계가 너무 깊어서 3일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듯하다. 이 점은 우리와 다른 유럽인들의 사랑 방식 땜에 생긴 시차가 아닐까. 껌에 대해서는 클로즈업으로 촬영된 만큼 의도적인 연출이었다고 생각한다. 감독도 그 아버지도 시인이었던 만큼 어떤 시적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붙을 듯 말 듯 붙지 않는 두 남녀의 깨진 세계를 봉합하기를 원하는 건 아닐까. 근데 여기에 대해서는 어떤 해석도 보지 못했다. 베르톨루치는 늘 불가해한 어떤 부분을 열어 놓는 게 영화의 예술적 경지라고 말한다.

관객3: 처음에 나오는 프란시스 베이컨의 그림이 많은걸 설명하는 것 같다.
민규동: 베르톨루치가 그 그림을 브란도에게 보여주며 이런 고독을 표현해달라고 했다고 한다. 표정에서 배우가 이를 의식한 게 느껴지는 듯하다. 또 영화에서 익명성이 무척 중요한데, 한 여자와 한 남자의 뭉개진 초상화, 익명의 얼굴을 제시하고 있기도 하다. 한편 이 얼굴들은 히스테리에 대한 은유이기도하다. 즉, 욕망이 제대로 채워지지 않은 부정적 상태가 드러난 이 그림이 인물들의 핵심적인 이미지였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정리 : 백희원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관객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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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시네바캉스가 한창이던 지난 8월 8일은 특별히 정한 <대부>의 날이었다. 비록 안타까운 사정으로 <대부2>의 상영이 취소되긴 했지만, 김영진 영화평론가의 강연으로 그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극장의 큰 스크린으로 만난 <대부>의 위력에 모두 큰 감흥에 젖은 가운데, 김영진 평론가는 촌철살인의 짧고도 굵직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이야기를 담아보았다.


김영진(영화평론가, 명지대 교수): 언제 봐도 재미있는 영화다. 83년에 처음 봤다. 서울극장 리바이벌 상영이었는데, 학교 졸업하고 당당하게 본 첫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였다. 너무 쇼킹했고 특히 마지막 교차편집이 너무 쇼킹해서, 그 다음날 한 번 더 봤다. 한 동안 코폴라의 광팬이 됐었다. 국내 출시된 DVD의 서플이나 피터 비스킨드 프리미어 수석기자가 쓴 책(『할리우드의 르네상스』라는 제목으로 국내 번역)에 영화에 대한 많은 비화가 있다. 처음부터 코폴라가 연출하고 싶어서 한 영화는 아니었다. 60년대 코폴라는 미국에서 펠리니나 고다르 같은 영화를 만들려 했었다 한다. 대학의 유명한 수제였다는데, 대학 3학년 무렵 로저 코먼이라는 B급 영화 제작자에게 스카우트되어서 시나리오도 쓰고 온갖 일들을 다 했다고 한다. 구소련 SF 영화를 사와서 원본 시나리오 없이 대충 화면 보면서 더빙용 시나리오를 쓰는 등 많은 작품을 했다. 특히 <패튼>의 시나리오가 유명하다. 아카데미상도 받았다. 그렇게 시나리오를 써 가면서 연출도 했는데 찍는 족족 망했다. 연출한 영화 중 <빗속의 연인>이라는 영화가 있다. 미국의 주부가 가출하는데, 가출 동기는 밝혀지지 않는다. 그녀가 자아를 찾는 여행을 해 나가는 로드무비다. 하지만 이 영화도 큰 빚을 졌다. 프레드 아스테어를 데려다가 고전 뮤지컬에 대한 오마주 영화를 찍었는데 그것도 망했다.

거의 할리우드의 기피 인물이 된 상황에서 갑자기 <대부>의 연출을 맡게 된 거다. 대부라는 소설이 그렇게 베스트셀러가 될 줄 몰랐다가 폭발적인 베스트셀러가 되니까 급히 6개월 내에 영화를 찍으려고 한 거다. 그런데 아무도 안 하려 해서 궁여지책으로 생각한 사람이 코폴라였던 것. 코폴라가 이탈리아 계통이라서, 같은 이탈리아 계통끼리 마피아를 욕되게 하는 영화를 찍겠냐 해서 택했다고 한다. 최악의 선택이라고 지인들의 전화를 받고, 코폴라 나름대로도 굉장히 창피해하면서 내키지 않아했다고 하며, 촬영 중에도 일주일마다 해고 위협을 받았다고 한다. 해고 즉시 투입할 감독도 늘 대기하고 있었다고 한다. 해고 위협을 받은 결정적 이유는 말론 브란도와 알 파치노를 캐스팅한 것, 시실리 로케이션 고집한 것 등이었다. 당시에 알파치노는 인물도 안 되고 키도 작고 연기도 못하는 배우였다. 브로드웨이 초짜 배우도 저것보단 잘하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그러한 여러 가지 악조건들을 무릎 쓰고 나온 영화가 <대부>다. 그런데 영화가 개봉하자 마자 박스 오피스의 기록을 갈아치웠고, 그 당시에 드물게 와일드 릴리즈 상영되었다. 그래서 코폴라는 그 날로 바로 로버트 에반스에게 백지수표를 받았으며, 그걸로 페라리를 샀다가 그날 저녁에 술 먹고 사고내서 파손됐다고 한다. 코폴라에게도 엄청난 스트레스가 있었다는 거다. 말론 브란도는 당시에 퇴물배우이자 말썽꾸러기였다. 코폴라가 브란도의 집에 오디션하러 찾아갔다고 하는데, 브란도는 코폴라를 맞이할 때 입안에 뭘 물고 영화 속의 그 모습처럼 준비해서 맞이했다고 한다.

코폴라는 '사이트 앤 사운드'와의 인터뷰에서 영화에 대한 세 가지 착안점을 밝혔는데, 마피아는 아메리카에 대한 메타포라는 거다. 세 가지 지점에서 같다. 자본주의적 사고방식. 이익을 위해선 뭐든지 할 수 있는, 무자비하게 적을 살상할 수도 있는 집단. 그리고 둘 다 자기 내가 매우 자비로운 집단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코폴라는 더 나아가서 차라리 마피아가 미국보다 낫다고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적어도 마피아는 자기 구성원들은 배신을 하지 않는 이상은 확실하게 보호해주니까 말이다. <대부> 1편은 굉장히 마피아가 미화되어 있다. 그래서 코폴라는 2편에서는 그것을 반성하고 굉장히 차갑게 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편이 더 좋다고 여겨지는 이유는, 우리는 판타지를 갖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사회시스템(자본주의)을 충실히 할수록 가족주의가 깨진다. 비토 콜레오네 시절에는 그것이 가능했다. 첫 살인을 저지르고 가족 내에 들어와서 어린 마이클과 노는 장면 등이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마이클 콜레오네는 아버지 못지않게 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꾸 소외된다. 한 번 배신한 사람은 계속 배신하고, 그래서 죽이게 된다. 이런 주제를 마르크시즘 적인 텍스트보다 더 깊은 레벨에서, 이와 같이 다뤄낸 영화가 또 없는 것 같다. 처음 40분의 결혼식 시퀀스에서 이 모든 게 다 나타난다. 어둠 속에서는 청탁이 이뤄지고 있다. 바깥에선 밝은 햇살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을 누리고 있다. 계속해서 안과 바깥이 대비되며, 모든 등장인물이 소개된다. 유일하게 거기에 속하지 않은 사람이 마이클이다. 케이가 계속 물어보는데, 마이클만이 거기에서 분리되어 양지의 세계에 있다. 그런데 어쩌다보니 패밀리 속으로 들어오고 변해버린다. 영화의 마지막, "이번만은 대답해 줄게. 아니야"라고 말하는 소름끼치는 모습. 그러면서 마이클은 계속 고립된다.

형식적으로 이 영화는 아메리칸 뉴시네마 중에서 가장 고전적 방식으로 찍혀있다. 주제 상으로는 급진적이지만. 일종의 권력이동 드라마다. 시점이동에 관해 굉장히 신중하고 영민한 방법을 쓰고 있다. 영화의 첫 숏에서 카메라가 줌 아웃되면 그것이 비토의 시선임이 밝혀진다. 한편, 비토가 암살시도를 당할 때, 카메라가 부감으로 올라가는데, 거기서부터 시점이동이 시작된다. 병원에서 마이클이 아버지를 구해낼 때 감동적인 숏-리버스숏이 나온다. 정말 믿을 만한 게 마이클 밖에 없는 상태인 거다. 유일하게 아버지를 닮은 아들. 비토가 울자 서서히 마이클에게 시점이 이동한다. 영화의 첫 숏과 대구를 이루는 숏이 솔로노와 협상 건을 놓고 의논할 때 마이클이 하지 말자고 말할 때, 카메라가 틸 다운하고 천천히 이동하면서 마이클에게 이동하여 클로즈업으로 끝나는 숏이다. 첫 장면의 비토 콜레오네와 대구를 이루는 숏으로, 아주 훌륭한 테크닉이다. 부자간의 마무리를 짓는 건, 정원에서 부자간의 대화 장면이다. 둘이 얘기를 할 때, 아주 사적인 친밀한 얘기와 비즈니스 얘기를 번갈아가며 한다. 아들 얘기, 전화국 얘기. 블로킹이 바뀌면서 카메라 포지션도 바뀌고 두 사람의 더블 클로즈업을 잡고 있다. 비토가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을 한다. "나는 네가 거물이 되면 했다. 상원의원...." 그러자 마이클이 이것도 좋다고 한다. 아주 뛰어나게 연출하고 있는 장면이다. 거의 무장해제 된다. 손자와 노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마이클이 어떻게 새로운 보스가 되는 지를 보여줄 때에도, 톰에게조차 말하지 않고. 다 처리해 버린다. 새로운 보스가 되는, 즉 또 다른 인간이 되어버리는 이야기이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생생함이다. 마리오 푸조의 원작도 굉장히 뛰어난 소설이다. 직접 취재하거나 그러지 않으면 쓸 수가 없는 소설이다. 꼴레오네가 말하는 "바르지니와 협상을 주선하는 사람이 오면 그 사람이 배신자다"라는 대사는 결코 책상에 앉아서 쓸 수 없다. 정말 그 세계의 사람들을 많이 취재한 사람마이 쓸 수 있는 대사다. 풍부한 디테일들을 가지고 할리우드의 엄청난 물적 지원을 받으면서 많은 배우들을 캐스팅해서 만들어낸 기적 같은 작품이다. 코폴라는 계속해서 이 영화를 능가하는 작품을 찍고 싶어 했으나, 내 견해로는 결국 그러지 못했다. 요즘 <테트로> 같은 영화를 보면, 오히려 자기가 젊었을 때 찍고자 했던 영화를 이제서야 찍는 거 같다. 코폴라 필생의 테마인, 선과 악, 밝음과 어둠을 가지고 말이다. <지옥의 묵시록>도 마찬가지다. 이 양면성의 측면에서. 이와 관련된 일화가 있는데, 코폴라 할아버지가 코폴라 아버지를 교육을 시키는데, 어느 날 아버지가 창고에서 플룻을 부는데 마피아가 나타났다고 한다. 코폴라 할아버지는 마피아들에게 총들을 전해주었고, 마피아들이 얘는 누구냐고 하자, "걱정 안 해도 된다, 내 아들이다."라고 했다는데, 코폴라 아버지는 이 때 마피아 앞에서 플룻을 불었다고 한다. 그들이 잘한다고 돈을 더 주고 갔다고 한다. 코폴라는 아버지의 이 일화를 굉장하다고 여겼다. 가장 잔인한 것과 따스한 것이 공존하는 순간이라 여긴 거다.


관객1: 대부를 한 다섯 번째 보는데 이해가 안 되는 장면 중 하나가 다섯 개 패밀리를 다 소집해서 돌아오는 길에, '내 아들을 죽인 것이 바르지니인 것을 알았다'라고 하는데, 이에 대한 복선이 나왔는지?
김영진: 그것은 결국 감일 게다. 회합의 주도권을 쥐고 분위기를 리드하는 것이 바르자니인데, 아마도 거기서 눈치를 챈 것이 아닐까 싶다. 나도 이 영화를 열 번 이상 본 것 같다. 학생들과 수업 중에도 곧잘 본다. 의외로 학생들은 이 영화를 많이 안 봤더라. 내 기억으론 <7인의 사무라이>를 보여주면 자는데, <대부>는 안잔다. 더 젊을 때는 <대부2>를 더 좋아했는데, 지금은 <대부1>이 더 좋다. <대부2>는 너무 날이 서 있어서 좀 괴롭다. <대부1>은 날도 서 있지만, 정서적으로도 우리를 위로해주는 측면이 있다. 대중영화로서 완벽하고, 할리우드가 아니면 만들어낼 수 없는, 개인의 기량과 시스템의 힘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작품이 아닌가 싶다. (정리 : 박영석)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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